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891년, '오쓰 사건'이라고..
일본을 방문 중이었던 러시아 제국의 황태자를 대상으로 어느 정신이상 망상장애 일본인이 칼을 휘둘러 외국 국빈 암살 미수라는 엄청난 사고를 친 적이 있었다.

이때는 러일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참 전이었고 일본은 대국 러시아 앞에 넙죽 엎드리고 쩔쩔매던 시절이었다. 조선에서도 일본을 견제하려고 괜히 러시아에게 붙으려 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중에 을미사변이 1895년에..)

그랬는데.. 저 사건은 수틀리면 러시아와 일본 간에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심각한 사항이었다.
일본에서는 사태를 수습하려고 그야말로 천황부터 신민들까지 몽땅 국가적으로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메이지 천황이 직접 나서서 황태자를 문병 갔고, 전국 각지에서 "황태자님,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쾌유를 빕니다" 전보가 빗발쳤다.

가해자는 당연히 붙잡혔다.
그런데 그때 일본의 법은 "황족을 고의로 죽거나 다치게 한 자는 대역죄를 적용하여 무조건 사형에 처한다"였다. 이때 황족이란 자국의 황족을 의미했다.
러시아의 황태자는 저 법에서 가리키는 황족이 아니었다. 더구나 저 사람도 다치기만 했지 죽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 일본의 법으로는 가해자를 무기징역까지는 처해도 사형에 처할 수는 없었다.

이때 일본 정부에서는 담당 판사에게 외압을 넣어서 "우린 지금 러시아에게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 그러니 러시아 황태자도 황족으로 간주하고 어떻게든 저놈을 사형시켜라" 이렇게 명령했다.
그러나 그 당시 판사는 "우리 일본은 그렇잖아도 서구 열강에게 밀리고 무시당하는 중이다. 그런데 상황이 급하다고 사법이 그렇게 일관성 없게 누구 기분 따라 들쭉날쭉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국제 사회에서 미개한 호구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원칙대로 무기징역까지만 때렸다.

우와 이거 영국을 상대로 법을 논하면서 항변했던 청나라 임칙서를 보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저런 소신판결이 통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 국가적인 사죄 운동과 가해자의 무기징역 처분으로 만족하고 사과를 받아들였다. 일본에게 더 딴지 걸거나 보복하지는 않았다.

2.
1898년엔 이웃 조선에서 자국 국왕을 상대로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졌다.
고종은 그 옛날에 커피를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인데, 거기에 누군가가 치사량을 넘는 아편 마약을 탄 것이다.
고종은 커피잘알이어서 그런지 몇 모금 맛만 보더니 맛이 이상하다고 바로 뱉어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아들 순종은 그걸 마셔 버리는 바람에 오랫동안 끙끙 앓고 평생 후유증 장애까지 얻게 됐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최근에 국왕과 사이가 안 좋아진 신하 김 홍륙이 지목됐고, 공범도 몇 명 잡혔다.
그리고 이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는 함 태영이라고.. 그야말로 구한말, 일제 시대, 대한민국을 두루 아우르며 법조인, 목사, 교사, 부통령까지 역임했던 젊은 똘똘이 천재 지식인이었다.

그는 자기가 공부했던 법리로 이 사건을 조사해 보니, 김 홍륙이 진짜로 암살에 개입했는지 증거조차 아직 불확실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역모는커녕 무죄 선고를 하려 했다.
고종은 노발대발하여 당장 저놈을 역적으로 몰아서 사형에 처하라고 외압을 넣었으나.. 함 태영은 자기 소신을 고집했다. 그러자 고종은 그 사람을 짜르고 다른 판사를 동원해서 기어이 김 홍륙 일당을 사형에 처해 버렸다.

뭐, 왕족을 암살하려 한 놈이니 당사자를 사형에 처하는 건 그 어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친다. 아까 그 일본법 기준에도 완벽히 부합한다.
근데 이번에는 그냥 죽인 게 아니라 시체를 공개 전시해서 백성들이 다 뜯고 찢게 했으며, 마누라를 포함한 가족까지 몽땅 감옥에 가둬 옥사시키거나 유배형에 처했다.

자, 1898년이면 오쓰 사건보다 나중이고 조선에서 갑오개혁도 일어난 뒤였다. 반역죄인이라도 연좌제 내지 죽은 시체한테 소급 처벌은 한참 전의 '영조' 때부터 이미 폐지· 금지 상태였다. 그랬는데 고종은 그야말로 감정적인 괘씸죄에 의거한 잔인한 형벌과 초법적인 보복을 마구 남발했었다. 서 재필, 김 옥균 때도 그랬고, 김 홍집 때도 그랬고..

이 사건은 당연히 국제적으로 지탄받았다. 일본이 남의 나라 궁궐에 무단으로 쳐들어가서 왕후를 살해한 만행이 세계에 알려져서 규탄받고 이미지가 깎이긴 했지만, 그 피해 당사자 국가의 내부에서 미개한 짓이 벌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 외교관들이 이 소식을 자국으로 타전했다.

뭐, 변명이나 참작의 여지는 있다. 고종은 참 좋지 않은 시국에 힘겹게 왕 노릇 하느라 정신 건강이 좋을래야 좋을 수 없던 상태였다.
안에서는 반역 쿠데타에 암살/독살 음모, 밖에서는 외세 침략..;; 오죽했으면 남의 나라 대사관으로 도망가서 목숨을 구걸할 정도였으니.. 자국의 사법과 치안이 개판이기 때문에 군주가 오히려 자국의 치외법권이고 외국 법이 통용되는 곳으로 도피한 것이다.

이러니 고종은 노이로제 수준으로 극도로 예민해졌으며.. 망상에 빠져 아무나 막 의심하고 죽이고, 누구를 사형에 처할 때 곱게 죽이지 않고.. 뭔가 궁예나 히틀러나 스탈린의 말년 같은 모습으로 얼마든지 빠질 법했다.

게다가 민씨 집안으로부터의 부추김도 있었다. 뭐, 고종은 실제로는 히틀러나 스탈린 정도로 깽판을 칠 권력 자체가 없으니 그런 스케일로 깽판 치지는 않(못)았지만 말이다.
고종에 대해서 예로부터 저런 독살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1919년에 고종이 진짜 죽었을 때는.. 일제에 의한 독살 의혹 루머가 쫙 퍼질 만도 했다. (진실은 저 너머에..)

그리고 원인이야 어쨌든, 그의 이런 행태는 "일본 정도면 조선을 지배해도 되겠다"라는 국제적인 통념에 기여를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해방 후에 "우리는 군주제는 절대 다시 하지 말고 민주공화정으로 가야 한다" 이런 생각을 식자층들이 하게 됐다.

참고로, 훗날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대 대머리 땅끄 대통령도 사법부에 외압을 넣고 개입한 적이 있었다. 뭐 이런 것들..

  • "대통령 각하께서 대국민담화를 해 버렸으니 국민 앞에서 약속을 지켜야 된다. 이 윤상 군의 유괴살인범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사형에 처해라"
  • "여성들한테 독약 먹이고는 죽어가는 걸 스너프 사진을 찍었다고? 아이고 88 서울 올림픽이 코앞인데 세계가 지켜보는 와중에 동네 창피하다. 더 조사할 것도 없고 그놈은 바로 사형 때려~ 이건 명령이다"

하지만 이건 정치범이 아니라, 증거 확실하고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뒈져야 마땅한 흉악범을 처단한 것이어서 구한말 고종과는 상황이 다르다. 시체를 공개적으로 잔인하게 능멸한 것도 아니니.. 지금과 비교하면 오히려 정의를 구현한 사이다 같은 구석도 있었다. ㄲㄲㄲㄲㄲ

3.
자, 원래는 글을 여기까지만 쓰고 말려고 했는데, 고종과 관련하여 또 하나 흥미로운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있었다. 바로 1896년의 치하포 사건..!!

이건 따지고 보면 조선 땅에서 무고한 일본인이 아무 면식도 없는 조선인에게 살해당한 테러이자 강력 범죄였다.
하지만 이건 을미사변 때문에 그렇잖아도 반일 감정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비록 애매한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표면적인 명분은 민비 암살에 대한 보복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일본도 이때는 이걸 명분으로 대놓고 무력 보복을 하지는 않고 몸을 사렸다. 총칼 대신 외교부가 개입해서 "범인을 꼭 체포하고 사형에 처하도록 해라~ 사건 조사를 우리가 하겠다" 이렇게 점잖게만(?) 압박을 넣었다.

