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러 시사 이슈들

1. 부동산 문제, 저출산 문제

내가 시사와 관련해서 남의 글이 아주 공감돼서 그대로 퍼 오는 건.. 옛날에 김 향훈 변호사의 글 "가해자가 되는 피해자" 이후로 이게 처음인 것 같다.
임 건순? 잘은 모르겠지만 검색해 보니 문사철 계열 전공에 책도 여럿 썼고 우파 논객으로 인지도가 있는 분 같다. 이분 글이 개인적으로 매우 공감되어 소개해 본다.

* * * * * * * * * * *
아직도 모르는 분들 계신가 모르겠는데, 민주당의 정책, 좌익들의 공약이란것은 문제의 해결은 위한 것이 아니다. 단기적으로 선거, 장기적으로는 유리한 선거구도를 위한 것일 뿐.

좌익, 자칭 민주 진보 진영의 저출산 공약들을 보면 하나같이 페미니즘이 묻어 있다.
결혼과 출산은 철저히 안정된 소득기반을 가진 남성들의 수와 비율의 문제인데, 그건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여성 지원 이야기만 한다.
남성은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여자를 찾고, 여자는 생존의 문제가 닥쳐야만 남자를 찾는 법이다. 본능이 그렇게 세팅되어 있다. 그런데도 저출산 해결을 운운하면서 여성 지원만 이야기하고 남성들 역차별을 불러오는 공약들만 남발한다.

걔들이 바보일까, 민주당 정치인과 셀럽들이? 그게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다 못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모를까? 다 안다! 얼마나 똑똑하고 빠끔이들인디.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정책을 내세우고 여성친화 어쩌고 해야 표가 되고 선거에서 이기니까 하는 거다. 실제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생각은 1도 없고, 그저 득표 전술만 구사할 뿐이다.
저출산 해결을 빙자해서 여자들에게 아부하고, 아부하는 과정에서 예산 집행하는 기구들 만들어서 자기들 빨대를 꽂아 넣으려는 수작이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생각은 애초에 1도 없다.

부동산 정책과 공약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단 1도 없다. 사람들이 자기 집을 가지면 보수화되고, 우파 정당을 지지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 그들은 집을 사면 안 된다. 집값을 뻥튀기하고 오르게 하고 자기 집 없이 평생 임대로 살아야만 좌파 정당 지지하고, 부자들에 대한 증오심을 간직하게 된다.

국민들이 집을 사면 안 되는데.. 집이 생기면 우리가 장기적으로 선거에서 불리하게 싸워야 하는데 미쳤다고 집값을 잡냐? 나라가 어찌 되건 말건 그건 알 바 아니고 우리 선거에만 유리한 환경 만들어야지, 안 그래?

다시 말하지만 저출산이고 부동산이고 문제의 해결책은 철저히 남성 지원으로 가야 한다. 누가 더 자기 영역을 만들려고 하는 의지가 강한데? 다시 말하지만 남자들은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결혼을 하려 하고 여자는 생존의 문제가 닥쳐야 남자를 찾는 법이다.
여성 지원과 혜택만 잔뜩 주면 출산율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출산율이 떨어지지. 생존의 문제를 국가와 기업이 해결해 주는데 뭐 하러 결혼을 해??? 출산율 정책이 아니라 고양이 개체수 증가 정책이지 뭐. 중소기업 재직 남자들 말살 정책이고.

그냥 외워들 두십시오. 민주당과 좌익들은 사회 문제의 해결을 원하지 않습니다. 해결책이라고 내세우지만 실상은 "득표를 위한 기만책과 유리한 정치 구도를 만들기 위한 잔꾀들일 뿐"입니다. 그들도 자신들이 대안으로 미는 정책과 공약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 안 합니다. 악화시킨다는 것까지도 알 걸요?
하지만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되든 말든 자신들에게 유리하니 하는 거죠. 선거에서 지면 늘 백수로 살아야 하고 굶어야 하니까. 그러니 절박한 겁니다.

그 좌파 정권이 부동산 문제 해결을 원하지를 않았는데 어떻게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애초에 문제의 해결은커녕 개선도 원하지를 않는다고요. 그게 민주 진보라는 치들의 본질입니다. 아직도 저것들 본질을 모르는 호구가 있어선 안 됩니다.
* * * * * * * * * *

과연 아멘이다. 저런 질 낮은 정치인이나 선출하려고 이따위 민주주의 수호했나 싶은 자괴감도 들 지경이다. ㅡ,.ㅡ;;
내가 이 글에서 유일하게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의를 제기할 만한 부분은 "그런데 문제는 지금 보수우파 노선이라는 정당도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정권이 교체되고 집권 여당이 달라지더라도 저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은데?" 정도이다. ㄲㄲㄲㄲ

2. 드라마 참교육

난 웹툰 참교육을 지난 6년 가까이 하나도 빠짐없이 애독해 왔다. 그 프로그램이 드라마로도 포팅돼서 넷플릭스에 풀리자 와이프와 함께 곧바로 정주행했다. 모범택시 이후로 후련한 사이다물이 또 나와서 무척 좋았다.

연평해전 윤 영하 대위의 담당 배우가 나 화진 역인 게 꽤 잘 어울렸다.
리멤버 한 필주의 담당 배우가 최 강석 장관 역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리멤버를 안 봤으면 참교육의 최 장관을 보는 느낌도 꽤 달라졌을 것 같다.
그 반면, 김 종수는 모범택시 3, 밀수, 그리고 여기까지.. 계속 빌런으로 나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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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임 한림 역은 이 시영이나 안 지혜처럼 운동 좀 하는 배우가 맡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너무 가녀린 배우가 고함 빽빽 지르는 왈가닥 컨셉으로 나와서 웹툰과 괴리감이 느껴진다. 명목상 교생실습을 온 여선생이 무슨 해병대 캠프 조교 같은 천사 악마 드립을 치다니..;;;;;; 하지만 지금 컨셉도 나쁘지는 않다.

다음 시즌 없이 너무 소규모로 만들어진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 드라마는 방대한 원작 웹툰 내용의 아주 초창기 일부 에피소드밖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리고 학원물인데 기왕이면 수위를 좀 조절해서 15세 이상으로 학생들도 좀 볼 수 있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일부 잔인한 묘사 때문에 청불 등급이 된 것도 약~간은 아쉽다.

아무쪼록..
-- 미친 진상 학부모와 살인면허 촉법소년 이딴 짓거리가 어서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 초등학교에서 "우리 애를 혼자 불러내어 수학 문제 풀이를 시켰다니 애 자존감을 망쳤다"랑, 요람에서부터 애를 의대반에 쳐넣어서 약까지 먹이면서 공부 고문 시키기.. 이게 동시에 벌어진다는 게 참 극과 극이 따로 없어 보인다. 촌지 받는 옛날 쓰레기 교사 vs 악성 민원에 ㅈㅅ하는 요즘 교사만큼이나 극과 극이다.

