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특징
중앙(55), 중부내륙(45), 혹은 종축에 비해 인지도가 훨씬 떨어져서 이름도 기억 안 나는 30, 40 같은 횡축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국내 고속도로의 원조 대부인 경부 고속도로를 달려 보면.. 경부의 압도적인 특징이 곧바로 느껴진다.
(1) 일단, 차로가 많고 엄~청 넓다. 어지간한 구간들은 다 8차로이고 서울 부근에서는 심지어 10차로까지 있다. 그러니 파란 차선 버스 전용 차로도 볼 수 있다.
다른 고속도로들은 길가나 나들목 주변, 휴게소 주변이 오지 깡촌인 편인데 경부의 수도권 구간은 거기까지도 온통 건물이 지어졌고 방음벽이 쳐져 있다. 특히 수원 IC나 죽전 휴게소 주변은 뭐.. 도시 고속화도로이지, 고속도로의 주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2) 그리고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경부는 거리 대비 놀라울 정도로 고가, 터널이 적고 평지 위주이다. 지금처럼 무식하게 산을 직선으로 뚫을 정도의 넉넉한 기술과 자금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터널은 영동-옥천-대전 사이에 집중되어 있고 그나마 경상도에는 전체를 통틀어 어째 겨우 150미터 남짓한 길이의 경주 터널 딱 하나가 있을 뿐이다.
고속도로보다 훨씬 더 먼저 만들어진 경부선 철도만 해도 부산이나 구미 일대에 터널이 종종 등장한다. 후대에 선형 개량하면서 만든 터널 말고, 오리지널 단선 시절에도 남성현, 왜관 터널 같은 게 있었다(지금은 쓰이지 않고 관광지, 와인 창고 등으로 개조).
경부 고속도로는 그것보다도 터널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만들었던 터널 중에 엄청나게 고생하며 힘들게 만들었던 놈이 바로 당재 터널이며, 걔는 30년 남짓 쓰이다가 해당 구간 자체가 경부 고속도로에서 은퇴하게 됐다.
(3) 경부 고속도로의 개통 이래로 40년 가까이 오리지널 4차로였던 영천-경주-울산 구간이 지난 2010년대 말에야 6차로로 확장됐고, 경부에서 2021년 현재 최후까지 4차로로 남아 있는 도저히 경부 같지 않은 구간은 옥천 주변이 유일하다.
그나마 평지 구간은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2003년경에 고가와 터널로 대체됐던 구간은 사실상 반영구적으로 4차로로 봉인되어 남을 것 같다. 오죽했으면 중부 고속도로(35)도 고가를 확장할 수는 없어서 옆에 제2중부(37)를 또 만들었으니 말이다.
옥천에는 경부 고속도로 옛 구간, 그리고 경부 고속철도도 대전 시내 구간이 완공되기 전에 쓰였던 연결선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교통 관련 레거시들이 명물이라고 홍보해서 철덕 교통덕 관광을 유도해도 될 것 같은데..
한편, 경주 터널도 처음에는 2차로짜리 터널 두 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그건 이제 상행만이 독점해서 사용한다. 하행은 새로 뚫은 3차로짜리 터널이 담당하게 됐다.
상행과 하행 터널이 건설 시기가 거의 5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는 게 인상적이다. 그리고 상행은 마지막 차로 하나가 사실상 남기 때문에 그건 실선을 그어 놓고 갓길로 활용한다고 한다.
2. 고속도로의 노래
고속도로의 노래라는 게 있다. 요즘 세대들이 알 리가 없겠지만 사실은 본인조차도 당대에 들어 본 적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대한뉴스 경부 고속도로 준공 소식에서 흘러나오던 BGM이 바로 이것이다. (☞ 링크) “아침 햇볕 신선한 푸른 하늘 ... 천리를 주름잡는 고속도로”
그런데 이게 동요 가을길(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 가을길은 비단길 ☞ 링크)과 미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 처음에 박자는 다르지만 "미미미 미파솔" vs "미미미파 솔솔솔" 약간 비슷한 멜로디로 올라감.
