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주 통신망

인류는 19세기에 전깃줄을 이용한 전화라는 유선 통신 기술을 발명해 냈으며, 20세기 초에는 아예 전자기파를 이용한 장거리 무선 통신 기술까지 개발했다.
그리고 1960년대에는 통신 위성 덕분에 아예 둥근 지구의 반대편으로 전화와 TV의 전파를 실시간으로 주고 받는 게 가능해졌다. 위성 생중계가 최초로 시작된 올림픽이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이었다고 그런다.

그러니 유선 전화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무선 전화도 오래 전부터 있긴 했다. 단지 기계값과 시간 당 통화료가 아주 비싸기 때문에 자동차나 선박에 장착되는 사치품 내지 아주 특수한 물건으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말부터는 그냥 전국민 1인 1휴대전화 시대가 시작됐다. 이를 위해서 전국 곳곳에 휴대전화 기지국이 건설되었으며, 각종 건물과 지하철 내부에도 중계기가 설치되었다.

전깃줄 중에 진짜로 전기를 보내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굵은 송전선은 지상의 산들과 철탑 위로 아주 높고 길게 뻗어 있다. 요즘 만드는 도시들 내부에서는 지중화되어서 지하로 지난다.
다음으로, 동축 케이블이니 광섬유 케이블이니 하는 이름으로 데이터 통신을 담당하는 전깃줄들은 대륙과 대륙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바다 밑으로 쫙 깔려 있다. 해저 지진이 나서 이런 케이블이 파손되면 주변 국가들의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인간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지구 곳곳에 깔아 놓은 통신 인프라를 생각하면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민간보다는 군용에 더 가까운 레이더(radar) 관련 기술도 말이다. 따지고 보면 레이더의 발명은 비행기의 발명 그 자체만큼이나 비행기의 운용· 관제 방식과 공중전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일본에서는 자국인 과학자/공학자가 아주 훌륭한 레이더용 안테나(야기-우다 안테나)를 발명했는데, 그걸 군부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병크를 저질렀다. 그래서 정작 적국인 연합국(영국)이 그 기술을 활용해서 전쟁에서 일본을 관광 태웠다는 안습한 일화까지 전해진다.
레이더도 원래 레이저(laser)처럼 복잡한 단어들 이니셜로 만들어진 단어이지만, 지금은 그 자체가 새로운 형태소처럼 쓰인다.

그런데 경이로운 통신 기술은 지구 대 지구 스케일만 있는 게 아니다. 지구 대 우주 분야도 있다.
까놓고 말해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 승무원들의 활동 동영상은 어떻게 해서 지구로 실시간 중계될 수 있었을까?
뉴 호라이즌스 호가 보낸 명왕성 사진은 어떻게 해서 지구로 잘 전달될 수 있었을까?
신호가 가는 데 편도로만 17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보이저 탐사선은 어떻게 지금도 지구와 교신이 되고 있을까?

우주로 나가려면 적도 근처에다 우주 센터와 발사대를 만들고 로켓만 죽어라고 쏴 올릴 게 아니라, 로켓에 실린 탐사선이 보내 주는 정보를 넙죽넙죽 잘 받기 위한 통신 시설도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 NASA에서는 진작부터 Deep Space Network(심우주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전파 수신용 거대한 접시형 안테나 기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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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중반까지만 해도 우주는커녕 지구 표면의 남극이나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탐험하는 사람들과도 실시간 무선 통신이 가능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생사를 곧장 확인할 수 없었다. 주변 풍경 인증샷은 탐험가들이 카메라로 찍은 뒤에 무사 귀환할 때까지 필름을 반드시 잘 간수해야만 전해질 수 있었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 탐사가 그런 식으로 답답하게 진행되지 않고 전세계 텔레비전으로 전파를 타고 생중계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안테나 기지는 로켓이 실제로 발사되고 수많은 관중들이 몰리는 우주 센터보다는 존재감이 훨씬 덜하다. 하지만 이런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우주 탐사의 숨은 일등공신이라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NASA 내부에서 이 안테나 기지를 관리하는 부서는 '제트 추진 연구소'이다. 이름만 봐서는 만년 발사체 연구만 할 것 같은 곳에서 통신망까지 연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겠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프라의 대부인 전 길남 박사/교수도 젊은 시절에 저기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저기는 비행기용 제트 엔진(터보 팬 같은..?)을 연구하는 곳이 전혀 아니다. 엄연히 산화제까지 같이 들어있는 우주 발사체용 로켓 엔진의 연구가 본업이다. 하지만 저 연구소가 처음 생겼던 당시에는 '로켓'이라는 단어가 그리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이 저렇게 붙은 것이다.

비슷한 다른 예로는 IBM이 있다. 이름에 '컴퓨터, 정보' 같은 단어가 들어가기에는 역사가 너무 긴 기업인 관계로, 오늘날까지도 고작 '국제 사무용품 기기'라는.. 마치 국제시장 같은 매우 낡은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워낙 넘사벽급의 기술과 인지도를 자랑하는 세계구급 기업이니 이름 따위는 바꿀 필요가 없다.

