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연성 물질은 발화점을 넘은 온도에서 불이 활활 붙을 때 열과 빛이 나온다.
하지만 불이 붙지 않는 물질이라도 수백 도 이상의 온도로 달궈지거나 녹으면... 얼음이 녹듯이 곱게 녹지 않는다. 어느 물질이건 언제나 시뻘건 빛을 동반하는 상태가 되며 녹는다. 용암이나 쇳물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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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는 상온에서 은백색의 고체이지만, 쇳물은 수은 같은 평범한 회색(?) 액체가 절대로 아니다.
이건 알고 보면 굉장히 신기한 면모이다. 이 빛은 분자· 원자 차원에서 무슨 에너지를 바탕으로 나오는 걸까?
다시 말하지만, 이건 연소 같은 화학 반응을 겪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단순히 열을 잔뜩 받은 것만으로 어떻게 빛이 나올 수 있을까?

옛날에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1992) 영화를 보면 쇳물이 철철 흐르는 용광로가 나온다. 이건 진짜 쇳물이 아니고 소품이다. 물 같은 평범한 액체 안에다가 누런 조명을 켜서 쇳물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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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색감에 대한 왜곡이 굉장히 많다. 가령, 현실의 건물 지하 주차장들은 영화 '아저씨'에서 묘사된 것처럼 그렇게 시퍼런 톤으로 어두컴컴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백열등은 대놓고 이 원리를 이용해서 빛을 내는 물건이다. 가느다란 필라멘트를 녹지 않을 만큼만 달궈서 빛을 내니 말이다.
물론 이건 오늘날의 전자공학 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효율이 매우 매우 안 좋은 원시적인 광원일 뿐이다. 이는 백열등과 얼추 비슷한 시기에 발명된 또 다른 과학 기술 산물이던 증기 기관도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너무 비효율적이어서 도태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래도 증기 기관만으로도 그 시절엔 마차로는 상상할 수 없는 교통· 물류 혁명과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 그와 마찬가지로 백열등도 연료를 직접 태우는 등잔불· 호롱불· 촛불· 횃불 따위로 범접할 수 없는 새로운 빛을 인류에게 선사하긴 했다.
그 단순무식하고 비효율적인 백열등조차도 처음 발명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필라멘트를 만들 만한 재료(텅스텐)를 그 시절 여건에서 찾는 게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불꽃 기반의 광원들은 켜고 끄기 어렵고 질식과 화재의 위험이 크고 불필요한 열이 너무 많이 발생하는 등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닌 데다.. 결정적으로 여전히 별로 밝지 않고 너무 어두웠다. 밤에 시골에서 촛불· 호롱불 켜서 책 읽고 공부해 보신 분이라면 이 말에 적극 공감 가능할 것이다.

그에 비해 지금 세대는 자그마한 스마트폰만으로 과학 완구 꼬마전구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맹렬한 LED 불빛을 간단히 만들어서 어둠을 비추니.. 참으로 놀라운 과학 기술의 혜택을 입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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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부터 지금까지 120년 가까이 켜져 있다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백열등 '센티니얼 전구'. 다만, 현물 보존을 위해 현재는 전류를 아주 약하게 흘려보내고 있기 때문에 불빛이 더 어둡다. 저 시절엔 전구의 껍데기 유리를 다 사람이 불어서 모양을 내고 만들었다.)

아무튼.. 형광등이나 LED등만치 밝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백열등처럼 고온만으로 불꽃이 아닌 빛을 가능케 하는 과학 원리는.. 바로 '흑체 복사'이다.
어떤 물체의 온도가 높다는 건 미시세계에서 그 물체를 구성하는 입자가 많이, 맹렬히 움직이고 있음을 뜻한다. 그 움직임 덕분에 빛이 만들어져 나오며, 그게 심해지면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적외선과 자외선, 심지어 방사선의 범주에 드는 X선이나 감마 선까지 나온다.

