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숙명론

(1) 하나님이 태초에 천당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을 다 예정해 놓았고 다 로보트 조종하듯이 움직인다는 말은 완전히 잘못됐고 거짓이고 오류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그런 거라면 죄에 대한 책임도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 있어야 마땅하다. 나는 그런 나쁜 신은 믿고 싶지 않으며, 내 블로그에 당당하게 소개하지도 않는다.

(2) 하긴, 그러고 보니 구원 여부뿐만 아니라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도 그런 식의 오해가 많은가 보다. 하나님이 사람을 갑자기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고 정신줄을 놓게 만든 뒤 신들린 듯이 조종해서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글을 의식의 흐름대로 휘갈겨 쓰게 해서 성경을 완성시켰다...??? 무슨 울날랄랄따따따 방언의 손글씨 버전처럼? 절대 그렇지 않다.
제정신으로 자기 의지대로 쓴 글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숨결이 자연스럽게 깃들고 권위가 선 것이다. 자필 원본뿐만 아니라 킹 제임스 성경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3) 하나님 쪽에서 인간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죄값을 미리 다 치렀고 구원의 길을 모든 인간 누구에게나 공짜로 마련해 놓으셨다. 그러나 인간 쪽에서도 그 사실을 "자기 의지로 동의하고" 그 선물을 자발적으로 믿고 받아들여야 그게 그 개인에게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인간이 자기 믿음을 행사해야 하지, 그것조차 무슨 믿음을 따로 받아야만 구원받는 게 절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받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고 그걸로 구원받을 뿐이다.

2. 양 극단 오류

성경은 "행위 없이 믿음으로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 영원히 보장되는 구원"을 말한다. 이걸 배배 꼬아서 행위 구원 내지 "죄 지으면서 계속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구원 상실" 이러는 것은 아주 비성경적인 오류이다.
대한민국 땅에 들어온 북한 주민은 그 어떤 흉악범죄를 저질러도 북한으로 도로 송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신체의 자유와 각종 권리, 재산을 빼앗기고 교도소나 사형장에서 인생을 마치게 될 수 있다. 그것처럼 크리스천은 죄를 계속 지을 경우,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 해도 다른 잃을 게 아주 많다. 간증, 예수님과의 관계, 보상, 최악의 경우 건강과 생명 등등..

다시 말하지만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마음대로 죄 지어도 된다는 프리패스가 절대 절대 아니다.
선행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라고 하니까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았으니까 무슨 죄 짓고 회개를 할 필요가 없다느니, 요일 2:27을 단단히 오남용해서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느니 이상한 해괴망칙한 도덕성 해이와 양심마비를 조장하는 헛소리가 일각에서 나도는가 보다. 구원과 관련된 양 극단 오류에 현혹되지 말라.

3. 인과관계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주 원인은 창세기에서 묘사되어 있듯이 동성애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에스겔서에서는 의외로 뱃대지 부름과 게으름(16장)이 지목되며, 동성애를 옹호하는 좌독들은 이걸 거론하는 걸 더 좋아한다. 둘은 상호 모순인 걸까..??
그렇지 않다. 뱃대지 부르고 게을러지고 군기가 빠지고 사치 향락에 빠지고 타락하면서 결과적으로 최악 막장인 동성애까지 탐닉하게 된 것이다. 둘을 배타적인 상호 별개 대립 관계로 볼 게 아니라, 총체적으로 종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경에는 이런 관계인 개념 쌍이 가끔 나온다. 믿음과 행위, 구원과 침례도 전자의 결과가 후자로 이어지는 걸로, 이들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어쩌면 상관을 넘어 인과관계라고 볼 수도 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는 건 구원이라는 자동차 엔진이 내 안에서 시동 걸려서 돌아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차가 실제로 굴러가는지, 물리적으로 일을 하는지 여부만을 볼 것이다. 그걸 입증해 보이려면 변속기를 D를 눌러서 엔진을 바퀴와 연결하고 차를 실제로 굴려야 한다.

옛날에 "가장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라는 인종차별적인 말이 있었다. 그 사람은 인디언이 맞긴 하지만 죽었기 때문에 더는 백인들을 귀찮게 하지 못하고 원래 자기 종족들의 전통을 지키지 못한다.
같은 맥락으로 사탄 마귀의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이지 않겠는가? (약 2:17,20) 아무리 200마력, 1000마력짜리 엔진 자체는 레알이어도 변속기가 P, N에만 머물러 있으면? 예수 믿는 우리의 믿음이 역사하는 힘을 잃고 밖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죽은 믿음'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 침례는 구원의 수단 내지 조건인가?

4. 행 2:38

행 2:38과 막 16:16은 "침례라는 행위가 구원의 선행 조건이란 말인가~~~"를 갖고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난해 구절인 것 같다.
이것 때문에 말보회 한킹은 "죄사함 받기 위해 침례"가 아니라 "죄사함 받았으니까 이로 인한 침례"라고 for을 특이하게 번역하기까지 했다.

이 전통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1) 먼저, 그게 별개가 아니라고 반박하는 관점이 있다. 저기서 침례라는 건.. 믿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뒤따르고 이어진 반응일 뿐이다. 쉽게 말해 '영접기도'나 마찬가지라는 것.
"저요 저요, 선물 좀 주세요"라고 의사 표현을 하는 것조차 무슨 선물에 대한 값을 치르는 짓이라고 매도하는 바보는 없다. 저 상황에서 영접기도 하는 걸 행위라고 트집잡는 건 그냥 생트집일 것이다. 회개(믿음) 따로 침례 따로도 비슷한 방식의 어거지이다.

약간 원천봉쇄 오류 같은 냄새가 안 나는 건 아니지만 일면 수긍은 간다.
막 16:16 명제를 봐도 p는 "믿고 침례받는 자"이지만, ~p는 그냥 "믿지 않는 자"이다. "침례 안 받는 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2) 다음으로, 저 구절들은 현재의 신약 크리스천에게 100% 직접 적용되는 구절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관점이 있다.
막 16:16의 바로 다음 구절을 보면.. 믿는 자가 마귀 내쫓고 방언(?) 터지고, 뱀들 집어올리고 독약 마셔도 안 죽고, 아무 환자한테나 손만 얹으면 병이 바로 낫고.. 등등등 '사도들의 표적'이 나온다.
헐~ 그게 지금도 존재한다고 사람들을 홀리는 "은사주의자"가 있긴 하지만 그건 일단 논외로 한다. (저 표적들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한 치의 예외 없이 내 눈 앞에서 즉시 행해 보시라)

17~18절의 표적이 지금 끝나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동급으로 16절은 지금 우리에게 문자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행 2:38도 마찬가지. 앞의 본문을 읽으면서 문맥을 살펴보시라.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동참했던 그 당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조금은 추가적인 회개 정산 절차가 필요했다. 이거 자연스러운 논리이지 않은가?

리 승만 할배가 아들에게 유언 남길 때도 "울나라는 세계 모든 나라들과 통상하며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 하지만 일본하고는 워낙 특이한 과거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만의 고유한 정책이 있어야 할 거다" 이랬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예수님-유대인이 무슨 한일 같은 대등한 관계인 건 아니고, 저 말이 울나라는 일본과는 영원무궁토록 생까고 원수지간으로 지내라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고유한 화해 절차나 과거사 청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차원에서 그 당시 유대인들은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 성부 성자 성령도 아닌 '예수'만의 이름으로 특별한 회개의 침례가 먼저 필요했다고 받아들이는 거.. 이 역시 충분히 자연스럽고 수긍이 간다. (복음서에 나오는 성령 모독죄만 해도 성육신한 예수님의 동시대 사람들만 지을 수 있는 죄이지 않던가?)

결국 저런 구절들은 1번과 2번을 감안해서 이해하면 된다고 목사나 교사가 보충 설명해 주면 될 것 같다.
침례는 교회에서 직분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서는 충분히 내걸 만하다. 그러나 교회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한 조건은 조금 아리까리하니 생각을 해야 할 것 같고, 하물며 개인 구원 조건이 돼서는 교리적으로 절대 안 될 것이다.

이게 무슨 니 목숨 바쳐 순교를 하라는 소리도 아니고, 구원 조건도 아니고.. 평생에 물놀이나 목욕 한 번 못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침례가 너무 힘들고 번거로워서 시행하지 못한다는 말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5. 벧전 3:21

그리고 다음으로 벧전 3:21이 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왕년에 행 2:38에서 침례와 관련하여 오해하기 쉬운 논란의(?) 발언을 남겼는데.. 나중에 베드로전서에서도 고난에 대한 권면· 격려를 하던 중에 좀 어려운 말을 툭 던졌다.

앞의 19~20절부터 살펴보자면.. 예수님이 그 옛날 노아의 홍수 시절의 악인 내지 악령들과 접점이 있었다는(그들에게 말씀 선포) 생소한 얘기가 나온다. 노아의 홍수 때 생존한 사람이 딱 8명밖에 안 됐다는 얘기와 함께 말이다.
21절은 "그 옛날 사건이 바로 여러분을 구원하는 침례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쨌든 baptism saves us/you 이런 것처럼 번역이 많이 돼 있다.

비록 그 내부 메커니즘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게 있다는 단서가 명시돼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 말만 읽어보면 우리 입장에서는 침례가 구원의 조건인 것처럼 읽힌다. 킹/비킹 막론하고 말이다. 어찌 된 일일까?
오죽했으면 개역성경이나 말보회 한킹은 "물은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고 이게 곧 침례이다".. 침례 구원론을 피하려고 말을 임의로 좀 바꾼 듯하다. 좋게 말하면 교리적으로 오해 여지가 없지만, 삐딱하게 보면 출발어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21절의 난해함은 20절의 표현과 연계해서 생각하면 그럭저럭 풀 수 있을 것 같다.
baptism doth also now save us가 어색하기에 앞서 앞의 eight souls were saved by water도 동급으로 어색하다. 아니 saved by grace도 아니고 왜 by water이지?
20절에서 물은 구원이 일어나는 밑밥 배경일 뿐, 구원을 실질적으로 이루는 수단· 방법이 아니다. by에 전자의 의미도 있는 것 같다.