제트 추진 연구소 때문에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는데, 다시 안테나 얘기로 돌아오기로 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들 기지에 만들어진 안테나는 지름이 30m대 내지 70m대까지 있을 정도로 매우 거대하다.
그리고 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이 대략 120도대의 경도 간격으로 세 군데가 존재한다. 그래야 임의의 지표면에 도달한 전파가 지구의 자전에 구애받지 않고 셋 중 적어도 한 곳 이상에서 언제나 수신 가능하기 때문이다.

  •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 바스토우 모하비 사막 (UTC-08:00)
  • 스페인 마드리드 (UTC+01:00)
  •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UTC+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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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지구를 북극점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에서 세 기지가 감지 가능한 신호 영역을 나타낸 것이다.
가령,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신호를 최초로 잡아서 전세계에 타전한 곳은 미국이 아닌 오스트레일리아 기지였다. 미국에서도 잡히긴 했지만 저쪽이 신호가 더 또렷했다고 한다.

보행자와 차들로 북적대는 육지의 도로와 달리, 비행기가 순항하는 공중이나 배가 항해하는 공해는 장애물이 없다시피하다.
하물며 우주의 스케일은 지구를 훨씬 능가한다. 우주는 정말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방대 광대하게 텅 빈 공간이다. 태양계 행성들의 크기는 행성들 간의 거리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 탐사선은 한번 가속을 한 뒤엔 관성으로 한없이 등속 운동만 하면 되며, 전파도 그냥 조준만 잘 해서 쏴 주면 지구나 탐사선에 도착하는 건 그냥 시간 문제일 뿐이다. 다른 장애물에 부딪칠 걱정은 사실상 할 필요가 없다.

우주 공간에서 지구와 탐사선의 사이에 물리적인 장애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건 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외행성 탐사선의 경우, 지구와 워낙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전파도 진행하는 동안 점점 넓게 퍼지고 신호가 약해진다. 게다가 지표면에서는 주변에 숱하게 돌아다니는 지구 발 노이즈들을 걸러내고 그 약한 우주 발 신호만 증폭해서 받아야 한다.

신호를 보낼 때야 지구에서 최신 설비로 최고 출력 고주파로 그나마 최대한 빵빵하게 쏘겠지만, 가녀린 탐사선에서 지구로 보낸 신호를 받는 것은 정말 보통일이 아닐 것 같다.
안테나가 괜히 저렇게 거대한 게 아니다. 그나마 지금은 기술의 발달 덕분에 옛날 같은 지름 70m짜리는 필요하지 않고 30m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런다.

그나마 보이저보다 나중에 더 최신 기술로 발사됐고 지구에 훨씬 더 가까이 있는 뉴 호라이즌 호도 거기서 지구까지 전파가 도달하는 데 4~5시간을 잡아야 한다. 그런 propagation delay와는 별개로, 데이터의 전송 속도도 초당 수백 바이트, 1980년대의 2400~9600bps 모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거리가 너무 멀고, 탐사선의 전파 출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건 뭐 어쩔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탐사선은 자기 메모리에 저장해 놓은 수십 GB에 달하는 사진들을 지구로 찔끔찔금 보내느라 그야말로 세월아 네월아 애써야 했다.
propagation delay인 4~5시간만 지나고 나면 지구에서 인터넷 하듯이 고화질 명왕성 사진이 짠~ 뜨는 건 인류의 기술로는 아직 가능하지 않다.

지구가 둥글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빛의 속도조차도 느리다는 걸 실감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자기 전공과 생업에 대해서 무슨 생각이 들지 궁금해진다.
더 나아가 달 같은 데서 지구의 인터넷을 연계해서 쓰는 게 가능해질까? 흥미로운 상상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9/04/18 08:31 2019/04/1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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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통신 기술이 옛날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정도로 눈부시게, 폭발적으로 발달했다.
전화기만 해도 처음 발명됐던 시절엔 가히 혁신 혁명이었는데 오늘날은 무전기를 넘어 휴대전화와 인터넷까지 일상이 됐으며, 무선 인터넷이 10~15년 전의 유선 인터넷보다 더 빠른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작은 기기로 글과 음성은 말할 것도 없고, 고화질 사진과 동영상을 아날로그도 아닌 디지털 형태로 지구 반대편으로 즉시, 당연한 듯이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런 기술이 없던 옛날에는.. 국가 차원에서 긴급한 상황을 빨리 알리기 위해 봉화와 파발이 쓰였다. 봉화는 전파 속도가 비교적 빠른 대신, 전할 수 있는 게 불/연기의 on/off 정도이니 정보량으로 치면 겨우 두어 비트 남짓한 정말 최소한의 상태밖에 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봉화가 빨라 봤자.. 조선 시대 기준으로 제일 이상적인 상황과 근무 조건을 가정했을 때, 부산에 적이 침입했다는 소식이 봉화들을 거쳐서 400km가 넘게 떨어진 한양의 조정까지 전해지는 데 대략 두세 시간 정도 걸렸을 거라고 그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휴대폰 기지국도 없고 전화선도 없던 시절엔 이런 식으로 위급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파발은 사람이 말 타고 현장까지 물리적으로 달려가서 문서를 전하는 것이니 정보량은 많지만 속도가 거북이 수준일 수밖에 없다. 길목에는 지친 말을 교체해서 바꿔 타는 곳이 일정 간격으로 갖춰져 있었다.