흑체가 방출하는 에너지의 양은 절대온도의 무려 4제곱에 비례한다. 이른바 슈테판-볼츠만의 법칙.
본인은 학교에서 배웠던 각종 과학 과목들을 통틀어서 제곱이나 3제곱이 아닌 4제곱이 등장하는 과학 법칙이나 공식을 이것 말고는 본 기억이 없다.
평면이나 공간의 특성상 2승, 3승까지는 나올 수 있지만 4승은.. 생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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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체란 모든 전자기 복사를 흡수해서 에너지량 계산을 제일 간편하게 할 수 있는 가상의 물질이다. 화학에서 다루는 이상기체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럼 백체는 반대로 모든 전자기 복사를 반사하는 물체일 텐데.. 이런 건 딱히 다루지 않는 듯하다.)

물질마다 어느 온도에 도달했을 때 나타내는 색깔은 언제나 일정하다. 그렇기 때문에 색깔만으로 온도를 추정하는 게 가능하며, 색깔 온도계라는 게 존재할 수 있다.
측정 센서조차 녹거나 타 버릴 정도의 높은 온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이것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생각보다 매우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심지어 별의 색깔도 이 온도에 따라 결정된다.

이건 스피드건이 굉장히 얼렁뚱땅 허술하게 동작하는 것 같은데 주변의 자동차나 야구공의 속도를 꽤 정확하게 측정해 내는 것, 그리고 요즘 체온계가 신체의 영 엉뚱한 부위만 대충 접촉하는데도 체온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사실은 꼭 엄청난 고온이 아니어도 된다. 사람 체온만으로도, 무슨 쇳물 같은 누런 가시광선보다 급이 낮은 적외선 정도는 나온다. 깜깜한 밤에 사람을 식별할 때, 아니면 그냥 열기를 탐색할 때 쓰이는 적외선 카메라가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해서 동작한다.

이 정도 온도 차이에 4제곱은 정말 폭발적인 에너지 크기 차이를 만들 텐데.. 전자기파의 파장이라는 것도 지수/로그 스케일을 찍는 동네이기 때문에 그런 차이에 대응 가능한가 보다. 사실, 가시광선은 대역폭이 주변의 적외선(IR)이나 자외선(UV)보다 훨씬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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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색깔이란 건 그냥 눈에 띄는 느낌만 다른 요소일 뿐이지, 같은 온도와 같은 재질이어도 "검은 옷이 흰 옷보다 왜 덥게 느껴지는 걸까?" 이걸 이해를 오랫동안 완전히 못 했다.
저렇게 온도에 따라 다른 '빛깔'이 나오는 건 이해하겠는데, 역으로 '색깔' 자체도 열 흡수율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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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면에 눈이나 심지어 비닐하우스 같은 인공 구조물 때문에 흰색이 많으면 그게 태양 복사 에너지를 반사해서 기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온도계를 보관하는 백엽상의 주변은 반드시 하얗게 칠하며.. 비행기도 열 흡수를 하지 말라고 흰 도색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쪽 관련 과학 법칙은 열역학도 광학도 전자기학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분야인 걸까..?
이게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양자역학이라는 걸 태동시킨 전신이라고 한다. 얘는 물질 자체를 존재하게 하는 원자 차원의 힘을 규명하고, 이를 이용해서 질량과 에너지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발상의 전환을 선사했다.

※ 관련 여담

(1) 유리는 투명한 데다, 성냥을 갖다대면 불이 붙을 정도로 뜨겁게 달궈져도 겉으로는 하나도 티가 안 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실험실 안전 수칙에서 다뤄지곤 한다. (단골로 다뤄지는..)
물론 성냥의 발화점이 그리 높은 건 아니며, 유리도 더 뜨거워져서 흐물흐물 녹기 직전일 때는 벌겋게 변하기는 한다.

(2) 인류에게 열과 빛이라는 건 바늘과 실처럼 같이 따라다니는 형태인 게 익숙하다. 자연에서 보는 불꽃이나 달궈진 물체의 모습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류는 빛이 필요한 곳에서는 발열이 거의 없이 밝은 빛만 만들어 내는 기술도 잔뜩 개발했다. 전기 에너지를 원하는 곳에만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에서는 반딧불이도 발열이 없이 생물학적으로 신비로운 빛을 내는 곤충이라고 한다.

