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항거 외

1. 영화

올해는 3· 1 운동 발발 100주년인 해답게 이 타이밍에 맞춰 유 관순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적절하게 개봉했다. 말모이에 이어 또 일제 시대 배경 영화이긴 하다만, 이것도 명분이 충분하기 때문에 본인은 관람을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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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안 그래도 3· 1 운동 자체가 아니라 유 관순의 투옥 이후 시점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실제로 구경하고 나면 영화의 공간 배경을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점을 가장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그러니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분은 사전에 저기부터 가 보시기 바란다.

본인은 9년 전, 이 블로그가 처음 생겼던 2010년 초에 가 봤다. 일반 감방뿐만 아니라 유 관순이 말년에 실제로 격리 수용됐던 지하 독방까지 직접 볼 수 있다.

  • 유 관순은 서대문(경성) 형무소에서 옥사
  • 강 우규 의사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 (유 관순이 투옥된 시기에 서울 역 광장에서 사이토 총독의 암살을 시도했던 노인)
  • 훗날 조선어 학회 사건 연루자 두 분은 함흥 형무소에서 옥사
  • 주 기철 목사는 평양 형무소에서 옥사

지역이 이렇게 대응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흔치 않은 흑백 영화라는 것도 미리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킬 빌처럼 일부 주요 장면만 흑백인 것도 아니다(녹엽정 전투..).
현실의 형무소 장면은 죄다 흑백이고, 일부 과거 회상 장면이 컬러이다. 보통은 그 반대인 것 같은데 이례적이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항일 운동을 소재로 한 "자전차왕 엄 복동"도 개봉했다.
하지만 스포츠로 한국이 일본을 이긴 얘기를 극화하고 싶으면 차라리 손 기정 내지 홍 덕영 골키퍼 (해방 이후 월드컵 예선 한일전!)같은 사람이나 재조명할 것이지, 참신한 소재를 찾는답시고 자전거 도둑질도 전문이었던 사람을 소재로 삼은 게 논란이 됐다. 그 사람이 하다못해 친일파· 일본놈들만 상대로 의적(?)질을 한 것도 아니다.

소재부터가 삐걱거리는데 영화 자체도 그리 잘 만든 게 아니었고, 더 고퀄인 "항거"에게 팀킬 당하니 엄 복동 얘기는 예전의 "대장 김 창수"의 말로를 가면서 대차게 망했다. 뭐, 자전거 도벽은 아예 친일 변절이나 강도살인보다는 죄질이 상대적으로 가볍긴 하다만, 저 양반이 훔친 액수도 단순 생계형으로 실드 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2. 3· 1 운동

그럼, 영화를 벗어나 3· 1운동 자체에 대해서도 얘기를 좀 해 보자.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솔직히 그까짓 만세 부른다고 해서 일제가 "아 그러셨어요~? ^^"물러가고 독립이 찾아올 리는 만무하다. 더구나 3· 1 운동은 주요 배경, 명분, 동기에 핀트가 근본적으로 안 맞는 게 있었다.

(1) 1910년대 일제 무단 통치에 대한 반감과 민생고(흉년, 물가 상승)는 그렇다 치지만 (2) 고종 독살 의혹은.. 글쎄, 고종이 무슨 세종대왕 급으로 추모 받을 성군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3) 민족 자결주의는 1차 대전 승전국인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 적용되는 내용이 아니었다.

유 관순도 그 기백이 정말 대단하긴 하지만, 너무 무모하게 매를 벌지 말고, 1년 반 정도만 빵에서 살다가 나와서 공부 더 하고 더 오래 살았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만세 시위 때 자기 부모를 왜놈들한테 잃고 완전히 꼭지가 돌아 버렸을 테니, 그 뒤로 왜놈을 가족과 민족의 철천지 원수로 여기고 저놈들한테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고 고집 부린 그 악바리와 깡과 근성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영화에서 유 관순의 감방 동료로 나오는 권 애라와 김 향화(배우 이름이 아닌 배역 이름)는 실존 인물이다. 특히 김 향화는 수원에서 활동한 기생이다. 이 시절에 기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야시꾸리한 직업 종사자가 아니라, 요즘으로 치면 스튜어디스 급은 되는.. 단순 서비스 접대 이상으로 지와 미와 예능을 갖춘 사람이었다.