이런 봉화와 파발은 내륙에서의 통신 수단이다.
교통과 통신의 관계를 생각해 봤을 때, 파발마는 통신을 위한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선박 같은 업계에는 '교통수단 간의 통신'도 필요하며, 이와 관련된 표준 규격이 오래 전부터 제정되고 쓰여 왔다. 전파를 이용한 통신 기술이 발명되기 전부터 말이다.

철도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한 폐색 구간에 둘 이상의 열차가 절대로 동시에 진입하지 않게 하기 위한 통신· 안전 장비가 도입되었다.
선박이야 조향이 가능하므로 철도 같은 그런 경로상의 제약은 없다. 하지만 걔네들은 인간이 환경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망망대해를 돌아다닌다! 바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을지 알 수 없고 무슨 정체불명의 괴선박 유령선과 마주칠지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철도와는 사정이 다르다.

비행기의 경우, 위급한 상황에서 비상 착륙은 어느 나라에서든 인도적인 차원에서 무조건 허용하게 되어 있다. 굳이 기체의 이상이 아니라 기내에 응급 환자라도 발생하면 아까운 연료를 버리기까지 하면서 착륙하게 된다.
그것처럼 망망대해에서 조난 신호를 보낸 선박이 있으면 신호를 받은 근처의 다른 선박이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달려가서 구해 주도록 국제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

이건 의무이기 때문에, 정당한 사유 없이 고의로 그 요청을 외면한 선박은 나중에 처벌 받는다. 어떤 경우건 일단 사람 목숨은 구하고 나서 그 다음에 구조자들이 자기 일을 못 해서 손해 본 비용을 관계자나 보험사를 상대로 청구하든가 말든가 한다.
꼭 조난 말고도.. 거대한 선박들이 나눌 만한 질문· 응답 내지 주변에 전파하는 자기 상태 정보는 패턴이 뻔히 정해져 있다.

  • 본선은 후진 중이다.
  • 본선 주변에 사람이 바다에 빠져 있다, 또는 잠수부가 작업 중이다. 그러니 주의하라.
  • 본선은 지금 통제가 안 되고 있으니 접근하지 말라.
  • 당신 즉시 정지하라.
  • 도와달라, 도선사를 보내 달라 등등..

여객기에는 자신이 테러리스트에게 장악당해 있음을 외부에 알리는 불빛 표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택시도 지붕의 택시등이 평소와 달리 뻘겋게 번쩍거리는 건 기사가 택시 강도를 만났다거나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리는 표식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상태를 비언어적인 간편한 수단을 동원하여 잘 보이고 잘 들리게 표현하고, 때로는 간단한 임의의 written language까지 전하는 체계가 선박 쪽은 일찍부터 훨씬 더 정교하게 발달했다. 뭔가 수화 같은 느낌이 드는데.. 선박의 항해사 내지 조타수라면 이 규약은 당연히 달달 외워서 골수에 박혀 있어야 할 것이다.

1. 가장 먼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신호기(signal flag)라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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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깃발들은 무슨 국기가 아니라 A~Z까지 알파벳을 의미한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백지에다 커다랗게 알파벳을 그려 넣고 펄럭일 법도 해 보이는데, 누가 왜 언제 무슨 계기로 이런 도안을 따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가독성· 시안성 면에서 장점이 있으니까 만든 게 아닐까?

알파벳 26자 말고 숫자와 특수 용도 깃발도 더 있어서 신호기 한 세트는 총 40종류의 깃발로 구성된다. 그리고 모든 신호기 도안은 빨노파+흑백 이렇게 5종류의 색만 써서 그려져 있다. 딱 삼원색+무채색.. 한국어에서 용언이 존재하는 기본색들로만 그려졌다는 뜻이다.
아래의 퇴역 군함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깃발들은 만국기가 아니라 다 신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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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깃발들은 알파벳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단독 또는 두 종류가 결합되어서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A는 "본선 주변에서 잠수부가 작업 중이니 천천히 통과하라"이고, B는 "위험물 운반/하역 중"이다. 예/아니요는 Y/N이 아니라 C/N이다.

