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편에서는 지난 상편보다 좀 더 실무(?)스러운 세부 기능과 안정성 위주의 얘기가 나올 것이다.
5. 글자판 전환 단축글쇠의 지능화
PC용 문자 입력 프로그램에서는 키보드 연타를 좀 더 똑똑하게 인식하는 기능이 확실히 있긴 해야 하는 것 같다.
지난 7.1 버전에서는 bksp를 연타할 경우, 최초에 선택되었던 낱자/글자 삭제 단위를 그 다음 글자의 조합 상태와 무관하게 계속 적용하는 옵션을 추가했다. 이런 기능을 구현하려면 아무래도 예전 상태를 기억하는 변수가 있어야 하고 모든 key 동작을 감시하는 오버헤드가 불가피하지만, 그 오버헤드 이상으로 그건 사실 편리하고 필요한 기능이긴 했다.
bksp에 이어 이번 새 버전에서는 입력 항목(=글자판) 전환 단축글쇠에도 연타를 인식하는 로직이 추가되었다.
입력 항목 전환 수식은 10년 전의 3.0 이래로 지금 글자판의 번호를 나타내는 변수 A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연타 카운트를 나타내는 B, 전체 입력 항목 개수를 나타내는 N, 그리고 우리 직전에 사용하던 입력 항목 번호를 나타내는 C라는 여러 변수들이 추가된다.
여기서 연타라 함은 계속 누르고 있거나, 아니면 modifier에서 손을 떼지 않고 main key만 눌렀다 뗐기를 반복하는 걸 말한다. Shift+Space라면 shift는 꾹 누르고 있는 채로 space만 반복해서 누르는 것이다.
그렇다. Windows 8과 맥 OS에서는 이미 익숙한 관행일 것이다. 전자의 경우 Win 키를 누른 채로 space를 눌러서 IME를 고를 수 있으며, 맥의 경우 역시 Cmd+space를 1회만 누르면 직전에 사용하던 입력기와 내 것만 toggle되고, space를 여러 번 누르면 평소에 안 쓰던 다른 입력기를 고를 수 있다. 이 동작이 이제 <날개셋> 한글 입력기로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B>0||C==A ? (A+1)%N : C
이런 수식을 배당하는 경우, 이 key가 연타 상태이거나(B>0) 글자판 전환을 처음 하는 상태라면 현재 존재하는 모든 입력 항목을 돌아가며 순회한다. 현재 입력기의 바로 다음 입력기(A+1)로 넘어가되, 이 값이 N과 같아지는 경우 도로 0으로 되돌리는 것이다(%N).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바로 직전에 사용하던 입력 항목 번호를 나타내는 C로 돌아간다.
세벌식과 쿼티, 두벌식과 드보락을 한데 배당해 놓고 있었는데 세벌식/쿼티이던 것을 세벌식/드보락으로 바꾸고 싶은 경우, 세벌식 상태에서 Shift를 누른 상태에서 Space를 몇 번 눌러서 드보락으로 이동시킨다. 그 다음부터 Shift+Space를 1회만 누르면 세벌식/쿼티가 아니라 세벌식/드보락이 된다. 마찬가지로 두벌식 전환을 하고 싶은 경우, 영문 자판 상태에서 두벌식으로 돌아가면 그 뒤부터는 두벌식/드보락 toggle이 된다.
이로써 오로지 0과 1 사이만 왕복하고 더 다양한 입력 항목을 사용하려면 별도의 단축글쇠를 추가하거나 불편하게 마우스를 동원해야 했던 번거로움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6-1. 외부 모듈: 특정 프로그램에서 첫 타가 조합이 끊어지는 문제
이건 굉장히 오래 전에 작업이 완료된 아이템인데, 블로그 옛날 글을 읽어 보니 언급을 한 번도 안 한 것 같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좀 공지를 하도록 하겠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외부 모듈은 특정 프로그램에서 한글 입력을 곧바로 시작했을 때, 첫 타의 조합이 끊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MS Office의 엑셀. 얘만 좀 아래의 한글 IME에다가 특이한 이벤트를 날리는 게 있어서 '나라'라고 입력을 시작하면 'ㄴㅏ라'가 되곤 했다.