-- 옛날에는 비흡연자도 군대에서 담배를 배웠다고 그러는데 요즘은 학교와 군대에서 담배 대신 핸드폰 도박이 그렇게도 심각한 문제인가 보다.
담배 금지되고, 그 대신 핸드폰이 허용되고 병들 월급이 크게 올랐으니 이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하겠다. 저런 사이트는 성인 인증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도 있나 보다.
-- 참교육의 소재 범위에서는 좀 벗어나겠지만 악성 민원인이나 악질적인 상습 노쇼, 암표, 허위 장난전화처럼.. 손가락과 아가리만으로 흉악범죄 저지르는 인간들도 형벌이나 금융치료로 다 저렇게 조져 버렸으면 좋겠다. ^^

교권보호국이 '국' 정도가 아니라 본부나 청으로 커져 버리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해 본다만.. (질병관리본부/청처럼!) 현실에서 교권국 같은 기관을 진짜 만드는 건 물론 무리일 것이다. 나 화진 같은 유능한 요원이 실제로 있겠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교권국이 하는 짓이 완전 학교판 계엄이나 마찬가지던데.. 절대권력은 절대타락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딨냐, 허위 신고나 교권국 사칭에는 어떻게 대응하냐" 등 여러 한계나 문제점, 불가능성 같은 건 얼마든지 논할 가치가 있다. 교권국을 따로 만들 바에야 지금 현직 교사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고 불가항적인 사고에 대해 형사 면책, 제한적으로나마 체벌 허용 등 다른 대안이 더 현실적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논의 없이 이 드라마가 뭐 체벌이나 사적보복을 옹호한다느니, 원시적인 쌍팔년도 시절로 돌아가자고 한다느니.. 말 같지도 않은 쌉소리 늘어놓는 인권충들은 일단 저 참교육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를 않은 거라고 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독해력과 지능의 소유자라면 이 블로그 포스트에서 앞의 1번 글을 읽고는 분명히 전근대적인 성역할 유교 꼰대 프레임을 씌울 것이다. -_-;;;

어줍잖은 정의감(?) 들먹이면서 나 화진 역을 거절했다는 어느 배우는.. 글쎄 내가 보기엔 크게 실수한 것 같다. ㄲㄲㄲㄲㄲ 좋은 커리어 추가하고 몸값 크게 올릴 기회를 다른 사람한테 줘 버렸네? 성경 룻기의 끝부분에 나오는 그 아무개처럼 된 건 아닌가 모르겠다. 덕분에 김 무열이 보아스의 역할을 차지하게 됐다.

그리고 말이다. 심하게 큰 사고 친 학생을 절차대로 원칙대로 칼같이 정학, 퇴학, 소년원, 학생부 기록으로 평생 낙인.. 이렇게 하지 **않는 대신**, 차라리 담임 재량 하에 다리몽둥이 부러지도록 쳐맞으면서 참교육 받고 뒤끝 없이 마무리..
체벌도 이런 자비로운 관점에서 봐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글을 맺으면서 드는 생각인데, 이 한국인 조선인들은 국민성 차원에서 뭐든 법대로 하고 공권력을 참 신뢰하고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러니 정치판에서는 서양 스타일 결투 대신에, 사화 같은 왕명에 의한 사법살인만 있었고,
하다못해 전래동화인 장화홍련전에서 말이다. 귀신조차도 자기가 직접 계모에게 복수하는 게 아니라 고을 사또에게 곱게 탄원을 넣으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합법적인(?) 복수를 요청하지 않던가??

그런 것처럼 참교육도 무슨 마 동석 같은 교사가 혼자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무쌍을 펼치는 이야기가 아니고 정부 기관을 만들어서 응징을 대신하는 형태이다. (아, 마 동석 교사가 혼자 활동하는 건 "동네 사람들"이라고 영화가 따로 있구나.)
질 나쁜 애들을 국가에서 다 납치해서 무인도에 가두고 아예 서로 싸우게 시키는 일본 "배틀로얄"보다는 대한민국 "참교육"이 설정이 훨씬 더 건전한 것 같다!!

3. 투표 용지 부족 사태

끝으로, 이번 지방 선거 때는 우리나라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막장 사태가 벌어졌었다. 다들 아실 그 사건 말이다.
그 잔혹한 오징어 게임에도 "음식은 참가자 수만큼 준비했습니다."란 대사가 있던데
현실 선거에서는 "투표용지는 유권자 수만큼 준비했습니다."가 아니었나 보다. =_=;;
그 바닥에는 물자 좀 아끼려고 오버부킹..이 아니라 언더부킹 같은 전략을 쓰는가 보군.

개인적으로 사전투표는 고속도로를 하이패스 없이 드나든 차량에 대해 번호판 판독만으로 통행료를 사후 청구하는 것과 비슷한 관행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고 사용자 입장에서 더 편하고 좋긴 하지만... 모든 차량을 그렇게 처리하고 모든 유권자들을 아무데서나 마음대로 투표 가능하게 하고 투표용지를 동적으로 뽑아서 생성하기에는 행정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보안 허점도 생긴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보조 수단으로만 놔두는 것이다.

근데.. 사전투표도 아니고 당일 본투표 때 용지가 부족했다니 이것만으로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짓거리인데,
하필 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곳들이 정치색이 랜덤하지가 않고 특정 방향성이 느껴지는 곳이니 이거 뭐..
부정선거 음모론 의혹이라는 불길에 석유를 확 끼얹는 짓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건 그렇고.. 선관위 직원들이 정작 선거 시즌 때마다 휴가 쓰거나 휴직 신청하면서 탱자탱자 놀았다는 건 사실이냐?
이건 뭐 인천공항 공사 직원들이 공항 주차장을 제멋대로 독점하고 가족 지인들에게 뿌렸다는 것만큼이나 킹받는 일이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참교육' 당했으면 좋겠다. 그렇잖아도 성경에도 나오는 참교육은 "사람을 찔레와 가시로 찌르며 가르쳤더라"(삿 8:16)이다.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6/06/27 08:35 2026/06/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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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교회에서 에스겔서 16장을 읽다가..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나서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6절, 명령어 Live를 “너는 살라”가 아니라 곧이곧대로 “살아라~~”라고 번역한 역본을 읽으니 ‘어 이거 무슨 애니 대사랑 비슷한데.. 뭐더라?’ 싶다가.. 출처를 곧 떠올린 것이다. 성경과 지브리 애니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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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표현만 약간 비슷할 뿐, 저 말이 나온 상황과 맥락은 서로 완전히 다르고 접점이 거의 없다.
성경에서 “살아라”라고 말하는 상황은 애니에서처럼 니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남주 ‘아시타카’가 간지나게 일깨워 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부모로부터 버려진 여주 ‘산’을 갓난아기 때 거둬들이고 키워 준 들개의 신 ‘모로’가 했을 법한 말이다.

그 뒤로도.. 성경이 말하는 건 그렇게 불우한 처지였던 네년을 먹이고 어르고 달래면서 키워 줬더니 음행이나 저지르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상태가 딱 그 여자와 같다는 식의 얘기 일색이다.
모노노케 히메하고는 1도 관계 없는 흐름으로 간다. 지브리 애니는 자연 파괴가 어떻고 재앙신, 사슴신이 어떻고 하는 세계관일 뿐, 우상숭배니 음행이니 따위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니까.

버려진 여아를 제3자가 거둬들여 키웠다는 맨 앞의 초창기 설정, 그리고 그놈의 “살아라” 대사 때문에 의식이 잠시 이쪽으로 흘렀다~!

이렇게 하나님과 애증(?)의 관계로 묘사되는 이스라엘 백성, 일명 유대인 말이다.
저 사람들은 저래 뵈어도 성경이 역사적으로 문자적으로 사실이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걸 물증에 가까운 수준으로 입증하고 있는 민족이다. 예수를 배척하고 안 믿었으면서 정작 하나님과는 저런 관계인 게 참 특이하다.

쟤들은 하나님과 특별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타 민족들 대비 특혜와 보호 버프를 더 받았고, 그 대신에 죄 짓고 타락할 때 위약금 명목의 징벌도 더 빡세게 받았던 민족이다. 딱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하나 더.. 쟤들은 비록 혹독한 징벌을 받더라도, 어떤 경우에도 민족 정체성을 잃고 완전히 멸망해 버리지는 않는다는 거.. 이거 하나는 보장됐다. 그건 하나님 차원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성경에 언뜻 보기에 신약 크리스천의 교리 행실과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뜬구름 잡는 구약 예언의 비중이 왜 이리 큰지?
그 예언들이 다들 심판 일색에 부정적이고 절망적이고 암울해 보이지만, 최종 결말은 왜 한결같이 "회복"인지를 생각해 보시라!
일반적인 크리스천은 저 나라, 민족에 대해서 이렇게 인식하고 처신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겠다.

