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로 발을 코에 대고

'봉은사 땅밟기'....는 아니고 '남극점 땅밟기'를 세계 최초로 성공한 사람은 알다시피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 일행이다. 이건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인 1911년의 일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예전에 이 사람에 대해 한번 다룬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0년쯤 전인 1994년엔 산악인 허 영호 대장이 이끄는 팀이 한국인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썰매를 안 타고 끌면서, 무려 1000km가 넘는 거리--'리'도 아니고 '킬로미터'!--를 도보만으로 이동하여 남극점을 정복한 것은 영국, 이탈리아, 일본에 이어 넷째였다고 한다. 아문센 팀은 알다시피 개가 끄는 썰매를 탄 것이기 때문에 제끼고.

물론 정확하게 같은 거리를 이동한 건 아니겠지만, 아문센은 55일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나라 팀은 44일 만에 갔다. 그리고 아문센/스콧 시절에는 탐사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미리 길을 개척하고 보급 물자 기지도 일정 간격으로 준비해 놔야 했지만, 요즘은 GPS가 발달하고 다른 장비와 물자도 좋아진 덕분인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요컨대 100년 전과는 달리, (1) 중간 보급 없이 (2) 순수 도보만으로 남극점까지 간 것이다.

그러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날짜다. 모든 탐험대들이 남극점에 도달하는 날짜는 한 치의 예외 없이 12월~1월로 맞춰져 있다. 그때가 남반구에서는 한여름이기 때문이다. 계절상으로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탐험대는 현장에서 영하 30도를 밑도는 극심한 추위 때문에 고생한다. 하물며 겨울에는 남극 중심부에 절대로 못 들어간다.

다음 글을 읽어 보자.
1994년 당시 기록은 아니고, 2004년에 남극점을 정복한 박 영석 대장에 대한 보도 자료이다. 하필 공교롭게도 남극 연구소에서 전 재규 대원이 순직(2003년 12월)한 그 기간에 탐험 중이었구나.

남극점으로 가는 동안 이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대원들끼리 대화 내용이 줄곧 “아.. 난 막걸리 한 사발과 홍어회나 좀 먹고 싶다 / 난 딸기우유 3리터 plz”였댄다.
그리고 수능 출제 위원의 감금 기간보다도 더 긴 6주 남짓한 기간 동안... 저 사람들은 세수, 빨래를 전혀 못 하고 머리도 한 번도 못 감았다고. 으악~~

그 상태로 밤엔 3인용 텐트 하나에 5명의 사람이 뽁짝뽁짝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공간을 아끼려고 “서로 엇갈려 머리를 두고” 잤다고 한다.
“서로 발을 코에 대고 얼마나 괴로웠을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북한 정치범 수용소 그림에 묘사된 것처럼 잤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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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상헌 북한 인권 정보 센터 이사장이 탈북자의 증언을 토대로 그려서 잘 알려진 바로 이 그림.)

탐사 대원 5명 전체의 한 끼 식량의 무게가 800g에 불과했다고 한다. 5를 나누고 3을 곱하면 그래도 500g 정도는 되겠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호모 사피엔스의 신체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 오늘날 무보급 남극 탐사가 가능해진 건 아무래도 현대 과학 기술이 접목된 고열량 보존 식품이 개발된 덕분일 것이다. 비록, 이건 일상적인 음식에 비해 맛은 보장을 못 하겠지만 말이다.

한편, 북한의 저 생지옥에서는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하는 죄수들에게 1인당 하루 식량 배급이 강냉이 200~300g 남짓이라고 그런다. 그러니 배급받는 것만 먹었다간 영양실조 걸리고 굶어 죽으니, 쥐도 잡아먹고 쇠똥에 파묻힌 곡식 알갱이까지 끄집어 먹는 거다. 그저 묵념.

극지 탐험 관련 글을 읽으면서도 북한 인권 생각이 날 정도로 내가 우익 성향이 강해지긴 했다.
저 사람들은 그래도 미지의 지대를 개척한다는 자부심으로 고생을 견디며, 무사히 귀환하고 나면 심신이 달련되고 명예라도 따른다. 하지만 이북 동네는 도대체 뭐냐.. 가슴아프다.

2. 비둘기 자세

'비둘기 자세'라고 하면 본인은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3기 4화 요가 교실 편의 병맛 대사를 바로 떠올리면서 낄낄대곤 했다.
“비둘기의 포즈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너 임마 그거 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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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러분 이거 아시는가?

‘비둘기 자세’란 게 있다. 남북한의 비둘기 생김새가 정녕 다르지 않을진대, 그 자세의 의미는 남북이 천양지차다.

남쪽 것은 요가의 한 동작이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 등 뒤로 팔을 넘겨 뒤쪽 발을 잡아 끌어올린다. 앞가슴을 쭉 내민 비둘기 모습과 닮았대서 붙은 이름이다. 팔과 다리 선을 가꿔주고 옆구리 군살을 빼는 효과가 있단다. 늘씬한 연예인이 이 자세를 취한 사진이 퍼져 너도나도 따라 하는 동작이 됐다.

