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글은 지난번 글과는 달리 성경과 신앙관을 곁들인 아이템들 위주이다.

1.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거기서도 거의 끝부분인 백보좌 심판 쪽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그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계 20:12, 15)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모든 인생 행적이 기록되고 저장돼 있는 방대한 매체가.. 무슨 거대한 IDC(데이터센터) 서버 컴퓨터라든가, 데이터베이스 백업용 자기 테이프 형태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게 무척 신기하다.
영원에서 영원까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결국은 제일 오래 가는 정보 저장 매체는 '책'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책이라는 정보 저장 매체와 관련하여 이런 엄청난 끝판왕 말씀도 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다른 일들도 많으므로 만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심지어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들을 담지 못할 줄로 나는 생각하노라. 아멘." (요 21:25)
(당연히.. 예수님이 창세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냥 평범한 30대 청년의 일거수일투족 인생 로그만 덤프 뜨는 거라면, 이 세상이라도 책들을 다 담지 못할 거라는 말은 과장일 수밖에 없지.)

2.
'테크노피아'라는 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듯, '테크놀러지 + 유토피아'의 합성어이다. 전자를 통해 후자를 이룬다는 말. 이건 전혀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다. 어느 정도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다.

과학 기술은 수많은 인간(시장경제 논리의 특성상 모든 인간까지는 아니더라도!)을 질병과 굶주림으로부터 구했으며, 단순노동 노가다로부터 해방시켜 줬다. 인간을 돌도끼 들고 야생을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게 해 줬다. 생존본능 지향적인 욕구를 충족시킨 뒤, 더 창의적이고 고차원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해 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슬로건인 Your potential, our passion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걸 경제 제도와도 결부지어서 생각해 보면, 본인은 그저 다국적 기업의 음모, 유대인 재벌의 음모 이러면서 일방적으로 자본주의만을 마귀적으로 몰고 가는 식의 선전 선동에 공감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 황금 만능주의가 아무리 부작용과 폐단, 병크가 있다 해도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그보다 훨씬 더 사악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보다 국가가 개인을 착취하는 게 훨씬 더 악하다. 신앙은 있는데 선악 구도에 대한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지 못한 채 어설픈 정의감만 있으면 흔히 말하는 '좌독' 성향이 되기 쉽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뭐 그런 그렇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국내에서 '테크노피아'라는 말은 지금으로부터 한 30여 년쯤 전에 금성사가 회사 이미지 광고를 내보내면서 썼다. 금성사 하면 국내에서 최초로 흑백 텔레비전을 만들어 낸 업체가 아니던가. LG 전자로 바뀐 뒤 2010년경에 얇은 대형 TV 광고에다가는 "기술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동일한 이념의 광고 카피를 내보내기도 했다.

LG 말고 삼성의 경우는 '휴먼테크'라는 말을 만들어서 오늘날까지 자기네 논문 공모전에다가 쓰고 있다. 그리고 현대 자동차에서도 옛날에 엘란트라를 웬 '휴먼터치 세단'이라는 수식어로 광고했는데.. 어감이 좀 이상했는지 얼마 못 가 '고성능 엘란트라'라고 바꿨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뭘 터치한다는 거지? 사람의 감성?

전세계에 테크노피아에 대한 환상이 처음으로 개발살이 난 때는 1차 세계 대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과학기술 무용론, 문명의 이기 거부 쪽으로 갈 필요는 없다. 이 자연에는 애초에 선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인은 유사의학, 친환경, 백신 반대 이런 거 공감하지 않으며, 원자력 발전도 적극 찬성론자이고.. 뭐 그렇다.

단지 과학 기술은 마치 칼이나 돈처럼 가치 중립적인 도구일 뿐이다. 마치 "총칼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다"라는 말이 있듯, 과학 기술도 저렇게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반대로 사람을 온통 타락시키고 죄 짓게 만드는 데 쓰이는 것 역시 가능하다. 단순히 원자력처럼 물리적으로 위험한 기술만 위험한 게 아니다.

