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안보 관광 (2013/5/4) -- 中

다음은 임진각 전망대에서 북쪽 도라산 역 방면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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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북쪽으로도 철조망이 쳐져 있지만 철조망 건너편은 비무장지대(DMZ)가 아니며 북한 땅은 더욱 아니다. 건너편은 그저 민통선 안쪽일 뿐이다.
과거의 경의선 철교와 지금의 경의선 철교의 위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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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역에서 평화 공원으로 가는 길엔 이렇게 6·25 참전국 기념비가 있고, 아웅산 폭탄 테러 순직자의 위령비도 있다.
6·25는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현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전쟁이다. 6·25만치 선악 이념이 분명했던 전쟁은 흔치 않다.

오죽했으면 UN이 창설 이래로 거의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딱 한쪽 편을 들어서--당연히 대한민국 편-- 반대편을 적극적으로 퇴치하는 군사 활동을 했으며, 전세계 역사를 통틀어 이토록 많은 국가들이 오로지 한 자그마한 나라 편을 들었던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5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벌어진 불법 침략 전쟁에 대한 정당방위이기 때문에 그렇다.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 등을 생각해 보아라. 미군이 개입했던 전쟁 중에 6·25만치 참전 명분이 깔끔하고 정당한 전쟁이 있었는지를. 굳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제3자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이유 때문에 6·25는 여타 전쟁들과는 달리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인지도가 매우 저조하다. 아예 the forgotten war이라고 불릴 정도이다.

절대적인 선과 악 구도가 너무 명확하다 보니, 딱히 역사에 대한 재해석을 하거나 삐딱하게 풍자· 비판을 할 껀덕지가 없어서 잊혀졌다는 게 나의 짧은 생각이다.
이라크, 베트남 등에 비해, 6·25는 전쟁을 겪은 당사자가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거뜬히 이뤄 내고 G20 급의 선진국이 되어 있다는 점도 크게 다른 점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나라에 대해 자부심을 충분히 가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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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S. 트루먼.
원래 부통령이다가 프랭클린 루스벨트(FDR)가 급사한 뒤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으며,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한 양반이다.
그가 6·25 때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북한· 중공군을 완전히 격퇴하지 못했다”와 “한반도에서 또 핵이 떨어지고 3차 세계 대전이 벌어질 뻔했던 상황을 예방했다”라는 두 평가가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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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평화 공원을 살펴본 뒤, 우리 일행은 다시 역으로 돌아와서 도라산 행 열차를 탔다. 문산-도라산도 아니고 임진강-도라산 겨우 한 정거장 거리만을 이용한 것이다.

개인이 도라산 역으로 가려면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며, 왕복 승차권 구입과 더불어 연계 안보 관광 패키지 신청도 같이 해야 한다. 예전에는 역 주변만 둘러보고 돌아오는 것도 가능했던 것 같은데 정책이 또 바뀐 것 같다.
이 지대의 관광 상품은 도라 전망대, 제3 땅굴, 통일촌 견학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간은 식사 시간을 포함하여 3~4시간 정도 걸린다.

역 주변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은 역시 보안 시설에서 온갖 사람들을 통제하는 헌병이어서 그런지, 다들 키 크고 체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20대 초반 나이일 텐데 말이다.

도라산 역의 옛날 사진을 보니 역명판의 서체가 목판체 계열이었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저건 코레일체도, HY울릉도도 아니라 윤 디자인에서 만든 월드컵체이다. 철도역에서 월드컵체를 볼 일이란 원래 전혀에 가깝게 없을 텐데 뜻밖이다.
역이 개통한 시기와 저 서체가 만들어진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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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 역은 출· 입구 관리 사무소와 세관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물론 현재 일상적으로는 쓰이지 않는 시설) 내부가 꽤 크고 넓다. 승강장 역시 KTX 한 편성 정도는 너끈히 세울 수 있어 보이는 규모이다.

이제부터는 사진 없이 한동안 설명만 좀 늘어놓겠다.
역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준비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른 뒤, 도라 전망대로 향했다. 여기는 민간 관광객에게 개방되긴 해도 엄연히 일종의 GOP이며 군사 시설이다.

날씨가 굉장히 좋았다. 이 전망대로 펼쳐진 곳이 바로 말로만 듣던 비무장지대이고, 북한 땅이 코앞이다.
저 멀리 말로만 듣던 대성동의 태극기 깃대가 보였다. 기정동 쪽은 깃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유료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펄럭이지 않을 뿐 인공기도 꽂힌 게 보였다. 게다가 북한 쪽 비무장지대 근처에서 서 있는 북한군 병사까지 보였다! 김일성 백성들도 머리 하나, 팔 둘, 다리 둘 달린 호모 사피엔스이긴 했다.

이게 내가 브라운관이나 LCD 같은 전자 기기가 아닌 매체로 북한 관련 시설물을 본 첫 경험이었다. 하지만 북한 쪽을 가까이 대고 사진을 찍는 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이 날은 외국인 관광객도 굉장히 많았다. 미국인이야 그렇다 치지만 왁자지껄 떠드는 중국인들도 많았다.

