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신앙관, 세계관

1. 희망과 절망

마귀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 너는 충분히 선하고 의롭기 때문에 굳이 예수 믿을 필요 없고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근자감을 불어넣거나 (희망)
  • 반대로 너는 너무 악한 인간쓰레기이기 때문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까스라이팅을 한다. (절망)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이와 다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비참한 죄인이란 것까지만 절망이고, 그 뒤에 예수님 보혈 의지해서 그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복음이 희망이다!

예수님이 선한 도덕 선생이라느니 훌륭한 사상가, 언행의 모범 본보기 등등등.. 이런 건 구원받은 사람에게나 필요한 면모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예수님이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자부터 돼야 한다. 무조건 반드시~

2. 정당한 불가지론과 나쁜 불가지론

(1) 예수 믿는 신앙생활의 관점에서 이런 건 정말 알 수 없는 불가지론이고 불확실한 게 맞다.

  • 예수님은 언제 다시 재림할까? 휴거는 언제쯤 일어날까?
  • 난 과연 살아서 주님 다시 볼까? 난 언제 죽게 될까?
  •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까?
  • 지금 갑자기 무슨 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앞날 창창한 사랑하는 가족 친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거.. 여기에 도대체 무슨 주님 뜻이 있을까?

애초에 증명돼 있지 않는 걸 지지하는 것이니 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거다.
기독교가 뻘짓 동원해서 미래 앞날 일을 예측하려 하는 수작을 왜 그렇게도 금지하고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시라. (점, 운세.. 단순히 수학 과학 방법론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거 말고)

(2) 그러나 이런 건 불가지론의 영역이 전혀 절대 결단코 아니다.

  • 신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가?
  • 나 구원받은 거 맞나? 지금 죽어도 당장 하늘나라 가는 거 확실하나?
  • 이 정도면 대환란 겪지 않고 바로 휴거될 수 있을까?
  • 지금 우리에게 자필원본과 동급으로 온전히 보존된 성경 말씀이 존재하는가? 신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가?
이걸 확신하고 굳게 믿는 건 무슨 교만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안 믿는 게 잘못된 불신이다!

(2)에서 말하는 성경, 구원이 확실하게 보장돼 있기 때문에 (1)에 대해서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거다. (2)의 확실함이 (1)의 불확실함에 대한 원동력이다!! 그래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고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다.
구원 하나 제대로 못 받아서 "글쎄, 죽어 봐야 알겠지"인 주제에 (1)을 버티라고? 내가 보기엔 그건 그냥 종교적인 기만이고 야바위질이다. 열정페이처럼 신앙페이 착취이다.

내가 비록 지식 면에서 신학교 졸업생 급으로 히브리어 헬라어를 통달했거나 성경 지리, 고고학 등을 다 줄줄 꿰는 게 아니고, 영성 면에서 맨날 길거리에서 복음 전하고 말 끝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찬송시를 쓰는 것도 아닌 일개 쪼랩 예수쟁이긴 하다.
그러나.. 그래도 성경 전반에 담긴 법리, 집필 관점이라든가 신앙생활 원리 쪽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 변증은 나름 강하다고 자신한다.

3. YOLO

YOLO라고..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인데 후회 없이 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즐기며 짧고 굵게 자유롭게 살아~!! 이런 말이 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메시지가 될 수도 있고, 무슨 히피 같은 허랑방탕을 조장하는 불건전한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글쎄, 성경은 히 9:27을 보아하니 live once보다는 die once를 더 강조하는 것 같다. YODO인 건가. ㄲㄲㄲㄲㄲ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환생이나 윤회(∞), 소멸(0)하지는 않는다는 맥락에서 die once인 거다(1). 자유롭게 사는 건 좋지만 죄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한다.

수 년 전엔 구내염약 알보칠에서 You only Pain once라는 약 빤 CF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YOPO ㄷㄷㄷㄷ
요들쏭 부르듯이 요뽀요뽀 이러면서 진짜 강렬하고 병맛 넘쳤다.
알보칠 바를 때 겁나게 아프다는 거는 부인하지 않는다. ㅋㅋㅋㅋ "그래도 아픈 건 잠깐일 뿐이야~~~ 고통을 짧고 굵게 끝내고 구내염이 빨랑 낫는 게 중요하지?"

그런 논리로 롬 8:18이나 베드로전서 내용을 담으면 You only Suffer once 요쏘~~~도 가능할 것 같다. ㄲㄲㄲㄲㄲ
그리고 머신러닝 업계에서는 이미지에서 각종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해서 추출하는 인공신경망 중에 YOLO...;;;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이 출시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You only Look once이다.

4. 세계관

예수 믿고 교회 댕기기는 하는데 신앙 수준이 너무 단편적인 사람이나 교회 말이다.
그들은 예수 믿는 기독교 국가들이 잘 살고 부강하고 세계를 석권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이런 사람들이 꼭~~ 어디 자연재해 참사가 터진 곳은 우상숭배 해서 심판 받고 벌받은 거라고 경솔하게 발언해서 어그로를 끌곤 한다.
그리고 일본은 어떻고? 기독교 배경 전혀 없지만 그냥 자기들이 노력하고 근대화 잘해서 잘 살고 노벨 상 수상자도 저렇게 많이 배출했을 뿐이다.

이렇게 수준 낮고 허점투성이에 털릴 게 많은 발언은 좀 그만 해라.
예수쟁이라면 기독교 배경· 성경적 세계관이 있는 나라들이 뭐가 진짜로 더 선진적이고 더 좋은지를 제대로 고찰해야 한다.

  • 사농공상 ㅆ선비 꼰대질 짓거리가 없이(최소한 동양 유교 문화권보다는 덜한..) 노동 근로가 존중받는 거,
  • 위선 체면 떨고는 뒤에서 추잡한 짓 하는 게 아니라, 돈이나 성에 대해서 차라리 면전에서 처음부터 더 솔직한 거,
  • 거짓말, 위증, 기본적인 비윤리 부정행위를 훨씬 더 금기시하고 엄하게 처벌하는 거
  • 사심 없이 인심이 후하고 기부, 기증, 입양이 많은 거
  • 잘못을 인정하면 개 호구 바보 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걸 믿고 인정하는 거 (이거..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의 기본 근간 전제조건이다)
  • 반대로 쓸데없이 가오 내세우면서 "죽어서 속죄"를 남발하지 않고, 차라리 살아 돌아와서 사죄하고 평생 책임지는 걸 더 높게 치는 거,
개인 구원과 관계없이, 나라의 단순 군사력 경제력과 무관하게 이런 의식 수준의 차이를 더 진지하게 고찰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러면 교통사고가 하나 나더라도 그때 가해자 피해자의 처신이 달라지고 사회의 치안 비용, 복지 비용에서 차이가 날 거다. 이건 단순히 문화적 상대성 차원이 아니다.

난 일본이 물질과 과학기술 면에서는 서양을 따라했지만 바로 저런 면모에서 진짜 서양보다 크게 뒤쳐졌기 때문에 국민들이 죽어나가고 개고생했으며, 태평양 전쟁 때 저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서양 유럽이 언제부터 학문과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동양을 앞질렀는지를 묻는다면 예수쟁이들은 종교개혁을 떠올리지만, 일반 세상에서는 그냥 계몽주의나 르네상스 같은 걸 떠올린다. 이것도 생각할 점이다.