(3) 불꽃 반응은 불태우는 금속 원소에 따라 서로 다른 불꽃 색깔이 나타나는 걸 말하는데, 이건 온도 자체와는 좀 다른 분야의 현상이다.;;

(4) 그러고 보니 빛을 받았다가 깜깜해진 뒤에도 잠깐이나마 빛이 나는 무려 '야광/축광',
방사능 원소인지가 어쩌구 하는 형광,
거울이 아니면서 어둠 속에서 빛을 좀 반사에서 더 밝게 빛나는 그 무언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원리를 다시 공부해 보고 싶은데.. 내가 시간과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 도로의 차선도 평범한 페인트가 아니라 이런 안료가 들어가서 밤에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받았을 때 더 밝게 비치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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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달 표면도 말이다.
하늘은 새까만 암흑인데 지표면은 아주 하얗게 빛나고 물체 그림자도 선명하게 비쳐 보이는 거..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표면 전체가 이렇게 빛나고 있으니까 지구의 하늘에서는 달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지구는 대기가 있어서 낮에 하늘이 파란 것이고..

(5) 빛 내지 전자기파는 진행 과정에서 질량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다 보니 꼬불꼬불한 케이블 안에서도 광속으로 진행하고, 심지어 관찰자의 상대속도 관점에서도 불변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한편으로 진공이 아닌 유체 안에서는 그래도 속도가 미세하게 줄어들고 이로 인해 굴절도 발생한다.
그게 얼마나 줄어들고 차이가 발생하는지, 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물리학이 깊게 들어가면 난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이런 걸 컴퓨터도 없던 19세기에 처음 발견하고 공식을 만들어 낸 물리학자들은 참..

수백 년 전에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걸 물증 아닌 심증으로 인지하고, 나중에 실험으로 입증한 과학자들도 정말 괴수였을 것이다. 이걸 알아낸 것은 지구 구형이나 지동설만큼이나 엄청난 과학 발견이었다.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이 뭐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6) 끝으로..
이 글에서 주로 거론된 용광로는 시뻘겋거나 누렇지만, 원자로는 시퍼런 편이다~!! 흥미로운 차이점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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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체렌코프 효과라고 불리는 방사선 관련 현상 때문에 시퍼런 빛이 나와서 그렇다. 이건 흑체복사보다 더 이해하기 어렵고 20세기가 돼서야 발견된 현상이다. 이걸 발견하고 규명한 과학자들은 죄다 노벨 상을 받았다.

방사능은 원자력이라는 너무 근원적이고 강한 힘에서 유래됐다 보니.. 인간이 주변에서 흔히 보는 물리· 화학적 조작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이게 더욱 대단하고 무서운 면모이다.
방사능 폐기물은 아무리 깨부수고 전기 충격을 가하고 물· 불에 쳐넣어도 방사능이 없어지지 않는다. 찬송가 가사를 빌리자면 말 그대로 "물불이 두렵잖고 창검이 겁없네"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11/28 08:35 2022/11/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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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과 공기의 차이

1기압에 온도가 20도대인 지구의 공기는 사람이 활동하기 쾌적한 환경이다. 기온이 체온에 근접하면 체열을 밖으로 제대로 내보낼 수가 없어서 더위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20도대의 물은 수영을 하기에 여전히 꽤 차가운 물이다. 물의 온도는 체온에 근접해야 그럭저럭 미지근하고 물놀이를 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7~80도대, 심지어 그보다 더 뜨거운 공기는 사우나에서 겪을 수 있으며 잠깐 정도면 버틸 만하다. 그러나 같은 온도의 물은.. 닿는 즉시 화상을 입는 뜨겁고 위험한 물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온도라는 건 도대체 과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실, 인체 내부는 온도의 변화에 의외로 취약하다. 체온이 정상보다 단 몇 도만 더 높거나 낮아지면 사람은 정상적인 활동을 못 하고 앓아눕게 된다.

저온에서는 세포의 물질대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한다. 사람이 추운 실외에서 이불 같은 거 안 덮고 그냥 자다간 그대로 동사하는 수가 있다.
그리고 반대로 고온도.. 뇌를 구성하는 단백질은 40도 정도만 돼도 생화학적으로 변성되고 맛이 가 버린다고 그런다. 여기에는 내부의 감기 같은 질병 때문에 열이 나는 것, 혹은 외부의 혹독한 무더위 때문에 열이 나는 것(열사병..)이 모두 포함된다.

