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원 관련 개념 복습

예전에도 신앙 관련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언급한 바 있지만, 성경적으로 인간이 구원받는 길 내지 방법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는 알량한 믿음이라는 제일 바보같고 나약한 자유의지가 전부이다. 그것 말고 다른 어떤 외모나 스펙이나 능력도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예수 믿을 정도의 지적 능력조차도 없고 스스로 선과 악을 분간 자체를 할 수 없는 너무 어린 애들, 정신지체 박약아는.. 그냥 무조건 구원 받는다. 걔들도 따지고 보면 죄가 있지만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고.. 예수님을 믿을 능력이 없지만 그분을 거부할 능력도 없어서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 없는 용어이지만 본인은 이 개념을 편의상 '특례 구원'이라고 일컬어 왔다. 이런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경우는 이 블로그를 찾아와서 이 글을 직접 읽을 정도의 분들에게는 해당사항 없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수학에다 비유하면 방정식의 근 중에서 그냥 너무 자명한 trivial solution과 비슷한 개념이다. 생물학으로 치면 무성 호흡/생식 같은..??

이런 논리를 따라, 본인은 어린아기들이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원죄 때문에, 혹은 유아세례를 안 받았기 때문에 지옥 간다는 말도 안 되는 교리를 일단 전혀 믿지 않고 부정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너무 강조하는 나머지, 인간의 일체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선물 받으실 분?" / "저요, 저도 좀 주세요!"라고 응답하고 손 내미는 것도 자기의 의이고 선물에 대한 대가(!)인 것처럼 이상하게 몰아가는 설명도 배격한다.

'무조건적인 선택'과 '거부할 수 없는 은혜'는 앞서 언급했던 '특례 구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성립한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그 상태를 '전적 타락'이라고까지 부르는 건 '글쎄요~' 싶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밖의 문맥에서는 인간이 얼마든지 제 발로 구원의 길을 거부하고 지옥 갈 수 있다. 그리고 그건 하나님의 전지전능이나 사랑이나 공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현상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허락하시는 뜻을 분간하지 못하면 정말 온갖 골때리는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6· 25 대한해협 해전 때의 동해상의 북괴군 600명하고, 광주 5· 18 북괴군 600명을 헷갈리듯이 말이다.

직접적으로 동일한 문맥을 다루는 구절은 아니지만 눅 14:16-21 같은 비유 얘기를 봤을 때... 그리고 인류 역사와 지금 세상 현실을 고려했을 때..
추측하건대 미래에 하늘나라에 가 보면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보다는 특례 구원을 받은 사람이 훨씬 더 많긴 할 것 같다.

마치 증기 기관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의 동력원으로서는 완전히 도태했지만 발전소에서 전력 생산용으로는 압도 다수인 주류이듯이(화력, 원자력이 모두 증기 터빈을 돌리므로!)...
선박이 장거리 여객에서는 비행기에 밀려 완전히 도태했지만, 일반인들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물류에서는 여전히 본좌이듯이..

그때가 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지 못했던 큰 그림을 보게 되지 싶다. 민망하고 불편한 진실이지만,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을 가치가 없어서 외면하고 있는 죽음이 이 세상의 음지에서 얼마나 많이 자행되고 있겠는가?

참 오랜만에 구원 기본 개념에 대해 복습해 보았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서도 얘기할 것이 많은데.. 시간과 지면 관계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구원만 받고 어리고 육신적인 신자에 대한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자꾸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의심하며, 심지어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식으로 잘못 생각하는 편이다.
자살은 인간이 저지르는 다른 끔찍하고 흉악한 죄들보다 특별히 다르게 취급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의롭게 자결했다고 구원을 얻지는 못하듯, 세상 비관해서 혹은 고문 당하는 게 두려워서 자살했다고 해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2. 성경과 세속 과학, 학문과의 관계

정말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실험만 하는 과학이라면, 그 알량한 방법론을 동원해서 신의 존재를 대놓고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는 없다. 사실은 교계에서 그렇게도 정죄하는 진화론을 절대무오한 진리라고 입증하지도 못한다. 그쪽 세계에서는 실험 결과에 따른 귀납적인 학설과 확률과 통계만이 있을 뿐이다.

원래 과학과 종교?신앙?은 서로 별개의 영역인 게 맞다. 그럼 창조니 진화니 하면서 싸울 필요가 없는 건가? 마냥 안심하면 되냐? 그렇지는 않다.
과학 그 자체는 자연 계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이기 때문에 가치 중립적이다. 잘 연구해서 나쁠 것 없다. 그러나 거짓되이 과학이라고 불리는 학설이 대놓고 신을 부정할 수는 없더라도, 그 사고방식이나 연구 방법론· 패러다임을 잘못 적용하여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할 수는 있다. 이게 파괴된 신자는 진짜 볼장 다 본다.

"성경에 어차피 요런 부분에는 오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나 성경의 존재 가치가 싹 부정되는 건 물론 아닐 거다. 하지만 성경의 다른 부분에 기록돼 있는 엄청나고 극단적인 예언들도 그렇게 정밀하게 문자 그대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거다. 비유와 교훈 등 우리에게 좋은 쪽만 재해석해서 받아들이면 된다. 히브리어를 보면 어떻게 그리스어를 보면 어떻고.."

요게 아주 위험하고 돼먹지 못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바르게 나누지 않고 특정 부분만 분별 없이 무식하게 문자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물의를 빚는 교파 종파에 대해서도 본인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런 오류에 대한 대안이 저런 지적 사기가 돼서는 안 된다. 본인은 성경은 세상의 여느 학문과 같은 방식으로 취급하고 접근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라고 믿는다.

3. 성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된 구절

성경에는 "곡식 밟는 소의 입에다 마개를 씌우지 마라"(신 25:4, 가축이 적당히 자유롭게 먹으면서 일하게 해 줘라)가 의외로 신약에서 두 번이나 더 언급된다. (고전 9:9, 딤전 5:18) 주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의 보상과 관련된 문맥에서이다.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가 합 2:4에서 '자기'(his)가 빠진 바리에이션으로서 세 번 더 나온다. (롬 1:17, 갈 3:11, 히 10:37) 이에 덧붙여 "네 부모를 공경하라"도 십계명인 출 20:12뿐만 아니라 신 5:16, 엡 6:2에서 반복되며, 복음서에서도 인용 형태로 마태· 마가· 누가에 거듭 등장한다.