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선에서는 미국이 일본놈들한테 학을 떼면서 뭐 저런 상또라이들이 있나(반자이 어택, 카미카제..) 경악했었다. 하지만 더 옛날에는 일본도 조센징들을 보곤 뭐 저렇게 지독하게 말을 안 듣는 독종 또라이들이 있나 멘탈 대미지(반자이 트라우마..)를 입고 충격을 먹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1920년대에는 문화 통치 유화책이 나오게 되었다.

흔히 호남 지역을 비하하면서 저기가 3· 1 운동 참가자 내지 투옥자가 제일 적었다는 통계를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거기는 3· 1 운동 이전에 1890년대의 동학 운동과 1900년대의 의병 때문에 항일 인사들이 몽땅 토벌되고 씨가 마른 상태이기도 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통계 자체에 대한 조작과 왜곡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았을 때 말이다.

3.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이 영화와 배경 내용에 대해서 말할 거리는 이 외에도 더 있지만, 일단 기독교 신앙이 의외로 꽤 자주 언급되는 게 인상적이고 좋았다. 유 관순은 실제로 교인이기도 했으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시험을 면하게는 하지 않아도 이길 힘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음", "예수님은 바보여서 저렇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줄 아냐" 무려 이 정도 분량이 대사에 포함돼 있다.

신앙 쪽으로 왜곡 없는 중립· 긍정적인 묘사 덕분에 본인은 처음엔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슬슬 올라갔다. 그러나 결말부를 보고는 기분이 완전히 잡쳐 버렸다.
정작 유 관순이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은 너무 얼렁뚱땅 대충 자막으로 때워 버리고는, 그 뒤에 어설프게 또 이상한 친일파 드립과 반일 프레임 엮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군.. ㅉㅉ" 싶었다.

정 춘영인지 누군지 출신과 생몰 시기도 모르는 웬 듣보잡 조선인 헌병이 있어서 유 관순을 내내 괴롭혔다고 한다.
이놈은 친일 부역 행적이 탄로나서 해방 후 반민특위에 의해 기소되었으나, 그 이름도 찬란한 모 할배의 특별 배려(!)로 사면되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걸 말이라고 자막을 떡 걸어 놨으니 나도 꼭지가 돌아 버리겠다. 하지만 실상은 유 관순이 교인이었던 것만큼이나 할배도 교파까지 같은(감리교) 교인이었으며, 유 관순이 독립 운동가인 것만큼이나 반민특위를 불가피하게 해체한 배후 인물(애산 이 인)도 똑같이 항일 독립 운동가였다.

어디 '정춘영 유관순 고문'이라고 검색을 해 보아라. 정확한 기록 같은 건 없고, 같이 걸려 나오는 건 유 관순이 무슨 미꾸라지 고문을 당하고 코가 잘리고 머리 가죽이 벗겨졌다는 얘기, 아니 도시전설 괴담밖에 없다.
그렇게도 친일 부역자 조선인 헌병을 개새끼로 만들고 싶으면 영화에다가도 미꾸라지 고문 씬을 넣지 그랬냐? 일본 제국주의 악마들이 겨우 손톱 뽑기 내지 캐비닛 안에 선 채로 며칠 감금 정도만 했을 것 같은가?

그리고 크레딧 롤이 올라가는 동안이나 작품 결말부에서 주인공이 죽기 전에.. 그 이름도 유명한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은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출처불명의 비장한 유언도 좀 나왔어야지? 안 그런가?

삼일 운동 그 자체가 조국의 독립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이 항거는 외국에까지 소개되어서 조선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됐다는둥, 그 정신이 지금 우리나라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는둥, 유 관순 말고 다른 여학생· 기생의 의거도 많이 벌어졌다는둥.. 클로징 멘트로 다른 좋은 말을 얼마든지 골라 넣을 수 있었을 텐데.. 마무리를 의도적으로 저 따구로 지은 저의가 뭐냐!? 매우 유감스럽고 씁쓸했다.