모형이라고 했으니까 진짜 말 그대로 "노아의 가족의 생존: 물: 방주"랑.. "우리 신약 성도의 구원: 침례: 예수 부활" 이렇게 비례식을 세워서 생각하면 될 듯하다.
빵과 잔이 진짜 주님의 살과 피가 아니라 상징일 뿐이듯, 침례도 구원과 관련된 상징일 뿐이다. "침례는 구원의 모형이고, 노아의 홍수 사건은 침례의 모형이다. 물과 노아 가족 구원의 연관성만큼이나 침례와 성도 구원이 관련돼 있다?" 베드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정도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걸 '모세에게 침례를 받은 것'에다가 비유했다. 거 참 심오하고 난해하다. 그러니 노아의 홍수도 얼마든지 침례에다 비유할 수 있겠다.
그리고 성경의 심상은 어떤 경우든 물에 온몸이 잠기고 젖는 것이지, 물방울 조금 뿌리고 마는 수준은 아니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4/04/08 08:35 2024/04/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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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복음, 죄에 대해서

1. 구원, 복음 전파

(1) 구원 확인
공무원 대기업 취업 전형을 합격한 사람, 결혼을 앞두고 있는 커플, 논문이 통과되어 졸업을 앞두고 있는 대학원생, 국방부 시계 끝나고 전역을 앞둔 군인한테..

"너 취업했냐, 너 곧 결혼하냐, 너 졸업하냐, 너 제대하냐.."
이런 질문을 했는데, 당사자가 입이 귀 밑까지 째지지는 않더라도, 오히려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하기까지 한다면,
그 사람은 좀 정신 이상이나 인격파탄, 싸이코패스를 의심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는 합격, 졸업, 결혼, 전역 따위가 애초에 사실이 아니라 구라 주작이었을 가능성까지 있다.

자, 이와 완전히 똑같은 맥락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고 죄 문제 해결됐고 죽어서 하늘나라 가는 사람, 일명 '교인'이라는 사람이 "너 구원받았냐..?" 라는 구원 확인 질문을 기분 나빠한다는 건....;;;
무조건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99%는 구원을 못 받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거다. 도둑이나 탈영병이 경찰이나 헌병 근처에 있을 때 괜히 지리듯이 말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고 실제 구원 여부조차 알 수 없는데.. 이렇게 입으로 구원 간증을 주고받는 건.. 이 영적 전쟁터에서 정말 "최소한의" 기본적인 암구호요 피아 식별 방법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았냐는 질문을 무슨 명절 때 어르신들로부터 "너 취업했냐? 결혼은 언제 하냐?" 같은 부류의 오지랖처럼 받아들이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 구원의 영원한 보장
교회 다닌다면서 성경을 모르고 구원의 확신 내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안 믿는 교인 중에는.. "인간이 감히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스스로 확신하다니 그런 신성모독 교만이 어딨냐....;;;;;;" 이렇게 버럭 하는 경우가 있다.
요런 잘못된 질문을 받아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럼 성경에 기록된 구원 약속을 안 믿는 불신은 신성모독 교만이 아니고..??"
오징어 게임 오 일남의 "그럼 자네가 지금까지 나를 속인 건 말이 되고??" 요렇게 반문하듯이 반문하면 된다. ㄲㄲㄲㄲ

인간이 진짜 알 수 없는 건 일단 구원은 받고 나서 "하나님이 왜 내게 이런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예수님은 도대체 언제 다시 오시는가, 나는 언제 어떻게 죽을까..??" 이런 것들이다.
개인의 구원 여부조차 긴가민가 알 수 없고 들쭉날쭉이면 우리는 도저히 정상적인 신앙 생활을 할 수 없다.!!

(3) 복음을 부끄러워함
누군가가 밖에서 복음을 전하고 구원 간증을 하는 걸 교회 댕기는 교인조차도 '지나치게'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하거나 오로지 부정적으로만 보는 경우가 있다. "광신자들이나 저런 짓 한다. 저렇게 전해 봤자 누가 듣나~ 부정적인 인식만 생긴다, 차라리 불우이웃을 물질로 돕는 게 더 낫다.. 헐"

진짜 도 넘게 무례하거나 외형에 품위가 너무 없고 헬렐레 거리고 행 16:17-18 같은 급이 아니라면..
저렇게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그 사람의 영적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 죄에 대해서

(1) 죄의 성립 조건
죄악이 인간의 감각 기관을 통해 input으로 들어와서 뇌가 인지하고 반응한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이것 때문에 순간적으로 잠깐이나마 유혹이 느껴지고 본능적으로 각종 나쁜 생각이나 극단적인 생각이 들고, OOOO XXXX를 하고 싶어지는 것.. 그 자체도 죄는 아니다.

"으악..!! OME!! 안 본 눈 삽니다" / "번뇌 이놈 죽어라~!" 이러면서 무슨 금욕에 고행에, 속세를 떠나서 수련하고 정신줄 놓으려 애쓸 필요는 절대 없다. 영적 전쟁이라는 게 우리가 선빵을 맞고 시작하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겨우 저런 것조차 죄라면.. 인간이 나쁜 환경에 처하는 것 자체가 신의 책임이 된다. 그러면 애초에 인간이 구원받자마자 하나님이 사람들을 하늘로 다 데려가 줘야 마땅하다.

단지, 그 유혹과 시험에 굴복해서 '자발적으로' 계속 곱씹고 그에 끌려가는 것부터는 죄가 된다. 물리적인 행동으로든 마음만으로든 형태 불문하고 말이다. 성경에서 다윗이나 아간 같은 사람이 유혹을 받았다가 죄에 빠진 과정을 잘 생각해 보자. 롯은 어떻고? (소돔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다가 아예 거기 눌러앉고 거기서 유명인사가 돼 버린... ㅡ,.ㅡ;; )

이 관계를 이렇게 비유한 문구가 있다. "머리 위로(ABOVE) 새가 날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새가 머리 위에(ON.. 머리와 접촉) 앉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을 항덕/항공 용어로 각색하면 "새하고는 항공 자유화 협정을 1단계 이상으로 더 맺지 말아야 한다." 정도에 대응하지 싶다. ㄲㄲㄲㄲㄲㄲ
"악은 모든 외형이라도 피하라~" (살전 5:22) 말씀은 특별히 2단계 자유화를 언급한 것일 테고 말이다. (여객 화물 교류 없는 단순 기술착륙)

(2) 함정 수사
우리나라에서 경찰이 범죄를 수사할 때, '함정 수사'라는 건 이미 범의를 품고 있는 사람에게 미끼를 던져서 죄를 실제로 저지르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까지가 허용이다.
멀쩡한 사람한테 적극적으로 범죄 저지르자고 꼬드기고 선동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거 무슨 안락사도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인 선까지만 허용하고 적극적인 건 허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패턴 같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누구의 마음을 더욱 강퍅하게 함, 누구를 시험하심"도 그런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하나님은 애초에 사람의 마음까지 보시고 마음 속에 품은 생각에서까지 죄를 찾아내는 분인데..
그걸 밖으로 행동으로 그대로 끄집어내 보도록, 그 여파만 더 크게 퍼지도록 툭 건드려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미리 아심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read-only operation이다.

단지, 아예 "죄를 새로 짓게 만들자, 더 타락시키자" 그런 짓을 조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약 1:13은 그런 의미이다. 하나님은 지옥 가기로 예정된 사람을 악역으로 일부러 조종해서 죄악을 창시하고 퍼뜨리는 정신나간 미친 신이 절대 아니다.

(3) 죄를 안 짓는가, 못 짓는가?
예수님은 여느 인간과 완전히 동등한 이성과 감정, 자유의지 하에서 죄를 자발적으로 안 짓고 모든 유혹 시험을 이기고 율법을 성취하신 분이다.
무슨 짐승이나 로봇처럼 죄를 지을 능력이 애초에 없어서 죄를 '못' 지은 게 아니라 죄를 '안' 지으셨다.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닌가?

  • "그가 버터와 꿀을 먹겠고 이로써 악을 거절하며 선을 택할 줄 알리니 ..." (사 7:15)
  •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히 4:15)

이사야서의 예언에 버젓이 자발적인 선악 선택이 명시돼 있거늘, 이 점에 대해 오해가 없어야 한다.
왜 자꾸 '믿어져야 구원', '죄를 못 지음' 등등.. 능동 자유의지를 떼어내려 하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3/09/01 19:36 2023/09/0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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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차이, 오류들

1. 종교 개혁

통상적으로 가톨릭이 아닌 기독교회는 종교 개혁을 계기로 생겨난 개신교라고 불리는 편이다. 그러나 기독교계엔 침례교처럼 개신교의 노선과 100% 일치하지는 않는 교파도 있다. 이런 진영에서는 1500년대의 종교 개혁에 대해 대체로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 긍정적인 유물: 이신칭의와 만인 제사장 교리 재정립. 구교 가톨릭의 부정부패를 용감하게 폭로하고 교황의 권위를 약화시킴. 바른 계보에서 나온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 개혁자들이 직접 만든 찬송가 등
  • 한계: 유대인, 유아 세례, 정교분리 같은 주제에서는 종교개혁자들도 구교의 배경과 방법론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

물론 침례교라고만 써 놓으면 세부적인 교리 스펙트럼이 왕창 넓다. 그러나 얘들은 대체로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회복을 믿고, 유아 세례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개신교와 노선이 차이가 있다.
스스로 자기 믿음을 고백할 정도로 자란 사람에게만 침례를 준다는 점은 자유 의지를 강조하는 알미니안주의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침례교가 구원의 상실까지 말하는 알미니안주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건 아니다.

2. 행위에 대한 오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이라는 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의 복음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걸 갖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저질 궤변을 펴는 사람이 좀 있던지라, 구차하지만 이 기회에 좀 개념 정리를 해 보겠다.

(1) "저요~! 예수님 믿고 싶습니다, 구원이라는 공짜 선물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스스로 손 내미는 것도 행위이고 선물에 대한 값을 지불하려는 짓이다
(2) 믿기만 하면 된다면서? 그러면 회개하는 것도 행위니까 할 필요 없네?

이 정도면 "이 가게는 없는 게 없다고요? 그럼 '없는 것'이라는 게 없다는 얘기네요~" 거의 이런 부류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논리학이나 철학에서 이런 궤변을 가리키는 용어가 분명 있지 싶다.;;

인간이 짓는 많고 많은 죄들 중에 용서받지 못하고 지옥 가는 유일한 죄가 바로 "예수 안 믿는 죄"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 안 믿는 게 어째서 죄인가? 그게 죄로 성립하기 위한 전제 선행 조건이 바로 도둑질, 거짓말 등의 다른 수많은 악행들이 추악한 죄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값을 치러야 한 그 죄 말이다.

선행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은.. 인간의 알량한 선행만으로 신의 기준을 채우지는 못한다, 즉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는 뜻이다. 그 자체가 일체의 의미가 없다거나 인간에게 무의미· 무익하고 심지어 해롭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술· 담배 끊고, 사기꾼 범죄자 인생을 스스로 그만뒀으니까 나를 구원해 달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지만, 구원받고 나서도 그렇게 계속 죄 가운데 살아도 된다는 것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회개는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며,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행위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조건이다. 예수 믿는 그 믿음을 행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죄가 나쁘다는 걸 인지하지 않고서 어째 내가 구원받아야 하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내 구원자로 믿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누가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를 대신 내 주기만 해도 그 사람이 고맙고, 그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는 운전을 더 조심해서 몸 사리면서 하게 된다.
내가 큰 사고를 쳐서 교도소에 가게 생겼는데 누군가가 신분 위장해서 나 대신 교도소를 가 주거나 벌금을 대신 내 주면..?? 심지어 사형장에 대신 가 준다면..?? 대신 벌받아 준 사람을 생각하면 밖에서 또 죄 짓고 싶어지겠는가?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2)와 같은 궤변을 논파하시길 바란다.

