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산-마곡: 지하철의 선형을 따라 뒤늦게 형성된 시가지

어떤 도시에 건물과 길이 평범한 직사각형 바둑판이나 방사형이 아니라 부자연스러운 곡선 궤적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면..
그건 지금은 없어진 과거의 철도 폐선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경주 성건동과 황오동 일대의 옛 중앙선 선로 주변이라든가, 서울 홍대 근처의 서교동 예술의 거리가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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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울 지하철 5호선 발산역 인근의 건물 배치는 굉장히 흥미롭다.
얘는 폐선이 아니라.. 아래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지하철의 선로를 피해서 건물을 짓느라 형성된 궤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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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산-마곡 사이, 공항대로 북쪽의 땅은 2010년대 이전까지는 미개발 허허벌판 논밭이었다. 오죽했으면 마곡 역은 멀쩡히 건설됐던 뒤에도 2008년까지 12년을 미개통으로 봉인 당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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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경에 발산-마곡 사이의 풍경은 정말 저랬다. 그 당시에 본인이 직접 답사해서 디카로 찍었던 사진!)

그러니 여기는 고심도 땅굴을 팔 필요 없이 지면을 파헤치는 개착식으로 얕고 저렴하게 만들었으며, 애초에 공항대로라는 도로를 들쑤시지도 않았다. 그냥 옆의 공터를 대신 파헤치는 걸로 끝.. 그래서 마곡 역도 도로를 약간 비껴간 곳에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다음의 송정역부터는 다시 도로 중앙 아래로 들어간다.

그리고 발산 역 주변의 경우, 김포 공항 방면의 엄청난 급커브 때문에 회전반경을 확보하기 위해 선로가 도로 바깥의 벌판(건설 당시에)을 약간 침범하는 것도 있다.
옛날에 지하철 1호선을 처음 만들던 시절에 시청-종각의 엄청난 급커브를 구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가 같이 떠오른다. 부족한 기술과 열악한 여건 하에서 저심도로 주변의 동아일보 사옥의 지하를 건드리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광역전철 일산선(구파발-대화)도 나름 서울 지하철 5호선과 비슷한 시기에 건설되고 개통한 놈이다.
얘는 굳이 비싸게 FM대로 지하로 건설할 필요가 없는 널널한 구간은 아예 지상 고가 형태로 건설해서 약간 지상 지하 롤러코스터처럼 됐다.

그런데 5호선 마곡 역은 지상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 땅이 워낙 널널했으니 주변 공간을 미리 점유하면서 건설비를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티를 내서 만들어졌던 셈이다.
그리고 인근의 발산 역 주변은 “지하철이 먼저 만들어지는 바람에 건물이 지하철을 피해서 건설된” 대단히 특이한 사례로 남게 됐다~!

2. 원형 시가지

우리나라에서 지도상으로 시가지가 확연하게 원형 방사형으로 만들어졌다 싶은 곳이 본인의 기억에 따르면 딱 두 곳 있다. 안산 선부동, 그리고 화성 동탄동 신도시.
전자는 정확하게는 육각형 모양이다. 원의 중앙에는 서해선 전철 선부 역이 지하로 지나며, 지상에는 선부/다이아몬드 광장이 있다.

후자는 완전한 원이 아니고 사실 반원의 크기도 안 되지만.. 그래도 선부동보다 반경이 더 큰 부드러운 원형이다. 원의 중앙에는 반석산이라는 언덕이 있으며, 원의 중심은 아니지만 근처에 경부 고속도로와 고속철 동탄 역이 있다.
저 두 곳 말고 다른 원형 시가지가 또 있는지 궁금하다.

3. 지하철역 바로 근처에 있는 보안 시설

청와대나 군부대처럼 민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보안 시설은 아무래도 시 외곽이나 산기슭 으슥한 곳에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지하철역 바로 옆이나 근처에 그런 보안 시설이 자리잡은 경우가 아주 드물게 존재한다.

그런 경우는 보안 시설이 먼저 있었고 그게 처음 생기던 시절에는 거기가 외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거기까지 개발되고 지하철이 놓이게 된 것이다. 테란· 플토 건물의 주변에 저그 크립이 깔려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건물이 당연히 크립보다 먼저 지어진 것.. ㄲㄲㄲㄲㄲ)

  • 평촌(4과천): 4번 출구 주변에 웬 자원 재생 센터가 있다.
  • 가락시장(3/8): 그 유명한 중앙 전파 관리소가 있다. 지방으로 이전할 거라는 말이 진작부터 있었지만 2021~22년 현재 아직도 건재해 있다. 여기는 주변에 가락시장, 비닐하우스, 물류센터, 자동차 운전 학원 같은 거나 있던 외곽이었지만, 2010년대에 싹 바뀌었다.
  • 세류(1경부): 공군 부대와 바로 붙어 있다. 이 부대도 이전 떡밥만 잔뜩 무성하다.
  • 금천구청(1경부, 과거): 역시 군부대와 붙어 있다가 2000년대 말쯤에 싹 이전했다. 여기도 공군 부대였다고 한다.
  • 오금(3/5, 과거): 근처에 구치소가 있었지만 문정 법조 타운 쪽으로 이전했다.

4. 지하철 5호선의 특이한 과거

  • 천호대로(답십리-천호)는 바로 5호선 건설 공사를 하느라 파헤쳤던 것을 복구하면서 96년 초에 국내 최초로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 마곡 역은 초기에 잠깐 영업하다가 문을 닫은 게 아니었고, 처음부터 미개통 봉인 상태였다. 초창기엔 열차가 마곡 역에 도착할 때 형식적으로라도 감속이나 잠깐 정차를 했다가 출발했지만, 몇 달 후엔 이마저도 생략하게 됐다.
  • 5호선은 1인 승무로도 모자라서 아예 전면 무인 자동 운전까지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 무려 96년경에 실제로 시행한 적도 있었으나, 열차가 제 위치에 제대로 못 서고 버그와 문제점이 속출하면서 도로 봉인되었다.
  • 5호선이 전구간 개통하기 전에는 열차의 출력 설정이 지금과 달랐는지.. 가속 구동음의 첫음이 지금 같은 ‘레’가 아니라 ‘솔~라b’ 사이였다고 한다. 매우 충격적이다. (☞ 1995년 6월경의 시운전 영상 기록)

첫음이 저러니 영락없이 7,8호선 1차 도입분 열차의 GEC-알스톰 구동음처럼 들린다.
스타크래프트 개발 중 베타 버전에서 시즈 탱크가 뮤탈(!!!)을 공격하는 거..
Doom의 개발 중 베타 버전에서 BFG가 빨강 초록 파이어볼을 난사하는 형태이던 거..
그런 걸 보는 느낌과 비슷하다.

지금 같은 가속 구동음은 5호선이 전구간 개통한 뒤에 설정 변경을 통해 정착한 거라고 한다. 피치를 낮춘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14 19:35 2021/12/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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