그런데 이것뿐만 아니라 뭔가 좀 생뚱맞아 보이는 구절도 성경에서 톱급으로 자주 거듭 반복해서 인용된 게 있다. 바로 시 110:1이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요한복음을 제외한 다른 세 복음서에서 연이어 copy & paste 수준이고(마 22:44, 막 12:36, 눅 20:43), 행 2:35와 히 1:13에서 추가로 나온다. 거기에다가 히 10:13도 재차 언급이라고 볼 수 있으니.. 횟수가 가히 압도적이다.

"소의 입마개"만치 인간의 실생활과 관련이 있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라"만치 보편적인 인륜을 다루지 않고,
그렇다고 "믿음으로 살리라"만치 인간의 구원과 관련이 있지도 않은 저 말은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언제 왜 한 말이고 문맥이 뭘까?

시간과 지면 관계상 저 구절의 모든 문맥과 의미를 강론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만 말하자면 저건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하나님에게 한 말이다.
성경은 도덕 경전이나 역사 기록이나 복음과 구원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건 부가적인 2순위 이하의 목표일 뿐이다. 그 전에 하나님의 주 관심사와 성경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통치임을 알 수 있다. 세상 용어를 동원해서 표현하자면 다분히 정치적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사람들은 온갖 시사· 종교 난제들을 가져와서 그분에게 질문을 했다. (부활의 때에 누구 아내? 율법에서 가장 큰 명령? 카이사르에게 납세? 등등등~) 떠보고 트집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로든, 아니면 정말 몰라서든지..

예수님은 그런 것쯤은 막힘없이 전부 즉답을 하셨고 사람들을 데꿀멍 시켰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 인간에게 물으신 건 단 하나였다.

"그럼 이제 내가 니들에게 하나 좀 물어 보마. 너희는 내 정체가 정확하게 무엇인 것 같냐? 시 110:1을 봐. 다윗이 자기 비속 후손을 보고 '주'라고 존대해서 부르는데 이건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그 뒤로 사람들은 버로우 타 버리고 더는 예수님에게 딴지를 걸지 못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시 110:1은 그 문맥에서 인용되었으며, 그게 복음서에 3회 반복해서 기록되었다.

또한, 나중에 배반당하고 체포된 뒤의 행적도 생각할 만하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다른 온갖 쓰잘데기없는 거짓 고소들에는 하나도 대꾸하지 않았지만, "너 정체가 뭐냐? 넌 정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물음에는 정말 솔직 담백하게 대답하셨기 때문이다. (마 26:62-65, 막 14:60-63, 눅 22:66-71)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믿기만을 바라셨다. 예수의 부활조차도 곧이곧대로 믿기 싫고, 그래도 역사 팩트와 후폭풍 증거까지 송두리째 외면할 수는 없으니 제자들의 자칭 예수 부활 "체험" 사건 이 따위로 둘러대는 짓 하지 말라고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슨 "P와 NP는 과연 동일할까?", "리만-제타 함수의 자명하지 않은 근은 실수부가 정말 몽땅 1/2일까?", 아니면 "광주에 과연 북괴 공작원들이 잔뜩 침투되었을까?" 같은 걸 묻지 않으신다.
그런 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연구해서 답을 구하든가 말든가 하면 되고, 그 전에 정말 똑바로 알아야 하는 건 그리 높은 지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너에게 예수는 어떤 분인가?" 하나이다.

요한복음은 시 110:1의 직접 인용은 없지만 기록 목적이 독자들 예수 믿게 하는 것(요 20:31)이라고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도 분명하게 대놓고 적어 놓았다.

4. 신앙 생활이 인간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는 것

예수 믿고 구원받은 뒤의 신앙 생활은 인간에게 철저하게 유리하게 짜인 것도 있고 불리한 구조로 된 것도 있다.
유리한 것은.. 뭔가 좋은 것을 사람이 "먼저" 받아서 동기 부여를 받은 뒤에, 그 다음에 사람 쪽에서 베풀고 헌신하고 인내하고 희생하는 구도라는 것이다.

먼저 구원부터 받고 나서 침례를 받든지 믿음의 선한 행위를 하든지 성장을 하든지가 그 다음에 이어진다.
일단 쉬고 나서, 달콤한 은혜의 말씀부터 먹고 나서, 즐기는 것부터 하고 나서 "그 다음에" 일을 하고 헌신한다. 일이 먼저가 아니다. 인간이 만든 세상 기업 중에 입사 후에 월급이건 일당이건 보수를 받고 나서 다음부터 일하는 곳이 있던가? 세상에서야 소득 주도 성장은 마치 "일단 서울대부터 보내 주면 나도 공부 열심히 할게요" 같은 미친 개소리이지만.. 성경적인 신앙 원리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이다!

다른 대부분의 종교에서 최종 목적지, 만렙, 해탈의 경지라고 말하는 '구원' 내지 성인 성자(saint) 칭호가 이 바닥에서는 그냥 기본으로 따 놓은 당상이다. 근성 충전을 위해 일단 한 대 맞고 시작... 이 아니라 일단 구원부터 받고 시작이다.
창세기 1~2장의 천지 창조만 생각해 봐도 하나님은 6일간 일하고 나서 일곱째 날이 쉬는 날이었지만, 아담과 이브는 만들어지고 결혼하고 honeymoon부터 즐긴 뒤부터 동산 관리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리아와 마르다 얘기도 있다(눅 10:38-42).

그 반면, 인간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는 것, 혹은 이것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 사항도 있다.
신앙 생활이란 건 본질적으로 당장 보이고 들리는 대로, 편한 대로 직관적인 대로, 남들 다 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다. '바보 같아 보이고 손해 보는 듯이 보이는 좁은 길 역행'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결단과 행동은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직접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둬서 물리적인 여건이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을 하나님이 굳이 수습해 주고 undo 해 주시는 경우 역시 일반적으로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 생활이 무슨 공밀레 같은 신밀레 열정페이 착취는 절대 아니다.
인간이 인간의 본성· 성품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 단단하고 입에 쓴 말씀, 실행하기 힘든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먼저 다 당하고 겪어 놓았다. 그때는 이런 믿는 구석으로 요렇게 하면 된다고 선례, 모범, 샘플이 마련돼 있다.