또한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죄 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고 타락 이래로 세상에 내려진 저주와 엔트로피 증가 자체를 거꾸로 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모 성경 구절이 제아무리 패러디 되더라도, 인간에게 진짜로 자유를 선사할 수 있는 건 기술이나 노동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진리'라는 사실도 변함없을 것이다.

3.
그러고 보니, "총칼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일 뿐이다"
이건 특히 미국에서 총기 규제/금지를 반대하고 개인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전미 라이플 협회(NRA) 같은 단체에서 들이대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총기를 금지한다고 해서 금지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결국 진짜 총을 뺏어야 할 나쁜놈들에게서 총을 완전히 없애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니 너라도 총을 구입해서 이 험악한 세상에서 네 목숨 지켜야 한다.. 뭐 이런 논리.

개인적으로는 그 논리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난 크리스천으로서 절대악을 놔두고서 필요악만 나쁘다고 없애자는 식의 논리에는 어떤 형태로든 전혀 찬성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지, 총칼이 사람을 죽이는 거 아니다.
무기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역사적으로 볼 때 시민들이 무장을 강제로 해제당한 뒤에 악당들에게 더 참혹한 꼴 험한 꼴을 많이 당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가 되는 과정에서 군인들은 무장해제 당하고 백성들 역시 사냥용 무기나 위험물은 압수 당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의 지배를 받을 때 무장해제 차원에서 쇠붙이를 몽땅 빼앗겨서 농기구조차 빌려 쓸 지경이 됐었다. 같은 맥락으로, 미국 같은 나라에서 크리스천들이 "총을 빼앗긴 다음에는 성경을 빼앗길 거다" 식으로 생각하는 거 공감한다.

무기를 동원해서 내 집을 내가 지키는 건 부부관계 사생활만큼이나 정말 신성한 권리이며, 그 어떤 이유로든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는 행위는 정말 목숨을 거는 위험한 짓이 돼야 하는 게 마땅하다. 어쩌다 싸이코 미친놈 때문에 발생하는 총기 사고 같은 건 저 자유라는 대전제 하에서 일부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법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뿐이다.

옛날에 영화 배우 찰턴 헤스턴이 한때는 월남전 반전 시위도 했을 정도로 그쪽으로 진보 성향이었으나, 총기 소유에 관한 한은 꼴보수 스탯을 유지해서 NRA 회장으로 활동했던 것 유명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영화 <연평해전>에서는 어째 된 일인지 저 말과는 정반대 심상의 말이 있다.. 총기 소유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쪽으로 반대다.

"약이 사람 살리는 거 아니다. 사람이 사람 살리는 거다." (한 상국 중사. 배 위에서 야식 먹으면서 신참 박 동혁에게)
사람을 살리는 것도 사람, 죽이는 것도 사람. 이게 문득 생각이 났다.
난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지만.. 일단 인상깊게 보는 영화는 대사를 다 외운다.

4.
프로그래머의 최종 테크는 치킨집 사장이고, 억만장자의 최종 테크는 건물주 임대업자라고 한다. (☞ 관련 링크)

오죽했으면 대한민국 땅에서 조물주보다 더 위대한 건 건물주랜다. "의느님", "천당 위에 분당" 이래로 내가 무릎을 쳤을 정도로 기발한 신조어다. =_=;;
"건물은 내가 직접 벌어서는 살 수가 없어요. 받아야죠. 그 방법밖에 없어요." (모 자산 관리소장 인터뷰 중)

난 누구처럼 뭐 지금 사회 구조가 엿같네, 금수저 은수저 계급론 그딴 거 거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돈으로 돈 버는 건 정도의 문제이지 그 자체를 나쁘다고 죄악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도 그놈의 임대업인지 뭔지 하면서 생업 걱정 없이 날개셋 한글 입력기 코딩이나 평생 펑펑 하고 싶긴 하다.

외제 명품 호화 사치 유흥 음주가무 주색잡기 같은 건 정말 하나도 눈꼽만치도 관심 없음. 그리고 돈 너무 많아서 에쿠스만 굴리고 다니느라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도 못 들어본 사람들은 난 교통 분야에 한해서는 전혀 부럽지 않다.
부러운 건 딱 하나. 돈 자체가 아니라 코딩할 시간이 있다는 게 부러울 뿐이다.

