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후 사진

19세기에 카메라와 사진이라는 물건은 정말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비록 흑백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인물이나 풍경을 보이는 그대로 화가보다 훨씬 더 신속 정확하게 종이에 담아서 영구적인 기록으로 남겨 줬으니 말이다.

사진을 번쩍 찍히면 자기 혼이 빠져나가는 줄로 알고 무서워한 사람도 있었다.
자기 원래 모습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데 하물며 X선을 발견해서 자기 손의 생뼈 사진을 인류 최초로 관찰한 물리학자 뢴트겐은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런 생각도 같이 하게 된다.

그리고 혼이 빠져나갈까 봐 두렵다면.. 발상을 전환하여 이미 혼이 빠져나가 있는 사람, 다시 말해 시체의 사진을 찍는 건 어떨까?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거나 수긍하기 어렵지만,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 사이.. 유식한 용어로 '빅토리아 여왕' 시절 / 벨 에포크 시절엔 유럽과 미국 일대에서 가족의 ‘사후 사진’이라는 걸 찍어서 남기는 게 유행이었다.

천수를 누리고 죽은 사람 말고, 병이나 사건· 사고로 일찍 죽은 가족의 모습을 사진으로라도 찍어서 남기는 것이다. 특히 아기 말이다. 이거 무슨 영정 사진도 아니고 참..;;
그나마도 예전에는 화가를 불러서 초상화를 그리던 것이 사진으로 더 간편하게 바뀐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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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시신이 부패하기 전에 최대한 어서 찍어야 했다.
시신에다가는 최대한 멋지고 근사한 옷을 입혔으며, 곤히 잠들었거나 의자에 앉아 쉬는 포즈를 만들었다. 아니면 시신의 사지를 붙드는 장치를 연결해서 억지로라도 기립해 있는 모습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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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눈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자는 포즈가 아닌 사진이라면 사진사나 화가가 사진에다가 떠진 눈을 인위로 그려 넣었다.;; 그 시절엔 컴퓨터나 포토샵 같은 도구가 없었으니, 이건 물감과 붓을 동원한 수작업이었다. 그나마 사진이 흑백이니까 이런 장난질이 그리 어렵지 않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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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너무 노골적으로 시체 느낌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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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의 맨 뒤(왼쪽), 선 채로 눈을 감고 있는 저 막내 꼬마 여자아이는 귀신...이 아니라 죽은 상태이다. 언니 오빠들은 시체와 나란히 줄 서서 몇 분간 부동자세로 가족 사진을 찍었다. (☞ 더 많은 사례들)

2. 시체 공시소

역시 비슷한 시기인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프랑스에서는 ‘시체 공시소’라는 걸 운영했다.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시신을 공개적으로 진열해 놓고, 이 사람의 연고자 내지 유족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니 이건 행방불명자의 유족에게 시신이라도 찾아 준다는 좋은 목적과 선한 의도로 만들어진 시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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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나 드나들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의 시체들을 열람할 수 있다 보니, 여기는 엄근진한 곳이 아니라 무슨 ‘인체의 신비전’ 같은 엽기 관광 명소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친인척 중에 실종자가 딱히 없는 사람들도 어중이떠중이가 다 저기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시신에게 이상한 옷을 입혀 분장도 시켜서 구경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누구나 무료 관람 가능하던 곳이 나중에는 입장료까지 징수하게 됐다.

1900년대 초는 아직 제국주의에 인종 차별주의와(백인 우월, 인종 박람회..) 우생학까지 쩔던 시절이지 않았던가.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중국 같은 동양인의 시체까지 수입해서 일부러 전시했다고 하는데.. 그때는 지금 같은 냉동 기술도 없었을 텐데 시체를 장시간· 장거리 운송하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은 했나 모르겠다... (검색을 해 보니 기초적인 냉장 기술은 개발됐었다고 함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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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시체 공시소가 의외의 기여를 한 분야는 범죄 수사이기도 했다고 한다.
범죄 용의자를 여기 데리고 와서 밝은 전등 아래의 피해자의 시체를 직접 대면시키고는 "이 사람 정말 니가 죽인 거 아니야?"라고 취조하면.. 어지간한 범죄자는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죄를 자백했다고 한다. 오~~ 고문이나 가혹행위도 아니고.. 꽤 괜찮은데??

이런 사례들을 보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먼저, 기술적인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시절 카메라는 노출 시간이 수 분대로 길어서 피사체는 그동안 꼼짝없이 부동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흔들려서 망가진 사진을 보지 않으려면 말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오랫동안 가만히 있기가 몹시 어려운 반면, 시체는 그런 제약이 없다. 그러니 사후 사진이라는 발상을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옛날 시대상을 떠올려 보자. 전쟁, 기근, 질병, 높은 유아 사망률, 지금보다 더 잔인한 형벌(공개 처형, 부관참시 시체 훼손, 능지형), 더 폭력적인 사회 관행(툭하면 싸움질, 결투, 석전, 주취 가정 폭력, 애들한테 가혹한 체벌..)..

