요 근래엔 거의 한 달 간격으로 나란히 산행 후기를 올리게 됐다.
본인은 이제 인서울에서는 어지간한 산들은 다 오른 것 같다. 서울 외곽은 지금까지 주로 동쪽으로 살펴본 편이었다. 남양주 예봉산, 하남 검단산을 오르면서 오지를 탐험한 건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경부선이나 과천선 철도 주변에 있는 산들은 직선 거리로는 본인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청계산 내지 관악산처럼 다른 산의 남쪽에 있는 산들은 교통이 불편해서 심리적으로 안 가게 된다. 북쪽으로 의정부의 사패산 같은 산도 다른 메이저 산에 가려져 있다. 게다가 그런 곳은 딱히 그린벨트 지대가 없어서 산기슭까지도 건물들이 빽빽해서 속세를 벗어난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본인은 서울의 동남부에 있는 성남에서는 불곡산을 올랐고 얼마 전에 영장산을 오른데 이어, 이번에는 분당이 아닌 구 성남 시가지의 동쪽에 있는 산을 다녀왔다. 성남과 광주 사이의 산맥 답사가 세 번째를 맞이했다. 등산 지점은 점점 더 북상하고 서울과 더 가까워졌다.
분당· 판교에 직장을 뒀던 사람으로서(지금은 회사가 서울로 이사를 감), 서울 지하철 8호선이 지나는 구 성남 시가지와 거기 산기슭은 분위기가 어떨지 참 궁금했는데 이 답사가 의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

자, 그럼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어디까지 등산을 할지 경로를 짜는 게 첫 고민거리였다.
작년에는 서울 마천 역 근처의 청량산 방면에서 등산을 시작해서 남한산성까지 올라갔었는데, 그때는 남한산성의 북쪽(서문과 북문)만 그야말로 수박 겉 핥듯이 둘러보고 도로 북쪽의 하남시 쪽으로 하산해 버렸다. 남문이나 심지어 조선 행궁 같은 것도 전혀 구경을 못 했다.

그래서 이번 산행에서는 일단 남한산성 남부까지는 성남시에서 접근해서 그냥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그래서 그때 못 한 남한산성 유적지 구경을 잠깐 한 뒤, 남쪽으로 내려가서 검단산과 망덕산까지 쭈욱 걷고 이배재 고개까지 구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성남시에도 하남 검단산과 이름이 동일한 산이 있다.

아침 일찍(7시 무렵), 엄청난 높이의 에스컬레이터로 악명 높은 서울 지하철 8호선 산성 역에서 내렸다. 여느 출구로 나간 게 아니라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는 북쪽의 환승 주차장으로 나간 뒤, 거기서 더 북쪽에 있는 폴리텍 대학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9번 버스를 탔다. 산기슭의 '남한산성 입구'가 아니라 실제로 산을 올라가기도 하는 얼마 안 되는 버스이기 때문이다.

얘는 평소에는 성남 시내를 빙빙 돌다가 산을 오르지만, 주말 한정으로 등산객과 관광객을 위해 지하철역-남한산성 직행 셔틀이나 마찬가지인 9-1이 다니기도 한다.
산을 오르려면 기름이 굉장히 많이 들 것이고 평일에는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이 적어서 채산성이 안 맞을 텐데, 그래도 9번 버스는 10~20분대의 배차간격으로 다니는 편이었다. 지름길이 아니라 좀 이리저리 돌다가 산을 올라가는 것쯤은 얼마든지 봐 줄 만했다.

산을 오르면서 차창 밖 경치 중에서도 사진 찍고 싶은 게 여럿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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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남한산성 내부에 도착했다. 위의 사진은 만해 한 용운 기념관, 그리고 조선 행궁 '한남루'의 입구이다. 한낮인 것 같은 시간대이지만 방문 당시는 아직 아침 8시 남짓밖에 안 됐다. 그러니 둘 다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이제 흙색의 낙엽은 바닥에서나 볼 수 있고 산들이 전반적으로 다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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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남한산성 남문이다. 자동차는 아래로 난 터널을 통해 성곽을 입체교차하여 산성 내부 구간으로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서울의 북악산도 팔각정까지 자동차 도로가 있긴 하다. 그러나 얘는 애초에 북악산의 뒤, 한양도성(서울성곽)의 바깥만 지나며 성곽과 만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는 터널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북악산에서 한양도성을 근접 구경하고 싶으면 도보로 등산을 해야 한다. 그래도 이것도 차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고 험준한 북한산을 올라야만 도달할 수 있는 북한산성보다는 사정이 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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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밖으로 나가자 남쪽으로 내가 가려는 길은 안내가 아주 잘 돼 있었다.
서울에 공식적으로 '둘레길'이 있는 것처럼 성남시에서도 '누비길'이라는 산길 브랜드를 만들어서 홍보하고 있었다. 성남과 광주를 지리적으로 가로막는 산들의 쭉 이으면 자동으로 길이 나오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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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길이 이렇게 평범한 시골길 같다가 나중에는 그냥 산길 흙길로 바뀌었다.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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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턴가 차도가 합류하더니 길이 이렇게 바뀌었다. 산 속에 깔린 자동차 도로는 사람용 등산로보다 경사가 완만한 대신 우회하는 길이가 훨씬 더 길다. 누비길은 얼마 안 가서 차도로부터 분리되어 나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누비길도 자꾸 이쪽으로 안내되어 있었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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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검단산이 하남 검단산보다 훨씬 덜 유명하며, 누비길 말고 딱히 산 자체에 대한 등산로가 인터넷 지도에 별로 안 나오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갑자기 길 좌우로 철조망이 둘러지고 "과거 지뢰 매설 지역" 경고문이 나타났다.
이 산의 정상에는 공군 부대가 있다. 그것 때문에 자동차 도로도 필요했던 거다.