이때 고종은.. 일본의 요구에 호락호락 따르지 않고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난 김 구가 일본인을 죽이고 나서 거의 직후에 현행범으로 체포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조선 정부는 범인을 색출하고 체포하라는 일본 측의 요구에도 일부러 영혼 없이 세월아 네월아 늑장 대응하다가.. 사건 발생 무려 3개월 후에야 그를 체포했다.

일본 측:, "너네 법을 보니 살인범은 참수를 하게 돼 있네? 저놈을 반드시 참수해 주시오"
조선 왈: "ㄴㄴ 우리도 근대화 돼서 갑오개혁 이후로 사형은 교수형으로 집행한다. 작년에 동학의 수괴 전 봉준도 교수형이었으니 김 창수(김 구의 옛 이름) 역시 교수형에 처하겠음."

이래 놓고는 김 구를 감금한 채로 또 딜레이를 시전했으며.. 고의에 가깝게 죄수들을 아주 허술하게 관리했다. 결국은 탈옥이라는 명목으로 김 구를 사실상 석방 방면해 버렸다.
글쎄, 이때 서울-인천 간에 전화가 갓 개통돼서 국왕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사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 명령을 전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들 아시다시피 백범일지에는 워낙 이빨 주작도 많아서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고종은 김 구의 처분에 관해서는 절대로 일본 말을 호락호락 듣지 않음으로써 을미사변에 대해 아주 쪼잔 소심하게 저항하고 뒤끝을 부리긴 한 것으로 보인다. "니들이 민비 암살범(미우라 고로)을 대놓고 감싸고 풀어 줬어? 그럼 우리도 일본인을 죽인 조선 신민을 감싸 줄 거다"랄까?
이것도 위의 1, 2번과 더불어 생각할 점인 것 같다. 오쓰 사건, 독다 사건에 이어 치하포 사건이라니..!!

이렇듯, 김 구는 2년 가까이 해주와 인천 감옥에서 빵살이를 하다가 탈옥을 했다.
참고로 이 승만은 조금 나중인 1899년에 고종 폐위 음모에 휘말려서 5년 반이 넘게 옥살이를 하다가 사면을 받고 풀려났었다. 이 승만은 서대문 형무소의 전신인 한성감옥에서 지냈기 때문에 김 구와는 장소가 달랐다.
뭐, 고종은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헤이그 밀사 파견 내역이 발각되는 바람에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강제 폐위됐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7/27 08:35 2026/07/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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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러 시사 이슈들 2

지난 6월쯤이었나.. 사람 혈압 올리는 소식이 전국에서 유난히 많이 보도됐던 것 같다. =_=;;

(1) 홍대 무단횡단녀;;
이건 멍청한 걸 넘어서 거의 보험사기 또는.. "저 운전자놈 한번 엿먹어 봐라! 내가 니 인생 망쳐 주마!"가 의심될 정도이던데..
이 증거 영상을 보고도 운전자한테 일말의 과실을 매긴다면 이건 그냥 대한민국은 자동차 끌고 다니는 것 자체가 죄인 나라일 것이다. 썅~~

신호 지키면서 멀쩡히 잘 가는 차가 왜 악질적인 무단횡단자의 눈치를 보면서 설설기어야 하는지? 이건 보행자 보호 의무에서 열외돼야 한다.
그렇잖아도 그놈의 제한 속도 다 지키면서 엉금엉금 기어가고, 시야 확보 안 된 곳에서 일시정지까지 했는데도, 주차된 차들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정말 0.1초 만에 튀어나온 보행자와 부딪히면 왜 운전자가 가해자가 돼야 하는지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2) 남의 화단에서 장미꽃을 한두 송이도 아니고 하나도 남김없이 수십 송이를 몽땅.. 밤에 몰래 잘라 간 미친연놈.
CCTV로 다 찍혔고 곧 경찰에 잡히자 거의 참교육 조 규철 급의 개소리 변명을 늘어놨었다.
"선의로 가지치기를 좀 한 건데 주인에게 큰 심려를 끼칠 줄은 몰랐다" 우와 대가리 and/or 양심이 도대체 어떻게 쳐돌아야 저딴 말이.. ㅠㅠㅠ

(3) 지가 개 관리를 안 해서 그 개가 어느 초등학생 다리를 물고 늘어졌음. 지나가던 사람이 개를 때리고 발로 차서 쫓아내 줌.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뒤, 견주라는 놈이 그 행인에게 "니 때문에 우리 댕댕이가 죽었으니 n백만 원 내놔" 이 X랄.. (행인이 현장에서 그 개를 바로 치명상 입히거나 죽여버린 것도 절대 아님)

우와~ 개를 관리 못 하고 민폐 끼쳐서 죄송하다고 대가리 쳐박고 사죄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듣는 내 귀가 썩을 것 같다.
사람을 공격하고 통제가 안 되는 개가 있으면 그 누구라도 바로 때려죽일 수 있어야 하지 않냐? 그건 정당방위지.

(4) 경찰 간부라는 인간의 자식새끼가 강력 흉악범죄 저지르고, 그걸 애비가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무마하려 들고.. 그리고 걸린 거.
이거 무슨 휴버대 고문 소믈리에 시리즈에나 존재하는 허구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앞부분이 현실이면 뒷부분 응징편도 제발 현실이었으면 좋겠다. -_-;;;

우리나라는 가족끼리 범죄자를 숨기고 도피를 도와준 것 정도는 천륜을 감안해서 형사 책임을 묻지 않게 돼 있다. 법이 그렇게 돼 있다.
그러나 개인이 아니라 경찰로서 자기 직권을 이용해서 적극적으로 증거를 조작 인멸한 거..?? 강간살인을 기를 쓰고 그냥살인으로 낮출려고 주작한 거??
이건 선을 아득히 넘은 것이고 빼박 범죄이다.

예전의 강북 모텔 연쇄살인녀는 가정 환경이 심히 불우하기라도 했다. 하지만 저기는 가정 교육이 도대체 뭐가 문제였길래 전대미문의 흉악 범죄자 쓰레기 괴물이 배출된 걸까?
일본 같으면 "자식 잘못 키워서 너무 죄송합니다. 애비인 제가 죽음으로 대신 책임지겠습니다" 이러면서 애비가 도게자에 자결에 별 짓을 다 했을 것이다.

뭐, 그 동네는 범죄자 가해자 가족들에게 뒤끝 이지메가 너무 심한 게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대쪽으로 치우쳐 있다. 상식 수준의 공중도덕과 양심이 도대체 언제 왜 이 정도로 사라져 버렸는지 모르겠다.

"이놈의 헬조선에서는 내가 먼저 뭔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순간 호구 되고 약점 잡히고 영원히 질질 끌려다니게 된다~" 이런 인식이 기여한 것도 있긴 할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시민의식을 개선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한쪽에서 잘못을 선뜻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를 한다면, 맞은편에서도 가능한 한 관용을 베풀기도 해야 한다. 이런 신뢰나 선순환이 없어진 사회는 절대로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늘어놓다 보면 늘 동일한 결론이 나온다.
본인은 각종 사회 이슈들에 대해서.. 세상이 옛날에는 한쪽의 잘못된 극단에 있다가 지금은 다른쪽, 반대편의 잘못된 극단으로 갔다고 진단하곤 한다. 그래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그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날에 학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폭행하고.. 촌지 받으면서 애들을 차별 대우하는 쓰레기 선생이 있었던 게 문제라면,
지금은 반대로 교권이 너무 쪼그라들어서 선생이 온갖 악성민원에, 온갖 시덥잖은 형사책임과 소송 위협에 시달리다가 애들 훈육 지도 자체를 포기해 버리는 지경이 된 게 문제다.

옛날에는 무고한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서 사형에 처하고 사법살인 한 게 문제였다면,
지금은 진짜로 쳐죽여야 될 넘들까지 사형시키지 않고 평생 국립호텔에서 떵떵거리면서 산소 낭비 쌀 낭비하며 살고 교도관들까지 니에니에 굽신거리는 개판오분전이 된 게 더 큰 문제이다.
둘 다 똑같이 *인권 유린*이다. 한쪽이 다른 쪽보다 나아진 게 절대로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둘 다 똑같이 인권유린이다.

