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옥상 외의 호박들
본인은 집 옥상 말고도 다른 여러 아지트에 호박을 심었다. 집 옥상 화분에 호박 싹이 너무 많이 나서 몇몇 포기를 옮겨 심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는 호박이 수꽃까지는 폈지만.. 덩치가 막 커진다거나 암꽃이 피지는 못했다. 강변만 제외하고 말이다. 다시 말해 호박 농사가 유의미하게 성공한 곳은 옥상과 강변 두 곳뿐이었다.
이건 집 옥상이 아니라 강변 무단경작 현장에서 딱 하나 얻은 열매이다.
타임라인 상으로는 낙과했던 옥상 4호와 비슷한 6월 29일에 인공수분 한 것이 성공해서 열매가 되었다.
얘는 무럭무럭 정말 잘 자라서 큼직해졌다. 옥상 화분이 아니라 야생에서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허옇고 반들반들하던 게 생후 10일쯤부터 색이 짙어지고 쭈글쭈글해지고 뭔가 호박처럼 바뀌었다.
그런데 7월 13일쯤에 찾아가서 흙바닥 부위를 만져 보니 거기는 물러지고 상하고 있었다. 에구.. 밑에 스티로폼 바닥이라도 깔아 줄 걸 그랬나..
결국 얘는 부득이하게 따게 되었다. 크기를 측정해 보니 옥상 1호보다 크고, 2호보다는 작은 정도였다.
흰 과육이 아주 탐스럽다~!!^^
여친님이 이 호박으로 맛있는 호박 부침개를 만들어 줬다. 그리고 싱싱한 호박잎을 잔뜩 딴 걸 데쳐서 호박잎 무침도 만들어 줬다. 이건 시금치와 비슷한 맛과 식감이었다.
강변 말고 여기 들판1의 난쟁이 호박은 지난번 근황 때도 소개한 적이 있다.
물과 비료를 더 주고, 무엇보다도 주변의 잡초들을 더 많이 없애 줬어야 했다.
얘도 꽃을 여러 번 필사적으로 피우고 나서는 점점 기력이 쇠하는 것 같다. ㅠㅠㅠㅠㅠㅠ
들판 2. 얘들은 사실, 지난 5월 중순쯤에 심은 아이들이다.
5월 말에야 싹이 나기 시작했고, 6월 중순에도 아직 저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비실비실한 난쟁이였는데 비료와 빗물의 힘으로 드디어 힘차게 자라기 시작했다. 오른쪽 모양으로.
캬~ 이 둘이 같은 호박 사진이라는 게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
최근에는 드디어 꽃도 폈다마는..
얘들은 침입자에 의해서 잎이 여러 장 뜯기는 테러를 당했다. 앞으로 안심하고 농사를 더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야외 무단경작이란 게 보안이 취약한 건 어쩔 수 없다.
집안 양동이에서 키우고 있던 이 아이들은.. 아무래도 공간이 너무 비좁았던 것 같다.
한참 꽃을 예쁘게 피웠던 게 마지막 유작이 되어 버렸다. 그 뒤부터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없어졌다.
3. 강변의 비극: 제헌절의 저주
이 강변 호박은 지난번에도 잠깐 소개했었지만 옥상에 있던 아이를 인구 밀도 조절을 위해 흙째로 옮겨 심은 것들이었다.
몇 주 동안은 본가 호박보다 훨씬 비실비실한 난쟁이 지체아 상태였고, 실제로 몇 포기는 적응을 못 한 채 죽기도 했다.
그러나 살아남은 아이들은 6월쯤부터 갑자기 폭발적으로 미친 듯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난쟁이 발육장애를 벗어나서 급기야는 기존 본가 호박보다도 덩치가 더 커졌다. 얘들은 화분 상자라는 제약이 없고 강변에서 야생의 흙 기운을 마음껏 받으니 말이다.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 호박은 지난 제헌절 부근에 서울· 수도권에 폭우가 쏟아졌을 때 모두 물에 잠겼다. 딱 한 번, 몇 시간 정도 흙탕물에 파묻힌 대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50일 남짓한 짤막한 생애를 마감했다.
거 참, 작년에도 강변 호박이 모두 물에 잠겨 죽은 때가 이때와 거의 일치했다. 이건 제헌절의 저주라고 이름이라도 붙여야 할 것 같다.
작년에는 맺히고 있던 단호박 열매도 같이 침수됐던 걸 나중에 건져서 허겁지겁 먹었다. 열매가 침수됐더니 보통은 쪼갰을 때 열매 내부에서만 나는 향긋한 냄새가 이미 겉에서도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냄새는 며칠 못 가 강렬해지면서 고약한 악취로 바뀌려 했다.
다시 말해 열매도 절대로 오래 놔 둘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니 곧바로 요리를 해서 먹었다.
그에 반해 이번에는 유일하게 맺히고 있던 강변 호박 열매를 며칠 전에 미리 땄으니 엄청난 전화위복이 됐다.
강변 호박을 미리 딴 것은 엄청난 전화위복이 됐다. 딱히 호박의 최후를 대비해서 딴 게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잘한 조치가 된 것이다.
저 무성했던 덩굴들이 남긴 열매가 겨우 하나밖에 없었다니 그건 좀 아쉽다. 그게 아주 튼실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호박들이 살판 나서 그런지 자기 덩치를 키우는 영양 생장에만 꽂혀 있었나 보다. 아무리 기다려도 암꽃이 덩치 대비 도무지 피질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 무성하던 잎이라도 더 많이 따 먹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침수된 잎은 잎 자체는 아직 시들지 않았더라도, 미세하게 달라붙은 진흙들 때문에 사실상 먹을 수 없다. ㅠㅠㅠ
작년에는 저렇게 물난리가 난 둑에다가 늦둥이 호박을 더 심었다. 무려 7월 하순에 호박씨를 새로 심었으니 얘들이 한창 자랄 때쯤에는 여름이 끝나서 날씨가 추워져 버렸고, 이 아이들은 거의 3개월 정도밖에 못 살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양파에서 배 크기 정도의 애호박은 몇 개 얻을 수 있었다.
올해는.. 다른 바쁜 일이 너무 많고 거주지도 바뀐 관계로 강가에는 호박을 더 심지 않고 농사를 종결했다.
지금 이 장소에서 호박 농사는 2021년부터 지금까지 4년째 해 오고 있는데,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지난 4년 동안 둑 침수가 없었던 해는 첫 2021년 한 해뿐이었다.
지금 글은 어쩌다 보니 두 파트로 나뉠 정도로 분량이 길어졌다. 허나, 다음 9월쯤에 올리는 호박 농사 근황은 호박밭 자체가 한 군데밖 남지 않았고 1~3호 요리라든가 8~10호, 그리고 그 이후의 1x호 정도 얘기로 분량이 짧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쪼록 호박은 정말.. 사랑이다!!! ^^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