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손과 발, 눈과 귀

손과 발 중 어느 것이 없는 게 더 불편할까? 눈(시력)과 귀(청력) 중 어느 것이 없는 게 더 불편할까? 둘은 마치 교통과 통신만큼이나 담당하는 영역이 서로 다른 것 같다.
인간이 일상적으로는 손을 써서 학교나 직장에서 많은 일을 하지만.. 다리가 없어서 자력으로 어디 이동을 할 수 없다면.. 이거 뭐 말짱꽝이 된다. 오오~ 그러고 보니 수난 이대 소설이 이런 상황을 잘 다루고 있다.

그리고 눈은 엄청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영상이라는 2차원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소리는 영상보다야 정보량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귀는 딴일을 하는 중에도, 굳이 고개를 돌리고 주목하지 않아도 시야각의 제약 없이 어디서나 정보를 습득하게 해 준다. 더구나 소리는 지형이나 장애물을 가리지 않고 잘 퍼지기까지 한다.

이러니 이 유튜브 비디오 시대에도 라디오가 완전히 쫄딱 망할 일은 없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앞을 못 보는 게 소리를 못 듣는 것보다 더 불편하고 더 큰 장애로 보이지만..
사실은 소리를 못 듣는 것도 앞을 못 보는 것에 필적할 정도로 엄청난 장애라고 그런다. 서로 대등하고 호각인 거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유전적인 특성 때문에 선천적으로 냄새를 못 맡는 사람이 있다. 외형상 코의 모양은 평범하고 정상이기 때문에 이게 당장 티가 나지는 않는다.
putty 터미널 프로그램의 개발자 Simon Tatham이 냄새를 못 맡는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본인은 과거에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비슷한 체험을 했었다. 딱히 콧물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 김치에다가 코를 박아도 아무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게 무척 놀라웠었다..!
냄새를 못 맡는 건 시청각 장애에 비해서는 그나마 덜 심각한 장애로 여겨진다. 정확하게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이걸로는 병역 감면이나 면제가 가능하지도 않지 싶다.

하지만 음식이 상하거나 썩은 냄새, 타는 냄새.. 악취 이런 걸 못 맡으면 뭔가 결정적인 순간에 위험을 감지하지 못해서 화재나 식중독 같은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커질 것 같다.
마치 땀이 안 나는 병이 있는 것처럼 몸 사리면서 조심해서 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건강에 대한 관념

난 아주 어린 꼬마 시절엔..

(1) 머리를 감기만 했는데 머리카락이 도대체 왜 수십 개씩 빠진다고 하는지 이해를 전혀 못 했다.
흰머리 뽑듯이 족집게로 머리카락을 뽑은 게 아닌데 그게 왜 저절로 빠지지??

(2) 걷다가 넘어지거나 엉덩방아를 찧으면 피부가 까지고 피가 나고 아파서 울 수 있고, 빨간약을 바르기는 한다만.. 도대체 그거 갖고 어떻게 뼈까지 부러질 수 있는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3미터 높이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줄?

(3) 커피를 마시면 잠을 쫓을 수 있다는 말을 이해를 못 했다.
심지어 영어 회화 교재에도 I’m sleepy / Drink some coffee 라고 적혀 있던 대화의 인과관계를 전혀 몰랐다. 졸리는데 왜 커피를 마셔?

(4) 반대로, 잠이야 아무 때든 조용한곳에서 누워서 눈만 감으면 100% 언제든지 경험 가능한 건데, 불면증이라는 게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바뀌어 간다~~!!!.

3. 기억

나는 이런 게 도대체 왜 기억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의 교가의 멜로디를 모두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는=_= 일부 멜로디를 기억하는 게 있지만 다녔던 학교 중 어느 곳의 교가인지는 모른다.
중학교 교가는 일부 가사를 기억한다. 셋잇단음표와 함께 "거룩한 화랑 정신 핏속에 이어받아 온 겨레 떨치는 횃불이 되자"가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가는 가사 대부분을 기억한다.
고등학교 교가는 일부 구간이 찬송가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와 비슷한 곳이 있다.
대학교 교가는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의 작곡자인 그 침신대 교수가 작곡했다.

그리고 단 4주 동안밖에 접하지 않았지만 논산 육군훈련소가=_=를 멜로디는 음원 차원에서 100%, 가사 대부분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국군 도수체조 BGM은 들어도 들어도 정말 와 닿지 않고 기억이 잘 되지 않는다.

유사품인 국민체조 BGM 대비 멜로디가 그닥 명랑 경쾌하거나 매력적이지 않고, key부터가 깔끔한 G가 아니라 애매하게 낮고 어려운 G플랫.. 코드 진행이 장조인지 단조인지 모르겠고 어정쩡하고.. 뭐 그렇다. 그래서 머리에 잘 입력되지 않는다.
음악 전문가이신 여친님도 들어 보더니 정말 그렇다고 인증해 주셨다.

