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운영체제들에 GUI 셸이 없는 물건은 없고, GUI에는 그림보다도 먼저 문자를 찍는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 옛날에는 그런 출력 기능이 겨우 비트맵 글꼴밖에 지원되지 않았지만, 오늘날은 트루타입(TTF)이라고 불리는 규격의 윤곽선 글꼴이 세계를 평정한 지 오래다(오픈타입은 TTF의 superset에 해당함). 심지어 재래식 비트맵 글꼴이 필요하다 해도 일단 TTF 방식으로 저장하고서 출력한다.

게임처럼 완전 독자적인 GUI 노선을 가는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거의 모든 응용 프로그램들은 운영체제가 제공하고 운영체제에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는 글꼴만을 사용하여 글자를 출력한다. 새로운 글꼴을 받아서 설치하는 건 사용자의 몫이다. 그러나 가끔은 응용 프로그램이 직접 글꼴을 설치해서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워드 프로세서 같은 오피스 프로그램이라면 운영체제 전체에 새로운 글꼴을 번들로 제공할 수 있다. 이건 global한 글꼴 추가이다. 한편, 자기 프로그램 내부에서만 특수한 custom 글꼴을 추가해서 쓰는 건 local (private)한 글꼴 추가이다.

윤곽선 글꼴 출력 엔진은 힌팅과 캐싱 기능이 곁들여진 일종의 고성능 범용 단색 벡터 그래픽 엔진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프로그램들에 노출되지 않는 local 글꼴도 용도가 매우 다양하다. 수식이나 악보에서 쓰이는 비문자 기호를 찍는 건 물론이고, ‘입꼴 워드’처럼 자기만 사용하는 특수한 문자를 찍을 때도 전용 글꼴을 활용하면 된다.

당장 운영체제 자신도 이걸 잘 활용하고 있다. 테마가 도입되기 전에 Windows 창에 달린 사각형 모양의 최소화(_)/최대화/닫기(X) 그림은 글꼴 출력이고, Visual Studio 같은 데서 창을 도킹시키는 주사기/핀 모양의 그림도 글꼴이다. 아마 본인이 옛날에 블로그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을 것이다.

Windows 8은 부팅 시나 작업 중일 때 다섯 개의 구슬이 동그란 궤도를 그리면서 슝슝 돌아가는 애니메이션이 출력되는데, 이것도 애니메이션 GIF나 플래시 같은 기술이 아니라 글꼴 출력이다~! 구슬이 싹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하는 게 은근히 복잡하며, 이 애니메이션은 무려 100수십 프레임에 달한다. 유니코드 PUA 영역에다 미리 계산된 각 프레임의 모양을 그려 넣은 뒤, 그 글자를 순서대로 찍은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보급이 아닌 싸제 글꼴의 등록 및 해제를 위해 Windows는 AddFontResource와 RemoveFontResource라는 간단한 함수를 제공한다. 인자로는 등록하거나 해제하고 싶은 글꼴 파일의 경로만 달랑 주면 된다. '일단은' 말이다. 그러다 나중에는--Windows 9x 라인 말고 2000에서부터-- 두 종류의 함수가 더 추가되었다.

첫째, 바로 저 두 함수의 이름 끝에다 Ex가 붙은 버전이다. Ex 버전은 인자를 두 개 더 받는데, 하나는 아직 reserved 상태니 별 의미가 없고, 다른 하나는 사소한 비트 플래그들이다. 등록하는 이 글꼴을 시스템 전체가 아니라 우리 프로세스 내부에서만 사용하게 하는 FR_PRIVATE 옵션, 그리고 글꼴의 접근 가능 여부를 떠나서 일단 이게 EnumFontFamilies(Ex)에서 집계가 되지 않게 하는 FR_NOT_ENUM 옵션이다. 즉, 이 글꼴의 독특한 이름을 아는 프로그램만 이 글꼴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글꼴을 파일 이름이 아니라 아예 메모리 상의 데이터로 받는 AddFontMemResourceEx도 추가되었다. 이 함수로 추가되는 글꼴은 파일로 실체가 존재하지도 않고 특정 프로세스의 주소 공간에 매여 있으므로 극도로 private하며, FR_PRIVATE|FR_NOT_ENUM 속성이 언제나 선택의 여지 없이 붙는다.