5. 참가만으로도 대단하긴 하지만, 일부러 참가에만 안주하지는 말아야 함

“올림픽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의미가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아 물론 무슨 취지로 하는 말인지는 이해가 된다.
뭔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하고, 무언가에 일관되고 꾸준한 것을 좋게 보고, 학교에서 개근상을 다른 어지간한 성적 우수 만만찮게 좋게 보던 사고방식 말이다. 이건 절대로 잘못된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저 말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저 말이 불성실과 나태를 합리화하는 말로 악용되지 말아야 한다.
기왕 싸움을 시작했으면 이길 생각을 해야 하고, 기왕 경쟁 내지 경기를 시작했으면 우승할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지금 울나라가 쌍팔년도 시절처럼 엘리트 체육에 목숨 걸면서 선수 한두 명이 메달 딴 거 갖고 국위를 선양하네 열등감을 극복하네 마네 연연하는 지경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비도 아니고 세금으로 육성된 국대 선수라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도 나오기는 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올림픽이 아니라 월드컵이긴 하다만, “월드컵은 뭘 배우는 게 아니라 이미 배운 걸 입증해 보이는 자리입니다.” 이런 말도 있었다. (이 영표 해설자가 2014년 월드컵의 졸전 때 빡쳐서.. -_-)

신앙 생활에서도 같은 적용을 할 수 있다. 당연히.. 예수 믿은 사람은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고 천당이 보장됐으니 신분이 넘사벽으로 달라졌다. 영적 전투 아레나에 참가 선수로 등록된 것만으로도 올림픽 국대 선발 이상으로 얼마나 감지덕지인가?

하지만 0에서 무려 1을 만들었으면 1을 10, 100으로 불릴 생각도 해야 된다. 구원을 받았으면 그 다음에는 자기의 구원자 예수님으로부터 이쁨 받고 상 받을 생각을 해야지.
“저는 그런 상 같은 것엔 연연하지 않아요. 그냥 예수님만 있으면 돼요”는... 미안하지만 무소유 겸손이 절대로 아니다! 그건 매우 높은 확률로 또 다른 무지와 불신이다. 어쩌면 교만까지 추가돼 있고.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해라. 세상 셀럽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라든가(서울 강남 아파트나 고급 외제차나 명품빽, 최신 스마트폰=_=), 노벨 상, 필즈 상, 무궁화 대훈장, 금은동탑 산업훈장, 태극 무공훈장, 연예계의 무슨 아카데미 상에 비해..
성경에 약속된 여러 왕관(면류관)들은 실감이 안 가거나 믿기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거다. 최악의 경우는 아예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르거나.

그리고 예수님께 이쁨 받고 나중에 상 받는 방법은 세상의 각종 분야별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하고는 접근 방식이 좀 다르다. 애초에 자기 육신의 능력을 보이는 게 아니니까.. 저 바닥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과정 지향 사고방식과 결과 지향 사고방식이 모순되지 않는다. 이런 보상은 아무리 욕심 내도 당신의 영적 건강에 전혀 해롭지 않다!

세상에서 기계를 만들 때 전력 소모 줄이고 공기 저항 줄이려고 최적화에 목숨 건다. 운동 선수들도 체중이나 복장을 얼마나 미치도록 튜닝을 하는데?
본질적인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쓸데없는 dead weight 낭비 요소들을 털어내는 것이 신앙생활에도 필요하다. 이것이 히 12:1이 말하는 바이다.

다시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당연히 주님 주시는 보상을 "바라고," 어쩌면 적극적으로 추구도 해야 한다. 그래야 부당한 손해나 핍박도 감수하고 세상 추세를 역행하는 삶을 살 원동력이 생기고 '동기부여'가 된다.
신앙생활에서 신자와 하나님이 서로 주고 받는 딜이 뭔지, 신자의 십자가가 뭔지를 잘 모르니까 보상도 바랄 필요 없다느니, 대환란을 자기가 겪으면서 연단되겠다느니 하는 당치도 않은 헛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을 무슨 신앙페이 열정페이 착취하는 엄한 금욕주의 갑질 업주로만 알거나 말이다(게으르고 악한 종).

Posted by 사무엘

2024/05/31 08:35 2024/05/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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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년쯤 전이던 2023년 4~5월 사이에 국내외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크리스천 세 분 정도가 소천하여 주님 품으로 갔다.
공교롭게도 표준역 킹 제임스 성경 2판이 출간되어서 막 시끌시끌하던 시기와 비슷하다.
다들 이 블로그에서 이전 글에 언급한 적이 있었던 분들이긴 하다만.. 그때 이후로 새로 추가된 정보도 있으니 한데 모아서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다.

1. 론 해밀턴 (1950 ~ 2023. 4. 19.)

O Rejoice in the Lord (God never moves without purpose or plan ...)라는 훌륭한 찬송가의 작사 작곡자이다. “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후렴 끝부분이 “나 주 안에 연단 받은 후 정금같이 되리”인 그 곡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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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은 질병 때문에 왼쪽 눈을 잃고 인생 대부분을 궁예처럼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눈을 하나 잃은 때도 1978년.. 저 찬송가는 작곡자가 눈을 잃은 뒤에 인생 간증을 담아서 만든 거라고 한다.

본인은 저 찬송가 가사의 안티테제(?) 격으로 An American Crime이라는 2007년도 영화가 떠오른다. 1965년에 미국 인디애나 주 깡촌에서 벌어졌던 실비아 라이컨스 양 학대치사 사건을 다룬 끔찍한 범죄 영화 말이다. 이것도 이미 이 블로그에서 옛날에 언급했던 바 있다.
영화에서는 피해자인 10대 소녀가 누적된 질병과 상처, 영양실조로 인해 결국 죽고 나서 쓸쓸히.. 이렇게 독백하는 걸로 끝난다.

Reverend Bill used to say: "In every situation, God always has a plan". (살아 생전에 다녔던 동네 교회 목사의 말)
I guess I'm still trying to figure out what that plan was. (그 계획이 뭔지 난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개인적으로 저 찬송을 부를 때면 저렇게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다 포함해서 하나님의 plan이 무엇이고 허락하시는 뜻이 어디까지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곤 한다. 찬송가 영어 가사에 따르면 하나님은 결코 실수를 하지 않으시고 내 인생 행로를 다 아신다고 했으니까.

아무튼 세월이 흘러서 그 가사를 쓴 찬송가의 작곡자도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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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실비아 라이컨스를 연기한 배우 엘렌 페이지.
현재는 남자로 성전환을 해서 ‘엘리엇 페이지’가 됐다 ㄷㄷㄷㄷㄷ)

2. 오야마 레이지 목사 (1927 ~ 2023. 5. 16.)

이 사람은 자기 나라가 이웃 민족에게 저지른 참혹한 죄악에 대해 알게 되고는 너무 멘붕해서 반세기 이상 평생을 사죄하는 일에 앞장섰던 엄청난 일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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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19년 4월, 제암리 학살 사건에 꽂혔다. 한국과 일본이 이제 막 수교를 맺었던 1965년~67년엔가 한국을 찾아와서 사죄하고.. 십시일반 모금을 해서 제암리 예배당 재건 비용을 대려 했다.
이때는 정작 제암리 학살 유족 후손들조차 더러운 왜놈의 돈 따위 받기 싫다고 차갑게 거절했는데도 말이다.

“바로 옆의 니 형제와도 화해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일본 교회의 예배를 받아 주실 리가 없다~ 일본은 대대적으로 사죄해야 한다 //
일본의 과거 침략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그만 됐다고 하실 때까지 계속 무릎 꿇고 고개 숙이고 있겠습니다” 이랬고..

