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의 특성

인간이 자연에서 전자기파라는 것의 존재를 예상하고 발견하고 그 특성을 규명하고, 이걸 이용해서 각종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은 19세기 말 이후의 정말 위대하고 경이로운 발명· 발견이다. 이 기술 덕분에 무선 통신과 방송이라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과학 기술은..

  • 질량을 가진 물질 입자를 광속으로 이동시키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순간이동 텔레포트는 SF물 내지 게임에서나 존재한다. 광속이 아니라 음속(공기 중 기준)만 비행기로 아주 어렵게 제한적으로 초월했을 뿐이다.
  • 시간을 거스르는 여행도 못 한다. 타임머신 역시 SF에서나 가능하다.
  • 실용적인 수준의 장거리 무선 송전도 요원하다. 즉, 질량이 없더라도 동력· 에너지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하지는 못한다. (일개 구름에서 천둥 번개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지도 글쎄...)

신호, 정보를 광속으로 주고 보내서 통신하는 것만이 가능할 뿐이다. 물론 이거 하나만으로도 20세기 이후 인류의 생활 양상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전자기파는 진폭과 파장이라는 속성을 갖는데, 단순 강도를 나타내는 진폭보다는 파장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속도야 다 똑같이 광속이지만, 퍼져 나가는 방식이나 강도의 변화 양상 같은 건 파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파장은 정의상 그 전파의 단위 시간당 진동수 내지 주파수와 정확히 반비례하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고주파'와 '단파'는 완전히 동치이며, 반대로 '저주파'와 '장파'도 동치인 개념이다. 앞에 '극/초' 같은 접두어가 똑같이 붙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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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기파 중에서 그나마 주파수가 낮아서 파장이 긴 '원초적인' 영역의 물건을 우리는 전파라고 부른다. 무선 통신과 방송 용도로 이 영역의 전자기파가 쓰인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파장이 짧아지면 맨 먼저 적외선이 나오고 그 다음으로 가시광선, 그 다음에 자외선이 이어진다.
자외선보다도 파장이 짧은 놈은 X선이니 감마 선이니 하는 방사선의 영역으로 간다. 방사선은 전리와 비전리로 나뉘기도 하고.. (에너지가 있어서 인체에도 해로울 수 있는 녀석이 '전리 방사선')

그리고 주파수라는 개념은 사실상 전파의 범주에서만 쓰인다. 적외선 이상으로 가면 파장의 길이가 나노미터 이하 급으로 짧아지며, 그에 반비례하는 주파수는 숫자가 테라헤르츠 급을 넘어서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한쪽은 헤르츠이고 다른 한쪽은 미터이지만 둘 다 본질적으로 동일한 속성을 측정한 결과라는 걸 다시 밝힌다.

기술적으로야 파장이 긴 저주파를 주고 받는 게 더 간단하고 쉽다. 그러니 인간은 이런 쉬운 전파부터 먼저 활용해 왔다. 저주파(장파)는 특성이 대체로 '가늘고 긴' 반면, 고주파(단파)로 갈수록 '짧고 굵은' 성향이 강해진다.

파장이 긴 전파는 장애물의 영향을 덜 받고 멀리 널리 잘 퍼져 나간다. 그리고 지구의 전리층에 반사되기도 하기 때문에 둥근 지구에서도 자연스럽게 수평선 너머 장거리 통신을 할 수 있다.
파장이 굉장히 긴 장파(3~300KHz)는 심지어 수중에서도 전파가 되기 때문에 심해에서 잠수함 간의 통신에 쓰인다. (음파와 별개로!) 공중과 해저에서 모두 장점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장파는 진동수가 낮고 대역폭도 낮기 때문에 안에다 정보를 많이 담을 수 없다.
실시간 음성이나 영상 따위는 감당이 안 되며, 모스 부호 같은 극도로 가볍고 단순한 메시지나 주고 받을 수 있다. 아니면 각지에 퍼져 있는 시계들을 동기화시키는 신호를 보내는 것도 장파로 처리하기에 적절하다.

넓고 지형이 평탄한 나라(몽골, 러시아..??)에서는 장파 라디오 방송이라는 걸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건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이지, 음질 안 좋고 잡음에 취약한 것을 감안해야 한다. 장파를 수신하려면 안테나가 더 크기도 해야 한다고 그런다.

장파보다 파장이 더 짧아진 중파(300~3000KHz) 정도가 AM 라디오에서 사용되는 주파수 대역이다. 실용적으로는 500~1600kHz 부근이다. 여기가 음질과 송· 수신 난이도, 기기의 구조적인 복잡도를 감안했을 때 가성비가 가장 좋은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파보다 파장이 더 짧아진 단파(3~30MHz)는 이제 주파수 단위가 킬로에서 메가로 바뀐다. 얘는 수신하는 기술적 난이도가 중파보다 좀 더 높으며, 지구 전리층에 반사되는 장거리 전파의 거의 마지노 선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얘는 20세기 초중반부터 국경과 대륙을 넘어 외국의 소식을 접하는 통로로 즐겨 쓰였으며, 현재도 소수나마 단파 라디오 방송국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간첩이 난수표 같은 지령을 받는 용도로도 당연히 쓰였다. 이 때문에 이 동네는 쌍팔년도 시절까지 허가 받은 사람 외에 단파 라디오의 소지가 금지였으며, 간첩 식별 요령으로도 "이불 뒤집어쓰고 라디오 같은 걸 청취하는 사람"이 설정돼 있을 정도였다. HAM인가? 아마추어 무선도 이 영역의 주파수를 사용한다.