난 개인적으로 매일 아침에 이거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할 국군 장병에게 이 BGM이 그리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_=

아무 음악이나 한번 듣지마자 바로 기억에 들어갔으면 좋겠지만 나 포함 대부분의 인간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기억 아이템이라는 것을 취준생에다가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뇌의 기억장소라는 직장에 취업하는 것과 비슷하다.

단기 기억에만 남아 있는 건 인턴, 계약직에 불과하다. 재계약이 안 되면 곧 짤린다. 잊혀진다.
장기 기억으로 들어가는 건 정규직/장기복무 합격에 대응한다.
평생 각인되는 거는 종신직 정년보장 철밥통 자리에 들어가는 거고..
인간의 뇌라는 직장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그렇게 많거나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4. 욕구

인간 같은 동물에게는 잠뿐만 아니라 식욕, 성욕 같은 다른 기본 욕구들이 존재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잘못 발산됐을 때 사회에서 가해지는 제재는 무엇이 있을까?

(1) 밥
조난을 당해서 무인도나 밀림이나 망망대해 구명보트에서 몇 달째 고립돼 있었고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사람 시체라도 뜯어먹었다면.. 그건 뭐 그 당사자를 비난할 수 없다.
문명의 손길이 닿는 곳에서도 정말 굶어죽기 일보직전에 최후의 발악으로 마트를 털기라도 한 거면 일말의 장발장 동정표가 주어질 수 있다.

허나, 이 2020년대 대한민국은 길거리에 아사자 시체가 굴러다니는 무복지 막장 국가가 아니다. 행려병자나 거지가 떠돌던 시절도 이미 지났다.
그렇기 때문에 사지 멀쩡한 사람이 밥을 못 먹어서 긴급피난이 인정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래도 먹튀는 절도죄, 사기죄 같은 잡범 급이지, 정치범 흉악범 급은 아니다.

(2) 배설
노상방뇨 노상방분은 그냥 경범죄로 취급되어 과태료 범칙금 감이다. X을 잘못 싸면 그 사람의 체면과 사회 위신이 심각하게 저해되겠지만-_-, 인간의 생리욕구를 해소한 것만 갖고 사람을 체포하고 형사 처벌을 하지는 않는다.
글쎄, 그 후폭풍 여파가 심하게 악질적이면 재물손괴죄로 이어질 수는 있겠다만 말이다.

반대로 아무 악의 없이 너무너무너무 극단적인 상황에서 급똥 때문에 불가피하게 사회적인 민폐를 끼친 거는 긴급피난으로 인정될 수 있다. (남자가 닥치고 여자 화장실이라도 뛰쳐들어가서 해결을 했다거나..)
하긴, 수영 선수들이 수영장 경기장에 있으면서 몰래몰래 소변을 지리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_= 마라톤 선수는 경기 중에 지리고..

(3) 수면
근무 중, 학습 중 같은 상황에서 졸아 버리면 그냥 그 조직 내부에서 잔소리 듣거나 징계받는 걸로 끝이다. 이거 갖고 판· 검사는 물론이고 경찰 면담을 할 일조차 없다.
졸음운전은 문제가 좀 심각하긴 하지만, 사고가 나더라도 그냥 평범한 과실로 다뤄진다. 음주운전과는 달리 특별히 더 가중 처벌되는 게 없다.

(4) 성
이거는 제일 위험하고 심각한 사항이다. 손 하나 까딱 잘못 놀리면 체포되고 벌금이나 징역까지 받을 수 있고, 최악의 흉악범으로 전락할 수 있다. 사회적 매장은 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는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린 피해자가 적지 않았다고 하는데, 요즘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서 열외돼서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린 피해자가 적지 않은가 보다.

정상적인 성욕과 끔찍한 성범죄는 마치 사랑의 체벌과 아동학대, 살인과 연명 치료 중단만큼이나 한 끗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성범죄를 없애겠다고 아예 고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런 쪽의 유혹은 대적하고 맞서 싸우는 게 불가능·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도 이건 그냥 피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말한다.

대놓고 적군이라면 싸우고 죽여야겠지만, 우리 편 사람이 잠시 헷가닥 맛이 가서 나한테 덤비는 거면.. 죽일 수가 없잖은가? 내가 그냥 피하거나 "잠시 실례" 기절만 시키거나..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리고 사실, 강간은 성욕 해소가 본질이 아니다. 성욕만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그건 혼자 화장실 가서 조용히 몰래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강간은 그냥 자기보다 약한 여성을 제압하고 제멋대로 범하는 과정 자체에서 쾌감을 얻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마치 고문이 진짜로 자백 받아내고 정보를 얻는 게 목적이 아니며, 결혼이 성욕 해소가 본질이 아닌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11 08:35 2024/08/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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