삼청교육대 피해자나 수지 김 유족들이 그쪽 5공 시절 대통령을 싫어할 명분이 있다면,
반대로 흉악범죄 피해자 유족들은.. 옛날에 우리나라가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 됐다고 좋아라고 난리를 치던 다른쪽 대통령을 욕하고 저주하고 얼굴에다 침뱉을 권리가 있고 자격이 있다.

반대로 그 삼청교육대나 광주 땅크 짓거리를 했던 대통령이라도
살인죄 없이 강간 누범만으로도 가정파괴범 명목으로 속 시원하게 사형에 처해 준 건 누가 뭐라도 칭송받아야 마땅한 업적이다.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편파적이지 않게 일관되게 잘잘못을 논하고 판단한다면 쓸데없이 싸울 일이 없을 것이다.

경찰과 검찰 사이가 안 좋긴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여러 정황상 경찰 혼자 수사부터 기소까지 놔둬서는 안 될 거 같은데.. 상호 견제가 필요하다.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서 단순 변사나 자살이 강력 사건인 게 드러나고 제대로 해결된 사건도 지금까지 얼마나 많았는가?
그랬는데 요즘 정권은 왜 이리 국정원도 조지고 검찰도 못 조져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그 밖에 요즘 각종 시사 이슈들에 대한 본인 생각을 늘어놓자면 다음과 같다.

(1) 요즘 나라에서 촉법소년 연령은 1살 낮추고, 지하철 노인 무임 연령은 70으로 더 높이려고 논의 중이다.
그건 그럴 수 있다 치는데, 촉법은 솔직히 1살 낮추고 높이고가 근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12세건 13세건 딱 한 번만 촉법이라고 봐 주고 그 다음 재범부터 엄하게 조지는 게 더 필요하지 않을지?
음주운전도 난 단속 기준을 낮추는 것보다 횟수별 처벌 수위를 조절하는 게 훨씬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투표권은? 군대를 갔거나, 직장 다녀서 자기 소득으로 세금을 어떤 형태로든 낸 뒤부터 주는 게 이치에 맞다고 본다.
운전면허야 필요하다면, 애들이 일찍 대가리 굵어진다 싶으면 더 일찍 허용할 수 있다. 미국 같은 동네에서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중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면허를 따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투표권은 운전면허와는 성격이 좀 달라 보인다.

(2) 한국인은 성질 급한 '빨리빨리'의 민족이라고 오래 전부터 일컬어져 왔다.
하지만 자동차 운전을 해 보면.. 정말 교통 문화에 관한 한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대로 빨리빨리가 아닌 것 같다. 하루가 30시간은 돼 보이는 세월아 네월아 여유로운 사람들이 넘쳐난다.

언제부터 국민성이 이렇게 바뀌어 버렸나? 아니면 이 병적으로 많은 카메라와 과속방지턱들에게 가스라이팅과 굴복 당해서 그 기세가 꺾여 버렸나?
이게 절대로 좋아할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긍정적인 쪽으로 여유가 생겨서 천천히 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 운전 실력과 뒷차를 배려하는 의식이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 타락했기 때문에 저렇게 된 거다.

나도 정말 겁 많고 소심하고 조심스럽게 밟는 사람인데도.. 고속도로를 한번 달리면 답답해서 정말 못 견딘다.
터널이나 교량에서 차로 변경을 왜 못 하게 만들었는지 도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건지, 난 내 양심과 신념을 걸고 이해가 안 된다. 밝고 훤하고 하나도 위험하지 않은데.. 그냥 운전자들 괴롭히는 악법일 뿐이지.

암행순찰차에 드론 돈지랄까지 하면서 고속도로를 감시할 거면 제발 1차로 정속충들이나 잡아 족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카메라뿐만 아니라 이놈의 과속방지턱도 이 조선 땅에는 유난히 너무 많다. 구급차와 소방차까지 제대로 못 달리게 만드는 이것들 좀 없애고 개수를 지금의 10% 정도로 줄였으면 좋겠다.
특히, 규정대로 만들지 않아서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차에 쿵~ 충격을 주는 불법 방지턱은 모조리 없애 버리고 말이다.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 할 돈이 있으면 밤에 비 내릴 때 제대로 안 보이는 차선들 도색이나 똑바로 다시 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과속방지턱, 차선, 썬팅.. 이런 거 법대로 안 하는 게 관행이 돼 버린 게 많다.

(3) 대형 물류창고에서 불이 나면 이거 뭐 어지간한 산불 같은 궤멸적인 피해가 발생하는구나.;;
저기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다니지도 않는 것 같은데 화재가 왜 나는지 모르겠다. 전적으로 누전 때문인지..?
아니면 어디 외노자의 사보타주 때문인지..? 원인 조사를 꼼꼼히 했으면 좋겠다.
민족 혐오나 계층 갈등을 조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몇 년 전에 고양시 석유 탱크 화재도 그렇고 외노자의 실화 때문에 주요 기반 시설에서 불난 사례가 몇 건 있었다. 설마 방화는 아니고 실화였겠지..??

(4) 우리나라는 불법으로 공유지를 점유하는 물건들에 대한 처분이 왜 이렇게 더디고 관대하고 답답한지 모르겠다.
계곡 불법 평상이라든가, 무단 장기 방치된 자동차나 캠핑카들, 그리고 경치 좋은 해변이나 물가에 무단 알박기 텐트들 말이다.
몇 번 계도하고 말미까지 줬는데도 안 치우면 몽땅 다 때려부수거나 끌어내고 처분해 버려야 하지 않는가? 저거는 영세민들 생존권 따위하고도 1도 관계 없어 보이는데?

알박기 텐트는 그 누구라도 아무나 침입하고 낙서하고 훼손하고 물건 훔쳐가도 된다고 아예 허가를 내 주면 인간들이 알아서 철거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장마 때문에 어느 지역은 강이 범람해서 알박기 텐트까지도 침수되고 떠내려갔다고 한다. 그러면 그건 쌤통인 거지 공무원들이 도대체 무슨 돈과 시간이 남아돌아서 거기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사람 없는지 확인하고 다녔다니.. 그건 너무 과잉친절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6/07/22 19:35 2026/07/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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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농사 근황

본인은 지난 식목일 때 호박씨를 심었고, 이와 별개로 4월 중순쯤에 호박 모종도 몇 포기 사 와서 집 베란다의 화분에 같이 옮겨 심었다. 이 호박들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나이는 모종이 더 많았기 때문에 꽃은 얘들이 먼저 폈다. 하지만 나중에는 싹 출신도 워낙 덩치가 커졌고 꽃이 폈기 때문에 두 출신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6월에는 암꽃이 피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었던 건 암꽃이 필 때마다 다른 호박 개체에서 수꽃을 조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6월 한 달 동안 열매를 4개 얻었다. 싹 호박만 키우지 않고 모종도 갖다 놓은 게 이번 성공의 비결이었다.

가장 먼저, 1호는 단호박 모종에서 탄생했다.
6월 9일, 이때는 본인이 직장 출장 때문에 아침에 아주 일찍 집을 나와야 했던 날인데.. 하필 이 날 암꽃이 필 예정이었다.
새벽 5시쯤, 수꽃은 꽃봉오리가 덜 펼쳐져 있었고 암꽃은 아직 봉오리를 펼치기 전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더 지체할 수 없어서 이 상태 그대로 인공수분을 해 버렸다. 암꽃은 꽃잎을 약간 뜯기까지 하면서 봉오리를 강제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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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무리해서 꽃가루를 묻혀 줬지만 그게 통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이 아이는 수분이 성공해서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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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는 더 부풀면서 커지고 무거워졌다. 생후 2주 정도 지나자 색깔도 더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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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2호는 6월 15일에 이렇게 활짝 폈다. 암꽃에 꽃가루를 흠뻑 묻혀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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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방을 들고 있던 팔이 아래로 내려가고 열매도 부풀면서 수분 성공을 인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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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2주와 3주에 근접하자 표면에 허연 이펙트가 추가되고, 속이 누렇게 익으려는 기미까지 보인다.
그리고 모양도 그냥 동그란 게 아니라 납작해지고 쭈글쭈글해져서 진짜 호박처럼 생기려 한다.
현재로서는 2호가 가장 크고 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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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3호는 처음부터 세로로 홀쭉하게 생긴 아이였다. 6월 16일, 2호의 바로 다음날에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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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수분이 성공하자 계란과 비슷한 모양이 되더니, 계란보다는 약간 더 큰 모양으로 수렴했다. 위의 사진은 생후 +4일째 때 2호와 3호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2호는 +5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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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이후로 한동안 암꽃 소식이 없다가, 4호 암꽃은 무려 2주나 지난 6월 30일에 폈다. 씨방은 동그랗고 자그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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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분이 성공하자 D+2, D+3일째에는 줄기가 아래로 쳐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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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일째에는 저렇게 동그랗게 영롱한 자태를 뽐내며 잘 자라기 시작했다.
D+9일째에는 색깔이 짙어지고 외형도 좀 투박해지면서 호박으로서의 포스가 더 강해졌다.
본인은 7월 현재, 1호와 3호는 땄고 2호와 4호만 더 놔 뒀다. 1호는 확실하게 모종 호박 출신이지만, 나머지는 출신이 어딘지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이상, 열매 얘기는 여기까지이다.

