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와 '감사하다'

영어의 '땡큐', 중국어의 '씨에 셰', 일본어의 '아리가토', 독일어의 '당케' 에 해당하는 한국어는 아쉽게도 딱 하나로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사과하는 표현으로 '미안'과 '죄송'이 공존하듯이 '고맙습니다'라는 순우리말과 '감사합니다'라는 한자어 계열이 공존하는데, 인간의 자연어라는 건 “그럼 이 둘을 마음대로 섞어 쓰면 된다는 뜻이에요?”를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은 미묘한 상황 차이에 따라 둘의 용법이 구분되게 마련인데, 그 원칙이라는 게 엿장수 마음대로 식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미치고 펄쩍 뛰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은 엄밀한 방법이 아니라 그냥 말뭉치 기반으로 수학으로 치면 numerical하게 해를 구할 수밖에 ㄲㄲㄲ

그럼 '고맙다'와 '감사하다'에 대해서 살펴보자.
'고맙다'는 be grateful/thankful에 가까운 형용사이다.
'감사하다'는 give thank, 또는 그냥 thank, 다시 말해 '고마워하다'에 해당하는 동사이다.
"네가 고마워서 난 네게 감사한다" 정도 된다.

다시 말해 둘은 일단 품사가 서로 다른 단어이다.
비록 관용구 감탄사에 가까운 Thank you에 대한 번역이야 둘 다 가능하다 할지라도, 각 단어가 원래 완전한 문장에서 무엇이 생략된 형태인지 정도는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보통 '감사합니다'는 '고맙습니다'보다는 문어적이고 격식 있는 말투로 통용되는 것 같다. 마치 영어로도 Thank you so much가 very much보다는 여성적이고 구어적인 것처럼 말이다.
뭐 이런 것도 '한국에 만연한 토박이말 천시 풍조'의 일례이고 '감사'는 일본식 한자어라고 열폭하는 분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피해 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뉴스 끝날 때나 교통수단 내부에서의 각종 안내방송 멘트를 들어 보면, 요즘은 오히려 '고맙습니다'가 더 즐겨 쓰이는 듯하기도 하다.

교회 예배의 대표 기도에서 자주 듣는 표현으로 “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이 있다. 이건 제아무리 한자어가 토박이말보다 품위-_- 있고 고상한 표현이라고 해도 어법에 어긋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지, 하나님이 또 무슨 대상으로부터 은혜라도 입어서 거기에다 감사한단 말인가? '고맙다'와 '감사하다'는 뉘앙스의 차이에 앞서 근본적으로 품사가 다른 단어임을 잊지 말자. 그냥 '고마우신 하나님', '한량없이 고마우신 하나님'이라고만 하면 된다.

'고맙다'는 마치 '좋다', '밉다', '무섭다'처럼 일종의 심리형용사의 기능을 한다.
'좋은 사람'은 그 사람이 좋다는 뜻이지만, “나는 그 사람이 좋다/싫다”고 하면 그 사람의 실제 성품과는 무관하게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심리를 표현하는 말이 된다.
심리형용사는 1인칭이라는 주어 선택 제약이 존재하며,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되지도 않는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싫어한다”처럼 동사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마운 사람', '나는 그가 참 고맙다'도 그와 동일한 맥락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고맙다'는 골수 왕자병이 아닌 이상, 나 자신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 형용사이다. “세상에 나보다 더 겸손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_-;;; 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쓰임이 딱 정해져 있다 보니, 어법상으로는 남이 고마운 게 아니라 내가 고마운 존재가 되는 식으로 좀 어정쩡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고맙다/감사하다가 뒤섞여서 자연어에서 통용되어 온 것 같다.

요약: 아무쪼록, 배은망덕은 어느 문화권을 가더라도 인간말종 천하의 개쌍놈짓으로 취급받는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자. 성경에서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는 thank for everything이 아니라, thank in/under everything이다. 무슨 로봇이나 변태처럼 “앗싸, 불행을 내려 주셔서 ㄱㅅㄱㅅ!”가 아니요, “그래도 내가 북한이나 소말리아 애들보다는 처지가 낫지” 식으로 남과 비교하는 바리새인 버전 감사도 아니다. 내가 지금 당장은 나쁜 여건에 처했지만 그 나쁜 여건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고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고서 낙담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으며, 그분이 나의 모든 것이니 ㄱㅅ라는 정말 수준 높은 감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18 19:26 2010/12/1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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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각형 2010/12/20 22:52 # M/D Reply Permalink

    감사를 표하는 말로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도가 생각나는데.

    사전에 감사하다가 고마운 마음이 있다라고 되어 있네요. 고맙다로 가보면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라고 되어 있고요. 결국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는 같은 말이라는 결과가 나오는거죠. 수고하셨습니다는 구분이 잘 되고요.

