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작을 할 때는 단순히 한국어로 작문할 때보다 더욱 다양한 문장부호가 쓰입니다.
한국어는 온점, 반점, 느낌표, 물음표, 따옴표 외에 딱히 쓰이는 문장부호가 없습니다.
물론 말줄임표 같은 것이 있지만 컴퓨터로 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그냥 ... 따위로 대체되는 추세이기도 하죠.

하지만 영어 정서법에는 한국어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부호가 최소한 셋 이상 존재하는데, 일단 줄표(긴 것 짧은 것 모두), 세미콜론, 그리고 콜론입니다.

단순히 콤마만 써서 항목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세미콜론이라는 상위 계층을 활용하기도 하며,
단순한 문장의 나열이 아니라 뭔가 대구 내지 인과 관계가 있음을 보이고 싶을 때는 재미없게 단순 마침표가 아닌 다른 부호를 쓴다는 것입니다.

나는 때린다; 너는 막는다.
네가 이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이다: 죽거나 항복하거나.
미래의 3차 세계대전 때 어떤 무기가 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다음 세계대전 때 무슨 무기가 등장할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다 -- 바로 새총.
그는 외쳤다, "불이야!"
스레드-안전한 코드를 짜려면 동기화를 잘 시켜야 한다.
그의 세 아들--영수, 철수, 민수--들은 모두 자라서 의사가 되었다.

문장의 어순이라든가 문장부호의 쓰임만 봐도 딱히 우리말스러운 느낌은 안 나며 영문 번역투임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줄표 같은 경우, 국문에서도 쓴다고 공식 명시는 되어 있지만, 사실상 거의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위의 예에서 영수, 철수, 민수 같은 삽입 내용은 차라리 괄호를 써서 넣고 말죠.

영어 정서법에 존재하는 문장부호들을 모두 국문에다가 도입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필요를 느끼는 것은 반점의 역할을 보충하는 세미콜론의 역할과 비슷한 부호입니다.
이는 마치 strtok 호출 중에 각 토큰에 대해서도 또 strtok로 토큰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이런 용도로 국문에는, 세벌식 최종 자판에도 존재하는 가운뎃점이라는 훌륭한 부호가 있습니다.
그런데 국문학자 중에는 가운뎃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래아와 혼동된다(비슷한 이유로 아래아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일본 정서법을 베낀 것이다, 시각적인 변별력이 떨어진다 등의 이유로 말입니다.

어쨌거나 tokenize 용도로 쓰이는 문장부호는 반점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한계는 조금만 길고 복잡한 글을 써 보면 금세 실감하게 됩니다. 가운뎃점이든, 심지어 세미콜론을 도입하든 이들의 용법이 국어 정서법에서 확고하게 원칙으로 명문화하고 정확하게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31 2010/01/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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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리로 2011/03/10 01:27 # M/D Reply Permalink

    두벌식 자판에서는 가운데점을 입력하는 키가 없어서 일상에서는 거의 안쓰고 슬래시(/)로 대신하게 되더군요. 우째 이렇게 자판을 만들었는지... 굳이 입력할 필요가 있을 때는 "ㄱ,한자키,PgDn,8"을 순서대로 눌러서 입력하긴 하는데 무척 번거롭고 어색합니다. 두벌식 자판이 한글 표준 문장 부호에 대한 고려 없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표준으로 굳어져버렸다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키보드 드라이버 차원에서 특수키와의 조합으로 키보드에 없는 문장부호들을 한번에 입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가령 ctrl+. 이나 ctrl+shift+.을 누르면 가운데점이 입력되도록 하는 방식이랄까) 이 키 조합이 사실상의 표준으로 정착된다면 지금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나은 해결책이 되겠습니다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는지라 안습입니다.

