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 관순 열사의 모습

유 관순은 겨우 100여 년 남짓 전의 근현대 사람이고 초등학교 위인전에서도 언급되는 톱 네임드급 위인인 것치고는.. 검증되지 않은 myth와 알 수 없는 mystery가 의외로 많은 인물이다.
그래서 비교적 최근까지도 추가적인 사료 발굴을 통해 정정된 사항들이 적지 않다. 오랫동안 1904년생으로 알려졌다가 1902년생으로 정정되고, 징역 7년형이던 게 5년으로 바뀌고, 형무소에서의 정확한 사인도 2013년에야 기록을 통해 밝혀졌지 않던가?

그 뿐만이 아니다. 이분은 멀쩡히 서울에서 순국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해가 남아 있지 않고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도 극히 드물다.
의열단 내지 한인애국단 소속의 독립투사들이 거사를 벌이기 전에 근사하게 혹은 비장하게 포즈를 취한 사진을 남기곤 했지만(안 중근, 윤 봉길, 이 봉창..) 유 관순은 그렇지 않다.

물론 그녀는 학생이었고, 만세 운동 자체를 "난 오늘만 산다" 급으로 무조건 죽을 각오를 하고 벌인 건 아니었다. 애초에 "난 오늘만 산다" 같은 항일 투쟁 패러다임 자체가 3· 1 운동이 실패하고 이런 만세 시위만으로는 독립을 쟁취할 수 없겠다 싶으니까 등장한 것이다. 또한 그때는 경제력 없는 어린 학생이 사진을 쉽게 남길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 1 운동 전날 밤에 유 관순이 자기가 직접 그린 태극기 하나 들고 동지나 친구들하고 포즈를 취한 인증샷 하나 없는 것은 일면 아쉬운(?) 점이다.
오죽했으면, 얼마나 사진이 없었으면 유 관순의 공신력 있는 독사진--단체로 같이 찍힌 것 말고--이랍시고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일제가 찍은 죄수 머그샷밖에 없다! 이게 유일하다. 신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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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맹목적인 국뽕 반일 종족주의를 배격하고 조선 시대를 극혐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모 진영에서는 이 사진에 대해서 이렇게 의혹을 제기했다.
그 시절에는 미혼 소녀는 댕기머리이고 기혼 여성은 비녀+쪽머리가 보편적이었는데, 미혼인 유 관순이 왜 유부녀 헤어스타일이냐는 것이다.

유 관순은 안 그래도 저렇게 온통 의혹투성이인 인물인데 저 사진은 애초에 이화학당 학생 유 관순이 아니라 아예 다른 유부녀 동명이인 아줌마가 아니냐는 극단적인 의문까지 제기한다..;; 헐..
황당해 보이지만 완전 터무니없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다음은 유 관순의 형무소 동기이던 임 명애 열사의 머그샷이다. 이분은 1886년생으로 유 관순보다 띠동갑 이상으로 나이가 더 많았고 진짜 유부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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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명애와 비슷한 연배의 유부녀인 어 윤희 열사도 머그샷이 이와 비슷한 풍이다.
그 반면, 1919년 말과 이듬해에 만세 시위 시즌 2를 일으켰다가 경찰서 정모를 했던 비슷한 연배의 여학생들 사진을 보자. 박 양순, 박 신삼은 명백하게 댕기머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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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화라는 학생은 댕기를 머리 위로 감아올린 것을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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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10대 학생들은 얼굴이 명백하게 앳되어 보이는 반면, 오늘날 전해지는 유 관순의 얼굴은 꽤 노안이다. 내가 보기엔 인상으로나 헤어스타일로나 학생보다는 아줌마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_=;; 물론 우리는 그 이유가 고문과 구타를 너무 많이 당해서 얼굴이 부어 터졌기 때문이라고 배워 왔다.

그럼 학생과 아줌마의 중간에 속하는 이 사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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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순경 열사는 1902년생으로 유 관순과 동갑이다. 다만, 투옥되었던 당시에 학생은 아니었고, 학교를 졸업해서 세브란스 병원의 간호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딱 1920년 당시에 이분이 벌써 결혼까지 한 상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아니었던 것 같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서 구체적인 개인사가 전해지지는 않으나, 이분의 장녀라는 사람이 1920년대 중후반생으로 추정된다. 그 시절의 결혼 생활이 아이 없이 신혼만 5~6년씩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순경의 헤어스타일은 유 관순과 비슷한 쪽머리이다. 이 정도라면 저 시절 머그샷 사진의 헤어스타일과 당사자의 결혼 여부에 딱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겨우 그 정도 의심스러운 정황만으로 유 관순 사진 자체가 가짜라는 결론을 내리는 건 좀 무리일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윤 봉길의 체포 장면 사진을 갖고도 저건 진짜 윤 봉길 사진이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가 재반박되고.. 그 정도 합리적인 의심과 의혹 제기 및 검증은 건전한 학문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유 관순은 10대 소녀라는 특이한 프로필로 인해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게 너무 많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최근에 추가로 발견되었다는 유 관순의 이화학당 입학 초기 사진을 첨부하며 이 주제의 이야기를 마치겠다. 이 얼굴이랑 불과 몇 년 뒤의 형무소 머그샷이 동일 인물이라 간주할 수 있겠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이거 무슨 광수 얼굴 찾기 게임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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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 기철 목사의 일화