1. 현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예언을 다 이룬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대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에 건국됐으니, 이 세대가 다 가기 전에 예수님 다시 오실 거임" 이러는 '반쯤' 시한부 종말론스러운 이야기를 들어 보신 분이 있을 것이다.
난 그 사건에다가 성경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적용을 해도 되는지.. 성경 본문에서 그 세대라는 단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세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지.. 그건 좀 조심스럽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 극단으로 가서 저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유대인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도 명백히 오류일 것이다.
그럼 거슬러 올라가서 나치와 히틀러는 유대인을 미워하고 죽인 게 아니었나? 진짜 유대인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혼자 뻘짓 한 거냐? 이스라엘의 사관학교 생도들은 유대인도 아니면서 맨날 맛사다 요새를 잊지 말자고 생쑈 하냐..?? 그건 그것대로 여러 모순과 문제점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2. "저것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저주받을 종자들이다~"

....;; 이건 진짜 최악의 멍청한 발상이니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지어다! 심지어 옛날의 걸출한 개신교 종교개혁자 중에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미안하지만 명백한 오류이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지 않았으면 비유대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리지 못했다. 어디 너님의 죄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기여한 게 없는 줄 아냐??? 이 주제에 관한 한은 '양비론'이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성립한다고 봐야 한다.

3. 막연한 반유대주의 선동에는 가담하지 않는 게 옳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간 과정은 마치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처럼 혼란한 와중에 현실적인 이유나 강대국들의 농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혈이 발생한 것도 적지 않다.
언론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학살하는 것만 보도하지만 실제로는 적들도 민간인 위장 총질 같은 비열한 짓을 많이 했다. 이런 건 한쪽 편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쟤들이 쏘는 로켓 대비 그걸 요격하는 이스라엘 측의 방어 시스템은 유지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서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중동의 왈가닥 미친개처럼 처신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비록 쟤들은 신약 성경이나 예수 이런 것에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슬림 광신도처럼 히잡이나 "알라후 아크바르!" 같은 짓거리를 벌이지도 않는다.
이스라엘은 나름 친서방 자유 진영에 속하면서 6 25 때 저 멀리 대한민국을 도와줬었고, 연평도 포격 때 북괴 규탄도 제일 강력하게 했었다.

4. 그렇다고 쟤들이 정말 선 넘고 범죄 저지르고 깽판 치는 것까지.. 무작정 다 옹호할 필요는 없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가령, 예수상 훼손과 조롱 인증샷.. 이거는 진짜 정신나간 짓이던데?? (개인적으로 물론 예수상 별로 안 좋아하는 소신이지만 이와 별개로) 괜히 총리까지 나서서 사과하고 수습한 게 아니더라.

5.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심판의 도구를 그리스도인이 "자처"하지는 말아야 한다

너 말고도 이스라엘 싫어하고 가혹하게 대해 줄 사람은 주변에 넘쳐나니까 너는 그런 일에 가담하지 마라.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남았냐, 걔네들을 심판자 명목으로 침략하고 학살했던 주변 민족이 살아남았냐?
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다른 정상적인 소명 부르심에나 응답하고 따르시길 바란다. 육신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어라.

6. 교회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매우 중요한 사항이니 밑줄 치시라. 교회는 교회이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다. 서로 신분과 처지가 다른 집단이다.
로마서 9~11장을 읽어보아라.
막~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쟤들과는 완전히 손절이다" 뉘앙스가 절대 아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못 알아보고 그 일시적으로 눈먼 것까지도 하나님이 다른 기회로 활용해서 이방인 교회 시대 경륜을 열었다"로 딱 요약되지 않는가?

오히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생긴 기회가 이 정도인데, 하물며 걔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면 세상이 얼마나 더 살기 좋아졌겠냐" 이런다. 유대인을 세상을 향한 축복의 통로 정도로 본다.
이게 어딜 봐서 유대인이 교회로 대체됐다는 의미이겠는가? 유대인이 구원받고 개종하면 그냥 유대인 크리스천 교회 성도가 될 뿐이다. 우리는 돼지고기도 못 먹는 유대인이 아니라,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감사하면 된다.

아 물론 본인도.. 이 2000년대가 다 돼서 유대인들 혈통과 지파는 어떻게 다시 따질 것이며, 저 완강한 인간들이 도대체 언제 짠~ 예수님을 다시 알아보고 설마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회복되겠는지,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디테일"을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는 건 있다.
그러나 유대인과 교회를 구분하면 뭐 세대주의가 어떻고 시한부 종말론이 어떻고 프레임 씌우는 건 논점 일탈이어 보인다. 뭐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최대한 그대로 믿어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이상이다.
우리나라 국군이 북괴의 무력 도발에 대해 처음부터 이스라엘처럼 대처했다면.. 아마 진작에 북한으로 전투기고 공작원이고 잔뜩 보내서 핵 시설 같은 건 바로 폭격했을 것이고, 연평해전?? 천안함?? 그냥 몇 배로 보복했지 싶다.
물론 그만큼 젊은이들 군생활은 더 빡세졌겠지만, 이렇게 처음에 짧고 굵게 기선제압을 확실하게 해 놓는 게 나라의 미래 관점에서는 차라리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 여담: 아시리아와 바빌론

그러고 보니 유대인들의 옛날 역사와 관련하여 인상적인 게 하나 있다.
옛날, 기원전 600~500년 무렵에 있었던 신바빌론, 일명 칼데아 왕국은 남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용도로 정말 잠깐 왕성했다가 신기루처럼 싹 사라져 버린 정말 특이한 나라이다.
100년도 채 유지되지 못하고 망했다는 점에서 원나라와 비슷한 것 같다. 그 전의 아시리아, 그 후의 페르시아에 비해 존재감이 없으며, 세계사에서는 별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사실, 바빌론 자체가 처음에는 아시리아의 관할에 있는 나와바리 중 하나에 불과했는데 갑자기 세력이 커져서 주종 관계가 바뀐 거라고 한다.
심지어 아시아라는 대륙 이름이 바로 아시리아 - 앗수르에서 유래된 거라고 하네.. 참고로 아시리아는 시리아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이니 혼동하지 말자.;;; 굉장히 헷갈리기 쉬운 사항이다.

아시리아는 이스라엘 북왕국을 멸망시켰으며, 바빌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접수했었다. 그러나 딱 하나 남왕국 예루살렘만은 정복하지 못했었다. (히스기야 왕 시절을 생각해 볼 것) 그리고 아시리아 이후의 바빌론이 남왕국을 접수한 것이다.

그 뒤,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 있던 그 기원전 5xx년 기간 동안 인도에서 불교, 중국에서 유교가 태동하고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활동했었다. 동양에도 나름 그리스 철학자들 뺨치는 인문학 르네상스 같은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신바빌론은 여러 모로 신기한 나라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22 08:35 2026/06/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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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 관순: 나는 공산당.. 아니, 왜놈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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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관순 열사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 중에는..
"유 관순은 일제 강점기 당대에는 인지도가 전혀 없는 듣보잡이었다가 해방 이후에야 뒤늦게 발굴되고 부각됐다. 3· 1 시위에서 천안 나와바리의 행동대장이었을 뿐이지, 딴 지역에도 유 관순 정도의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친일 변절 지식인들에 의해 불순한 의도로 쟤만 혼자 '너무' 신격화된 경향이 있다" 이런 부류의 평가절하가 있다.