(1)이야.. 사람을 최소한의 자유 의지조차 없는 로봇으로 만들고, 태초부터 천당 가기로 예정된 사람, 지옥 가기로 예정된 사람을 설정하려는 의도 같은데.. 길게 반박하지 않겠다. 본인은 '전적 타락'과 '무조건적인 속죄'는 스스로 선악을 분간하지 못하는 영· 유아, 정신지체아가 죽었을 때에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3. 진단은 맞지만 처방이 틀림, 혹은 답은 맞지만 계산 과정이 틀림

  • 공의롭고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면서 세상에 왜 이렇게 악이 만연하고 선한 사람이 고통당하는가~ 하나님이 죄악도 창조하셨는가?
  • 자연 세상이 마냥 아름답다고만 보기에는 그 속에 잔인한 약육강식, 죽고 죽이기, 병들고 썩고 중독되기.. 이런 것도 많다.
  • 사람이 구원받고도 왜 이렇게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는가? 이 사람은 정말 구원받은 거 맞나?

이런 게 "언뜻 보기에" 굉장히 모순돼 보이고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문제인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걸 어거지와 억측을 동원해서 억지로 설명하려다 보니..

  • 구원 상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면 구원을 잃을 만한 죄다.. 뜨악~~)
  • 애초에 구원받은 것도 아니다 (진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이건 문제 해결이 아니라 그냥 논점 회피임)
  • 인간이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예정 섭리 주권이다 (하 정말 답답한 능구렁이 어물쩡)

결국 원천봉쇄의 오류나 자기 교리의 본질을 부정하는 쪽으로 빠지는 것 같다. 본인이 보기엔 그렇다.
특히 "이 정도면 구원을 잃을 만한 죄" 중 대표적인 예는 자기 자신을 죽인 자살일 것이다.
세상 비관해서 자기 혼자 곱게 자살한 것만으로 구원을 잃고 지옥 간다면.. 그럼 세상 비관해서 화풀이 하느라 지하철을 불지르고 무고한 시민들 여러 명을 골로 보낸 건 뭐가 되는가? 당장 지옥불 할아버지한테 떨어져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저렇게 예외를 만들고 논리 헛점을 허용하다 보면.. 애초에 그 어떤 죄라도 예수의 보혈로 용서받는다는 기독교 교리 자체가 어거지 모순덩어리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된다. 그러느니 차라리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게 더 낫다.
내가 여러 번 글로 변증했었지만, 이미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이판사판으로 죽으면 다 끝나고 없어질 거라고 잘못 생각하고 자살해서 불행하게 지옥에 갈 뿐이다. 죽는 방식 자체는 그 사람의 구원 여부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자살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그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건 답은 맞지만 계산 과정이 틀린 것이다. 당장 답만 맞다고 계산 과정이 틀린 걸 계속 방치하는 건 그 사람의 성장에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구원관을 왜곡하는 것 말고, 다른 분야에서 진단만 맞고 처방이 비성경적인 방향으로 간 사례를 더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불교는 세상의 문제점 자체는 올바르게 진단했다. 하지만 통찰이 전도서 수준에만 머무른 채, 진짜 진리와 빛으로 나아가지 못한 게(=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기에) 한계이다. 그냥 혼자 열심히 수련하고 노력해서 번뇌를 떨치고 득도 해탈 성불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2) 진화론도 마냥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적인 이론이 아니다. 단지, 타락한 자연 세계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적자생존 약육강식 아귀다툼을 신이 직접 만든 게 아니라면 스스로 진화해서 된 거라는 쪽으로 결론을 냈을 뿐이다.
'종'이 분화하는 건 과학적으로 진짜 사실인데..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니 남는 가능성은 그냥 저절로 진화하는 것밖에 없다. 진화론 자체보다는 진화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풀이가 우생학 같은 더 악한 결과를 낳았다.

4. 외부 이슈와 관련된 오류

한편, 요즘 교회 내부에서 이런 얘기가 오가는 경우가 많다.

  • 지구 평평;;;
  • 나라 걱정과 정치 얘기, 부정 선거 음모론
  • 우한 폐렴 백신 음모론

이런 건 성경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슈이다 보니.. 교회에서도 "저런 주제는 교회 차원의 공식 입장을 내지 않으며, 각자 어떻게 믿든지 자유이다. 한쪽만 옳다고 너무 강하게 주장하면서 서로 싸우고 기력을 낭비하지 말라~ 교회까지 와서 자극적인 주제에만 너무 심취하지 말라" 정도의 원론적인 입장만 내면서 유야무야 넘기는 편이다.

뭐, 교회는 세상 학문을 논하는 곳이 아니니, 그런 태도도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과학 발견이나 논리 추론, 합리적인 의심까지 다 종교의 이름으로 찍어누르고 괴상한 반지성주의를 조장하는 건...;;; 성경이 말하는 고귀한 믿음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천동설이나 지구 평평은 어설픈 사진이나 과학 이론(?)이 아니라 아니라 성경 구절을 들이대며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류의 오류는 교회에서도 어느 정도 바로잡아 줘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성경의 다른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방법론까지 싸잡아 사이비로 매도되고 설득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적으로 굉장히 우려하는 점이다. 까놓고 말해 킹 제임스 성경 신자라면 지구 평평에 현혹될 게 아니라, 인류 역사상 달 상공에서 낭독된 성경 역본이 KJV였다는 것이나 알아야 할 것이다.

정치 이슈도 마찬가지이다.
무슨 기독당을 만들고 교회 명의로 단체로 태극기 들고 길거리에 뛰쳐나가거나 심지어 불신자까지 교회에다 초청해서 시국 강연을 하는 건 교회의 존재 목적과 임무 우선순위를 심각하게 망각한 짓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 댕긴다는 사람이 분별력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교회가 무슨 여호와의 증인 급으로 세상 현실과 지나치게 단절을 감행하는 것, 뭐든지 다 예수님 다시 오셔야 해결되는 사항이니 우리는 닥치고 신경 끄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도 그닥 바람직하지 못해 보인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난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파입니다" 같은 소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논점 회피라는 생각이 들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 진짜 세상에 얽매이지 않은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진 경우를 거의 못 봤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기도만 열심히 하면 공부 안 해도 시험 100점 맞을 수 있다거나, 아예 세상 지식 공부는 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무책임 무질서한 개소리로 귀결되기 쉽다.

기독교는 혈과 육에 속한 싸움이 악하다고 해서 그렇다고 아예 집총도 하지 말고 국가의 병역 의무까지 거부하라고는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분야에서 균형을 어떻게 맞추면 좋을지는.. 답을 내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Posted by 사무엘

2023/06/09 08:35 2023/06/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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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수 년 동안 죄, 회개, 믿음 등의 주요 성경 용어에 대해서 글을 많이 써 왔다. 그런데 이런 면모에 대해서 다뤘던 적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퀴즈: 성경에서 엉뚱한 데에다 갖다붙여서 사람 겁 주기 딱 좋은 죄 투톱은?
답: 짐승의 표 666(계시록)이랑 성령모독/훼방죄(복음서)이지 싶다.

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요일 5:16의 사망에 이르는 죄도 있겠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기도하라고 말하지 아니하노라!! ㄷㄷㄷㄷ”
와, 이것만 모아서 설교나 강해를 해도 될 거 같다. 내가 아는 답만 최대한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짐승의 표 666은 아직 정체가 뭔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이런 걸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으며, 이 죄는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는 죄이다. 현재로서는 해당사항 아직 전무하니 제일 짧게 패스한다.

(2) 666이 미래를 다룬다면, 성령 모독은 과거에 있었던 특이한 죄이다. 막 3:29-30에 나와 있듯이, 직접적으로는 예수님이 성육신해 있던 당시에나 지을 수 있던 죄이고, 지금은 복음을 거부하고 안 믿는 죄와 다를 바 없다. 이쪽으로 흡수돼 있다.
무슨 “감히 이 ‘주의 종’의 설교에 토를 달다니, 이건 성령 모독죄라구! 니가 무사할 것 같냐” 이딴 소리나 하라고 있는 개념이 아니다. 특히 비성경적인 은사주의가 잘못됐다고 팩트폭격을 가하는 건 성령 모독이 더욱 절대 전혀 아니다. -_-;;

(3) 마지막 ‘사망에 이르는 죄’도.. 무슨 구원을 잃고 지옥 가는 죄인 것처럼 확대해석 하는 분이 많다. 난 요한일서에서 갑자기 뜬금없이 그런 개념이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살인을 저질렀으면 세상 법에 의해 사형 당해야 되고, 사형수 구명을 위해서 기도하고 난리법석 칠 필요 없다는 평범한 의미로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힘든가..?? 행 25:11에 기록된 바울의 말이 딱 정확한 예시이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 ‘욕심-죄-사망’(약 1:15).. 이건 사람의 구원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문자적으로 죽는다는 뜻이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계속 죄 지으면 육신의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구원이 다~ 지옥으로부터 건짐받는 구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처럼 구원받지 못하고 죽으면 지옥을 가는 것일 뿐, 사망이 곧 반드시 지옥/불못을 의미하지 않는다. 계시록이 지옥/불못을 ‘둘째 사망’이라고 분명하게 구분한다는 걸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은 맥락으로,

(1) 난 구약에서 “뭘 어기는 혼은 끊어지리라”도 개인의 사후세계 구원 여부와 관계 있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 신약의 아나니야와 삽비라건, 구약의 사울이나 웃사건.. 그렇게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개인의 구원 여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이라는 건 죄사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쪽(의식법) 한정이지, 규범 율법(도덕법)을 평소에 한 치의 오차 없이 다 지켰다는 걸 얘기하지 않는다고 본다.

(2) 예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자살했다고 구원을 잃는 것도 절대 아니다. 자살도 정말 문자 그대로 사망에 이르는 죄 중 하나에 해당되겠지만, 그 이상으로 특별히 더 심각한 죄가 아니다. 남을 여러 명 죽인 흉악 살인범도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데 자기 자신을 죽인다고 구원을 잃는다는 건 좀.. -_-;;
죽어서 이 땅에서의 생명이 끝나 버렸으니 그 누구의 기도도 통하지 않겠지만, 이 역시 사람의 구원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다. 구원받지 못한 채 자살하면 지옥에 갈 뿐이다.