    감사합니다는 일반적으로, 모든 어떤 정당한 서비스를 받고 인사할 때 사용하고, 고맙습니다는 뜻하지 않은 호의를 입었을 때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서비스)

    수고하셨습니다는 정당한 정신적, 육체적 노동에 사용되고요. 육체 노동이라도 정당하지 않을 때는 고맙습니다를 쓰는 듯 합니다.

    아랫사람에게 '수고했어', '고마워'는 되지만 '감사해'는 좀 아니죠. 그런 면에서 감사하다는 고맙다의 더 강한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어채 쪽으로 많이 쓰이는것 같고요.

    1. 사무엘 2010/12/19 14:36 # M/D Permalink

      '수고하셨습니다'는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good job이나 well done, thank you for your trouble. 정도에 대응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감탄사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는 쓰는데, '고마워'와는 달리 '감사해'는 또 통용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도 문어가 아닌 구어에서는 극도의 격식체로만 쓰이며 비격식체를 허용하지 않네요.
      저의 직업병으로는 감탄사는 헷갈릴 일 없이 그냥 '고맙습니다' 하나만 쓰게 규정을 확 바꿔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발동합니다. ^^

  2. 맑아릿다 2010/12/19 23:14 # M/D Reply Permalink

    [감사하다]는 동사이기만 한 게 아니라 동사와 형용사의 품사통용입니다. 따라서 형용사로도 쓰일 수 있어요. 접미사 '-하다' 때문에 동사 같은 느낌이 들긴 하는데, 신실하다, 화려하다 등도 '-하다' 꼴이지만 형용사잖아요?

    [무례를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거 동사 같지만 사실 아래와 같은 구조의 문장.

    [여기 전구를 달면 참 화려하겠습니다.]

    이론적으로만 따지자면 [(당신이) (나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면 (내가) (당신에게) 감사하겠습니다]와 같이 생략된 성분을 복원하고 '감사하다'를 동사로 볼 수도 있습니다만, 그럼 용서를 비는 주제에 상황의 주도권은 지가 잡고 있겠다는 게 되니까요;; '감사하겠습니다'가 '감사할 의도가 있습니다'와 같은 의미로 판단하는 건 부적절할 듯하고, '발화자가 고마운 마음을 가지도록 베풂'의 권한은 상대에게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경우, '감사하다'는 형용사. 그러니 '고맙고 감사하신 하느님'은 (어감상 익숙지 않은 문장이지만) 문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어요.

    아무튼 '감사하다'와 '고맙다'는 그 구조상의 차이 때문에 활용에서도 다소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의 경우는 [안녕하세요]처럼 굳어진 채로 관습화되어서 그냥 인사로 쓰입니다. 정당한 서비스와 뜻하지 않은 호의의 차이라는 건 특이한 의견이지만 저는 찬동하기 어렵네요:)

    +) 미용실에서 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는데도 나더러 수고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수고는 그쪽이 하신 거 아니오? 라고 하진 않았지(..)

    1. 사무엘 2010/12/20 01:53 # M/D Permalink

      좋은 의견에 감사합니다(흠 이 말도 조심해서..-_-). 저도 이 글 써 놓고 혹시나 해서 사전 찾아봤는데 표준 국어 대사전은 '감사하다'에 형용사 풀이가 들어있더군요. 으악..;; 하지만 영 어색하고 적응이 안 돼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감사하다'가 형용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고맙고 감사하신'은 '이 제품은 참 좋으십니다'만큼이나 듣기 거북했더랬습니다.
      '감사하다' 말고 다른 용언 중에 품사 통용의 예가 있는가요? 아, '웃기다'도 그런 예인가?? 또 그거 말고는..?

      저의 국어 감각으로는,

      1. 참 감사한 말씀이지만 사양하겠습니다. ==> 틀림. '고마운 말씀'으로 고침. ㄲㄲㄲ
      2. 나는 그의 후의가 무척 감사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 무척 고마웠지만 / 조사 '가'를 '에'로 고침
      3. 무례를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감사하겠습니다 / 고맙겠습니다 모두 허용. (제가 감사하겠습니다) or (당신이 고맙겠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용서를 비는 주제에 무슨 건방지게 조건부 감사냐'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I will be appreciated if ... 를 떠올리게 하는 전형적인 번역투라고, 그래서 이런 표현 자체를 어감상 안 쓰는 게 좋겠다고 주장하는 우리말 연구가도 있지요. 저 역시 차라리 안 쓰고 말겠어요. ㅎㅎ 그냥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로...

