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 브레넬리 (스위스 민요? ☞ 듣기)
본인은 음악 취향이 굉장히 단순한 편이다. 뭔가 꽂혀서 좋아하는 노래 내지 음악은 찬송가/CCM 아니면 Looking for you 철도 BGM 이 두 장르에 대부분이 쏠려 있다. 여기에 속하지 않는 동요, 가곡, 방송 BGM 중에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드물다.
그런데 이런 노래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멜로디가 특이하게 아름답고 우아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것 중 하나는 일명 ‘오 브레넬리’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그 노래이다. 세상 어느 노래가 후렴이 저런 발랄한 “야~호, 오 트랄랄라~~” 형태이겠는가..;;
원래 스위스 민요라고 하는데 완전히 요들송 스타일은 아닌 거 같고, 결정적으로 정작 그 본가에서는 저 노래가 별 존재감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멜로디에 비해 가사는 출처가 불명확하고 정말 별 것 없어서 각 나라별로 로컬라이즈된 가사 바리에이션이 많다. 심지어 일본어 가사가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옛날 8비트 MSX 시절에 “요술나무”라는 게임이 이 노래를 BGM으로 썼었다.
그러고 보니 “남극탐험”의 BGM은 스케이터 왈츠이고, “덱스더(테그저)”는 게임 오버 때 월광 소나타..
이렇듯, 1980년대의 일본 게임들은 자작곡 대신 서양 클래식 음악을 BGM으로 쓴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로 서양 문물을 온몸으로 갈망하고 탐닉했던 나라이니 저런 것도 수긍이 간다.
1980년대 제미니 자동차 CF에서도 라데츠키 행진곡과 ‘오 샹들리제’ 같은 곡이 흘러나왔고, 배틀로얄 병맛 영화에서도 방송 때 뜬금없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나 베르디 레퀴엠(!!) 같은 클래식 BGM이 연주돼 나왔었다.;; 그래, 일본은 그런 걸 좋아하는 나라이다~!
2. 모든 분수가 흐르면 (Wenn alle Br[ue]nnlein fließen 독일 민요 ☞ 듣기)
본인은 1990년대 중반쯤에 고려 페인트 CF를 TV에서 본방으로 본 이래로, 25년이 넘게 저거 BGM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 CF는 고려 페인트 특유의 도미노 CF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었는데.. 뭔가 화사함,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BGM 노래의 정체를 오랫동안 알 길이 없었다.
수 년 뒤에 독일어를 접하면서 저 노래도 처음에 '데얼, 베얼' 이러고 끝에 '엔, 젠' 거리길래.. 가사가 독일어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
그랬는데.. 유튜브 동영상에 올라온 댓글을 통해 드디어 곡명을 알게 됐다. 이제 속이 다 후련하다~!!!
검색을 해 보니 악보도 잔뜩 튀어나온다. 악보를 읽어보니 내가 기억하는 그 멜로디가 맞다.
하지만 저 CF와 같은 Ab 장조 악보는 하나도 없다. 악보들은 저것보다는 조가 더 낮다. 아마 저 음원은 빈/리베라 같은 소년 합창단에서 부른 게 아닐까 생각된다.
고려 페인트는 한 90년 92년? 그때부터 저런 도미노 쓰러뜨리기 시리즈 CF를 선보였다.
그 당시의 신문 보도에 따르면.. 최소한 첫 작품은 1만 개가 넘는 도미노 블록을 직접 세팅하고 실제로 원큐에 쓰러뜨리면서 CF를 찍었다고 한다. 즉, CG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에 도미노로 실사 사진까지 재연한 건 아무래도 CG였지 싶다.
끝으로, fließen이라는 동사를 보니 이 미륵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ßt)가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독일어라 하니까 선천적 얼간이들에서 작가가 어느 취객으로부터 히틀러 연설을 들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St[ae]rke liegt nicht in der Verteidigung sondern im Angriff (국력은 방어가 아니라 공격으로부터 나온다) 이거 말이다. ㅋㅋㅋㅋ
일개 웹툰이 이 문구를 국내에 많이 퍼뜨려 줬었다.
3. 손에 손 잡고 (☞ 듣기)
그리고 1988년 우리나라 서울 올림픽의 주제가였던 이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약 빤 노래를 상영하면서 올림픽을 치른 적이 있었단 말인가..??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이 정도면 국뽕에 취해도 합법일 것 같다.
이 노래는 작사자와 작곡자가 서로 다른 외국인이고, 한국어 가사를 작사한 사람은 또 따로 있다(서울대 미학과 김 문환 교수.. 지금은 이미 작고). 노래를 부른 사람은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교포였다. 스케일이 여러 모로 국제적이다.
심지어 영어 노래를 부른 남자는 따로 있었다고 작곡자인 모로더가 2013년엔가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기도 했는데.. 대회가 끝난 지 워낙 긴 시간이 지난 뒤였으니 별다른 파장은 없었다.
내가 바로 떠오르는 비슷한 사례는 영화 아저씨에서 "I got it. I don't know. He looks different" 같은 람로완의 짤막한 영어 대사를 말한 사람도 저 배우 본인이 아니라 별도의 성우라는 것 정도이다. 게다가 "손에 손 잡고"의 경우, 내가 느끼기엔 영어 목소리도 한국어 목소리와 음색이 거의 차이가 안 나는데 말이다.
