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수 년 전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는 멘탈이 붕괴되고 매우 비참하게 몰락하긴 했지만, 근본 성품이 무슨 카인, 이세벨, 발람 같은 급의 순악질은 아니었다.

그냥 하나님의 성품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적당히 오락가락 한 정치인이었으며,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점수와 하나님 관점에서의 점수가 매우 크게 차이 나는 사람에 속한다. 요즘으로 치면 구원받고도 계속 죄 짓고 하나님과 제대로 교제하지 못하다가 간증 잃고 건강 잃고 끝내 목숨까지 잃은 불행한 신자와 비슷하다.

본인은 그래도 사울도 구원은 받았으며, 특히 삼상 28에 기록된 엔돌의 무당 씬에서 나타난 사무엘은 진짜가 틀림없다고 글을 썼다. 그는 신약의 바울과 비교되는 상징적인 인물인 데다, 명색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데 하나님이 구원도 못 받은 사람을 자신의 선민들의 왕으로 지명하셨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요 근래에는 사울의 구원 여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삼상 28의 사무엘이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서 논쟁을 벌였다. 가짜설을 믿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이건 마치 재창조 간극 논쟁과도 비슷하다. 저 사울이 진짜였건 가짜였건 그게 크리스천의 구원이나 행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계산 결과가 아니라 계산 과정이다. 저 사람들의 성경관이 본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게 말하면 성경으로 성경을 풀이하는 것에 능숙하지 않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성경이 정확하고 무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는 신· 구약의 시대 차이와 구원관 같은 것도 엉망진창인데, 그것까지 거론했다가는 얘기가 끝이 안 나고 싸움만 날 것이다.. =_=;;;

이런 논쟁을 24시간 맨날천날 해서는 곤란하겠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다. 계산 결과가 아니라 계산 과정의 검증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본인의 근거와 논리를 복습 차원에서 다시 전개하고자 한다.

문제의 인물이 진짜 사무엘인 이유는 (1) 첫째, 성경이 그냥 평이하게 사무엘이라고 말하고 있고, 그걸 특별히 뒤집을 만한 문맥이 주변 어디에도 없으며 관련 참조 구절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 상징? 가짜? 도대체 무슨 근거로?

다른 유사 논쟁거리를 살펴보면..

  • 욥기에서 "네가 시작은 미약해도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같은 것이야 그냥 욥의 친구의 개똥철학 뇌피셜 문맥일 뿐이다.
  • 재창조 간극이야 창세기 1장의 문맥을 넘어 베드로후서나 예레미야 같은 참조 구절들과 연계해서 약간 간접적으로 유도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6천 년 젊은 지구 덕후가 창조과학 진영에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재창조 교리가 주장하는 바도 현 세상의 창조 6천 년 자체는 맞는 얘기이고 단지 큰 전체 그림이 6천 년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6천 년이라는 문자적인 단어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 가룟 유다는.. 그놈 자체가 마귀(요 6:70)라는 말도 있고, 사탄이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고(눅 22:3, 요 13:27), 사탄이 놈의 생각을 주입하고 조종했다는 말도 있다(요 13:2). 이런 건 진짜로 인간과 사탄의 관계에 대해서 입체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표현이 다양하게 나오니까 말이다.

허나, 삼상28의 본문은 다른 참조할 만한 구절이 성경에 없기 때문에 그냥 여기 문맥만 잘 살피면 된다.
15절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16절 "이에 사무엘이 이르되", 20절 "사울이 사무엘의 말들로 인해..".. 그냥 성경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사무엘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의 추측과 달리, 사울 혼자만 쟤가 사무엘이라고 착각한 게 아니다.

그 와중에 저 사무엘이 페이크라면 성경이 독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자기 직관과 안 맞는다는 이유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입다의 딸은 진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윗은 피지배민들에게 그냥 노동만 시켰지 진짜 톱으로 사지를 자르지는 않았을 것이다"(대상 20:3) 같은 온갖 못된 습관이 시작된다. 이게 발전하면 나중에는 "처녀가 아니라 그냥 젊은 아가씨일 것이다", "홍해가 아니라 갈대밭일 것이다"가 되는 것이다.