어려운 시험 문제나 과제에 대해 원리, 예제, 유사한 기출문제, 힌트를 듬뿍 주긴 한다. 그러나 대놓고 정답을 가르쳐 주는 일은 결코 없으며, 하물며 시험 문제를 미리 유출해 줄 리는 절대 만무하다. 모든 과제는 자신의 문장을 써서 직접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절대로 '안알랴줌'인 것의 대표적인 예는.. 세대 경륜 급의 큰 그림 이상으로 각 개인의 구체적인 미래 예언,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시기이다. 나에게 내일 어떤 일이 닥칠지는 완전 랜덤 케바케이다.
그것만 좀 알면 딱 죽기 직전에만 예수 믿고 구원을 먹튀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인간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꼼수 부리면서 편하게 살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겨우 그런 걸로 농락당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지는 않으셨다.

자,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비교해 보면.. 신앙 생활 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드시는가, 어떤가?

5.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

  • 군대는 일반적으로 최악의 범죄라 여겨지는 살인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이다. 하지만 자기 집 지키느라 불가피한 정당방위도 허용되는 마당에, 하물며 나라를 지키느라 지휘관의 명령대로 전쟁터에서 무장한 적군을 죽이는 것은 형법상의 살인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정반대로 숭고하고 영예로운 일이다.
  • 국정원 같은 첩보 기관은 "악에는 악으로 맞선다, 이이제이,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이다. 절대악을 퇴치하기 위해 필요악 역할을 맡고, 작은 악을 동원해서 더 큰 악을 예방하는 궂은일을 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건 나쁜짓이며, 공산주의자 빨갱이들이나 사용하는 수법(거짓말, 위장 침투..)으로 여겨진다.
  • 끝으로 종교는 겉으로 언뜻 보이는 결과만 보자면 정신승리, 진영논리,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분야이다.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라는 과학 팩트는 "그럼 최초의 생명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를 설명하지 못한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무한순환을 끊으려면 결국 처음에 한 번은 비논리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예수 믿으면 물질적인 복 받고 부자 되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북한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극단적인 박해 지역이 아닌 한, 무조건 쫄딱 망하고 거지 되고 감옥에 갇히고 죽지도 않는다. 구원받아서 신분이 바뀌는 것과 개인이 물질적으로 잘 되거나 못 되는 건 별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성경적인 건전한 경제관과 시스템이 갖춰져서 잘살게 되고 중산층이 늘고 부강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게으른 개인을 일일이 다 먹여 살려 주는 게 아니다.

예수 믿어서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은 영적 복을 받고, 설령 가난하더라도 그 처지만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 주님께서 내게 지금 당장 허락하신 처지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를 강하게 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할 수 있게 되는 건 별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것들이다.

"남들보다 가난하지만 난 영적으로는 부자.." 영이건 정신이건 이것도 정신승리라면 정신승리이다. 하지만 이건 아Q의 정신승리와 달리, 성경적인 근거와 보장이 돼 있는 건전한 정신승리인 것이다.
상대적 빈곤에 연연하는 사고방식부터가 달라져 있지 않으면 어차피 하나님이 물질을 아무리 많이 공급해 주셔도 인간은 절대로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에만 연연하면서 불만족 불평 악순환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테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4/21 08:33 2019/04/2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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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세카이 2019/05/12 22:44 # M/D Reply Permalink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서

    예전에 사울 얘기가 잠깐 나왔었는데
    님께서 사울이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 것도 결국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그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사울이 천국에 갔다는 것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무당을 통해 불러들인 사무엘의 영이 너도 나와 같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 전부인데
    그때 사무엘의 영은 진짜 사무엘이 아니라 거짓의 영이 분명합니다
    무당이 부른 영이 진짜 영일 수 없고 여호와의 영이 떠난 자에게 절대자가 사무엘의 영을 보낼 이유가 없고
    단지 사울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예언했고 그게 맞았다고 해도 그때는 사울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것을 예언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죠
    그는 불순종했었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모든 걸 해결할려고만 했었기에 지옥에 간 게 확실합니다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의 예정이나 영원한 보장은 주님께서 시공간을 초월하시기 때문에 미리 아심이기에
    주님의 입장에서는 창세 전에 택한 것이 맞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 개념의 틀에서 억지로 해석할려고 하기에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는 것이죠
    제가 보기에는 칼뱅의 예정론이나 영원한 보장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자기가 믿는다고 머리로 생각만 하면 되는 것인지

    사람들이 행위와 믿음을 나눠서 생각하는데 믿음이 있어야만 행위를 할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한 끝까지 견딜 수 있는 것이죠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믿지 않기 때문에 행위를 할 수 없는 거죠
    예수님께서 직접 말하시지 않았나요
    마태복음 5장 20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마태복음7장21절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13장에 씨뿌는 자의 비유

    구약시대 믿음의 선배들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다른 믿음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최대한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다른 믿음으로도 어차피 구원을 받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면
    귀류법으로 일단 맞다고 가정을 해보면
    도대체 예수님은 이 땅에 내려오셔서 그 고생을 왜 하신 걸까요?
    구원을 편하게 받게 해줄려고 그러셨을까요?

    이것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는 것과 본질은 똑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사무엘님은 구원을 편하게 받는 것으로 믿는 거 같습니다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사람도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이게 쉬울까요?

    갈라디아서2장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후략)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게
    누구에게는 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지식일 수도 있고 자기우월감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등불을 준비한 지혜로운 처녀들처럼 또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종들처럼
    한평생을 성실하게 또 주님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1. 사무엘 2019/05/12 07:44 # M/D Permalink

      1. 예언이 "적중"했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너무 너무 긍정적인" 심상인데요? (신 18:21-22)
      아합 왕을 미혹한 거짓 영들의 예언이 적중했습니까? (왕상 22:12)
      마귀가 욥의 행동에 대해서 예측했던 게 어디 적중했습니까? (욥 1:11, 2:5)
      그거도 인간적인 감정과 정황상으로는 아주 쉽게 예상 가능한 것이고 무슨 예수님 초림/재림 급의 아주 멀고 어려운 예언도 아닌데?