제일 최근엔 2019년까지도 노구를 이끌고 한국 와서 도게자를 했다. 당연히 삼일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다.
저분은 소천했지만 그의 아들이 계속해서 사죄와 화해 운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2020년대에 와서는 새에덴교회 소 강석 목사와 접촉 중인가 보다.

무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죄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신앙의 양심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성 특유의 끈질긴 집념과 근성의 산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JR 서일본에서 2005년도 전철 탈선 사고 사과문을 홈페이지에다 현재까지 박제해 놓고 있고, JAL(일본항공)에서 신입사원들한테 1985년도 여객기 추락 사고를 세뇌 주입시키고, 일각에서 20년 전의 의사자 이 수현 씨를 계속 기억하고 추모하기도 하니 말이다.

저 정도로 진심을 다했으니 승무원들이 훈련이 워낙 투철하게 돼서 지난 1월 2일의 여객기 화재 사고 때 수백 명의 승객들이 단 1명도 사망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정 광진 변호사 (1937 ~ 2023. 5. 19.)

딸을 4명 두고 있었는데 3명을 1995년 백화점 붕괴 때문에 한꺼번에 잃은 그야말로 욥의 현실판인 분이었다. 그것도 다들 20대 꽃다운 나이였는데!!
이분은 종로학원의 설립자 정 경진의 동생이고.. 서울대 법대 나와서 사법시험 합격하고 판사로만 10여 년 재직하며 엘리트 코스를 갔다. 그런데 장녀가 초등학교 시절에 질병으로 인해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론 해밀턴보다 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엔 치료를 시도하느라 의료비도 많이 들었는데, 완전히 맹인이 된 뒤에는 특수학교로 통학을 시켜야 하니 자가용이 없으면 도저히 안 되는 지경이 됐다. 자녀 4명이나 키우는데 이런 일까지 생기니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음..;;;

그래도 장녀를 미국 유학까지 보내고 정말 잘 키웠는데.. 그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었고 시신조차 못 찾았다고 한다. 그나마 하나 남은 딸도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몇 년 뒤 병으로 죽었다.
이 정도면 이분도 아까 저 American Crime의 결말부 만만찮게 “신이란 게 있다면 도대체 지금 머릿속에 뭔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따질 만도 해 보인다.

저분은 사고 보상금에다가 사재를 보태서 '삼윤 장학재단'이라는 걸 만들어서 자기보다 형편이 더 어렵지만 '살아는 있는' 장애인들의 교육과 지원에 애썼다. 그러고 작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하긴, 이렇게 자녀를 잃은 사람이 죽은 자녀 몸값으로 억만금을 받는다 한들.. 그걸로 서울 한강뷰 아파트를 사겠는가, 세계일주 오성급 호텔 원정을 가겠는가? 자녀 이름을 딴 장학 재단 만들거나 복지와 관련된 일에 보상금을 쓰게 된다.

딸들은 살아 생전에 서울에 소재한 영화교회라는 곳을 다녔으며, 이분도 신앙이 있었고 교회 장로였다고 전해진다. 소천했을 때 빈소가 분당 서울대 병원이었고, 새에덴교회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니 노후는 분당에서 보냈던 것 같다.
어째 새에덴교회가 오야마 레이지 목사와 정 광진 변호사하고 모두 접점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14 19:35 2024/05/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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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생

예수 믿는 신자는.. 동물들 도축되는 게 불쌍하다고 개고기 안 먹는다거나, 심지어 채식을 하는 쪽으로 몰두하지는 않아도 된다.
살생을 안 하겠답시고 개미 한 마리 부주의하게 밟아 죽이지 않으려고 조심할 필요.. 없다.
심지어 살인을 안 하겠답시고 군 복무 집총을 거부한다거나 사형 제도를 반대?? 이건 뻘짓을 넘어서 반기독교 반성경적으로, 마귀적으로 아주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살인을 하고 싶지 않으면 저런 부류가 아니라 요일 3:15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 이런 거나 유의해야 한다!! 이런 게 자기 사고방식을 성경에 맞춰 바꿔 나가는 것이다. 아멘???

교회의 주변 지체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서 시샘하고 질투하고 죽이고 싶도록 밉다면.. 당신은 창세기 4장의 카인보다 나을 게 없고, 제아무리 개고기 안 먹고 다른 친환경 친생명(??) 운동을 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 말짱 도루묵인 거다.
니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이런 심보나 다스리고 예수님의 성품, 그리스도의 마음을 구해야 한다.

2. 우상

또 다른 예로.. 돌부처나 차례상, 돼지머리 앞에서만 절 안 한다고 해서 우상 숭배를 안 하는 게 아니며, 장땡이 절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어설프게 기드온 코스프레 한답시고 단군상이고 소녀상이고 때려부시면.. 그냥 재물손괴죄밖에 추가되지 않는다. 뻘짓 바보짓이다.

지 마음 속에 있는 탐욕과 돈신 우상이나 때려부숴야지..!! 성경에 나와 있다. "탐욕이 우상숭배"라고.. 엡 5:5, 골 3:5
지금 자라나는 주일학교 아이들한테.. 온갖 황금만능주의와 안목의 정욕에 상대 비교 부추기는 세상 매체가 신앙에 더 해로울까, 아니면 저런 무능한 형상들이 더 해로울까?
그래서 만약 답이 전자라면 이젠 TV나 유튜브를 다 때려부숴야 하겠는가? 그러니 이렇게 혈과 육을 동원하는 방법론은 문제를 결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탐욕은 그 어떤 물리적인 행동도 필요하지 않고, 하다못해 주둥이 뻥긋조차 필요하지 않고 마음만으로 지을 수 있는 죄다.
로마서를 보니, 사도 바울이 "나 이 정도면 십계명이고 율법이고 다 지킨 거 같은데?" 이러다가 "하지만 탐욕이 출동하면 어떨까? 탐! 욕!"에 고꾸라지고 솔직하게 GG를 쳤다. 이게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다.

3. 중도

  • 성경에는 지나치게 의로운 자, 지나치게 지혜로운 자가 되지 말라는 권고가 있다(전 7:16). 어정쩡하게 "니 말도 옳다" 내지 적당히 유도리 타협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며, "주여, 시험과 박해를 좀 내려 주시옵소서" 이딴 짓을 하지 말라는 얘기에 가깝다.

  •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우리의 적이 아니면 다 친구"(막 9:40 / 눅 9:50)라는 논리도 있고, "우리의 친구가 아니면 다 적"(마 12:30 / 눅 11:23)이라는 논리도 있다. 평시냐 전시(박해)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 성경에는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도 있고, 바로 다음에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라"도 있다(잠 26:4-5). 대꾸할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분별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4. 심판의 도구

사람의 적은 사람이고, 사람을 제일 많이 죽인 것도 사람이다. 사람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심판하고 징계하는 건 하나님의 주된 역사 방식 중 하나이다.
굳이 개인 단위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한 뒤부터 신약 교회 기간의 대부분 동안 극심한 핍박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 크리스천이 남에 대한 심판의 도구 악역을 '자처'해서 나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

너 말고도 세상의 다른 불신자들 중에 심판으로 사용할 사람은 쌔고 널렸다. 구약 성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일시적으로 괴롭히고 징벌했던 타 민족들은 그 뒤에 자기들도 거의 다 몰락하고 망했다.
심판의 도구 주제에 자기들이 잘난 줄 알고 도 넘게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며 깝쳤던 인간들은 자기들도 더 큰 벌과 심판을 받았다. 크리스천이 반유대주의에 동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약 성경에 '예후'라는 인상적인 인물이 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보다는 그냥 아합 집안을 파괴하고 죽이는 것 자체밖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다. (왕하 9~10)
아합과 이세벨 집안을 완전히 씨를 말려 버리고 나봇의 원수를 갚기는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왕이 되긴 했지만 어차피 바른 신앙이 전수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예후처럼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5. 분별

