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2-1949).
뼛속까지 한국덕으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진심으로 사랑한 미국인으로 아주 유명한 분이다. 2013년 새해의 첫 글은 훈훈한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ㅎㅎ
그는 모국어인 영어는 물론 한국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서양에다 소개하고 한반도에 신식 학교를 세우는 등 수많은 좋은 일을 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구한말 시절부터 고종 황제를 보호하고 헤이그 밀사를 직접 선발하여 조선/대한 제국의 독립 승인을 위해 적극 애썼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뼈아픈 결정을 내린 사람이었다. 그가 그냥 국제 정세에 따라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을 침탈하는 걸 승인했을 때, 헐버트는 자국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일제가 조선의 주권을 침탈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07년,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쫓겨난 뒤에 본토에서도 이 승만, 서 재필 등의 독립 운동을 도와 줬다.
또한 그가 무엇보다도 감화되었던 것은 한글이다. 한글을 나흘 만에 깨우친 뒤 이게 보통 문자가 아니라는 걸 직감하였으며, 어렵고 비효율적인 문자인 한자를 버리고 온 국민이 한글로 지식을 깨우쳐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리고 한글 정서법에도 띄어쓰기가 있는 게 좋겠다고 제안하여 서 재필이나 주 시경 같은 선각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조선에서는 사람들이 우수한 자기네 고유 문자를 스스로 천대하다니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이런 말을 미국인이 했다는 게 믿어지는가? 여러 애국 단체들 중에서도 특별히 한글 학회에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중근 의사조차도 일본 경찰로부터 심문을 받던 중에 어쩌다 헐버트 얘기가 나오자, 그는 “헐버트는 한국인이라면 단 하루라도 잊어서는 안 될 민족의 은인이다”라고 증언했다고 한다. 다른 위인의 눈에 보기에도 헐버트는 큰 위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1945년 해방이 ‘정의와 인도주의의 승리’라고 한국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나는 죽어서도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마포 한강변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우리나라의 유명 독립 유공자들은 대체로 1960년대 초에 대대적으로 조사되어 각종 훈장이 추서된 반면, 이분은 아예 서거 이듬해인 1950년 3월 1일에 진작부터 이 승만 정부로부터 건국 공로 훈장 태극장이 추서되었다. 그가 어떤 계기로 그렇게 여러 나라들 중에 하필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는 다트머스 대학 출신이라고 하는데, old timer 프로그래머라면 기억하려나? BASIC 언어를 개발한 존 케메니와 토머스 커즈가 바로 이 대학의 교수이다. 그래서 베이직 언어의 여러 방언들 중에서 특별히 오리지널을 ‘다트머스 베이직’이라고 일컫는다. 한국인이라면 다트머스 대학이 헐버트의 모교이기도 하다는 걸 덩달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한편, 헐버트에 필적하는 대한민국 독립 유공자 외국인으로는 캐나다인인 프랭크 스코필드(귀화명 석 호필)도 있다. 그는 의사이자 제암리 학살 사건 사진을 전세계에 보도한 기자이고, 서울 현충원에 묻혔다. 옛날에 스펀지에서 이 스코필드에 대해서 소개했었는데, 내용이 워낙 훈훈하다 보니 별 다섯 개를 당당히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헐버트는 스코필드에 비해서 인지도가 많이 뒤쳐지는 것 같다. 구한말 때는 열정적으로 한반도에서 활동했지만 정작 일제 강점기를 앞두고는 추방당해서 미국에서 지낼 수밖에 없어서 그런 듯.
그래서 작년 여름, 한글 새소식(한글 학회 월간지) 2012년 8월호(통권 480호)에서는 헐버트 박사 특집이 편성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 이런 분도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