      성경이 인간이 도저히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주된 이유 중 하나도 예언 성취 아닙니까?
      "했다는 것이 전부인데" --> 그 언급이 '전부인데' 급으로 매도할 만한 사소한 증거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 전에 무당이 화들짝 놀라고 사울 왕의 정체까지 알아챈 것은 자신이 평소에 소환하던 거짓 영과는 생판 다른 결과물이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삼상 28:12)
      그러고도 이게 진짜 사무엘이 아니라면.. 세상에 믿을 게 없습니다. 연대기 논쟁에서 무슨 "6천 년 전에 창조된 우주를 하나님이 일부러 페이크 쳐서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급의 말장난밖에 나오지 않으니, 소모적인 논쟁은 하지 않겠습니다.

      "칼뱅의 예정론이나 영원한 보장" --> 별 차이 없어 보이는 게 맞습니다. 칼빈주의 5대 튤립 강령 중의 P가 나름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계산 과정은 틀렸지만 결과가 일부 맞는 것이 저 교리입니다.
      계산 과정이 틀렸고 결과만 아쉬운 대로 맞는 대표적인 다른 예로는 "자살하면 지옥 가니까 자살하면 안 된다"가 있습니다.

      2. 사람도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거 맞습니다.
      단지 그 이유와 목적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받고, 구원의 목적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이지..
      자기 노력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출받기 위해서가 아닐 뿐입니다.

      "도로 지옥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도 당연히 포함이구요.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남한에 온 탈북자는 그 어떤 죄를 지어도 남한의 교도소나 사형장에는 끌려갈지언정, 어떤 경우에도 재북송되지는 않는다"와 같은 급의 명제입니다.

      이 기독교계라는 바닥이 얼마나 지저분한 곳인가 하면, 십일조가 신약 교회에 적용되는 교리가 아니라고 얘기하면 꼭.. 헌금을 할 필요가 없다고 궤변 늘어놓는 사람이 생기고,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얘기하면 꼭..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기더군요.
      신사카이 님은 똑똑하시니 저 개념도 구분 못 하지는 않으시리라 기대해 봅니다.

    2. 사무엘 2019/05/12 07:44 # M/D Permalink

      하나 더..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마 10:22, 마 24:13, 막 13:13)
      주변 문맥을 보세요. 온통 대환란 때의 생존, 구출, 구조에 가까운 얘기입니다. 혼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는 통상적인 복음 얘기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be saved라고 해서 전부 행 16:31 같은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식이면 잠 28:18만 하나 뚝 떼어 와서 "성실하게 살면 구원받네?"도 가능하답니다.

  2. 신세카이 2019/05/12 09:55 # M/D Reply Permalink

    그 문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환란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진리를 추구하는 제3자의 입장에서 구약과 신약을 나누고 또 대환란으로 시간대를 나누는 것은
    이것은 어떤 믿음이든 어떤 종교든 간에 진리의 속성에 그 자체로 위배된다고 판단됩니다
    진정 진리라면 영원불변해야 합니다 시간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라면
    철학적인 판단으로 그것은 진리라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1. 사무엘 2019/05/12 13:24 # M/D Permalink

      성경의 총체적인 그림과 체계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할 생각은 없으면서 한두 예외적인 구절, 그것도 자기가 직접 찾아서 읽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안티 사이트에서 펀 알쏭달쏭한 구절만 문맥 무시하고 뚝 떼어 와서 뭐 성경이 모순이니, 성경이 장애인을 비하하네, 잔인하네 어쩌네 이상한 소리 한다든가..

      엡 2:8-9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행위 아님) 같은 더 자주 더 분명하게 제시돼 있는 신약 교리는 무시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답변이 없으면 끝까지 트집 잡고 늘어지는 건 진리를 찾는 사람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님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저는 저런 부류의 사람을 많이 봐 왔어요.)

      성경에 구원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이랬다 저랬다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이 굉장히 많습니다. 당장 잠 26:4-5 "안돼 / 돼!" 같은 이랬다 저랬다 극단적인 쌍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당연히 시기와 문맥을 따라 바르게 분간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http://moogi.new21.org/tc/1613 의 그림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민족 자결주의는 1차 대전 승전국 식민지에나 적용될 뿐, 일제 식민지 조선에다가는 영적으로 교훈만 되지 당장 국제법적으로 문자적으로 적용되는 거 아님.. 이런 식으로 분간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대를 나누지 않으면 더 큰 무질서와 혼란이 야기되고, 옳다구나 개독안티들의 성경 공격도 더 심해집니다.

      글쎄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교회 시대와 환란기 등.. 그런 시대 구분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성품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처한 상황과 계시의 분량은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인 구원 방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는 하나님의 고유 재량 영역인데.. 무엇이 그렇게 불만이신지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

      진리라는 게 무슨 강박관념 수준의 수학적인 동등이어야만 한다면, 그 사고방식으로는 마 20에 나오는 포도원 비유(일한 시간과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임금)이라든가 눅 16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 같은 것도 도저히 납득이 안 될 겁니다.
      (정말 진지하게 답을 구하고 싶으면.. 제가 제시하는 성경 구절들은 전부 직접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3. 신세카이 2019/05/12 17:45 # M/D Reply Permalink

    저는 오직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다른 믿음으로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충격적입니다

    게임이나 만화에서 성스러운 것을 찾기 위해 주인공이 여행을 하죠
    이게 무한한 힘을 주는 성검 랑그릿사일 수도 있고 소원을 들어주는 드래곤볼일 수도 있죠

    생명이란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피조물의 유한한 사랑이 반응하면 육체를 가진 유한한 생명이 탄생하고
    오직 절대자의 무한한 사랑에 반응한 자에게만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며
    이 사랑이 주님께서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 피와 물을 바친 제사입니다
    사람의 삶의 목적이란 절대자의 무한한 사랑에 반응하는 여행이라고 봅니다

    포도원 일꾼은 일을 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일당을 일꾼에게 주는 게 목적이고
    불의한 청지기도 절대자에게 부여받은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
    둘 다 본질은 이웃사랑이며 이것 또한 절대자의 무한한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겠죠

    구원을 쉽게 받는다는 해석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게 아닌 것은 맞지만
    믿음이 있는 자만이 행위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행위와 믿음이 전혀 모순되지 않고 동일하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절대자 앞에 겸손하고
    성실히 자기 달란트를 잘 활용해 선한 열매를 맺어야겠죠

    1. 사무엘 2019/05/12 21:45 # M/D Permalink

      1.
      그렇게도 오로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구원을 너무 쉽게 받는다는 걸(?) 동의하시지 않는 게 저로서는 좀 이해가 안 됩니다. 평생 신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 욕하고 저주하던 사람이 갑자기 신념이 확 바뀌어서 회개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믿은 거..
      저런 믿음 행사가 당장 선행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말 만만하고 쉬운 싸구려 구원을 얻은 거 같습니까? 저는 이 점을 제일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냥 천주교 행위 구원, 행위로 구원 유지가 더 합리적이어 보인다는 얘기인가요? 그건 좀 모순인데요?