저게 유 관순 말고도 타 지역의 여러 열사들을 같이 골고루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라면 얼마든지 고려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고 유 관순이 진짜로 타 지역 시위 주동자 대비 단 1도, 추호도 다를 바 없다는 말은.. 이 역시 필터링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때 시위 가담자로서 체포되고 투옥돼서 몇 달, 또는 길어야 1~2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이야 많다. 물론 그 행적만으로도 훗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겨우 여고생 신분으로 그렇게 고분고분 옥살이를 하지 않고, 서슬 퍼런 법정에서 "너희 왜놈들은 우리를 재판할 자격이 없다!"고 당당히 외쳤고, 심지어 재판정에서 의자를 던져서 가중 처벌을 받고, 형무소 안에서도 만세 시위를 추진하고.. 자기 신념에 따라 일본의 입장에서는 진짜 악바리 같이 개기다가 기어이 구타로 장살당한 사람은 정말 드문 케이스이지 않은가? 저 증언 자체가 몽땅 조작 구라가 아니라면 말이다.

당연히 그때 투옥됐던 사람들이 전부 다 유 관순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 그때 잠깐 수모를 꾹 참고 옥살이 하고 나와서는.. 공부 더 하고 교육자, 사업가 등으로 크게 성장해서 일본을 실력으로 이기는 게 민족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더 이익"일 수도 있다. 하다못해 유 관순도 옥사하지 않고 살아 나왔으면 커서 무엇이 됐겠느냐 말이다.

그러나 저렇게.. 뭔가 이 승복 어린이나 신라의 관창 같은 기개를 보이면서 짧고 굵게 간 예외적인 사람도 의미가 있으며, 후세가 특별히 기억하고 기릴 가치는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만 생각해도 유 관순은 여러 3·1 운동 참가자 추진자 중의 하나 수준은 넘어서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2. 박 열 + 가네코 후미코: 독특한 아나키스트 계열 국제결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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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2 마지막 금사회 에피소드를 보고 나서 영화 '박 열'을 봤더니..
무지개 운수가 의뢰를 받아서 타임머신 타고 100년 전의 일본으로 잠입하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주연 배우가 동일인물.. ㄲㄲㄲㄲㄲ)

아~ 저 시절이니까 도기가 택시가 아니라 인력거를 몰고 있는 거고,
이름이 doggy이니까 "나는 개XX로소이다"라는 시도 썼고..
가네코 후미코는 좀 똘끼어린 여성인 게 고은이하고 인상이 아주 비슷한 거 같고..;;

그렇잖아도 모범택시 2의 금사회 에피소드는 도기가 일부러 교도소로 들어가는 내용인데,
박 열도 대부분의 장면은 주인공이 감방에 갇힌 상태로 진행된다. 감방에서도 미친척 하고 똘끼 부리는 거 캐릭터가 비슷하다.
재판 1심 때 조선 예복 코스프레 한 거는.. 진짜 영락없이 부캐 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더라. ㅋㅋㅋ

일제 시대를 다룬 한국 영화가 과연 관동대지진을 다룰 일이 얼마나 되겠나? 이건 애초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닌데. 더구나 일본 판 십볼렛 색출전(삿 12:6)을 영화로 보다니.. 나름 흥미진진한 소재를 고른 것 같다.
박 열은 1920년대부터 해방될 때까지.. 20대부터 40대까지 인생 황금기를 일본 감옥에서 무기수로 보냈지만 그래도 어째 살아서 나오기는 한 게 참 특이한 것 같다. (참고로, 조선총독부 본진에다 폭탄을 던졌던 김 익상 의사는 박 열과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시기대에 투옥됐지만, 일제 말기 때 결국 의문사했었다)

박 열 저 사람한테 가네코 후미코는.. 진짜 김 학준 선생에게 최 용신 같은 존재로 기억에 각인됐지 싶다(소설 상록수의 모티브를 제공한 실제 인물).
지진만 없었으면 저 두 사람 인생이 실제 역사와는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어찌 됐을지 참 궁금하다. 공교롭게도 박 열과 김 학준 모두 몰년은 1974년이었다.

* 가네코 후미코는 변호사 후세 다쓰지와 더불어, 대한민국 건국 훈장이 추서돼 있는 단 둘뿐인 일본인이다.;;;
사실, '소다 가이치'라고 조선에 정말 엄청난 온정을 베푼 일본인이 더 있긴 한데.. 이 사람은 법이나 정치, 군사 쪽으로 항일을 한 게 없어서 그런지 훈장까지는 못 받았다. 그 대신 이분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묻혀 있는 유일한 일본인이다.

3. 김 마리아 외: 엘리트 신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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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시리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다들 기억 하시려나 모르겠다. 시즌 1의 첫 에피소드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 피해자는 바로 '강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마리아'는 마치 '에스더'처럼 성경의 인물을 그대로 딴 옛날 스타일 여자 이름이다. 가톨릭에서는 이런 이름을 세례명으로만 쓰겠지만, 개신교 쪽은 그런 개념이 없으니 본명을 그대로 저렇게 짓는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파됐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엔 지식인 신여성 중에 '마리아' 동명이인이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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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마리아(1891-1944)는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인지도가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기까지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시절에 일본과 미국에서 대학원 급 공부를 한 고학력자였던 데다, 항일 운동 쪽으로도 도쿄 2· 8 독립 선언에다 3· 1 운동까지 할 거 다 했기 때문이다.
그때 붙잡혀 끌려가서 옥고를 치르고, 심문 과정에서 왜경으로부터 잔인한 고문을 당해서 몸이 비가역적으로 상했으며, 이 때문에 지병· 후유증을 평생 달고 살았다. 독신으로 살다가 1944년에 병으로 순국한 것도.. 그 지병이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저분은 행적과 공로가 워낙 탁월하니 1962년에 진작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유 관순 열사도 요절하지 않았으면 아마 김 마리아와 가장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단.. 저분은 전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신학은 주전공과 별개로 따로 공부한 것 같은데 말이다. 설마 이공계는 아니고 문과 무언가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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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다음으로, 참 공교롭게도.. 저분과 띠동갑 후배인 동명이인 김 마리아(1903-1970)도 있다.
사진을 검색해 보면 1891년생 원조 김 마리아는 직모 단발머리의 젊은 얼굴인 반면, 1903년생 김 마리아는 더 나이든 파마머리 중년 모습이 주로 나온다.

이분은 이 범석 장군의 부인이었고 광복군 여군+공작원 커리어를 거쳤다. 사격의 귀재였다고 하니 한국의 애니 오클리 같은 느낌도 드는데..ㄷㄷㄷ 여러 모로 원조 김 마리아와는 활동 분야가 많이 달랐다. 업적의 발굴과 조명이 원조 김 마리아보다 훨씬 늦었기 때문에 1990년에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3) 참고로, 더 늦게 태어난 박 마리아(1906-1960)도 미국 대학원 출신의 엘리트 신여성이었다. 이 사람은 세월이 흐른 덕분인지, 유 관순 같은 이화학당도 아니고 이화 전문학교를 나온지라, '이대 나온 여자'의 원조급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제 말기 때 황국신민 내선일체 이딴 짓을 해서 친일 부역자라는 오점이 찍혔고, 해방 후에는 부통령 후보 이 기붕의 아내로서 권력욕을 뿜뿜하며 제대로 흑화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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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가 어땠는지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일가족 동반 ㅈㅅ).. 그러니 박 마리아는 김 마리아와 달리 전혀 영예롭지 못한 악녀로 역사에 남았다. 이름값을 제대로 못 했다.

이 '마리아'들과 비슷한 연배와 비슷한 커리어인 임 영신(1899-1977), 김 활란(1899-1970)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알아보면 재미있지만..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니 생략하겠다.

4. 윤 형숙: 일제와 공산당 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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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니라 호남 지방에서는 ‘윤 형숙’(1900-1950)이라는 여성 열사가 있었다. 이분은 3· 1 운동 당시에 광주에서 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헌병의 칼을 맞아 왼팔이 잘리는 중상을 입었다.
이분은 체포된 뒤에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열악한 곳에서 구금· 투옥돼 있다가 병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도 잃고 말았다.