요컨대 글꼴을 좀 더 가볍게 private 형태로 추가하는 기능은 Windows 2000에 와서야 새로 도입된 셈이다. 여담이지만, 이것 말고도 Windows 2000은 9x/NT4 시절에 비해 프로그램의 국제화 수준이 크게 강화된 첫 버전인지라 다국어 IME와 complex script를 포함해 글꼴을 저수준에서 조작하는 API들도 크게 추가되었다.
트루타입 글꼴의 테이블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뽑아 내는 GetFontData라든가, 글꼴이 지원하는 문자 집합을 유니코드 번호로 얻어 오는 GetFontUnicodeRanges도 이때의 산물임.

뭐 그건 그렇고 다시 글꼴 등록 얘기로 돌아오자면..
local/private 말고 전통적인 global한 글꼴 추가도 여전히 필요한 절차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사실 함수 호출만 한다고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절차가 생각보다 굉장히 지저분하며 문서화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

1. global 글꼴은 Windows\Fonts 디렉터리에 있어야 한다. 결국 파일을 복사해 넣어야 하는데, 이 디렉터리에 read가 아닌 write를 하려면 관리자 권한이 필요하다.

2. Fonts 디렉터리에 복사된 파일을 상대로 AddFontResource(Ex) 함수를 호출한다.

3. 이 글꼴이 다음 부팅 때에도 제대로 인식되게 하려면, 글꼴 리스트를 레지스트리에다가도 등록해 줘야 한다. 위치는 다음과 같다.
HKEY_LOCAL_MACHINE\SOFTWARE\Microsoft\Windows NT\CurrentVersion\Fonts
과거 9x 시절에는 Windows NT 대신 그냥 Windows이고. 저 레지스트리도 read가 아닌 write를 하려면 관리자 권한이 필요하다.


레지스트리에 등록하는 형식은 대충 보면 짐작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 뻔한 패턴의 작업을 자동으로 대행해 주는 함수가 없다는 것이다. 등록하고자 하는 TTF 파일을 직접 파싱해서 name 테이블에 있는 이름을 얻어 와야 하나? ActiveX 컨트롤을 등록해 주는 regsvr32 유틸리티처럼 글꼴을 명령 프롬프트에서 바로 설치하거나 제거하는 유틸리티도 운영체제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옛날에는 트루타입 글꼴을 설치하려면 CreateScalableFontResource 같은 이상한 함수도 호출해서 ttf에 대응하는 *.fot 파일이라는 걸 만들어야 했던 모양이다. 완전 불편하기 그지없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듯. 20년 전 엄청 옛날의 Windows 3.1 시절에는 ttf/fot 파일 쌍이 필요했지만 95 이후로는 그런 건 없다.

반대로 이 글꼴을 제거하려면 먼저 RemoveFontResource(Ex)를 호출해 주고, 이게 성공하면 레지스트리 제거와 파일 제거를 수행하면 된다.
그런데 Windows는 파일 자체를 가상 메모리 주소 공간에다 직통으로 대응해서 쓰는(MMF) 걸 좋아하는 운영체제인지라, 시스템 공용 파일을 지우기가 더럽게 까다로운 운영체제다. 글꼴도 예외가 아니어서 파일 삭제는 access deny 에러가 뜨면서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는 MoveFileEx(file, NULL, MOVEFILE_DELAY_UNTIL_REBOOT)을 줘서 다음 재부팅 때라도 파일이 삭제되게 플래그를 주면 될 것이다.

local과는 달리 global 글꼴 등록과 삭제는 이렇게 번거로운데, 게다가 관리자 권한까지 필요하니 더욱 번거롭다.
관리자 권한은 한 프로세스가 필요한 때만 잠시 사용자의 동의 하에 취득했다가 반납하는 게 없다. 애초에 자기 프로그램을 더 높은 권한으로 재실행해야 한다.
잠시 다음 상황을 생각해 보자.