물론 아무 부동산이나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100% 돈 놓고 돈 먹기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아무 건물이나 공실률이 없이 빵빵 입주자가 들어오는 게 아님. 이거도 여느 자영업만큼이나, 투자 잘못해서 본전도 못 뽑고 망한 사람이 역시 당연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는 어디에든 땅 내지 집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인 건 사실이다.
구약에 나오는 "땅을 상속 받으리라"가 얼마나 큰 복인지, 그리고 한국 교회가 어째서 물질주의 기복신앙으로 빠져들었고 왜 걸핏하면 땅, 건물에 목숨을 거는지, 왜 "성전 건축 헌금"이 있는지가 이해가 된다.

그에 반해 신약 성도는 세상에서 알박은 거처가 없이, 복은 일단 영적인 형태이며 이 세상에서 순례자(pilgrim)라고만 표현돼 있다. 이것만 생각해도 소위 십일조 헌금이라는 건 교회와 얼마나 안 어울리는 이상한 관행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솔직히 성경은 의식주 중에서 의식에 비해 '주'는 상대적으로 덜 강조한다(딤전 6:8, 눅 3:11, 마 6:25 등).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 성경에는 요셉이 흉년을 빌미로 전국의 모든 농토를 국유화해 버린 게 나온다(창 47). 이때에 요셉이 취한 정책은 일종의 무상 몰수 유상 분배였는데 성경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룻기도 부동산 상속과 관계가 있는 책이고.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 봤으면 싶다.

끝으로 중요한 것. "건물은 내 힘으로 돈 벌어서는 절대로 살 수 없어요. 받아야죠. 그 방법밖에 없어요"에는 의외로 굉장한 성경적인 진리가 담겨 있다.
칭의와 '구원'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저런 관념이 박혔으면 좋겠다. -_-;;

5.
오늘날 인간은 채식만 해서는 제대로 영양 공급을 받을 수 없다. 몸 관리를 위해서는 육류를 통한 단백질 공급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다니엘의 시험이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또한, 소림사에서도 한창 성장을 해야 하는 동자승 내지 무술 수련을 하는 승려들은 고기를 부득이하게 먹는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정작 인간에게 단백질을 공급해 주는 소는 어째서 풀만 먹어도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걸까? 인간 중에서는 거의 최 배달 같은 전문 파이터-_-나 소를 상대했네 뭐네 그러지 않던가?

생물학적으로 간단히만 말하면, 소는 풀로부터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성분도 몽땅 소화해서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뽕'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염소만 해도 셀룰로오스를 소화할 수 있어서 종이를 먹을 수 있는 반면,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동물은 원래 이론적으로는 풀만 먹어도 저렇게 크고 힘센 개체로 성장이 가능하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성경에도 풀을 뜯어 먹는 모습을 유독 소에다 비유한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욥기에서 베헤못이라는 영적 괴물이 소처럼 우적우적 풀을 뜯어 먹는댄다. (욥 40:15)
미래에 천년왕국 때는 땅의 저주가 풀려서 사자도 소처럼 풀만 먹는 초식동물로 바뀔 거랜다. (사 11:7, 65:25) 어렸을 때 교회 댕긴 애들은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노래 기억하실 것이다.
그리고 다니엘서에서도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미쳐 버렸을 때 "소처럼" 풀을 뜯어먹으며 지내게 될 거라고 경고하는 게 나오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한다. (단 4~5)

사람은 소처럼 아무 풀이나 짚을 먹을 수는 없다. 그러니 옛날에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딱히 식량 보급이 없더라도) 길가의 풀을 알아서 뜯어먹으며 진격하라"라는 미친 명령을 내렸던 일본의 졸장 무다구치 렌야 장군이 더욱 병맛스럽게 느껴진다.

