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광고: 나도 KTX 탈 걸

1.

요즘 철도 내지 코레일 광역전철 구간을 이용하는 분들은 차내 모니터에서 “나도 KTX 탈 걸”이라는 테마의 CF 동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두 여배우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에일리와 신 보라이다. 열차 안에서는 음성이 안 나오니 대화 내용은 전적으로 자막으로만 봐야 했는데 음성은 역시 인터넷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4시간 후에 부산에서 생방송 촬영이 있는데 에일리는 서울에서 자가용을 끌고 가지만 교통 정체에 막혀서 지각하고, 언니인 신 보라는 공항 철도+KTX를 이용해서 빠르고 편안하게 간다는 내용이다.
(여담으로, 머지않아 아예 공항 철도에까지 KTX가 그대로 들어갈 예정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은 정책은 아니라 생각된다. 서울 역까지 찍었다가 다시 부산 방면으로 내려가는 건 동선이 너무 안 좋아서.. 정말 광명 역에서 인천 공항으로 가는 철길이 뚫리긴 해야 한다.)

철도청이 코레일이라는 기업으로 바뀐 뒤부터 확실하게 바뀐 것이 무엇이냐 하면, 대외 광고가 늘었다는 점이다. “당신을 보내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전에 철밥통 철도청 시절에  철도청이 자체 CF를 내보낸 건 1984년이 유일했다고 한다. “속도 향상으로 고속화된 철도 여행은...” 무궁화호 NDC 동차가 최신형 차량으로 소개되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격세지감인지! ㅋㅋㅋ

2.

사실, 지금으로부터 10년 쯤 전, 본격적으로 철덕이 되기 전이던 2003년경의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본인은 대학 시절에 열차 여행 중이었는데 객실이던가 역 내부이던가에 철도 노조에서 만든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철도청이 기업으로 바뀌면 우리나라 철도도 영국이나 일본 꼴이 나서 서울-부산간 열차 운임이 10만원이 넘어가고 안전 관리도 개판이 되어서 철도 안프라가 완전히 망할 거라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KTX가 개통하고 철도청은 코레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국 철도는 저런 극단적인 꼴로 전락하지 않았다.
뭐든지 시장 경제에만 맡기고 민영화· 개방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저런 일도 한두 번 겪고 나면 국가 정책에 무조건 괴담 퍼뜨리면서 딴지 걸고 반대만 하는 주장은 좀 가려 가며 들을 줄 아는 안목이 생겨야 할 것 같다. 그런 쪽에 심취해 있는 분들은 반대로 비대한 정부 기관들의 비효율과 세금 낭비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한 측면이 없지 않다.

뭐, KTX는 이제 코레일의 최대 돈줄이며 특히 주말에 경부선은 굳이 명절이 아니어도 없어서 못 탈 정도로 만석이다.
그 어떤 경영자가 코레일의 사장이 되었다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서민들로부터 욕 먹는 한이 있어도 일반열차를 줄이고 KTX를 증차할 수밖에 없다. 임률 높고, 많이 태우고 빠르고 회전률 높고, 수송 원가 낮고 수요도 많고.. 도대체 주저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철도청도 경영을 아주 못한 건 아니었다.
어쩌다가 새마을호에 Looking for you 음악을 넣을 생각을 했을까?
그냥 어차피 탈 사람은 타고 안 탈 사람은 안 타고, 적자쯤이야 세금으로 메우면 된다는 식으로 철도를 아주 안일한 철밥통 사고방식으로 운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데에다 고객 감동과 중독의 씨앗을 집어넣었을까?
이런 배려 때문에 대한민국에는 중증 말기 극성 철덕이 한 명 생겨 버렸고, 코레일은 철도청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마음껏 따 먹고 있는 중이다.

3.

지난 2011년 여름에는 꽤 도발적인 철도 광고가 옥외 광고판의 형태로 걸린 적이 있었다.
바로 경부 고속도로 신탄진 IC 북쪽으로 살짝 떨어진 곳에, “KTX 탈 걸”이라는 광고판 말이다. 혹시 아시는 분 계신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한국 철도 역사상 최대의 적절한 광고 전략으로 기록될 것이다.

  • 일단 경부 고속도로가 경부 고속선과 아주 가깝게 나란히 달리는 얼마 안 되는 구간이요,
  • 이곳은 버스 전용 차선이 시작되고 주말에 그렇잖아도 상습적으로 막히기 시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 또한, 수도권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국토의 중부이기 때문에 상행과 하행에 모두 비슷한 광고 효과를 낼 수 있다.

도로는 막혀서 차들이 거북이걸음 중인데 옆에서는 KTX가 씽씽 지나가고 맞은편엔 “KTX 탈 걸”이라는 광고판이 놓여 있으면 운전자들이 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이 광고판이 있는 곳 근처를 로드뷰로 보면 이렇다.
요즘 인터넷 지도는 로드뷰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의외로 고속도로에는 유료 도로여서 그런지 로드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인터넷 상으로 사진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광고가 다른 것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3/08/11 08:28 2013/08/1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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