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id 소프트웨어는 PC 환경에서 궁극의 최적화 기술을 선보이며, 1인칭 3차원 FPS 장르를 개척한 선두주자였다. 둠(Doom)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불멸의 명작으로 기록되었고 수많은 매니아· 폐인들을 양산했다. id의 기술력은 그 후에도 Quake 시리즈로 이어지며 발전을 거듭했다. 후속작인 퀘이크는 이 장르에서 스프라이트가 아닌 100% 3D 폴리곤을 실현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음침한 던전과 곳곳에서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살벌한 울음 소리. 피떡이 된 몬스터 시체들;;
둠은 잔인성과 폭력성 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특히 SF에다가 오각형, 염소 머리 등 지극히 오컬트· 사탄주의-_-를 가미한 세계관은 기독교 진영으로부터도 풍부한 까임거리를 제공했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를 내고 자살한 어느 비행 청소년은 평소에도 Doom 중독자였으며, 게임을 하듯 사람을 죽이고 싶어했던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처럼. ㄲㄲㄲㄲ

그랬는데 일대일 대전 격투 게임 분야에도 Doom과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는 명작이 있다. 바로 모탈 컴뱃(Mortal Kombat).
그 장르의 게임으로는 의외로 미국산 게임이 별로 없다. 본인이 아는 건 삼국지 무장쟁패,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버추어 파이터 따위가 고작인데, 어느 것도 미국산이 아니다.

그에 반해 모탈 컴뱃은 미국산이다. 하지만 게임 로고에서부터 용의 그림이 등장하고 좀 동양스러운 느낌이 난다.
모탈 컴뱃은 1992년, 그러니까 울펜슈타인과 버추어 파이터 1하고 비슷한 시기에 첫 편이 나온 후, 오늘날까지 꾸준히 후속편이 출시되어 왔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K 발음이 나는 C에 일부러 K를 집어넣었다. 코브라도 Kobra. 그렇게 적으니까 꼭 한국스러운 느낌이 나는구나(Korea? Corea?).

모탈 컴뱃이라는 말 자체는 격투 룰을 가리킨다고 한다. 마치 배틀 로얄(Battle Royale)처럼 말이다.
본인이 중딩 꼬꼬마이던 시절에, 주인공의 그래픽이 실사처럼 아주 큼직하고 정교하고, 마지막에 Finish him/her!이 나오는 격투 게임을 잠깐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게임이 바로 저 게임이었다.

그리고 스프라이트는 '실사처럼'이 아니고 '실사'가 맞다. 모탈 컴뱃은 1995년에 출시된 3편까지는, 비록 2D 도트이지만 액션 배우의 움직임을 그대로 촬영한 스프라이트를 써서 상당히 획기적인 그래픽을 선보였다. 실사 이미지로부터 잘 편집된 256색용 스프라이트를 얻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대단하다. 그야말로 엄청난 노가다였을 것이다.
(무려 1989년에 페르시아의 왕자의 스프라이트를 만들 생각을 했던 조던 메크너만큼이나 획기적인 시도이다.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본인은 옛날에 256색 모드에서 궁극의 팔레트 최적화도 엔지니어들의 어지간한 덕력과 근성이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크래프트를 생각해 보라. 어떻게 그 그래픽에서 8종족 색깔별로 클록킹 유닛(알파 블렌딩)을 구현했으며, 퀘이크는 동적 광원을 구현했겠는가!

이 게임의 백미는 격투 말미에 다 죽고 헤롱헤롱하고 있는 상대편을 필살기로 끔살하는 일명 Fatality 기술이다.
퀘이크 3 아레나에 레일건이 있고, 카트라이더에 드리프트가 있으며, 스타크래프트에 스팀팩과 사이오닉 스톰이 있다면...
모탈 컴뱃에는 Fatality가 있다.

이게 정말 성경에 나오는 '인간의 상상하는 바가 원천적으로 악하다'(창 6:5, 8:21)는 걸 입증하는 것 같다. 사지를 각을 뜬다거나, 전기로 지지거나 산 채로 불태우거나 뭐 기타 등등...;;
주인공별로 가히 기상천외한 엽기적인 방법으로 상대편 캐릭을 작살을 낼 수 있다. 저런 현란한 비주얼을 어떻게 만들 생각을 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도 그런 거 보면 쾌감이 느껴진다. 아담의 본성이다. -_-

그 후 모탈 컴뱃 4는 당대의 게임계의 추세에 따라 드디어 주인공이 3D 폴리곤으로 바뀌었다. 비록 그때는 현란한 각도 회전을 대가로, 예전의 2D 스프라이트가 뽐내던 도트 단위의 화려한 비주얼은 어느 정도 희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3D 그래픽은 가히 실사나 다름없다. full 3D 게임이 처음으로 나오던 때는 버추어 파이터도 주인공이 가히 목각 인형에 불과했고, 퀘이크도 파티클은 그냥 사각형 픽셀로 처리될 정도로 허접했다.

동양스러운 느낌 하니까 생각나는데, 퀘이크 3 아레나도 싱글 플레이의 최종 보스인 Xaero는 사이보그 로봇이 아니고, 오크나 저그 같은 괴물도 아니다. 대머리에 중국 내지 티벳 승려 차림을 한 아저씨이다. 예전의 FPS 게임들의 최종 보스가 무식하게 높은 HP + 물량전 컨셉이었다면, 퀘3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마치 결투를 하듯 정밀도가 높은 레일건으로 플레이어와 승부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본인은 퀘3을 처음 하던 시절에 무척 놀랐었다. FPS에다가 격투 게임 비슷한 디자인을 도입한 셈이다.

모탈 컴뱃은 툼레이더나 둠처럼 영화화도 되었다. 동양을 배경으로 말이다. 퀘이크에 매니아 계층인 '퀘이커'(개신교 교파인 퀘이커 말고-_-)가 있다면, 모탈 컴뱃도 '모탈리안'이라고 불리는 매니아 계층이 서양에는 굉장히 많다고 한다.
유튜브에 스타크래프트 실사판이 나돈 적이 있었는데-_- 이 양덕후 모탈리안들은 모탈 컴뱃 실사판도 만들어서 UCC랍시고 올린다. ^^;;

대전 액션 게임의 내레이션은 톤이 극도로 낮고 좀 사악한(?) 느낌이 나는 남자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Fight one. Ready, go” / “Round one. Fight!” / “You win” 등. -_-

이렇게 본인이 갑자기 모탈 컴뱃에 대해서 글을 쓴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에 본인이 만들었던 오목 게임의 이름도 아마 모탈 컴뱃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서이다. 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5/05 09:03 2011/05/0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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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제물 2011/05/05 14:31 # M/D Reply Permalink

    스트리트파이터나 KOF, 버츄얼파이터같은 좀 단순화된 캐릭터디자인(?)에 익숙해져있던 저에게 실사를 다량차용한 모탈컴뱃은 정말 크나큰 충격이였습니다. 페이탈리티라는것도 김화백마냥 강약약강강강약강중약 주먹질격투만을 생각하던 저에겐 쇼크 그 자체였죠. BGM을 듣다보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모오탈~콤밧~을 외치고 싶어진다는 설이!?

    1. 사무엘 2011/05/05 22:49 # M/D Permalink

      공감합니다. ^^;;
      게임을 흥행시키려면 뛰어난 기술뿐만이 아니라 뭔가 짜릿하고 중독성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할 겁니다.
      기술적으로 앞섰던 퀘이크뿐만이 아니라 2D 스프라이트로도 온갖 창의적인 게임 요소를 만들어 냈던 듀크 뉴켐 역시 크게 성공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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