이상이다.
구원받은 사람도 계속 죄를 지으면 구원 자체 말고 다른 잃을 게 엄청나게 많다. 간증, 보상, 하나님과의 관계, 상속, 건강, 생명 등..
가령, 세상에서도 아부지에게 심하게 밉보이면 법적인 부모 자식 관계는 유지될지 몰라도, 당장 재산을 한 푼도 상속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자식들 간에 상속 문제 때문에 연 끊고 살인까지 나는 게 비일비재하다. 과연 저게 사소한 문제일까?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다.
성경 신자에게 "죄의 정의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보통은 "믿음에서 나지 않은 것은 죄", "어리석은 생각은 죄",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죄"처럼 로마서 구절, 잠언 구절이 줄줄이 떠오르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신학 공부를 열심히 하면 죄라는 것의 정의도 웨슬리의 정의가 어떻고 칼빈의 정의가 어떻고 하는 걸 먼저 떠올리게 되나 보다.
이거 무슨 화학에서 Acid에 대한 아레니우스의 정의, 루이스의 정의 이런 거 공부하듯이 말이다.;;

옛날의 똑똑한 신학자들이 방대한 성경 텍스트를 정리하고 체계화해서 후학 신자들에게 도움이 될 자료를 많이 만들고 각종 짤막한 용어들도 만들어 놨을 것이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시기와 장소에 따라 분간해서 받아들이는 방법론도 개발해 놓았다. 아까 저런 특이한 죄들도 그런 원리에 근거하여 분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다 성경으로부터 파생돼야 하며, 우리 일반인이라도 시간만 충분하면 그런 것들을 스스로 재연 reproduce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신학이 성경보다 먼저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3/05/04 08:35 2023/05/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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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게 미쳐 보자

예수 믿고 교회 댕기고 성경 읽는다는 사람들, 소위 교인들은..
솔직히 말해서 예수님에게 제대로 좀 미쳐 봐야 된다. 평생 24시간 365일 그러지는 못하더라도 한번쯤은 말이다.

특히 외모와 체력과 능력이 제일 뛰어나고.. 어쩌면 갓 취업한 사회 초년생이어서 돈도 그럭저럭 벌면서 아직 처자식도 없는 청년 시절..
그럴 때 확~ 꽂혀서 예수님을 위해서 미친 척 뭔가 내 재능, 시간, 물질 등을 통 크게 허비(???)해 봐야 된다. (비싼 향유 부은 여인)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성경을 밤새워서 몽땅 독파해 버린다거나,
  • 교회에 큰 변고가 생겼거나 무슨 선교사가 어려움을 당했다거나 할 때.. 평소 내는 주일 헌금보다 10배 이상의 액수로 사비를 쾌척해서 후원한다거나..
  • 지원자가 없는 예배당 청소나 교회 주차 안내, 주일학교 교사를 하거나..
  • 의식의 흐름을 따라 찬송시를 쓰거나 선교 편지, 신앙 서적 번역을 해 보거나..
  • 길거리에서 거리 설교나 전도지 배부를 하거나..
  • 가끔은 구원받지 못한 가족 친지, 종교 문제로 갈등하던 사람이 미운 게 아니라 안타깝고 불쌍하게 보이고.. 남을 위해서 뭔가 눈물 흘리면서 기도해 보고, 알량한 내 자존심을 다 깨뜨리면서 펑펑 울어 보고..

이런 경험이 아무리 못해도 20대 시절에 한 번은 있어야 되지 않겠냐..??
성경적으로 정상적으로 정당하게 살면서 광신자 소리 좀 들어 봐야 된다.
20대 시절에 무슨 유럽 여행을 가 보고 강남 클럽을 가 보고 별의별 걸 다 해 보겠다는데, 예수 믿는 청년은 저런 경험을 좀 해 봐야 된다. 이건 내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 "으이그 저 돈지랄을 하느니 불우이웃이나 아프리카 기아들이나 돕지?
  • 진짜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겉으로 지가 예수 믿는다는 티 안 낸다"
  • "네가 제정신이 아니니 많은 학식이 너를 미치게 하는도다~~" (행 26:24)

이런 부류의 빈정거림은 성경적으로 매우 "정상"이고 예상 가능한 피드백이니까 걱정 마시라. 마 26:8-9, 막 14:4-5, 요 12:5 따위. 당연히 매우 잘못된 소리라는 점에서 말이다.
또한, 십중팔구 평소에는 불우이웃 어려운 이웃 따위는 쥐뿔도 관심 없던 인간들이 꼭 이런 상황에서나 이웃 핑계 대는 법이다. -_-;;

예수에 미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를 안다면.. "실컷 내 마음대로 죄 펑펑 지으면서 살다가 죽기 직전에만 샥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되겠네"
이런 생각은 너무 졸렬하고 민망해서 누구든지 꺼낼 엄두를 못 내게 된다.

마 12:41-42를 보면.. 예수님께서 "심판의 날 때 니느웨 사람들이 너희를 책망할 것이고, 스바의 여왕이 너희를 디스할 것"이라고 예시를 들며 그 당시의 세대를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 우리는 요나의 선포를 듣고도 데꿀멍 하고 회개를 했는데.. 니들은 요나보다 더 큰 분 바로 옆에서도 꼼짝도 안 했냐? 이것들이 간이 배 밖에 나왔냐?
  • 나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수행원 챙겨서 억만 리 원정을 힘들게 떠났었는데.. 니들은 솔로몬보다 더 큰 분을 바로 옆에 두고도 못 알아봤냐? 이 ㅂㅅ아?

그런 것처럼.. 죽기 몇 시간 전에 십자가에서 겨우 구원받았던 강도가 저런 부류의 사람들을 맹렬히 책망하게 될 거라고 난 생각한다.
"너희들은 구원받고 나서 겨우 몇 시간밖에 못 살았던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에 있었으면서 뭐가 어쩌고 저째..???"
그는 자기는 역대급 먹튀 뽀록 구원을 달성한 운 좋은 케이스라고 자랑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출애굽기에서도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게으르다"고.. "뱃대지가 부르고 살 만하니까 종교에나 심취"하는 거라고 아주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진단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목이 뻣뻣하다 (완악하고 고집 세고 믿음이 없다)"라고 진단하셨을 뿐이다.
어느 게 진짜 새겨 들어야 할 경고인지를 생각해 보자.

내가 예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예수 믿고 성령님이 거주하는 신앙 생활이 뭔가 재미없고 따분하고 손해 보고 불편하고 꾹 참아야 하고 억압과 제약 핸디캡이 가득한 인생일 거라는 그 편견, 프레임에 속지 말길 바란다.
세상에는 온통 이상한 이단에 맛이 간 광신자에 대한 묘사가 가득하다. (오징어 게임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 길은 성경적인 좋은 광신자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뻘건 조끼에 뻘건 십자가 들고 무슨 좀비처럼 전도하는 사람을 묘사하지, 죄와 심판과 의에 대해서 제대로 선포하는 복음 전파자를 묘사하지 않는다.
광신자 프레임이 두려워서 자기는 구원받고 나서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그럼 그건 달란트를 받고도 주인을 믿지 못하고 뭐가 두려워서 그 돈을 땅에만 파묻어 둔 게으르고 악한 종의 사고방식과 다를 게 없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없고 개인의 구원 여부를 X선 찍듯이 척 들여다볼 수 없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성령님이 거한다는 증거는 보이는 언행의 변화로 드러난다.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건 생각보다 천천히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허나, 교회들이 그런 양육을 안 시키고 당장 겉으로 빨리 드러나 보이는 결과물인 종교적인 열심만 강요하고 다그치면.. 이상한 광신자 아니면 아예 영적 성장이 정지한 환자들만 잔뜩 양성하면서 큰 폐해가 야기될 것이다.

아무쪼록, 구원받은 신자, 기독인이라면 예수님에게 제대로 미쳐 보자.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찬송가 가사대로 실행해 보라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4/24 08:35 2023/04/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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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진영이라고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똑똑하고 재능 많고 본업인 음악뿐만 아니라 온갖 잡학에 관심 많고 머릿속이 복잡다단한 4차원 구조인 사람 같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는 요 몇 년 전부터는 종교 쪽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중임을 공개적으로 티를 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자신의 구도(?) 과정을 긴 간증문으로 써서 공개하고 영상도 올리는 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호불호가 갈린다.

먹고 사는 분야에서는 충분히 성공했으니, 그 다음으로 신이나 내세 같은 분야의 지적 욕구가 생긴 것 같다. 하긴, 예전엔 이 병철 삼성 창업주조차도 늘그막에는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이 어째서 이 모양 …” 이런 부류의 수십 개에 달하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했던 바 있다.

나도 종교 분야를 어린 시절에 진작에 입문하지 않고 아재 꼰대 나이가 돼서야 관심이 생겼다면.. 박 진영 씨처럼 혼자 여기저기 찾아보고 기웃거리다가 왕창 마이너 특이한 델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ㄲㄲㄲㄲㄲㄲ 지금도 이미 충분히 마이너한 델 갔지만..

본인은 정작 저 사람이나 저 사람 곡을 잘 모르며, 간증문을 제대로 다 읽어 보지도 않은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힌다.
허나, 잘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생각하는 기독교 교리는 어느 교파의 관점에서 봐도 다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일부 주장은 극단적 세대주의를 띄는 게 있어서 좋은 까일거리 먹잇감이 된 듯하다. 신약 교회 신자는 바울 서신 말고 다른 성경책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걸 넘어서 아예 필요하지 않다느니.. 이 정도면 윤 석열 대통령이 앞으로 북을 선제공격할 것이고, 최저임금도 없이 주 120시간 로동 착취를 시킬 것이고 의료보험을 몽땅 민영화시킬 거라네 하는 헛소리 급이다.

심지어 구원파 영향을 받은 말도 있다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다. 난 솔직히 말해서 구원파의 교리 자체도 잘 모른다. 그냥 자기가 구원 받은 날짜에 너무 집착하고, 구원 받았으니 이제 회개할 필요 없고 마음껏 죄 짓고 살아도 된다고 설마 "정말로 그런 정신나간 주장을 하나?" 이 정도가 내가 아는 바의 전부이다.

저런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박 진영의 간증 내지 신앙관은.. 온건 세대주의 기반인 독립 침례교회 쪽 진영에서도 논란이 많다. 무작정 호의적이지 않다.
내가 파악한 게 맞다면.. 저 사람은 머리 좋고 해골 내부 구조가 복잡하고 이것저것 탐닉한 게 많다 보니, 복음까지도 너무 복잡하게 접근하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기미가 보인다. 나는 다른 낭설들 말고 바로 그게 우려된다.

내가 내 자유의지로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자발적으로 영접하고 믿어서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구원을 은혜로 믿음으로 받는다. 이렇게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될 것을..

