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호박
위의 사진은 지난 6월 11일 아침에 핀 단호박 암꽃이다. 주변에 꿀벌이 돌아다니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주변의 수꽃으로 인공수분을 또 해 줬다. 아침 6시 반쯤이었다.
그 뒤 노란 꽃잎은 완전히 시들어 떨어졌지만, 씨방은 부풀어 차차 커지기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없던 단호박 특유의 주름도 생기기 시작했다. 6월 15일쯤.
수분 성공하고 착과된 씨방은 처음에는 그저 동글동글한 채로 풍선 부풀듯이 커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종횡비"가 달라져서 더 납작해진다. 수박이나 조롱박이 아닌 호박 모양을 갖춰 간다.
이게 수분 성공 자체와는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건 6월 2x일쯤의 일이었다.
그리고 7월 1일.. 폭우 때문에 텃밭 주변이 난장판이 되고, 주변 환경 사정상 이 호박은 더 놔 두고 키우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호박을 더 키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땄다.
길이 대략 12.5cm, 무게 710g짜리 단호박이 착과된 지 거의 3주 만에 이렇게 만들어졌다. ^^
대견스럽다. 표면에 코를 대면 비누 냄새 비슷한 향이 났다.
이 호박은 이렇게 쪄서 껍질째로 잘 먹었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호박 내부에는 저렇게 씨앗들이 많이 형성되는 중이었다.
좀 오래 놔 두면서 주변에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딴 지 겨우 이틀 만에 처분했다. 좀 갖고 다녀 보니 표면 곳곳이 금세 물렁물렁해지고, 비누 냄새도 살짝 역겨운 느낌이 들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리해 보니 먹는 데는 다행히 문제가 없었고, 먹은 후의 뒤탈도 없었다.
이렇게 이 호박은 자기 임무를 다 수행하고 본인의 추억에만 남게 됐다.
2. 일반 호박
다음으로 소개하는 이 아이는 실내에서 재배한 놈이다. 지난 5월 2일경에 요렇게 암꽃이 활짝 펴서 인공수분을 해 주었다.
수분은 성공적으로 잘 됐음이 어린이날 즈음에 최종 확인됐다. 씨방은 요렇게 부풀어 오르면서 열매로 바뀌기 시작했다. 만세~!
꼭지에서 가까운 쪽이 색깔이 아주 짙어졌다. 전형적인 동그란 애호박처럼 생겼는데..
짠~ 같은 호박이 이렇게 됐다는 게 믿어지시는가?
색깔이 꼭지 주변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더 짙어졌을 뿐만 아니라, 열매의 외형과 종횡비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때는 이미 5월 말쯤이었다.
그리고.. 6월 중순쯤 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언제까지나 푸르딩딩할 것 같던 열매가 초록색이 걷히고 조금씩 누래지더니.. 풋호박이 폭삭 늙은 호박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사과나 고추는 익으면 겉이 시뻘개지는데 호박은 그냥 살색이나 주황색 살구색으로 바뀐다. 단풍이랑 비슷한 걸까..??
묽은 황산이 진한 황산으로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지난 7월 9일.. 수분된 지 65일 이상 뒤에야 잘 익은 늙은 호박을 따게 되었다.
지름 13.5cm 남짓에 약 750그램으로, CD보다는 약간 더 커졌다. ^^
실내에서 키우느라 햇볕과 통풍에 큰 핸디캡이 있었던 녀석이다. 덩굴의 줄기부터가 막 크고 굵지는 않았으니 열매도 막 크게 맺히지는 않았다.
얘 역시 꼭지가 더 시들고 완전히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놔 두고 싶었지만, 부득이하게 따게 됐다.
그러고 보니 늙은 호박이 정말 오랫동안 많이 삭아서 고인물 썩은물 수준이 되면.. 표면에 허연 가루 같은 것도 앉는다는데, 얘는 그 경지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본인은 얘를 자그마한 종이 가방에 넣어서 내내 갖고 다녔다.
데이트 갈 때 가져가서 여친한테도 자랑하고, 교회 갈 때도 가져가서 주변 성도들에게 자랑하고..