  •  어떤 일을 하는 동안에도 GUI는 매끄럽게 반응하고, 작업이 취소 가능하거나 진행 상황 같은 걸 별도로 표시해야 하는 경우: 작업 부분을 별도의 스레드로 떼어 내야 한다.
  • 다른 프로세스를 훅킹해서 정보를 얻어 오거나 실행을 조작해야 하는 경우: 훅 프로시저는 반드시 별도의 DLL로 만들어야 한다. DLL은 32비트와 64비트를 모두 신경 써서 만들어야 하니 더욱 번거롭다.

그리고,

  • 평소에는 일반 모드로 실행되지만, 잠시 관리자 권한을 얻어 와서 민감한 디렉터리나 레지스트리의 내용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 그 부분만 별도의 EXE(프로세스)로 만들어서 실행해야 한다. 물론 나 자신을 특수한 인자를 주고 재실행하는 것도 괜찮다.

참고로 권한이 낮은 프로그램은 권한이 높은 프로그램에다 메시지를 못 보낸다. 그러니 프로그램 간의 통신 메커니즘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_=;;

어지간하면 골치아플 일 없이 단일 모듈, 단일 스레드만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 이렇게 요약되었다.
프로세스, 스레드, DLL이 시나리오별로 다 등장했다. 글꼴 설치는 '프로세스' 분리가 필요한 작업인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05/26 08:23 2014/05/26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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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경 2014/11/20 13:28 # M/D Reply Permalink

    용묵아, 오랜만이구나..
    폰트 때문에 자료를 찾다가 왔다.

    내 기계는 맥이고 확장 폰트(한컴, 나눔)를 깔아도 보이질 않는구나.
    브라우즈는 구글크롬(맥용), advanced setting에서 사용자 폰트 설정으로 한컴,나눔으로 변경... 등으로 했고.
    요기에 보면, 구결 글자인데...
    http://www.korean.go.kr/nkview/kyear/2004/2004_10.html
    예를 들면, '점토 석독 구결에서 구결자 ‘??’에 대응되는...' 에서 ??로 표시된 부분말이다.


    윈도우즈 익스플로러에서는 잘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맥용 확장폰트 안에 등록되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방법이 없겠니? ㅎㅎ

    1. 사무엘 2014/11/19 09:22 # M/D Permalink

      안녕하세요~ (어, 선배님이세요~!?)
      일단 알려 주신 URL은 접속해서도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에러 페이지가 떠서 제 경험만을 바탕으로 추측을 말씀드리자면

      구결 글자는 유니코드에 정식으로 영역이 등록된 적이 없습니다. 사용자 정의 영역에 있거든요.
      이 구결은 과거에 새굴림/새바탕 같은 PUA 영역 편법 옛한글 글꼴에 같이 들어있었는데, 그게 후대의 글꼴에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제가 알지 못합니다.
      또한, 한글 Windows는 그런 PUA 영역 글자를 호환성 차원에서 자동으로 새굴림 같은 글꼴로 fallback해서 출력하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Mac OS에 그런 기능이 있으리라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요컨대 1. 글꼴과, 2. fallback 글꼴 처리 기능의 차이를 의심해 보면 될 듯합니다.
      답변 되셨으면 합니다~!

  2. 은경 2014/11/20 13:35 # M/D Reply Permalink

    음, 그렇네.. 구결이 유니코드 사용자 정의 영역이고, 이 글꼴을 한양PUA가 갖고 있었고.. 이제 한컴에서 함초롬이란 글꼴로 지원을 하고 어쩌고... 그런데, 암튼, 이미 그걸 설치했는데도 안된다는 거지... ㅠㅜ
    좀 더 찾아봐야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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