뭐, 사람은 풀뿐만이 아니라 고기도 아무렇게나는 못 먹는다. 다른 육식 동물은 야생에서 초식 동물의 생살과 내장을 생으로 뜯어먹고, 반쯤 썩거나 상한 것까지도 막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다. 반드시 익혀서 먹어야 한다. 사람이 기생충 같은 거 오염에 더 취약한 듯하다.

6.
미국의 유명한 찬송시 작사자인 패니 크로스비(1820-1915) 여사는 선천성 기형이 아니라 의료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생후 몇 주 만에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다. 평생 앞을 못 보는 맹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력을 얻을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해도 여전히 맹인으로 살 겁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 눈을 뜨면 사랑하는 예수님 얼굴을 '제일' 먼저 보게 될 테니까요!"

영문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저 말은 크로스비 여사가 아직 살아 있던 1900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주일학교 교재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저 정도 영성은 돼야 평생 8~9000편에 달하는 찬송시를 쓸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이와 대조되는 <아저씨> 대사가 떠올랐다. 그러니 "걔(소미)가 천당으로 엄마 찾으러 갔어. 근데, 눈깔이 없어서 못 찾아. 넌 사람 잘못 건드렸어."라는 대사는 교리적으로 사실이 아님을 크리스천들은 분간할 수 있다.

7.
아이고, 골치아픈 잡생각을 많이 늘어놓았는데, 끝으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스타일의 위대한 성경 목록가 오케스트라를 소개하며 글을 맺겠다.

창세기, 생명의 호흡
출애굽기, 유월절 어린양
레위기, 우리의 대제사장
(...)
잠언, 외치는 지혜
(...)
마태 마가 누가 요한, 하나님, 사람, 메시야
(...)
계시록, 왕들의 왕, 주들의 주


이게 단순히 성경 각 책들의 요약 소개가 아니라, 각 책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고 있다.
First Assembly of God라는 곳에서 공연한 걸로 보이는데.. 정말 웅장하고 훌륭한 찬양이다. 가사는 다 외워 버릴 가치가 있다.

처음엔 조용한 단조풍으로 시작하다가 스케일이 갈수록 커진다. He is. (그분은 계신다, 모든 것이 되신다~~)
난 이미 음성 추출해서 차에서 듣고 있다.
S. M. Lockeridge라는 목사가 1976년에 했다는 "그분은 나의 왕이십니다!"라는 엄청난 설교를 떠올리게 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들어 보시라.

Posted by 사무엘

2016/05/10 19:36 2016/05/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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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관이나 종교관을 논하기에 앞서, 그보다 이념이나 '색깔'이 덜한 나의 인생 철학, 원칙 같은 걸 글로 한데 정리해 본 적이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지지하는 원칙들을 한데 모아 보니 다음과 같다.

  • 세상에 공짜란 없다.
  • 심은 대로 거둔다. 일하지 않았으면 먹지를 말라. (장애인, 노약자는 물론 예외)
  • 일부러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가난한 게 아니라, 일부러 취업을 포기하고 공부를 더 계속하느라 궁핍하게 지내는 것 따위)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 남이 하는 꼬라지가 불만이면, 니가 나서서 한번 해 보든가. ("대안 없는 비판"을 싫어함)
  • 니 자식이 흉악범에게 살해당했을 때에도 사형 반대할 텐가?
  • 니 아들이 남자가 좋다고 데리고 오는 일이 생겨도 동성애 합법화 찬성할 텐가?
  • 니가 스스로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한 노력은 안 하면서 왜 맨날 인물이 없다는 탓만 하는가? (안 창호)
  • 국가(혹은 교회든 무슨 집단이든)가 너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를 기대하지 말고 니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지를 먼저 생각하라. (케네디)
  •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건 나도 때로는 못 지킬 수도 있고, 예수님조차도 바리새인들에 대해 그들이 말하는 것만 본받고 행동은 따라하지 말라고(마 23:3) 분리를 명하셨다. 저놈들을 빌미로 같이 깽판 쳐도 된다고 그러시지 않았다.
    하지만 말과 말조차 일치 안 하고 판단 잣대에 일관성이 없는 건 완전 싫다. (마 11:18-19)

나의 인생 알고리즘이 어떠한지가 좀 읽혀지는가?
이런 것들을 다 황금률 --니가 남들로부터 대접받고 싶은 것만치 너도 남에게 해 줘라(마 7:12)-- 의 일부라고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논리학이나 철학에서 저런 사고방식을 일컫는 용어 같은 게 따로 있지 싶은데..
어쨌든 난 저런 단순한 사고방식을 큰 틀에서는 일단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지지한다.
저런 사고방식에 나보다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 사정이고 내 사고방식은 저렇다.