다음으로 30~300MHz 대역은 초단파/초고주파/VHF로 분류된다. 여기부터는 전파의 특성과 용도가 위의 것들과는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전파는 파장이 왕창 짧아질수록 '짧고 굵은' 모 아니면 도 성향이 강해진다. 지형과 장애물에 취약해지고 사정거리도 짧아질지언정, 그 사정거리 안에서는 멀쩡히 날아가다가 스스로 퍼지고 약해지지 않는다. 직진성이 강해진다.

그리고 처음에 고출력으로 아주 쎄게 쏴 주면 지구의 전리층에 반사되지 않고 오히려 우주로도 전파를 날릴 수 있게 된다. 우주와 지구의 통신은 이렇게 지구 전리층에 튕기지 않는 초단파 이상의 고주파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 그 뜨겁고 두꺼운 대기를 자랑하는 금성에 착륙한 소련 탐사선도 지구와 잠시나마 성공적으로 교신을 한 바 있다.

이런 고주파는 대역폭이 커서 저주파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 과거의 유물인 삐삐, 그리고 음성을 넘어 영상 신호를 담고 있는 텔레비전도 다 이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한다.
아날로그 라디오는 기존의 진폭 변조(AM)가 아닌 주파수 변조(FM) 방식을 채택해서 훨씬 더 좋은 음질에다 스테레오 채널까지 얹을 수 있다. (대략 87MHz ~ 108MHz) 변조 방식의 차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논하도록 하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초단파'는 '초음파'와는 전혀 무관하고 다른 개념이니 혼동하지 마시라.;;;

끝으로, VHF보다도 더한 고주파는 300~3000MHz 대역인 극초단파/극초고주파/UHF라고 불린다.
드디어 컴퓨터의 클럭 속도 같은 기가헤르츠라는 단위가 등장하는데, 얘 정도의 대역폭은 돼야 휴대전화에다 요즘 같은 HD급 텔레비전에 초고속 무선 인터넷 와이파이까지 감당 가능하다.

사실은 아날로그 TV 시절에도 VHF를 넘어 UHF 수신 기능까지 추가해서 지상파의 채널 수를 늘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래서 쌍팔년도 시절 엄청 옛날 텔레비전은 채널 다이얼이 VHF/UHF용으로 두 개 있어서 VHF는 2부터 13까지밖에 없는 반면, UHF 다이얼은 14부터 거의 70까지인가 눈금이 아주 조밀하게 달렸었다. 개인적으로 VHF/UHF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접한 것도 이런 텔레비전에서였다.

라디오에 AM/FM(중/초단) 구분이 있다면 텔레비전엔 VHF/UHF(초단/극초단)의 구분이 있는 셈이다. 텔레비전은 이산적인 채널 번호가 존재하는 반면, 라디오는 주파수 영역이 쌩으로 그대로 통용됐다는 차이도 있다.
VHF 텔레비전의 음성과 FM 라디오는 구성 방식이 비슷했기 때문에 그 당시 일부 라디오는 텔레비전의 작은 채널 번호의 음성을 수신하는 기능이 있기도 했다. 이건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NTSC 규격이 컬러 영상도 재래식 흑백 수상기와의 하위 호환이 됐던 것과 비슷한 면모이다.

VHF를 넘어 UHF 급으로 극도로 조밀한 전파는 멀리까지 보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지국이 많이 필요하다.
까놓고 말해, 삐삐 기지국보다 휴대전화 기지국이 훨씬 더 촘촘하게 많이 필요한 이유도 취급하는 전파의 주파수와 특성 차이 때문이다. 휴대전화 기지국은 나무 같은 걸로 위장한 형태로 우리 생각보다 여기저기 많이 숨어 있다. 휴대전화나 와이파이의 전파를 무슨 라디오 전파처럼 쉽게 간편하게 널리 쏠 수 있지는 않다..!

이상이다. 무선 통신의 세계는 심오하고 신기하기 그지없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광속 같은 전자기파의 물리적인 특성이 달라졌을 리는 없는데 컴터 무선 네트워크의 데이터 전송 속도가 기막히게 빨라지고 텔레비전의 화질이 기겁할 정도로 좋아진 이유는.. 인류가 전파의 주파수를 더 열나게 달구고 짜내는(..!!) 기술을 개발하고 그걸 사방팔방 쏘는 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ㄲㄲㄲㄲ 이게 컴퓨터 반도체의 집적도를 올리는 것과 대등한 효과를 낸 셈이다.

