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의 발음

본인은 ‘효과’(effect)를 ‘효꽈’가 아닌 글자 그대로 발음하는 것을 반대한다. TV에서 방송인들이 애써 ‘효과적으로’--아나운서랍시고 교육을 그렇게 받았을 테니--라고 말하는 걸 듣노라면 너무 어색하다.

마치 ‘김밥’하고 비슷한 예인 것 같다.
저걸 글자 그대로 발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부 한결같이 ‘김빱’이라고 읽는다.
왜냐고 물으면 답이 없다. ‘비빔밥’, ‘볶음밥’, ‘곰국’, ‘짜장밥’ 같은 비슷한 예와 비교해 봐도 본인의 국어 실력으로는 원칙 내지 알고리즘을 못 찾겠다.

원칙을 못 찾겠다는 말은, “이렇게 발음해야 한다”라든가 “저렇게 발음해서는 안 된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뜻. 이렇게 그냥 정하기 나름인 규칙에 대해서는 그냥 둘 다 허용하거나, 많이 쓰이는 편을 들어 주는 게 맞다. 마치 ‘짜장면’처럼 말이다.

그럼, ‘효과’라는 단어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말에서 ‘과’가 ‘꽈’로 변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소리나는 경우는 가장 먼저 and를 뜻하는 조사일 때이다. 이때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절대로 경음화하지 않는다. 무성음 받침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일어나는 경음화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한자어의 경우, 먹는 음식을 뜻하는 果 내지 菓(과자)일 때도 변하지 않는다. 수정과, 한과, 유과 등.
그 반면, 부서나 학문 단위를 뜻하는 科나 課는 반드시 변한다. 심지어 단독으로 등장할 때도 경음화한다. 대학교 용어인 ‘과대’(과 대표), ‘과사’(학과 사무실)에서 과는 100% 꽈로 바뀐단 말이다.

또한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라 일의 결과를 뜻하는 비유적 의미의 果도 경음화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결과라는 단어 자체는 ‘결꽈’가 되지 않지만 성과는 ‘성꽈’로 바뀐다. 본인은 효과가 ‘효꽈’로 바뀌는 것도 성과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며, 동음이의어 식별을 위해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무리하게 글자 그대로 읽는 걸 반대한다.

본인이 논리 전개 과정에서 넘겨 짚은 게 있으면, 국어 고수들로부터 지적를 환영하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12 17:53 2010/07/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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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9 13:52 # M/D Reply Permalink

    개인적인 생각으로 음이 변하는걸 인정하면 그다음엔 표기가 변하게 될겁니다
    효과 -> 효꽈
    물론 한자어라 쉽게 변하지는 않겠지만 변하게 되면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질듯 합니다.

    1. 사무엘 2010/07/19 20:39 # M/D Permalink

      한자음 사이에 나타나는 사잇소리를 다 표기로 반영하는 건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일입니다.
      중국집 음식에다 비유하자면, 이 글은 한글 맞춤법을 '짜장면'으로 아예 개정하자는 내용이 아니죠.
      99% 이상의 국민들이 '짜장면'이라고 자연스럽게 발음하는 '자장면'(?)을 방송인들만 어색하게 '자장면'이라고 부자연스럽게 발음하는 게 어색하다는 투정입니다.
      (물론 자장면이야 표기까지 그냥 '짜장면'으로 해 버렸으면 좋겠습니다만.)

  2. 인민 2011/07/16 19:00 # M/D Reply Permalink

    근데 전 왜 비빔밥은 비빔빱이라고 읽혀지고
    볶음밥은 된소리 없이 그냥 그대로 읽혀지는 걸까요.

    사투리 범주일까요?

    1. 사무엘 2011/07/17 00:03 # M/D Permalink

      저도 여러 모로 고민해 봤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물고기와 불고기도 왜 '꼬'와 '고'가 갈리는지 신기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음운론도 좀 깊게 들어가면 형태론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긴 합니다.

  3. 인민 2011/09/03 02:01 # M/D Reply Permalink

    굳이 답을 찾는다면, 대략 KJB 번역될 시점까지 한국어에 남아 있었던 성조(평성, 상성, 거성/입성) 에서 찾아야 겠네요.
    왜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도 니르고져 ㅎㆍㅭ 배 이셔도... 라고 하는데 여기서 'ㅎㆍㅭ'는 ㄹ받침인데 기류를 끝내 버리기 위해 ㆆ(성문 파열음)와 합자한 것이고,
    'ㅎㆍㅭ 배' 에서 글자 '배' 는 'pæ' 정도로 무성음으로 읽게 되고, 한국 사람이 듣기에 '빼' 에서 약간 여린 음이 됩니다.
    이외에도 단어 처음이나 사잇소리 다음에 들어가는 ㄱ, ㄷ, ㅂ 류는 g, d, b가 아니라 무성음화 하여 k, t, p(IPA)로 읽게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해 봤는데, 접두어 '물(水)' 다음에 나오는 자음이 파열음이나 마찰음일 경우 대부분 그 다음 글자가 무성음으로 읽히더라구요.
    물살 → 물쌀, 물고기 → 물꼬기, 물길 → 물낄 등등. 그런데 중세 국어에는 사잇소리를 ㅅ 말고도 ㆆ, ㄱ 같은 글자를 썼습니다.

    아마 물 + ㅁㅁㅁ 형태로 결합했을 때 사잇소리 ㆆ가 들어가서 '물ㆆ'가 빨리 끝마치는 음인 입성이 되어 '물꼬기' '물쌀' 같은 음이 된 것 같습니다.

  4. 소범준 2011/09/04 19:10 # M/D Reply Permalink

    언어는 차라리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가는게 낫지, 아무리 예스럽게 하자고 해서 인위적으로 글자 그대로 발음하게 하면 오히려 가식스러운 거죠. 진짜 안습 우~~~-_-;

    이번에 짜장면을 짜장면으로 부를 수 있게 된 건 그런 맥락에서 참 다행인 일로 생각합니다.

    1. 사무엘 2011/09/04 21:44 # M/D Permalink

      사잇소리는 한국어의 형태론과 음운론(그리고 그의 결과물인 맞춤법, 표기법)에서 만년 논쟁거리로 남지 싶습니다. ㄲㄲ

    2. 특백 2011/09/05 01:52 # M/D Permalink

      한글맞춤법이라면 쉽게 바꿀 수 있지만... 이게 한자어의 경우 문제가 조금 커지죠

      차라리 동국정운처럼 한자를 그냥 당시(혹은 현재) 발음되는 구어대로 표시하는 게 더 나아요.

      大→땡(ㅇ받침은 묵음)
      字→ㅉ·ㅇ(ㅇ받침은 묵음)

      이런 식으로 된소리를 맘대로 쓰게 하는(果를 꽈로 적는 방법) 방안이 필요할텐데, 현실적으로 된소리(=무성음화 된 유성파열음)를 쓰는 글자는 氏(씨)자와 喫(끽)자밖에 찾아볼 수가 없어요. 더 있으면 연락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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