뭐랄까 호박은 덩굴이 사정없이 길게 뻗어 나가기 때문에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그리고 호박은 생존 반응 피드백이 굉장히 금방 온다. 마구 자라다가도 물이 부족하면 금세 기공을 닫고 축 쳐져 버리며.. 시들고 죽는 반응도 상당히 빠른 편이다.
잘려나가서 물의 공급이 끊긴 호박 줄기는 단 몇 시간 내에 쪼그라들고 시든다.

꽃이 펴 있는 시간대도 아주 짧다. 새벽에 폈다가 당일 오전이 가기 전에 바로 꽃이 지고 시드니 말이다.
gpt에게 물어 보니 호박은 튼튼한 나무가 아니라 그냥 물풍선에 가까운 재질이라고 생각하면 된댄다. 괜히 한해살이풀인 게 아니다. 제철에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꽃 피우고 열매 맺고는 확 쪼그라들고 죽어 버리는 단거리 선수와 같댄다.

그런데..
그렇게 빠르고 폭발적이고 불안정하고 다이나믹한 호박이 만들어 낸 최종 결과물 '늙은 호박'은 그 어떤 열매보다도 안정적인 '자연산 통조림'이다. 몇 개월 단위로 보관 가능하고 조건이 좋으면 거의 반 년도 넘게 남아 있으니 말이다. 이게 참 신기한 면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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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버이날에는 우리가 식목일에 심었던 호박 싹 중의 일부를 부모님 계신 고향으로 보냈다. 싹이 너무 많이 나서 이것들을 우리가 모두 키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식물은 옮겨 심기면 스트레스 받고 뿌리가 다치기도 해서 그런지 며칠 이상 생장이 정지하고 늦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아이들은 아직도 노란 꽃을 피운 적이 전혀 없다. 펜촉 받침대 정도나 만들어지는 중이니 앞으로 1~2주 뒤에는 꽃이 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2~3미터에 달하는 길고 굵은 덩굴이며, 커다란 잎들을 보시라. 그 자그맣던 아이가 이렇게 크게 자랐더니 경이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직 얘들은 덩치를 키우는 영양 성장 중이지, 생식 성장으로 모드가 바뀐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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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집 주변의 전원주택 텃밭에서 남이 키우는 호박들이다. 너무너무 탐스럽고 부러워서 사진을 올려 본다.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중간에 줄기뿌리도 마음껏 뻗을 수 있는 평지에서 호박을 키우고 싶다. 이 말을 이미 예전에도 몇 번 했지 싶다.

* 주의: 과습 피해

호박에서 난 잎은 1달 정도 있으면 수명이 다해서 슬슬 누래지거나 갈변하며 시든다. 아니면 흰가루병에 뒤덮히거나 시꺼먼 깨알 같은 진딧물들에게 점령 당해서 최후를 맞이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시드는 게 아니라 병충해 조짐이 보인다면 물, 비료뿐만 아니라 약도 쳐 줘야 한다.

그런데 지난 7월 초, 지각 장맛비가 쏟아졌을 때 우리 아이들이 과습 피해를 입었다.
장맛비 덕분에 1주일 가까이 우리가 물을 안 줘도 되고 좋았더라만... 화분의 물빠짐에 문제가 있었던가 보다. 비를 철철 맞은 뒤부터 호박들의 행동이 달라졌다.
호박잎들이 평범하게 수명 다해서 시드는 수준 이상으로 비정상적으로 많이, 심하게 노래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노래지지 않은 잎은 가장자리가 마치 불에 타기라도 한 듯이 새까맣게 갈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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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6월 중순쯤에는 수박을 사 먹고 남은 씨앗을 뿌려 봤는데, 얘들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본인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박을 먹었지만 수박씨를 버리지 않고 어디엔가 심어 본 건 이게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떡잎이 돋고 이제 본잎이 나오는가 싶었는데.. 이 연약한 아이들이 비를 너무 많이 맞고 흙에 물기가 너무 많아지자 견디지 못했다. 모조리 죽어 버려서 수박 농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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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후 3개월 가까이 된 호박들은 뿌리의 일부가 대미지 입고 스트레스를 받았을지언정, 다행히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하체의 오래된 잎들은 죄다 시들어서 빠졌지만 상체의 말단 쪽은 여전히 싱싱하고 건강했다. 매일 꽃도 활발하게 피고.. 잎이 시든 곳에서도 잎만 누래졌을 뿐, 잎자루는 여전히 탱탱했다.

결정적으로 잎이 빠졌던 뿌리 근처 하체 부위에서도 새순이 다시 싱싱하게 돋기 시작했다.
이건 호박이 뿌리가 질식할 뻔한 위기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밥값 못 하는 오래된 잎들만 도태시키고, 나머지 부위를 우선적으로 살리는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름 머리를 써서 내린 의사결정인 것이다.
아무쪼록 호박이 장맛비 다음의 무더위에도 무사히 살아남고 제2의 인생 동안 또 5호, 6호 암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6/07/18 08:35 2026/07/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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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유사한 체격의 타 포유류와 비교했을 때, (1) 완전한 이족 직립보행을 해서 손을 온전히 쓸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타조는 이족보행이지만 직립은 아님) 그리고 다른 동물보다 (2) 머리가 무척 크다.
4족 동물들보다 달리기 성능이 약간 부족하지만.. 그래도 (3) 땀을 많이 흘리는 걸로 체온 조절이 되고 지구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런데 생리학적, 혹은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저런 특징을 얻기 위해 다른 댓가를 치른 게 있다고 여겨진다.
이족보행 활동을 위해서는 골반(엉덩뼈)이 좁은 게 유리한 반면.. 머리가 큰(= 단면적이 넓은) 아이를 원만히 출산하기 위해서는 골반이 큰 게 좋다.

이런 상충되는 조건으로 인해, 인간은 타 포유류보다 출산이 꽤 복잡하고 힘들어졌다고 한다. 인간 아기는 동물 새끼처럼 쉽게 나오지를 못하고 낑낑대며, 산모는 산모대로 타 동물보다 더 큰 산통에 시달린다.
성경에서는 창 3:16에서 산통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은 걸로 유명하다만.. 그와 별개로 일단 보이는 현상만 관찰하자면 저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태어난 직후의 상태가 다른 어느 동물보다도 더 미숙하고 연약하다. 그 어느 동물보다도 엄마 품에 더 오래 있어야 한다.
망아지나 송아지는 생후 겨우 몇 시간 만에 스스로 벌떡 일어서고 걷기까지 하지만.. 그건 인간 신생아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4족보다 더 어려운 2족임을 감안하더라도 거의 무려 1년 가까이 더 자라야 걷지 않는가? 그렇다고 말이나 소가 사람보다 반 년 이상 압도적으로 오래 임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난 이걸 보고 인간은 '부팅이 오래 걸리는 범용 컴퓨터'(스마트폰)와 비슷하고, 동물은 '켜자마자 바로 동작하고 MCU 정도나 탑재돼 있는 고정형 전자기기'(디카, 옛날 계산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전자는 켜진 뒤에도 소프트웨어적으로 뭘 초기화하고 로딩하는 게 오래 걸린다. 그러나 프로그래밍을 통해 온갖 앱들을 돌릴 수 있으며 확장성과 범용성이 넘사벽이다. 그런 것처럼 인간도 후천적으로 더 자라고 배우고 학습해야 할 게 왕창 많지만, 그 과정이 끝난 뒤에는 그야말로 짐승과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니까 말이다.

