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의 특성

1. 과속

비행기는 비행 중에 설계 한도를 초과하는 과속을 하면 기체가 공기 저항을 못 버티고 공중분해될 수 있다. 특히 대놓고 공기와 부딪히라고 돌출되어 있는 날개가 바로 부러질 수 있다. 이건 엔진의 과열· 과부하와는 완전히 별개인 문제이다.

몇만 톤짜리 대형 선박이 전속력으로 항해 중인데 갑자기 닻을 내리면.. 닻을 잡고 있던 설비가 못 버티고 통째로 뽑히고 부러져 버린다. 비행기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박보다 m은 훨씬 더 작고 v가 훨씬 더 크겠지만.

성층권에서 마하 2가 넘게 날 수 있는 전투기도 동네 뒷산 급의 저고도에서는 시속 6~700km밖에 못 낸다. 연비도 훨씬 더 나빠진다. 저고도는 공기 저항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허나, 역사적으로 전투기가 작전 중에 적국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저공 저속 비행을 한 사례가 있었다. 이걸 포복비행이라고 부르는데, 어감상 아주 매우 적절한 작명인 것 같다.

2. 저속, 실속

반대로 비행기가 너무 느리게 가면..?? 비행기를 띄울 만한 충분한 양력이 발생하지 못해서 고도도 낮아지고 나중엔 추락한다.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고 주행 가능하기 위한 최저 속도가 있고, 자동차 엔진에 시동 유지를 위한 최저 회전수가 있는 것처럼.. 비행기에는 실속에 빠지지 않기 위한 최소 속도라는 게 존재한다. 공기 중에 움직이는 물체는 공기 저항과 양력 모두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서 붙는다.

비행기는 느려지면 자세 제어 같은 조종도 잘 안 된다. 그런데 착륙을 하려면 이런 기동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착륙이 임박했는데 활주로 주변에 문제가 생겨서 다시 떠야 한다면 대처하기가 어렵다.
전투기처럼 자기 무게 대비 엔진 출력이 강한 비행기라면 이럴 때 큰 어려움 없이 금방 다시 뜰 수 있다. 그러나 덩치 크고 뚱뚱한 여객기는 신속한 대처가 어려워서 사고가 날 수 있다.

물론 전투기는 여객기보다 기동성이 좋은 대신, 여객기에서 기대하지 않는 훨씬 더 험악한 기동 훈련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사고의 위험이 있다.

3. 역추진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풀악셀 밟아서 "웨에에엥~" 터빈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공기를 빨아들이는 쿠우우우우~~ 소리는.. 정말 역동적이고 박력있고 아름답고 멋지다. 특히 붕붕이(피스톤 엔진) 말고 쌕쌕이(제트;;) 비행기들 말이다.

그런데 뜰 때야 그렇다 치는데, 비행기는 착륙하고 내려앉은 직후에도 생각보다 꽤 큰 소음이 발생한다.
자동차로 치면, 급격한 내리막길을 갈 때 기어를 1단이나 2단 고정으로 바꿔서 엔진 브레이크를 걸어서 엔진 굉음이 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뭐.. 그렇다고 비행기에 그런 장치가 있는 건 아니다. 저 때 비행기는 감속을 위해 역추진을 한다.
바퀴를 브레이크로 붙잡기만 하는 게 아니라, 공기를 앞으로 내뿜어서 제동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이때 뒤로 낙하산 같은 거라도 펼쳐서 저항을 더 키우고 싶지만.. (닻의 비행기 버전?)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으니 엔진 역추진에다가 날개 위의 스포일러까지 동원해서 최대한 어서 기체를 세운다.