4. 3· 1 운동 때 투옥된 뒤에도 천수를 누린 다른 여성

옛날에 우리나라엔 '추계 최 은희(1904-1984)'라고 무려 1920년대에 조선일보에 입사해서 여성으로서는 거의 국내 최초로 기자라는 직업에 종사한 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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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유 관순보다 약간 어릴 뿐 거의 같은 연배이다. 3· 1 운동에 가담하다가 붙잡혀서 세 주 남짓 옥고를 치르면서 험한 꼴을 봤지만, 그 뒤엔 풀려나서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기자도 됐다. 덕분에 방송을 타고 비행기도 타 보는 등, 일제 시대 조선 여자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진귀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참고로 3· 1 운동 당시의 소속이 유 관순은 이화학당, 저분은 경성여고보)

이분의 호인 '추계'는 추계 예술 대학교의 설립자하고는 관계 없다. 그 추계는 황 신덕(1898-1983)이라는 다른 사람의 아호인데, 저분 역시 최 은희와 동시대를 살았던 신여성이며, 3· 1 운동에 가담했고 기자 커리어까지 있는 것이 서로 굉장히 비슷하긴 하다. 아마 서로 아는 사이였지 않을까?

호 다음으로 '최 은희'라는 이름은 국내에서는 영화 배우의 이름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두 단어를 합친 '추계 최 은희'라는 사람은 인지도가 낮으며, 언론 쪽 종사자가 아니면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언론인 출신 최 은희가 영화 배우 최 은희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하고 위대한 인물이다. 추계 최 은희는 대학을 설립한 게 아니라 자기 이름을 딴 '최은희 여기자상'이라는 것을 제정했다.

저분은 결혼 후에는 기자 커리어가 중단되었다. 허나, 1남 2녀를 낳아서 세 명 모두 박사까지 공부 시키고 유학도 보내고 전부 대학 교수로 키웠다.;; 그 중 막내딸은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한 이 혜순으로, 2000년대 중반에 정년 퇴임했다.

본인은 먼 옛날에 "유쾌한 구두쇠들"(1994)이라는 책을 통해 저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공 병우 박사, 남 기심 교수, 이 혜순 교수(두 교수 다 국문과이구나.. 세부 전공은 다르지만) 등 17명의 유명인사가 공동 집필한 책인데, 다들 비범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도 엄청 많이 번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일상생활은 서민들 이상으로 정말 둘도 없이 검소하게 효율적으로 하면서, 옳은 일 큰 일에 아낌없이 돈을 쾌척한 얘기들이 실려 있다. 지금은 시대에 맞게 저 책 내용이 웹툰으로 각색되어서 연재되면 어떨까 싶다.
다만, 저자 중에 지금은 완전히 몰락한 방송인 서 세원 씨까지 포함돼 있는 게 참 묘하다.

이 혜순 교수는 저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게 지나고 나이 70을 바라보는 명예교수가 된 뒤에도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변함없이 자기 어머니라고 회고했다. (☞ 관련 링크)
뭐, 인생 한번 짧고 굵게 살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유 관순 같은 인물이 형무소를 살아서 출소해서 공부 더 하고 후세도 남겼으면 인생이 최 은희와 비슷해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11 08:36 2019/03/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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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

지금까지 이 블로그의 역사 카테고리에 올라오는 글은 대체로 우리나라 역사, 그것도 현대사 쪽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신선하고 색다른 소재를 다루도록 하겠다.
이번에 ‘사무엘 블로깅 스튜디오’-_-;;의 내부 아이디어 회의에서 소재로 채택된 아이템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유명한 외국 인물이고 그것도 굉장히 옛날 사람이다.

잔 다르크!
오를레앙의 성녀/처녀라고 불리고 백년 전쟁에서 조국 프랑스를 영국으로부터 구한 영웅이다. 한글이 창제되기 한 세대 남짓 전에 살았다.
(프랑스는 영국과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는 훗날 미국과도 어째 비슷한 구도이다.)