이런 것들이 규약이 다 정해져 있다.
또한, 알파벳을 "에이 비 씨"(영국/미국)나 "아 베 체"(독일) 같은 특정 언어대로 읽는 게 아니라 "알파, 브라보, 찰리, ..." 식으로 더 튀게 읽는다. '델타'(D)처럼 비슷한 그리스 문자의 독음에서 따 온 것도 있지만 모든 글자가 그런 건 물론 아니다. 에코(E)는 국내에서도 2와 E를 구분하기 위해서 쓰인다. 유니코드 코드값 같은 16진수를 다룬다거나 자연상수가 등장할 때 말이다.

한국어만 해도 굳이 2와 e가 아니어도 숫자 '삼'과 '사' 같은 건 헷갈리기 쉽다. 그래서 주유소 같은 데서는 '잉이삽산' 식으로 받침 발음을 왜곡해서 clearify하지 않던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알파벳의 발음도 '엠'과 '엔' 같은 건 시끄러운 곳에서 청각적으로 명확한 분간이 어렵다. 거기에다 언어 중립성 같은 문제가 있기도 해서 저런 국제 명칭이 따로 제정된 듯하다.
한자에는 숫자의 변조를 막기 위해서 갖은자라는 게 존재하는데, 글자 언어가 아닌 말소리 언어에서는 발음의 혼동을 막기 위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는 게 흥미롭다.

2. 그리고 다음으로 수기 신호(flag semaphore)가 있다.

이건 동일한 도안인 깃발이 두 개 있고 그걸 사람이 양팔로, 마치 시계의 시침과 분침처럼 각각 어느 각도로 들고 어떻게 흔드느냐에 따라 표현하는 글자가 달라지는 체계이다. 수기용 깃발은 바다에서는 빨강+노랑, 육지에서는 하양+파랑으로 정해져 있지만, 사실 깃발 자체보다는 사람의 팔이 변별 요소 역할을 한다. 깃발은 신호수의 팔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더 분명히 드러내 주는 역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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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신호는 깃발 두 개만 있으면 되니 전용 신호기보다는 준비물이 단순하다. 하지만 표현 가능한 정보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숫자의 신호와 알파벳의 신호가 동일하다. 그래서 이 신호가 문자인지 숫자인지를 나타내는 수기를 먼저 보여준 뒤 다음 글자가 이어진다.

3. 끝으로, 발광 신호와 모스 부호가 있다.

'신호기'라고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무슨 철도 신호기 같은 물건이 떠오른다만.. 저기서 기는 당연히 旗(banner)이지, 機가 아니다. 그리고 신호기건 수기건 다 깜깜한 밤이나 짙은 안개처럼 시야가 제한된 곳에서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때는 커다란 헤드라이트 같은 조명을 상대방 선박에게 비추고 이걸 주기적으로 깜빡여서 신호를 보낸다. 저런 A~Z, 0~9 같은 숫자를 그 이름도 유명한 모스 부호계로 인코딩 하고, 깜빡이는 시간 간격으로 돈(점)/쓰(선)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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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부호는 잘 알다시피 전신을 보낼 때 사용되지만, 가까이 있는 선박끼리는 저렇게 눈에 보이는 빛의 형태로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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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부호와 점자는 무슨 관계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난 모스 부호는 뭔가 허프만 트라이(trie)처럼 여러 글자들을 쭉 늘어놓아도 모호성이 없는 binary 부호 체계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살펴보니 그렇지 않더라. 글자 경계 구분을 따로 해 줘야 한다. 가령, 돈만 4개 늘어놓으면 H가 되기 때문에 E(1개), I(2개), S(3개)는 사이에 구분자를 넣어 줘야 표현 가능하다.

옛날에 울펜슈타인 3D 게임에서도 어떤 레벨의 BGM에는 '띠디디.. 띠 띠디..' 이렇게 히틀러를 제거하라는 지령의 모스 부호가 비프음 형태로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월남전 때 베트콩에게 포로로 붙잡혔던 어느 미군이 말은 위에서 억지로 시킨 대로 하지만, 눈을 깜빡이는 걸로 torture(놈들이 포로들에게 고문을..)이라는 단어의 모스 부호를 표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정도면 교묘하게 숨겨진 모스 부호는 추리 소설에서 다잉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고 문제의 해결 단서까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재래식 우체통 편지도 간신히 오늘 내일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마당에 전보 서비스가 아직도 있긴 한가 보다. 본인은 지난 2000년, 정보 올림피아드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교회 어르신에게서 축전을 받았던 게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보라는 걸 접한 경험이었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유한한 개수의 문자를 어디서나 편리하게 주고받을 수 있게 부호화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는데 동양의 한자라는 문자는 이런 실용성과는 너무 안 어울려 보이는 게 사실이다.

끝으로, 본인이 갑자기 이런 재래식 선박 신호 체계를 찾아 본 이유를 얘기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 6· 25 개전 초기의 대한해협 해전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 "J.F (너의 국기를 게양하라.)"
  • "N.H.I.J.P.O (너의 국적을 제시하라.)"
  • "I.J.G (언제 어디를 출항하였는가?)"
  • "L.D.O (목적항구가 어디인가?)"
  • "K (정지하라)"
  • "O.L (정지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이런 것들.