  • "내가 억지로 힘들게 믿으려 애쓰는 게 아니라, 저절로 믿어져야 구원받는 거다.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을 받아야 한다"
  • "뭘 깨달아야 구원받는다" (회개의 선행 조건으로 내가 죄인인 걸 깨닫긴 해야 하는데, 저기서는 그 말을 하는 게 아님)

뭐랄까, 맞는 말 같으면서도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초신자를 더 갈팡질팡 헷갈리게 하는 식으로 워딩을 하는 것 같다. "주여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소서" (막 9:24) 상태인 초신자들이 이것 때문에 거의 공황 수준의 혼동을 겪었다고 한다.

난 박 진영의 글 때문에 '믿음'이라는 벡터의 방향과 출처에 대한 키배와 논쟁이 굉장히 심하게 벌어졌었다는 걸 뒤늦게야 들었다.
겨우 이 따위 게 논란거리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 했었는데..
faith가 아니라 believe여야 한다느니(둘 중 하나를 have faith 내지 belief로 바꿔야겠지... 품사부터 좀 동기화시켜야..)
faith of Jesus Christ를 받아야 한다느니 그런 말이 나돌더라.

흠정역은 우리말 성경들을 통틀어서 롬 3:22 / 갈 2:16 faith of Jesus Christ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번역한 유일한 역본이다.
"엥? of니까 원래 '의'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of는 생각보다 굉장히 중의적이며,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이다. 다른 성경들은 전부 '를'이라고 돼 있다. 차이점이 뭔지 아시겠는가?

이건 킹 제임스니 변개니 하는 내용 차이 이슈가 아니라, 단순 번역 이슈이다. 게다가 이거.. 내가 알기로 흠정역의 주 번역자인 정 동수 목사 본인의 소신보다도 다른 여러 목회자들의 강력한 권면과 건의가 받아들여져서 '를' 대신 '의'가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말보회 한킹 진영에서는 흠정역의 번역 때문에 저렇게 "믿어야 구원"이 아니라 "믿어져야 구원"이라는 오류가 생긴 거라고 비판하니.. 그저 골치 아플 따름이다. 참고로 말보회는 야고보서와 히브리서는 신약 교회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세대주의를 굉장히 강하게 지지하는 진영이다. 쟤들은 '믿어져야 구원' 이걸 오히려 칼빈 예정론과 결부시켜서 역공을 가하기도 한다.

일단 난 흠정역의 번역에는 크게 토를 달지 않을 생각이다. 예수님이 믿음의 창시자이고 예수님도 이 땅에서 뭔가를 믿는 본을 보이신 것 자체는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예수님께 믿음을 구하고 새 믿음을 공급받는 것은 구원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이건 박 진영 씨도 부디 앞뒤 순서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예수 영접을 위해서 맨 처음부터 예수님의 믿음을 받아야 된다는 논리는.. 순환논리이고 궤변처럼 들린다. 압축 유틸리티를 설치하기 위해서 압축을 풀어야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압축 유틸은 바로 실행 가능한 exe/msi 형태로 배포하는 게 상식입니다~~)

박 진영 씨가 그저 종교 지식 덕후가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해서 구원까지 받았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단지, 이 사태를 보니 인간은 같은 글에 대해서 역시나 다들 자기 관심사와 자기 진영 논리대로 남을 즐겨 판단한다는 것 절실히 느껴진다. 극단적 세대주의 탓, 흠정역 번역 탓.. 예시를 보면 명확하지 않은가?

난 그런 교리 노선을 떠나서 누구든 복음의 단순함을 왜곡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비행기가 어떻게 공중에 뜰 수 있는지.. 유체역학 항공역학 물리 법칙을 하나도 모르고 수학적으로 증명을 못 해도,
"이 비행기는 중간에 추락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잘 날아갈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믿고 비행기를 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안 믿어지면..? 옛날에 북한 김 정일이 그랬던 것처럼 외국 나갈 때도 평생 열차만 타고 육로로만 다녀야 되는 거다.

"아~ 해외여행을 5년쯤 다니니 어느날 갑자기, 이제야 믿음이 생겨서 비행기를 안심하고 편안하게 탈 수 있게 됐어!!"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개인 간증으로서는 좀 드라마틱한 일일 수 있지만, 5년 동안 불안불안하게 탔던 자기만 집착이 심한 비정상이었던 것일 뿐이다. 그런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일반적인 교리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결국은 자기가 안 믿은 걸 갖고 하나님 쪽에서 믿음을 안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탓"이 나와서는 심히 곤란하다. ㅡ,.ㅡ;;;

내 경험상, 어설프게 영어 성경 읽으려고 애쓰기 전에 국어 공부부터 해야 될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역으로 성경을 별 오류 없이 분별하면서 제대로 읽을 정도가 되면, 세상 학문을 할 지적 능력도 이미 크게 갖춰져 있게 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26 08:36 2022/05/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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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 구원

기독교 은혜의 복음에서 굉장히 논란이 되고 트집도 많이 잡히는 낭설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평생 내 마음대로 죄 지으며 살다가 죽기 직전에만 달랑 예수인지 뭔지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소리네?? 뭐 그런 어거지가 다 있어?”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Y/N 하나로만 굳이 답한다면 흔쾌히, 단호히 Y이다.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하자면, 이건 다른 단골 드립인 “이 순신/세종대왕 드립”보다는 논파하기 훨씬 더 쉬운 주제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억을 받았습니다” 광고를 기억하시는가? 생명보험 가입해서 보험료 딱 한 번만 내고는 가입자가 다음날 바로 급사해 버렸는데.. 어쨌든 면책 기간 없고 계약 위반도 아니니 1회분 보험료의 500배에 달하는 보상금이 나온 적이 있었다.
이런 일이 성경적으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합법이니까.

누가복음엔 평생을 흉악범으로 살다가 십자가형 당한 강도가 바로 옆의 예수님께 로비(?) 잘 해서 당일 바로 구원받은 얘기가 나온다. 훗날 “죽기 직전” 드립이 많이 나올까 봐, 진짜로 죽기 직전에나 달랑 구원받은 사람 예시를 대놓고 수록해 줬다. ㅋㅋㅋ

게다가.. 이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십자가에 달렸던 바로 직후엔 그 구원받은 강도도 예수님을 같이 조롱하고 욕했었다!
마 27:44의 ‘강도’는 분명히 복수형이다. 두 명 다 욕했다는 뜻이다.
그랬는데 둘 중 한 명은.. 심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나중에 마음을 돌이키고 회개한 것이다.
예수님 면전에서 욕과 조롱까지 하다가 구원받았다고라? 세상에 이것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인생 역전이 어딨을까?

자, 그래서 원 질문에 대한 답변은 Yes임을 논증했다.
그럼 그 복음이 말도 안 되는 어거지인가? 하나님이 구원 먹튀, 모랄 해저드를 조장하고 있는 것인가?
그건 절대 아니고 답이 No.. 아니 No를 넘어서 God forbid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언제 죽을지 절대 알 수 없다. “죽기 직전에만 믿으면 되겠네?”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다음날 꽤꼬닥 급사할 수 있다. 당연히 구원 못 받은 채로.. ㅡ,.ㅡ;;

이건 학교 선생이 아무리 자비로워도 시험 문제를 대놓고 유출은 절대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국영 소방서가 없는 곳에서 민간 화재 보험(공제 조합)을 평소에 안 들었다가 자기 집에 불 나면 아무도 안 도와주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그건 보험사가 야박하고 잔인한 게 아니다. 그때 호락호락 불을 꺼 주면 평소에 아무도 보험을 안 들 테니까..

하나님은 겨우 죽기 직전 구원 먹튀 같은 알량한 잔머리로 결코 농락· 조롱당하지 않는다.
지난 대선 때는 코로나 걸려서 당일 투표 못 할까 봐 두려워서 사전투표 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우리는 그것보다는 자기 미래 대비를 좀 해야 될 것이다.

둘째, 병이나 사고로 급사하지 않고 자연사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지금도 안 믿는 사람이 더 나이 들어서 고집 세고 완강한 늙은 꼰대가 된 뒤에 복음이 과연 믿어질까..? 그런 일은 생각만치 호락호락 일어나지 않는다. 7, 80대 노인이 정치 성향이 180도 달라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보시라.

글쎄, 돈 날리고 건강 잃고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뒤에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서 종교에도 관심 생기고 성경 읽고 싶어지고 그럴 수는 있겠지만.. 이것도 누구나 그러라는 보장은 없다.

십자가의 강도는 그저 예수님께 잘 보이려고 얼굴도장 찍은 게 아니다! 갑자기 마음이 확 바뀌어서 자기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같이 예수님을 까던 십자가 동기(?)에게 버럭 하고는.. 예수님을 무려 ‘주여 Lord’라고 불렀다. 이 정도는 되니까 아무 선행 없이도 구원이 이뤄진 것이다. (킹 제임스 성경만이 눅 23:42가 ‘예수여’가 아니라 ‘주여’라고 적혀 있음!!)
이걸 죽기 직전에 쟁취해서 먹튀하는 거..??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끝으로 셋째, 위의 질문은..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는 건 아주 억압적이고 자유를 박탈당하고 손해 보고 호구처럼 사는 것이다, 그러니 믿을 거면 최대한 늦게 믿는 게 낫다”라는 프레임이 깔려 있다. 그러니 이건 엄밀히 말하면 질문의 전제조건부터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내 인생의 기원과 목적을 정확하게 알게 되고 이 세상의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게 되고.. 죄 짓는 걸 자유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죄를 자연적으로 멀리하고 싫어하게 되고, 진정한 기쁨과 평안과 감사라는 게 생기고..
이런 이익 gain을 어린 시절 젊은 시절부터 누리지 못하고 죽기 직전에야 달랑 겨우 구원받는 건 먹튀가 아니라 손해이다.

성경의 전도서는 “나도 솔로몬의 반만치라도 금수저 쥐면서 부귀영화 누리고 미녀 1000명하고 원나잇도 해 봤으면 좋겠다 -_-”가 아니라,
니들은 나처럼 헛되고 헛된 거 삽질하면서 인생 낭비하지 마라. 젊은 시절부터 하나님 찾아서 잘 섬겨라~ 그게 너한테도 이득이다”의 취지로 기록됐다는 걸 잊지 마시라! 이 점에 대해서는 재작년에 본인이 쓴 글도 참고하시길 바란다. (☞ 링크)

자기들이 보기엔 뉴비 쪼렙 ㅈ밥(?)일 뿐인 인간들이 아무 노력이나 공로 없이 구원을 너무 쉽게(?) 받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발끈하는 사람들이 좀 있는 것 같다. 성경에 기록된 포도원 비유(일한 시간과 관계 없이 동일한 일당이라서 발끈), 그리고 탕자의 비유에서 발끈하는 형과 정확하게 같은 심정으로 보인다. 읽어 보면 진짜 기가 막힐 정도로 일치한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라든가 보편적인(=구원받은 신자라면 누구나) 휴거도 99%의 확률로 안 믿는다.
애초에 자기 선행으로 구원을 얻는 게 아닌데,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고 납득이 안 되고 자존심 상하는 걸까?
가령, 살인자도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데, 자살한다고 구원이 취소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구원받고 나서 사람이 도로 펑펑 죄를 짓는 걸로도 모자라서, 마음에 180도 변해서 더 이상 예수 안 믿고 아예 타 종교로 개종을 할 정도로 배교해도 구원이 유지되나?”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해서 묻는 사람이 있다.