예전부터 여러 번 언급한 적 있는 사항들을 다시 정리하자면..
본인은 예수쟁이 신자로서 주 기철 목사를 매우 존경한다. “다섯 가지 나의 소원”이라는 그의 설교문은 오래 전부터 내 타자연습 프로그램의 연습글로도 들어가 있었을 정도이다. 다만,

(1) 저 사람이 대단한 거지, 그 당시에 가족을 동반한 집요한 협박에 못 이겨서 신사참배에 타협한 다른 사람들을 ‘도를 넘게’ 욕하거나 매도하지는 않는다.
그 시절에 총독부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서 윤 봉길 의사를 비난하는 보도를 냈던 국내 언론사들을 친일매국(?) 어용언론이라고 욕하는 게 아무 쓰잘데기없는 어리석은 짓인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2) 전설처럼 따라다니는 ‘맨발로 못 위를 걸은 일화’는 도대체 언제 어느 형무소(의성? 평양?)에서 벌어진 일이고 출처가 누구의 증언이며, 신빙성이 있는 사건인지 내 노력으로는 분별과 검증을 더 못 하겠다.
일본으로부터 저 정도로 비슷한 레벨의 끔찍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어떤 분야의 지조를 지킨 건 신라 박 제상 이래로 처음이 아닌가 싶은데..?

(3) 한국의 기독교 수난사 순교사가 오로지 일제 말기밖에 없었던 것처럼 분위기가 흘러가는 것을 매우 불편하고 불쾌하게 생각한다.
1950년 가을~겨울에 전국 각지에서 온갖 냉병기로 두들겨맞고 머리에 총알 박혀 순교한 더 많은 순교자들을 언급하는 건 무슨 정치 발언으로 매도돼 가니.. 정말 어이가 없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분별력을 지닌 상태가 아니다. 3· 1 운동 당시에 유 관순 말고 다른 여성 독립 운동가들도 재조명되어야 하듯, 이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3. 신념형 친일파 박 중양

세상에 유 관순이나 주 기철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구한말부터 일제 말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인 중에는 아무 사심 없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가깝게 지내기를 원했던 친일파도 있었고, 돈과 벼슬까지 받으면서 나라를 팔아먹은 나쁜놈, 마냥 생계형 부역이라고 실드 치기에는 도를 넘은 부역자 등 여러 종류의 친일파가 존재했다.

특히 세월이 흐르면서 1930년대쯤부터는 일본은 절대 망할 일이 없고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하는 건 아예 불가능하겠다는 인식이 짙어졌다. 그건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니 인정하고, 일본 내에서 2등 신민인 조선인의 인권과 권익을 향상시키는 운동을 하는 게 순리이겠다고 노선이 바뀌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박 중양(1872-1959)이라는 인물은.. 부귀영화와 개인 영달 기회주의형이 아니라 그냥 조선을 자기 신념상 너무 혐오해서 충성의 대상을 일본 정부로 바꾼 좀 이례적인 사람이었다. 김 옥균 같은 친일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개화파들이 잔혹하기 그지없게 가족까지 몽땅 숙청되는 걸 보고는 이놈의 X같은 야만적인 나라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앞장서지는 않았고,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하고 괴롭힌 것도 아니고.. 일제 시대 때 일본으로부터 월급 받는 관료로서는 아주 강직 청렴하게 처신했다고 한다. 다른 일본인들을 부하로 부릴 정도로 높은 등급의 관료가 됐으니 원... 윤 치호와 비슷한 위치 같은데.. 그 사람보다는 한 타이밍 더 일찍 신념이 저렇게 바뀐 셈이다.

해방 후에 반민특위에 회부됐을 때도 이 사람은 "일제가 그렇게 폭삭 망할지 몰랐어~! 그래도 처자식 먹여 살려야 했잖아!" 같은 구차한 변명 따위 없었다. "조선인들은 더 고매한 일본인의 통치를 받는 게 객관적으로 더 이익이다"라는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저 팩트가 마음에 안 들어서 굳이 날 죽여야겠다면 죽여라. 난 아무 미련 없다. 하지만 나 말고 일제 시대 유능한 인재들을 친일파로 몰아서 해코지하지 말고 오히려 잘 이용해 먹을 생각을 해라. 그리고 애국자의 탈을 쓴 다른 위선자들에게 속지 마라."라고 당당하게 덧붙였다..;;

그러니 이 양반은 돈과 권력을 좇는 여느 기회주의형 악랄 친일파는 아니라는 것에 조사관들의 견해가 일치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저 양반은 투옥과 처벌이 아니라 정신 감정이 필요하다"였다.

뭐, 조선 정부에서(고종과 민 씨 일가..) 개화파를 완전히 박살을 내는 현실을 똑같이 보고서 박 중양은 신념형 친일로 돌아섰다. 윤 치호도 자국민의 국민성에 절망한 나머지 변절해 버렸다. 하지만 구한말 때 직접 죽을 위기를 겪었던 이 승만은 그리하지 않았다. 우리는 솔직히 할배에 대해서는 그의 독선을 욕할 게 아니라 무슨 뚝심과 근자감으로 조선이 망한 후에도 외국에서 무국적자로 살면서 줄곧 독립 운동을 했는지.. 그걸 더 대단하게 여겨야 하지 싶다.

4. 이 승만 정권 때 처형 당한 최 능진, 조 봉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첫 헌정 체제이던 이 승만 1공화국은 군사정권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단과 6· 25 전쟁을 직접 겪었던 만큼 반공 성향이 매우 강했으며, 나라 분위기가 그쪽으로는 극도로 민감하고 경직돼 있었다. 통일이라는 건 당연히 북진 멸공 통일을 해야지, 감히 화해와 평화 통일 운운하는 것만으로도 빨갱이로 몰리고 잡혀갈 수 있었다.