영어권에서 오래 산 교포면 영어도 잘 할 텐데 왜 굳이 다른 성우를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현대 자동차 포니를 설계한 디자이너, 그리고 "손에 손 잡고"의 작곡자는 모두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고, 의도적으로 세계화 국제화를 염두에 둔 작품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작곡자 조르지오 모로더는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선율을 만들기 위해 한국 민요와 유행가들을 수백, 수천 곡 들으면서 연구했다고 한다. 나는 Looking for you만 3천 번을 들었는데 저런 프로 거장들은 이보다 더한 노력을 한 셈이다.
단, 일반인이 "손에 손 잡고"를 노래방에서 부르려면 음원의 원래 조인 Eb로는 어림도 없으니 거의 반토막에 가까운 A조, Bb조 급으로 조를 낮춰야 할 것이다.
이 정도면 느낌이 완전히 다른 노래가 돼 버리겠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조로 불렀다가는 후렴에서 무려 높은 Bb 음과 맞닥뜨리게 될 테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올림픽과 엑스포 모두 너무 고퀄의 선례를 남겨 버렸다. 원래 올림픽은 개최국 해당 지역의 지방 정부가 관여해서 생각보다 조촐하게 치르는 편이었는데.. 갈수록 지방 정부가 아니라 중앙 정부의 개입 비중이 커지고 개회· 폐회 행사도 거창해졌다.
미국이 "1960년대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라"에 미쳐 있었다면, 우리나라는 "1980년대 안으로 올림픽을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하라" 이게 각자 그 여건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역작이었던 듯하다.
서울 올림픽은 9~10월 가을에 개최된 마지막 올림픽이다. 그 뒤의 올림픽들은 '하계'라는 취지에 더 맞게 지금처럼 7~8월 여름에 개최되고 있는데.. 운동 경기가 열리기엔 이때는 너무 덥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리고 한편으로 서울 올림픽은 폐막 직후에 같은 도시에서 장애인 올림픽(패럴림픽)이 곧장 개최되는 첫 선례를 남긴 대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호돌이에 비해 곰두리는 존재감이 훨씬 없어 보이긴 한다.;;
4. 기억에 남는 작곡자들
(1) 찬송가 "어서 돌아오오"와 "눈을 들어 하늘 보라"(믿는 자여! 어이할꼬~~)에서 멜로디의 작곡자.
"지금까지 지내 온 것"에다 그.. "복의 근원 강림하사"(D장조) 멜로디 말고, 뭔가 흥겨운 느낌이 나는 '솔솔 도도 레도레 미~도~' 그 멜로디의 작곡자.
동요에서는 "송이송이 눈꽃송이", "펄펄 눈이 옵니다", "모두 모두 자란다",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어머님 은혜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멜로디의 작곡자.
그 엄청난 주인공은 박 재훈(1922-2021)이라는 목사 겸 작곡가이다. 이분은 지난 8월 초에 캐나다에서 소천했다. (☞ 관련 소식)
세상 언론에서는 이분을 동요 작곡자라고 소개한 반면, 기독교계 언론에서는 찬송가 작곡자라고 소개했다.
이분은 우리나라가 해방된 뒤에는 왜색 없이 우리 아이들을 위한 동요가 있어야 된다면서, 주변에서 동시집을 구해 와서 마구 곡을 붙여 발표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경의 사실상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서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으로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셔요"가 떠오른다고 회고했었다.
본인은 저 노래는 본인의 어린 시절에 동네마다 있었던 이동식 목마 트럭의 BGM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에서 접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2)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MBC "경찰청 사람들"의 오프닝 주제곡을 작곡한 사람이..
"여명의 눈동자"의 그 오프닝 주제곡도 작곡했었구나..! 최 경식.. 세상은 넓고 음악 쪽도 천재가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국민의례와 의전 BGM을 작곡한 이 교숙, 그리고 반도체 박사로서 영상 음악 작곡 쪽도 미친 존재감을 발휘했던 안 지홍(M, 제3~5공화국, 베스트극장 등)과 더불어 잊을 수 없는 분 같다.
(3) MBC 창작 동요제의 1983년 첫 대회에서 금상 우승을 차지한 작품은 잘 아시다시피 '새싹들이다'였는데..
이 곡을 현장에서 불렀던 이 수지 양은 그 뒤 1988년(고1!!), 1994년(대학생), 2002년(성인..)에도 몇 차례 출연해서 이 바닥 대선배로서의 역량을 뽐냈다고 한다. 오오~~
나이가 든 뒤에는 음역이 변했는지 조를 약간 낮춰서 '새싹들이다'를 부르곤 했다. (F장조에서 Eb 장조)
그 뒤에는 결혼해서 애도 낳고 평범하게 살고 있어서 근황이 더 검색되지 않는다. 이 노래를 작곡하고 지도했던 교사도 진작에 정년 퇴임했다.
저분은 1972년생으로, 서울 올림픽 개회식 매스게임에 동원됐던 고등학생들(1987년 고1, 1988년 고2)보다 딱 1년 어린 연배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