그러니 옛날에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흔했으며, 길거리에서 사람 시체를 구경하는 것도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무연고 거지나 '행려병자' 같은 것도 훨씬 더 쉽게 볼 수 있지 않았던가?
(행려병자라고 하니 말이 좀 어려운데, '행려'를 순서를 뒤집어서 '여행'으로 바꾸면 뜻이 바로 와 닿을 것이다.)

옛날엔 사람들이 멘탈이나 비위 같은 것도 지금 현대인보다 더 억세고 강해야만 했다. 분위기가 그랬으니 저런 관행도 존재 가능했던 것이지 싶다. 비록 후대에 전시의 특수한 상황이긴 했지만, 일본군 두개골을 군 복무 중인 남친이 여친에게 선물로 보냈던 사례도 있었음을 생각해 보자.

아울러, 그 시절에는 지금 같은 인터넷이 없고 컴퓨터 게임이 없고 여가나 유흥 시설, 볼거리들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빈약했다.
오죽했으면 19세기 말에 미국 어딘가에서는 사막 벌판에서 육중한 증기 기관차 두 대를 마주보고 정면충돌시키는 캐막장 잉여 쑈를 기획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ㄲㄲㄲㄲ (그랬는데 보일러가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금속 파편이 저 멀리 관중석까지 날아가는 바람에 인명 사고가 발생하고.. 이 쑈는 흑역사로 묻혀 버림)

이런 시대 정황까지 추가로 고려해 보면, 옛날에는 공개 사형 집행이 얼마나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을지도 수긍이 간다. 하물며 능지형 정도 되면 초특급 쑈 그 자체라 하겠다.
그 시절에 컬러 카메라나 유튜브 같은 게 없었던 게 다행이다. 그런 게 있었다면 사람 공개 처형 장면 동영상은 ISIL이니 탈레반이니 하는 또라이들이나 올리는 게 아니라 영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 문명국에서도 올라오게 됐을 테니 말이다.

이 사람들은 무슨 사후 세계를 믿지 않고 시체를 아무렇게나 다루는 티베트인이 아니며, 시체 갖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변태 야만인이 아니었다. 엄연히 기독교 배경이 있는 열강 강대국에서도 이런 관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후 사진이나 공개 시체 공시소 같은 게 민망한 짓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1차 세계 대전을 겪은 뒤부터였다고 한다. 미개인이 아니라 유럽 백인 자기들까지 기관총 대량 학살 시체 더미의 쓴맛을 제대로 봤으니까.. 전간기와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이런 관행은 완전히 사라졌다.

뭐,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07년에 수원 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에서 이례적으로 피해자 시신의 얼굴을 공개했던 적이 있다. 피해자의 신원을 도저히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핏기없고 섬뜩한 인상인데.. 그래도 실제 피해자의 부모가 그 얼굴을 알아본 덕분에 연고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사건의 경우, 기껏 잡았던 가해자는 답정너 강압 수사로 인한 거짓 자백 정황이 드러났다. 결국은 이전 판결이 무죄로 뒤집히고 리셋돼 버렸지만 진범은 끝내 잡히지 않은 채로 수사가 씁쓸하게 종결돼 버렸다.
애초에 피해자는 껌 씹는 날라리 일진 양아치 가출 소녀가 아니었다. 정신장애가 있고 채팅에서 만난 다른 양아치들한테 낚여서 따라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는데.. 처음에 수사 방향을 잘못 잡은 채로 삽질하다 시간을 날리는 바람에 진범 잡을 기회도 놓친 것으로 보인다.

그 뒤로 이렇게 실종자 시신의 얼굴 공개 사례가 국내에서 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 옛날에 1997년 언젠가 <경찰청 사람들> 다큐에서도 실종된 범죄 피해자를 찾는다고 무려 토막 살해 시신의 얼굴을 그대로 내보낸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이건 좀 무리수였다.

뭐 피투성이였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끔찍한 몰골은 시청자들을 OME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결정적으로 죽은 시체의 인상은 살아 생전의 모습과 차이가 커서 사람을 찾는 데 별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이 시신도 훗날 다행히 신원이 확인되긴 했지만.. 이 비주얼 단서가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서 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옛날 사람들과 달리 생사람의 시체를 전혀에 가깝게 볼 일 없이 평화롭게 지내는 것은 여러 요인들 덕분이라 하겠다. 과학 기술의 발전, 그에 걸맞게 발달한 의료 보건 위생 여건과 치안 복지, 정치적 안정, 그리고 인권 의식의 향상까지 말이다. 일상 생활에서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의 교통사고나 대형 안전 사고를 목격하게 될 수는 있지만 그건 뭐.. 평범한 일반인에게는 로또급 확률의 이벤트일 것이다.

