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늘어놓는 철도 덕질 썰이다.

1. 역명

(1) 서울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 역이 '자양'이라고 개명됐다. 이건 옛날 7호선 건설 당시에 임시로 쓰였던 가칭으로 되돌아간 것이어서 흥미롭다. 개명 얼마 전에 영문 표기가 뚝섬 resort에서 뚝섬 park라고 바뀌었던 바 있다.

여기는 지금 같은 형태의 한강 공원(고수부지?)이라는 게 생기기 전, 먼 옛날에는 진짜로 강수욕장(!!)도 있고 맛집들 즐비하고 얼추 서울 교외 유원지 같았던 곳이긴 했다. 지금으로 치면 서쪽 끄트머리의 행주산성 유원지와 비슷하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이야 저기 일대가 몽땅 다 개발됐고 뚝섬도 여러 한강 공원 중 하나일 뿐이다. 딱히 '유원지'라고 부르기에는 정체성이 많이 흐려졌다.

(2) KTX 신경주 역이 앞의 '신'자를 떼고 그냥 '경주'라고 개명됐다! 구 경주 역이 폐역돼 없어졌고, '서경주' 역도 새로 생긴 와중인데, 이건 언젠가는 행해질 조치인 것 같았다. 수긍이 간다.
울산은 고속철 울산 역과 일반열차 태화강 역이 따로 돌아가는 반면, 경주는 그렇지 않다.
대구는 지리· 역사와 관련된 여러 내력(경로의존성..)으로 인해, 메이저인 동대구 역에서 '동'자를 떼어내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3) 난 개인적으로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서쪽 종점인 '석남'은 그렇게 적절한 작명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GTX A선이 개통되면서 판교-이매 사이의 '성남' 역과 사실상 동명이역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비음화 자음동화가 존재하는 언어다. 이건 전산상으로는 문제 없을지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는 5호선 양평과 중앙선 양평 같은 충돌이나 마찬가지이다.

2. 노선

서울시에서는 9호선을 끝으로 저런 형태인 시내 도시철도는 더 건설하지 않고 있다. (도시 한쪽 끝과 한쪽 끝을 완전히 관통, 대형 중전철, 100% 공기관 운영) 그 대신 패러다임이 광역 일반철도(대규모) 아니면 경전철(소규모)로 바뀌었다.

사실 전국적으로도 중전철 기반의 도시철도를 건설한 건 무려 20여 년 전의 대전 지하철 1호선이 마지막이다. (그 뒤로는 다 경전철) 하필 한국형 표준 전동차 프로토타입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서울에서는 9호선 전동차가 딱 그 표준 프로토타입이 적용된 차량이다.

규모가 큰 광역전철급은 교류에 좌측통행이고, 규모가 작은 도시철도-경전철은 직류에 우측통행인 것이 흥미롭다. 자동차만 해도 작은 승용차 급은 휘발유 엔진에 디스크/유압식 브레이크 위주인 반면, 대형 버스· 트럭은 디젤 엔진에 드럼/에어 브레이크 위주인데.. 서로 무관한 기술 간에 상관관계가 성립하는 것 같다.

서울보다 작은 도시들은 경전철만으로 기존 지하철과 대등한 도시철도 노선으로 치는 반면(부산 4, 대구 3, 인천 2 등), 서울은 그렇지 않다. 반대로 GTX는 광역전철의 특별 심화판 격이다.

지금 GTX A선 수서-동탄은.. 서울 시내까지 깊숙하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자기만의 구간이 새로 개통한 게 전혀 없고, 그냥 이미 있는 고속선에다 역만 개통한 거다.
공항철도가 김포까지만 개통했던 것, 분당선이 수서까지만 개통했던 것, 경의선이 DMC까지만 개통했던 것과 비슷한 처지이다. 정말 못해도 삼성까지는 개통해서 바로 갈 수 있어야 수요가 더 늘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공항철도 서울 역과 GTX A선이 쭉 연결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신분당선은 용산이 아니라 남산 아래로 지나가서 광화문 쪽으로 가고 말이다.

* 여담이지만.. 요즘 생기는 전철들 덕분에 한강 하저터널이 알게 모르게 부쩍 늘어났고 더 생기고 있다.
한때는 5호선에다 기껏해야 분당선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소사대곡선도 하저터널이요, 8호선 북쪽 연장과 GTX까지 다 강 아래로 한강을 건널 예정이다.
그에 비해 부산에는 낙동강 하저터널이 아직 단 하나도 없다.;;;

3. 차량 -- 퇴역

(1) 1996~97년부터 CDC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도입됐던 통근형 디젤 동차 차량이 지난 2023년말부로 완전히 퇴역하고 사라졌다.