      2.
      그리고 약 1900여 년 전 이래로 지금이야 신약 성경까지 다 완성됐고 계시도 나올 게 다 나왔으니 당연히 오직 예수로 구원받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 전, 또는 그 후라도 극동 아시아처럼 복음의 발상지로부터 극단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곳입니다. 그때/거기서는 예수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나마 간접적인 예언이라도 있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양심 말고는 말씀 계시 자체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 예수를 알고서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게 초월적인 방법으로 가능하기만 하다면 살기가 참 편하기는 하겠네요. "세종대왕, 이 순신, 조선시대 구원" 갖고 시비 거는 사람들 대처하기는 훨씬 더 편리하겠네요.

      최소한 자연 계시라도 따르면서 양심을 따라 절대자를 찾았고, 구약 성도의 경우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예수 계시가 직접 주어지기만 했다면 그분을 곧장 믿었을 사람.. 그 마음 상태가 구원 여부를 결정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스스로 빛을 찾아가서 구원받았을 사람은 매우 극소수.. 선교사 파송 필요함) 저로서는 그게 하나님의 입장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조치입니다.

      이걸 무슨 '딴 믿음, 별개의 믿음'이라고 계속해서 오해하신다면 이 평행선은 더 좁힐 방법이 도저히 없습니다. 저는 이 문제 갖고 님과 더 논쟁이나 토론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4. 신세카이 2019/05/14 19:11 # M/D Reply Permalink

    인간은 유한하기에 모든 걸을 다 알 수는 없겠죠
    중요한 것은 아기와 같은 마음과 태도일 것입니다
    절대자는 진리를 지혜로운 자에게는 숨기고 아기들에게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이 함께 한다면 필요에 따라 알려주실 것이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게 중요하겠죠

    마지막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얘기하고 있던 주제가 구원관에 대해서였고 사울과 무당이 부른 사무엘의 영에 대한 얘기는 곁가지라고 생각해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그냥 답변을 안 했었는데

    신명기 18장22절 만일 대언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그 일이 뒤따라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성취되지도 아니하면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신 것이요, 오직 그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그것을 말하였나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이것은 "틀린 예언을 하면 거짓의 영"이라는 겁니다
    (틀린 예언 -> 거짓의 영)

    명제가 참일 때는 "대우"도 항상 참이 성립하죠
    그러므로 진리의 영은 항상 맞는 예언만 하죠
    (진리의 영 -> 맞는 예언)

    명제가 참일 때 "이"는 항상 참이 성립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맞는 예언을 하면 항상 진리의 영인가?
    (맞는 예언 -> 진리의 영)?

    명제가 참일 때 "역"도 항상 참이 성립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거짓의 영은 항상 틀린 예언을 하는가?
    (거짓의 영 -> 틀린 예언)?

    거짓의 영은 맞는 예언과 틀린 예언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습니다
    틀린 예언의 경우 거짓의 영이라고 단정할 수 있지만
    맞는 예언의 경우는 거짓의 영인지 진리의 영인지 알 수 없습니다

    무당이 부른 영이 맞는 예언을 했다고 그것으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거짓의 영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수 있겠죠
    사울을 더욱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악한 목적을 위해서
    또 그때는 사울이 주님의 도우심도 받지 못하고 패배하고 죽을 게 명백한 상황이었기에

    님이 그걸 예언에 관한 것이라고 제시했지만
    신명기의 그 구절은 틀린 예언의 경우이죠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쉽고 사소한 것에 실수를 한 이유는
    자신이 진리를 안다고 확신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편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기꾼이 항상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참말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거짓말을 하죠
    언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니까 위험하죠
    만약에 누가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명제에 대하여
    항상 거짓말만 해 준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겠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참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구약 시대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라도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절대자가 직접 예수님에 대해 알려줬다고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풀리는데
    저는 그렇게 믿는데 왜 그렇게 믿지 못하는지를 모르겠네요 꼭 텍스트로 기록이 되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가 맞냐 틀리냐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과 태도가 중요하죠!

    저는 카스텔리오가 칼뱅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이 납니다

    당신의 학설과 다른 학설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잘못을 범한다고 믿지 말고,
    언제나 그들을 즉시 이단으로 몰아붙이지 말라.
    내가 당신과 다르게 성서를 해석하여도
    나는 내 모든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우리 둘 중 한 쪽이 잘못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서로 사랑해야 한다!
    주님께서 언젠가는 잘못 생각하는 사람에게 진리를 보여주실 것이다.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기독교도에게는 사랑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자.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적들의 입을 다물게 하자.
    당신은 당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의견을 그렇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교만한 자를 꺽으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큰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나는 당신에게 이 말을 한다.
    당신에게 사랑과 그리스도의 평화를 제안하는 바이다.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촉구하며, 나 자신이 온 영혼을 다하여 그것을 행할 것임을
    하나님과 살아 있는 성령 앞에서 맹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미움으로 나와 싸우기를 계속하겠다면,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촉구하는 일을 허용하지 않겠다면, 나는 오직 침묵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판자가 되셔서
    우리가 그분께 충성한 정도에 따라서 결정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한다

    자기만이 옳다는 교만으로 남을 평가하고 정죄했던 칼뱅과
    성서를 다르게 해석하여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얘기한 카스텔리오를 떠올리며
    어떤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태도인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또 겸손하고 온유하니 나를 따르라 했던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1. 사무엘 2019/05/14 20:53 # M/D Permalink

      저는 최선을 다해서 성의 있게 답변을 드려 왔는데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예전 댓글을 고치기까지 하면서 제 말투와 태도를 문제삼는 듯한 얘기를 하시는지요? 이번엔 중학교 명제 강의까지.. 설마 제가 모르거나 실수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셨나요..ㅠㅠ