(2) 그리고 둘째.. 어찌 보면 이게 진짜 중요한 이유인데,
이전 글에도 썼듯이 저 사람의 말에 담긴 미래 예언(사울 부자의 최후)이 매우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적중했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자라매 {주}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그의 말들 중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게 하시니라." (삼상 3:19)


머리털이나 참새가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성경의 다른 부분을 보면 나온다.

"... 곧 {주}께서 아합의 집에 관하여 말씀하신 {주}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 (왕하 10:10)


쉽게 말해 예언 적중이다. 그럼 저 사무엘(?)의 말은 어찌 되었는가?

"... {주}께서 왕국을 네 손에서 찢으사 네 이웃에게 곧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네가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분의 맹렬한 진노를 아말렉에게 집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또한 {주}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주}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리라" (삼상 28:17-19)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완벽한 적중이지 않은가?
성경에서 어둠, 누룩, 썩음이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심상이라면, 예언 성취는 정말 우선순위 0순위의 최상급 긍정적인 심상이다. 애초에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이 담긴 초자연적인 책인 주된 이유도 정확하고 구체적인 예언의 성취이다.

아합 왕을 미혹한 거짓 영이라든가, 욥이 하나님을 저주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사탄 마귀, 예레미야와 맞장 떴던 거짓 대언자 하나냐를 생각해 보라. 성경 어디에도 나쁜놈이 부정적인 팩트 폭격과 정확하게 적중한 바른 예언을 한 경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예언의 적중 여부만으로 진짜 대언자와 거짓 대언자를 구분할 수 있다고 당당히 써 놓기까지 했다(신 18:21-22).

반대자들은 무당만 사무엘을 봤지 사울은 사무엘을 보지도 못했다면서 사무엘 진짜설을 부정하는데.. 사무엘을 봤건 못 봤건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사무엘의 저 말이 가짜가 할 수 있는 말이 절대로 아니었다는 단일 증거만으로도 충분하다.
게다가.. 너무 매정하고 잔인한(?) 말 때문에 사울을 더 낙담시키고 절망시켰다면서 저건 진짜 사무엘의 말이 아니라 그러는데..;; 그건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예수님이 우셨더라"(요 11:35)가 예수님이 나사로가 죽은 게 슬퍼서 우셨다는 말만큼이나 그냥 감성 충만한 견해로 보인다.

사무엘의 말과 관련하여 하나 더 생각할 게 있다.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 같지 않은가?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눅 23:43) 그럼 사무엘이 예수님 같은 구석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그것도 심증상의 증거가 있다. 사무엘과 예수님은 성장 과정에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호의를 입었다고 기록된 유일한 트윈이다. 이것도 누가복음 구절이고,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도 누가복음 구절이다.

  • "아이 사무엘은 점점 자라면서 {주}와 사람들에게 호의를 입었더라." (삼상 2:26)
  • "예수님께서는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호의를 입으시더라." (눅 2:52)

그러니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무엘의 저 말은 거짓 대언자, 마귀 등의 나쁜놈이 내뱉었다고 성경에 기록될 만한 말은 절~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그게 참말이건 거짓말이었건 그와도 무관하게 말이다.
저 말이 마귀 내지 지옥 자식의 입장에서 참말이라면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은 지옥불에서 같이 활활 타고 있을 것이다" 정도의 의미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런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사무엘 가짜설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 건 성경의 난제를 성경으로 풀어 본 경험이 없고, 그냥 자기 직관을 여전히 성경의 관점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단순히,

"사무엘 같은 위대한 신앙 거장이 한낱 무당의 푸닥거리에 소환되다니, 그럴 리가 없다.
진짜 사무엘은 사울과 연을 완전히 끊었으며, 아말렉 전투 이후로 평생 사울을 전혀 만나지 않았다. 사울이 사무엘 사칭 귀신을 진짜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마귀의 예언도 적중할 때가 있다"


이 정도가 전부이다. 먼저 예언 부분을 살펴보자.