아 하긴, 과거의 우주왕복선은 착륙 후에 낙하산을 뒤로 펼치기는 했었다. 얘는 아예 엔진이고 연료고 없는 글라이더 상태로 지구로 귀환하고, 주행 속도도 훨씬 더 빠른 상태이다. 엔진 역추진 같은 게 없으니 낙하산이라도 없으면 진짜로 안 됐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저 엔진 역추진 기능을 이용해서 이론적으로는 자력으로 후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거는 시끄럽고 연료 소모가 극심하고 주변에 배기가스 후폭풍도 많이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얘들은 공항 여객터미널 부근에서 택싱을 위해 후진할 때는 자력으로 움직이지 않고 토잉카의 도움을 받는다.

비행기라든가 진공 청소기 같은 걸 생각해 보면, 평범한(?) 공기의 움직임만으로 이런 엄청난 소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놀랍게 느껴진다. 선풍기나 단순 헤어드라이어하고 비교하면 얼마나 시끄러운지..???
그런 기계들은 성능을 크게 희생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동작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4. 외형과 균형, 과적

-- 비행기는 자동차나 선박과는 달리, 자세와 형체와 표면 상태가 매우 매우 크리티컬 급으로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육상 교통수단은 무게만 신경 쓰면 되고 선박은 거기에다 무게중심 정도만 신경 쓰면 되는 반면, 비행기는 기체 외형이 당장 양력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 트럭과 버스, 여객선과 화물선은 외형이 서로 많이 다르게 생겼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여객기와 화물기는 창문 모양 말고는 외형이 완전히 동일하다. 그래야만 한다.
눈 내린 날에 비행기 표면의 눈과 얼음을 벗겨내는 게 단순히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눈조차도 비행기 주변의 양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 비행기는 입석이나 정원초과가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교통수단이다.;;
비행기가 과적을 하면.. 활주거리를 초과해서도 이륙을 못 해서 활주로에서 사고를 내게 된다.
하늘에 뜬 뒤에도 무게 배분이 안 돼서 기체가 한쪽으로 기우뚱 하면.. 역시 실속에 빠지고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개념적으로 배가 한쪽으로 쏠려서 뒤집히는 것과 비슷하다.

-- 자동차는 접지력을 늘리기 위해서 차체의 무게를 일부러 늘리는 경우가 있다. (철도 기관차, 비행기 토잉카, 후륜구동 차량 등등)
선박도 무게중심 안정성을 늘리기 위해서 화물을 다 내린 배에다가 일부러 바닷물을 평형수라는 명목으로 좀 싣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비행기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일부러 무게를 늘리는 짓은 할 필요가 없다.

-- NASA에서 우주왕복선을 수송하는 데 썼던 그 보잉 747 기반의 화물기는.. 우주왕복선을 실은 상태에서는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대륙 횡단도 한번에 못 했다. 무게나 기체의 모양, 순항 고도 등 모든 것이 평범한 여객기일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서 연비가 곤두박질.. 중간에 내려서 급유를 받아야 했다!!

5. 주변 공기가 끼치는 영향

(1) 기온이 올라가면 자연의 물질들은 뭐든지 '팽창'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이게 교통수단에게는 단순히 엔진이나 브레이크의 과열 가능성 이상으로 그리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철도에서는 쇠로 된 레일이 부피가 늘어나고 휘려 하며, 강도가 약해진다. 열차들이 불가피하게 감속 운행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전기철도의 경우, 가공전차선의 장력을 관리하는 데도 복잡한 설비가 필요해진다.

자동차는 고무 타이어가 열 받아서 폭발할 위험이 커진다. 공기를 너무 빵빵하게 주입한 타이어뿐만 아니라, 헐렁헐렁해서 짓눌리고 변형되는 타이어도 위험하다. 그 상태로 고속 주행을 하면 마찰열이 입빠이=_=;; 쌓이기 때문이다.

그럼 비행기는...??? 엄청 고온일 때는 주변 공기가 팽창해서 밀도가 낮아지고.. 이 때문에 양력이 떨어져서 비행기의 이륙이 어려워진다.
하긴, 멀쩡히 잘 날다가도 갑자기 공기 밀도가 낮은 공간을 지나가면 휘청 급강하하기도 한다.