- 높은음/낮은음 합창이 꾸며져 있고 파트별로 "랄랄랄라라" 나뉘는 부분이 있음.
- 인도와 차도라는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길을 소재로 하고 있음.
이런 점에서 혹시 동일 작곡자의 곡이 아닌가 의문도 들었지만 그렇지는 않네.
물론 전자는 그냥 자연 환경에 대한 서정적인 노래인 반면, 그야말로 조국 근대화와 번영 프로파간다가 노골적으로 쫙~~ 깔렸다는 차이가 있다. =_=;;;
그래서 "가을길"은 초등학교 저학년은 아니고 아마 라떼 기준 내 기억으로 4학년 이상의 중-고학년 수준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화음 합창이라는 게 이렇다는 것을 거의 처음으로 알려 준 굉장히 예쁜 노래였다고 기억에 남아 있다.
뭐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 하나 겨우 스스로 만들어 낸 거 갖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난리를 치던 동안..
천조국은 고속도로야 이미 몇십 년 전에 전국에 거미줄처럼 깔아 놔서 이름 없이 번호로 분류해야 할 지경이며 최초가 뭔지는 기억도 안 나는 상태였다. 그리고 저 때는 아예 인간을 달로 보낸 걸 경축했더라만..
그래도 산업화 근대화라는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3. 사진
캬~ 천하의 경부 고속도로가 꼴랑 4차로에 중앙분리대가 없거나 풀밭이었다니..
서울 톨게이트가 저렇게 차로 수가 적고 좁았다니..
자동차들 연식을 보면 80년대도 아니고 확실히 70년대이긴 한데 사진이 컬러라니..!!
여러 모로 멋지고 진귀한 기록들이다. ^^;; 원판은 흑백인데 인위로 상상해서 색을 입힌 건 아니기를 바란다.
4. 순직자의 후손, 한국 도로 공사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경부 고속도로 건설 중 순직자 77명 중에..
후손이 선친의 뜻을 이으려고 도로공사에 취업한 사례도 있었구나! (김 기일 씨. 한국 도로공사 1989~2021 재직 후 부장으로 정년퇴직) 게다가, 유공자 자녀라는 특혜 같은 것도 없이 평범하게 공채 뚫고 들어갔던 모양이다. (☞ 관련 링크)
철도 쪽에야 걸출한 철도 명문 가문을 개척한 김 재현 기관사의 후손들이 있다. 30도 못 된 나이로 6· 25 전쟁 때 대전 부근에서 순직했지만(윌리엄 딘 소장 구출 특공대를 수송하기 위해 열차 운전) 현재 외손자 홍 성표 씨까지 코레일 소속 기관사가 돼 있으니 말이다.
그것처럼 고속도로 분야에 비슷한 사연을 지닌 후예가 있(었)다는 것 역시 흥미롭다.
도로공사는 국내의 모든 고속도로들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국도나 지방도처럼 전국의 다른 모든 도로들은 그 도로가 지나는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반면, 고속도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경부 고속도로만 해도 법적으로는 양재 IC 이남만이 한국 도로공사에서 관리하는 최대 시속 100~110짜리 진짜 고속도로이다. 그 이북은 그냥 강변북로 같은 시속 80짜리 서울 시내 관할의 자동차 전용 도로일 뿐이다. 정식 명칭은 '경부 간선 도로'.
단지, 폐쇄식 톨게이트가 있는 곳과 버스 전용 차로가 적용되는 곳이 법적인 고속도로의 시종점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운전자들에게 혼동의 여지가 있다. 양재 IC는 1987년 11월, 지금의 서울 톨게이트가 성남 궁내동에 세워지기 전에 최초의 서울 톨게이트가 있던 곳이기는 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