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에는 prophe- 이라는 형태소로 시작하는 '예언' 관련 단어 3인방이 있다.
prophecy 예언(명사), prophesy 예언하다(동사), 그리고 prophet 저걸 행하는 사람 예언자(명사). 이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우리나라 기독교계에서는 개역성경의 표현인 '선지자'라는 번역도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킹제임스 흠정역'은 저 prophe- 단어군(-sy, -cy, -t)을 한 치의 예외 없이 모두 '대언-'이라고 옮겼다. 이건 우리말 성경 중에 1990년대 중반, 안티오크 권위역에서 처음으로 시도했고 그걸 흠정역이 그대로 계승한 관행이다.

(0)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대신 전하기, 또는 그렇게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대언'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한 속성은 미래 예언이다. 성경이 인간의 개똥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인 증거 중 하나도 바로 예언이 확률적으로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문자적으로 많이 적중했다는 것에 있다.

쉽게 말해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 말씀을 "대언"한 것이긴 한데, 그 대언 중에 (1) 미래 "예언"도 있다는 것이다. 관계가 이렇게 정리된다.
성경 중에서 요한계시록은 prophecy에 속하는 책이라고 분류된다. 이건 당연히 예언을 말한다. 후자까지 몽땅 대언이라고 싸잡아 풀이해 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요한계시록이 성경 중에서도 어떤 특성을 갖는지를 알 수 없어진다. 사도행전이 교회의 역사서라면 계시록은 미래 예언서이지 않겠는가.

흠정역이 성경 번역으로서 매우 아쉬운 점은 성경에서 예언이라는 키워드를 완전히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이건 본인뿐만 아니라 여러 목사님들도 지적하며 우려하는 면모이다. 흠정역이 다른 부분에서는 완성도 높게 잘 번역된 것도 있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다.
표면적인 이유는 예언이라고 하면 자꾸 은사주의 점쟁이의 예언 기도... 가령, "너는 몇 월 몇 일 몇 시에 무슨 일이 터질 것이고.. 이 번호의 로또를 사면 당첨될 것이다" 이런 걸 떠올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4장에다가 '예언'이라는 단어를 넣는 걸 껄끄러워한 것이다.

하지만 시한부 종말 갖고 뻘짓 하는 인간들이 있다고 해서 휴거나 종말, 예수 지상 재림이라는 개념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언 갖고 이상한 뻘짓 하는 인간들이 있다고 해서 성경에 예언이라는 개념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꼭 초자연적인 점쟁이급 예언이 아니더라도.. "너는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구원받지 못한 채 죄 가운데 죽는다면 지옥에 가게 된다" 같은 원론적인 얘기만으로도 이미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 말씀을 대언한 것이다. 예언과 대언은 서로 대립하고 상충하는 관계가 아니다.

말씀 보존 학회에서는 흠정역을 20여 년째 아주 부정적으로 까내리고 비방하는 편인데.. "우리 한킹을 도둑질한 짝퉁" 같은 영양가 없는 저질 네거티브 말고 "예언이 없는 성경" 이런 식으로 흠정역의 진짜 약점에 대한 공략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계 19:10 "... testimony of Jesus is the spirit of prophecy"의 경우, 옛날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대언'이었다가 나중에 나온 개역개정에서는 '예언'으로 바뀌었다~!
이는 킹 제임스 계열이 아닌 성경을 만드는 진영에서도 prophecy의 번역이 쉽지 않은 고민거리라는 걸 시사한다. "예수 믿는 증거는 말씀 선포/대언" vs "예수님이 하나님인 증거는 미래 예언 능력" 이렇게 뉘앙스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언에 예언이라는 뜻도 있다고 풀이하고 넘기는 것보다는..
반대로 예언에 대언이라는 뜻도 있다고 간주하는 게 솔직히 훨씬 더 나은 발상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서는 '예언'이라고 하면 점쟁이 예언을 떠올리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미래 예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가 담긴 진리, 선언 등등이 다 포함된다고 뜻을 확장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렇게 뜻을 확장하는 데는 대언보다는 그냥 예언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2.
예전에 흠정역 진영의 모 목사님이 쓰신 글을 보니 성경의 '예언'은 豫言(미리 예)이 아니라 預言(맡길 예)이라고 주장한 게 있었다.
엥? 그게 무슨 소리인지? 그 두 한자는 우리 국어에서는 딱히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둘 다 '미리'라는 뜻이 있고, 預에 보조적으로 '맡기다'라는 훈이 덤으로 들어가 있는 정도이다.
잘 모르겠으면 사전 찾아보고 예+한자 한번 눌러 보시라.