특히 소아 때 이런 열병을 오랫동안 겪는 건 굉장히 치명적인지라, 병이 나은 뒤에도 머리와 몸에 영구적인 장애가 남기 십상이다. 헬렌 켈러가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는 한여름에 어린이집 교사와 운전사의 부주의로 인해 어떤 아이가 한여름 땡볕에 더운 차내에서 몇 시간째 방치되어 혼수 상태에 빠진 사고가 몇 건 나곤 했는데 그 애가 지금은 어찌 됐나 모르겠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더 끔찍한 얘기를 꺼내자면, "왕창 고온인 공기" vs "온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열전달 효율이 넘사벽급으로 높은 유체" 이 둘의 차이가 따지고 보면 화형과 팽형의 차이를 만든다. 새까맣게 탄 시체도 끔찍하지만, 검지만 않을 뿐 뻘겋게 익고 퉁퉁 불어 터진 시체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뜨거운 공기든 뜨거운 물이든, 작열통은 의학적으로 볼 때 신체 절단과 더불어 인간이 느끼는 가장 끔찍하고 괴로운 고통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경에서도 지옥이 괜히 결코 꺼지지 않는 "불"로 묘사되는 게 아니다. 주토피아에 나오는 것처럼 "ice them"이면 차라리 양반이지, 진짜 본좌는 "burn them"인 것이다.

수은주가 달린 일반 온도계를 펄펄 타는 불에다 던져 넣으면 재질에 따라서 불타거나 녹고 깨지고 파괴될 것이다. 그러나 펄펄 끓는 물에 넣어서 100도대의 온도를 측정하는 것 정도는 문제가 없다. 이걸 생각하면 단백질로 구성된 인체(생체)만이 그런 저고온(?)에 굉장히 취약한 재질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고온의 공기는 그나마 고온의 여파가 끼치는 '정도'가 덜한 매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뿐이다.

2. 습도

앞에서 물의 온도와 공기의 온도 얘기가 나왔는데.. 사실은 사람이 공기 중에서 더위나 추위를 느끼는 것에는 공기의 온도뿐만 아니라 잘 알다시피 공기에 포함된 습기도 굉장히 큰 기여를 한다. 이런 차이 때문에 날씨가 더워도 굉장히 기분 좋게 더울 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겨 40도에 근접한다면, 직사광선은 굉장히 뜨겁고 따가우며 땀 나고 더운 게 맞다. 실내에서는 에어컨을 틀어야 한다.
그래도 기온만 높지 습도가 별로 높지 않다면 상황이 낫다. 밖에서 조금만 바람이 불거나 그늘에 들어가면 금세 시원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해가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온이 굉장히 신속하게 내려간다.

이와 반대로 습도가 높으면.. 낮 기온이 30도를 채 넘지 않고 심지어 해가 안 나더라도 푹푹 찌며 쏟아지는 땀을 감당할 수 없어진다. 땀이 나도 잘 증발하지도 않기 때문에 불쾌지수가 최고로 치닫는다.
이런 날이 꼭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질 않고 열대야가 계속돼서 사람들을 고통에 시달리게 만든다. 에어컨은 온도가 아니라 습도를 낮추는 기능 때문에 더 필요하다.

습도라는 건 공기 중에 존재하는 수증기의 농도를 말한다. 물은 1기압에서 섭씨 100도에서 끓기 시작해서 몽땅 수증기로 바뀌며, 물의 끓는점이나 어는점은 잘 알다시피 공기의 압력에 따라 달라진다(고산 지대에서는 물이 더 낮은 온도에서 끓음). 물이 공기를 녹이고 있는 것만큼이나 반대로 공기도 수분을 함유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100도보다 낮은 온도에서도 공기와 접촉하는 수면에서는 일부가 수증기로 증발하기도 한다.
이건 안개 내지 구름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건 수증기가 아닌 미세한 물 알갱이가 공기 중을 떠다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순수한 회색과 흑백이 교대로 촘촘하게 늘어선 디더링의 차이와도 비슷하다. 물이 어떻게 이런 두 형태로 모두 존재할 수 있는지 난 완전히 직관적으로 이해를 못 하겠다.

공기가 머금을 수 있는 습기의 한계라는 게 공기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습도에는 절대 습도와 상대 습도라는 개념이 따로 존재한다. 물이 온도가 올라갈수록 기체를 녹이고 있기 어려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기 역시 온도가 올라갈수록 습기를 품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같은 양의 수분을 머금고 있더라도 온도가 올라가면 상대 습도는 더 올라간다. 겨울이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여름이 전반적으로 습한 것도 이런 상대 습도의 차이 때문이다.