  • 여호수아는 낡은 복장만 보고는 기브온 거주민들에게 낚여서 호구 언약을 맺어 버렸다. (수9)
  • 다윗은 다급한 피난 와중에 '시바'의 이간질에 살짝 낚여서 얼렁뚱땅 판단 착오를 저질렀다. (삼하16, 19:29)

이렇듯, 세상에는 선의· 호의만 베풀어서는 안 되는 일이 좀 있다. 요즘으로 치면 종점의 기적이나 기독교 앵벌이 같은 것 말이다. 지혜와 분별이 필요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03 08:35 2023/08/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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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자

1.
교회는 신앙, 헌신, 하늘에서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무료 섬김이라는 게 아무래도 세상 직장 조직에 비해서는 더 많이 행해지고 허용되고 권장되는 바닥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누구로부터 누구에게든, 물건이건 남의 시간이건 “계속되는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지는 말자!!”

무료인 게 진짜로 값어치가 전무한 싸구려여서 무료인 게 아니다~! 비록 절대값에 넘사벽급 차이는 있을지언정, 저 말은 예수님의 보혈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곡식 밟는 소의 입에 마개 씌우지 마라”(신 25:4) 같은 뜬금없는 구절이 신약에서 왜 거듭 인용되었겠는지를 생각해 보라.
주의 일을 한다는 사람이 교회 안팎에서 “주인님은 엄한 사람이어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재능기부 신앙페이 착취하는..”(마 25:24, 눅 19:21) 이런 평판이 나도는 일이 절대적으로 없어야 한다.

2.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다른 분야도 전문가일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고 했지, 성경이 과학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거 아니다. 심지어 창조과학이라도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면모가 있을 수 있다.
신앙, 믿음이란 게 개나 소나 반지성주의를 조장하라는 말이 아니다.

3.
개인적인 체험, 간증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교리라고 확대해석 하지 말자!
누구는 기도 응답으로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지만 병 고침 기도가 거절로 응답된 사람도 많다. 그건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의 표적이 전~혀 아니다.

자기가 갑자기 깨달아지고 복음이 믿어진 건 좋은 일이긴 한데, 남한테까지 저절로 믿어져야 구원이네 어쩌구 하는 건 선을 심하게 넘은 짓이다. 이건 그 말을 퍼뜨리는 당사자보다도, 교리 오류를 바로잡지 않고 용납하고 자꾸 마이크를 건네주는 교회 쪽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내 경험상 이 세 가지만 좀 지키면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온갖 혼란과 무질서, 분쟁, 다툼이 상당수 정화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스스로 유지되지 못하고 내부 분열 때문에 무너지는 조직은 정상적인 조직이 아니다. (눅 11:17-18) 세부적인 성경 해석· 신학 노선· 교리 교파를 떠나서 어디든지 말이다.

* 하자

4.
상대 비교와 탐욕의 해악을 절대 만만하게 보지 말고 경계하자.
물리적인 행위가 동반되는 살인, 간음, 도둑질에 비해 만만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 위대한 바울마저도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 탐욕 앞에서는 GG 쳤다. (롬 7:7)

자기는 지금까지 어지간한 기독교인들보다 의롭고 선하게 살았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며 예수 따윈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탐욕이 출동하면 어떨까?
이 역시 온갖 귀신 잡신을 섬기고 돌· 금속 형상에다 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우상숭배이다(골 3:5).

자본주의의 온갖 병폐를 만든 것이 탐욕이지만,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필망하게 만드는 것 역시 탐욕이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 말하고,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한다. (마 6:24, 눅 16:13) 상금 아니면 훈장이지, 훈장에다가 훈장의 제조 원가만 제외한 나머지 상금 같은 건 없다.;;

성경대로만 행하면 당장 교회도 현실의 교회들보다 사람 수도 적고 훨씬 꼬질꼬질하고 인기도 없고, 남보다 ‘간지’가 안 나고 비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세상 시스템이 탐욕을 자꾸 조장하는 구조인 건 부인할 수 없다. 신세 비관, 남과 비교, 오지랖, ‘엄친아 엄친딸’... TV 드라마와 인터넷 광고들이 온~통 이걸 조장하고 있다. 괜히 악한 현 세상인 게 아니다.

  • “누구누구는 강남에 번듯한 아파트 장만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월세야” (출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 “누구누구는 30대 나이에 벌써 그랜저 뽑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마티즈야”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소유)

그런데 요런 불만을 위선, 허세 같은 방법으로 해소, 은폐하다 보면, 교회는 팀웍과 간증과 순수성을 잃고 급속도로 타락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진리, 하나님의 역설을 논할 자격을 상실할 것이다!
하나님이 아나니야와 삽비라를 시범 케이스로 괜히 죽여 버리신 게 아니다. 초대 교회 때 이미 그런 누룩이 침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암적 요인은 정말 0순위로 척결해야 한다.

5.
아까 1번의 연장선상에 있는 말인데.. 교회는 목욕탕, 병원 같은 곳임을 기억하자.
깨끗한 사람은 굳이 또 목욕할 필요가 없고(요 13:10)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눅 5:31). 내가 교회에 무슨 대접을 받으러 온 고객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자.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에서 ‘국가’를 ‘교회’로 바꿔서 생각하라.

완벽한 성도만으로 구성된 교회가 있으면 너님이 거기 가입하는 순간부터 그 교회의 완벽성이 깨질 거다.
내 자아/자존심을 방어하기 위해서 교회 지체에 대해 악하게 추측하거나 남에게 상처 주지 말라.

교리가 달라져서, 죄에 대한 회개가 없어서 교제를 끊는 거라면 모를까.
처음에는 간이라도 내 줄 것처럼 ‘형제님 사랑합니다’ 이러다가, 단순 감정 상하는 일 때문에 둘도 없는 원수지간이 되고 교회 떠나거나 옮기는 일이 생기지는 않게 하자.
성경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분명히 말한다! (요 13:35)

6.
그리고 이건 정말 아무에게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긴 한데.. 영적 대미지 컨트롤 능력을 키우도록 하자.

일이 너무 안 풀리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답이 없다 싶을 때,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의구심이 드는 상황일 때,
일단은 기도하고 믿고 기다려라. 기도 응답 자체가 “기다려라”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렇다고 될 대로 돼라 자포자기 포기하지도 마라.

하나님은 “딴 건 다 괜찮은데 이것만은 좀..” 하필 그 약점만 골라서 뒤흔들 수 있다. 여러분의 속을 박박 긁어서 본성이 튀어나오는 상황을 허락하시는 것 자체를 갖고 하나님을 야박하다고 탓하거나 그분 성품을 의심하지 말자.
나도 인내, 기다림 같은 거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인데.. 이게 신앙생활의 본질이라는 건 머리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ㅠㅠ

마귀가 인간을 죄로 유혹하는 압도 다수의 패턴은 “남들이 다 하는데 너만 안 하면 너만 바보 되고 손해 보고 뒤쳐질 걸?”이다. 근데 그걸 이기는 게 당신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다.

영적 성장에는 영재· 천재가 없다.
한 자릿수 나이 때 미적분을 술술 풀고 성경 100구절 이상을 암송하고 토플 만점을 받는 애는 있어도,
한 자릿수 나이 때 부모님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때리면서 훈계할 필요가 없어서 잠 22:15의 예외에 해당하는 애는 없다~!