난 개인적인 신념으로는 그게 이해가 되며 일면 옳다고도 생각한다. 김 일성 같은 사악한 저질 집단은 애초에 대화고 화해 따위가 가능한 상대가 아니다. 놈들의 개수작에 속지 말고, 힘으로 완전히 없애 버릴 수 없다면 단호하게 분리와 격리라도 하는 게 백 번 옳다. 통째로 적화통일이 될 뻔했던 것을 온갖 개지랄 발광 발악을 한 끝에 겨우 반반으로 퉁친 것이다.

다만, 모든 애국자나 독립운동가들이 국제 정세를 보는 안목이 할배와 같지 않았으며,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에 대한 정확한 분별력을 지니지는 못했다. 저것들은 지금 나라의 여건상 친일 부역자 출신 군경을 동원해서라도 몽땅 제거해야 한다는 것까지 생각이 일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최 능진의 경우 경찰 고위 간부로서는 아주 이례적으로 친일 부역자 청산을 부르짖었고, 이 때문에 이 승만뿐만 아니라 조 병옥과도 크게 대립하여 갈등을 빚었다. 최 능진은 과거의 일제 시절부터도 안 창호 라인이었고 독불장군인 이 승만을 싫어했다.

결국 이 사람은 이 승만 정권의 눈밖에 나고 종종 체포되고 투옥되다가.. 결국 6· 25 전쟁 중에 '혁명의용군 사건'에 연루되어 빨갱이 부역 혐의로 처형당했다.
훗날 비슷한 연배의 조 봉암(1898-1959)이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된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들은 통일도 대화와 평화 노선을 주장했다.

자, 지금 할배를 정치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승만의 국제연맹 위임 통치 청원을 보고도 나라를 팔아먹네 뭐네 매국노네 하면서 날뛴다. 그렇지 않은가?
1950년에 조 봉암이 제안했던 "UN 감시 하의 총선거를 통한 평화 통일"은 그들이 국제연맹 위임 청원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빨갱이로 몰리기 딱 좋은 혐오 발언이었다. 두 케이스 다 발언 당사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오해가 있었다.

솔직히 이 승만이 외교 노선을 아무리 펴봤자 국제 연맹 시절의 강대국들이 일본의 합법적인 식민지이던 조선의 독립에 관심이 없었다. 그와 완전 동급이다. 저런 민족주의자 애국자들도, 개인으로서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북괴가 공산 적화 흉계를 내려놓을 리는 만무했으며 남북 평화 통일 따위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우리 끼리 친일 청산도 다 하고 공산화도 되지 않은 깨끗한 나라..? 도대체 무슨 수로 가능하다는 건가? 이렇게 국민성 더럽고 국력은 쥐뿔도 없던 헬조선 반도 땅에서? 이 승만 없이 김 구나 여 운형만 대통령 됐으면? 광복군이 제대로 참전만 했으면? 그러면 김 일성도 이렇게 흑화하지 않고 개과천선했을까? 허 참.. 난 내 사고실험의 결과를 봐서는 전혀 상상이나 동의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인생을 산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는 7, 80년 전 같은 무지와 야만의 시대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반쯤 불가피, 반쯤 지나친 오바). 그리고 빨갱이 자체가 없어진다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서 고생하는 사람도 없어질 테니 이 나라의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09 08:33 2020/09/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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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 상묵(1916-1984)이라는 사람은 살았던 시기와 젊은 시절 행적과 프로필이 원조가카(1917-1979)하고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기 때문에 같이 비교해 볼 만하다.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해서 교사를 몇 년 하다가 그만두고 일본군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교사만 해도 수입 안정적이고 명예와 처우가 좋은 매우 훌륭한 직업인데.. 그걸로 만족하지 않고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갔다는 점에서 이건 이례적이었다.

물론 이건 1930년대 말 이후가 돼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일제가 전쟁을 벌이느라 일손이 부족해졌기 때문에 조선인까지 징병제로 징집하기 시작했으며, 더 나아가 황족이 아닌 평민 조선인에게도 일본군 간부가 될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인에게 총을 믿고 쥐어주고 자기 군대를 맡기기 위해서는.. 내선일체와 조선 민족 정체성 말살 프로파간다를 미치도록 밀어붙여야만 했다.

이 와중에 신 상묵과 원조가카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이들은 교사가 된 덕분에 또래 청년들과 달리 군대 걱정을 별로 할 필요가 없었다. "징병제 때문에 기왕 군대에 끌려갈 거라면, 더 공부하고 준비해서 병이 아닌 간부로 다녀오자"가 아니었다.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입신양명을 위해 일본군 간부에 지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세부 디테일은 좀 차이가 있었다.

신 상묵은 부사관을 지원해서 오장/조장, 지금 국군으로 치면 거의 상사· 원사급에 올랐다. 근무지도 조선의 일본군 헌병대로, 정말 대놓고 항일 인사들을 고문하고 동족을 괴롭히는 경찰 같은 군인 보직을 맡았다.