단, 성경적으로 보자면 황금률만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없다. 아무리 나쁜놈이라도 제 자식 위할 줄은 알고(눅 11:13), 겨우 저 정도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그 어떤 불신자라도 딱히 믿음을 행사할 일 없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마 5:46-47).
하나님 역시 인간을 오로지 '심은 대로 거둔다', '병 주고 약 준다' 식으로만 기계적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그렇게만 대했다면 인간이 지금까지 남아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지지하는 것을 얘기했으니, 다음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편이지만 나는 종교 방면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지지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몇 가지 소개하도록 하겠다. 예전에 블로그에다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다시 한데 정리했다.

첫째,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인간이 되라,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돼라” 같은 요지의 책망이나 권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 취지는 물론 이해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템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당장 눈에 보이는 아이템에서부터 남에게 실족거리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 자체는 100% 성경적이며 본인 역시 아멘이다. 허나, 나 같았으면 우선순위까지 거론하면서 표현을 그런 식으로는 안 하겠다.

나는 종교와 관련해서는 신자나 불신자의 말단의 행실 같은 건 거의 감안하지 않았다. 행실로 치자면 나부터도 완전 개판이다. 나는 크리스천부터 되고 나서야 구제불능이던 행실이 차츰차츰 바로잡히고 상식도 조금씩 입력되어 온 사람이다. 안 그래도 기독교는 선행, 행실이 아니라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인데.. 저건 당장 자기가 대하는 게 불편하고 기분 나쁘다고 행실로 남의 크리스천 지위를 자체를 판단한다는 느낌이 든다. '나쁜 크리스천'이 아니라 아예 크리스천도 아니라는 식으로.

“나는 하나님/예수는 믿지만(사랑하지만 좋아하지만 등등) 교회는 믿지(역시 비슷한) 않는다” 부류의 말도 동일한 맥락에서 싫어함. 그건 불신자 개독안티라면 모를까 최소한 신자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_-;; 그런 판단은 마치 어느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데 타 종교에도 좋은 가르침이 많다고 공자 왈 맹자 왈 석가모니 왈 인용을 자꾸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좋은 종교 가르침이야 심지어 철도교에도 많이 있다! 내가 겨우 그런 수준의 가르침을 원하고 있었다면 예수님을 믿는다거나 금쪽같은 일요일 시간을 희생하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 자체만 가르쳐도 모자랄 금쪽같은 시간 동안 목사가 왜 하필 그렇게 핀트가 어긋난 짓을 하냐는 거다.

둘째, “나는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도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같이 싸우겠습니다” 같은 일면 멋있어 보이고 대인배스러워 보이는 사고방식을 난 지지하지 않는다.
동성애자, 종북 세력, 사형 폐지론자들을 내가 직접 물리적으로 괴롭히고 해코지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남에 의해 박해받거나 법대로 처벌받고 있을 때 그들의 말할 자유를 위해서는 난 죽어도 절대로 같이 싸우지 않을 것이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같은 시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분야의 이념이라면 인간적으로 협업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내 종교관, '신앙'이 타겟이라면... 나치가 나를 덮쳤을 때 나의 구제를 위해서 굳이 공산주의자나 유대인 같은 다른 불신자 그룹들의 인맥 빽 변론 실드가 필요하지 않다.
(물론, 대적들로부터도 행실이 의롭다는 증언을 받으면 이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그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대신, 그럴 때 “너희가 마땅히 할 말을 성령님께서 바로 그 시각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마 10:19, 눅 12:11-12)라는 성경 말씀이 100배 이상 더 먼저 떠올라야 한다. 이게 레알 예수쟁이의 본분이 아니겠는가!