신앙 생활은 마라톤이고 지구력이 중요하다. 우직하게 꾸준히.. 잔꾀 안 부리고 일관되게 성실/신실하게 살아라.
크리스천이 아니고서야 요즘 시대에 ‘환경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천한 자리와 고귀한 자리를 모두 만드신 분이다. (롬 9:21) 궂은 자리, 남 안 보는 자리에서 성실하면 하나님께서 갚으시고 더 크고 높은 직책을 주신다.
세상 추세하고는 좀 반대로 미친 척 하고 살아라. 하나님의 느긋하고 일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사고방식에 적응하기 바란다.;;

Posted by 사무엘

2023/05/01 08:35 2023/05/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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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게 미쳐 보자

예수 믿고 교회 댕기고 성경 읽는다는 사람들, 소위 교인들은..
솔직히 말해서 예수님에게 제대로 좀 미쳐 봐야 된다. 평생 24시간 365일 그러지는 못하더라도 한번쯤은 말이다.

특히 외모와 체력과 능력이 제일 뛰어나고.. 어쩌면 갓 취업한 사회 초년생이어서 돈도 그럭저럭 벌면서 아직 처자식도 없는 청년 시절..
그럴 때 확~ 꽂혀서 예수님을 위해서 미친 척 뭔가 내 재능, 시간, 물질 등을 통 크게 허비(???)해 봐야 된다. (비싼 향유 부은 여인)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성경을 밤새워서 몽땅 독파해 버린다거나,
  • 교회에 큰 변고가 생겼거나 무슨 선교사가 어려움을 당했다거나 할 때.. 평소 내는 주일 헌금보다 10배 이상의 액수로 사비를 쾌척해서 후원한다거나..
  • 지원자가 없는 예배당 청소나 교회 주차 안내, 주일학교 교사를 하거나..
  • 의식의 흐름을 따라 찬송시를 쓰거나 선교 편지, 신앙 서적 번역을 해 보거나..
  • 길거리에서 거리 설교나 전도지 배부를 하거나..
  • 가끔은 구원받지 못한 가족 친지, 종교 문제로 갈등하던 사람이 미운 게 아니라 안타깝고 불쌍하게 보이고.. 남을 위해서 뭔가 눈물 흘리면서 기도해 보고, 알량한 내 자존심을 다 깨뜨리면서 펑펑 울어 보고..

이런 경험이 아무리 못해도 20대 시절에 한 번은 있어야 되지 않겠냐..??
성경적으로 정상적으로 정당하게 살면서 광신자 소리 좀 들어 봐야 된다.
20대 시절에 무슨 유럽 여행을 가 보고 강남 클럽을 가 보고 별의별 걸 다 해 보겠다는데, 예수 믿는 청년은 저런 경험을 좀 해 봐야 된다. 이건 내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 "으이그 저 돈지랄을 하느니 불우이웃이나 아프리카 기아들이나 돕지?
  • 진짜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겉으로 지가 예수 믿는다는 티 안 낸다"
  • "네가 제정신이 아니니 많은 학식이 너를 미치게 하는도다~~" (행 26:24)

이런 부류의 빈정거림은 성경적으로 매우 "정상"이고 예상 가능한 피드백이니까 걱정 마시라. 마 26:8-9, 막 14:4-5, 요 12:5 따위. 당연히 매우 잘못된 소리라는 점에서 말이다.
또한, 십중팔구 평소에는 불우이웃 어려운 이웃 따위는 쥐뿔도 관심 없던 인간들이 꼭 이런 상황에서나 이웃 핑계 대는 법이다. -_-;;

예수에 미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를 안다면.. "실컷 내 마음대로 죄 펑펑 지으면서 살다가 죽기 직전에만 샥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되겠네"
이런 생각은 너무 졸렬하고 민망해서 누구든지 꺼낼 엄두를 못 내게 된다.

마 12:41-42를 보면.. 예수님께서 "심판의 날 때 니느웨 사람들이 너희를 책망할 것이고, 스바의 여왕이 너희를 디스할 것"이라고 예시를 들며 그 당시의 세대를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 우리는 요나의 선포를 듣고도 데꿀멍 하고 회개를 했는데.. 니들은 요나보다 더 큰 분 바로 옆에서도 꼼짝도 안 했냐? 이것들이 간이 배 밖에 나왔냐?
  • 나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수행원 챙겨서 억만 리 원정을 힘들게 떠났었는데.. 니들은 솔로몬보다 더 큰 분을 바로 옆에 두고도 못 알아봤냐? 이 ㅂㅅ아?

그런 것처럼.. 죽기 몇 시간 전에 십자가에서 겨우 구원받았던 강도가 저런 부류의 사람들을 맹렬히 책망하게 될 거라고 난 생각한다.
"너희들은 구원받고 나서 겨우 몇 시간밖에 못 살았던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에 있었으면서 뭐가 어쩌고 저째..???"
그는 자기는 역대급 먹튀 뽀록 구원을 달성한 운 좋은 케이스라고 자랑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출애굽기에서도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게으르다"고.. "뱃대지가 부르고 살 만하니까 종교에나 심취"하는 거라고 아주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진단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목이 뻣뻣하다 (완악하고 고집 세고 믿음이 없다)"라고 진단하셨을 뿐이다.
어느 게 진짜 새겨 들어야 할 경고인지를 생각해 보자.

내가 예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예수 믿고 성령님이 거주하는 신앙 생활이 뭔가 재미없고 따분하고 손해 보고 불편하고 꾹 참아야 하고 억압과 제약 핸디캡이 가득한 인생일 거라는 그 편견, 프레임에 속지 말길 바란다.
세상에는 온통 이상한 이단에 맛이 간 광신자에 대한 묘사가 가득하다. (오징어 게임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 길은 성경적인 좋은 광신자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뻘건 조끼에 뻘건 십자가 들고 무슨 좀비처럼 전도하는 사람을 묘사하지, 죄와 심판과 의에 대해서 제대로 선포하는 복음 전파자를 묘사하지 않는다.
광신자 프레임이 두려워서 자기는 구원받고 나서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그럼 그건 달란트를 받고도 주인을 믿지 못하고 뭐가 두려워서 그 돈을 땅에만 파묻어 둔 게으르고 악한 종의 사고방식과 다를 게 없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없고 개인의 구원 여부를 X선 찍듯이 척 들여다볼 수 없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성령님이 거한다는 증거는 보이는 언행의 변화로 드러난다.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건 생각보다 천천히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허나, 교회들이 그런 양육을 안 시키고 당장 겉으로 빨리 드러나 보이는 결과물인 종교적인 열심만 강요하고 다그치면.. 이상한 광신자 아니면 아예 영적 성장이 정지한 환자들만 잔뜩 양성하면서 큰 폐해가 야기될 것이다.

아무쪼록, 구원받은 신자, 기독인이라면 예수님에게 제대로 미쳐 보자.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찬송가 가사대로 실행해 보라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4/24 08:35 2023/04/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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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은 지난번 글과는 달리 성경과 신앙관을 곁들인 아이템들 위주이다.