이것도 먹튀 구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답변 가능하다. 원론적인 답변은 Yes.. 인간이 설령 그런 짓까지 하더라도 구원은 유지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타 종교로 개종을 할 정도로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뀌는 사람이라면 한 90% 이상은 애초에 구원도 안/못 받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10억을 받았습니다”에 가까운 아주 극단적인 로또 급 예외일 뿐, 압도 다수의 경우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예수님께서 비참한 나를 위해서, 나의 그 끔찍한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니~~!! 엉엉엉” 이랬던 사람은.. 무슨 당장 의를 행하고 순교도 가능할 정도로 강한 용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성경 말씀이 믿어지고 죄에 대해서 민감해지고 긴가민가 고민은 하는 게 정상이다.
내 노력으로 죄 안 지으려고 불끈 노력하다가 롬 7:24의 바울처럼 현타를 느끼고 멘붕 좌절하고, 그러면서 내 육신을 죽이는 훈련을 하며 커 가는 게 정상적인 코스이다.

구원이란 정말 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머리와 가슴 사이의 어마어마한 거리를 실감케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래서 구원받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을 못 하는 사람도 많다.
한번 구원을 제대로 받긴 한 사람이라면 휴거 못 되는 것, 지옥 가는 건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 없고, 그 대신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매 1분 1초를 한 순간도 빠짐없이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분과 나의 사고방식이 동기화가 돼 있지 않았다면.. 그 심판석은 어지간한 화생방 훈련 이상으로 눈물 콧물 빼는 처절한 회한의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구원과 관련된 온갖 낭설과 오해가 바로잡히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사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04/06 19:35 2022/04/0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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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질적이지 않은 오해와 중상모략

세상에는 기독교의 탈을 쓴 이단 사이비가 여럿 있다. 이단들은 단번 속죄 구원의 영원한 보장 교리를 이상하게 배배 꼬는 경향이 있다.
아예 구원의 상실,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건 예사이고, 반대편 극단으로 가서 이제 죄 용서 받았고 구원받았고 무슨 짓을 해도 지옥은 안 가니 "니 꼴리는 대로 살아도 된다, 심지어 일체의 참회나 회개를 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롬 6:1-2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헛소리를 하는 곳도 있다.

이런 소리를 정상적인 크리스천이 들으면 "그건 성경의 가르침을 일부만 그것도 아주 잘못 적용한 이단 교리일 뿐이다. 성경은 그런 막장 결론을 의도하거나 조장하지 않으며, 우린 그런 가르침하고는 아무 관계 없다"라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영화 밀양에서 묘사된 것처럼 "나는 신에게 다 용서받았으니까 괜찮아~" 이러는 양심 마비자를 제정신 박힌 크리스천이라고 간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비슷한 논리로, 진화론에 대해서도 진화론적 세계관, 무신론, 유물론, 우생학, 사회 진화론 이런 것까지 연루시키면서 이놈의 사탄 마귀적인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서 나치즘과 공산주의가 생겨났고 젊은이들의 정신이 황폐해지고 어찌 됐네 이렇게 프레임을 씌운다면... 단순히 과학 이론으로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하고는 더 대화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진화론자라도 "흑인은 인간과 짐승 사이에 진화가 덜 된 생물이다" 이딴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개인적인 소신은 당연히 "이 우주와 생명이 우연히 저절로 생긴 게 아니고 절대자가 있다"라는 신의 창조이다. 그 정도 진화가 가능하다고 해서 인간 정도의 고등한 생명체가 그런 진화의 산물로 저절로 생기는 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믿음을 발휘할 영역과 과학 관찰로 승부할 영역,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파생 효과 내지 오해· 중상모략 같은 것은 분명하게 분간해서 주장해야 할 것이다.

2. 과학 관찰은 종교색과 무관

이 세상 학계에서는 누구 말마따나 그저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어서 과학 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 걸까? 20세기에 천문학계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생각해 보면, 이 문제를 좀 다른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천동설과 지동설, 창조와 진화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천문학계에서는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대폭발설(일명 빅뱅)과 정상 우주론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 당시엔 두 이론이 모두 상대편 이론을 완전히 제압할 정도로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심상을 고려하면 오히려 빅뱅이 뭔가 시작과 기원, "빛이 있으라" 같은 창세기 1장 느낌이 물씬 풍긴다. 게다가 빅뱅이라는 개념을 1930년대 초에 최초로 제안했던 사람은 천문학자 겸 현직 가톨릭 신부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무신론 과학자들은 이를 심리적으로 거부했다.

이와 달리 정상 우주론--딱히 기원이 없고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동일하게 있음--은 벧후 3:4의 심상과 비슷하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이건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깐다. -_-;;
그랬는데.. 훗날 우주 배경 복사라는 게 발견되면서 이 주제는 빅뱅이 맞는 것으로 사실상 결론 지어졌다. 정상 우주론은 천동설 급으로 완전히 폐기된 건 아니지만 거의 소수설 비주류로 전락했다.

요지는.. 세상 학계도 과학적인 증거만 있다면 창세기 냄새가 좀 풍기는 학설이라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공립 학교에서 과학 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세상 인명 사전에서 예수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다음으로 "사흘 만에 부활했고 승천했다"라고 차마 쓰지 않는/못하는 것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비슷한 예로 초능력이니 UFO니 하는 것도 꼭 기독교계에서 사탄의 미혹 운운하며 난리를 치지 않더라도,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하지 않으면 이 바닥 종사자들이 알아서 배척한다.

물론 과학이 만능은 아니고 과학으로 알 수 없는 현상도 많다. 하지만 그 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지성은 최소한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정작 창조 과학 진영에서는 빅뱅을 여전히 배척한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빅뱅이 기원이라는 개념 자체는 성경과 일치하지만 연대기는 젊은 우주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창 1:1,3이나 벧후 3:4가 지구를 넘어 우주의 기원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구절인지 잘 모르겠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땅의 원 위에 앉으신 이"가 딱히 지구가 둥글다는 걸 말하지는 않으며, 계시록에 나오는 "땅의 네 모퉁이"가 지구가 평평하다는 걸 말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성경에 따르면 세상이 과거에 있었던 세상, 현 세상, 다가올 세상이라는 세 종류가 존재하고 하늘도 세 계층이 있다는 것 정도까지만 알 수 있다. 그 개념이 현대의 지질학이나 천문학이 밝혀낸 자연의 모습과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인간이 적절히 잘 풀어야 하는 숙제일 것이다. 다만, 성경이 문자적으로 사실이기 위해서 반드시 젊은 우주, 젊은 지구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본인의 소신이다.

3. 창조 과학의 정체성

창조 과학회라는 곳에서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성경 내용은 문자적으로 옳고 정확하며, 과학적으로 사실이다.
  • 이 세상(우주, 지구, 생물..)은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 지구와 우주의 나이는 젊다.

성경이 오류가 없고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은 본인도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창세기의 6일, 계시록의 1000년이 대표적인 예이다. 성경에 나오는 각종 인물, 명칭과 숫자들, 사건들은 대놓고 비유 허구라고 명시된 게 아닌 한 당연히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정확한 레알이다. 피나 일부 위생 관념에 대해서 말한 것은 분명히 시대를 앞섰던 것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성경이 원자와 분자를 논하고 definition, theory, lemma가 나오는 이공계 학술서적 스타일로 저술된 책은 또 아니다.
성경에는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만 나오지, 당장 금성 화성 목성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난 성경에 딱히 지구 자체가 둥글거나 평평하다고 말하는 암시는 없다고 생각한다. 욥기 38장에서 하나님의 질문은 이런 식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내가 우주를 한 점에서 시작해서 대폭발 시킬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니가 인간 DNA의 염기 서열을 아느냐? 양성자와 중성자가 서로 붙어 있고 전자가 원자핵을 돌게 하는 힘이 어디서 나고 그게 무엇 덕분에 가능한지 니가 아느냐?
길바닥의 이끼도 해내는 광합성의 명반응 암반응 메커니즘을 니가 아느냐? 네가 전자기파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능히 측정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성경이 문자적으로 사실이긴 한데.. 도대체 어느 문맥과 scope까지 문자적인 사실인지, '모든'이라고 했을 때 얘는 도대체 어느 범위의 전체를 말하는 건지 정도는 그래도 최소한 성경이 자체적으로 정해 놓은 원칙에 따라 분간을 해야 한다. 그러니 창조 과학이라 해도 과학뿐만 아니라 바른 신학을 저변에 깔고 있어야 한다.

그 다음 지적 설계는 심증으로서는 매우 유력하며 신앙을 갖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시 19나 롬 1:19가 말하는 일명 자연 계시 말이다. 하지만 신의 존재는 과학으로 증명도 반증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이것이 과학의 관점에서 '물증'이 될 수는 없다.
이건 당연한 귀결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조금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창조 과학 진영에서 위의 두 명제.. 즉, 성경의 사실성과 지적 설계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 다음으로 끄집어낸 카드가 바로 젊은 지구이다.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는 학설? 가설 자체는 신학하고 전혀 무관하게 오로지 과학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분야이다. '세상이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다', '성경은 사실이다' 이런 것과는 좀 성격이 다르다.

이게 제대로 진행됐다면.. 세상 학계에서도 "난 무신론자여서 성경이니 신이니 그딴 건 모르고 믿지도 않음.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지층을 관찰하고 물리 법칙을 생각해 보니 우주와 지구의 나이는 1만 년 이내로 보인다" 이렇게 주장하는 과학자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과연 그러한가? 창조 과학이 성경과 과학 중 하나라도 제대로 잡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무척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로서는 젊은 우주/지구에 대한 일말의 증거가 있다면 그건 아담 이래로 재창조된 현 세상의 연대기가 젊다는 과학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 good luck~! 우주 배경 복사나 방사선 연대 측정법의 허를 찌르면서 부디 과학계에 좋은 기여를 하길 바란다. 무슨 지구 온난화 허구설, 지구 평평 같은 이상한 유사과학 음모론으로 치부되지 말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6/04 19:35 2021/06/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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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받은 첫 순간에 대한 기억

구원받은 첫 순간을 기억하는지 여부는 그 사람의 현재 실질적인 구원 여부와 아무 상관 없으며, 전혀 중요하지 않다. 모 교단· 교파에서는 저 날짜를 챙기는 걸 굉장히 강조하는 것 같은데.. 그다지 영양가가 없는 관행이다.  성경엔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같은 말씀이 적혀 있을 뿐이다.