잔 다르크라는 명칭은 전통적인 first name / last name 형태는 아니다. 아르크의 조안(Joan of Arc) 정도에 가까우며, 이는 성경에서도 막달라 마리아가 막달라의 마리아인 것과 비슷한 맥락임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한국에서는 유 관순 열사가 잔 다르크와 여러 모로 비교되곤 한다. 잔의 생년은 1412, 몰년은 1431인데, 거기에다 490만 더하면 유 관순의 그것(1902~1920)과 거의 일치한다. 비록 성장 배경과 행적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으나, 만 20세도 못 되어 세상을 떠났다는 결정적인 공통점은..;; 실제로 유 관순 자신부터가 학창 시절에 잔 다르크의 전기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자기도 잔처럼 살고 싶다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종교에 관한 한 아주 독실했다는 것. 유 관순은 이화여대의 전신인 학교에 다니면서 외국의 개신교 선교사로부터 감리교 신앙을 간직하고 있었다. 잔은? 가톨릭 쪽인데, 아예 하늘로부터 ‘조국을 구하라’라는 계시=_=를 받았다고 한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변장을 하고 군중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왕을 바로 찾아서 알아보고 경의를 표할 정도의 신통력도 소유했다고. (물론 왕을 전에 만나 본 적이 없는데도)

본인은 성경 이외의 직통 계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이상한 은사주의와 결부시켜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이다(북한 같은 극단적인 곳에서 정말 극소수 예외적인 간증이 나오는 건 제외 내지 판단 보류). 그러니 잔 다르크는 꽤 흥미로운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파티마 예언 같은 게 생각나서 살짝은 섬뜩하기도 하다. 그걸 심지어 UFO 현상과 결부짓는 연구자도 있다던데.

나름 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고 있던 유 관순과는 달리, 잔 다르크는 아예 글을 배우지도 못한 문맹이었고 스펙상으로는 정말 보잘것없는 촌뜨기 시골 소녀였다. 그러나 자기를 깔보고 모함하고 해치려는 사람들과의 언쟁은 매우 논리정연하고 유창하게 잘 했다고 한다.1) 마 10:19-20이나 행 6:10이 적용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식 교육도, 군사 훈련도 받은 적이 없는 겨우 여고생뻘 소녀가 어떻게 해서 전쟁터에서 그렇게 큰 공을 세웠는지 신기하기 그지없다. 전투병으로든, 지휘관으로든, 아니면 그냥 얼굴마담 정신적 지주일 뿐이었든지 말이다.
잔은 그 흔한 초상화조차 전해지지 않으며, 오늘날 전해지는 관련 그림들은 다 그녀의 얼굴을 모르는 화가가 그린 상상화이다. 다만, 10대 소녀를 30대 이상의 아줌마처럼 삭힌-_- 그림이라든가, 치렁치렁한 긴 생머리 차림으로 갑옷을 입은 여군 모에화 그림은 아무래도 고증 오류가 아닌가 싶다. -_-;;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 뮬란을 생각해 보자. ㄲㄲ)

그러나 이런 잔의 최후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너무나 비참했다. 군주인 샤를 7세와의 관계가 어째 성경에서 다윗과 사울의 관계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라? 다윗도 양치기 출신 촌놈) 듣보잡 촌뜨기 소녀가 전쟁에서 공을 세워 너무 유명해지고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자, 그녀의 도움을 받은 국가는 위기에서 벗어난 뒤부터 그녀를 오히려 경계하게 된 것이다.2)

그렇게 프랑스 황실과 불편한 사이가 되어 있던 차에, 잔은 불리한 전투에 나갔다가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당시 관행이었던 몸값 지불이라든가 포로 교환 같은 대응책이 얼마든지 있었으며, 적국인 영국조차도 잔을 바로 죽여 버리는 것보다는 그런 협상을 기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샤를 7세는 어차피 정치적으로 이용 가치가 끝난 잔을 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그녀를 고의로 철저히 외면했다. 자기를 당당한 프랑스 국왕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부하를 그렇게 배신하는 천하의 개쌍놈 짓을 저지른 것이다. 이른바 토사구팽.

마치 예수님이 동족으로부터 버림받았듯이, 잔 다르크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적국인 영국에서 온갖 고초와 수모를 당했다. 듣자하니 잔은 여성용이 아닌 일반 (남자) 군인용 지하 감옥에 감금되어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곳에서 힘들게 지냈으며, 간수들로부터 수시로 학대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성경에서 삼손이 블레셋 군대에게 붙잡히고 나서 어떤 꼴을 당했는지를, 예수님이 체포된 후 무슨 짓을 당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잔을 이용해서 프랑스로부터 단물을 좀 빼내려고 했는데 정작 프랑스가 반응이 없으니 재미가 없다. 그럼 영국의 입장에서는 적군인 잔을 살려 둘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잔이 차라리 삼손처럼 다른 데에 이용할(노동력-_-) 가치가 있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죽이긴 하는데, 뭔가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어서 죽였다.