아니, 군인이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해서 팔과 눈을 하나씩 잃은 건 영국의 넬슨 제독이나, 독일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처럼 사례가 있는데.. 윤 열사의 사례는 정말 믿기 힘들다. 사진에 찍힌 모습 중에는 대놓고 저런 신체 장애가 묘사된 게 딱히 없는 것 같다만..
허나,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 행적이 가히 전설적이었는지, 저분은 '윤 혈녀'라는 별명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저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항일뿐만 아니라 반공에도 진심이었다. 해방 후, 6· 25 사변 중엔 손 양원 목사와 동일한 날짜에 동일한 장소에서 북괴 공산군에 의해 나란히 순교하여 주님 곁으로 가게 됐다.
1950년 9월 28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대한민국이 서울을 수복했던 날, 적들은 반동 민간인들을 모두 처형하고서 퇴각했기 때문이다. 호남 지방은 영남보다 위도가 더 낮았는데도, 영남과 달리 지역이 몽땅 다 북괴에게 점령 당했었다.;;;

윤 열사는 아까 3번의 마리아 정도의 고학력 유학파는 아니었지만, 살아 생전에 지방에서 지역 교회를 묵묵히 섬기면서 전도사와 교사로 헌신했었다. 세상에 이런 '여수의 유 관순' 같은 분도 있었다. ㅠㅠㅠ

Posted by 사무엘

2026/06/18 08:35 2026/06/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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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5월쯤에 일제 시대 독립운동에 대해서 글을 하나 썼었는데 공교롭게도 올해도 비슷한 시기에 글감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번씩 했던 말도 있지만 다른 형태로 다시 정리해 보고자 한다. ㄲㄲㄲ

1919년에 벌어졌던 3· 1 운동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고 이를 기리는 삼일절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중요한 기념일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3· 1 운동은 결과만 냉정하게 따져 보면 당일이 그렇게까지 “기쁜 날”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나라 밖 소식을 접하기가 어렵던 시절에, 선조들은 민족 자결주의라고 어디서 막연히 주워 들었다. 그래서 우리도 당당히 독립을 선언하면 세계에서 다 알아주고 독립을 지지하고 승인하고, 일본이 아닌 한국 편을 들어 줄 거라고 희망회로를 돌리게 됐다.
물론 민족 자결주의 하나뿐만은 아니고.. 거기에다가 고종(암군이긴 해도 미우나 고우나 일단 자국의 군주 얼굴마담이니)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대한 독살 의혹, 1910년대 폭압적인 무단통치에 대한 반감, 스페인 독감과 기타 등등 생활고도 시위에 대한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시궁창이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서 말석 끄트머리로나마 승전국이었다.
승전국의 식민지는 저 희망회로의 적용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
가령, 민족 자결주의는 그 시절에 무슨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켜 주라고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었다. 일본으로부터 조선도 마찬가지.

그러면 3· 1 운동은 아무 소득 없이 총칼 앞에서 무참히 진압당했고, 한국인들은 헛다리 짚고 뻘짓만 하다가 괜히 일제로부터 무수한 인명과 재산 피해만 당하고 아무 소득 없이 끝났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지금 같은 교통 통신 수단도 없던 시절에 식민지 피지배민들이 지배자를 상대로 전국적으로 이 정도로 대규모 비폭력 항쟁을 조직적으로 일으킨 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웠다.
일본 입장에서는 저걸 총칼로 마구 찍어눌러서 당장 진압은 했지만.. 국제적 위신의 손상에다 내부적인 멘탈 대미지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크게 입었다.

니들은 식민지를 도대체 얼마나 거지같이 관리했길래 10년도 채 안 돼서 식민지에서 저 정도로 처절한 만세 시위가 벌어졌냐?”
일본은 이웃 열강들로부터 이런 갈굼을 당했고, 그 갈굼이 조선총독부로 전해졌다.
다시 말해, 서구 열강들은 일본을 향해 "당장 조선을 해방시켜 줘라" 이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네 식민 통치 방식에 문제가 좀 있나 보다? 이번엔 좀 선 넘었네?" 정도의 눈치는 줬다.

이때부터 쟤들은 과장 좀 보태면 만세의 만 짜만 나와도 발작을 일으킬 지경이 됐다.
조선 땅에서 조금 무리수인 정책을 추진할 때면 “야, 조센징 만세 폭동을 벌써 잊었냐? 시즌 2가 벌어지는 수가 있다?” 이러면서 몸 사리는 시늉 정도는 하게 됐다.

이 때문에 조선 식민지를 관리하는 치안 비용이 크게 증가했고, 이는 일제의 입장에서 식민지의 가성비 하락으로도 이어졌다.
고종 다음으로 나중에 순종이 죽었을 때만 해도 쟤들은 또 만세 시위가 벌어지지는 않으려나 진심으로 긴장했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이 넘어갔음)

솔직히 1919년 3월 1일이 지금 대한민국이 세워진 날이라고 하면 그건 좀 정신승리 보정이 개입된 생각일 것이다. 무슨 시오니즘 대회나 밸푸어 선언이 발표됐던 날이 이스라엘 건국일이기라도 하냐?
그리고 1940년대 태평양 전쟁 때 조선인들이 남의 전쟁에 강제로 징용되고 끌려간 건 그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라도 져야 할 사항이냐? 누구는 약간 나중에 6 25 전쟁 중에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못 지켜 줬던 건 그렇게도 욕하고 비판하던데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만세 시위 하나 했다고 일제가 조선을 니에니에 독립시켜 줬을 리는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시도가 쌓이고 쌓인 게 시너지 효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일본을 물리적으로 힘으로 패퇴시킨 것이야 한국의 능력이 아니라 연합국, 특히 미국의 원자폭탄이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저런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시도가 없었다면 일제의 패망이 곧바로 한반도의 해방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로 선언에 코리아의 독립이 따로 명시된 게 괜히 이뤄진 줄 아냐?
이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건 전형적인 “A가 틀렸다고 해서 자동으로 B가 정답이 되는 건 아니다” 논리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건국 초기부터 관습적으로 삼일절을 아주 성대하게 기념해 왔다. 그리고 그 초창기, 리 승만 할배 시절엔 대한민국이 1919년부터 시작된 나라라고 대놓고 홍보하곤 했다.
특히 저 때는 북괴야말로 1947년인지 48년에 갑툭튀한 듣보잡 사생아 집단일 뿐이고, 남한은 훨씬 전부터 정통이라는 걸 강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념이 오늘날 우리나라 헌법의 전문에도 명시된 것이다.

이거 마치 Watcom C라는 신생 컴파일러가 볼랜드/마소 제품 대비 자기 내력을 뻥튀기하려고 첫 버전을 1.0이 아니라 무려 6.0부터 매겼던 것과 비슷한 행동 같은데.. 뭐 그랬다. 이런 내력이 있다.
본인은 삼일절과 주일이 겹쳤던 날에 교회에서 준비 찬송으로 특별히 만세, 함성, 승리 이런 단어가 들어있는 곡을 골라서 부르곤 했다.

* 흥미로운 사실

(1) 조선은 특이한 지리빨 덕분에 그 시절에 대영제국의 손아귀로 들어간 적이 없는 꽤 예외적인 나라였다. 어디 대영제국 뿐이랴? 병자호란, 신미양요, 병인양요 등에서 다 지고도 멸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조선이 자기 힘으로 자신을 스스로 지켜낸 게 아니었다. 인간들의 과학기술과 군사력이 발달해서 지리빨이 약발이 다했을 때 조선은 그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했다.

열강들은 조선을 먹지 않았지만, 그 대신 19세기 말에 조선이 중립을 선언한 것도 전혀 존중해 주지 않았다.
조선은 서양 식민지가 되지 않은 대신, 이웃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그러니 나중에 독립될 때도 여느 대영제국 식민지와는 좀 다른 격으로 취급받게 됐다.