1940년대 일제 말기에는 한반도 내부에서 옛날 같은 수준의 독립 운동이야 이미 씨가 마른 상태였다. 그저 일부 자잘한 비밀 결사 수준의 국지적 저항이나 있을 뿐이었는데.. 그 중 하나였던 "무궁당 사건"의 수사와 피의자 취조를 이 사람이 했다. 당연히 악랄하게 했다. 이런 바닥에서 조선인이 단순히 헌병 보조원 끄나풀을 넘어서 최상위 간부 계급에 짧은 시간 만에 도달한 것은 아무래도 구린 실적이 좋았던 덕분일 것이다.

2.
그에 비해 박 정희는?
부사관보다 더 되기 어려운 장교가 되기 위해서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만주 군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사를 들어갔다.
그는 거기서도 성적 우수자여서 온갖 특혜가 주어졌지만, 최소한 조선 본토에 오지 않았으며 타지에서도 있지도 않은 동족 독립군이 아니라 중공군과 싸우러 갔다. 하긴, 한 나라의 육사까지 나온 장교에게 겨우 헌병은 완전 재능낭비의 비전투 한직 병과일 테니..

요컨대 원조가카는 신 상묵보다 더 노력해서 더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신 상묵보다 훨씬 덜 악질적으로 일본군 복무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긴 칼 차고 돌아와서 교사 시절에 자기를 깔보고 무시하던 일본인 동료들에게 설욕을 했다.

이 정도면 그의 의도는.. 본인이 누차 강조하지만 그냥 현실 불만족으로 인한 출세욕, 신분 상승 욕구였을 뿐이다.
오늘날로 치면 카이스트 졸업하고 나서 국내 공돌이들의 처우가 불만족스러워서 로스쿨, 의전을 다시 들어갔거나,
유명 운동 선수가 여러 처우 문제 때문에 외국으로 귀화한 것 정도의 일탈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1940년대에 무슨 스포츠팀처럼 한국군과 일본군을 선택 가능하기라도 했었나? (광복군은 뭐...;; 논외로 하자. -_-)
그 시절에 일제로부터 월급 받는 업종에 종사했던 모든 조선인을 싸잡아 친일파 매국노라고 욕할 게 아니라면, 이 이상의 쓸데없는 친일파 헛소리는 논할 가치가 없다.

3.
그러고 보니 이 종찬(1916-1983)도 저 두 사람과 거의 같은 연배이고 일본군 복무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다만, 이 사람은 부역자 수준을 넘어 진짜 매국노급 친일파인.. 이 하영의 후손이어서 집이 귀족 금수저 가문이었다. 그는 그런 빽 덕분에 박 정희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일본 육사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기를 쓰고 거기 들어가려고 누구처럼 멸사봉공 혈서 따위 안 써도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방 후에 참 군인 소리 들을 개념 행적을 많이 남겼으며, 이에 대해서는 할배나 원조가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저 사람은 애초에 일본군 복무하던 시절에도 비윤리적인 명령에 대해 "본인은 천황 폐하께서 그런 명령을 내리셨을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소신껏 항명을 할 정도로 강직했다.

4.
또한, 먼저 언급했던 저 신 상묵의 아들이 바로.. 국회의원 출신에다 열린우리당, 더불어민주당 진영에서 지금도 잘나가고 있는 정치인 신 기남이다.
이 사람은 다른 건 모르겠고 지난 2000년대에 한글날의 국경일 재지정에 관심을 많이 갖고 애썼던 덕분에 한글 학회 등 관련 운동 단체로부터 애국자라고 칭송받고 상도 잔뜩 받았었다. 그랬는데 부친의 과거 이력 흑역사가 뒤늦게 알려져서 곤혹을 치렀다.

5.
두 사람 얘기만 하려다가 세 사람 얘기가 돼 버렸는데..
내가 이런 얘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한쪽에다가만 친일파 프레임 씌우는 불순하고 멍청한 수작에 속는 사람이 없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것도 본인의 오래된 생각이고 누차 강조하는 사항인데.. 우리나라가 겨우 1940년대 말 건국 초기에 일제 군경 경력자를 재등용한 것은 Windows 95가 그때 컴터 환경의 한계상 도스/16비트 코드를 그대로 수용했던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당장은 신 상묵 같은 사람이 없으면 안 됐다. 항일 인사를 잡던 그 수사 기술이라도 재활용해서 일본놈보다 더 질 나쁜 빨갱이들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 상묵은 해방 후에 대한민국에서는 원조가카 같은 군인이 아니라, 경찰 간부가 됐다.

오죽했으면 그 시절에 반민특위를 해체했던 법무부 장관조차도 골수 친일파이기는 개뿔, 항일인사 독립운동가 출신이고 한글 학회에 엄청난 사재를 기부한 민족주의자였다.
필요 이상의 쓸데없는 망상을 30대 나이가 넘어서까지 갖고 있어서는 심히 곤란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0/03/04 19:35 2020/03/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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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문제 끝장내기

난 소위 말하는 친일파· 민족 반역자라는 건 다음과 같은 세 그룹으로 나뉘며, 이들을 분명히 나눠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A: 매국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예우 받고, 당대에나 지금까지도 일체의 참회 없이 대대로 금수저로 잘 쳐먹고 잘살고 있어서 어그로 (조선 말기의 일부 관료· 지주· 황족 출신과 그 후손)
  • B: 일제 강점기 동안 독립운동가를 고문하고 때려잡는 짓을 해서 어그로 (악질 헌병· 경찰 복무자)
  • C: 공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 먹고 살려고 권력에 아부하고, 자기 인지도를 이용해서 신사참배 내지 황국신민 징병 권유 같은 짓을 해서 어그로