(2) 비행기가 순항 고도 이상으로 고도를 한없이 무리해서 높이면..?? 결국 공기가 부족해져서 연료 연소가 안 되고 엔진 시동이 꺼져 버린다. 그 뒤 추락..;;

부력만으로 공기 중에 떠오르려면 거대한 비행선 같은 뻘짓이 필요하다. 추력만으로 비행하는 건 연료 소모가 너무 극심하다. 그 중간에 속하는 양력이라는 건 주변 공기와 매우 복잡 정교한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얻는 힘이다.

몇 년 전에 NASA의 화성 탐사선에서 드론을 띄워서 양력 비행에 성공한 건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 공기가 희박하다는 화성에서 그걸 해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 비행기는 로켓으로나 가능한 기동을 흉내 내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구에만 생명이 있는 것처럼 지구만이 태양계의 행성들 중 실용적인 양력 비행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행성이라 여겨진다.

6. 엔진 구조

-- 자동차는 한 엔진에서 실린더가 몇 기통이냐~ 이걸 논하는 반면, 비행기는 그냥 엔진 개수를 통째로 따진다. 요즘 비행기들은 어지간해서는 그냥 쌍발(2개)이지만 말이다. 자동차는 스레드 지향적이고 비행기는 프로세스 지향적인 것 같다. =_= (플라이휠은 스레드 동기화 장치이고ㄲㄲㄲㄲ)

-- 자동차는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와 최고 속도로 달릴 때 서로 다른 특성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걸 변속기라는 장치로 구현한다. 그러나 비행기 급이 되면.. 출발 - 아음속 - 초음속 - 극초음속.. 속도대별로 아예 서로 다른 엔진이 필요하다.

-- 초음속에 특화된 엔진은 아음속에서는 연비와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
옛날에 콩코드가 이래서 무슨 KTX가 기존선-고속선 오가는 것처럼 유동적인 운항을 할 수 없었고 계륵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비행기는 열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지 상태에서 이륙하는 것도 여느 여객기보다 까다로워서 제한된 활주로에서 매우 급가속을해서 고각으로 힘겹게 떠야 했다고 한다.

-- 반대로 램 제트 같은 극초음속 엔진으로는 정지 상태에서 출발을 할 수 없다.
이러니 단 분리 없이 한 엔진, 한 기체로 비행기와 우주 발사체를 겸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현재 인류의 기술로는 불가능.. 이건 SF의 영역이다.

-- 헬기(회전익기)의 로터, 프롭기의 프로펠러, 제트기의 팬 블레이드.. 이 셋의 관계는 참 미묘해 보인다.
이런 프로펠러나 헬기 로터의 회전 속도는 생각보다 그닥 높지 않다. 휘발유 엔진 자동차의 통상적인 회전수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편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속도와 크기로 공기를 휘젓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시끄럽다.

-- 한때는 고속 고성능 증기기관차의 이름을 로켓이라고 불렀는데.. 정작 훗날 진짜 우주 로켓을 연구하던 NASA 연구소는 "제트 추진 연구소"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로켓이라는 이름이 로보캅마냥 촌스러웠다고.

-- 선박은 목재+돛 범선에서 19세기 말에 금속+엔진 기반으로 바뀐 것이 엄청난 혁신이었다.
자동차는 내연기관이 도입된 것이 혁신이었고, 철도는 전기가 도입된 것이 혁신이었다.
비행기는? 내연기관은 기본으로 깔고서 20세기 중반에 제트 엔진으로 바뀐 게 혁신이었다. 동력 비행을 최초로 가능하게 한것은 왕복 내연기관이지만, 초음속 비행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제트 엔진이다.

7. 항공 관련 속도

(1) 비행기에 "V1.. rotate!" 이런 고정 대사가 있다면, 우주 로켓 쪽은 10초 카운트다운과 "ignition sequence start.. we have (a) liftoff!"가 고정 대사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후자는 처음 출발할 때는 승무원들이 기체를 조종하지는 않는다. 그땐 가만히 안전벨트 붙들어 매고 누워 있기만 하지.
항공 쪽에서 쓰이는 V1, V2 속도 같은 건 물리학에서 말하는 각종 중력 탈출 속도, 우주 속도와는 전혀 무관한 개념이다.