물론 마귀 졸개들이 죽은 사람 흉내를 낼 수 있고, 과거 학습을 통해 인간의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도 아주 조금은 맞힐 수 있다. 정확도가 0%라면 애초에 저런 데에 사람이 현혹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허나 그런 잡스러운(??) 예언은 사무엘의 예언과 같은 퀄리티에 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성경 내부의 텍스트를 해석할 때만큼은 마귀의 예언도 적중할 수 있다는 가정은 정말로 전혀 할 필요 없다.

그리고 무당 소환이라.. 다른 성경들은 무당을 그냥 무당 medium이라고 번역했지만, 사실 KJV는 부리는 영..(familiar spirit) 지닌 사람이라고 풀어서 표현했다. 마치 동성애자라고 안 하고 남색하는 자,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성 이렇게 길게 풀어서 표현하듯이 말이다. (내 글 <음란한 성경은 가라> 참고)

부리는 영은 familiar. 말 그대로 친숙한 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무엘이 뿅 소환되었을 때 그 무당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전혀 familiar한 반응이 아니었다. 무당의 푸닥거리 타이밍에 맞춰서 사무엘이 그냥 뿅 나타나 준 거지 애초에 무당이 자기 능력으로 소환해 낸 것도 아니었다. 구약 성도들이 가 있는 지하 낙원에서 대충 이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괘씸해서 내(하나님)가 쟤(사울)에게 응답을 안 하고 가만히 있어 보니, 쟨 아예 무당까지 찾아가는 막장짓을 하는구나. 안 되겠다, 내키지는 않겠지만 네(사무엘)가 좀 가서 딱 한 번만 더 따끔한 돌직구 날려주고 오너라. 쟤한테 지은 죄를 깨닫고 죽을 준비를 하게 최소한의 아량은 베풀어 주도록 하자."


이런 상황에 가깝다.
성경대로라면,

  • 초자연적인 기적이 발생해서 사람이나 식물이 불이 붙어도 타 죽지 않을 수 있다. (출애굽기, 다니엘)
  • 동물이 말을 할 수도 있다. (발락과 발람)
  • 죽은 사람이 올라와(구약 시대 기준) 살아 있는 사람을 잠시 만난다거나, 아예 완전히 살아날 수는 있다.

하지만,

  • 거짓 대언자, 마귀 졸개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한 게 버젓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거나,
  • 하나님이 버젓이 거짓말을 성경에 써 놓는다거나,
  • 신 18:21-22 말씀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가 생긴다거나 할 일은 없다!!

전자는 그냥 단순히 과학적으로만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인 반면, 후자는 아예 하나님의 성품, 성경의 무오성과 정확성을 뒤흔드는 짓거리이지 않은가?

"진짜 사무엘이 무당의 푸닥거리에 맞춰서 나타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정도는 마치 "천사는 인간과 결혼할 수 없다", "짐승에게는 영이 없다"만큼이나 그냥 인간의 편견일 뿐이다. 그 사무엘이 가짜일 때 성경에 야기될 모순과 오류보다는 훨씬 더 개연성이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도 저 사무엘이 문자 그대로 그냥 사무엘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그렇게도 어렵고 납득이 안 된단 말이냐..??

결론을 내리겠다. 거듭 말하지만 성경이 사무엘이라고 말했다면 문자 그대로 사무엘이 맞다. 성경이 자체적으로 정의하는 문맥이나 참조 구절을 통해 다르게 해석하고 보정해야 할 사유가 없는 한, 6일은 문자적인 6일이요, 천 년은 문자적인 천 년, 나사로는 실존 인물, 유대인은 문자적인 유대인, 그리고 저 사무엘은 실제 사무엘이다.