끝으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으니 서로 일체의 판단이나 정죄를 하지 말고 퉁치자는 식으로 성경 말씀을 이상하게 적용하는 양비론 사고방식도 굉장히 싫어한다. '원수를 사랑하라'가 개인이 아니라 무슨 집단,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교리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노답. 오늘날이 정교일치가 가능하지 않고 초대 교회 시절 잠깐 이후로 사유재산 공유가 가능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그런 것도 세상 정부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절대적인 타락과 부정부패, 부작용 없이 실현되기가 불가능하다는 뜻)

뭔가 판단을 하고 선악을 따지고 드는 걸, 어디서 성경 몇 자 본 건 있어 가지고 무슨 바리새인인 양 치부하는 사고방식도 완전 질색임. 그런 핑계를 대는 애들치고 바리새인만도 못한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바리새인은 그래도 유일신 신앙을 갖고 있고 내세와 부활이라도 믿었던 종교 꼴통들이다.

마태복음 7장을 예로 들자면, “판단을 하지 말라”처럼 들리는 1~2절 이후로.. “거짓 대언자를 조심하라.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같은 명령이 동일한 chapter에서 버젓이 등장한다. 이건 영락없이 뭔가 남을 '판단해야만' 이행할 수 있는 명령이 아니면 무엇인가. 성경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모순된 책이 아닌 이상, 이것은 서로 다른 context를 말하는 것이니 바르게 나눠서 분간해야만 한다.

성경을 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의문에 해답을 알게 되는 건 물론이고 세상에 왜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일이 많은지, 필요악이라는 게 왜 등장했는지, 그것이 꼭 나에게 나쁘고 해만을 끼치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답이 구해진다. 그래서 굳이 구원이고 영생이고 하늘나라고 그런 것까지 안 가더라도 당장 사람의 정신 건강에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의로운 사람, 약한 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성경에서는 아예 극초반에 등장하는 아벨의 죽음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에 대한 성경의 진술은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여전히 말하고 있느니라.” (히 11:4)이다.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 (빌 1:21)도 있다. 그야말로 인간의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아득하게 초월한 안드로메다 급이다. 정신승리이긴 한데, 그 근거가 아Q처럼 자기 자신의 알량한 근자감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반면, 세상의 불신자 작가가 만든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들은.. “신이 있다면 왜 자꾸 불공평한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 신은 전지전능하지 못하거나, 공의롭지 못하거나 혹은 both일 것이다. ㅋㅋ” 요런 반골 기질 메시지를 집어넣어서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멘탈의 평형 상태를 깨뜨리는 쪽으로 간다.

“피해자 유족이 용서 안 한 가해자를 어떻게 신이 용서해?”처럼 성경 교리를 배배 틀고 왜곡하는 쪽으로 끌고 가는 것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불편하며, 꼴도 보기 싫다. 더 말하면 입만 아프겠지만, 아 글쎄 성경은 명백히 세상 공권력의 사형 집행을 지지한다니까요? 사형 반대하는 다른 종교인들이 잘못하고 있는 거지. -_-;;

기독교적인 관점을 찾자면 정말 볼 영화가 없으니, 차라리 종교색 같은 건 싹 배제하고 원초적인 권선징악 해피엔딩 액션만 추구한 영화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내가 테이큰을 좋아한다. 이상하게 신 같은 거 끌어들일 필요 없이, 인간 흉기 특수요원이 악당들의 본거지를 다 통쾌하게 때려부수고 딸을 구해 내는 게 좋다.
그런 건 육신적이기는 해도 최소한 반성경적이지는 않다. 흉악범들을 제대로 못 잡아내고 처벌도 솜방망이 급으로 내리는 이 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주니 말이다.

확실히 난 종교 쪽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21세기에 보기 드문 못말리는 꼴통이긴 하다. ㅎㅎ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건전하며 내 양심에 진정한 자유를 준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5/03/21 19:20 2015/03/2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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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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