관련 이야기들을 찾아보면 그 당시 우리나라 해군이 북괴 선박에게 실시했던 구체적인 검문 절차를 알 수 있다. 그땐 날이 저물어 있었기 때문에 수기 다음으로는 발광 신호로 저 글자들을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 알파벳 이니셜들이 의미하는 게 뭔지 궁금해졌다. 저 이니셜들은 대한해협 해전 이야기 말고 다른 어떤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재 사용되는 신호용 알파벳과 의미들은 1969년에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제정된 거라고 한다. 그러니 6· 25 전쟁 당시와는 체계가 다르다.
그럼 옛날 신호 체계는 어떠했는지 검색을 해 보면.. International Code of Signals 1931년판이라는 게 나온다. 하지만 너무 옛날 책이어서 그런지 인터넷 상으로 내용을 열람할 수는 없어 보인다. 천하의 구글도 이 책을 스캔 뜨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 이니셜들이 정말로 그때 국제적으로 통용되었던 신호가 맞는지는 본인은 아직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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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9/02/10 08:33 2019/02/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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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포 2019/02/11 10:24 # M/D Reply Permalink

    그나마 비행기들은 비교적 근현대에 나와서인지 무선 통신이 필수여서 그런지 영어를 공용어로 정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것 같더라구요. 다행(?) 이지요.
    유튜브에 비행기, 관제탑 간의 대화들을 단편적으로 모아서 올리는 채널들이 있는데요, 막상 또 거기서 들어보면 종종 영어를 잘 못해서 관제탑한테 혼나는 기장(대체로 대륙 출신...)들도 있더라구요 ㅋㅋ 국제적 교통이라는게 참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이다 보니 저런 교통수단 간의 의사소통 방법까지는 숙지하고 잘 구사하는 수준을 갖췄으면 참 좋겠네요.

    1. 사무엘 2019/02/11 11:17 # M/D Permalink

      네, 그렇죠. 비행기는 인류의 역사와 비교했을 때 굉장히 최근에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워낙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비행 중엔 선박처럼 맨눈으로 확인하는 통신 수단이 아무 의미가 없죠. 무선 통신이 필수이겠습니다.
      마치 같은 컴퓨터여도 모바일 개발 환경(언어, 프레임워크)은.. 수십 년(!)에 달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PC에 비해 온갖 지저분한 레거시나 호환성 요소가 없고 굉장히 깔끔한 것과 비슷한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관제탑이나 비행기에서 일하는 거.. 참 멋있지요. 같은 영어 단어를 써도 어감이 서로 다르게 전달돼서 오해가 발생하고 그게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 적도 있기 때문에 이런 교신 언어는 닥치고 단순명료해야 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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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라는 게 2010년대부터야 (1) 표면 대부분이 그냥 터치식 액정 화면인 스마트폰이 주류가 됐다. 그보다 약간 전 2000년대 과도기에는 피처폰이 있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작은 전화기인 (2) 폴더식 휴대전화도 있었다. (뭐, 특수한 소비자 계층을 위해 폴더형 스마트폰도 있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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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는 본체는 건물의 전화선에 연결돼 있고, 송수화기가 거기로부터 반경 몇십 m 정도까지는 떨어져 있어도 되는 (3) 무선 전화기가 많이 쓰였다. 무선 이전에는 당연히 유선이었고. 대략 1990년대의 얘기다.
전화기 송수화기와 본체를 연결하는 선은 여느 케이블과 달리, 유난히 굵고 꼬불꼬불한 형태였던 것 같다. 여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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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의 숫자 버튼들은 눌렀을 때 들리는 삑삑 신호음의 음높이가 각 숫자마다 모두 달랐다. 절대음감 황금귀는 그 음만 듣고도 무슨 숫자가 눌렸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반면 디지털 도어락은 저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될 테니, 모든 버튼의 음높이가 당연히 동일하게 맞춰져 있다.

뭐, 그 시절에도 진정한 의미의 무선 전화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카폰 같은 건 고가의 사치품으로 쓰였다. 우등 고속버스 안에는 1993년부터 무려 이동식 공중 전화기가 비치되기도 했다. 이용/통화료는 도입 당시에 40초당 100원이었다는데, 길거리의 공종 전화보다는 분명 더 비쌌을 것이다.