이 문제를 당장 피해 가는 건 물론 가능했다. 그러나 그 경우, 다른 프로그램에서 조합이 종료되어야 할 때 종료가 되지 않는 오동작이 발생하니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고육지책으로 외부 모듈은 자신이 동작하는 프로그램 EXE의 이름을 살펴서 엑셀 같은 '요주의 프로그램'이면 문제 회피 로직을 쓰고,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그 로직을 쓰지 않는... 궁극의 지저분한 꼼수를 굉장히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그런데 그렇게만 하니까 첫 타가 끊어지는 문제가 Paint .NET에서도 발생하고, 다른 듣보잡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보고되면서 상황이 더욱 나빠져 갔다.
일단 난 응용 프로그램이 한글 IME를 도대체 어떻게 조작해야 첫 타를 끊어지게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저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지를 이해를 못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7.4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던 부분을 없애고 오랜 연구 끝에, 문제를 일단은 이름 판별이라는 꼼수 없이 완벽하게 해결했다. 이런 미세한 동작 방식 같은 건 제대로 문서화도 돼 있지 않으니 정말 프로그래머가 경험을 알아서 축적하는 수밖에 답이 없다.
참고로 첫 타의 조합이 끊어지는 문제는, 첫 타가 아예 무시되고 씹히는 문제하고는 성격이 다르다. 후자 역시 다른 상황에서 예전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 외부 모듈의 버그로 종종 보고되곤 했다. ㅎㅎ
6-2. 외부 모듈: Windows 7의 명령 프롬프트에서 한글이 덧나는 문제
Windows 7에는 한글 IME의 세벌식 지원과 관련하여 이전의 XP/Vista에 없었고, 후대의 8에도 없는 전무후무한 이상한 문제가 하나 있다. 명령 프롬프트에서 한글을 입력하다가 space, 마침표, 숫자 등 비한글 문자를 입력하여 조합을 중단할 경우, 조합 중이던 한글이 덧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MS IME, 그리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동일하게, 그것도 오로지 윈도 7에서만 발생하기 때문에 이것은 IME 차원에서는 해결 불가능한 운영체제의 버그라고 간주되어 왔다.
단, MS IME로 두벌식을 쓸 때는 문제가 없는데, 두벌식의 경우 비한글 문자는 IME가 글쇠를 가로채어 직접 처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랬는데.. 이번 7.4 버전으로 우연히 콘솔에서 한글을 입력해 봤는데.. 덧나는 현상이 없어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 윈도 7에서 세벌식으로 덧나는 현상 없이 한글을 입력하는 걸 난생 처음 본다. 저게 가능하구나!
구버전(= 현재 공식 최신 버전)인 7.11을 돌려 보니 문제가 발생하는데, 7.4를 돌리니 문제가 사라지는 게 확실하다.
도대체 무슨 변화가 생긴 건지? 저 6번하고는 영역이 다른 문제였을 텐데. 기대도 안 했던 버그가 별다른 작업 없이 저절로 해결돼 있으니 기분은 좋다만, 한편으로 좀 난감하네.
7. 타자연습
자, 입력기가 이렇게 완전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엎어진 동안, 타자연습도 변화가 하나도 없으면 좀 섭섭할 것이다.
입력기와 API 호환성이 다 날아갔으니 7.4 버전에 맞춰 다시 빌드되어야 한 건 두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외형과 관련된 사소한 개선 사항이 좀 있었다.
프로그램의 16*16 소형 아이콘이 그 크기에 맞는 전용 아이콘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32*32 아이콘을 축소시킨 우중충한 형태로 지금까지 나오고 있었는데, 당장 그걸 개선했다. 개인적으로는 타자연습도 지금의 편집기나 변환기처럼 <날개셋> 한글 입력기 7.0 스타일의 동그란 네모 아이콘으로 바꾸고 싶으나, 그 작업까지 할 여유는 없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고해상도 DPI 모드에서 실행해서 UI 텍스트가 잘린다거나 하는 것을 모두 수정했다. 그 작업의 결과로 페이지의 우측 하단에 있던 “연습 시작” 버튼들이 예전보다 더욱 길쭉해지고 보기 좋아졌다. 이 역시 진작부터 개선할 생각을 왜 안 했나 모르겠다.
