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농사 근황 -- 上

0. 들어가는 말

올해는 6월에 벌써부터 살인적으로 덥더니만 반대로 7월은 맑은 날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장마가 끝나고 미칠 듯한 찜통더위가 시작됐고 말이다.
하지만 여름 그까짓 거 금방 지나가지 싶다. 내가 견뎌야 할 무더위의 기간을 생각하면 여름이 길지만, 호박과 함께할 수 있는 기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름이 막 길지도 않아 보인다.

본인은 올여름 7, 8월 동안은 상견례 준비차 고향 방문, 웨딩 촬영, 교회 수련회만으로 직장 연차 3개가 꽉 찼다. 지난 6월에 한번 강원도를 다녀오기도 했으니 올해는 장거리 하계휴가 여행이 따로 없을 듯하다.
이 와중에 오늘은 막간을 이용해서 지난 7월 한 달 동안 얻은 호박 열매 소식을 좀 늘어놓도록 하겠다.

1. 옥상에서 수확한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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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올해 호박을 심어서 열매를 현재까지 총 11개 얻었다.
10개는 집 옥상의 화분에서 얻었고, 나머지 하나는 강변 무단경작에서 얻었다. 옥상 1, 2, 3호는 지난 6월 중순쯤에 수분되어서 지난번 근황글에서도 이미 소개했던 바 있다.

그리고 옥상 2, 3, 7호 이렇게 3개는 자연 수분의 산물이다. 암꽃이 핀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자연 수분이 된 것 같다.
꿀벌이 여러 마리가 건물 옥상까지 찾아와서 호박 덩굴들 주변을 많이 얼쩡거리던데 참 좋은 일을 해 줬다.
다만, 7월 장마 이후부터는 꿀벌이 좀체 눈에 띄지 않아서 자연 수분을 기대할 수 없어진 상태이다. 앞으로 비가 안 오고 맑은 날이 계속되면 꿀벌이 또 찾아오려나 모르겠다.

한편으로 내가 직접 꽃가루를 묻혀 줬는데도 열매가 더 맺히지 못하고 수분이 실패한 아이도 세네 개 정도 있었다. 또 기껏 수분이 성공했는데 더 커지지 못하고 낙과해 버린 아이도 있었다(4, 7호).
수꽃보다 훨씬 더 보기 힘든 암꽃이 힘겹게 맺히고 폈는데 수분 실패나 낙과가 발생하면 참 허탈하다. 호박 농사는 정말 운빨 케바케인 듯.. 번호는 최소한 수분이 성공해서 씨방이 더 부풀고 커지는 것이 확인된 단계부터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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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7월 11일에 1호와 2호의 모습이다. 저 사진을 찍고 얼마 후인 17일에 얘들을 땄다.
2호는 올해 수확한 호박 중에 제일 큰 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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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늠름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이렇게 가만히 놔두고 있으면 쟤들은 차차 늙은 호박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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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는 1주일이 넘게 놔 뒀는데 덩치가 더 커지지 않고, 꼭지가 가늘어지고 말라 가는 듯해서 땄다. 이 정도면 호박 본체로부터 뭔가 공급받는 게 없다는 뜻이므로 딸 때가 됐다.
3호는 처음에는 저렇게 시커먼 색이었지만 그 뒤 3주 정도 시간이 지나자 급격하게 주황색으로 늙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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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는 지난 6월 27일, 내가 직접 인공수분을 한 열매 중에서는 제일 먼저.. 최초로 수분 성공한 아이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씨방이 첫 1~2일 동안 약간 커진 뒤부터는 더 부풀지를 않고 너무 오랫동안 저 상태 그대로였다.
그러다 7월 3일, 툭 건드려 보니 열매는 줄기에서 그대로 떨어졌다. 낙과.. 1주일을 채 살지 못했다. ㅠㅠㅠㅠ

그래도 얘는 수분이 아예 실패한 건 아니며, 저 열매도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작은 애호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수분이 실패하면 씨방이 누래지고 쭈글쭈글해지면서 아주 보기 흉하게 시든다. 얘는 그건 아니었다.
그러니 얘는 번호도 정식으로 부여받았고, 양파 볶음 재료로 잘 쓰여서 나와 내 여친의 배 속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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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 하순에 수분된 저 1~4호 이후로 오랫동안 암꽃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가 7월 10일 부근에 호박들이 암꽃을 하루· 이틀 간격으로 연달아 피우기 시작했다. 이 5호는 7월 7일 아침에 핀 암꽃을 인공수분 한 것이 성공했다.
쟤들이 전부 같은 호박이라는 게 믿어지는가?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

보다시피 5호는 약간 납작하게 기형적인(?) 모양이 됐다. 그리고 가운데 부위가 뭐가 닿았는지 색이 갈색이고 썩은 듯했다. 만졌을 때 물렁물렁하지는 않아서 그냥 놔 뒀지만, 속이 연달아서 썩어 버리면 어쩌나 염려도 됐다.

그래서 2주 정도만 놔 두고 7월 20일에 얘를 땄다. 그래도 주먹보다 커지고 늠름한 모습이었다. 5호는 이렇게 맛있는 애호박 볶음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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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는 7월 9일에 핀 암꽃이 수분 성공하면서 맺혔다.
동글동글한 애호박으로 잘 자라고 있었지만 시든 가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얘가 달린 가지까지 실수로 잘라 버렸다. 그래서 얘는 부득이하게 오래 못 키우고 사과· 배 같은 상태에서 먹게 되었다. 4호와 비슷하게 양파 볶음의 재료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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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는 자연수분 된 것을 뒤늦게 발견한 케이스이다. 그런데.. 얘 역시 저기서 더 커지지 않더니만 낙과해 버렸다. 지난번의 4호보다는 더 커졌지만 6호보다는 작다.
얘는 여친이 요리해 준 비빔국수의 고명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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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8호는 7월 11일에 인공수분으로 태어났다.
처음에 암꽃이 폈던 당시에는 줄기와 씨방이 홀쭉하고 영 튼실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얘가 수분 성공할 거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얘는 그 예상을 정면으로 뒤집고 정말 잘 자라기 시작했다.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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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홀쭉하다가 나중에는 종횡비까지 바뀌어서 뚱뚱해졌다. 홀쭉한 타원이 원으로 바뀐 것이 느껴지는가?
가만히 놔 두면 선배인 1, 2호에 필적하는 크기가 될 것 같다. 몹시 대견스럽다.

8호 이후로는 덩굴 전체를 통틀어 암꽃이나 열매 소식이 없는 암흑기(?)가 계속됐다.
7월 13일과 7월 27일에 암꽃이 하나씩 피기는 했다. 그러나 꽃가루를 잔뜩 묻혀 줬음에도 불구하고 수분이 실패하고 씨방이 떨어져 버렸다. 하물며 그 사이 2주 동안은 완전 감감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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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요 얼마 전인 7월 29일과 7월 30일에는 기특하게도 암꽃이 한 송이씩 나란히 폈고, 얘들은 고맙게도 모두 수분이 성공해서 열매가 맺혔다. 이렇게 커졌는데 설마 낙과하지는 않겠지? 얘들이 9호와 10호 번호를 부여받았다.

그래서 2024년 8월 현재, 호박 1~3호는 따서 보존 중이고, 4~7호는 따서 먹었다. 그리고 8~10호는 아직 가지에 달려 있는 중이다. 8호는 더 커지는 않거나 줄기가 시들었다면 따도 될 것 같다.
옥상 호박의 열매 얘기가 길어졌으니 나머지 얘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 늘어놓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02 08:35 2024/08/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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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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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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