그리고 난 이들의 적극성과 죄질은 명백하게 A > B > C의 순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비주얼한 임팩트는 B가 가장 강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A가 앞선다. 시간적인 등장 순서도 A, B, C의 순에 가깝고, 해당되는 사람 수도 A < B < C로 갈수록 많아진다.
점점 더 당대 사람의 책임보다는 애초에 나라를 말아먹은 선조의 책임이 더 커지며, 죄질이 가벼워지고 정상 참작의 사유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단적인 예로, 내가 그 시절을 살았다고 가정하더라도 내가 C가 될 가능성은 조금 있지만 B나 A 같은 간 큰 짓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제 강점기 35년을 나치 치하에 한 몇 년만 점령당했던 프랑스하고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본데, 어디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세대가 바뀌어 버리니 한반도의 경우 해방 당시엔 태극기 모양을 기억 못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고 어린애들은 "어? 우리나라(=일본)가 전쟁에서 졌는데 왜 어른들이 다들 기뻐해?" 이럴 정도였다. 프랑스가 나치 독일한테 이렇게까지 오래 점령당하고 세뇌당했었냐? -_-;;

이 완용· 송 병준 같은 놈들은 A이고, 노 덕술은 B, 김 활란 같은 사람은 C다. 박 정희가 B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 증거는 없다. 그냥 평범한 도적을 잡는 일만 한 경찰이나 중공군하고만 싸운 군인이라면 난 문제삼지 않음.
그 시절에 일제 치하의 공무원(교사, 경찰, 헌병 등등)에 취업하려 한 것 자체는 요즘 애들이 전부 공무원, 대기업에만 몰리고 과학고 나와서 의대에만 몰리는 것하고 하나도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공부 잘하면 다들 남을 통솔하고 다스리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어하지, 너 같았으면 평생 농사만 짓거나 프롤레타리아 로동자 기술자로만 살았겠는가? 굳이 "조센징 엿먹어라"가 아니라 단순 출세욕 때문이라는 것이다.

난 죄질을 A > B > C의 순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똑같은 일제 강점기 여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인데 C급인 <청연>은 친일 논란에 휩싸이면서 망한 반면, A급에 '준하는' <덕혜옹주>나 <명성황후>는 어째 항일투사로 미화되면서 필요 이상으로 흥행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비록 그 사람들은 적극적인 매국노와 같은 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한 것도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그 시절에 이 완용 내지 을사오적 같은 특정 개인 몇 놈만 없었다고 해서 대세가 뒤엎어졌다거나 나라가 안 망할 수 있었다거나 한 게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만, 이 완용이 진짜 개새끼인 이유는 매국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뒤의 태도와 처신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로 그 어떤 실드의 여지도 없다.

A, B는 몰라도 C는 법적인 처벌까지는 아니고 도의적인 비판· 비난, 불이익 수준이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음주운전 적발 경력 같은?
그 시절에 일제한테 그 정도 협조 내지 영혼 없는 립서비스조차 안 했으면 조선인이 기업을 경영하고 고급 기술을 그만치 만질 기회라고는 있을 수 없었을 거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그땐 그랬다 치더라도 해방 후에도 일말의 반성이 없이 고개 꼿꼿하게 세우고 잘나가고 있다면 그 꼴은 보기가 참 민망하겠지만, 그래도 C 욕하는 그 의협심 강한 깨시민들도.. 자기가 그런 위기에 처하면 걔네 역시 십중팔구 변절하고 깃발 바꿔 달 거라는 건 내가 절대 장담한다. -_-;; 지금 중국에 대한 태도만 봐도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다.

신사참배 갖고 한국 교회가 썩었네 어쩌네 하는 좌독들이 있다. 물론 신사참배 결의는 한국 교회의 치욕적인 흑역사인 건 사실이다. 또한, 이 역시 외압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결의한 것 자체보다도, 해방 후에까지 곧장 참회하지 않고 뻣뻣한 목을 유지한 것이 더 큰 죄악이긴 하다.

허나, 한편으로는 지들은 그 상황에서 과연 꼿꼿하게 버텼을까? 일제가 그땐 가족까지 인질로 잡아서 얼마나 치사하고 악독하게 협박과 회유를 일삼았는데? 흔히 생각하는 단순히 부정부패 때문에 굴복한 거 아니다! 그런 것들을 감안해서 판단한다. 저건 비판받을 사항이긴 하나, 자기가 도덕적으로 우월한양 정죄를 일삼고 교회 정체성을 부정할 정도는 명백히 아니다.

우리나라가 건국 초기에 반민특위의 해체와 친일 군경· 관리 재등용 때문에 문제가 되고 좌빨들에게 두고두고 꼬투리를 잡히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건 C보다는 수위가 높은 B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아마 롤모델로 삼고 있을 북한조차도 B들을 재등용해서 쓴 건 동일할 뿐만 아니라, 내가 늘 말하지만 그건 정말 전적으로 불가피하게 그렇게 된 것이다. 인재가 부족해서 말이다.

"친일 군경들이 해방 후에 그대로 옷만 갈아입고 반공투사로 변신"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이건 절~대로 부정적이기만 한 현상이 아니다! 그땐 그런 반공투사라도 없으면 안 됐다! 그 시절에 불가능했던 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자꾸 이상한 피해의식 망상 집어넣는 선동질에 속지 마라.