사실, 인간이 저렇게 연약하고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는 것도.. 대가리가 워낙 커서 이 상태로는 더는 엄마 자궁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쯤은 불가피하게 밖으로 내보내는 거라고.. 이 다음부터는 그냥 밖에서 더 자라라고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니, 인간의 임신 기간과 출산 시기는 머리 크기와 골반 크기와 생존 가능성 사이에서의 최적 타협점인 것 같다.

이쯤 되니 출산· 육아와 관련해서 다음 이야기들이 문득 떠오른다.

1.
외국의 무슨 사건 사고 범죄 일화 유튜브에서 언뜻 봤던 내용이다.
어떤 여자가 결혼하고 임신을 했는데..
그녀는 정신에 문제가 있었는지, 다른 환경적인 이유가 있었는지 어쨌든 배 속의 자기 애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애를 낳고 싶어하지 않고, "이 상태로 애 낳았다가는 내 인생 꼬인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만 잔뜩 하고 지냈다. (다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낙태를 하지도 않은 듯)

그랬더니 배 속의 애까지도 엄마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겁을 잔뜩 먹고 활동이 위축됐다고 한다.
자궁 안에서도 구석에 완전 쪼그리고 꼼짝달싹 안 하고 있어서
엄마가 임신 몇 개월, 중후반 됐는데도 배가 부르질 않았다. 밖에서 보면 이 사람이 임신한 줄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 뒤로 저 아기가 정상적으로 나왔는지, 산모와 애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배경은 다 까먹었는데, 어쨌든 애엄마가 임신을 했는데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 있어서 말이다.

사람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밥 잘 안 넘어가고 잠 제대로 못 자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여성의 경우 생리가 중단될 수 있고 임신 상태까지 저렇게 응당 영향을 받는가 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니 모든 부위들이 저렇게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다.

2.
이건 정말 출처가 있는지, 검증 가능한 얘기인지 모르겠다만..
먼 옛날 고대에 어디 어느 나라 군주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막장 실험을 기획했다고 한다.
전국에서 버려진 갓난아기들을 한데 모았다. 그래서 애가 울면 사람을 동원해서 젖과 물 주고 씻어 주고 분변을 치우는 등 물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필요한 조치는 다 최고 수준으로 하되, 엄마로서의 정서 교감이나 애정 표현, 우쮸쮸 등은 안 해 봤다. 특히, 아기에게 말을 절대 걸지 않았다.

이러면 유모 역할을 수행했을 여인들 중엔 애가 불쌍하다고, 실험이 너무 잔인하다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실험이 의도대로 진행됐다. 그랬더니..

실험 대상 아기들은 몇 달 못 가 원인 모를 병을 시름시름 앓다가 모두 다 죽어 버렸다고 한다.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이다만 실험을 실제로 해 보면 진짜 저렇게 될 것 같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식물이 말귀 알아듣는다 이런 얘기보다는 더 설득력이...)

인간은 3~4살쯤 말을 하게 되면 그 이전의 기억은 다 잊어버린다고 한다. 이 정도면 언어 구사 능력과 이전 기억을 등가교환이라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하긴, 언어라는 건 생각과 기억을 하는 방식에 적극 개입하는 일종의 파일시스템 같은 존재인데, 뇌의 기억장소 셀이라는 디스크를 자기 방식으로 포맷을 해 버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까맣게 어린 영유아 시절에 애를 아무렇게나 키워도 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게 참 절묘하다.
그때 학대 당하고 욕구불만이나 치명적인 위험을 겪고 자지러지게 우는 게 지속됐다면, 그게 나중에 다른 어떤 형태로든 트라우마나 장애(발육, 정서 등..)로 아이에게 반영구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상이다. 육아는 패턴이 뻔한 단순노동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나 로봇이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 힘든 식물 농사는 자동화해도, 엄마의 애정은 기계로 전할 수 없을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6/07/14 08:35 2026/07/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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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이야 x86이라는 컴퓨터 아키텍처가 세계를 완전히 평정해 버려서 PC부터 슈퍼컴까지.. 그야말로 모바일만 빼면 다 쓰이는 것 같다. 그리고 인텔은 그 x86이란 걸 최초로 개발한 본가로 너무나 유명하다.

x86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하위 호환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아주 점진적으로 진화해 온 아키텍처이다.
1970년대에 8086과 8088이라는 16비트 CPU에서 시작됐는데, 심지어 더 옛날에 8비트 시절의 8080도 x86의 전신 조상이라고 볼 수 있다. 8008이나 4004까지 가면 너무 멀어지는 것 같지만...;;;

이 x86은 1980년대 중반 80386 버전에서 32비트로 확장됐고, 그로부터 20여 년 뒤엔 64비트로도 확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만, x86-64는 인텔이 아니라 AMD에서 처음으로 내놓았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이런 주류 라인인 x86 말고 인텔에서 만든 CPU라니, 뭔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 중에서 Windows, Office, Visual Studio가 아닌 계열을 탐방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 이런 것들이 있었다. 다들 32비트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1. iAPX 432 (1981)

인텔에서 개발한 최초의 32비트 CPU는 80386이 아니라 바로 이놈이었다.
16비트 x86이 최대한 저가 보급형에 현실 타협 컨셉으로 개발됐으니, 그 다음 32비트 CPU는 큰 포부를 갖고 실험적인 기능을 몽땅 때려박아 보자~~ 이런 목표를 갖고 개발됐던 것 같다.

x86만 해도 명령어가 아주 촘촘하고 내부 구조가 복잡한 CISC 방식이었는데, 얘는 그 이념이 더욱 극대화됐다. 운영체제나 특정 객체지향 언어 vm에서 소프트웨어적으로 담당할 일을 CPU가 회로 차원에서, 길다란 인스트럭션 하나 직통으로 최대한 지원하는 것을 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그 시절에 특수 분야에서 현역으로 쓰이고 있던 Ada 언어와 아주 찰떡궁합을 이루려 했다. 오오~ 그러면 이 CPU를 타겟으로 하는 Ada 컴파일러는 intrinsic 명령이나 구문이 많이 제공됐겠다.

글쎄, 객체지향 언어라면 RTTI 기능이나 가상 함수/메시지 테이블을 뒤지는 기능이 CPU빨로 직통 지원된다면 그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그 시절 기술로 CPU 안에 지나치게 많은 기능을 집어넣는 건 부작용을 야기했다.
CPU 내부가 너무 복잡해졌고 제품의 생산 비용도 치솟았다. 그런 주제에 얘는 동시대의 "16비트" 프로세서인 80286보다도 속도가 훨씬 느려졌다.

그나마 이 CPU의 장점을 살릴 수 있게 코드를 잘 생성하는 컴파일러를 개발하는 것도 영 지지부진했다. 단점은 한 트럭인데 장점도 애매하고.. 총체적인 난국이었으며 결국 이 아키텍처는 실패로 끝났다.

이런 홍역을 치렀으니, 인텔에서 1985년 말에 80386은 기존 8086의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고 호환성도 살리면서, 정말 바꿔야 하는 부분만 16비트에서 32비트로 확장하는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32에서 64비트로 넘어갈 때 Itanium은 망하고(너무 파격적) AMD64가 살아남았었다(좀 보수적). 그런데 이와 같은 유형의 삽질이.. 옛날에 32비트로 넘어갈 때도 인텔 내부에서 이미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2. i960 (1988)

iAPX 432의 실패 이후에 인텔에서 오랜만에 새로 만든 비x86 CPU는 바로 얘였다. 정확히는.. 처음엔 지멘스와 공동 개발을 시작했지만 지멘스 쪽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중도 이탈하면서 최종 결과물이 인텔 것이 되었다.

i960은 CISC가 아닌 RISC 방식으로 설계됐으며, 애초에 범용 컴퓨터가 아니라 산업용 임베디드 MCU 용도로 만들어졌다. 에, 그러니까 절대적인 성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특정 분야 연산만 겁나 잘한다거나, 열악한 환경에서도 퍼지지 않고 끈질기게 잘 돌아가는 것 말이다.
얘는 처음에 군용으로 납품되었으며 초창기 F-22 전투기의 내부에도 들어갔다고 한다. 미군 전투기..?? 거기야말로 오랫동안 Ada 언어를 사용했던 곳이 아닌가? 반면교사 선배격인 iAPX 432가 관심을 가졌던 그 언어 말이다.

i960은 인텔이 만들었던 비x86 CPU 중에서는 가장 성공했다. 범용 컴퓨터가 아닌 덕분에 특정 분야에서 고정된 고인물 수요가 보장되어서 수십 년 동안 생산되고 쓰였다.
얘는 일본 SEGA에서 개발한 버추어 파이터 2의 플랫폼인 MODEL2 기판에 채택되어 쓰이기도 했다.