1.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거기서도 거의 끝부분인 백보좌 심판 쪽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그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계 20:12, 15)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모든 인생 행적이 기록되고 저장돼 있는 방대한 매체가.. 무슨 거대한 IDC(데이터센터) 서버 컴퓨터라든가, 데이터베이스 백업용 자기 테이프 형태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게 무척 신기하다.
영원에서 영원까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결국은 제일 오래 가는 정보 저장 매체는 '책'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책이라는 정보 저장 매체와 관련하여 이런 엄청난 끝판왕 말씀도 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다른 일들도 많으므로 만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심지어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들을 담지 못할 줄로 나는 생각하노라. 아멘." (요 21:25)
(당연히.. 예수님이 창세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냥 평범한 30대 청년의 일거수일투족 인생 로그만 덤프 뜨는 거라면, 이 세상이라도 책들을 다 담지 못할 거라는 말은 과장일 수밖에 없지.)

2.
'테크노피아'라는 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듯, '테크놀러지 + 유토피아'의 합성어이다. 전자를 통해 후자를 이룬다는 말. 이건 전혀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다. 어느 정도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다.

과학 기술은 수많은 인간(시장경제 논리의 특성상 모든 인간까지는 아니더라도!)을 질병과 굶주림으로부터 구했으며, 단순노동 노가다로부터 해방시켜 줬다. 인간을 돌도끼 들고 야생을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게 해 줬다. 생존본능 지향적인 욕구를 충족시킨 뒤, 더 창의적이고 고차원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해 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슬로건인 Your potential, our passion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걸 경제 제도와도 결부지어서 생각해 보면, 본인은 그저 다국적 기업의 음모, 유대인 재벌의 음모 이러면서 일방적으로 자본주의만을 마귀적으로 몰고 가는 식의 선전 선동에 공감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 황금 만능주의가 아무리 부작용과 폐단, 병크가 있다 해도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그보다 훨씬 더 사악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보다 국가가 개인을 착취하는 게 훨씬 더 악하다. 신앙은 있는데 선악 구도에 대한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지 못한 채 어설픈 정의감만 있으면 흔히 말하는 '좌독' 성향이 되기 쉽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뭐 그런 그렇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국내에서 '테크노피아'라는 말은 지금으로부터 한 30여 년쯤 전에 금성사가 회사 이미지 광고를 내보내면서 썼다. 금성사 하면 국내에서 최초로 흑백 텔레비전을 만들어 낸 업체가 아니던가. LG 전자로 바뀐 뒤 2010년경에 얇은 대형 TV 광고에다가는 "기술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동일한 이념의 광고 카피를 내보내기도 했다.

LG 말고 삼성의 경우는 '휴먼테크'라는 말을 만들어서 오늘날까지 자기네 논문 공모전에다가 쓰고 있다. 그리고 현대 자동차에서도 옛날에 엘란트라를 웬 '휴먼터치 세단'이라는 수식어로 광고했는데.. 어감이 좀 이상했는지 얼마 못 가 '고성능 엘란트라'라고 바꿨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뭘 터치한다는 거지? 사람의 감성?

전세계에 테크노피아에 대한 환상이 처음으로 개발살이 난 때는 1차 세계 대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과학기술 무용론, 문명의 이기 거부 쪽으로 갈 필요는 없다. 이 자연에는 애초에 선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인은 유사의학, 친환경, 백신 반대 이런 거 공감하지 않으며, 원자력 발전도 적극 찬성론자이고.. 뭐 그렇다.

단지 과학 기술은 마치 칼이나 돈처럼 가치 중립적인 도구일 뿐이다. 마치 "총칼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다"라는 말이 있듯, 과학 기술도 저렇게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반대로 사람을 온통 타락시키고 죄 짓게 만드는 데 쓰이는 것 역시 가능하다. 단순히 원자력처럼 물리적으로 위험한 기술만 위험한 게 아니다.

또한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죄 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고 타락 이래로 세상에 내려진 저주와 엔트로피 증가 자체를 거꾸로 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모 성경 구절이 제아무리 패러디 되더라도, 인간에게 진짜로 자유를 선사할 수 있는 건 기술이나 노동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진리'라는 사실도 변함없을 것이다.

3.
그러고 보니, "총칼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일 뿐이다"
이건 특히 미국에서 총기 규제/금지를 반대하고 개인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전미 라이플 협회(NRA) 같은 단체에서 들이대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총기를 금지한다고 해서 금지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결국 진짜 총을 뺏어야 할 나쁜놈들에게서 총을 완전히 없애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니 너라도 총을 구입해서 이 험악한 세상에서 네 목숨 지켜야 한다.. 뭐 이런 논리.

개인적으로는 그 논리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난 크리스천으로서 절대악을 놔두고서 필요악만 나쁘다고 없애자는 식의 논리에는 어떤 형태로든 전혀 찬성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지, 총칼이 사람을 죽이는 거 아니다.
무기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역사적으로 볼 때 시민들이 무장을 강제로 해제당한 뒤에 악당들에게 더 참혹한 꼴 험한 꼴을 많이 당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가 되는 과정에서 군인들은 무장해제 당하고 백성들 역시 사냥용 무기나 위험물은 압수 당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의 지배를 받을 때 무장해제 차원에서 쇠붙이를 몽땅 빼앗겨서 농기구조차 빌려 쓸 지경이 됐었다. 같은 맥락으로, 미국 같은 나라에서 크리스천들이 "총을 빼앗긴 다음에는 성경을 빼앗길 거다" 식으로 생각하는 거 공감한다.

무기를 동원해서 내 집을 내가 지키는 건 부부관계 사생활만큼이나 정말 신성한 권리이며, 그 어떤 이유로든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는 행위는 정말 목숨을 거는 위험한 짓이 돼야 하는 게 마땅하다. 어쩌다 싸이코 미친놈 때문에 발생하는 총기 사고 같은 건 저 자유라는 대전제 하에서 일부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법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뿐이다.

옛날에 영화 배우 찰턴 헤스턴이 한때는 월남전 반전 시위도 했을 정도로 그쪽으로 진보 성향이었으나, 총기 소유에 관한 한은 꼴보수 스탯을 유지해서 NRA 회장으로 활동했던 것 유명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영화 <연평해전>에서는 어째 된 일인지 저 말과는 정반대 심상의 말이 있다.. 총기 소유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쪽으로 반대다.

"약이 사람 살리는 거 아니다. 사람이 사람 살리는 거다." (한 상국 중사. 배 위에서 야식 먹으면서 신참 박 동혁에게)
사람을 살리는 것도 사람, 죽이는 것도 사람. 이게 문득 생각이 났다.
난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지만.. 일단 인상깊게 보는 영화는 대사를 다 외운다.

4.
프로그래머의 최종 테크는 치킨집 사장이고, 억만장자의 최종 테크는 건물주 임대업자라고 한다. (☞ 관련 링크)

오죽했으면 대한민국 땅에서 조물주보다 더 위대한 건 건물주랜다. "의느님", "천당 위에 분당" 이래로 내가 무릎을 쳤을 정도로 기발한 신조어다. =_=;;
"건물은 내가 직접 벌어서는 살 수가 없어요. 받아야죠. 그 방법밖에 없어요." (모 자산 관리소장 인터뷰 중)

난 누구처럼 뭐 지금 사회 구조가 엿같네, 금수저 은수저 계급론 그딴 거 거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돈으로 돈 버는 건 정도의 문제이지 그 자체를 나쁘다고 죄악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도 그놈의 임대업인지 뭔지 하면서 생업 걱정 없이 날개셋 한글 입력기 코딩이나 평생 펑펑 하고 싶긴 하다.

외제 명품 호화 사치 유흥 음주가무 주색잡기 같은 건 정말 하나도 눈꼽만치도 관심 없음. 그리고 돈 너무 많아서 에쿠스만 굴리고 다니느라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도 못 들어본 사람들은 난 교통 분야에 한해서는 전혀 부럽지 않다.
부러운 건 딱 하나. 돈 자체가 아니라 코딩할 시간이 있다는 게 부러울 뿐이다.

