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이 키우는 호박

누가 자기 집에다가 이렇게 호박을 키우고 있는 걸 우연히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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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하늘을 향해서 줌까지 당기면서 찍다 보니 역시 폰 카메라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화질은 메롱이지만 호박은 대롱대롱.
저렇게 호박을 잘 키운 사람이 부럽다. 구경하는 사람까지 힐링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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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3월 말쯤에, 얼어 죽지 말라고 아직 비닐에 싸여 있던 그 가녀린 호박 모종은..
이제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호박 덩굴로 변모해서 주변 흙과 담장을 몽땅 뒤덮어 버렸다. 아아~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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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까지 일반 호박이건 단호박이건, 탁구공이나 구슬처럼 생긴 동글동글한 씨방 정도만 봐 왔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 훨씬 더 납작하고 쭈글쭈글한 그 '정통 늙은 호박'은 씨방부터가 저렇게 납작하고 쭈글쭈글 주름이 져 있는가 보다.
이런 건 남이 키우는 호박을 통해서 접하게 됐다. ㄷㄷㄷㄷ

2. 내가 키운 애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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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집 건물 근처의 화단에서 몰래 키운 호박으로, 생후 10일 남짓일 때의 모습이다.
모처럼 화단에서 암꽃이 폈는데, 그 당시엔 하필 주변에 수꽃이 핀 게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아까 저 남이 가꿔 놓은 호박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큼직한 수꽃을 긴급 수송한 뒤, 인공수분을 시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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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암술은 표면이 매끈한데, 암술이 누런 가루가 덕지덕지 묻은 수술처럼 보일 정도로 수술을 비벼서 꽃가루 범벅을 만들어 줬다. 그래서 수분이 성공하고 열매가 맺힌 것이다.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귤 크기를 넘어가고, 사과 내지 배와 비슷한 크기가 됐다.
바닥이 흙바닥에 직접 닿지 말라고 아래에다가는 스티로폼 그물을 깔아 줬다.
위에다가는 여기에 호박 열매가 맺히고 있는 걸 숨기기 위해 다른 호박잎을 덮어 줬다.
그게 마치 요를 깔고 이불을 덮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 자라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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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키우던 장소의 사정으로 인해.. 생후 2주 남짓 만에 따게 됐다.
생후 2주짜리 애호박과, 예전에 본인이 득템한 생후 2개월짜리 자가재배 늙은 호박을 나란히 늘어놓아 보았다. 자르니 내부 단면이 서로 이렇게 차이가 난다.
둘을 나란히 도축해서 각각 조림과 죽을 만들어 먹었다. 겉은 단단하고 속은 신선하고 상태가 아주 좋았다.

사실, 저 늙은 호박은 따고 나서도 거의 3주를 놔 두면서 애지중지 갖고 놀았다. 교회에 갈 때도 가져갔다. 너무 만져서 표면이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였다.;;
그래도 쟤를 한없이 놔둘 수는 없고 떠나보낼 때가 됐으니 이렇게 처분을 하게 됐다. 사실 더 오래 놔둬도 됐을 것 같지만.. ^^

사람이 겉에서 호박 뿌리에다가 물과 비료를 주고 잎에다가 햇볕을 마음껏 쬐어 주고, 암꽃에다 꽃가루를 묻혀 주면.. 호박은 열매를 맺어서 사람이 먹을 수 있고 재귀적으로 자가생산까지(=씨) 가능한 신비로운 물건을 3D 프린팅해 준다~!!
아담한 싸이즈이지만 과육 두툼하고 씨앗도 있고 늙은 호박으로서 갖출 건 다 갖춰져 있었다. 호박죽 딱 두 그릇 분량이 나왔다.

3. 이상한 호박

요즘 비 한번 줄기차게 많이 내리는구나~
근데 세상에 이런 꽃도 피네.. 호박꽃의 플러그가 이렇게 생겼을 수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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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이 일반적인 수꽃처럼 하나가 아니라, 암꽃처럼 여러 갈래이다. 그리고 꽃가루가 묻은 짹과 그렇지 않은 짹이 저렇게 섞여 있다.
이 사진에서는 안 보이지만, 뒷부분에 씨방이 전혀 없기 때문에 얘는 전체적으로는 암꽃이 아니라 수꽃이긴 하다.
혹시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게이의 꽃 버전인 건가?? =_=;;

참고로 햇볕 내지 영양이 부족하고 땅이 안 좋아서 제대로 못 자란 호박에서는.. 꽃가루가 없다시피해서 고자나 마찬가지인 수꽃이 피기도 했었다.
식물에도 동물과 얼추 비슷하게 이런 성 관련 속성이 존재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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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한 뿌리에서 암꽃 수꽃이 저렇게 따로 핀다마는,
은행나무는 아주 이례적으로 자웅이주라고 하지?? 아예 뿌리 차원에서 암놈 숫놈이 따로 있는..
그래서 열매 악취가 안 나려면 암나무 숫나무를 가까이 섞어서 심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어린 묘목 상태일 때는 성별 구분이 의외로 어렵다고 그런다.