더 옛날, 한 1980년대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제 (4) 전화기의 숫자 버튼은 다이얼로 바뀐다. 다이얼은 한번 돌렸다가 되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버튼만치 번호를 빠르게 입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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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엄청 어린 시절에 다이얼 전화기를 써 본 기억이 있다. 요런 고전 전화기는 전화가 왔을 때 금속판이 부딪치면서 그 특유의 따르르릉~ 소리가 났다. 하긴, 옛날에는 초인종만 해도 요즘 같은 전자음 일색이 아니라 진짜 금속판이 부딪치는 청명한 딩동 소리가 났었는데.. (말 그대로 종)

이것보다 더 옛날 전화기는 거의 1960년대와 그 이전의 골동품이다. 여기부터는 본인이 실물을 직접 구경하거나 사용해 본 적이 없다. (5) 전화기가 새까만 상자 모양인데, 어딜 봐도 숫자를 입력하는 부분이 안 보인다. 그 대신 옆구리에 옛날 자동차의 수동식 윈도우처럼 뭔가 돌리는 손잡이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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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려 발전기와 연결된 손잡이라고 한다. 이걸 뱅글뱅글 돌리면 약한 전류가 생겨서 전화국으로 신호가 가고, 교환원과 연결되는가 보다. 그래서 송수화기를 들고 교환원에게 전화번호를 "구두로 전달"하면, 교환원이 그 전화번호로 연결을 해서 발신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준다고 한다. 그렇게 통화가 성사되고, 전화비는 물론 발신자에게 청구되는 식...??? >_<

전화번호 숫자를 사람에게 불러 줘야 했다니 그 불편함과 번거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다.
하긴, 다이얼식 전화기가 도입된 뒤에도 시외 장거리 통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교환원을 불러야 했다. 이렇게 말이다. (1968년도 대한뉴스 제 665호)
국내에서 지역 번호가 도입되고 이 절차까지 전국적으로 완전히 자동화가 된 건 1987년경의 일이라고 한다.
전화 교환원 내지 교환수는 타자수, 안내양만큼이나 20세기 중반 옛날에나 있었던 여성 위주의 직업이었다. 그러다 20세기 후반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또한, 이 시점에서 전화기의 전원 공급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휴대전화야 당연히 배터리가 있어야 하고 주기적으로 충전을 해야겠지만, 유선 전화는 사정이 좀 달라서 전화선이 통신 겸 전원 공급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의 유선 전화기는 전통적으로 타 전자 기기와 같은 100/220볼트 전원 플러그를 갖추고 있지 않았으며, 딱히 전원 on/off 버튼 같은 것도 없다. 그리고 건물이 정전됐을 때에도 전화는 여전히 사용 가능하다. 신기하지 않은가?

물론 유선 전화도 전화선 케이블을 뽑아 버리면 먹통이 되겠지만, 그래도 "수신자의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 이런 말은 유선 전화보다는 무선 휴대전화로 오면서 훨씬 더 자주 듣게 된 에러 메시지이다.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유선 전화에서는 가입된 모든 전화들이 교환국에서 쏴 주는 동일한 전원을 송· 수신용으로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공동 전지식'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하는 게 사실 속 시원하고 편하다.

그런데 전화라는 게 처음 등장했던 시절에는 이런 인프라가 없었다. 그렇다고 전화기가 외부 전원을 따로 끌어다 쓰지도 않았기 때문에 전화를 걸려면 사람이 손으로 소형 발전기를 돌리는 막장짓을 해야 했다. 옛날에 자동차에 스타터 모터가 없던 시절엔 밖에 노출된 엔진 플라이휠을 사람이 직접 힘들게 돌려서 시동을 걸었던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 시절에 옛날, 특히 군용 전화기는 전기 고문 도구(!)로 즐겨 쓰이기도 했다. 전화선을 통신용으로 안 쓰고 사람 몸에다 꽂은 뒤, 전화기 손잡이를 열나게 돌려 주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교환국에서 전기를 쏴 주니 전화기에서 전류를 직접 생산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역으로 일반 전원 플러그 대신에 전화선으로부터 전기를 빼돌려 쓰려는 수작이 적발되는 경우가 있다고 그런다.

이건 벼룩의 간을 빼 먹는 짓이다. 전화기가 동작하는 데에나 적합한 최소한의 전압(20~40V 남짓)과 전력으로 누군가가 비정상적인 exploit을 시도하면 그쪽으로 과부하가 걸린다. 마치 송유관에서 비정상적으로 유압이 감소하는 지점을 중앙 통제실에서 감지해서 기름 유출과 절취를 적발하듯, 전화선 전류의 오용도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이다.

참고로, 1980년대 초반까지는 전화선 플러그 자체가 100V 플러그와 동일한 모양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전화기를 진짜 100V 전원 플러그에다 꽂으면 기기가 과전압 때문에 타 버렸다.
그러다가 전화 플러그는 220V 같은 둥근 쇠막대를 가로 세로 두 줄 총 네 개씩 꽂는 형태로 바뀌었다.