물론 아무 부동산이나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100% 돈 놓고 돈 먹기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아무 건물이나 공실률이 없이 빵빵 입주자가 들어오는 게 아님. 이거도 여느 자영업만큼이나, 투자 잘못해서 본전도 못 뽑고 망한 사람이 역시 당연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는 어디에든 땅 내지 집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인 건 사실이다.
구약에 나오는 "땅을 상속 받으리라"가 얼마나 큰 복인지, 그리고 한국 교회가 어째서 물질주의 기복신앙으로 빠져들었고 왜 걸핏하면 땅, 건물에 목숨을 거는지, 왜 "성전 건축 헌금"이 있는지가 이해가 된다.

그에 반해 신약 성도는 세상에서 알박은 거처가 없이, 복은 일단 영적인 형태이며 이 세상에서 순례자(pilgrim)라고만 표현돼 있다. 이것만 생각해도 소위 십일조 헌금이라는 건 교회와 얼마나 안 어울리는 이상한 관행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솔직히 성경은 의식주 중에서 의식에 비해 '주'는 상대적으로 덜 강조한다(딤전 6:8, 눅 3:11, 마 6:25 등).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 성경에는 요셉이 흉년을 빌미로 전국의 모든 농토를 국유화해 버린 게 나온다(창 47). 이때에 요셉이 취한 정책은 일종의 무상 몰수 유상 분배였는데 성경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룻기도 부동산 상속과 관계가 있는 책이고.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 봤으면 싶다.

끝으로 중요한 것. "건물은 내 힘으로 돈 벌어서는 절대로 살 수 없어요. 받아야죠. 그 방법밖에 없어요"에는 의외로 굉장한 성경적인 진리가 담겨 있다.
칭의와 '구원'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저런 관념이 박혔으면 좋겠다. -_-;;

5.
오늘날 인간은 채식만 해서는 제대로 영양 공급을 받을 수 없다. 몸 관리를 위해서는 육류를 통한 단백질 공급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다니엘의 시험이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또한, 소림사에서도 한창 성장을 해야 하는 동자승 내지 무술 수련을 하는 승려들은 고기를 부득이하게 먹는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정작 인간에게 단백질을 공급해 주는 소는 어째서 풀만 먹어도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걸까? 인간 중에서는 거의 최 배달 같은 전문 파이터-_-나 소를 상대했네 뭐네 그러지 않던가?

생물학적으로 간단히만 말하면, 소는 풀로부터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성분도 몽땅 소화해서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뽕'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염소만 해도 셀룰로오스를 소화할 수 있어서 종이를 먹을 수 있는 반면,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동물은 원래 이론적으로는 풀만 먹어도 저렇게 크고 힘센 개체로 성장이 가능하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성경에도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유독 소에다 비유한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욥기에서 베헤못이라는 영적 괴물이 소처럼 우적우적 풀을 뜯어 먹는댄다. (욥 40:15)
미래에 천년왕국 때는 땅의 저주가 풀려서 사자도 소처럼 풀만 먹는 초식동물로 바뀔 거랜다. (사 11:7, 65:25) 어렸을 때 교회 댕긴 애들은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노래 기억하실 것이다.
그리고 다니엘서에서도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미쳐 버렸을 때 "소처럼" 풀을 뜯어먹으며 지내게 될 거라고 경고하는 게 나오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한다. (단 4~5)

사람은 소처럼 아무 풀이나 짚을 먹을 수는 없다. 그러니 옛날에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딱히 식량 보급이 없더라도) 길가의 풀을 알아서 뜯어먹으며 진격하라"라는 미친 명령을 내렸던 일본의 졸장 무다구치 렌야 장군이 더욱 병맛스럽게 느껴진다.

뭐, 사람은 풀뿐만이 아니라 고기도 아무렇게나는 못 먹는다. 다른 육식 동물은 야생에서 초식 동물의 생살과 내장을 생으로 뜯어먹고, 반쯤 썩거나 상한 것까지도 막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 반드시 익혀서 먹어야 한다. 사람이 기생충 같은 거 오염에 더 취약한 듯하다.

6.
아이고, 골치아픈 잡생각을 많이 늘어놓았는데, 끝으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스타일의 위대한 성경 목록가 오케스트라를 소개하며 글을 맺겠다.

창세기, 생명의 호흡
출애굽기, 유월절 어린양
레위기, 우리의 대제사장
(...)
잠언, 외치는 지혜
(...)
마태 마가 누가 요한, 하나님, 사람, 메시야
(...)
계시록, 왕들의 왕, 주들의 주


이게 단순히 성경 각 책들의 요약 소개가 아니라, 각 책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고 있다.
First Assembly of God라는 곳에서 공연한 걸로 보이는데.. 정말 웅장하고 훌륭한 찬양이다. 가사는 다 외워 버릴 가치가 있다.

처음엔 조용한 단조풍으로 시작하다가 스케일이 갈수록 커진다. He is. (그분은 계신다, 모든 것이 되신다~~)
난 이미 음성 추출해서 차에서 듣고 있다.
S. M. Lockeridge라는 목사가 1976년에 했다는 "그분은 나의 왕이십니다!"라는 엄청난 설교를 떠올리게 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들어 보시라.

Posted by 사무엘

2016/05/10 19:36 2016/05/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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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관이나 종교관을 논하기에 앞서, 그보다 이념이나 '색깔'이 덜한 나의 인생 철학, 원칙 같은 걸 글로 한데 정리해 본 적이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지지하는 원칙들을 한데 모아 보니 다음과 같다.

  • 세상에 공짜란 없다.
  • 심은 대로 거둔다. 일하지 않았으면 먹지를 말라. (장애인, 노약자는 물론 예외)
  • 일부러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가난한 게 아니라, 일부러 취업을 포기하고 공부를 더 계속하느라 궁핍하게 지내는 것 따위)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 남이 하는 꼬라지가 불만이면, 니가 나서서 한번 해 보든가. ("대안 없는 비판"을 싫어함)
  • 니 자식이 흉악범에게 살해당했을 때에도 사형 반대할 텐가?
  • 니 아들이 남자가 좋다고 데리고 오는 일이 생겨도 동성애 합법화 찬성할 텐가?
  • 니가 스스로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한 노력은 안 하면서 왜 맨날 인물이 없다는 탓만 하는가? (안 창호)
  • 국가(혹은 교회든 무슨 집단이든)가 너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를 기대하지 말고 니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지를 먼저 생각하라. (케네디)
  •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건 나도 때로는 못 지킬 수도 있고, 예수님조차도 바리새인들에 대해 그들이 말하는 것만 본받고 행동은 따라하지 말라고(마 23:3) 분리를 명하셨다. 저놈들을 빌미로 같이 깽판 쳐도 된다고 그러시지 않았다.
    하지만 말과 말조차 일치 안 하고 판단 잣대에 일관성이 없는 건 완전 싫다. (마 11:18-19)

나의 인생 알고리즘이 어떠한지가 좀 읽혀지는가?
이런 것들을 다 황금률 --니가 남들로부터 대접받고 싶은 것만치 너도 남에게 해 줘라(마 7:12)-- 의 일부라고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논리학이나 철학에서 저런 사고방식을 일컫는 용어 같은 게 따로 있지 싶은데..
어쨌든 난 저런 단순한 사고방식을 큰 틀에서는 일단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지지한다.
저런 사고방식에 나보다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 사정이고 내 사고방식은 저렇다.