그런데 라디오는 지하에서도 수신되는 것 같은데 고속버스 위성 텔레비전은 차가 터널 안에만 들어가도 먹통이 되는 이유..
와이파이는 AP로부터 수십 미터만 떨어지면 신호가 간당간당해지는 이유, 그 반면 우주로도 전파를 쏴서 탐사선과 교신을 할 수 있는 이유 등등.. 이런 것도 전부 전파의 특성을 알아야 답을 할 수 있다.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가 되는 건 선로를 따라 몽땅 다 기지국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환기 시설이나 지하수 배수 시설과 마찬가지로 그냥 공짜로 되는 게 절대 아니다.

전파라는 게 워낙 신기한 물건이기 때문에 옛날에는 이게 무슨 방사선마냥 사람 건강에 해로울 거라는 낭설이 많이 나돌았다. 컴퓨터 모니터에다 보안경을 씌우고, 모니터를 아래로 매립한 컴퓨터 전용 책상을 비치하기도 하고, 근처에 선인장이나 동전을 쌓아 놓기도 하고..;;
이거 기계 버전은.. 비행기 이착륙 중에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관행이었지 싶다. (전자파가 기계에 혼선을 초래..) 마치 열차 정차 중에 화장실 사용 금지처럼 말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요즘은 전화기건 라디오건 텔레비전이건.. 길쭉한 안테나를 무슨 삼단봉처럼 꺼냈다가 집어넣는 비주얼이 없어진 게 참 인상적이다. 심지어 자동차의 안테나도 말이다.
텔레비전 역시 곤충 더듬이처럼 작대기 한 쌍이 삐져나오곤 했었지만.. 요즘은 그런 거 없다. 이렇게 된 데에도 눈부신 기술의 발전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단파나 장파 라디오는 기기나 안테나가 이 정도로 소형화가 안 되나 보다.

그리고.. 통신이라는 건 교통과 비슷한 면모가 있다. 개나 소나 누구나 아무렇게나 전파를 주고 받을 수 있으면 혼선을 감당할 수 없어지고 아무도 통신을 할 수 없게 된다. 신호등 없이 사방팔방 교차로에서 차들이 밀려드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자동차에 번호판을 달지 않고 공도를 주행할 수 없듯, 민간인이 특정 대역의 주파수로 무선 통신을 하려면 자격을 갖추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중앙 전파 관리소'라는 기관이 이런 전파 대역을 관리하며, 전파와 관련된 테러가 벌어지는 것을 감시한다.

1. 추가 정보: AM과 FM

전파에다가 강약 기복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초창기에는 진폭 변조, 즉 AM 방식이 먼저 개발되어 쓰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주파수를 변조하는 FM 방식이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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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이 기술적으로 더 단순하고 쉽고 저렴하다. AM 라디오 기술이 이미 19세기 말에 발명된 반면, FM은 1930년대가 돼서야 발명되었다.
FM은 표현 가능한 가장 강한 신호를 기준으로 주파수를 산정해야 하는 특성상, 단파· 중파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못해도 초단파 급의 전파를 쏴야 송신 가능하며, 취급하는 회로도 더 복잡하고 고가였다. FM은 보기보다 AM보다 훨씬 더 발달된 기술의 산물인 것이다.

FM의 난관은 기술 발전과 부품 대량 생산으로 인해 극복됐다. FM은 AM보다 잡음에 더 강하고 음질이 훨씬 더 좋았기 때문에 음악 방송의 주류로 등극했다. 잡음은 주파수보다는 진폭을 건드리는 게 더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주파의 특성상 FM은 지형이나 날씨의 영향을 더 타면서 난청 가능성이 AM보다 더 높다.

2. 자매품: 적외선 통신

한때..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옛날 노트북이나 피처폰급 휴대전화에는 '적외선 통신'이라는 기능이 있었다.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같은 극초단파 기반의 통신 규격이 제정되기 전에.. 전파보다 파장이 더 짧은 적외선을 전용 다이오드 반도체로 쏴서 초단거리에서 일종의 무선 광통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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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전파 통신과는 기술적인 성격이 좀 다른데, 그 구체적인 내역은 내가 잘 모르겠다.;;
고주파의 특성상 대역폭이 넉넉하며 통상적인 전파 규제도 없는 반면.. 사정거리가 겨우 수 m대로 극도로 짧다. 그리고 그 짧은 신호가 잘 퍼지지도 않기 때문에 송신기와 수신기는 서로 방향 조준도 잘 해야 한다.

적외선 통신은 지금도 각종 리모콘, 자동문 센서, 스마트키나 하이패스 단말기 같은 소형· 단거리 전자기기의 통신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현역이다. 리모콘은 방향을 돌려 놓으면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경험상 알고 있다. =_=;;

Posted by 사무엘

2023/01/09 08:35 2023/01/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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