(2) 1920년대에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세계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 편을 드는 것에 절망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특히 전간기) 일본은 세계가 일본을 영국 미국과 대등한 열강으로 인정하지 않고 함대 제작 쿼터를 많이 주지 않는 것에 절망하고 분노했었다. ㄲㄲㄲㄲㄲ
이게 지금은 군대를 안 가면 안 되는 나라 vs 군대를 가지면 안 되는 나라의 차이로 이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인물 관련해서도 할 얘기가 있는데.. 분량이 길어지니 이건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15 08:35 2026/06/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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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체를 볼 수 있는 철도역

우리나라의 철도역들은 역명판의 서체가 다들 전속 서체인 코레일체로 통일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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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체가 쓰이던 옛날 교외선 송추 역의 역명판 vs 코레일체가 적용된 현재의 역명판)

한때, 1990년 말까지는 HY울릉도체가 즐겨 쓰였다. 그러나 철도청에서는 코레일(철도공사)의 출범과 고속철도의 개통 직전이던 말년(2003년!!)에 전속 서체를 선보였다.
그렇잖아도 서울 지하철은 진작에 전용 서체를 도입해 있었다. 거기에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인천 공항에서도 간판용 전속 서체를 도입했으니.. 철도 당국에서는 덩달아 경쟁 심리와 자극을 받았던가 싶다.
더구나 자기들도 저렇게 큰 변화를 앞두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폰트를 통한 이미지 쇄신은 명분이 더욱 충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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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항 간판 서체는 대한민국의 다른 어느 공항에서도 볼 수 없는 유니크 아이템이며, 인천 공항의 첫 개항과 함께 곧장 적용된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 스카우트 연맹’ CI의 폰트와 꽤 비슷해 보이는데.. 이게 우연이 아니다. 둘 다 동일 디자이너의 작품이라고 한다. (네오폰트 김 주영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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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말고 연세대 전속 서체 ‘연세체’와 비슷하게 생긴 인천 공항 공사의 전속 서체도 있다.
어디서 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간판 폰트보다는 존재감이 훨씬 덜한 것 같다.

얘기가 잠시 옆으로 샜는데, 다시 철도로 돌아오면..
코레일에서는 갓 개발된 코레일체를 새로 만들거나 리모델링하는 역의 내부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코레일체를 쓰지 않은 예외는 일부러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싶어서 궁서체나 그에 준하는 붓글씨체를 쓴 게 전부이다. 지붕은 기와로 얹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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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역과 진주 역은 평범한 궁서체다. 구 경주 역은 궁서체가 아닌 다른 캘리 서체이고.. 영월 역은 한자가 쓰여 있다.
경춘선의 김유정 역은 저런 외부 역명판뿐만 아니라 내부 역명판과 행선지 안내판까지도 온통 궁서체를 썼다는 게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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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생각해 보니 또 독특한 예외가 있다.
바로.. 북한과 접하고 있고 출입경 관리 사무소가 있는 도라산(경의선)과 제진(동해선) 역인데, 얘들은 특이하게도 외부 역명판이 바로.. 윤디자인의 2002체, 일명 월드컵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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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1990년대의 휴먼 엑스포체처럼 국가 행사를 기념해서 당시 기준으로 굉장히 참신한 컨셉으로 만들어진 폰트이다.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뿐만 아니라 남북 간에 경의선 철길 연결이 합의되고 도라산 역이 개통했다. 그래서 당대에 만들어졌던 모던하고 세련된 폰트가 의도적으로 쓰인 것 같다. 더 나중에 만들어진 제진 역에도 저 폰트가 쓰였을 정도이니 말이다.

남북 협력이고 나발이고 전부 나가리 된 지금 시국에서 저 광경을 다시 보니... (애초에 북괴놈들은 그 화해무드조차도 제2 연평해전 선빵 공격으로 통수를 쳤었음)
철도와는 별 접점이 없어 보이는 2002체로 만들어진 역명판이 굉장히 므흣 특이한 느낌을 생성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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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체는 한때, 1990년대 말까지 TV 자막으로도 엄청 많이 쓰였다. 시사 TV 프로가 끝나면서 '제보 문의는 하이텔 GO xxxx로' 이런 자막도 엑스포체로 나왔었다!
하지만 2002체는 생각보다 금방 묻히고 보기 어려워진 듯하다. 그래서 더욱 희소함이 느껴진다.

* 저 한일 월드컵 시절에 국대 축구 선수로 뛰었던 아저씨 중 한 분이 지금은 중년 갑부 꽃미남이 돼서 용형에도 올씨즌 개근 게스트로 출연 중인 게로구나.. 그렇구나~!!! ㄷㄷㄷ
이상~ 정말 오랜만에 폰트 카테고리에 새 글을 추가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11 08:35 2026/06/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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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에 대해서

이 지구에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하거나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자원들이 많다.
석탄· 석유라든가 희귀 금속 광물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깨끗한 물이나 나무 같은 건 환경과 관련하여 또 다른 의미로 중요한 자원이다.

그런데 금속 광물도 아니고 특정 귀한 돌(화강암, 대리석..)도 아니고, 아니면 농사에 도움이 되는 기름진 흙도 아니고..
일개 모래도 인간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통념 이상으로 귀한 자원이라 여겨진다.
토목· 건축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만들 때 시멘트와 함께 쓰이는 모래의 양이 정말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인간이 소모하는 천연 자원들 중에 부피/양만 따지면 모래가 단연 1위라고 한다.
물은 많이 소모해도 그래도 자연에 의해 정화되고 순환돼서 돌아오는 거라도 있는 반면, 모래는 의도적으로 재활용하지 않는 한 전적으로 일방통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1) "아니, 사막 가서 모래 푸실 일 있습니까?"
30여 년 전 옛날에 롯데제과 '디저트'라는 아이스크림의 CF에서 영어 강사 곽 영일 씨의 대사다. =_= 디저트를 데저트라고 잘못 발음한 상황.. ㄲㄲㄲㄲㄲ 지금이야 정말 유치하고 오글거리지만 쌍팔년도 저 때만 해도 혀 굴리는 영어 발음 좀 넣는 게 마케팅 포인트로 통용됐었다.

(2) 공산주의는 사막에서도 모래를 부족하게 만들 수 있다
우파 진영에서 종종 들은 드립이다. 개인의 근로 의욕 저하로 인한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말하는 거겠지..
개인적으로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파라오의 꿈이 생각났다. 못생긴 야윈 암소가 살진 암소들을 몽땅 잡아먹었지만 그래도 전자는 여전히 야위고 못생긴 상태였다는 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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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생각하는 사막이라는 장소는 평소에 모래라는 물질이 썩어 넘치는 곳이다.
한반도 거주민들이 수시로 겪는 황사나 미세먼지도 상당수가 대륙 사막에서 날아온 흙먼지 모래 먼지이지 않던가?

허나, 토목·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만들 때 사막의 모래는 무척 의외이지만 쓰이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UAE인지 두바이인지 모래 사막이 지척에 깔려 있는 지역에서도.. 고층 건물을 지을 때 모래를 심지어 호주에서까지 잔뜩 수입해서 썼다고 한다. ㄷㄷㄷㄷ 거기가 공산주의 국가여서 저렇게 된 게 아니다~!