잔을 정죄하는 재판 역시 성경의 스토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성경을 보면 악의 무리들이 체포된 예수님을 짜고 치는 고스톱 각본대로 정죄하듯, 잔은 변호사 선임이나 가족 면담 같은 일체의 법적 권리도 행사하지 못했으며 재판은 일방적이고 불공정하게 진행됐다. 잔은 훗날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도 모르고서 ‘본인은 교회의 처분대로(=사형) 따르겠습니다’ 문서에 그냥 서명했다고 하니 이 정도면 막장이 따로 없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행적으로는 도저히 트집 못 잡으니까 신성 모독과 하나님 사칭 정도나 걸고 늘어졌듯, 잔을 이단자로 만들기 위한 떡밥으로 남장(신 22:5)이 거론되었다. 내가 보기에 이건 “성경에 드보라 같은 여걸도 나오니까 여자 목사도 교리적으로 OK” 내지, 예수님에 대해서 안식일에 병 고친 걸 갖고 트집 잡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 마디로 말해 찌질하다.

결국 잔 다르크는 각본대로 유죄 판결을 받고 정말 꽃다운 나이에 화형대에서 끔찍한 최후를 마쳤다. 영화를 보면 화형 집행을 하기 전에 희생자에게 삭발을 하던데 역사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백성들로 하여금 유해를 챙기지 못하게 하려고 그녀는 절명한 뒤에도 시신이 세 차례에 걸쳐 완전히 불타서 형체가 남지 않았으며, 가루는 그대로 강에 뿌려졌다고 한다.3)
뭐, 시신의 보존 상태에 관한 한은 유 관순도 만만찮게 처참하긴 했다. -_-;;

샤를 7세는 잔 다르크가 죽은 지 무려 25년이 지나서야 그녀에 대한 명예 복권을 선언하고, 이단 혐의를 철회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평판은 당대 사람들에게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던 듯하다.
오히려 그녀가 본격적으로 재조명을 받기 시작한 건 근대에 와서 민족주의, 국가주의 같은 이념이 부각되고부터라고 한다. 그래서 가톨릭에 의한 성녀 승격도 20세기 초가 돼서야 이뤄진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 내부에서는 역시 우익들이 잔 다르크를 아주 좋아한다. 과거 박통이 이 순신 장군에 유달리 집착하고 성웅화한 것과 거의 동일한 맥락이라 보면 정확하다. 박통의 롤모델이라 일컬어지는 나폴레옹이 잔 다르크를 팍팍 띄운 것도 응당 사실임. 그런데 다음으로는 히틀러가 그 나폴레옹을 굉장히 존경했다며?
위인을 존경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자기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한 고인드립으로 변질되는 것은 언제든 경계해야 하겠다.

Notes:
1) 예를 들자면, “오호.. 네가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라? 그 신님의 말 억양은 어떻던데? ㅋㅋ”라는 비아냥거림에, “님 말투보다는 듣기 좋더군요! -_-” 식의 시크한 답변. 뭐, 이런 것 말고도 잔은 신학자, 종교 지도자들의 말문도 막을 정도로 조리 있게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관을 논증했다고 한다.

2) 군 수뇌부가 왕권보다 너무 강해져서 아브넬과 사울 내지 요압과 다윗처럼 된다면 그건 문제이지만, 반대로 저것도 영 아니잖아? 국가를 위해 충성한 사람을 저렇게 홀대하면..;;

3) 화장터에 가 보면 알겠지만, 사람의 시신은 신원 확인이 전혀 불가능할 정도로 깡그리 불태워 가루만 남기려면 은근히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2차 세계 대전의 말엽엔 히틀러가 자살 후에 그렇게 화장되고 싶어하였으나, 차마 그렇게 되지 못했고, 결국 소련군이 치아 상태를 보고 히틀러의 시신을 확인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17 08:39 2011/05/1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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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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