그러니 현대인들은 현실이 아니라 영화와 게임에서나 사람이 죽는 장면과 각종 시체들을 실컷 보며 지낸다. 이런 건 실제 사람이 죽거나 죽은 장면이 아니니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이런 건 비주얼이 현실의 그것만치 흉측하지도 않다.

끝으로, 미국에는 통상적인 의대 해부 실습 용도가 아니라.. 법의학 연구 목적으로 기증받은 시신들을 잔뜩 모은 ‘시체 농장’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언급하며 글을 맺겠다. 대표적으로 테네시 대학교 인류학 연구소 말이다. 이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잘 돌아가고 있는 시설이다.

여기서는 다양한 여건 하에서 시체가 부패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시간대별로 시체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부풀어오름, 벌레 꼬임, 무슨 무슨 색깔로 변함..) 정말 꼼꼼히 기록해서 수십 년 동안 데이터로 축적했다. 그냥 벌판에 널부러진 시신, 물에 던져진 시신, 여행 가방에 밀봉된 시신, 콘크리트로 공구리 쳐진 시신 같은 이런 상태 차이도 있고, 여름과 겨울, 눈과 비 같은 날씨 차이도 있고.. 토막(;;)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까지.. 변수가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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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곳... 부지가 넓으니 시체를 꽁꽁 숨겨 놓고는 경찰견의 탐지 훈련을 실시하기도 한다.

여기서 축적된 방대한 실험 데이터 덕분에, 범죄 현장에서 피해자의 사망 시각과 사망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 맞혀서 단서를 얻고 해결한 사건이 지금까지 적지 않았다.
단, 시체라는 민감하고 특수한 기자재를 잔뜩 다루는 시설인 만큼, 여기도 의대 해부 실습에 준하는 군기와 보안, 윤리 정책이 적용된다. 근무자는 시신 기증자와 당사자에 대해 감사의 묵념을 빠뜨리지 않으며, 보안 서약을 한 정직원이나 허가 받은 기자 말고 일반인은 절대로 출입 금지, 내부 사진 유출 절대 금지 정도는 기본이다.

더구나 여기는 사망 원인이 밝혀진 고인에 대해서 유족이 명시적으로 기증 의사를 밝힌 시신만을 접수한다. 그러니 신원 미상 시신을 대중에게 아무렇게나 전시하고 분장(!!)까지 시켰던 옛날 프랑스 시체 공시소와는 분위기가 180도 극과 극으로 다르다고 보면 된다.

다만, 장례 비용마저 부담되는 가난한 사람들이 무작정 여기로 시신을 보내 버리는 사례가 많아져서 여기도 시신 접수 조건을 좀 더 강화했다고 전해진다. 흠.. 그럼 그냥 의대 해부 실습용으로 시신을 기증해도 될 텐데? 거기는 시신이 언제나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시체 관련 추가적인 이야기들

(1) 오늘날 지구를 누비는 여객기에도 죽은 사람을 실은 관이 수하물로 알음알음 몰래 같이 운구되는 게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2) 1993년 서해훼리 호 침몰 당시엔 언론에서 해저에서 인양 중인 시신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내보낸 적이 있었다. (의도적인 노출보다는 별 생각 없이 카메라를 잠깐 비췄던 게 전파를 탔..)
그것도 그렇고 위의 저 사진도 그렇고, 노숙 소녀 시신 얼굴도 그렇고, 등산가 조지 맬러리의 오래된 시신 같은 것도 보면.. 시신은 부패해서 본격적으로 보기 흉해지기 전에는 핏기가 빠져서 공통적으로 정말 하얗게 변하기는 하는 것 같다.

(3) 사람이건 동물이건 시체가 생기면 시체를 뜯어먹는 동물과 곤충, 아니면 부패· 분해시키는 미생물과 세균이 앞다퉈서 그 시체를 접수해 버린다. 그런데 송장벌레는 비록 시체를 파먹을 목적이긴 하지만 그걸 땅에 파묻어서 보이지 않게 해 주기도 한다니 참 오묘한 노릇이다.
뭐, 일개 곤충이 중장비나 삽질 같은 속도와 효율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얘들은 신이 자연에다 마련해 준 시체 처리반 장의사나 다름없다.;;

(4) 죽은 시체에 옷을 인위로 입히거나 벗기는 건 생각보다 꽤 힘든 일이다~! 특히 크고 무거운 성인 남성의 시신이라면 더욱 말이다. 범죄 현장에서 정황상 사망자가 원래부터 이 옷을 입고 있었는지, 아니면 사후에 옷이 벗겨지거나 바뀌었는지도 어지간하면 판별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집어넣기 전에 샤워 드립을 괜히 쳤던 게 아니다.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기 옷을 벗고 개어 놓음으로써 일 처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28 08:33 2021/12/2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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