3. 진공

그럼 물과 공기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 반대로 물과 공기가 전무하여 진공에 가까운 우주로 나가면 온도라는 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솔직히 말해 이 역시 난 잘 모르겠고 상상이 잘 안 된다.
공기 제로, 압력 제로, 습도 제로이다 보니 거기는 햇볕을 받느냐 마느냐에 따라 뻑하면 영하 1~200도와 영상 수백 도를 오르내리게 된다. 단지 그 온도의 여파가 지구 표면보다 훨씬 덜하다. 진공인 게 인체에 훨씬 더 해롭지, 온도 자체가 사람을 즉시 태워 죽이거나 얼려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 우주 공간에서 온도가 영향을 전혀 안 끼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위성은 뱅글뱅글 돌면서 몸체가 태양열을 골고루 받게 자세를 잡는다. 이거 조절 잘못해서 배터리가 과열이라도 되면 터지는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또한, 우주 공간에서 수성이나 금성 같은 내행성으로 날아가는 탐사선은 커다란 양산처럼 생긴 차폐막을 앞에 두르는 형태로 설계되었다.

달에 착륙했던 아폴로 우주선 승무원들 역시 직사광선을 피해서 그늘 또는 저녁 시간대를 선택해서 주로 활동했다.
그러니 이런 정황들을 종합했을 때, 진공에서의 온도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갈피를 잘 못 잡겠다. 일단 진공이라면 앞서 언급했듯이 각종 물질의 상태가 바뀌는 온도(끓는점, 어는점??)부터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형태로 바뀌어 버리기도 하니 말이다.

참고로, 사람이 우주에 맨몸으로 있으면 체내의 공기가 유출되고 체액이 끓어오르면서 신체 상태가 잠수병 이상으로 엉망진창이 되며, 수 분 이내로 의식을 잃고 곱게 질식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눈알이 튀어나오거나 몸이 풍선 터져듯이 터지면서 끔살 당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잘 훈련받으면 수 초 정도 동안 맨몸으로 우주 공간에 노출되고도 살 수 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진공은 무중력과는 별개의 조건이다. 진공은 쇠구슬과 깃털이 똑같은 속도로 떨어지는 것이고, 무중력은 둘 다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물론 둘 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상황인 건 마찬가지이다만... 우주 개발 초기에 선진국에서 벌어졌던 여러 테스트· 훈련, 생체 실험-_- 중에는 진공을 버티는 것이 당연히 포함돼 있었다. 원심 가속기나 자유 낙하를 통해 흉내 냈던 무중력과는 별개의 코스이다.

4. 열이 전달되는 원리

온도를 변화시키는 열이 전파되는 메커니즘으로는 "대류, 전도, 복사"라는 세 종류가 있다. 이 개념 자체는 초· 중딩 과학 시간에 진작부터 배운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심오한 개념이다. '열전달'은 전자기학, 뉴턴 역학, 양자 역학만큼이나 물리학의 엄연한 한 분야이고 공대에서 전공 필수 과목이다.

'대류'(convection)는 유체(주로 기체) 내부에서 온도의 차이가 나는 분자들이 물리적으로 직접 상하로 움직이고 돌면서 열이 골고루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바닷가에서 바람이 끊임없이 부는 것(땅과 물의 엄청난 비열 차이!), 화재 현장에서 불꽃이라든가 뜨거운 공기가 굳이 위로 솟구치는 것이 모두 대류 현상이다.
그러니 이건 가장 거시적인 규모의 열 전달이다. 분자간의 온도 차이가 아니라 단순 농도· 밀도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확산'과는 다른 현상이다.

열은 매체가 저렇게 몸소 움직이지 않아도 전해질 수 있다. 펄펄 끓는 냄비의 영향으로 냄비 손잡이라든가 안에 넣어 뒀던 국자까지 뜨거워지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금속의 분자가 직접 움직일 리는 없으니, 이때는 직접 이동이 아니라 일종의 열역학적 '진동'이라는 미시 현상을 통해서.. 마치 소리가 전해지듯이 열이 전해진다. 이 현상을 '(열)전도'(thermal conduction)라고 한다.