북녘 것은 고문의 한 방법이다. 양손을 등 뒤로 돌려 벽의 고리에 묶는다. 고리 높이가 바닥에서 60㎝ 정도밖에 안 돼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된다. 먹이를 쪼며 걷는 비둘기 모습이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배 속에 든 걸 모두 토해낼 정도로 고통스럽다. 실제로 북한인권을 다룬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이 자세로 촬영했다가 몸에 마비가 왔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남북의 거리가 이만큼 멀다. 맞붙어 한반도고, 한 뿌리 한 겨렌데 이웃나라보다 더 멀고 더 새 뜬다. 한쪽은 못해서 안달이고 다른 쪽은 할까 봐 섬뜩한 비둘기 자세처럼, 말 쓰임새가 다른 건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 남쪽이 청년실업과 업무스트레스, 노후불안에 떨 때, 북쪽은 굶주림과 질병, 처형의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목숨과 바꾸지 않고는, 최소한 목숨을 걸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원초적 공포다. (중앙일보 이 훈범 국제부장)


난 비둘기의 포즈 북한 버전을, 역시 탈북자들이 그린 정치범 수용소 그림을 통해 본 적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저런 자세로 있는다고 해서 어떻게 구토까지 할 정도로 고통을 당하는지 그 역학· 생리학적 원리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굳이 상상하거나 체험하고 싶지도 않고.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토하는 장면 묘사는 절대로 안 빠진다!

<신이 보낸 사람>의 주연 배우 김 인권 씨는 저걸 체험해 봤더니 정말 작-_-살나게 괴롭고 사지 마비 증세가 오더라고 증언한 바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4/03/19 08:25 2014/03/1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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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주 2014/03/20 12:16 # M/D Reply Permalink

    최근 인상깊게 본 동영상 링크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9RRGqC0ocU

    저 생지옥을 빠져나오겠다고 목숨걸고 도망쳐 오면 빨갱이 새끼라고 몸소 고문하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자행되고 있더군요.

    남한으로 넘어오는 순간 북한 인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북한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 분들이 이런 것부터 짚어내고 수정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 사무엘 2014/03/20 13:58 # M/D Permalink

      저 생지옥을 빠져나온 탈북자들을 그 인권 천국인 우리나라가 오죽했으면 가혹한 심문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거겠습니까?
      그만큼 위장 탈북자가 하는 짓도 굉장히 해롭고 위험하니, 그런 애들을 가려내지 않을 수도 없죠.
      (쟤들이 간첩 조작을 진짜로 했는지, 했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왜 했는지 같은 건 생각 안 하고 그냥 원론적인 차원에서 하는 말입니다.)

      북한 관련 시사 문제를 살펴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겁니다.
      1. 절대악과 필요악을 제대로 구분할 줄 알아야겠다.
      2. 절대악을 놔 두고 필요악만 없애자는(단순 개선 수준이 아니라) 선전선동에 지금까지 이만치 속았으면 앞으로는 절대로 속지 말아야겠다.

      저는 10여 년 전부터 미군, 국가보안법에 이어 지금의 국정원 공작을 다~ 지켜본 사람입니다.
      앞으로 제가 이 주제로 쓰는 모든 글의 논조는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을 겁니다.

  2. 김재주 2014/03/21 18:34 # M/D Reply Permalink

    https://www.youtube.com/watch?v=rZD54KbDnzI:
    신경??민 위원이 공개한 작년 3월의 증거보전재판 녹음기록입니다. 요즘 이슈 중 하나인 간첩조작사건에 대한 증거죠.

    국내에서 활동하는 간첩을 가려내는 건 분명히 국정원이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걸 합신센터에 가둬놓은 상태에서 억압과 공포로 하는 게 필요악입니까? 그건 그냥 악입니다. 대한민국의 법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에요. 대공 용의점이 있다고 의심된다면 자체 인원을 파견하든 경찰력을 이용하든 감시하다가 영장을 받아 구속해야죠. 탈북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보통 시민에게 저렇게 했다가 걸리면 어떻게 될까요? 더군다나 저렇게 해서 진짜 간첩을 잡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죠. 정작 진짜 간첩은 풀어놓고 전국의 군부대에 '안보강연' 하게 돌아다니도록 냅둬 놓고는, 인터넷에 댓글이나 올리고 있었으니...

    북한에서 죽느니만도 못한 삶을 사느니 자유 대한민국에서 살아보겠다고 목숨걸고 국경을 넘어왔으면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잖아요?

    북한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북한 노동당 정부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사람들이라면, 탈북자들이야말로 바로 그 이북 동포이므로 논리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서 항의하고 시정요구를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있어요. 말이 안 되는 이중적 태도죠.

    1. 사무엘 2014/03/21 21:08 # M/D Permalink

      북한 주민들이 온갖 고생을 하면서 목숨 걸고 탈출한다는 원론적인 팩트와,
      당장 어떤 사람이 자기가 탈북자라고 주장하는 건 문맥이 다른 완전 별개의 얘기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법이라고 말씀하셨나요.
      누구처럼 미그 전투기라도 몰고 귀순해서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라면 모를까,
      여권도 없고 무고하다는 걸 외형상으로 입증할 게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 적성국가 사람을 선뜻 대한민국 국민으로 대우해 주는 거.. 그렇게 쉬운 일 아닙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돈이나 벌어 챙기는 여느 빈곤국가 불법체류자 정도라면 차라리 양반이지, 아예 이적행위를 할지 어떻게 압니까? 성경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예가 나오잖아요. Ye are spies; to see the nakedness of the land ye are come. (창 42:9)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이죠?

      그러니 저는 저런 사건도 진짜 부조리인지 아니면, 과거의 광우뻥 선동이나 효순· 미선 장갑차 사건과 연장선에 있는 거짓 공작일 뿐인지 확신이 안 섭니다.
      피의자에게 막말 하고 가혹행위 강요한 막장 검사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잘못된 행동이고 그런 검사는 징계해야지요. 저도 옛날에는 그런 검사 욕하고 씹고, 사법부를 다 뒤집어엎어야 된다는 식의 생각밖에 안 했습니다만, 나이가 좀 든 지금은 왜 그런 일이 생기고 걔네들이 무슨 분위기에서 무슨 고충이 있는지도 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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