통일호라는 차종이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없어진 뒤에 얘들은 ‘통근열차’라는 이름으로 서울 북부의 경의선과 경원선에서 명맥을 유지했었다. 그러다가 일부 차종은 2007~08년경엔 RDC로 개조되었고, 노후화된 NDC 동차의 뒤를 잇는 무궁화호로 운행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경의선과 경원선이 몽땅 전철화되면서 CDC가 퇴출되었고.. 이 CDC, 아니 RDC는 마지막에는 광주선에서 광주-광주송정 셔틀을 뛰다가 퇴역하게 됐다.
2010년에 무궁화호 NDC, 2013년에 새마을호 DHC에 이어 2023년엔 통일/무궁화호 CDC/RDC가 뒤를 이은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디젤 동차가 씨가 말라 간다.;;;

(2) NDC와 DHC의 경우, VIP용 바리에이션 차량이 있었다.
NDC는 퇴역이 임박했던 2009년에 한 편성이 비즈니스 동차로 개조되어서 코레일 사장급 VIP 전용으로 쓰였다. 얘는 2015년에 완전히 퇴역했으며, 현재는 철도 박물관에서 그래도 운행 가능한 형태로 동태보존 되어 있다.

DHC는 이미 1999년 김 대중 시절에 만들어진 경복호가 잘 알려져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 전용 차량..
DHC 차량 자체는 이미 10년도 더 전에 전량 퇴역했으니, 이제는 경복호만이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새마을호 디젤 동차의 외형을 지닌 철도 차량이다.
얘는 현역이긴 하지만, KTX 차량 중에도 ‘트레인 원’이라고 불리는 VIP 객차가 있기 때문에 요즘은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3) 지금이 전기 철도가 주류가 됐다고 해서 디젤 동차만이 찬밥 신세인 건 아니다.
지난 21세기 초에, 특히 경부선 전철화 완료와 함께 리즈 시절을 경험했던 8200호대 전기 기관차는 생각보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얘는 전기 차량이기는 하지만 ‘전동차’와는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기관차 피견인형 객차라는 게 마지막으로 도입된 게 무려 20년도 더 전 일이다. 8200은 전동차가 아니고, 화물에 특화된 전기 기관차가 아니고, 그렇다고 비전철화 구간을 위한 디젤 기관차도 아니다 보니 가까운 미래에 존재감이 애매한 계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출되거나, 무게와 기어비를 바꿔서 화물용으로 개조되거나.. 뭔가 특단의 조치가 취해질 것 같다.

4. 차량 -- 도입

퇴역하고 없어지는 차량이 있다면, 새로 도입되는 차량도 있는 법..

(1) 고속철도 KTX라는 게 개통한 지 어언 20주년이 넘었다. 오리지널 18량짜리 KTX 차량의 기술을 기반으로 2010년대엔 ‘산천’이 등장했고, 그 다음으로 ‘이음’에 이어 ‘청룡’이 개발되었다니 참 고무적인 일이다. ‘이음’은 시속 200대의 준고속 에디션이기 때문에 이 청룡이 산천 다음의 제3세대 차량이다.

이 청룡은 신칸센처럼 동력분산식으로 개발되어서 기술적으로 이전 TGV와의 접점이 없어졌다. 동력차가 더 촘촘하게 분포해 있기 때문에 가감속이 더 뛰어나며, 최신 기술이 접목되어 최고 속도도 더 높은가 보다.

(2) 서울 지하철 9호선과 공항철도를 직결 운행하는 차량은 언제쯤 등장하려나 궁금해진다.
현재 수도권 전철에서 직교 겸용 차량이 다니는 곳은 오로지 1호선과 4호선 차량밖에 없는데.. 서울 1기 지하철이 아니라 3기 지하철 구간에서 이런 직교 겸용 차량이 다시 등장한다면 느낌이 무척 색다를 것 같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하던 시절엔 KTX가 서울 역을 떠나서 행신이 아니라 공항철도로 진입해서 인천 공항까지 가던 적이 있었다. 심지어 검암 역은 저상홈을 따로 만들어서 KTX의 정차 취급까지 했었다. 그랬던 게 이제는 일반열차가 아니라 9호선과의 직결을 준비 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19 19:35 2024/05/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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