이런 사무엘마저 가짜라면.. 지금 지구와 우주도 6천 년밖에 안 됐는데 하나님이 페이크로 엄청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한 거라는 어거지 논리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통할 수 있지 싶다. 이건 마치 이사야서의 뒷부분은 제2의 다른 이사야가 썼네 하는 소리와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9/07/18 08:33 2019/07/1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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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예전에 한번 다윗과 미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정작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 자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주제 얘기를 작정하고 좀 늘어놓아 보겠다.

구약 성경을 좀 읽은 분들이라면 이미 아시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직후에는 왕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고 사사(재판관)라고 불리는 정치· 종교 지도자가 백성을 통치했다.
정치 삼권 중에서 입법과 행정이 빠진 사법이 부각되어 나오는 점이 특이하다. 입법은 이미 모세의 율법이 있으니 더 건드릴 필요 없고 행정은 글쎄..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니 너희 인간들은 이미 있는 법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법의 집행만 하라는 뜻인 듯하다.

그러니 이 시절의 사사는 말 그대로 판관 포청천 같은 위상이었다. 다만, 본업인 재판만 한 게 아니라 때로는 전쟁을 지휘하고 민족을 외세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시키기도 했다. (혼자 블레셋 사람들을 다 때려잡은 삼손도 사사였으니) 하지만 호화로운 궁전에서 산해진미를 먹고 수많은 종과 상비군을 거느리면서 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른 민족들의 왕과 비교했을 때 '가오'가 안 났다.

이스라엘 역사상 마지막 사사 겸 첫 대언자는 '사무엘'이었다. 그의 시대 때 백성들은 드디어 자기에게 왕을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삼상 8:5).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우리도 이방 민족들처럼 절대권력 국왕 휘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보고 싶지, 하나님 특유의 '그때 그때 달라요' 식의 믿음 행사가 필요한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는 반역의 영으로 인한 결과였다.

한편으로는 사무엘의 아들들이 하는 꼬라지를 보니, 안 그래도 걸핏하면 전쟁에 외세 식민지인데 권력이 부족한 사사 통치 체계로는 나라의 앞날이 영 불안하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도 있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더니"란 표현이 사사기에 도대체 몇 번 나오던가? 사무엘은 인생이 다 좋았는데 자녀 교육만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이런 요구를 듣고는 불쾌한 반응이었지만 "이제 올 것이 왔구나.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긴 하지" 차원에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셨다. 애초에 율법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훗날 왕정으로 전환할 때 왕이 지켜야 할 덕목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기도 했다. "율법 말씀을 필사해서 부지런히 묵상해라", "권력의 상징이라고 해서 사치품인 동물 말을 너무 많이 장만하지 말라" 같은. 신명기 17장을 읽어 보면 참 절묘함이 느껴진다.

단, 하나님은 왕을 가져 본 적이 없던 백성에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거듭 확인시켜 주셨다. 간지 넘치고 뽀대 나는 왕권을 유지시키는 원천은 전~~부 죄다 너희들의 노동력과 세금이라는 것을 말이다.
얘들은 안 그래도 율법에 따라 종교적으로 바쳐야 하는 헌물들이 장난이 아닌데, 거기에다가 정치적인 세금 수탈까지 추가되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왕정이 유지되는 동안 안식년은 사문이 되고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한다. 끊임없이 생산하고 또 생산해야 감당이 되니까.

그때 가서 너무 힘들어 죽겠으니 도로 왕을 없애자고 하소연해 봤자, 대통령도 아니고 한번 왕좌에 앉아서 절대권력의 맛을 봐 버린 왕이 호락호락 하야해 줄까? 천만의 말씀. 역성혁명, 쿠데타 급의 일이 터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는 이상 정세가 그렇게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의 경고는 단순히 "어쭈? 네놈들이 내 통치를 원하지 않는다고? 괘씸한 것들! 어디 엿먹어 봐라" 같은 보복성 공갈 협박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하는 조언이었던 것이다(삼상 8:18). 성경은 생각보다 정치 분야의 통찰도 많이 담긴 책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본인은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라는 그 시절의 역사가 지금으로 치면 "우리에게 자가용을 주소서"와 비슷하게 읽힌다. 차가 있으면 이동이 정말 편리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간지와 뽀대도 많이 난다. 그러나 차도 일단 장만하고 나면 유지비가 도대체 얼마나 깨지던가? 그야말로 그 사람의 생활 패턴과 경제 양상이 확 달라지게 된다. 빚 내 가며 차 잘못 샀다가 도로 무를 수도 없고 손가락만 빨며 카푸어로 전락한 사람 많다.)