우리나라는 건국 당시에 대통령과 내각 등 브레인들이야 당연히 다 독립운동가에 광복군 출신이었다. 단지, 말단에서 궂은일 하는 중하급 군경 간부들 중에는 일제 부역자들이 있었다. 이거는 램 4MB에서 돌아가는 Windows 95가 32비트 껍데기 밑에 불안정한 16비트 도스 코드가 부득이하게 호환성 때문에 여전히 포함돼 있던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건국 당시의 백성들의 컴퓨터 사정은 Windows NT 따위는 절대로 돌릴 수 없는 여건이었으니 말이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남는 A급 잔당들은?
일일이 색출해서 재산 몰수했으면 좋겠지만 워낙 극소수이기도 하고 B급과 겹치는 놈도 있고, 그 혼란한 와중에 일일이 죄질을 파악해서 공산당 식으로 일을 처리하기 어려웠다. 이런 놈들이 일부 오늘날까지 호의호식하고 있는 건 안타깝고 화가 나긴 하지만, 정말로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 비관하고 탓할 정도는 절대 아니다.

2010년이던가, 산낙지 살인 사건 기억하는가? 이건 단순 사고가 아니라 보험사기를 노리고 남자가 여친을 살해한 악질 살인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모든 심증 정황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증거가 없고 피해자인 여자애가 일찍 화장되어 없어져 버리는 바람에 용의자는 증거불충분으로 덜컥 무죄 선고를 받아 버렸다! 그런 것과 비슷하다. 세상엔 그런 분통 터지는 일도 있다. 무고한 사람을 막 빨갱이로 몰아가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든 '유죄 추정의 원칙'만큼이나, '무죄 추정의 원칙'도 이런 식으로 한계와 부작용이 있는 법이다. 100% 만능이 아니다.

또 다른 예로는, 가평과 춘천 사이에 있는 남이섬 유원지가 A급 친일파 반역자 민 모 씨 가문의 후예 소유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직접적으로 일제로부터 향응 차원에서 남이섬을 하사받기라도 한 건 아니다. 그랬으면 해방 후에 국가에서 정말 0순위로 몰수했어야지. 반쯤은 자기들이 원래부터 한국은행장도 배출할 정도로 출세하기도 했고, 그래서 1970년대에 자기 돈 내고 전주인으로부터 남이섬을 통째로 산 거라고 한다. 이 정도면 어디까지가 친일매국의 댓가이고 어디부터가 개인 사유재산권 추구인지 따지기가 솔직히 모호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명백한 친일파 후손이 남이섬을 우리나라 안의 딴 세상 '나미나라 공화국'처럼 꾸며 놓았다는 걸 알면 그게 마냥 재미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잠재적 내란죄? 남이섬이 평범한 국공립 유원지라면 마케팅을 그런 식으로 할 리는 절대 만무하지 않겠는가?
거기서 한 해 벌어들이는 입장료 수입이 어마어마하다던데, 이 문제에 양심이 민감한 분이라면 남이섬 관광 같은 건 안 가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이상이 맨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친일 청산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친일파라는 건 용어의 정의 내지 범위는 오락가락 하는데 빨갱이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남을 인격 모독하고 억울하게 매장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 양대산맥이다.

자기도 감당하지 못했을 '의로운' 잣대를 강요하면서 남을 정죄하고 쓸데없이 세상 비관하는 건 옳지 못한 자세이다. 하지만 반대로 C급만 부각시키면서 단순 가담자와 악질 주동자를 한데 싸잡아 "그땐 누구나 다 그랬을 것"이라는 양비론으로만 퉁치는 것 역시 옳지 못하다. (1) 나라도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겠냐 (2) 동족을 괴롭히고 등쳐먹는 등 물질· 정신적으로 악한 영향을 적극적으로 끼쳐서 사익 챙겼냐 (3) 그 뒤에 참회· 반성하고 있냐 정도를 잣대로 판단하면 큰 오류에 빠질 일은 없으리라 여겨진다.

참고로 아래의 부류들은 이 글에서 진지하게 다루는 부정적인 심상의 '친일파' 라인이 아니므로 오해 없도록 하자.

  • 김 옥균: 매국 의도 제로. 정말 악의 없이 일본을 선하게 보고 걔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려 했던 옛날 사람일 뿐이다.
  • 오덕: 그냥 비정치적으로 일본 문화만을 좋아하는 사람.
  • 김 완섭: 그냥 책 팔아먹으려는 관심병자 또라이 생계형 친일파일 뿐이다. 이 승만 대통령이 잘못한 게 부정선거 야당 탄압 독재 등등 많은 흑역사 과오들을 제치고 평화선을 그어서 독도를 빼앗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더 일고의 가치가 있겠나? 국가 정체성에 아무 위협이 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끼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5 18 민주화 운동 유공자랍시고 국가로부터 예우와 혜택도 받고 있다.
  • 일본과 일제 강점기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긍정적으로 말하는 편인 일부 우파 논객: 진짜 일본과 커넥션이 있고 자기 재산 지키고 싶고, 한편으로 우리나라가 망하길 바라는 개XX라면 절대로 저런 짓 안 한다. 얼굴 내밀고 소신 발언 하면서 어그로 끄는 멍청한 짓 따윈 절대 안 한다. 일부 과격 극단으로 치우친 견해가 있더라도 진짜 북한과 커넥션이 있고 지령도 받고 있는 종북 좌빨보다야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해롭지도 위험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2/14 08:31 2016/12/1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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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한말의 매국노

옛날에 나라를 일본에다 팔아먹은 을사오적 매국노 중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완용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사실 송 병준도 만만찮은 악질이고 후손들이 하는 짓까지 쌍으로 우주 쓰레기급임에도 불구하고 이 완용만 너무 유명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건 정당한 자업자득 인과응보이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 완용의 행적은 흔히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저 사람이 아니었어도/없었어도 어차피 조선은 망할 처지였다, 매국은 한 개인만으로 가능한 악행이 아니다" 같은 실드를 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우파 진영에서 괜히 그런 말을 해서 친일 수꼴이라고 안 먹어도 될 욕과 오해, 거짓 고소를 쳐먹을 필요가 없다.