다음으로 장문 연습을 시작할 때 "연습을 시작합니다. 준비하세요"라고 메시지 박스가 번거롭게 뜨던 걸 없애고, 단문 연습과 마찬가지로 첫 타를 누름과 동시에 시간 측정과 경쟁 모드가 시작되게 했다. 인터페이스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연습글을 상당수 교체했다. 세월을 안 타는 고전을 제외하고는 너무 구태의연하고 지금과 시기가 안 맞는 글은 삭제했다. 예를 들어 한글날이 공휴일에 국경일까지 된 마당에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촉구하는 글을 계속 남겨 둘 필요는 없으며, 월드컵 관련 글도 너무 오래 됐다고 판단하여 뺐다.
그 대신 다른 글을 넣고, 각종 인터넷 유행어 병맛 개그들을 넣었으니 타자 연습할 때 즐겁게 이용해 주시기 바란다. ^^
사실 게임도 업그레이드 시스템을 없애고 시간이 나면 시스템을 다 갈아엎고 싶었으나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었다. 3.31에서 3.4로 번호를 작업량에 비해 좀 크게 올린 것은 거의 1년 반 만의 버전업이어서 시간 간격이 워낙 길었으며, 또 7.4와 끝자리를 맞춘다는 의미를 더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또 2014년이기도 하고.
8-1. 사소한 것: 최종 변환 규칙 UI
다른 카테고리에 분류되기가 뭣한 잡다한 얘기들은 다 여기에다가 집어넣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최종 변환 규칙이라는 게 추가된 무려 2.4 버전 이래로 지금까지..
입력값 from과 to를 접수하는 방식이 좀 괴이했다. 한 입력란에다가 from 문자와 to 문자를 붙여서 입력하고 '추가'를 눌러야 했으나.. 이번 7.4에서는 드디어 from과 to를 별도의 입력란에다 따로 입력하는 방식으로 UI가 직관적으로 개선되었다. 아래 그림을 참고하시라.
8-2. 떡밥 - JSON
이건 새로운 기능 얘기는 아니고 다른 잡설임.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입력 설정 파일을 바이너리 고유 포맷뿐만 아니라 텍스트 에디터로 편집 가능한 XML 방식으로 저장하는 것도 꽤 오래 전부터 지원해 왔다.
그런데 텍스트 기반의 데이터 직렬화(serialize) 파일 포맷으로 XML뿐만 아니라 JSON이라는 물건도 있었구나. 얘도 보아하니 찰져 보이고 XML의 대체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XML처럼 다단계 계층을 당연히 표현할 수 있으며, key-value 방식의 자료구조뿐만 아니라 배열을 통해 테이블 같은 단순 데이터 dump도 모두 손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 XML은 일단 후자에는 최적화돼 있지 않으니 말이다.
태그가 아니라 프로그래밍 언어의 데이터 초기화 코드에서 모티브를 땄다는 점도 참신해 보인다.
8-3. 떡밥 - 글꼴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1.0 시절부터 내부 입력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자체적인 에디트 컨트롤을 갖추고 있었으며, 구현체들 중 편집기는 이 컨트롤을 기반으로 동작하는 텍스트 에디터이다. 그리고 자체 에디트 컨트롤은 16*16 비트맵 글꼴이라는 굉장히 원시적이고 똘끼 충만한 글꼴 체계를 고집하고 있다.
그것 자체는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고 포기할 수 없는 특성이라고 치자. 운영체제에 의존하지 않고, TTF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작은 크기의 조합형 글꼴로 옛한글과 미완성 한글을 출력하는 것을 애초에 목표로 삼았으니 말이다. 기계식 타자기를 컴퓨터에다 옮겨 놓은 듯한 날씬함을 개발 철학 차원에서 추구한 셈이다.