      1.
      음란한 성경은 가라 글에 대해서도 답변을 드린 바와 같이, 저는 자명하고 문제의 대세가 바뀔 일이 없는 문맥에서 일일이 그 정도까지 엄밀함을 챙기면서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성경부터가 그런 식으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무슨 과학 논문이나 lemma, definition, proof 형태로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요일 2:23처럼 "아들을 인정 -> 아버지를 소유"에 대해 본명제와 '이' 정도까지는 대구법으로 같이 적힌 구절이 있습니다.
      신 18:21-22는 그와 달리 "틀린 예언 -> 거짓의 영"이라는 명제 하나만이 적혀 있지요. 허나, 성경의 다른 용례들과 하나님의 성품을 감안했을 때, 성경 내부에서는 저 명제가 역과 이도 다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저 문제에 관한 한 하나님이 "너는 머리가 나빠서 저 명제가 논리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까지 싸잡아 잘못 믿었구나" 그러실 일은 없습니다.

      왜냐고요? 아합 왕을 미혹한 거짓 영이라든가, 욥이 하나님을 저주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사탄 마귀, 예레미야와 맞장 떴던 거짓 대언자 하나냐 등... 성경 어디에도 나쁜놈이 부정적인 팩트 폭격과 정확하게 적중한 바른 예언을 한 경우는 전혀 절대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나쁜놈'의 예언이 아주 일부 맞는 경우는 있겠죠. 적중하는 경우도 있어야 사람이 미혹될 테니까.. 하지만 그게 저런 사무엘의 예언과 같은 급일 수도 없을 뿐더러,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할 때는 그런 건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무엘의 말은 하나도 남김없이 적중했다는 삼상 3:19 같은 말씀을 훨씬 더 감안해야 합니다. 저 구절도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2.
      >> 그리고 구약 시대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라도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절대자가 직접 예수님에 대해 알려줬다고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풀리는데
      >> 저는 그렇게 믿는데 왜 그렇게 믿지 못하는지를 모르겠네요 꼭 텍스트로 기록이 되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식으로 예수에 대해 알게 되어서 구원받고 교회까지 세워졌다는 역사 기록이 없습니다. 이건 사소하고 간접적인 정황 근거이고..

      결정적으로, 예수님에 대해서는 성골, 본진인 구약 성경에서조차도 '여자의 씨'(창세기),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이사야)처럼 수백 년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말 간접적으로 찔끔찔끔 예언되고 계시돼 왔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자신의 계획에 대해 사전유출을 했어야 하겠습니까? 그런 편리한 뒷구멍이 있으면 애초에 성경은 왜 기록됐겠습니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성경 자체도 인류의 구원을 1순위 목적으로 두고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논리대로라면.. 절대자가 지옥에 대해서도 직접 알려주기만 하면 만사해결일 텐데 굳이 지긋지긋한 옛날 텍스트를 참고하라는 눅 16:29-31 같은 비효율적인 구절은 왜 기록돼 있겠습니까? 이건 좀 비약하면 하나님이 왜 하필 선악과 만들었냐 같은 급의 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충돌이 생기는 이유는 신세카이 님은 하나님의 역사 방식, 성경의 중요성, 기록 방식, 절대무오성, 예언 성취의 의미 등에 대해서 정확한 관념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님과 저의 이런 계산 방법의 차이를 인지하지 않으면.. 계산 결과의 차이만 갖고 앞으로도 계속 소모적인 논쟁과 감정 손상밖에 오가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 문제에 대해서 계속해서 저를 믿고 문의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고집이 센 걸 상대방만 고집 세다고 욕한다거나.. 더 할 말이 없으니 말을 바꿔서 상대방의 말투나 태도를 문제삼고 교만하다는 식으로 유치하게 도발하는 건 신세카이 님 정도의 지성과 교양으로는 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저의 관심사는 오로지 성경으로 성경을 풀이하는 것입니다.

  5. 신세카이 2019/05/15 11:42 # M/D Reply Permalink

    내용을 바꾼 게 아니라 촛불을 등불로 바꾸고
    답변이 없는 댓글에 미확인일 가능성 또는 방명록에 차단으로
    마지막으로 얘기하겠습니다부터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태도는 방명록 차단때문입니다

    더이상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1. 사무엘 2019/05/15 11:46 # M/D Permalink

      네? 저는 님을 차단한 적 없습니다.
      무슨 내용으로 어디에 글을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몇몇 단어 때문에 스팸 광고글로 오인된 듯합니다.
      관리자 페이지의 휴지통에는 차단된 글이 나타나긴 하지만, 하루에 수백, 수천 건씩 쏟아지는 쓰레기 스팸글들에 가려져서 제가 제대로 못 보고 그냥 비워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신앙관이 특이하고 과격할 수는 있어도 남에게 그런 식으로 교묘하게 비열한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길게 하실 말씀이 있으면 차라리 메일을 이용해 주십시오.
      불편을 끼친 것은 유감스럽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촛불 등불은 뭐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닙니다. 흠정역은 그 시절에 고체 파라핀 양초라는 물건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candlestick도 다 등잔대라고 번역하긴 했는데.. 그건 그냥 우리말 번역 문제이고 성경 외부의 고고학 고증 문제이죠.)