저 사람은 김 옥균처럼 애국을 생각하고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결과가 안 좋게 된 그런 성향의 친일을 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 일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일빠 오덕후 매니아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무능하고 부패하고 개 썩어 빠진 미개한 조선 정부보다는 선진국 일본에게 통치를 맡기는 게 근대화를 제대로 이룰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조선 백성에게 더 좋을 거라는.. 그런 순진한 의도로 매국을 한 것도 아니다.

단적인 예로 이 완용은 일본어라고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던 사람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나라를 팔아먹는 얘기를 나눌 때도 통역을 쓰거나, 아니면 간단한 담소쯤은 영어로 나눴다. 둘 다 똑똑하고 영어는 잘했으니까. =_=;; 이 완용은 죽기 전에 아들한테 유언으로 "앞으로는 또 미국이 뜰 거 같으니 그쪽으로 잘 보여라"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사실이라면 정말 꺼삐딴 리의 실사판이다.

그는 성경으로 치면 발람처럼 그냥 자기 가족의 영달을 위한 기회주의자일 뿐이었다. 자기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르면서 조선 땅의 학교에다가는 일본어 시간을 잔뜩 늘리고, 3·1 운동 가담자에게는 불순분자 선동에 넘어가서 뻘짓 하지 말고 곱게 찌그러져 있으라는 공갈 담화문이나 신문에 게재했었다.

만에 하나 시대의 대세가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관여했다 해도, 그 뒤의 태도가 어떻느냐에 따라서 실드와 평생까임권이 갈릴 수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이 완용은 평생 일말의 반성이 없었으며 이에 대해서는 그 어떤 실드와 동정의 여지가 없다. 그 사람도 한반도에 무슨 근대적인 제도를 도입하고 마냥 나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식의 말도 있나 본데, 그런 식이면 김 일성조차도 왕년에는 눈꼽만치 항일 운동을 한 경력이 있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의 북한 치하보다야 차라리 일제 강점기가 훨씬 더 낫다. 일제 말기로 갈수록 '훨씬'이라는 단서는 설득력을 잃겠지만.)

물론, 일제 강점기 때도 근대화가 이뤄지고 식량 생산이 늘고 인구가 느는 등, 말기의 전쟁만 아니었으면 일말의 긍정적인 면모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얘기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금기시하지는 않아도 된다. 굳이 일제만을 욕하기 위해 조선의 탐관오리들을 미화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허나, 그렇게 식민지 근대화론을 최대한 감안한다 해도, 이 완용은 그와 무관하게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완벽한 개새끼가 맞다(글자를 XX 따위로 가리는 처리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 단군의 후손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무궁토록 욕과 저주를 먹을 것이며, 족보에서 이름이 파이고 후손들이 부끄러워서 혹은 무서워서 전부 외국으로 이민 가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사실, 이 완용의 후손들은(송 병준의 후손도 마찬가지) 다 재산 잘 챙겨서 잠적하거나 외국으로 도피해 있지, 누구 말마따나 겨우 조무래기 경찰이나 군 간부로 가 있지는 않다. 그리고 숨어서 자기 재산 되찾는 소송이나 걸지 그런 사람들이 미쳤다고 시사· 정치 발언이나 하면서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광역 어그로를 끌겠는가? 얘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친일파 이 완용의 대조군이 될 만한 사람은 두 명 정도가 있다.
이 봉창 의사는 이 완용과는 달리, 일본어를 일본 토박이와 분간을 못 할 정도로 능숙하게 구사했으며 일본인 지인과 인맥도 많았다. 독립 운동을 하겠다고 김 구를 찾아갔을 때에도 김 구는 쟤가 혹시 일제의 첩자가 아닌가 오랫동안 의심했을 정도였다. 대화를 많이 나눠 보면서 이 봉창의 레알 진심을 확인한 뒤에야 의심을 풀었다.

그는 그렇게 일본 내부에서의 인맥과 접근성 덕분에 덴노가 있는 곳까지 가까이 가서 폭탄을 던질 수 있었다. 의거를 치르러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일본인 친구들은 그가 어디 여행이나 다녀 오는 줄 알고 배웅을 했다. 그때 히로히토 덴노가 죽거나 중상을 입었으면 역사가 또 크게 바뀌었지 싶다. 사람의 속마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음을 느낀다.