다만, 이거 하나는 대세를 무시할 수 없는 듯하다. 바로 화면 해상도. 옛날에는 16*16이라는 글자 크기가 운영체제 UI의 기본 글꼴보다 컸지만, 125% 내지 150% 배율을 쓰는 초고해상도 환경에서는 이것은 작은 크기이다.
같은 폰트라도 16픽셀을 18이나 20 정도로 확대해 주는 기능은 있어야 할 것 같다.
기능 자체는 화면에다 글자를 찍는 부분과 마우스 포인터 위치 인식 기능에다 간단한 비례식을 추가하는 정도로 구현할 수 있을 듯한데..
문제는 비트맵 그래픽을 출력하는 부분이다. 정수배 확대가 아니니 그래픽의 품질을 위해 안티앨리어싱은 필수라고 봐야 하는데, 재래식 GDI로는(StretchBlt 함수) 그걸 넣을 수 없다. 당장 <날개셋> 편집기에서 화면 인쇄 명령을 내려서 배율을 바꿔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음.
그러니 이것도 최소한 GDI+나 요즘 대세인 Direct2D 같은 API로 작성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까지 신경 쓰는 건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핵심 기능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개인적인 작업 부담이 너무 심하다. 쉽지 않은 문제다.;;
9. 마치며
(1) 후원금을 보내 주신 분들의 이름은 그 다음 버전의 프로그램 도움말의 '감사의 글' 페이지에 꼬박꼬박 등재되고 있다.
후원자가 아주 많아지면 액수 순으로, 혹은 최근 순으로 잘라서 수록하는 게 불가피하겠지만, 내 프로그램은 벌써 그런 경지에 오른 것도 전혀 아니고 아직까지는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이 명단에 올라 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14년째 개발자가 한글 오덕질 근성을 주체하지 못하여 자기 인생의 상당 부분을 투자하며 개발되어 왔다. 특히 이번 7.4는 개발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글 입력 엔진에 굉장히 많은 기능 추가와 수정이 이뤄졌다. 프로그램의 개발 취지를 이해하고 후원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2) 단군의 후손들이 어째 라틴 알파벳도 아니고, 한자 같은 그림문자도 아니고, 한글 같은 위상의 문자를 쓰고 있는지.. IME가 필요하긴 하지만 NLP 기술 없이 글자 구조 자체와 관련된 엔지니어링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문자를 쓰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신통방통한 일이다. 거기에 세벌식 글자판까지 생각하면.. 오덕질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본인은 맹목적인 공 병우 빠돌이가 아니며, 맹목적인 세벌뽕도 아니다. 더 나은 한글 기계화 패러다임이 있다면 정말 열린 마음으로 수용할 의향이 있다. 어떤 한글 입력 방식이든 동등한 여건 하에서 구현되고 테스트되어야 한다. 솔직히 <날개셋> 한글 입력기야말로 바로 종류를 불문하고 한글 입력 기술의 공평한 통합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세벌식뿐만 아니라 두벌식 관련 고급 기능도 많이 들어있다!)
그런데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살펴봐도 현실적으로 정말 공 병우 세벌식을 능가하는 한글 기계화 패러다임은 등장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딱히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정도 성능에 그 정도 범용성을 갖춘 최강 가성비를 자랑하는 입력 방식 말이다.
오히려 모바일 환경으로 가면서 굳이 그렇게 빨라야 할 필요가 없으니 의미가 퇴색했을 뿐이지, 동일 환경에서 공 병우 세벌식이 다른 패러다임에 의해 추월당한(beaten) 적은 내가 보기에 없다. 내가 식견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으니 이 명제에 대한 반박은 언제든 얼마든지 환영한다.
본인은 이런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고유문자를 컴퓨터에서 완전 변태(?) 수준으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적어도 Windows라는 한 플랫폼에서만은 마스터를 했으니 말이다. 프로그래머 만세다. 언젠가 내 프로그램의 내부 구조와 설계 이념을 강연이나 저술을 통해 지금보다 더 널리 알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