그러니 성남 검단산은 서울로 치면 우면산 같은 분위기였다. 이 길이 공식적으로 성남 누비길의 일부이며 남한산성에서 검단산까지 가는 최단경로이긴 하다. 하지만 서쪽의 약수터 쪽으로 우회하면 이런 군사 시설을 덜 마주치고 검단산 정상 쪽으로 갈 수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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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를 따라 걷고 또 걸은 끝에 검단산의 정상에 도달했다. 진짜 제일 높은 정상에는 군부대와 각종 통신 시설(KT 검단산 중계소?)이 있기 때문에, 민간인을 위한 정상은 차도를 벗어나 왼쪽으로 꺾어서 진짜 정상보다 2, 300m쯤 떨어진 공터에 따로 있었다. 공터에는 헬리패드가 있고 무덤 비석 같은 자그마한 '검단산' 표지석이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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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지체 없이 계속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단산 정상을 지난 뒤부터는 군대 냄새도, 자동차 도로 같은 것도 없이 순수하게 자연의 정취가 느껴지는 산길이 쭉 이어졌다. 안 그래도 날씨도 맑고 따스하고, 주변 경치가 몹시 아름다웠다.

여기는 간간이 사기막골(성남)이나 불당리(광주) 같은 주변 마을로 하산하는 분기점이 있었다. 성남 쪽은 산기슭에 공장(상대원 공업단지)도 있고 뭔가 대도시 같지만, 서쪽의 광주 쪽은 산봉우리가 더 있기도 하고 그나마 골짜기에 간간이 놓인 집들은 시골 분위기 그 자체였다. 다만, 어느 쪽으로든 시야가 나무로 가려져서 시야가 좋지 않은 건 아쉬웠다. 전망대 같은 건 누비길 전구간을 통틀어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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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도 그때 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즉석 코딩으로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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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오르내리며 한참을 걸은 끝에 드디어 망덕산의 정상에도 도달했다. 여기는 딱히 공터가 있지 않고 평범한 등산로 길목에 탁자· 벤치와 정상 표지석이 있었다. 봉우리 이름은 '왕기봉'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성남 누비길에서는 휴식 공간에서도 딱히 운동 기구 같은 건 못 본 거 같다. 만만한 공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 높은 산도 아닌 그 중간 컨셉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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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산 정상을 지나자 등산로는 다음 목적지인 이배재 고갯길을 향하여 고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산은 분홍색 꽃나무가 많이 섞여 있는 반면, 앞에 펼쳐진 저 먼산은 전적으로 초록색으로 배경을 은은하게 물들여 놓은 게 풍경이 장관이었다.
저런 산의 어귀에 있는 마을에 혼자 틀어박혀서 광주시의 맑은 공기 마시면서 논문과 코딩에 전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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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재 고갯길에는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사실, 산들의 높이가 500미터대로 막 낮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고갯길만 해도 이미 고도가 200m를 훌쩍 넘기 때문에 내가 발로 이동해서 만든 고저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출발할 때도 남한산성까지는 버스를 타기도 했고 말이다.

이름이 왜 '이배재'냐 하면, 옛날에 과거 보러 한양으로 올라오던 선비들이 이 고갯길에서 왕궁을 향해서 절을 두 번 했기 때문이라고 그런다.
하긴, 근대화 이전에 한반도에서 한양(서울)-동래(부산)을 육로로 연결하던 지름길은 광주· 용인· 충주를 경유하는 '영남대로'였다. 수원과 대전을 경유하는 육로는 20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철도와 고속도로 모두). 예전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듯, 비행기 항로도 지형에 구애받지 않으니 영남대로의 선형과 더 가깝다.

숭실 대학교 근처에 있는 고갯길은 조심해서 살펴 가라고 해서 옛 이름이 '살피재'였다는데, 고갯길의 이름에도 이런 식으로 다 사연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육교를 타고 맞은편 산으로 등산을 계속할 수도 있다. 예전에 서울 지하철 3호선 녹번-홍제 구간 사이에(지상 도로는 통일로) 백련산과 북한산을 잇는 육교를 봤던 게 생각났다. 성남 누비길도 맞은편 산을 한 번만 더 넘어서 '갈마치 고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시간과 보급 관계상 본인은 거기까지는 안 가고 이 고갯길에서 버스를 타는 것으로 등산· 답사를 마쳤다. 이 길목은 광주 북부에서 모란 역(분당· 서울 8)을 잇는 버스가 수 분 간격으로 많이 다니고 있었다.

이배재로 다음으로 성남 시내에서는 '둔촌대로'라고 폭이 굉장히 방대한 길이 나 있었다. 길가엔 차들이 평행도 아니고 수직으로 주차돼 있었는데 이건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서울 지하철 8호선보다 한두 블록 아래로 성남 구시가지의 남쪽 끝을 지나는 큰길이다.

이 둔촌과 서울 '둔촌동'의 둔촌은 모두 동일하게 '둔촌 이 집' 선생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서울 일자산을 미리 다녀와 본 덕분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이 사람의 묘지가 여기 일대에 있다.
그런데 고려 말기의 너무 옛날 사람이기도 하고, 그가 이 정도로 칭송받을 정도로 뭘 그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게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후손인 광주 이씨 사람들이야 떠받들 만도 하겠지만 타지의 다른 사람들은 글쎄..

이렇게 산에서 역사 유적(남한산성), 군사 시설, 그리고 자연 풍경을 모두 구경하고 성남 시가지 구경은 덤으로.. 오늘도 유익한 답사를 하고 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06 08:31 2017/08/0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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