좀 바보 같은 예이지만.. 본인은 시내버스를 타고 멍하니 있다가 "내가 이 버스를 탈 때 카드를 찍었나? 찍었던 순간이 기억이 안 나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 버스에 계속해서 탑승해 있기 위해서 내가 처음에 카드를 찍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내가 만약 카드를 찍지 않고 무단으로 쓰윽 들어갔다면 애초에 기사 아저씨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무임승차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처럼 한번 받은 구원은 내 기억이나 언행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 쪽에서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든든하게 유지된다.
본인도 철도 안에서 거듭난 날짜야 기억하지만, 내 인생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때는 너무 어린 시절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10대 중반, 중2~중3 사이의 기간에 언제부턴가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라는 개념을 어렴풋이 받아들였고, 죽으면 하늘나라 간다는 확신이 생겼을 뿐이다. 구체적인 날짜는 불명이다.

정확하게 언제 구원 받았는지는 알면 더 좋지만, 몰라도 지금 신앙생활 하는 데 아무 지장 없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중요한 법이다. 정 알쏭달쏭하고 모르겠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예수님 영접을 정식으로 다시 하면 그만이다.

2. 구원 확인 질문

어떤 사람이 구원받으면 영적 신분이 크게 바뀌지만 당장 외관상으로는 별로 달라지는 게 없다. 그 사람의 기분이나 성품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으며, 하루아침에 더 큰 믿음이 생겨서 곧장 성경 말씀을 모두 지키며 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 경험상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최소한 구원 확인 질문을 불쾌해하지는 않는 게 상식이고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심각하게 무례한 태도로 질문받은 게 아닌 한 말이다.

우리나라의 문화 정서가 서양 문화권에 비해 "뭐야, 지금 날 의심하는 거예요?" 감정이 더 강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뭔가를 기초적인 것부터 꼼꼼하게 확인하고 따지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일일이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같은 말을 하는 걸 남사스러워한다.

하지만 안 그래도 사람의 구원 여부는 행실만으로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데.. 단순 구원 확인은 무슨 육신을 죽이고 헌신과 섬김을 실천하라는 어려운 명령이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색출해서 잡아 가두거나 죽이겠다는 상황도 아니다. "네, 저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았고 지금 죽으면 바로 하늘나라 갈 확신이 있습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가볍게 대답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거나 부끄럽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예수쟁이라면 그런 질문을 받았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마침 질문 잘 하셨습니다"와 함께 자기 구원을 간증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아니.. 이상적인 경우라면 남이 그런 질문을 할 일 자체가 없는 게 제일 좋다. 옆에서 행동을 보기만 해도 쟤는 정말 구원받은 크리스천이구나.. 싶은 것 말이다.

그저 단순히 "니예 니예" 친절하고 인상 좋은 차원이 아니다. 그 정도는 꽃뱀 제비 사기꾼이라도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차원을 넘어서 어렵고 힘들 때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고,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느낌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구원을 받지도 못한 채로 그냥 인맥 관리와 사교를 위해 습관적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 그것도 각종 직분까지 받아서 수행하는 사람이 정말 숱하게 많을 것이다.

3. 양자됨, 입양

기독교에서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가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에게 죄를 용서받고, 죽어서 내세에 가는 장소가 바뀐다. 믿음에 대해서는 두 달 전에 썼던 글에서도 심도 있게 다룬 바 있다.

이것을 좀 더 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영적 신분이 바뀐다고 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데(다들 성경에 나와 있는 지위임), 한편으로 신약의 바울 서신들을 찾아보면 하나님의 가문에 입양되어 양자가 된다는 말도 있다. (롬 8:15,23; 갈 4:5; 엡 1:4-5)

구약 경륜 시절의 유대인이 뭔가 혈통적이고 선천적인 요소가 가미된 지위라면, 구원받은 성도들의 집합인 신약 교회는 양자이고 식물로 치면 본줄기에 접붙여진.. 뭔가 후천적이고 영적이고 2차적인 지위이다. (롬 11:17, 24)
컴퓨터에다 비유하자면, 전자가 마치 매킨토시처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일체형이라면 후자는 소프트웨어 지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약 교회가 유대인보다 뭔가 열등한 게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이제 유대인을 완전히 버리고 끝장 내고 교회가 유대인을 대체하게 된 것도 아니다. 이건 그냥 시대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다양한 세상 경영 방식을 허락하고 도입하신 것일 뿐이다.

친자식은 너무 마음에 안 들면 부모가 법적으로 그 녀석과 연을 끊고 족보에서 파내고 상속도 안 물려주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인가 거기 민법에 따르면, 양자는 한번 친자로 입양한 이상 파양을 할 수 없으며, 상속을 무조건 줘야 한다고 한다. 그게 성경의 원리가 담긴 법이라고 울 교회 목사님께서 줄곧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미국이 법이 그런지는 내가 딱히 확인을 못 해 봤다.

양자의 권리를 진짜 혈통상의 친자녀와 마찬가지로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또 가슴으로 낳아서 일부러 데려온 특별한 아이를 좀 수틀린다고 제멋대로 도로 파양하고 상속을 안 주는 것 역시 도의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신약 교회 성도들은 옛날 사람들이 꿈에도 생각할 수 없던 쉬운 방법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옛날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복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유대인들도 회복되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수많은 찬송가들이 구원을 노래하면서 “나 구원 받았네 I am saved”라는 가사를 담고 있는데.. 그와 달리 “I am adopted 양자가 됐네, 입양되었네”라는 이색적인 찬양도 있다. 작사 작곡자는 Ron Hamilton. Rejoice in the Lord (God never moves without purpose or plan)의 작곡자이기도 한데, I am adopted 역시 나름 성경을 묵상하고서 지은 곡인 것 같다.
I'm adopted, hallelujah! I finally belong. I've got a brand new family overflowing with love.”

Notes:

  • 예수님은 죄에 대한 대속 헌물이라는 명목으로는 그분 자신이 어린양이라고 묘사된다(창 22:8, 계 5:6). 그러나 성도들의 인도자 명목으로는 목자(요 10:11) 또는 목자장(벧전 5:4), 이때는 반대로 우리 성도들이 어린양에 비유된다.
  • 영화 <친구>에서는 잘 알다시피 “아부지 뭐 하시노? / 그래 이 빌어먹을 놈아. 너거 아부지는 죽은 사람 염해 가면서 니 공부시키는데 니는 30점을 못 맞나?” 그런 갈굼 대사가 나온다. 그런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크리스천들의 잘못된 행실로 인해 비슷한 논리와 방식으로 모독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롬 2:24)
  • 자기가 만들지도 않은 생판 남의 아이를 굳이 입양해서 키우는 건 정말 숭고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전쟁 고아 명목으로, 또 전쟁 이후에도 한동안 미국에 고아를 얼마나 많이 수출했었나 모른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은 정말 천하에 반미 할 자격이 없는 나라이다.

4. 믿지 않는 죄와 다른 악행죄의 관계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 구원 교리에 따르면 인간이 구원받지 못하고 죽는 것, 자기 죄 가운데 죽는 것, 죽어서 혼이 지옥에 가는 것, 먼 훗날 백보좌 심판 후에 불못에 던져지는 것.. 이건 다들 필요충분조건 동치이고 동일 상황을 말한다.

마치 선형대수학에서 역행렬이 존재하는 n*n 정사각행렬 A에 대해서 “Ax=O에 오로지 영벡터 trivial solution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행렬식의 값이 0이 아니다”, “rank가 자신의 크기와 같은 n이다” 등 결국 그 말이 그 말인 동일한 진술이 여럿 존재하는데, 그와 비슷한 개념이다. 아이고, 왜 하필 저런 엄한 분야가 비유 대상으로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만..

인간을 지옥으로 보내는 유일한 죄는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거절한 죄, 믿지 않은 죄뿐이다. 특별히 무슨 악행을 대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안 하는 것(OMIT), 조치를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죄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요 3:36에서 “아들을 믿지 않는 자”가 “아들을 순종하지 않는 자”로 바뀐 것은.. 언뜻 보기에 그 말이 그 말 같아도 교리적으로 굉장히 해롭고 위험하게 변개된 것이다. 요일 5:10을 같이 보면 이런 불신자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옥 정죄를 받은 사람들이 불신죄 단 하나만으로 완전 천편일률적으로 다뤄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라는 실드가 없는 사람들은 불신 자체 말고 자기의 행위로 지었던(COMMIT) 다른 죄들이 모조리 드러나며 그걸 근거로 심판도 받는다. 계 20:12는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그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어차피 구원은 물 건너갔으니까 나머지 세부 내역들은 볼 것도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구원받은 사람들 사이에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의 차별이 있듯이, 그렇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에 빠진 사람들 사이에도 형벌의 등급에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역은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말이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믿지 않은 죄와 나머지 통상적인 악행죄의 관계는 뭐랄까..
군대에서 탈영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난 뒤에도 탈영병 복귀 명령에 대한 항명죄를 빌미로 공소시효를 몇 년 더 연장하는 것과 비슷한 관계 같다.
FPS에서 로켓의 직타 대미지와 스플래시 대미지의 관계와도 비슷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0/03/27 08:35 2020/03/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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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계의 파편화

본인은 지금까지 많은 글들을 통해 밝혔던 바와 같이, 조금 마이너하고 특수한 교회를 다니고 있다.

  •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믿고 주장한다. 이게 단순히 가장 우수한 번역본인 정도를 넘어서 무오한 최종 권위라고 생각한다. 영어라는 언어에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고 믿는다.
  • 재침례: 세례를 부정하고(특히 유아 세례는 더욱) 침례교를 표방하지만, 교단을 형성하고 있는 여느 침례교는 아니다. 그렇다고 KAC인지 뭔지, 속세를 떠나 사는 듯한 아나뱁티스트 같은 교단/단체하고도 아무 관계 없다.
  • 분리· 근본주의: 여느 기성 교회들보다는 옛날 스타일을 표방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는 무조건 긴 치마, 강단에 설 때는 무조건 정장, "형제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무조건 목사님이라고".. 그 정도까지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하나 더.. 본인의 반공 우파 성향은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으며, 신앙 노선과는 별개이고 무관함을 밝힌다. 구국 애국 운동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개인이 각자 따로 할 일이지, 지역 교회가 교회 간판을 걸고서 할 일이 아니다.
이건 심지어 일제 시대에 크리스천이 3· 1 운동에 참가할지의 여부를 판단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잣대이다.