(2) 자동차는 시속 100 이상이 고속도로 고속 주행으로 여겨지고, 철도는 시속 200 이상이 고속철도로 분류된다. 비행기는 대략 1000 이상이 초음속으로 여겨진다는 차이가 있다.
1960년대 즈음에 한국에서는 고속도로를 만들었고(자동차), 일본에서는 신칸센(철도)을 만들었고.. 미국과 구소련에서는 우주선을 만들었다.

8. 초음속기

옛날에 구소련과 서유럽에서는 각각 Tu-144 내지 콩코드라는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했었다.
완전 뜬금없는 얘기이긴 하지만, 냉전 시절에 구소련과 미국의 전산학자들이 제각기 고안했던 자료구조인 AVL tree와 red-black tree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heap sort와 quick sort 같은 느낌도 들고 말이다.
물론 오늘날까지 현업에서 살아남아서 C++ 라이브러리의 컨테이너를 구현하는 데도 쓰이고 있는 것은 미국산인 RB tree이다.

2020년대에 와서 일각에서는 초음속기를 다시 만들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옛날 콩코드 시절의 문제점이 구조적으로 개선된 게 하나도 없는데 그게 호락호락 다시 운항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소닉붐 같은 건 애초에 물리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현상이기도 한데 말이다.
미국 보잉이 초음속기 2707을 개발하다가 괜히 포기한 게 아니다. 포기한 게 결국 신의 한 수가 됐다. 최종 승자는 구소련도, 서구도 아닌 미국으로..

9. 나머지 잡설

- 교통수단별 전담하는 고등 교육기관이 철도는 교통대, 우송대이고, 항공은 항공대, 한서대.. 선박은 해양대인가 싶다. 사관학교(공· 해군)는 제외하고 생각했을 때 말이다.

- 비행기의 비행 중에 발생하는 버드 스트라이크는 도로의 육상 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로드킬이랑, 건축물에 발생하는 조류 충돌(특히 유리창이나 투명 방음벽)의 딱 중간에 속하는 이벤트 같다.
그러고 보니 "벌레 - 곤충"은 "항공기 - 비행기"와 비슷한 관계인지도..??

-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비행기는 고속에서 양력을 최대한 잘 받는 형태로 설계된다.
그러나 자동차 스포츠카는 뒤에 공기 스포일러라는 작대기가 장착돼서 양력이 생기지 말라고, 고속 주행 중에도 차체가 뜨지 않게 설계된다. 비행기와는 상극이다.

-- 헬기는 단점이 많지만 수직 이착륙과 공중 체류라는 독보적인 장점 덕분에 살아남았다. 비행선은 장점이 많지만 독보적인 단점 때문에 도태됐다.
헬기 근처에 사람이 있으면 테일로터에 맞는 게 위험하다. 그 반면, 제트기는 근처에 사람이 있으면 엔진에 빨려들어가는 게 위험하다.

-- 자동차는 1단 전용 기어를 넣어서 제한적으로 후진이 가능하다. 그 반면, 일반적인 체인 자전거는 기어가 절묘하게 만들어져서 후진이 가능하지 않다.
전후동력형 철도 차량은 전진과 후진을 아무 차이 없이 할 수 있다. 그리고 비행기의 후진 능력은..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다.

-- 옛날에 버스를 프론트 엔진 형태로 만들다가 지금은 다 리어 엔진으로 바뀌었듯이..
비행기도 요즘은 쓰이지 않는 옛날 디자인이 좀 있었다. 삼발기라든가, 앞쪽에 랜딩기어가 양쪽에 둘 달렸던 역삼각형 디자인 말이다. 지상 평지에 정지해 있을 때는 비행기 앞쪽이 위로 들려 올라갔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14 08:35 2024/08/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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