"게임 크리에이터 열전"이라는 20년 전의 일본 만화에서 '스즈키 유 - 버추어 파이터' 편을 보면, 그 시절 기계로 현란한 3D 그래픽 애니메이션을 구현하기 위해 전투기에 들어가는 CPU까지 구해서 기판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1편 때는 조종사 훈련용 전투기 시뮬레이터에 들어가는 CPU와 GPU를 도입했었다. (MODEL1, NEC V60) 그러다가 MODEL2는 전투기 실물에 들어가는 인텔 i960 CPU가 쓰인 것이다. 그런 차이가 있다~!

3. i860 (1989)

얘는 960과 동시기에 같은 회사의 다른 팀에서 나란히 개발되고 있던 또 다른 32비트 CPU였다. 960보다 숫자가 작지만 960보다 나중에 출시됐다.
얘는 산술· 과학 계산을 빡세게 하는 워크스테이션이나 슈퍼컴을 겨냥하여 FPU를 64비트 스케일로 내장했다. 그리고 명령의 병렬 수행을 여러 모로 의식해서 명령 체계를 RISC를 넘어 VLIW 형태로 설계했다. 사실상 32비트판 Itanium이고 Itanium의 정신적 선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i860은 컴파일러가 특정 분야의 프로그램 한정으로 이 CPU의 특성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코드를 잘 번역하고 잘 생성해 줘야만 제 성능을 낼 수 있었으며..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대부분의 상황에서 얘의 성능은 기존 CPU나 동급 경쟁사의 CPU보다 뛰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얘는 얼마 못 가고 실패했다.

인텔은 그래도 이 설계 이념을 버리지 못했다. x86이 당장 현실적으로 상업적으로는 잘나가고 있지만 얘는 레거시 때문에 구조적으로 너무 지저분하긴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중에 64비트로 갈아탈 때는 iAPX 432와 i860의 이념을 계승하면서 단점을 보완은 했다고 생각하면서 Itanium을 개발했다. 하지만 Itanium은 실패한 선배의 전철을 거의 그대로 밟으면서 역시 처절하게 실패했다.

그래도 인텔 i960과 i860의 개발진은 훗날 x86 동네에서 Pentium Pro CPU를 개발했다. 멀티미디어 지원에 필요한 병렬화 고속 연산 명령인 MMX를 만들어서 그 이념을 x86에다가 실현해 냈다.

사실은 마소의 Windows NT라는 것도 맨 처음, 최초로 타겟으로 설정한 아키텍처는 놀랍게도 이 i860이었다고 한다. 마소가 전통적으로 인텔 진영과 사이가 좋기도 했으니.. 하지만 본가이던 i860이 망조가 들고, NT는 처음부터 이식성도 있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곧 x86, MIPS 등의 아키텍처로 포팅된 것이다.

나중에 Windows 2000은 NT 버전 5.0 급이었는데, 얘도 64비트용은 Itanium이 정식 출시되기를 기다리면서 대부분의 기간을 DEC Alpha 환경 내지 Itanium 껍데기 시뮬레이터에서 개발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인텔 CPU가 통수를 치는 바람에 Win 2000은 사실상 x86 전용으로, WinNT의 역사상 지원 CPU가 가장 적은 버전으로 개발돼 버렸다.

글쎄, 인텔이 구닥다리 X86을 버리려고 1990년대부터 삽질했었다면, 마소는 NT 커널을 버리려고 2000년대 중후반부터 이것저것 실험하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시도 역시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

  • 과거에 Windows 3.0은 real, standard, enhanced 이렇게 x86 하에서 실행 모드가 다양했다.
  • 그 반면, Windows NT 3~4는 x86, MIPS, PowerPC 등 지원하는 CPU가 다양했다.
  • Windows 2000은 x86 전용이 돼 버렸지만 그 32비트 한계 하에서 PAE나 /3GB 같은 옵션을 제공하면서 메모리를 최대한 많이 뽑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들어갔다.
  • Windows의 역사상 Itanium을 제대로 지원했던 버전은 XP가 유일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6/07/10 08:35 2026/07/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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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2020년대 중반인데.. 우리나라 철도계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서울 지하철

(1) 코레일이나 서울 1기 지하철이 아니라 서울 2기 지하철, 즉 5~8호선에도 드디어 차량의 세대 교체가 시작됐다.
웨에에엥~ 우렁찬 구동음을 자랑하던 서울 지하철 7호선의 1차 도입분(GEC 알스톰 VVVF-GTO) 차량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더니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렸다. 우와~!!

이건 완전 최근도 아니고 2023~2024년 사이에 이미 그렇게 됐다.
이 낡은 전동차는 2026년 현재 8호선에서만 볼 수 있으며, 얘들도 새 차량이 도입되는 대로 조만간 퇴역이 예정된 상태이다.

7호선은 서울 2기 지하철 중에서 노선이 가장 많이 연장되고 길어졌다 보니, 신형 차량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도입되곤 했다.
그 첫 시작은 15년쯤 전, 온수-부평구청 연장 구간의 개통에 맞춰 등장한 3차 도입분이었다. 음 성직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도입돼서 큰 주목을 받았던 그 전동차 말이다.

현재는 7호선이 석남까지 서쪽으로 더 길어졌고, 초기 도입분이 퇴역도 했기 때문에 3차 이후로도 신차가 더 도입됐다.
출퇴근 시간대엔 7호선이 너무 혼잡해서 수요가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심지어 6호선 소속 차량이 한두 편성이던가 7호선으로 보직이동 투입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은 7호선에서도 6호선 전동차 구동음을 내는 열차를 목격할 수 있다. 이게 마치 옛날에 6호선에 있었던 609 편성 같은 레어템이 됐다.

그 와중에 7호선은 몇 년 뒤엔 무려 청라까지 또 연장될 예정이다. 그때에 맞춰서 또 5차고 6차고 신형 차량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 다음으로.. 2기 지하철의 원조격인 5호선에서도 2020년대부터는 신형 차량이 출몰하기 시작했으며 그 빈도가 증가하는 중이다.
가끔은 외형은 기존 차량 그대로인데 인버터가 바뀌어서 5호선 특유의 '우우웅~' 소리가 안 나는 녀석도 눈에 띈다.
한편으로 왕십리-상일동 원년멤버 초창기 차량 중에 상태가 안 좋은 녀석은 이미 퇴역하고 폐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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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8호선 중에서는 아무래도 6호선이 변화가 제일 없었다.
6호선은 21세기 이래로 연장 내역부터가 오로지 ‘봉화산-신내’ 뿐이었으며, 차량도 2001년 개통 이래로 새로 들어오거나 퇴역한 게 전무하다! 25년째 신차 도입 없이 1차 도입분만 굴러다닌다는 뜻이다.
신내 역은 인근 주민들로부터 설치 요구조차도 없었으며, 전적으로 경춘선 때문에 떨이로 장암 역처럼 만들어진 환승역일 뿐이다.

(4) 뭐.. 서울 지하철의 선배격인 1기 지하철이야,
2호선에서 재래식 MELCO 초퍼 제어 전동차는 2020~2021년에 몽땅 사라져서 자취를 감췄다. 2010년 부근에 플랩식 구형 안내판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그로부터 10년 뒤엔 초창기 전동차가 모두 퇴역했다.
그리고 3호선의 얼굴마담이던 GEC 초퍼 제어 전동차도 2022년에 모두 퇴역했다고 한다.