본인은 좌독은 국가관 역사관 말고 다른 분야의 교리나 행실이 그나마 건전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일말의 일관성과 논리와 신념이 있기라도 하면.. 동의는 안 해도 인정은 해 주는 등급이다. 나와 간극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만큼이나 한 분야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 정도로 간주한다. 그게 아니면 단순 반골기질 쩌는 여느 철없고 분별력 부족한 육신적인 신자, 구원받고도 술· 담배 못 끊고 있는 신자 급일 뿐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만날 때나 형제라고 대하고 존중해 주지, 전쟁터 내지 빨갱이들 폭동을 진압하는 내전 현장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내가 살기 위해 그에게 부득이하게 총질을 할 수밖에 없다. 마치, "나는 인간으로서 개인적으로는 피고를 동정하지만 나의 직분인 판사로서는 법에 따라 피고에게 합당한 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처럼 말이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튼 정치 얘기는 그렇다 치고 종교 분야만으로 관점을 좁히더라도,
본인의 신앙 노선은 참 안타깝게도 대외적으로 긍정적인 게 별로 없다. 본인도 이에 대해 아주 잘 인지하고 있다.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가 이단시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세대주의, 영혼몸 삼분법, 구원의 영원한 보장, 재창조 간극까지 어쩜 이렇게 인지도가 좋지 않은지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놀랄 놀 짜였다. 내가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였다.

기독교계는 왜 이렇게 교리 교파가 찢어져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왜 지금과 같은 노선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성경이라는 책은 어디까지가 그냥 묻지 말고 일단 믿어야 하는 공리, 즉, 합법적으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에 속하고 어디부터가 그로부터 파생되는 논리와 일관성인지..
하나님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두 속성이나 진술을 어떤 원칙과 체계에 따라 종합하고 조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따지면서 봐야 한다. 본인의 신앙관은 이 원칙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개나 소나 하나님에 대해서 한 면모를 적당히 좋게만 포장해서 말하면 전부 "와 그런가 보다" 하고 한쪽에 자기 꿀리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예정과 섭리를 더 좋아하는 파벌, 선행을 더 좋아하는 파벌, 거룩과 공의를 좋아하는 파벌, 힐링힐링을 더 좋아하는 파벌 등등으로 말이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가 벌어진다. 기독교계가 온통 파편화돼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하자면.. 기독교계는 절대로 깔끔 깨끗한 동네가 아니다.
일반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성경과 교리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신학계까지도 말이다.

수학· 과학 같은 곳은 진짜 닥치고 머리 좋은 사람이 이기는 곳이고, 승부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스포츠로 치면 양궁 같은 곳이다. 화살이 과녁 중심에서 시각적으로 얼마나 가까이 꽂혔는지만을 판정하는 일에 개인 주관이나 믿음이나 신념이나 양심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선수 간의 몸싸움· 반칙이나 판정 조작도 있을 수 없다.

가~끔 뭐 자기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네, 4색 정리를 더 간단하게 증명했네, 리만 가설이나 P/NP 문제를 증명· 반증했네, 영구기관을 발명했네, 지구가 평면이네 등의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긴 하지만 다 걸러진다. 거기는 철저한 관찰과 상호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류 다수의 주장이 대체로 옳다고 생각하면 안전하다.

누군가가 실적과 돈 때문에 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논문을 표절하고 연구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 적발된다. 사람이 아무리 악하고 마음 속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한다고 해도, 수학적인 엄밀함까지 판별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수학 말고 관찰이 수반되는 과학 쪽도.. 지금이 옛날처럼 과학과 철학의 경계가 없고 플로지스톤이나 자연발생설이 지지받던 시절은 아니니, 지금까지의 물리 법칙이나 과학 발견이 예측 가능한 미래에 뿌리째 싹 뒤집힐 일은.. 0은 아니어도 거~의 없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악의적인 원인 때문은 아니다.

허나, 신학 쪽은 사정이 저렇지 않다.
신앙은 주관적이고 증명 불가능한 믿음을 수반하며, 성경 역시 무슨 수학· 과학 논문처럼 접근 가능한 책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추잡한 본성이 똥고집까지 가미되어서 자기가 꼴리는 대로 믿으면서 그야말로 별 희한한 이단 교리, 궤변, 온갖 지적 사기들이 마음껏 횡행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기는 역설적으로 다수 주류만 따른다고 해서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바르게 믿고 행하던 교회나 신학교조차도 다수 주류가 되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순수성을 잃고 배도하고 변질되고 타락한다. 그러니 뜻있는 사람들 일부가 분리되어 나와서 자기 조직을 또 세우고 그러다 거기마저도 타락하여 분리가 발생한다.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이 우물을 파고 또 파듯이 말이다.

이게 이 바닥이 흘러가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 큰 그림, 패턴을 모르니까 성경도 그냥 여느 고전 텍스트처럼 학자들이 알아서 더 나은 번역을 만들어 주고 잘 개정해 주는 줄로만 알고.. 사람들이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에 대해서 이상한 오해를 하고 이단시하는 것이다.

이 바닥이 정말 X나게 더럽고 지저분하고 파편화된 바닥인 건 사실이다. 창조 연대기에 대해서도, 사형 제도에 대해서도.. 뭐 하나 일치하는 걸 찾기가 몹시 어렵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여기가 조화가 아닌 생화가 있고 정말 거물급 보물이 있기 때문에 벌레들이 들끓는 것이다. 골치아프고 진입로가 더럽다고 해서 진리를 찾는 걸 포기해 버리고 때려치우면, 그것도 게임에서 지는 거다.

뭐, 다수 주류만 따라가면 최소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진짜 정신나간 막장 사이비 정도는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수준이 딱 거기서 끝이다. 그냥 철도교 믿는 수준의 종교 생활까지만 가능하지, 최상의 금덩어리(?)까지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대한 성경으로 성경을 풀이하고, 교리 간에 논리적으로 연결 고리가 생기는지, 나한테 당장 육신적인 탐욕 대신 영적 만족을 채워 주는지, 모든 사람이 나처럼 믿고 행했을 때 교회나 사회가 제대로 유지되겠는지 이런 것들을 따지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을 공부하면.. 정말 어지간해서는 이상한 결론으로 빠질 일이 없다. 어린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우면서도, 한편으로 박사에 교수라도 삼천포로 훅 갈 수 있는 게 이 바닥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그러니 기독교 교리 논쟁을 할 때만큼은 "니만 맞고 나머지 많은 신자들은 다 틀렸다는 거냐?" 이런 소리는 좀 안 나왔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듣기 싫은 소리이다. 그럼 애초에 예수는 왜 믿기 시작했는지 난 그것부터가 너무 궁금하다. 불신자들도 완전히 똑같은 질문과 불평을 하는데 말이다.
난 이런 상황을 정말 많이 겪어 봤다. 이 논리가 기독교 vs 비기독교뿐만 아니라 기독교계 내부에서도 동일하게 "재귀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이 홈페이지의 주인장인 내가 종교관이 완강하고 고집 세다고 느껴진다면.. 99%는 그렇게 느끼는 그 당사자도 완전히 동급으로 완강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다. 이는 마치 작용-반작용 법칙과도 같다.
그 사람도 남이 말하는 근거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얘기만 밀어붙이고 싶은 상태이다. 그리고 성경 구절이나 논리로 반박을 못 하면 그 다음엔 말투가 어떻네 교만하네 고집이 세네 사랑이 없네 하면서 주변의 태도나 인성 운운하며 다른 트집을 잡기 시작하는 게 사람의 심성이다. 그런 자세로는 남과 논쟁을 하고 남을 설득할 수 없다.

학교에서 애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쳐서 무신론 우생학을 주입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대안이라는 그 좋은 창조 연대기에 대한 견해가 자기들끼리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나 노아의 방주 흔적, 그랜드 캐니언을 찾아 다니기 전에 성경이 말하는 이전 세상 개념부터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경에 대해 더 잘 알고 성경을 성경으로 바르게 풀이하는 안목을 기르고,
성경의 난해 구절들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라고 신학을 하는 건데..
성경 따로 신학 따로는 마치 믿음 따로 행위 따로만큼이나 서로 굉장히 안 어울리는 모습이다.

* 추신: 내부 분열

이렇게 양심과 신념상의 이유로 인해 대세를 따르지 않는 좁은 길 마이너한 진영이 생기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 치는데, 그럼 마이너한 걸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잘 뭉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안 그래도 작고 좁은 진영 내부에서도 별 희한한 걸 갖고 반목이 발생해서 더 갈라지고 찢어지곤 한다.

이건 굳이 기독교계의 킹 제임스 진영만 그런 게 아니다. 안 그래도 1%도 채 안 되는 세벌식 글자판 진영이라든가, 정치 이념 쪽의 우파 애국 보수 진영이라든가.. 내가 관심을 가져 본 마이너한 진영들에서 한 치의 예외 없이 발견되더라.

교회 내에서 성경 해석의 차이 때문에 갈라지는 게 아니라, 이거 뭐 영어나 히브리어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한국어 호칭 사용이 자기 스타일이 아니고 마음에 안 든다고.. 안 그래도 좁은 진영에서 이 정도 퀄리티를 갖춘 교회를 애써 찾아왔다가 저게 그렇게 휙 돌아서고 떠날 정도의 사유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완전히 세상적인 이념 진영인 유명 우파 논객들 간의 팀킬 싸움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본인은 의사는 환자를 강압적이고 거칠게 대하더라도 돌팔이가 아니라 환자 치료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방망이 깎던 노인" 스타일을 존경하고 인정한다. 기본적인 말투가 싸가지 없고 행실이 거칠더라도, 그 껄렁껄렁한 전투력과 팩트폭력이 좌빨들을 까고 공격할 때 일관되게 발휘만 된다면 그 실력을 존중해 준다. 박 근혜, 황 교안 같은 인물에 대한 생각이나 땅굴· 5 18에 대한 생각이 나와 살짝 다르더라도 그건 아무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본인처럼 판단하지는 않던가 보다.

난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같은 편인데 우리 좀 싸우지 맙시다"만 붙들고 있을 생각도 없다. 내부 분열은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면모도 있다.
얘들은 개돼지 좀비 레밍 들쥐가 아니고, 교활한 기회주의 웰빙 타입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자기 개성과 고집이 아주 분명하고 뚜렷한 사람들인데 어찌 좌빨 홍위병 같은 급의 무식한 개떼 단결과 결집이 가능하겠는가? 한 단점이 없는 대신 다른 쪽에 한계와 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반목과 갈등이 생겨서 평소에는 각자 찢어져서 제 갈 길 가더라도, 그래도 더 큰 공통의 적을 맞닥뜨리게 됐을 때만은 잠시 동안이라도 같이 손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에게 너무 많이 바라다가 실망하지도 말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12 08:35 2019/12/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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