그 다음으로, 외국인 대한 독립 유공자인 호머 헐버트가 있다. 그는 한국과 한국인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국어를 독학으로 마스터 하여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리고 한글 같은 대단한 문자를 스스로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왜 안 썼냐고 본토 사람들에게 반문을 했을 정도였다. 구한말 때부터 이미 헤이그 특사들을 같이 도와 주고, 이 완용이 디스했던 3·1 운동을 지지한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2. 아베 노부유키의 괴예언

그럼 다음으로, 구한말이 아니라 일제 말기에 마지막(제9대) 조선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와 관련된 얘기를 좀 하겠다.
이 사람은 전범이며,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실드의 여지가 없는 악행을 많이 저지른 사람이다. 전쟁이 더 길어지고 일제가 일찍 항복해서 물러나지 않았으면 정말 가관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일제의 패망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도 이런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왔다.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세뇌라..;; 그래서 저 말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고 친일파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꽤 자주 언급되고 인용되는 편이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 놓았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의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그 식민 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노부유키는 조센징 노예들을 우습게 여긴 아주 나쁜놈이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본인은 이 사실과는 별개로, 저 말이 그에게서 직접 유래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저 말이 내용면에서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로를 이간질하는 노예적 삶'이라고 했는데..
한반도에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감시하고 이간질하는 노예적 삶을 조장한 진짜 주범은 소련과 그쪽을 추종한 공산주의자이다! 공산주의는 사람의 악한 본성을 최대한으로 뽕을 뽑아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모든 인민을 평등한 거지로, 입에 풀칠하기에 바쁜 바보 노예로 만들지 않으면 유지가 되지 않는 저주받을 체제이다.

UN의 제안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위원회를 발족시킨 것부터(1946년 2월) 시작하여 단독 국기와 애국가 제정(1947년), 분단과 단독 정부 수립도 북한이 먼저 시작한 거다! 아직도 이 승만이 분단의 원흉이네 정읍 발언(1946년 6월)이 민족 반역질이네 이 따위 헛소리가 내 눈에 띄는 거 난 용납 못 한다. 정읍 발언은 이미 다 발생해 있는 원인으로 인한 "대응의 결과"일 뿐, 그 자체가 원인이 아니다.

일제는 단군의 후손들에게 많은 불행을 끼쳤지만, 그래도 이념 갈등과 남북 분단에까지 관여하지는 않았다. 공산주의는 일제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그저 탄압과 박멸의 대상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지고 러시아가 이겼다면 조선은 일제 식민지가 되지 않는 대신에, 러시아의 식민지가 돼서 훗날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가 됐을 거라는 전망도 있지 않은가.

남한은 나라가 잘 세워진 덕분에 공산주의의 직접적인 마수는 천만다행으로 피해 갔다. 하지만 그래도 북한의 방해 공작 때문에 민주주의 내지 시민의 자유를 불가피하게 더욱 제약하게 됐고, 더 강력한 공권력이 필요해진 관계로 친일 군경 간부 청산도 제대로 하기 어려워지는 등 여러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둘째, '옛 조선의 영광'이라고?
일제는 조선을 아주 비하하면서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는 세뇌를 일삼아 왔다. 그 예 중 하나가 바로, 멀쩡한 지리학자인 김 정호가 병신 같은 조선 정부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옥사한 거라고 조작한 것이고 말이다. 그런 식으로 비하를 하거나, 아니면 일본과 조선은 정체성이 하나라고 내선일체를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 일제 식민 지배의 수뇌부라는 양반이 갑자기 웬 뜬금없는 '옛 조선의 영광' 드립을 공개적으로 친단 말인가? 논리적으로 앞뒤가 전혀 안 맞는다. 이 어설픈 립서비스만 없었어도 예언(?)의 신뢰성과 사실성이 크게 올라갔을지도 모르는데... 저건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는 무슨 일본 해군 제독 얘기보다도 현실성이 더 떨어진다.
일본이 부러워할 정도로 조선이 리즈 시절이었던 때를 굳이 생각해 보자면, 아마 세종대왕 시절 정도밖에 없을 게다. 그리고 그건 아베 같은 사람이 그 상황에서 갑자기 거론할 이유가 없는 너무 먼 옛날이다.

마지막으로,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은 족히 걸릴 것이다'를 생각해 보자.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표현이다.
바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했다는 말 중에도 '100년 드립'이 존재한다. 6· 25 전쟁 중이던가 후던가.. 돌 위에 돌 하나 안 남은 처참한 폐허를 보고는 "한국은 이거 다 복구· 재건하려면 한 100년은 더 걸리겠다"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맥아더의 저 말도 아베 노부유키의 말과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출처 검증이(언제 어디서 한 말?) 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허나, 맥아더의 말은 설령 사실이 아니라 주작이라 하더라도, 저주· 악담이 아니라 그냥 주관적인 전망일 뿐이었으며 결정적으로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비록 영토가 반토막 나고 병크와 비리도 많고 문제도 없는 건 아니지만, 세계 10위권의 찬란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이 여전히 한낱 '옛 조선의 영광'만도 못한 상태인 걸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두 '100년 드립'은 모두 적중하지 않았다.

아베의 괴예언은 "그때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는 병맛나는 허세로 끝나는데.. 이것조차도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에서 후퇴하면서 직전에 남긴 말 "I shall return.."을 묘하게 닮아 있다. 물론 맥아더는 나중에 진짜로 돌아와서 마치 프로토스 드라군의 생산 대사처럼 "I have returned"까지 당당하게 찍은 반면, 아베 노부유키는 그런 거 없었다.

우리나라는 이제 사실상 있지도 않은(유효 오차 범위 이내) 친일 망령보다는, 당장 현실적으로 훨씬 더 큰 위협인 이런 망령이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까 주의하고 경계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운 처사라 생각된다.

폴 포트는 죽었지만 그는 언제고 시공을 초월해서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성공한 자들을 무조건 부정한 무리로 몰아붙이고
자신의 불행한 처지가 무조건 사회 부조리 때문이라 몰아붙이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선동가들의 장난에 놀아날 때
폴 포트는 언제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1/15 08:32 2016/01/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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