    여담인데 가운데점 문자는 입력도 상당히 불편하지만 폰트에 따라서 자폭이 천차만별이라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일례로 굴림이나 맑은 고딕에서는 U+00B7이 3분각 내지는 4분각 정도의 자폭이라 앞뒤로 스페이스를 한번씩 눌러줘야 어색하지 않은 반면 나눔고딕에서는 U+00B7이 전각이라, 굴림이나 맑은 고딕으로 편집하다가 폰트를 나눔고딕으로 바꾸면 가운데점 앞뒤의 스페이스를 모두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참사가 벌어지지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니코드에서 U+00B7과는 다른 별도의 코드 포인트를 할당받아 전각 가운데점 문자 전용으로 사용하도록 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호환성을 이유로 유니코드에 전각 스페이스 U+3000 문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1. 사무엘 2011/03/10 09:48 # M/D Permalink

      그러고 보니 컴퓨터에서는 진짜로 / 가 사실상 가운뎃점처럼 나열의 의미도 지니게 됐군요. 한국에서만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운뎃점과 말줄임표는 컴퓨터에서 바로 입력이 안 되어 그야말로 사장되어 버렸죠.
      자폭 때문에 불편하다는 점도 매우 공감합니다. 비슷한 예로 과거에 전각문자이던 “”도 있습니다.

    2. 십삼각 2013/12/12 22:38 # M/D Permalink

      일본어 자판의 경우 빗금(/ 사선, 슬래시) 자리에 가운뎃점(일본식 가운뎃점인 "나카구로(中黑)")이 들어가 있더군요(로마자 입력의 경우). 개인적으로 두벌식에도 가운뎃점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일본 방식은 한국 실정에 맞지 않을 것 같고, 그보다는 `(악상그라브) 자리에 가운뎃점이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한국어 문장 내에서 악상그라브 쓸 일이 없는 데다가, 있어봤자 작은따옴표와도 혼동되니까요. 세벌식에 있는 ※(참고표)도 들어갔다면 더 좋았겠지만, 참고표가 그렇게 흔히 쓰이는 문자도 아니고, 딱히 다른 글자를 빼면서까지 참고표를 넣어야 할 정도의 중요한 특수문자라고 보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서 가운뎃점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되네요.

      가운뎃점이 (두벌식에서) 입력하기 불편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폐단은 꽤 커 보입니다(다만 "꽤 크다"는 건 다분히 제 관점입니다). 가운뎃점을 찾아내서 쓰기가 귀찮으니 아예 다른 기호로 대체해 버리는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빗금(/)도 쓰이지만 온점(. 마침표)이나 반점(, 쉼표)을 쓰는 경우도 꽤 많이 보입니다. 특히 날짜 표시의 경우 거의 온점을 쓰는 것 같고요.(예 : 3.1절, 5.16 군사정변, 6.25 전쟁)

      이렇게 온점이나 반점을 사용할 경우 문장을 읽을 때 원래의 온점·반점과 적잖이 혼동되는 비효율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도청 이전으로 인한 행정구역 통합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홍성.예산, 안동.예천 지역이다."
      "수도권 전철은 서울,경기 지역에서 출발하여, 강원,충청 지역까지 이어진다."
      같은 경우가 있죠. 예시가 적절할 지는 모르겠네요.

      이뿐만이 아니라 말줄임표를 온점 세 개로(...) 쓰는 현상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밀하게는 말줄임표 특수문자가 따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가운뎃점을 쉽게 입력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가운뎃점 3개(···) 내지는 6개로 그나마 비슷하게라도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어렵기 때문에 그냥 쓰기 편한 온점으로 대용하는 것 같고요. (다만 이것은 영어의 말줄임표의 영향일 수도 있기 때문에 확단하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3. 사무엘 2013/12/12 23:02 # M/D Permalink

      의견 잘 봤습니다.
      1. 오, 저도 IME 테스트 명목으로 일본어 IME를 몇 년째 쓰고 지냈는데 /를 눌러 볼 생각은 지금까지 전혀 안 했네요. 진짜로 가운뎃점이 거기 있군요.

      2. 혹시 아시나 모르겠는데 아래아한글의 '표준 두벌식 #2' 글자판은 악상그라브 자리에 가운뎃점이 들어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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