건설업계에서는 강 바닥에서 긁어낸 뻘에 가까운 모래가 최상급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거기는 거기대로 불순물 제거 같은 전처리가 필요할 것 같은데..)
아니면 차라리 바닷가 해변의 모래 정도면 OK이다. 소금기를 제거한 뒤에 사용한댄다.
그러나 사막 모래는 입자가 생겨먹은 모양이 시멘트나 자갈 같은 재료를 융합시키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아니, 가공이나 후처리를 해서 사용할 수는 없나..?? 저 풍부한 사막 모래가 그 정도로 무용지물인가? 이해하기 어렵다.
모래가 다 같은 모래가 아닌 듯..
오늘날은 세계 각국에서 토목공사를 벌이는 와중에 품질 좋은 모래가 부족해서 난리일 지경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언뜻 보기에 바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는 자원의 예가 여럿 있다.
미국이 자체적으로 석유가 많이 나지만 그래도 수입도 엄청 많이 하는 거. (경질유, 중질유 같은 특성 차이 때문. 단순히 내수 소비량 때문만이 아님)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석유 완제품은 수입한다는 거.. (그냥 사 오는 게 자체 기술로 정제하는 것보다는 더 싸기 때문)

바닷물은 인간이 마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방용수로도 최후 중의 최후의 고려 대상이라는 거. (산불이든 선박 화재든)
컴퓨터 쪽에서는 마소에서 리본 UI를 MFC에다가 얹기는 했지만, 자체 개발이 아니라 기존 3rd party 제품의 코드를 구매해서 얹은 거..
이런 것처럼 다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에 한강 종합 개발을 할 때도 한강의 강폭과 수심을 늘리기 위해서 강바닥의 모래를 엄청 많이 파냈다. 그리고 그 모래를 토목공사에 쓰고, 딴 데 판매도 해서 비용을 보태기도 했다고 한다.
준설 사업이 진짜로 필요해서 모래를 파낼 수는 있다고 치지만, 단순히 모래 자체가 필요해서 강바닥을 너무 많이 심하게 파내는 건 환경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모래와 관련해서 드는 여러 생각들이다.

-- 흠, 콘크리트를 만드는 데는 모래가 쓰이지만, 벽돌을 굽는 데 쓰이는 건..?? 모래라기보다는 흙에 가까워 보인다. 이 바닥은 더 깊게 파면 세라믹의 영역으로도 갈 것 같은데..
좀 검색을 해 보니, 도기는 흙(진흙, 찰흙)으로, 자기는 규석, 장석 등 내화도가 높은 광물을 많이 함유한 '돌'가루(주로 고령토)으로 제작한다고 한다. 둘을 합해서 도자기라고 하는군.. 마치 전기+자기 = 전자기처럼 말이다.

-- 오늘날은 침식으로 인한 지형 변화 때문에 해변에서 고운 모래를 보기도 어려워져 간다고 한다.
가령, 부산의 해운대 해수욕장만 해도 모래가 많이 유실되는 중이라고 한다. 매년 모래를 일부러 사 오고 깔아서 퀄리티가 유지되는 거라고 한다.

-- 상황이 이러하니 산업적으로는 콘크리트 폐기물이나 천연 바위를 쪼개서 모래를 채굴· 재활용하는 기술도 연구 중이라고 한다.

-- 하긴, 놀이터나 운동장.. 특히 씨름장에도 모래가 쓰인다. 하지만 요즘은 애들 놀이터에서는 바닥에 모래가 퇴출된 지 오래이니 격세지감이다. 당연히 안전이나 위생 문제 때문에 말이다.
하긴, 옛날에는 애들이 놀이터에서도 모래를 파고 물 부으면서 놀기는 했다. 하지만 그 모래로 바닷가의 모래밭 정도의 자유도를 실현하기는 어려웠다. ㅎㅎ

-- 모래는 건설 자재 말고 엄폐물(모래주머니)이나 소화 매체(방화사)로도 꽤 유용하게 쓰이며,
그리고..!! 고양이를 키울 때 화장실을 만드는 용도로도 쓰인다.
꼬냉이는 신기하게도 모래를 파서 용변을 보고 모래로 그걸 파묻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장실용 모래도 한 종류만 있는 게 아니고 특성과 용도, 꼬냉이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세분화돼 있다.

-- 지구 외의 행성의 표면에는 먼지를 일으키는 모래는 있을지언정 흙은 없다. (예를 들어 달 표면)

끝으로.. 바위가 부서져서 모래가 된다는데, 그럼 반대로 암석이라는 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금속처럼 무슨 용접이라도 해서 녹았다가 굳어져서 붙는 건 아니고..
퇴적암의 경우, 모래나 흙이 오랜 시간 동안 천연 시멘트 역할을 하는 다른 광물에 의해 붙고 굳은 거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압력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암석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한자의 제자 원리와 비교해 보면
화성암은 상형, 지사
퇴적암은 회의, 형성
변성암은 전주, 가차와 정말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니 제일 원초적인 암석은 아무래도 화성암인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07 08:35 2026/06/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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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빛

1. 해

박 두진이라는 사람은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어쩌구~~)"
중학교 국어(문학) 시간에 배우는 '해'라는 시를 지은 문인· 시인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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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글귀가 물 흐르듯 흐르고 흥겹고 운율이 느껴지는 게.. 곡을 붙여서 노래로 만들어도 될 것 같다. 건전가요도 될 수 있고 민중가요도 되고, 어쩌면 적절한 장르의 뮤지컬 넘버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검색을 해 보니 민족주의 기조가 넘치던 198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21세기에도 몇 차례 곡이 붙은 사례가 있었다.
아~ 저 사람이 연세대 교수를 해서 그런지, '해'의 싯구 일부가 아예 연세대의 응원가로 쓰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박 두진은 같은 학교에서 후학인 마 광수를 발굴해서 문단에 등단도 시켜 줬다고 하는구나.
나는 일단 그런 선례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로 얘기를 계속하겠다.

이 시는 전반적으로는 흥겹고 즐겁고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인데, 딱 한 구간 "달밤이 싫어" 여기만 잠시 암울하고 부정적이다.
이건 영락없이 동요 "아기염소"의 부정적인 구간 "빗방울이 뚝뚝뚝뚝 ... 엄마 찾아 음메" 같은 느낌이 든다. 선율을 붙인다면 "달밤이 싫어.." 구간만 그렇게 단조 코드로 표현하면 되겠다. ㄲㄲㄲㄲㄲ

그리고 이 시는 1946년 5월에 '상아탑'이라는 시집에 수록돼서 처음으로 발표됐다고 한다.
저 때는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땐 경부선 열차의 이름도 "해방자"(liberator)였으며, 광복 후 만들어지고 상영된 최초의 한국 영화도 "의사 안중근"이었다. 공교롭게도 전부 다 1946년 5월 비슷한 시기의 일이다~!
문학, 영화계에서는 그야말로 한이라도 풀듯이 온통 해방의 감격을 표현하고, 반일 항일 독립운동을 예술로 표출하고 있었다.

그러니 박 두진의 저 시에서도 해가 무엇을 의미하고 달밤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대 문맥을 투영시켜 보면.. 뭐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였다.
이 시가 당대에도 반응이 좋았는지, '해'는 1949년에 출간된 박 두진의 개인 시집에도 실리고, 더 나아가 시의 제목이 시집 전체의 제목으로도 채택됐다.

이런 '해'라는 시를 썼던 사람이 그로부터 몇 년 뒤 1951년에는 6· 25 노래의 가사도 썼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이때는 해가 떠오르는 기쁨이고 감격이고 없이 "저 불의의 역적 멧도적 오랑캐들을 하늘의 도움이라도 빌려서 무찌르고 섬멸해 버리리라~~ 우리는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리라~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리라~ 우리의 원쑤들을 단 하나도 살려두지 않으리라!!"
정말 비장하고 섬뜩하게 가사를 썼다. 그도 그럴 것이 북괴 공산당은 그 떠오르던 해를 도로 가려 버리는 먹구름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6· 25 노래는 같은으뜸음인 단조와 장조가 중간 전환되는 곡이다.
그래서 같은 시인이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차를 두고 지은 '해'와 '6 25 노래'가 내 머릿속에 나란히 오버랩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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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나 더..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 대한 남아 가는 데 초개로구나"도 1951년 초, 1· 4 후퇴로 서울을 빼앗긴 지 얼마 안 됐을 때 만들어지고 발표된 시? 노래? 군가이다. 6· 25 노래와 시기적으로 비슷하다.
본인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무찌르자 오랑캐.."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어린애들이 공기놀이를 하면서 동요처럼 즐겨 불렀다고 한다. 원제는 '승리의 노래'라는데, 뭔가 찬송가나 CCM의 제목처럼 느껴진다.