단, 성경적으로 보자면 황금률만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없다. 아무리 나쁜놈이라도 제 자식 위할 줄은 알고(눅 11:13), 겨우 저 정도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그 어떤 불신자라도 딱히 믿음을 행사할 일 없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마 5:46-47).
하나님 역시 인간을 오로지 '심은 대로 거둔다', '병 주고 약 준다' 식으로만 기계적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그렇게만 대했다면 인간이 지금까지 남아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지지하는 것을 얘기했으니, 다음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편이지만 나는 종교 방면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지지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몇 가지 소개하도록 하겠다. 예전에 블로그에다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다시 한데 정리했다.

첫째,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돼라” 같은 요지의 책망이나 권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 취지는 물론 이해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템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당장 눈에 보이는 아이템에서부터 남에게 실족거리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 자체는 100% 성경적이며 본인 역시 아멘이다. 허나, 나 같았으면 우선순위까지 거론하면서 표현을 그런 식으로는 안 하겠다.

나는 종교와 관련해서는 신자나 불신자의 말단의 행실 같은 건 거의 감안하지 않았다. 행실로 치자면 나부터도 완전 개판이다. 나는 크리스천부터 되고 나서야 구제불능이던 행실이 차츰차츰 바로잡히고 상식도 조금씩 입력되어 온 사람이다. 안 그래도 기독교는 선행, 행실이 아니라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인데.. 저건 당장 자기가 대하는 게 불편하고 기분 나쁘다고 행실로 남의 크리스천 지위를 자체를 판단한다는 느낌이 든다. '나쁜 크리스천'이 아니라 아예 크리스천도 아니라는 식으로.

“나는 하나님/예수는 믿지만(사랑하지만 좋아하지만 등등) 교회는 믿지(역시 비슷한) 않는다” 부류의 말도 동일한 맥락에서 싫어함. 그건 불신자 개독안티라면 모를까 최소한 신자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_-;; 그런 판단은 마치 어느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데 타 종교에도 좋은 가르침이 많다고 공자 왈 맹자 왈 석가모니 왈 인용을 자꾸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좋은 종교 가르침이야 심지어 철도교에도 많이 있다! 내가 겨우 그런 수준의 가르침을 원하고 있었다면 예수님을 믿는다거나 금쪽같은 일요일 시간을 희생하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 자체만 가르쳐도 모자랄 금쪽같은 시간 동안 목사가 왜 하필 그렇게 핀트가 어긋난 짓을 하냐는 거다.

둘째, “나는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도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같이 싸우겠습니다” 같은 일면 멋있어 보이고 대인배스러워 보이는 사고방식을 난 지지하지 않는다.
동성애자, 종북 세력, 사형 폐지론자들을 내가 직접 물리적으로 괴롭히고 해코지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남에 의해 박해받거나 법대로 처벌받고 있을 때 그들의 말할 자유를 위해서는 난 죽어도 절대로 같이 싸우지 않을 것이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같은 시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분야의 이념이라면 인간적으로 협업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내 종교관, '신앙'이 타겟이라면... 나치가 나를 덮쳤을 때 나의 구제를 위해서 굳이 공산주의자나 유대인 같은 다른 불신자 그룹들의 인맥 빽 변론 실드가 필요하지 않다.
(물론, 대적들로부터도 행실이 의롭다는 증언을 받으면 이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그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대신, 그럴 때 “너희가 마땅히 할 말을 성령님께서 바로 그 시각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마 10:19, 눅 12:11-12)라는 성경 말씀이 100배 이상 더 먼저 떠올라야 한다. 이게 레알 예수쟁이의 본분이 아니겠는가!

끝으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으니 서로 일체의 판단이나 정죄를 하지 말고 퉁치자는 식으로 성경 말씀을 이상하게 적용하는 양비론 사고방식도 굉장히 싫어한다. '원수를 사랑하라'가 개인이 아니라 무슨 집단,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교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노답. 오늘날이 정교일치가 가능하지 않고 초대 교회 시절 잠깐 이후로 사유재산 공유가 가능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그런 것도 세상 정부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절대적인 타락과 부정부패, 부작용 없이 실현되기가 불가능하다는 뜻)

뭔가 판단을 하고 선악을 따지고 드는 걸, 어디서 성경 몇 자 본 건 있어 가지고 무슨 바리새인인 양 치부하는 사고방식도 완전 질색임. 그런 핑계를 대는 애들치고 바리새인만도 못한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바리새인은 그래도 유일신 신앙을 갖고 있고 내세와 부활이라도 믿었던 종교 꼴통들이다.

마태복음 7장을 예로 들자면, “판단을 하지 말라”처럼 들리는 1~2절 이후로.. “거짓 대언자를 조심하라.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같은 명령이 동일한 chapter에서 버젓이 등장한다. 이건 영락없이 뭔가 남을 '판단해야만' 이행할 수 있는 명령이 아니면 무엇인가. 성경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모순된 책이 아닌 이상, 이것은 서로 다른 context를 말하는 것이니 바르게 나눠서 분간해야만 한다.

성경을 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의문에 해답을 알게 되는 건 물론이고 세상에 왜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일이 많은지, 필요악이라는 게 왜 등장했는지, 그것이 꼭 나에게 나쁘고 해만을 끼치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답이 구해진다. 그래서 굳이 구원이고 영생이고 하늘나라고 그런 것까지 안 가더라도 당장 사람의 정신 건강에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의로운 사람, 약한 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성경에서는 아예 극초반에 등장하는 아벨의 죽음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에 대한 성경의 진술은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여전히 말하고 있느니라.” (히 11:4)이다.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 (빌 1:21)도 있다. 그야말로 인간의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아득하게 초월한 안드로메다 급이다. 정신승리이긴 한데, 그 근거가 아Q처럼 자기 자신의 알량한 근자감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반면, 세상의 불신자 작가가 만든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들은.. “신이 있다면 왜 자꾸 불공평한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 신은 전지전능하지 못하거나, 공의롭지 못하거나 혹은 both일 것이다. ㅋㅋ” 요런 반골 기질 메시지를 집어넣어서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멘탈의 평형 상태를 깨뜨리는 쪽으로 간다.

“피해자 유족이 용서 안 한 가해자를 어떻게 신이 용서해?”처럼 성경 교리를 배배 틀고 왜곡하는 쪽으로 끌고 가는 것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불편하며, 꼴도 보기 싫다. 더 말하면 입만 아프겠지만, 아 글쎄 성경은 명백히 세상 공권력의 사형 집행을 지지한다니까요? 사형 반대하는 다른 종교인들이 잘못하고 있는 거지. -_-;;

기독교적인 관점을 찾자면 정말 볼 영화가 없으니, 차라리 종교색 같은 건 싹 배제하고 원초적인 권선징악 해피엔딩 액션만 추구한 영화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내가 테이큰을 좋아한다. 이상하게 신 같은 거 끌어들일 필요 없이, 인간 흉기 특수요원이 악당들의 본거지를 다 통쾌하게 때려부수고 딸을 구해 내는 게 좋다.
그런 건 육신적이기는 해도 최소한 반성경적이지는 않다. 흉악범들을 제대로 못 잡아내고 처벌도 솜방망이 급으로 내리는 이 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주니 말이다.

확실히 난 종교 쪽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21세기에 보기 드문 못말리는 꼴통이긴 하다. ㅎㅎ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건전하며 내 양심에 진정한 자유를 준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5/03/21 19:20 2015/03/2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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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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