전화기의 전원 얘기가 꽤 길어졌다.
아무튼, 저것보다 더 옛날 구식 전화기를 찾자면 거의 1940년대 일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분명 가정용 전화기임에도 (6) 지금의 공중전화처럼 거대하고 표면이 목재(...)이며, 송수화기가 분리되어 있는 그 물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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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사극에서 주재소에서 일본 헌병이 양손으로 송화기를 입에, 수화기를 귀에다 댄 뒤, "무시무시~?" 이러는 장면이 떠오를 것만 같다.
옛날에는 이런 원시적인 전화기조차도 일반 서민이 장만할 만한 물건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텔레비전만 해도 1950년대 말~1960년에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옛날 KBS의 전신 방송사에서 방송을 최초로 시작했을 때는..
주 겨우 4회에 저녁 6시 반부터 9시까지 꼴랑, 겨우 2시간 반씩만 방송을 했다. 그래 봤자 인서울 말고는 전파가 가지도 않았고, 서울 안에서도 TV 수상기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 부유층밖에 없었다. 그 시절에 따로 뉴스 영화라는 게 괜히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자막 같은 보조 영상 처리는 카메라 바로 앞에다가 스케치북을 비추기도 하는 등 정~말 미흡하고 허접하기 그지없었으며, 물자가 부족하니 대부분 생방송이고 녹화분 백업 같은 것도 없다시피했다. 오늘날 TV의 영향력과 대조해 보자면 그 시작은 심히 미약하기 그지없었는데.. 그것처럼 전화기 역시 아주 귀하고 한편으로 다루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자, 우리는 지금까지 스마트폰에서 버튼/다이얼 유선 전화기, 수동 발전기가 달린 전화기까지 시간 여행을 해 보았다. 전화기의 모양이 워낙 드라마틱하게 변화했기 때문에 요즘 10대 어린애들은 ☎ <- 이게 어째서 왜 전화기인지도 이해하지 못할 지경이 돼 있다. 마치 저장 아이콘이 왜 디스켓 모양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는 '전화기'보다 더 거시적인 전화 시설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다.

1899년 9월에 한반도 땅에 최초의 철도 경인선이 개통한 것보다 몇 년 전.. 1895년 9월에 한성-제물포(= 서울-인천)간에 모스 부호 전신이 개통했으며 1896년에 음성 통화가 되는 자석식 전화기가 왕궁 위주로 설치됐다고 한다.
그 뒤 한성-제물포 사이의 시외 음성 통화가 가능해진 것은 1902년이다. 그래 봤자 전화 가입자는 극소수 부유층뿐이었다.

김 구가 소싯적에 일본인 상인을 죽이고(일명 치하포 사건) 감옥에 갇혔을 때, 고종 황제가 갓 개통됐던 전화로 긴급 명령을 내려 사형 집행을 중단시켰네 뭐네 하는 기록이 백범일지에 적혀 있다. 하지만 아직 1900년도 되기 전이던 그때는 고증상 시외 전화 같은 게 없었다는 반론이 있으며, 한편으로는 고종이 전화 통화가 아니라 전보로 명령을 내린 것이라는 재반론도 있다.

우리나라의 전화의 개통과 관련하여 이런 유명한 논란거리도 있다는 게 흥미롭다. 백범일지 기록이 미주알고주알 세부적인 디테일까지 다 정확하지는 않으며, 최악의 경우 주작이 들어갔을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전화기는 자동차보다야 저렴한 물건이겠지만 이게 집집마다 빠짐없이 보급된 건 생각보다 최근의 일이다. 최소한 박통을 지나서 1980년대 전대갈 시절은 돼서야 마이카 시대와 비슷한 타이밍에 보급됐다.
자동차 등록 대수 1천만 대 돌파가 1997년의 일이고 2천만 대 돌파는 지난 2014년경인데, 전화 1천만 회선 돌파는 1987년 9월경에 이뤄졌다. 2천만 회선 돌파는 더 이른 1993년 11월이다. 1가구 1 전화를 넘어 2전화까지 달성된 셈이다.

그러니 옛날에는 전화번호부 책 한 권으로 시· 도의 전화 가입자 전체 명단을 쭉~ 나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리스트가 너무 방대하고 별 효용이 없으며,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명단을 만들지 않는다.
또한, 2천만을 찍고 나서 2010년대 이후로는 무슨 4천, 5천만 회선을 돌파했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인구가 그만치 무한한 게 아니니 2900만 회선 정도에서 정점을 찍은 뒤 3천만은 돌파하지 못하고 이제는 감소 추세라고 한다.

전화번호라는 게 기본적으로 4자리 숫자이고 그 앞에 일명 '국번'이라고 불리는 전화 교환국의 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부르는 포맷도 이것 영향을 받아서 단순히 'xx 다시(dash) yyyy'가 아니라, 'xx국에 yyyy' 이런 식이었다.
지금이야 국번이라 불리는 앞쪽 번호가 기본이 3자리이고 대부분 4자리까지 차지하여 번호의 자릿수와 대등하다. 하지만 옛날에 전화 회선수가 적던 시절엔 국번이 정말 씨크하게 한 자리밖에 없던 시절도 있었다.

자동차의 번호도 기본이 4자리 숫자리고 앞 번호가 지금은 2자리인데 이제 번호가 부족해서 3자리로 확장하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 옛날에는 자동차의 앞번호도 한 자리였던 것이 지금의 전화번호와 사정이 비슷해 보인다.