  6. 신세카이 2019/05/15 23:17 # M/D Reply Permalink

    전산오류가 있어서 오해가 있었다고 치고
    촛불을 등불로 바꾼 거 말고는 내용을 바꾼 게 없는데
    조언을 해주는 것도 유치한 도발이라 받아들이니;;;

    그러면 시작을 했으니 마무리를 해야겠죠

    처음부터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구원관에 대해서 그 곁가지로 삼손과 사울에 대해서 말했었는데
    사무엘의 영이 진짜냐 가짜냐는 곁가지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님은 완전히 이거에 포커스가 맞춰진 거 같네요;;
    욥이나 아합왕이나 그 정도는 저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이미 말했다시피 신명기의 구절도 님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되지 못하는데
    모르지 않으면서 기록된 대로 믿지 않고 자기 생각에 끼워맞추니까 문제가 되는 거에요ㅜㅜ
    제가 느끼기에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겠다는 의지 같네요
    근거를 대고 싶으면 최소한 악한 영과 접하는 이가 천국에 있는 다른 사람의 영을 불러온 사례를 제시한다든지 해야죠

    KJV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했어도 전수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사실 저는 이미 KJV보다 더 잘 번역된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진리의 말씀을 알고 있고
    선악과가 왜 있었는지 이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만
    말해주고 싶지는 않네요
    님에게 진리의 영이 함께한다면 가르쳐주실 거에요
    저는 저의 삶 속에서 진리의 영이 함께함을 느낍니다

    삼손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도 제대로 답변을 못할 걸 예상하고 있었고
    그런식으로 생각하고 믿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왜냐하면 님의 해석은 님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해석을 공부한 것일 뿐이고 그런 공부는 자료를 찾으면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님은 KJV를 믿는 것도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해석을 믿는 거 뿐이에요

    시간대별로 구원의 방식이 다르고 그것이 절대자의 재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절대자의 속성과 진리를 푸는 열쇠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구원을 받는데 절대자 본인의 피가 필요한 이유는
    절대자는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여 그 자체로 절대선이데 만약에 악을 행했던 죄인인 인간을
    품어버리면 마치 간음한 사람과 결혼하면 그도 간음한 게 되는 거처럼
    절대자의 피흘림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을 절대자가 품으면 절대선이 깨지게 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흘림이 필요하죠 그 피만이 사람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겁니다
    절대자가 악을 행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피흘림을 믿지 않는 자를 품을 수는 없어요
    이것에 대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또 사람의 시간개념의 틀에서 억지로 이해할려고 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는 거에요
    그리고 주님과 구원받은 사람들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에 비유하죠
    사람이 사랑하고 존경하면 닮게 되는 것처럼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는 주님을 닮게 됩니다
    그 방향으로 본인이 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7. 신세카이 2019/05/15 23:19 # M/D Reply Permalink

    욥은 텍스트를 보지도 않았는데 유대인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절대자와 소통하고 구원을 받았을까요?
    저의 답은 간단합니다 욥은 온전한 마음으로 절대자를 갈망하고 사랑했기에 절대자가 직접 알려주었으니까요

    태도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평소 쓰는 글에서 지식을 통해 남보다 위에 서고자하는 자기우월감 pride 자존심 또는 교만이 보이기 때문이에요 이런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고 위로부터 난 지혜가 아니죠

    시간대별로 나눠서 구원받는 방법이 다르다는 해석은 거짓말입니다
    You don't know truth
    그리고 님은 예수님의 말씀이 본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짓된 해석을 믿고 있다는 것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님이 이대로 계속 살다가 죽으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정말로 구원을 받고 싶으면 그 잘못된 교리를 버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사도 바울이 자기의 지식을 배설물로 여겼던 것처럼 님도 그렇게 자기 지식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 지식으로 자신을 남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고 지극히 낮은 자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에게 하는 게 주님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길 바랍니다

    앞으로 이런 얘기는 하지 않을 겁니다 더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님의 해석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그 전에 몇가지 얘기를 했던 것도
    이 말을 해주고 싶어서였으니까요

    주님께서 님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계세요

    1. 사무엘 2019/05/16 05:40 # M/D Permalink

      허허 역시나.. 전산 오류가 전부가 아니었군요.
      저는 명백한 오해와 실수는 인정하고 사과를 드렸는데.. 그랬더니 저에 대한 진짜 불만은 인제 나오는군요.
      저를 아예 구원도 못 받은 사람 급으로 정죄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ㅎㅎ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
      >>님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해석을 공부한 것

      뭐, 저도 그런 오류를 답습할 가능성이 0이라고는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한때 불경 열심히 공부하셨고 카스텔리오와 칼뱅도 아는 신세카이 님에게도 95% 이상 거의 똑같이 적용될 것 같은데요.

      님도 성경으로 성경을 풀이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긴 마찬가지잖아요. 제가 님의 논리나 근거보다 저걸 우선적으로 판단하는 정당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드렸는데도 그건 귓등으로도 안 듣고서, 자기가 잘 모르는 부분은 긍정이나 부정 없이 어물쩡 그냥 넘어가고.. 제가 님의 말을 안 받아들이는 걸 갖고 이젠 교만이니 태도드립으로 나오고 계시니 말이죠.
      저는 님께 성경에 대한 믿음부터 가지라고 권면드렸는데 님은 저보고 웬 뜬금없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자기를 낮추라느니 그런 말씀만 하시고.. 에휴.. ㅎㅎ

      >> 욥이나 아합왕이나 그 정도는 저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스토리야 님도 모르실 리가 없지요. 단지 그걸 진지하게 믿고 성경의 다른 유사 사례들과 종합해서 문제를 푸는 데 활용을 안 할 뿐인 거죠.

      >>욥은 텍스트를 보지도 않았는데 유대인도 아니었는데

      욥기 자체가 아예 최초의 구약성경이라 여겨지는 책이고, 이때는 당연히 유대인이고 율법이고도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극단적인 초창기 상황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셔야 했겠죠. 네 그건 저도 쿨하게 인정! 꿈에서 말씀해 주시는 경우도 있고, 성경에 기록된 사례만이 전부는 아닐 겁니다.
      에녹 정도도 아예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다가 하늘로 들려 올라겠겠죠.

      그러나 그게 님이 말씀하시는 것만치 흔한 사례가 아니고요, 어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도착한 뒤에도 만나가 계속 내렸습니까? 그럴 리가 없죠.

      설령 직접 들었다 해도 그 당시에 계시의 수준은 "그 하나님이 언젠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정도입니다. 욥이 그 시절에 무슨 갈보리 십자가를 알 길이란 전무했습니다. 하나님도 그 시절에 벌써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고요. 이 점은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니 귀가 있으면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본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짓된 해석

      어디서 세대주의 이단이라는 소리 많이 들으셨나 보네요. ㅎㅎ 남의 것을 보고 들은 게 있어야 그 정도로 강한 발언을 할 수 있습니다.
      님은 무슨 책을 보시고 어디서 신학을 하셨는지가 어렴풋이 그려집니다만, 정체를 숨기고 계시면 제 입장에서는 심증만 있지 물증을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추측은 여기까지만 하죠.