2. 공항철도

공항철도는 한때 엄청난 공기수송으로 악명을 떨쳤으나.. 서울 시내 구간이 개통하고 환승 할인도 적용되면서 지금은 정말 흥행하는 노선으로 바뀌었다. 이용객이 계속 증가한 덕분에 차량이 알음알음 추가 도입되었고 배차간격이 줄어들었다.

행선지도 말이다. 예전엔 검암 행과 공항 행이 거의 반반씩 번갈아가며 다녔지만 요즘은 공항까지 가는 차량이 훨씬 더 많아지고 검암에서 끊기는 차량은 드물어졌다. 예전엔 7호선도 온수 행과 석남/부평구청 행이 거의 반반이다가 요즘은 석남 행이 훨씬 더 많아진 것처럼 말이다.

공항철도는 이제 노선이 앞뒤로 더 연장될 여지는 없다. 하지만 차량 운행 방식이 두 가지로 기대되는 게 있다. (1) 시속 150 정도로 증속, 그리고 (2) 지하철 9호선과의 직결.
2025년에는 직통도 아닌 일반열차에.. 평범한 직사각형 깡통 모양이 아니라 앞뒤로 더 날렵하게 생긴 차량이 등장했다. 이것도 고속 주행을 염두에 둔 외형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항철도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하던 시절엔 지상의 경부-경의선과 잠시 직결운행을 한 적이 있었다. (인천 공항 착발 KTX)
하지만 공항철도가 설계 당시부터 진짜로 직결운행을 염두에 뒀던 노선은 그런 일반열차 계열이 아니라 서울 지하철 9호선이었다. 여의도 역은 5호선과의 환승을 염두에 두고 십자형으로 최적화되어 만들어졌는데, 김포공항 역은 평면환승을 넘어 직결운행까지 가능하게 해 놓은 것이다.

물론 인천공항부터 김포공항-신논현-올림픽공원을 한큐에 찍는 열차는 수인분당선 왕십리-수원-인천 전체 구간을 완주하는 근성열차처럼 1시간에 1, 2대꼴로 무척 드물게 운행되지 싶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이후로 직류-교류 겸용 차량도 얼마 만에 다시 구경할지..?? 여러 모로 기대된다.

공항철도의 신규 도입 차량은 현대로템에서 제작하고 납품했다고 한다.
1990년대에는 철도 차량 제조사가 현대 중공업, 대우 중공업 그랬는데 그게 현대로템으로 합병됐고, 요즘은 우진산전이나 다원시스 같은 업체도 심심찮게 보인다.

다만, 다원시스는 차량 납품 계약을 맺어 놓고는 납기일을 안 지키고 약속을 죄다 펑크 내고 사고를 많이 쳤다. 이 때문에 코레일이나 서울 교통 공사에다 위약금도 물고 업계에서의 평판이 많이 깎였다. 왜 그렇게 부적절하게 처신했는지 모르겠다.

3. 디젤 동차의 퇴역, 전기 기관차의 쇠락

끝으로, 일반열차의 영역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소식은.. 디젤 동차의 전멸이다.
대통령 전용 열차로 알려진 경복호가 작년 말에 완전히 퇴역했다고 한다. 거의 25년 동안 운용됐던 것 같은데 쟤도 은퇴하는 날이 오는구나.
2013년 초에 새마을호 디젤 동차 DEC, 2015년 초에 무궁화호 NDC, 2023년 말에 CDC와 RDC, 그리고 2025년 말에 경복호.
이제 우리나라에서 디젤 동차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 정말로 디젤 동차가 제일 필요할 법한 교외선에서도 기관차-객차 열차가 다니는 것이다.

뭐, 디젤 동차의 대척점에 있는 전기 기관차 쪽도 상황이 막 좋지는 않다.
8000호대 재래식 전기 기관차가 2020년대부터는 하나 둘 퇴역하더니 바로 2026년 6월부로 모든 차량이 차적이 말소됐다.
그리고 8100호대 전기 기관차도 진작부터 대기발령 상태였는데 이 시기에 같이 퇴역했다.
지난 2012년에 독특한 외형을 자랑하던 7000호대 기관차가 퇴역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전기 기관차는 8200호대와 8500호대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철도는 2010년대 이후부터 여객 수송의 중심축이 전동차로 급격히 바뀌었다. 2000년대 초의 신형 무궁화호 객차 이래로 기관차 피견인형 객차를 새로 뽑은 적이 없다. 거의 20년 동안 말이다. 그러니 기관차가 객차 여러 량을 견인하는 형태인 일반 여객열차는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8500호대는 처음부터 화물 위주로 도입됐지만, 그 이전의 8200호대 전기 기관차들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서 남아돌 것 같다. 얘들은 내구연한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폐차나 중고품 수출될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업계만 해도 처음에는 버스와 트럭의 구분이 아주 불분명했다. 같은 차량에다가 짐받이 대신에 객실을 얹으면 그대로 버스가 되는 식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대형 버스는 바닥의 높이가 낮아지고 엔진이 차량의 뒤쪽으로 가면서 트럭과는 굉장히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그것처럼 철도 차량도 범용적인 기관차에다가 객차만 연결하면 여객, 화차를 연결하면 화물인 단순한 형태를 탈피하는 것 같다. 화물은 몰라도 여객은 여객에 더 특화된 전동차로 바뀌어 가니 말이다.

가령, 여객열차는 속도가 더 빨라야 하니 옛날 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구동륜 바퀴를 더 큼직하게 만들곤 했다.. 여객용 전동차는 공기 저항을 의식해서 앞부분을 아주 날렵하게 만들곤 한다. 이런 설계는 화물용 기관차에는 고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7/06 08:35 2026/07/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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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에 대해서

1. 자유형 집행할 돈과 공간이 없으면 딴 대안을 찾아야

요즘 우리나라는 교도소에서 죄수 수용할 공간이 없어서 난리이다. 한편으로 늘어나는 고령 노인 죄수들 때문에 교도소가 반쯤은 국립 무료 요양호텔로 전락해 있기도 하며, 또 더 잃을 게 없이 밥만 축내고 있는 사형수들은 제아무리 진상 부리고 깽판을 쳐도 교도관들이 어찌하질 못하는 등, 여러 문제가 많다.

사실, 징역/금고 같은 자유형 자체가 생각보다 최근에 등장한 현대적인 개념이다.
그 전, 전근대 시절의 감옥들은 판결이 날 때까지, 혹은 다른 진짜 형벌이 집행될 때까지만 죄수를 구금하는 '구치소'였을 뿐이다.
물론, 죄수를 가두고는 상부에서 죄수의 존재를 잊어버리는=_= 바람에 그 구금이 사실상 무기징역이 돼 버리는 경우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오늘날의 무기징역 확정 판결과 같은 급이 전혀 아니었다.

일정 기간 구금하는 것 자체를 형벌로 간주하는 건 옛날 행정으로는 집행하기 쉽지 않았다. 그 긴 기간 동안 죄수를 먹이고 재우고 관리하는 비용도 몽땅 다 세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도소의 과포화 문제가 심각한 지경이고 대한민국의 사법/법무부의 역량으로 이걸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면??

답은 간단하다.
자유형 대신 사형, 신체형, 재산형, 명예형의 비중을 늘려서 교도소 공간을 확보하는 수밖에. 내 말 틀렸냐?
"신상 비공개로 징역 10년 살래? 아니면 '차카게 살겠습니다' 광화문에서 조리돌림 한번 하고, 이 얼굴과 연락처 다 까발리고 사회에서 평생 고개를 못 들고 사는 대신에 교도소에서는 1년만 살래?" 딜을 제안하든지..

어떤 경우든 집행유예 남발이나 심지어 '교도소에 에어컨' 같은 더 흉악하고 사악한 해결책을 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난 극심한 저출산과 고령화 때문에 그렇잖아도 나라에서 잘 살던 시절에 내놓았던 의료· 복지 정책을 도저히 시행하지 못하는 때가 수십 년 안으로 들이닥칠 거라고 생각한다.
국민연금 고갈은 말할 것도 없고,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도 대폭 축소되거나 폐지될 것이다.

정상적인 일반 시민들 부양할 돈도 없는 지경인데 하물며 죄수들..??? 쟤들 언제까지 공짜로 먹이고 재워 줄까? 이래도 인권충들이 이길까, 아니면 뒤늦게라도 정의의 편이 이길까..?
난 지금 같은 교도소와 형벌 제도도 과연 언제까지 버틸지 눈 부릅뜨고 지켜볼 생각이다.