도라 전망대 다음으로 우리는 말로만 듣던 제3 땅굴을 견학했다.
옛날에는 관광객들이 건물 수십 층에 달하는 높이를 걸어서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했지만, 지금은 승강 열차가 생겨서 편하게 왕래를 할 수 있다.

주요 소지품들은 사물함에다 맡기고, 헬멧을 지급받은 뒤 몇백 m 정도 거리를 산보하듯 다녀 왔다. 땅굴 입구 자체가 거의 DMZ 경계선 근처에 있고, 땅굴 내부를 견학할 수 있는 한계는 지상에서 군사 분계선이 200m도 채 안 남은 지점이 끝이다. 그 이상은 철조망과 콘크리트 벽, 굳게 잠긴 철문으로 봉인되어 있다.

땅굴은 키가 170cm가 넘는 사람은 허리를 굽혀야 할 정도로 높이가 낮은 편이었다. 안 들키게 병력 수송을 위한 정말 최소한의 크기로만 굴착을 한 셈이다. 땅굴을 파는 게 좀 힘드나.. 지하철이라는 게 처음 등장하고 전기 철도가 도입되었을 때 제3궤조 집전식이 괜히 쓰였던 게 아니었겠다 싶었다. 터널의 단면적이 작아도 되기 때문이다.

육로를 통한 남침 방법이 완전 원천 봉쇄되고 차단되자, 비열한 김 일성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어두컴컴한 땅굴을 파라는 지시를 내렸다. 악한 통치자 밑에서 영혼이 완전히 황폐화된 채 사는 북한의 노동자와 군인들이 한편으로 가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땅굴은 여러 개 팠으면서, 북한은 정작 평양 지하철을 만들던 중에는 대동강 아래를 관통하는 하저 터널 건설에 실패했다니 참 아이러니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제3 땅굴은 1978년에 전땅크가 육군 제1사단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박 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탐사 작업을 통솔하다가 끝내 발견했다. (...) 이 양반, 그래도 리즈 시절에 나라를 구하는 과업을 한 건 이뤘다.

우리가 주로 관광한 것은 이 둘이었고, 그 뒤엔 통일촌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좀 놀다가 다시 도라산 역으로 돌아왔다.
말로만 듣던 민통선 내부는 온통 농경지나 황무지, 군부대이고, 민통선 내부이다 보니 사람이 없이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황무지는 그냥 황무지가 아닌 게, 철조망이 둘러져 있고 지뢰 매설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도라산 연계 관광을 마친 뒤에는 초청자를 따라 개인 명의로 두 곳을 더 돌아다녔다. 일단, 허 준 선생 묘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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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안에 들어와 있음을 나타내는 자동차 내비 화면 인증이다(텅 빈 지도!). 파주시는 임진강 건너편은 다 민통선 내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허 준 묘지는 아무나 곧장 갈 수 없다. 도라산 안보 관광과 마찬가지로 공인된 여행사를 통한 단체 관광으로만 갈 수 있으며, 개인 자격 방문은 민통선 내부 출입증을 갖고 있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한 사람이 일행을 얼마나 인솔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몰고 오는 차량의 대수가 늘어나면 절차가 그에 비례해서 더 까다로워진다.

민통선이 생기기 전, 그러니까 조상 대대로 그 지대에 땅을 갖고 있었거나 그 지대의 땅을 산 지주는 국가로부터 출입증을 교부받는다고 한다. 물론, 출입 가능 지역이 정해져 있으니, 그 출입증만 있다고 해서 전국의 모든 민통선 지대를 드나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여담이지만, 민통선 출입이 일반 커피라면 대성동 출입은 가히 TOP이다. 거긴 민통선뿐만 아니라 남방 한계선까지 넘은 최고로 위험한 DMZ(비무장지대) 안이고, 레알 군사 분계선이 코앞이기 때문이다.
거길 드나들려면 당일 신분증 제시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최하 두 주 이상 전에 방문 신청을 해서 신원 조회를 받아야 하며, 마을에 들어간 뒤엔 신분증을 아예 맡겨야 된다. 승용차에는 하늘색 천을 달아서 펄럭이게 하고, 유엔 사령부 소속의 군인으로부터 완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으며 이동해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3/06/08 19:34 2013/06/0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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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12 12:35 # M/D Reply Permalink

    글을 읽으면서 우리 나라의 국토의 허리가 잘려 있는 현실을 절절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불과 백년이 지나지 않은..
    그 시절에 피로 얼룩진 상처가 있었다는 현실..
    아픔이 있습니다..
    하루 빨리 저 북녘 땅에도 맘껏 드나 들수 있는 그런 때가 열려지기를 소망합니다..
    그곳에도 자유의 물결이 흘러 흘러서
    주님을 모르고 힘겹게 살아가는 불쌍한 혼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1. 사무엘 2013/06/13 00:38 # M/D Permalink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흘려진 수많은 피와 땀을 후세가 꼭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은 생각만 해도 참 가슴이 답답하지요. 그리고 안보관, 국가관이 갈수록 문란해지고 혼탁해지는 현실도 그렇고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는 데 이 기행문이 조금이라도 기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염원은 대한민국 크리스천들의 공통 기도제목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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