옛날 국한문 혼용 개역성경에서 고린도전서 14장을 펴 봐도 내가 찾아보기로 다 豫言이다. 預言이 아니다.
더 옛날, 19세기 이 수정 번역본에서 預言을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보기엔 그것조차도 그냥 '미리'라는 뜻에서 豫와 별 차이 없는 뉘앙스와 의도로 預를 쓴 것이다.
맨 처음에 預言으로 맞게 시작했다가 무슨 은사주의 물 먹어서 변질돼서 豫言으로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우리말에서 예언, 예고, 예지, 예상.. 이런 미래의 의미일 때는 모두 豫이다.
예금, 예치, 예탁 등 금융 문맥에서나 '맡기다'라는 뜻으로 預가 들어간 게 고작이다. 그리고 이런 용례는 현대에 와서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도입됐을 뿐이다.

그럼 예언이 豫言이 아니라 預言이면, 저 조어 원리대로라면 돈이 아니라 말을 맡긴다는 뜻인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자기 말을 남에게 맡긴다고??
그런 뉘앙스를 단어로 표현하려면 하다못해 '차력'이랑 같은 조어법으로 차언이라고 해야 한다! 借力도 자기 원래 힘이 아닌 원천을 빌려서 괴력을 발휘하는 거잖아. 차언은 이와 완전히 동일한 상황이 아니겠느냐 말이다. 이런 한자 구분은 사실도 아닐 뿐더러, '대언'의 옹호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3.
한자가 무엇이건 '예언'에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함."(1) 이라는 뜻이 확장되어
"신탁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또는 그런 말"(2)이라고 아주 훌륭한 뜻풀이가 국어사전에 등재돼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표준 국어대사전을 인용했다는 네이버 사전에는 (2)가 豫言에 들어가 있고, 고려대 한국어 사전도 그러하다.
현재 표준 국어대사전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2)가 預言로 옮겨지긴 했는데, 이건 아마 후대에 인위로 수정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네이버 사전과 결과가 다른 거겠지..
이런 차이점에서 알 수 있듯, 豫와 預는 처음부터 의미가 칼같이 딱 구분돼 있지 않았다.

이 '예언'은 고린도전서 14장 일대에서는 거의 다 말씀 선포, 설교에 가까운 의미이다. 사실, '방언'조차도 이 문맥에서는 타 외국어로 설교를 한다는 뜻이다. 종합하면 "예언이 방언보다 낫다"는 말은 "말씀 선포를 자국어로 하는 게 외국어로 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복음서에서 폭도들이 예수님을 결박한 뒤, 눈 가리고 죽빵 날리고서 한 말이 "누가 너 때렸게? 알아맞혀 봐라 ㅋㅋㅋ"이었다. 이 '알아맞히다'는 prophesy이다.
에스겔 37장에서 메마른 뼈들을 살아나라고 선포 내지 주문을(?) 외우는 것도 prophesy였다.
계시록 19:10 예수님의 증언이 prophecy의 영.. 이건 아까 언급했었고.

이 모든 상황을 가장 잘 커버하는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진리"라는 뜻인 예언(2)이다. 그 진리 중에 "미래에 일어날 일"도 있을 수 있으며.. 그걸 인간이 전한다는 뜻에서 대언이라는 뉘앙스가 저절로 포함된다.
출 7:1 "모세는 신이고 아론은 모세의 prophet"이 될 것이다.. 요 구절이 그나마 거창한 예언자 선지자가 아니라 단순 대변인, 대언자와 가장 가까운 용례이다. 마치 히브리서 9장에서 언약과 유언(16절)이 갈리는 것 같은 미묘한 상황이 된다.

그 반면, 대언(0)에는 표준 국어 대사전 어디에도 기독교적인 의미가 공식적으로 없다. 보충 설명을 더 많이 해 줘야 된다.
겨우 은사주의 예언기도(!!!) 뻘짓을 두려워해서 성경에서 예언이라는 개념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별자리 점쟁이들한테나 예언을 남겨두는 건(사 47:13).. 좀 많이 무리수가 아닐지?
그건 신천지들이 성경 공부 많이 한다니까 우리는 성경 공부 하지 말자는 식의 발상이다.

성경은 애초에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는 기준부터 미래 예언이 이뤄지느냐, 빗나가느냐(신18:22)였다.
예언의 세속적인 원래 뜻 (1)을 먼저 존중하고서, 성경적으로 (2)라는 용례와 의미도 더 있다고 보조하는 쪽으로 이해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 시작점은 (0) 대언보다는 (1) 예언이 더 적절하다고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6/10/19 19:35 2026/10/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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