아무튼,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은 역사상 전무했고 현재까지도 다시 없는 왕정 체제가 시작되었다.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출되었다. 성경의 사무엘기, 열왕기와 역대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중에서 이런 특이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사울은 키 크고 잘생긴 미남이었다(삼상 9:2). 군사 영도력도 훌륭했고(삼상 14:47-48), 재임 기간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 후임인 다윗과 같은 수준의 큰 병크를 저지른 것도 없었다(밧세바 간음, 인구 조사). 하지만 성경에서의 평가는 다윗과 너무 차이가 난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바닥을 긴다.

사울은 영적으로 점점 타락했다. 다윗이 자신의 위험한 정치 라이벌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서 그를 정당한 이유 없이 죽이려 했으며, 다윗을 신고하지 않고 보호해 줬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막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기가 금지해 놓고는 위급하니까 결국 부리는 영을 지닌 무당을 찾아가서 점괘를 구할 정도로 심각한 막장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런 행적에 대해서 본인은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정말 불신자스러운 '적당히' 세상적인 사고방식의 관점에 아주 충실했다. 세상의 정치판에서 성공하는 데는 이런 유도리 타입이 딱 적절하다.
그는 하나님께 대놓고 반역을 한 게 아니었고, 발람처럼 교묘하게 잔머리를 굴리는 사악한 타입도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 자기 마음을 전적으로 드린 건 아니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완전히 일심동체가 되고 하나님의 심정을 경험하는 그런 영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저런 부분적인 순종과 온전하지 않은 마음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쉬운 것보다 하나님이 광장히 싫어하시는 사고방식이었다.

그래서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잔인하고 부정적인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하나님께 헌물로 바친답시고 가축들을 살려 갖고 왔다. 사무엘이 이를 지적하며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는 그 유명한 말로 책망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 한 듯 회개하지 않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먼저 혼자 휙 가 버리시면 전 뭐가 됩니까? 백성들 앞에서 가오가 안 서니, 같이 좀 나가시죠, 네?"(삼상 15:30)라고 자신의 정치 생명과 체면치레 걱정만 했다.

사실 사울은 예전에도 위급한 상황에서 사무엘이 좀 도착이 늦어진다 싶으니까 자기가 제사장 행세를 하면서 하나님께 헌물을 바친 적이 있었다. 성직과 관련된 절차와 규율이 제멋대로 문란해지는 걸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는 구약 성경 역사서 곳곳에서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이때에도 사울은 제대로 회개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 내지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 같은 영적인 일에 전반적으로 관심이 별로 없는 딱 세속 정치가 타입이었다.

이렇게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근본이 글러먹은 사고방식으로 인해 하나님은 사울에게서 완전히 학을 떼 버리신 것이다. 이것이 사울이 간음과 살인방조죄를 저지른 다윗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나게 저평가되고 있는 이유이다. "내가 이렇게 비참해지면 하나님도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실 것이다"(삼하 16:11-12)라고 말한 다윗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예수 믿는 크리스천은 이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무슨 거지이기라도 해서 사람으로부터 헌물을 받아야만 하고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해 줘야 할 처지가 전혀 아니란 말이다!

