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부에 있었던 옛 철도들

서울 중에서 1970년대 이후부터 육성되기 시작한 강남 일대는 바둑판 모양의 반듯한 도시 디자인에 도로 폭이 무진장 넓고 지하철 역시 엄청나게 많이 다닌다(2, 3, 7, 9, 분당, 신분당!). 하지만 일반열차가 다니는 철도는 완전히 불모지이다. 그나마 고속철 수서 역이 개통하고 나면 완전 동남쪽 끝자락 정도나 장거리 간선 철도의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반면 강북, 특히 서부 지역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포함한 먼 옛날부터 계속 인서울이었다.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기 전부터 형성된 도시이기 때문에 여기는 도로 폭이 강남만치 여유가 있지는 않으며, 꼬불꼬불한 선형에 오거리 같은 교차로도 있고 철도도 진작부터 이것저것 많이 건설되었다. 1899년에 경인선보다 몇 달 먼저 개통했던 노면 전차 말고도 이런 예가 몇 가지 더 있었다.

물론 그 철도들은 오늘날은 남아 있지 못하고 다 폐선되고 없어졌다. 주된 이유는 자동차 통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서울 노면 전차는 1899년에 경인선보다도 몇 달 더 일찍 개통해서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다 겪은 유서 깊은 궤도 교통수단이지만, 서울 지하철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폐선되었다. 그리고 21세기가 돼서야 제일 최근에 없어진 건 용산선 지상 구간이 되겠다. 뭐, 엄밀히는 없어진 건 아니고 그 선형 그대로 지하로 들어가서 경의선과 공항 철도의 복층 공용 구간이 된 것이지만.

그것 말고 서울에, 특히 마포 일대에 있었던 철도는 다음과 같다. (출처: 다음 철도 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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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인리선

그나마 이 바닥에서 제법 인지도가 있는 철도이다. 경의선의 지선인 용산선에서 또 분기하는 지선으로, 지금의 홍대입구 역 인근과 남쪽의 서울 화력 발전소(구 당인리 발전소)를 연결하였다. 발전소의 완공보다 살짝 이른 1929년에 개통하여 발전소가 사용하는 석탄 연료를 수송해 왔으며, 엄청난 옛날 리즈 시절에는 부분적으로 여객 수송도 했는가 보다. 그러니 '방송소앞' 같은 역까지 있었을 터. 발전소를 연결하는 철도라는 점에서는 오늘날 장항선의 지선인 서천화력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철도는 발전소가 석탄 연료를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존재의 의미가 없어졌으며, 가성비가 안 맞게 되자 1982년 6월 10일에 폐선됐다. 지금 '서울 마포구 어울마당로'가 옛 당인리선의 선형을 나타낸다. 홍대앞 걷고 싶은 거리, 예술의 거리 일대 말이다. 건물들이 어설프게 곡선 선형으로 좁게 다닥다닥 붙었고 길쭉한 주차 공간도 있는 거기 말이다.
'동'이 2차원 평면 공간을 나타낸다면 도로명 주소 체계에서 도로명은 1차원 선형을 한꺼번에 나타낼 수 있어서 좋다.

오늘날은 당인리선뿐만이 아니라 당인리 발전소 자체조차도 지하화하네 이전하네 하면서 존폐가 불투명해져 있는 듯하다.
허나 옛날엔 한강과 인접한 당산, 이촌 일대만 해도 오늘날로 치면 마곡, 세곡, 내곡에 준하는 완전 서울 외곽이었다. 조선 시대엔 근처에 아예 사형장이 있을 정도였는데(새남터, 절두산 순교 성지!) 하물며 비슷한 위치에 발전소가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본인은 '당인리선'이라는 단어를 영화 <튜브>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물론 고증과 개연성 따위는 완전히 안드로메다로 보낸 설정 속에서 등장한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당인리선은 그 당시로서도 무려 20년 가까이 전에 이미 폐선되고 없구만, 지하철이 그 선로를 타고 질주해서 발전소와 충돌하여 대형 참사를 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2. 경성순환선

경성/경룡/외곽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이 노선은 철도 노선이라기보다는 열차 운행 계통의 이름이다. 당인리선과 비슷한 1929년에 개통하여 잘 영업하다가 1944년에 폐선되었는데, 폐선 이유는 수요 감소나 자동차 통행 같은 건 아니다. 연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전쟁 물자 공출로 인한 폐선이다.

이 열차는 경의선 서울, 신촌을 경유했다가 신촌-연희에서 경의선과 용산선을 연결하는 짤막한 신선 구간으로 들어간 뒤, 용산선 서강, 공덕리를 경유하여 용산으로 간다. 순환이라고는 하지만 용산에는 삼각선이 없는 관계로 서울로 고리를 완전히 완성하지는 못했다. 경성의 야마노테선 같은 상징성을 부여하기에는 노선 길이가 매우 심하게 아담하긴 하다. (서울-용산 9km 남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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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순환선의 신선이라 할 수 있는 경의선-용산선 연결 구간은 오늘날 서울 서대문구의 신촌로10길과 신촌로11길에 대응한다! 창서 초등학교 서쪽의 그 길 말이다. 물론 당인리선보다는 훨씬 더 일찌 폐역했기 때문에 흔적을 찾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시가지가 대놓고 구부정하게 철길 부지를 따라 형성되었다는 티가 난다.

요약하자면 당인리선은 용산선의 남쪽으로 뻗고, 경성순환선의 연결선은 경의선 방면이니까 용산선의 북쪽으로 뻗는다.
용산선은 원래 경의선의 본선 구간이었는데 1920년대 초에 서울-신촌 신선이 생기면서 여기가 경의선 본선으로 바뀌고 용산선은 잉여로 전락했다. 그러니 이미 만들어 놓은 용산선을 활용하자는 차원에서 당인리선과 경성순환선이 생겼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나중에는 경선순환선은 일제 말기에 진작에 없어졌고, 당인리선도 없어졌다 보니 용산선도 통째로 지하로 들어가 없어졌고 말이다.

재미있지 않으신지? 이런 게 바로 강남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서울 철도 발달사이다.
폐선 덕후라면 이런 용산선과 지선들뿐만 아니라 경의선 자체에 남아 있는 옛 서소문, 아현리 역의 흔적에도 집착할 것이다.
오늘날 남북이 통일되고 서울에서 중국· 러시아로 가는 철도의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기존 경의선의 시내 구간을 2복선 이상으로 확장하는 건 진작에 물 건너 가 버렸으니.. 아예 서울을 우회하여 멀찌감치 외곽에서 경부선과 경의선을 연결하는 철도가 생겨야 하지 않나 싶다. 가령, 소사-원시선을 남북으로 길게 늘어뜨려서 말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오래 된 도시는 도로의 폭이나 교차로 같은 것뿐만이 아니라 길거리 위로 전봇대와 전선이 치렁치렁 달려 있는지, 아니면 전부 지중화되어 있는지를 봐도 구도심인지 신도시인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이것은 분당, 일산이 미관이 아주 깔끔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5/01/14 08:30 2015/01/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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