누나와 여친은 보더니 기겁을 하면서 이딴 걸 도대체 왜 들고 다니냐고 난리를 쳤다. =_=;;
길거리에서 자기 아는체 하지 말라고.. 언제부터 그렇게 농부가 됐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호박을 첫 암꽃과 씨방 시절부터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 감흥을 모를 수도 있겠지.. 내돈내산...이 아니라 내꽃내받이인가?
3D 스캐너 같은 거 있으면 요 3D 모델을 스캔해서 저장하고 싶구만. 이런 열매를 많이 많이 모으고 싶다.
얘는 아직 먹지 않았다. 속이 어떻게 생겼을지, 전을 만들어 먹을지 죽을 쑤어 먹을지 고민된다.
이 늙은 호박은 내부 구조가 잘 안정화돼서 그런지 표면에 아무 냄새도 없고... 따고 나서 수 주 이상 한참 지나도 아까 그 단호박과는 달리, 상태에 아무 변화가 없다. 늙은 호박다운 연륜이 느껴진다. ^^
며칠 전 글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식물은 잎, 줄기 등 어지간한 부위들은 뿌리가 달린 본체에서 잘려 나가면 신속하게 말라 죽는다. 특히 잎은 본체에 붙어 있더라도 수명이 다하거나 뭐가 부족한 등 갖가지 이유가 생기면 저절로 정말 잘 말라 죽고 떨어진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맺혀서 안정화된 호박 열매는...?? 본체에서 잘려 나가도 상온에서 몇 달을 버틴다. 오옷~
심지어 같은 박과여도 수박 열매는 상온에서 이렇게 호박처럼 절대로 못 버틸 것이다. 이것도 정말 신기한 노릇이다.
이상이다.
호박은 큼직한 잎도 매력적이고 무슨 뱀 같은 꼬불꼬불 덩굴도 매력적이고, 노란 꽃도 매력적이고 쭈글쭈글 열매도 매력적이고.. 온통 매력덩어리이다.
본인은 10대 때부터 자동차와 컴퓨터, 열차처럼 인간이 발명한 기계류에 꽂혀 지냈다. 그러다가 등산과 캠핑을 거쳐 다음은 농사.. 나이 40이 다 돼서야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호박이 많이 심기고 가꿔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 8~9월이면 올해 수확한 늙은 호박이 시장에 올라오겠지? 큼직한 늙은 호박을 사 먹어 보고 싶기도 하다.
※ 여담: 호박 열매가 많이 잘 맺히려면..??
누구는 구덩이 파고 호박씨를 심을 때, 처음에 밑거름으로 퇴비를 한 번만 잔뜩 집어넣고 나서는 딱히 농약 비료 안 주고 별로 관리 안 하고 방치했는데도 늙은 호박이 큼직하게 잘 맺혔다고 자랑을 하더라.
이건 본인에게는 "누구는 딱히 학원 안 가고 사교육 과외 없이 학교 교과서 공부에만 충실했더니 서울대 합격했다" 부류의 말처럼 들린다. =_=;;;
종합 영양 알비료를 주니까 꽃이 더 피고 새순이 더 빠릿빠릿 나는 등 효과가 분명 있더라.
그런데 호박은 예전에도 글로 썼듯, 자기 몸집을 키우는 모드하고.. 몸집이 작아도 꽃과 열매부터 우선적으로 만드는 모드가 따로 존재한다. 어느 모드로 갈지는 진짜 호박 마음대로인 듯..
영양이 부족하면 호박이 힘들어서 씨방이나 열매를 떨궈 버리고 수분이나 착과가 잘 안 된다고 그러는데,
또 한편으로는 초창기부터 영양이 너무 풍부하면 호박이 자기 몸집만 키우고 잎만 무성해지지 암꽃 잘 안 피고 열매 안 맺힌다고 한다.
그리고 암꽃이 피려면 온도가 좀 낮은 게 좋은 반면, 착과된 열매가 잘 익으려면 더운 햇볕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참 복잡다난하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