2. 빛

자, 이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꺼내겠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2005년 7월경 새벽엔 이런 일이 있었다.
경기도 광주의 어느 산기슭 농촌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느 가정집에서 불이 났다.

그런데 화재 원인이 참 민망 기구한 게, 무슨 누전이나 배터리 때문이 아니고 완전 정반대.. 밤에 켜 놓고 방치했던 촛불 때문이었다.
그 집은 전기료가 몇 달간 많이 밀리는 바람에 전기가 완전히 끊겼던 것이다.
직장인 점심 밥값이 4~5천 원이던 20년 전 물가로 가정용 전기료가 88만 원이나 밀린 건 적은 양이 아닐 테니까..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그 더운 7월에 전깃불뿐만 아니라 선풍기, 에어컨, 냉장고를 가동을 못 하고서 일가족이 도대체 어떻게 살았나 싶다.

부모가 범죄, 이혼 등으로 인해 막장 파경이거나 심각한 질병· 장애가 있는지 구체적인 정황은 모르겠지만, 거기는 전기료가 밀릴 정도로 많이 가난했다.
슬하에 10대 나이의 딸이 둘 있었는데, 저 때 중학생이던 막내딸이 집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화마에 참혹하게 희생되고 말았다.

이 소식이 매스컴을 타자 뒤늦게 이웃 주민들과 관공서에서 힘을 합쳐 새 집을 마련해 주고, 맏딸이라도 학비 지원해 주고, 누군가가 밀린 전기료도 대납해 줬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전기료가 아무리 밀려도 어느 가구든 "형광등 3개와 TV 하나" 정도 켤 수는 있는 최소한의 전기는 끊김 없이 공급하도록(그게 가능하냐? 그럼 총 몇 와트시 정도??) 인도적 차원의 조치를 추가했다. =_=;;

물론 뒤늦게 그런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건 아니니.. 동생을 잃은 언니는 진짜 한동안 넋이 나갔다고 하며, 애비 되는 사람은 자기가 무능해서 이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에 딸을 죽게 만들었다고 자책하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고 전해진다.

이 일이 있은 뒤, 한전에서 정말 뜬금없게 이례적으로 "빛으로 만드는 세상"이라는 동요까지 만들어서 공개하면서 이미지 광고를 내보낸 게 내 기억으로 아마 2005년 말~2006년 그 무렵이었다.
무슨 창작동요제 입상작이 아니고, 현직 교사도 아니고 기업에서 웬 동요를 만들면서 따스한 이미지 선전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검색을 아무리 해 봐도 저 곡이 만들어진 사연, 배경이나 작사· 작곡자(유 재광)의 신상이 소개되는 건 이상할 정도로 없다. 정말로! 제목이 비슷한 "빛으로 만든 세상"과 혼동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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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정황이면, 아마 한전에서..
"매정하게 가정집을 단전시켜 버려서 촛불 때문에 집이 불 나서 애까지 죽게 만든 것에 도의적으로(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책임져라"라고 불거진 여론을 의식해서 이미지 쇄신을 시도한 게 아니었을지..?? 이런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저 좋은 빛이라는 게 전기 에너지가 있으니까 1년 내내 존재 가능한 것이고, 그러니 전기를 공급하는 우리 한전이 최고... 그런 식으로 말이다. 남한 대한민국은 밤에 불이 꺼진 암흑천지인(인공위성 사진) 북한처럼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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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백열등과 형광등을 거쳐서 인류 역사상 가장 효율이 높은 전기 광원인 LED등까지 발명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LED 덕분에 그 자그마한 스마트폰에 달린 꼬마전구가 어지간한 휴대용 손전등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 팜 어쩌구 하면서 제한적으로나마 천장 없는 실내에서 식물 농사가 가능해졌다.;; 기존 재래식(?) 하늘에서는 햇볕과 햇빛이라는 넘사벽 급의 자원이 공짜로 쏟아지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자연재해도 쏟아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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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물리적인 빛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성경도 빛에다가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심상을 부여하고, 반대로 어둠은 일관되게 나쁘다고 디스한다.
창 1:2에 나오는 어둠, 고후 4:6와 6:14에 나오는 빛과 어둠, 엡 5:8과 살전 5:5에 나오는 '빛의 자녀', 요한일서에서 시종일관 나오는 '빛'...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니 "빛으로 만드는 세상" 가사가 신앙적으로도 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1950년대에 만들어진 옛날 동요인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은 어떨까?
얘도 가사와 곡이 매우 아름다우며 2000년대 초에 일본의 소학교 음악 교과서에 잠시 소개되기도 했을 정도로 명곡이긴 하다만.. 이 곡의 가사는 딱히 광명과 암흑을 비교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냥 "여름엔 파랄 거예요, 겨울엔 하얄 거예요"이다.

저기서 '빛'은 그냥 '색'이라는 의미이다. 한국어는 green과 blue를 별로 구분하지 않고 '푸르다'라는 말을 썼듯이, 심지어 color와 light도 별로 구분하지 않고 '빛'이라는 말을 썼다. 그래서 한자도 光(빛 광)뿐만 아니라 色도 "빛 색"이라고 불렀고, 색깔뿐만 아니라 '빛깔'이라는 말도 있었던 것이다.

즉, 결론적으로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의 가사는 "빛으로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포카혼타스 "Colors of the wind"(바람의 빛깔)와 더 비슷한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보면 정확하겠다. 저 동요가 일본어로 번역될 때도 응당 光이 아니라 色이 쓰였다.

영어에 man 남자/사람, good 좋다/선하다, day 낮/날 같은 중의성이 있는 것처럼.. 한국어에도 저 정도 중의성은 감수해야 하는가 보다. 사전만 보고 무식하게 곧이곧대로 번역하다간 실수하기 쉽다.

내 모국어인 한국어는 한편으로 괴상망측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ㅁ과 ㅂ 대응(어머니 아버지, 물 불, 맑다 밝다, 묽다 붉다)이라든가, 빛과 색의 중의적 관계,
내가 아는 다른 어떤 외국어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딱 한 단어짜리 '모르다' 동사,
하필 흑백과 삼원색만 활용 가능한 용언 형태로 말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꽤 심오하다는 생각도 든다. 잘 알다시피 영어는 '빛'이 '색'이 아니라 '가벼운'과 동음이의어 관계다.

이상이다.
아, 앞서 얘기했던 비극적인 화재 사고에 대한 내 견해는 전적으로 중립이다.
한전이 비난받아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반대로 저 집 부모의 무능? 가난? 이 죄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누구 탓도 할 수 없이 운이 나빴던 안타까운 사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애한테 비싼 장난감을 안 사 줘도 유괴 범죄가 일어날 수 있고, (이 삼촌이 장난감 사 줄게!)
사 줘도 유괴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소신이다. (오~ 이 집은 잘 사는가 보군!)
화재 역시 전기가 들어와도 날 수 있고, 전기가 없어도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꼭 가난이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어 보인다.

뭐랄까, 6 25 전쟁 났을 때 모병관이 어린 꼬마한테 먹을거 주고 구슬리면서 "너희 아빠 어디 있는지 알아?" → "아 우리 아빠요?" (너무 순진해서 솔직하게 다 말함) → (아빠는 징집돼 끌려가고 전사) → 그 꼬마는 고아가 됐고, 나중에 다 커서야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됨
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거 갖고 그 꼬마나, 모병관 그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것과 비슷한 모양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03 08:35 2026/06/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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