진정 골때리는 건 가장 미시적인 현상인 '복사'(radiation)이다. 열은 전자기파의 형태로 아무 매질· 매체가 없는 곳에서도 퍼져 나가서 전해질 수 있다. 적외선이라고 다들 들어 보셨을 것이다. 애초에 전자기파는 파동 같기도 하고 입자 같기도 한 이상한 물건이니 말이다. 저 복사는 copy나 duplication과는 아무 관계 없고, '내리쬠'이라는 뜻이다.

'복사'라는 게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도 태양열이 지구로 전해질 수 있다. 음파(소리)는 순수한 진동일 뿐이기 때문에 공기가 없는 곳에서는 퍼져 나갈 수 없고 속도도 훨씬 더 느리지만, 복사열은 위상이 빛과 같다.
전자레인지는 그릇은 별로 데우지 않고 안의 음식만 데우는 것이 무척 기가 막히고 신기한데, 이것만 봐도 열은 대류나 전도 같은 물리적인 접촉이 아니어도 직통으로 전해지는 게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복사는 도선의 전기 저항으로 인해 발생하는 열하고도 물론 다른 개념이다.

물을 끓이면 왜 물이 가만히 있질 않고 보글보글 사정없이 요동치는지, 무슨 근거와 원동력으로 저러는 걸까? 이건 열전달 내지 물질의 상태 변화와 관련된 여러 미시적인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그리고 지표면에서 물과 공기뿐만 아니라 그 밑으로 땅 속에서도 물질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화산· 지진 같은 지질 현상이 발생하는 원동력도 따지고 보면 맨틀의 대류 같은 열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의 자전은 아주 서서히 느려지고 있지만, 지구 내부는 지열 때문이든 자기장 때문이든 활동이 여전히 왕성하고, 옛날보다 오히려 더 활발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지구 발 밑에 지옥이라는 뜨거운 장소가 있다면, 지구의 내부 구조와 양상은 타 행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열병합 발전소 -- 열전달과 폐열 재활용의 실제 사례

발전소 중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수력· 화력이나 원자력 말고 '열병합'이라는 놈이 있다. 얘는 사실 화력 발전의 파생 변종이다.
물을 끓이고 증기 터빈을 돌려서 발전기를 가동하려면 열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 열이라는 게 열역학 이론적인 한계 내지 기술의 한계로 인해 전부 전력 생산에 쓰이지는 못한다. 거의 과반이 폐열로 버려진다. 딱히 재활용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8~90도에 달하는 뜨거운 물이 한 트럭이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 아무리 용을 써 봤자 100도 이상으로 실제로 펄펄 끓는 물을 한 컵만치라도 만들어서 증기 기관을 굴릴 수는 없잖은가? 그런 맥락에서 말이다.

전체 열량의 합이야 물론 90도짜리 물 한 트럭이 100도짜리 물 한 컵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에너지를 소비하여 열을 가해 주지 않는 한, 물의 온도 자체를 스스로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건 열역학적으로 자연스러운 방향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열병합 발전소는 이런 어중간한 열이 담긴 온수를 수집해서 난방용으로 주변 지역에 공급해 준다. 전기만 파는 게 아니라 열도 판다. 전동차에 회생 제동이 있다면 화력 발전소에는 이런 열병합 시설이 있는 셈이다.

그럼 처음부터 모든 화력 발전소에다 열병합 시설을 추가하면 되지 않나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열이라는 건 폐열을 기껏 수집한다고 해도 무슨 태양 복사열처럼 간편하게 전해서 활용 가능한 게 아니다. 열이 담긴 물을 수송할 수 있는 거리에 큰 한계가 있다. 쟤들은 대류, 전도, 복사가 아니라 송유관처럼 '열배관'이라고 극한의 보온 시설이 갖춰진 비싼 특수 수도관에다가 온수를 공급하는 형태로 열을 전한다.

그러니 열병합 발전은 온수를 곧장 중앙 집중 난방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도시 위주로 소규모 화력 발전+열병합 시설을 갖춘 '지역 난방 공사'의 형태로 운영된다.
2018년 현재 경의선 곡산 역 근처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열병합 발전소의 자체 구비가 아니라 정식 화력 발전소와(한국 동서 발전 소속) 연계하는 대규모 열병합 발전소가 있다. 전국 유일의 인서울 화력 발전소인 당인리 발전소와 비슷한 격의 명물인 듯한데, 얘들도 얼마 못 가 더 외곽으로 이전하지 싶다.