자, 사울이 몰락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충분히 분석과 설명이 됐다. 그럼 다음 이야기를 좀 꺼내 보겠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그야말로 사면초가 신세가 됐다. 다윗은 자기가 쫓아낸 상태이고 사무엘은 죽고 없으며, 하나님은 그에게 아무 응답도 주지 않으셨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것은 하나님이 변덕쟁이여서가 아니라 사울이 여전히 자신의 나쁜 버릇을 안 고치고 "흐음.. 대충 기도해 보고 이래도 응답이 없으면 마지막 카드로 점이라도 쳐야겠다" 같은 불순하고 이중적인 마음을 품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으며, 대상 10:13-14에서는 사울이 하나님께 애초에 여쭌 게 아니었다고 진술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있다.
엔돌의 무당이 불러 낸 사무엘은 진짜 사무엘이었을까? (삼상 28:7-14)

나도 옛날에, 한 15~20년쯤 전에는 무당이 불러낸 사무엘이 진짜 사무엘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개 무속인이 그렇게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낼 능력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그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생각이었으며,
또 진짜 사무엘이라면 지금이라도 사울과 다윗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했겠지, 저렇게 잔인하고 매정하게 사울을 멘붕시키고 죽게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는... 인간적이고 '사람을 살리는' 사고방식이 당시에 더 우세했기 때문이다. 마치 입다의 딸이 설마 진짜 죽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물론 지금은 진짜 사무엘이라고 생각이 바뀐 지 오래다.
무당은 평소에 하는 것처럼 사무엘 행세를 하는 부정한 영이나 하나 불러내려고 푸닥거리를 했는데.. 하나님이 그 타이밍에 맞춰 레알 사무엘을 소환시켜 주셨다. 돌발 예외상황이 발생하는 바람에 무당은 깜짝 놀라 자빠지고, 자기에게 온 고객이 무려 이 나라의 왕인 것도 알아채게 됐다.

그 사무엘이 진짜 사무엘인 가장 성경적인 이유는.. 인간적인 거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사무엘의 예언이 다음날 정말 문자 그대로 정확· 정밀하게 적중했기 때문이다. 비록 마귀에게도 예언을 적중시킬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모호하게 한 예언이 어쩌다 부분적으로 적중할 수도 있지만, 일단 저 문맥에서 사무엘이 가짜라고 생각하기에는 "예언의 성취"라는 건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너무 너무 긍정적으로 흐르는 심상이다.
욥의 행동에 대해 사탄이 예언한 것, 이스라엘을 말아먹은 거짓 대언자들의 온갖 거짓 예언들 등등과 비교했을 때 말이다. "예언의 성취 여부"만이 중요하지 그 예언에 담긴 메시지가 긍정적인 내용이냐 부정적인 내용이냐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런 것들이 성경을 많이 읽으면 자연스럽게 사고방식이 성경의 저술 분위기대로 바뀌는 현상이다.
다른 예로, 한때는 예수님이 그저 인간적인 감정 때문에 피땀 흘리면서 울부짖었고, 동정과 연민 때문에 울었을 거라고 나도 실제로 생각했다. 하지만 성경을 제대로 많이 읽고 나면.. 그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셨다는 게 납득이 되게 된다. 그런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끝으로, 사울은 죽어서 어디로 갔을까 하는 문제가 있다. 말년에 너무 타락했고 자살까지 했는데 도저히 하늘로 갔을 것 같지 않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 듯. 성경에서도 사울은 신약에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단서를 얻을 수도 없다.

단지, 하나님께서 구원조차 못 받은 사람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아무래도 사울도 구원받은 사람인 사무엘 내지 요나단과 같이 있을 거라는(= 낙원에) 언질이 있으니(삼상 28:19) 굳이 따지자면 사울도 구원은 부끄럽게나마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일단은 지배적이다.
신약에 부끄러운 구원의 상징으로 아나니야와 삽비라가 있다면, 구약에서는 사울이 그와 비슷한 급이 아닐까 싶다.

관심 있는 분은, 사울 왕과 관련된 의문을 더 자세하게 다룬 윤 성목 목사님의 글을 참고하시라.
난 아시다시피 '새마을'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사무엘'이라는 이름을 닉으로 쓰고 있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5/06/21 08:28 2015/06/2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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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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