4. 소생하는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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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박 덩굴은 한때 꽃까지 여러 송이 피울 정도로 한동안 잘 자라고 있었으나, 어느날 밑동만 남고 줄기가 몽땅 잘려 버리는 테러를 당했다. 살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져서 혼자서만 측은히 여기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 일이 벌어지고 열흘 남짓 지나니 그 짤막한 밑동에서도 아주 자그마한 초록색 새 생명의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우와.. +_+

굵직한 밑동과 뿌리가 죽지 않으니 이렇게 살아나기도 하는가 보다. 가슴이 다 뭉클했다.
다만, 충분히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 비를 너무 많이 맞거나, 침수돼서 흙탕물에 파묻히면 밑동이 연해지면서 말라 죽기도 하더라. 호박이 천하무적은 당연히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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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지난 6월 말, 강가 둑에 심겼다가 폭우 침수 때문에 진흙을 잔뜩 뒤집어썼지만.. 그 와중에도 곳곳에서 새순을 만들어 내며 살려고 몸부림쳤던 호박의 흔적이다. 이 진흙은 물만 끼얹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어서 않아서 일일이 다 씻어낼 수도 없다. 흙투성이가 된 잎들은 그냥 서서히 말라죽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이 호박은 며칠 뒤 더 심한 폭우가 쏟아지면서 전부 물에 휩쓸려 내려가 버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여기는 다시 잡초들로 뒤덮이고 언제 홍수가 있었냐는 듯이 녹색 천지로 바뀌었으니 야생 자연이라는 건 참 오묘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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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박도 저 폭우 때 침수 피해를 입어서 잎과 줄기의 상당수가 흙에 파묻혔다. 하지만 심긴 지점이 강에서 상대적으로 멀고 높았던 덕분에 완전히 죽지는 않고, 최소한의 덩굴과 잎 몇 포기만 겨우 건졌는데..
그로부터 한 달 남짓 만에 얘는 덩굴 전체를 카메라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왕창 성장하고 부활 소생에 성공했다.

5. 내가 구매한 호박

우리나라는 8월 중순쯤이면 국내 재배된 늙은 호박이 처음으로 수확되고 시장에 나오는가 보다. 단호박도 아니고 늙은 호박을 딱히 수입해 온다는 얘기는 없으니까..

(1) "노지에서 재배한 늙은 호박이 첫 출하됐다. 서울 가락시장에는 전남지방에서 생산된 늙은 호박이 가을을 알리는 듯 출하돼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호박죽 호박떡 호박진액을 만드는 늙은 호박의 가격은 2000원부터 1만원까지다."
-- 2001년 8월 10일 (☞ 보도 자료)

(2) "경남 하동군은 고품질 맷돌호박이 본격 출하하기 시작했다고 9일 밝혔다.
‘늙은 호박’으로도 불리는 맷돌호박은 지난 8일 첫 수확을 시작으로 10월까지 수확이 이어질 예정으로 올해 하동군에서는 70여 농가가 330여t을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 2019년 8월 9일 (보도 자료)


그래서 본인은 8월 중순쯤 가락시장을 다시 찾아가서.. 꿀단지처럼 생긴 늙은 호박 두 덩이를 득템했다. 하나 무게가 거의 4kg에 달한다. ㄷㄷㄷ
가을 내내 집과 차와 텐트에 비치해서 갖고 놀다가 도축해서 죽 쑤어 먹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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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이니 해남이니 강진이니.. 남부 지방이 햇볕이 많이 내리쬐어서 그런지 호박이 많이 생산되는가 보다.

호박은.. 꼬불꼬불 덩굴도 예쁘고, 꽃도 예쁘고.. 동그란 씨방도 예쁘고,
푸르딩딩 동글동글 애호박도 예쁘고, 쭈글쭈글 납작한 누런 늙은 버전은 더 예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평범한 공 모양이기만 했으면 내가 호박에 결코 이 정도로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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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참외 모양의 애호박도 있지만 말이다. 이건 시장에서 사온 것..ㄲㄲㄲㄲㄲㄲ)
그런즉 애호박, 단호박, 늙은 호박은 언제까지나 인간과 함께 있을 것이로되, 그 중에 제일은 늙은 호박이니라.

Posted by 사무엘

2022/09/11 08:36 2022/09/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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