그나저나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폐열이 담긴 온수(원자로 냉각용)가 나오긴 한다. 그렇다고 해서 원자로를 소형화해서 대도시 근처의 지역 난방 공사를 운용할 수는 없으니(..; ) 이런 온수는 양식 같은 다른 용도로 활용되는 편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우주 기지와 마찬가지로 육지에서 최대한 떨어진 바닷가에 건설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말이다.

6. 차든지 뜨겁든지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이건 성경에서 예수님 말씀의 직접 인용일 정도로 유명한 문구(계 3:15)이다.
물론 성경의 저 문맥에서 제일 좁은 뜻은 양자택일하라고 해서 진짜로 '차가운 극단'으로 나가지 말고 "영이 뜨거운 가운데"(롬 12:11) 주님을 섬기라는 책망 내지 독려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나가 죽어!" / "학교 때려치우고 공장이나 가!" 이런 부모나 선생의 막말 꾸중이 진짜로 애더러 공장 가거나 나가 죽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듯이 말이다.

하지만 뭐, 좀 더 넓게 비유적으로는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이거 아니면 저거, 모 아니면 도 진영을 확실하게 골라서 화끈하게 살아라, 박쥐 같은 밍숭맹숭 회색분자 기회주의자가 되지 마라"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앞서 비유를 들었던 것처럼.. 폐열만 어중간하게 담긴 미지근한 물은 아예 펄펄 끓을 정도로 뜨거운 물이나, 얼음이 껴 있을 정도로 차가운 물에 비해서 효용이 낮다. 찬물과 더운물을 섞어서 미지근한 물을 만들기는 쉽지만, 미지근한 물이 저절로 찬물+더운물로 분리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열을 가하든 냉각을 시키든 에너지를 써야 한다. 이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만큼이나 절대적인 사실이다.

그러니 "차든지 뜨겁든지 하길 원한다"란, "정체되거나 뒤쳐지지 말고 늘 전진하길 바란다", "아래로 떨어지지 말고 위를 향해 오르길 바란다" 같은 말을 "열역학적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쪽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라는 비유를 동원해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밖에..

  • 학창 시절에 열역학을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 비빔면을 끓여 먹을 때 이 정도 양은 물을 몇 번 헹궜을 때 면을 완전히 식힐 수 있을지를 숫자와 수식으로 모델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물에 대해서는 "10리터를 한꺼번에 끓이는 것보다 5리터부터 먼저 데운 뒤 나머지 5리터를 추가로 부으면 10리터 전체를 더 빨리 끓게 할 수 있다.", 심지어 "뜨거운 물이 더 빨리 언다" 같은 믿기 힘든 말도 존재한다. 물에다 날씬한 돌을 잘 던지면 수면에 몇 번 통통 튀는 것도 가능한데, 그것만큼이나 본인은 저런 현상은 어떻게 과학적으로 가능한지 입증할 만한 지식이 부족하다.

  • 한국어는 '덥다'와 '뜨겁다', '춥다'와 '차갑다'의 차이가 존재하는 게 꽤 절묘한 것 같다. '덥다/춥다'는 사람이 느끼는 관점이고, '뜨겁다/차갑다'는 온도를 내는 해당 객체의 관점이다. "난 지금 덥다" / "난 뜨거운 남자다"처럼 말이다.
  • 물리라는 학문은 계속 미시적으로 파고들다 보면 결국은 역시 '파동과 입자'로 귀착된다. 그리고 직선이나 포물선이나 갖고 노는 게 아니라 결국은 삼각함수의 형태로 표현되는 진동을 논하게 된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미시세계 입자들의 끊임없는 불규칙한 운동.. 일명 '브라운 운동'은 어떻게 벌어지는지, 걔네들은 무슨 원동력으로 계속 운동하는지, 텔레비전의 백색잡음 같은 움직임도 왜 발생하는지.. 따지고 보면 참 궁금한 게 많다. 이런 것도 열역학과 전혀 무관한 게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3/19 08:36 2018/03/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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