      역시 문법이라는 건 그냥 정하기 나름인 것인가..;;

      미용실 고객은 꼼짝 않고 가만히 있는 게 힘든 일이니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는 걸까요? 그런 맥락에서는 교통수단 이용 승객한테도 운행 종료 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해야 할 판. ㅋㅋ

    2. 맑아릿다 2010/12/20 03:33 # M/D Permalink

      품사 통용의 예는 여럿 있습니다.

      -방 안이 밝다 (형용사)
      -날이 밝는다 (동사)

      -돈이 있다 (형용사)
      -우린 여기에 있자 (동사)

      외에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만 일단 이거 두 개밖에 기억나지 않네요ㅠㅠ
      표준국어문법론의 색인에서 품사통용을 찾아보시면 좋을 듯합니다ㅠㅠ

    3. 사무엘 2010/12/20 05:25 # M/D Permalink

      '있다'는 통사론 수업 때 들은 적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밝다'는 굉장히 특이하네요. '어둡다'는 안 그런데 왜 반의어만...;;
      제가 국어를 보는 안목이 지금까지 얼마나 좁았는지 차차 느끼는 중입니다. ^^

  3. 다물 2010/12/20 14:27 # M/D Reply Permalink

    국립국어원 누리집에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찾아보면 서로 같은 뜻인데 감사합니다는 한자이고 고맙습니다는 고유어니 가급적이면 고맙습니다를 쓰라고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방송에 보면 거의 감사합니다로 나와서 이런거 바꿔야 한다고 지난 주말에도 다른곳에 가서 얘기하고 왔는데. 전 감사합니다 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결 퍼오는게 막혀있는 구조라서 온라인 가나다에 적힌 글 중 하나 복사해서 아래에 붙입니다.(질문과 답변 모두 적었습니다.)


    '고맙습니다'와 '감사합니다'가 쓰이는 경우의 차이 등록일 2010.11.23.
    첨부
    작성자 한태윤 조회수 46
    '고맙습니다'보다 '감사합니다'가 더 상대를 높이는거잖아요?

    그런데, 지하철이나 여러 공공장소에서는 '고맙습니다'를 쓰더라구요.

    감사합니다말고 고맙습니다를 쓰는 특별한 이유가있나요
    답변 제목: 고맙다, 감사하다
    작성자 온라인가나다 답변일자 2010.11.24.
    안녕하십니까?
    ‘고맙다’와 ‘감사하다’는 뜻이나 쓰이는 맥락에 별 차이가 없습니다. ‘고맙다’는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의 뜻을 나타내고 ‘나는 무엇보다 자네의 그 따뜻한 배려가 고맙네./그녀는 그가 자기를 위해 그렇게 애써 주는 게 무척이나 고마웠다.’와 같이 쓰이고, ‘감사하다’는 ‘고맙게 여기다./고마운 마음이 있다.’라는 뜻을 나타내고 ‘나는 그가 이곳을 직접 방문해 준 것에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당신의 작은 배려가 대단히 감사합니다.’와 같이 쓰입니다. 다만 ‘고맙다’가 순우리말이고, 쓰여 온 역사가 깊으므로, ‘감사하다’보다는 ‘고맙다’를 쓰는 것이 좋고, 이러한 이유로 ‘고맙다’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 사무엘 2010/12/21 08:19 # M/D Permalink

      형용사고 동사고 다 집어치우고 그냥 동의어처럼 설명했다는 얘기네요.
      저는 단순히 순우리말과 한자어의 차이라고 논하기에는 두 단어의 쓰임이 다른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 왔더랬습니다.
      음, 그런데 저는 방송에서 ‘고맙습니다’를 더 많이 들은 것 같은데, 의외군요. ^^
      (덧. MRU: most recently used)

  4. 맑아릿다 2010/12/21 07:43 # M/D Reply Permalink

    모바일 페이지에서는 방명록에 어떻게 접근하나요ㅠㅠ 나만 모르는 건가ㅠㅠㅠ

    1. 사무엘 2010/12/21 08:19 # M/D Permalink

      아, 모바일 페이지에서 방명록이 안 보인다는 의견이 이미 있었습니다.
      음, 하지만 제가 모바일 사용자가 아니고 블로그 엔진 내지 스킨 구조를 몰라서 당장 조치를 취하긴 곤ㅋ란ㅋ
      이건 기본 스킨인데, 동일 엔진과 스킨 쓰는 모든 블로그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인 걸까요..;;

  5. 1 2011/03/20 14:59 # M/D Reply Permalink

    '고맙습니다'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보다 '고맙습니다'가 상대방을 더 높이는 말입니다. 또 '죄송합니다'보다는 '미안합니다'가 상대방을 높이는 말입니다. 한자어와 순수우리말이 같은 뜻일때 순수우리말을 쓰는게 상대방을 더 높이는 말이라는게 국어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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