      저는 성경 말씀을 시대와 적용 대상별로 바르게 나눠 분간하고, 문자적 해석과 영적 적용을 하는 패러다임이야말로 성경에서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잘 풀이하고, 믿음의 영역과 논리· 이성 영역을 모두 충족시키며, 가장 건전하다는 생각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그걸 능가하는 대안을 지금까지 접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스스로 규정하는 성경 공부 방법을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님이 '잘못된 교리'라고 말씀하시는 그 교리 노선을 버릴 생각이 1도 없습니다.

      신세카이 님은 한편으로는 그렇게도 시대와 장소를 불문한 예수님의 피를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을 너무 쉽게 받는 걸 수긍하지 않고 구원의 영원한 보장도 안 믿는 입장이니 그거야말로 성경을 총체적으로 제대로 이해는 한 건지 저로서는 굉장히 미심쩍고 이상합니다. 이쯤이면 각자 서로 믿고 싶은 대로 갈 길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신학 노선은 신념일 뿐이지 행실이니 태도니 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그럼 이만.

  8. 신세카이 2019/07/14 02:10 # M/D Reply Permalink

    마무리가 덜 된 거 같아서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사무엘의 영에 대해서만 덧붙입니다

    -맞는 예언을 했다고 진리의 영이라고 할 수 없다

    신 18:21-22는 그와 달리 "틀린 예언 -> 거짓의 영"이라는 명제 하나만이 적혀 있지요. 허나, 성경의 다른 용례들과 하나님의 성품을 감안했을 때, 성경 내부에서는 저 명제가 역과 이도 다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
    명제가 바뀔 때 (거짓의 영) -> (틀린 예언) 이렇게 되잖아요
    거짓의 영이 어떻게 하는가? 틀린 예언만 하냐 맞는 예언만 하냐 둘 다 하냐
    그러면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 루시퍼의 성품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죠

    에스겔28:12 사람의 아들아, 두로의 왕에게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지혜가 충만하며 아름다움이 완전하여 모든 것을 봉인하는 자로다.

    그 상황에서 사울이 패배할 것이 명백한데 절대적인 열세였고 주님의 도우심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거짓의 영이 그정도를 못 맞출 정도로 어리석을까요?
    또 루시퍼의 성품으로 진실을 말하고 맞는 예언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악한 목적이라 충분히 보여지죠
    사울을 절망에 빠지게 할려고요

    또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신명기 13장
    1 너희 가운데 대언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 표적이나 이적을 네게 보이고
    2 그가 네게 말한 그 표적이나 이적이 이루어질 때에 이르기를, 네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자, 할지라도
    3 너는 그 대언자나 그 꿈꾸는 자의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가 너희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기 위해 너희를 시험하시느니라.

    말한 대로 이루어져도 귀를 기울이지 말라
    (맞는 예언)->(진리의 영) (거짓)

    - 틀린 예언일 수도 있다

    왜냐고요? 아합 왕을 미혹한 거짓 영이라든가, 욥이 하나님을 저주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사탄 마귀, 예레미야와 맞장 떴던 거짓 대언자 하나냐 등... 성경 어디에도 나쁜놈이 부정적인 팩트 폭격과 정확하게 적중한 바른 예언을 한 경우는 전혀 절대 없습니다.
    //

    사무엘상 28:19 또한 {주}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주}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리라, 하매

    1.
    여기서 "내일"이라고 나오는데
    시간 순서가 사무엘상28장에서 31장으로 바로 넘어간다고 해도
    그때 최고 지휘관인 사울이 부대를 이탈했는데 그것은 바로 전투가 일어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고
    무당에게 예언을 듣고 돌아와서 바로 다음 날 전투가 일어났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는 거죠
    제가 내일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는 없지만 또 님이 내일이라고 증명할 수도 없지 않나요?

    2.
    이건 좀 색다른 관점인데 사무엘의 영이 사울이 죽는다고 예언한 게 아니죠
    분명히 "내일 나와 함께 있다"고 예언했죠

    내일이라고 증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일 죽었다고 해도
    어떻게 되냐면

    진리의 영인 경우
    사울과 사무엘은 천국 (함께 있음)
    무조건 맞는 예언이 성립

    거짓의 영인 경우
    사울은 천국, 거짓의 영은 이 땅에 (함께 있지 않음)
    사울은 지옥, 거짓의 영은 이 땅에 (함께 있지 않음)
    두 가지 다 결국엔 틀린 예언이 성립

    거짓의 영은 천국도 지옥도 가지 않고 이 땅에 계속 있으므로
    틀린 예언으로도 모든 경우가 성립하게 되기에
    님은 예언을 가지고 진짜라고 강력히 주장하셨는데
    실제는 예언으로 판단이 불가능하고
    결국에는 다른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미 알고 있겠지만
    강신술은 금지됐다, 무당은 다 죽이라고 했다, 그 영이 사울에게 절을 받았다, 이미 주님은 사울에게 아무 답을 안 주기로 작정하셨다
    모든 요소가 가짜 쪽인 듯합니다

    1. 사무엘 2019/07/15 06:43 # M/D Permalink

      이 논리도 맞는 것 같고 저 논리도 맞는 것 같고 싸움만 나고 알쏭달쏭할 때는
      성경을 해석할 때 쓸데없는 논쟁의 루프를 끊으려면 성경의 용례를 따라야 합니다.
      성경에는 마귀가 예언을 한 것이 맞다고 나온 예가 전무합니다. 현실에서는 부분적으로 맞는 예언을 해서 사람을 현혹할 수도 있죠, 그 가능성은 0이 아니겠지만.. 적어도 성경에서는 욥의 경우,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경우 등.. 한 번도 나오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사무엘의 팩트폭격이 사울을 절망에 빠지게 한다...?? 그 말이 도대체 왜 악담이죠? 그럼 죄에 대한 책망도 못 하겠네요?
      더구나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님도 잘 추론했듯이, 죽어서 최소한 지옥 안 가고 구원은 받는다는 얘기이며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악담도 아닌데?
      사흘 뒤(18일)에 사무엘 얘기 글이 다시 올라올 것입니다. 성경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면 혼자 계속 그렇게 궁금해하시기 바랍니다. 합리적인 의심까지는 좋지만, 밑도 끝도 없고 답 없는 주제에 대해 너무 회의적인 것도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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