영어로 life가 생물학적인 생명이라는 뜻도 있고, 인생.. 삶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 잠 4:23 issues of life (생명의 근원, 인생의 문제)이나 약 4:14의 life가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형은 생명을 앗아가는 형벌이고, 종신형은 인생을 앗아가는 형벌이다. 단, life imprisonment는 종신형이니 life를 인생이라고 본 듯하다. 생명형을 가리키는 단어는 capital punishment라고 따로 있으니 말이다.

난 우리나라 특유의 "가해자 행세하는 피해자, 100을 피해 봤으면 이 기회에 500, 1000을 뜯어내서 신세 고치려는 짓거리" 정서를 매우 싫어한다고 예전에도 글을 썼었다.
그러나 살인에 사형을 요구하는 '생명에 생명'은 정말 정확하게 당한 만큼, 또는 오히려 그 이하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과잉보복이나 과잉보상이 절대로 추호도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늘어나면 무슨 어딜 가나 머리가 되고 1등하고 복 받고 잘살고... 아이고, 그러기 전에 먼저 사회가 건강해져야 할 것이다. 경찰· 검찰이나 법원이나 교도소나 보험사가 할 일이 줄어들고, 접촉사고 하나에 아이고 뒷목 잡는 나일롱 환자 짓거리가 근절되고.. 그러면 병원이나 소방서나 군대, 사회복지사 등이 할 일도 덩달아 줄어들 것이다.

그게 정상인데 교회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자기 신자 1명 늘리는 동안 시험 들고 실족한 사람 5명과 개독안티 10명을 추가하는 식으로 움직이니 빛과 소금은커녕 사회로부터 지탄 받는 것이다.

2. 찬송가 가사와의 접점

그러고 보니 찬송가 가사에서 형벌이 아주 분명하게 언급되는 예가 딱 두 가지가 떠오른다.

먼저, (1)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의 3절이던가 후반부.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가 있다.
Let goods and kindred go, this mortal life also; the body they may kill: God's truth abideth still; his kingdom is forever!

이건 대놓고 재산형, 명예형, 생명형에 너무 정확하게 대응하니... 앞서 형벌의 종류를 나열할 때 머리속에서 바로 떠올랐다.
저건 뒤집어 말하면 사람이 인생 살다가 박탈당할 수 있는 것,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을 분야별로 나열한 셈이다.

그리고 (2)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의 2절 전반부를 보자. "옥중에 매인 성도이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Our fathers, chained in prisons dark, Were still in heart and conscience free;
이건 신체형과 자유형을 가리킨다. 두 곡의 가사가 상호 보완적인 것 같다.

(1) 루터가 살던 1500년대 시절에는 현대적인 의미의 징역 자유형이라는 게 없었다. 그 시절에 사람이 종교 이단으로 몰려서 공권력에 의해 작살나는 방법은 전재산 몰수에 추방, 가족과 생이별, 목이 뎅겅 짤리거나 화형..이었다. 그 험악한 시대상이 가사에 간접적으로나마 담겼다.
그 반면 (2)는 1800년대 중반, 징역형이라는 게 서구권에서 도입된 뒤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더 점잖게 옥에 갇혔다는 언급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 주제별 성경 공부 시간 때 '마귀론'을 다룬 적이 있었다. (신론, 기독론, 교회론 등에 이어)
그때 맨 첫 시간에도 본인은 준비찬송으로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골랐었는데.. 이때는 끝부분이 아니라 앞부분의 가사 때문이었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 천하에 누가 당하랴 /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그야말로 마귀의 정체와 위력, 놈과 싸우는 방법 등.. 단순히 영적 전투를 넘어 마귀론에 관한 한 정말 최고의 찬송이었기 때문이다.

중간에는 "내 평생에 가는 길" (2절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 내 영혼 평안해”)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장수, 대장 소개를 하고 나서 그 다음에 “앞서 가신 주를 따라갑시다 / 원수 마귀 모두 쫓겨가기는 예수 이름 듣고 겁이 남이라 / 마귀 권세 감히 해치 못함”) 이걸 하고,
마지막 시간에 피날레로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영광 영광 할렐루야)”를 골랐었다.

3. 군대의 전역일과 교도소의 석방일

군대는 룰루랄라 집에 가는 만기 전역 당일도 법적으로 군복무 기간에 포함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사자는 집에 가는 동안에도 법적으로는 여전히 군인 신분이다. 정확히는 휴가 나온 군인 내지, "전역 귀가"라는 마지막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과 비슷한 신분이 된다.

그 날이 지난 자정부터 진짜 진정한 민간인으로 전환된다. 전역 신고하고 군부대 정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바로 민간인이 되는 게 절대 아니다.
그러니 너무 감격스러워서 밖으로 나가자마자 안쪽으로 쌍욕을 퍼붓는다거나 도 넘는 경거망동 일탈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아직까지는 경찰이 아니라 헌병에게 잡혀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말 원칙대로라면.. 혹은 전쟁· 사변 같은 급박한 상황이라면 그 날 일과까지 다 수행하고 나서 저녁에 귀가한다 해도 문제될 게 없다. 그건 너무한 조치이니 어지간해서는 당일 오전 중에 곧장 보내주는 것이다.

뭐, 진짜 급박한 상황이라면 전역이 통째로 연기돼서 그날 아예 집에 못 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군복무 기간이 통째로 연장될 수 있다.
지금 육군의 복무 기간인 1년 6개월은 진짜 법적인 기간이 아니라 "원래는 2년인데 그냥 편의상 6개월 깎아 주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병역법 제18조) 수틀리면 얼마든지 원래대로 되돌리고, 심지어 더 연장도 할 수 있다.

전역 당일 11시 59분 59초까지가 군인 신분인 것과 동급으로.. 입영 장정도 법적으로는, 원칙적으로는 보충대로 갓 입소하는 당일 0시 0분부터가 이미 군인 신분이다. 그것도 이병으로 말이다. 우리나라 군대에는 훈련병이라는 계급이 따로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간부는 양성 중에는 후보생이고 정식 임관을 한 뒤에야 군인인 반면, 병은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부터 곧바로 정식 군인이다. 징병제인 데다 병은 훈련소에서 짤릴 위험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이런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소에 있을 때라도 극단적인 상황에서 전사· 순직이라도 하면 일병으로 추서된다.

요즘 우리나라는 군복무 기간 대비 병은 계급이 너무 많고 부사관은 계급이 너무 적은 편이다.
이등병을 그냥 훈련병으로 그대로 치환해 버리고, 훈련소를 수료하면 바로 일병부터 시작.. 이렇게 계급을 단순화시키는 게 가장 이질감 없고 현실적이지 않겠나 싶다.

갑자기 군대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이런 군대와 달리 교도소는 만기 출소일 0시 자정이 형기가 완전히 끝나는 시점이다. 이때부터는 저 사람은 수감자· 죄수가 아니라 일단 시민 신분이 된다. 단지, 전과자일 뿐인 거지.

그렇기 때문에 형기를 마친 죄수는 원래는 0시 새벽에 칼같이 석방 방면이 가능하다.
허나, 귀가 교통편이나 인근 주민들의 반응 같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실제로는 최소한 해가 뜨고 대중교통이 다니는 아침에 출소하게 된다. 물론 출소 준비는 전날 한참 전부터 시작되지만 말이다.
이런 차이가 있다.;;

예전에도 몇 번 말했듯이, 일부 나라들은 군인의 탈영은 처벌하는 반면, 죄수의 탈옥은 따로 처벌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군인이야 애초에 근무 중에 탈영은커녕 긴급피난조차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극한직업이며(경찰· 소방처럼), 모병제 국가라면 자기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이 직무를 저버려서는 더욱 안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죄수는 처지가 다르다.

죄수가 기회만 되면 최대한 탈출하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기본 보편적인 욕망이고, 그것 자체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마치, 범죄자의 직계가족이 그의 도피를 도와준 건 도의적으로 형사처벌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탈옥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탈옥 과정에서 교도소 시설을 파손하거나 교도관을 폭행하는 사이드이펙트...를 남겼다면 그건 여전히 처벌 대상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7/01 08:35 2026/07/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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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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