유독 전땅크 시절에 국내에 전화가 폭발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던 것은 1985년, 우리나라에서 대용량 전화 전전자(全電子) 교환기를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무선 휴대전화까지 보급된 지금의 입장에서야 구닥다리가 됐지만 그 시절엔 국번 내지 지역번호만 보고는 전국에서 폭주하는 그 어떤 전화 트래픽에도 자동으로 대처하여 회선 교환을 자동으로 해 주는 최첨단 장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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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1982년부터 ETRI에서 연구진들이 "이 정도 시간과 자금을 투입하고도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각서까지 쓰고 굉장한 모험을 감내하며 개발한 것이었다. 승용차 포니, 경부 고속도로, 한국형 고속철, 포항 제철 등에 필적하는 중요 과업이었다. 거의 이런 근성으로 연구진들을 갈아넣은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

  • 1950년대 월드컵 한일전에 처음 출전할 때: 왜놈들한테 졌다가는 대한 해협을 헤엄 쳐서 귀국하겠습니다.
  • 포항 제철 처음 만들 때: 이건 우리 선조들의 피눈물이 담긴 일제 피해 배상금을 밑천으로 만드는 거다. 실패라도 한다면 우리 다같이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뛰어내려서 죽자.
  • 전화 교환기: 지금 얘기하는 대로..

어쨌든, 이게 개발이 성공하고 1986년에 상용화된 뒤에야 수동 교환원이라는 직업이 완전히 확인사살 퇴출되었으며, 전국 통합 지역번호라는 게 도입되어 장거리 시외 전화도 돈만 더 들 뿐 편리하게 걸 수 있게 되었다. 총기가 격발· 급탄 절차가 완전히 자동화되어서 원시적인 화승총이던 것이 기관총으로 변모한 것과도 같다.

전자식 교환기가 개발되기 전에는 장거리 전화를 거는 게 불편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늘어나는 전화 가입 수요 자체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무슨 최신형 아이폰을 구입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전화 개통 예약 대기가 몇 달~1년치까지 밀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회선을 하나 추가할 때마다 전화 시설 측면에서 늘어나는 부담이 만만찮았던 것 같다.

그러니 이미 전화 회선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위화감이 커졌으며, 196, 70년대에는 전화 회선을 무슨 명절 귀향 열차 암표처럼 타인에게 편법으로 양도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전기통신법이 개정되어 전화 회선의 타인 양도가 뒤늦게 금지되긴 했지만, 새로 개설되는 회선에만 이 제약이 적용됐기 때문에 일명 백색 전화(양도 가능. 1970년 8월 이전 가입의 기존 전화) 청색 전화(양도 불가..) 촌극이 벌어졌을 정도였다. 당연히 전자의 가격은 폭등했다.

전화 자동화 사업 완료를 기념하는 1987년자 홍보 영상은 다음과 같다. (대한뉴스 제 1651호)
이것 역시 한번 만들고 끝이 아니라 처리 가능 용량을 더 증가한 업그레이드 시스템을 계속해서 개발하여 추후의 회선 증가에도 대처해 왔다.

ETRI에서는 무려 1982년에 국내 최초로 인터넷 연결도 해냈고(전 길남 박사 연구팀),
1988년엔 삼성 전자에서 국내 최초로 벽돌만 한 휴대전화를 만들어 내고.. 그게 나름 국내에서 세계 최첨단을 달린다는 전자 통신 연구진들이 그 시절에 하던 일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는 지역번호가 도 단위로 통합되어 더 단순해졌으며, 자동차 번호판은 영업용 말고 자가용 한정으로 지역 표기가 없어졌다.
이런 인프라를 바탕으로 기존 유선 전화와 무선 휴대 전화의 통합은 어떻게 이뤄졌으며, 발신자 표시 같은 기능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도 개인적인 의문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도로나 철도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항로, 그리고 광케이블(땅 속+바닷속) 내지 송유관의 배치는 어찌 되고 관리가 어찌 되고 있는지 같은 것도 궁금해진다. 전화와 통신 기술의 발달도 자동차 같은 교통 분야의 기술 발달과 연계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끝으로 하나 더.. 전화기는 지금까지 주로 다뤘던 개인용만 있는 게 아니라 회사 같은 데서 쓰는.. "내선 연결" 인터폰 기능이 있는 약간 특수한 물건도 있다.
스마트폰 모양도 아니고 여전히 구닥다리 유선 버튼식이지만, 대표 전화번호 하에서 각 자리별로 전화를 세부적으로 걸 수 있으며, 남에게 내 전화를 전달하거나 남에게 온 전화를 자기가 대신 받을 수도 있다. 회사에 취직하면 처음에 이런 전화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실, 별표*와 우물정# 버튼도 원래 이런 특수한 용도를 위해 만들어져 있다.

텔레비전도 전파를 받는 게 아니라 그냥 고정된 위치만 보여주는 CCTV라는 게 있고, 인터넷 세계에도 사내 전용망인 인트라넷이 있다. 그런 것처럼 전화에도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좀 local한 용도가 있는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26 08:36 2018/09/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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