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 이야기

과거에 이따금씩 발전 시설이나 원자력에 대한 글을 몇 번 썼지만,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만 전문적으로 글을 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수력이야 그 정의상 지형을 많이 타고 아무 곳에나 못 만들겠지만, 화력은 연료와 엔진만 있으면 어디서나 발전기를 돌릴 수 있으니 장소와 지형 제약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물론 화력이라도 엄청 거대한 놈은 연료와 냉각수 조달이 원활한 곳, 보안 걱정 없는 곳, 빵빵하게 돌려도 주민들 항의 민원이 안 들어올 외곽에 건설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화력은 규모를 줄여서 도시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에 열병합 난방 시설과 연계한 형태로도 만들 수 있다. 메탄 가스를 활용할 목적으로 쓰레기장 주변에 이런 발전소가 돌아가기도 한다.

또한 울릉도· 백령도 같은 오지 도서 지역에도 그런 소형 화력 발전소가 있다. 전깃줄을 본토에서 바다 건너 거기까지 연결하는 건 어려우니 말이다.
이런 영세한 발전소들은 메이저급 대형 발전소에 비해 배기가스· 매연을 정화하는 시설이 부실해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어디 언론에서 고발한 적이 있다.

원자력 발전도 물을 끓여서 증기 터빈을 돌리고 그걸로 교류 발전기를 돌린다. 이 원리는 화력과 본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 다만, 원자력은 열을 생성하는 방식이 화력과는 넘사벽급으로 더 고차원적이고 에너지가 풍부한 대신, 훨씬 더 위험하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니 원자력은 화력처럼 여느 공장 짓듯이 아무렇게나 여기 저기 많이 만들 수 없다. 한번 만들고 나면 수십 년 뒤에 원자로를 해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철통같이 잘 관리하겠다는 심정으로, 정말 엄격한 입지 조건을 따져서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핵분열 방식보다 더 고차원적인 핵융합 방식의 발전은.. 마치 바퀴식 고속철 vs 자기부상 고속철만큼이나 아직까지 떡밥이다.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실용화되지 못했다.

('핵분열'이라는 용어가 이렇게 물리학에서 쓰이는데, 완전 딴판인 생물학에서도 한자까지 동일하게 쓰인다는 게 흥미롭다. 마치 '궤도'처럼 말이다(천체 orbit, 철도 track). 하지만 핵분열의 경우 영어로는 물리학은 fission, 생물학은 division으로, 용어가 서로 다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발전소가 원래 다 민간 지도에서 표시하지 않는 보안 시설이지만, 원전은 위로 비행기의 비행조차 금지할 정도로 보안이 더 삼엄하다. 원자로의 겉벽은 어지간한 댐 급으로 콘크리트를 왕창 쏟아부어서.. 비행기가 쳐박고 어지간한 폭탄이 떨어져도 끄떡없게 만들어진다고 들었다.

원전은 미래의 해체 비용까지 생각하면 마냥 싼 게 아니겠지만.. 어쨌든 당장 핵분열이 시작되어 제대로 돌아갈 때는 화력보다 훨씬 더 많은 열량이 저렴하게 뿜어져 나온다. 한번 시작된 반응을 마음대로 멈췄다가 재개할 수도 있지 않으니 전기는 밤낮 구분 없이 24시간 쭈욱 생산된다.

철도만 해도 비싼 돈 들여 고속철이 개통하고 나면 노선이 전부 KTX 위주로 개편되고, 나머지 느린 열차들은 KTX 연계 지선 위주로 운영된다.
그것처럼 국가에서 전력을 관리할 때도 평소에 저렴한 원전을 상시 가동하고, 이것만으로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전력 소모가 늘면 용량과 생산 원가가 모두 열세인 화력을 추가로 가동하게 된다. 즉, 전력 부하가 커질수록 더 비싼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에휴.. 나도 공돌이 공부 더 열심히 해서 우주로 나간다거나, 아니면 이런 신비로운 업종의 종사자가 됐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만..
대한민국에는 원자력 발전소의 군집 내지 본부가 총 네 군데 있다. 아래의 그림은 한 2년 반쯤 전 기준의 자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고리(1978)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이다. 그 시기가 1978년 봄이니 박통 집권의 말기이며, 호남선 대전-이리간 복선 개통과도 시기적으로 비슷하다. 착공은 1971년부터 했으니 만드는 데 7년이나 걸렸다.

얘가 있는 곳은 부산 기장군의 최북단과 울산 울주군의 최남단 사이에 있는.. 행정구역상 기장군 '고리'(古) 전체이다.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답게 북괴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후방인 동시에 나름 부산이라는 대도시와 가장 가까운 곳에 지어진 셈이다. 여기가 원전 부지로 지정되면서, 이 동네에 원래 살던 주민들은 모두 당연히 딴 데로 이주하게 됐다.
이렇듯, 이 발전소의 명칭의 근거는 그냥 지명이다. ring 같은 다른 이상한 근거가 절대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상의 이유와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를 조달하는 문제로 인해, 바닷가에 만들어지는 것이 관례이다. 한반도에서는 바람이 서에서 동으로 분다는 특성상, 서해안 대신 동해안의 바닷가가 선택되었다. 근처의 임랑 해수욕장에서 고리 원전을 멀리서나마 구경할 수 있다.

원전이 대도시와 너무 가까운 것은 좀 찝찝하고 문제의 여지가 있지만, 그 덕분에 여기는 직원들의 근무 선호도가 가장 높다. 그리고 근처에 '신고리'라는 이름으로 원전이 더 지어져서 발전 용량이 압도적으로 증가했으며, 한수원의 직원 연수 시설과 심지어 원자력 대학원대학교까지 다 여기 일대에 건립되었다. 여기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원전 허브처럼 돼 가는 느낌이다.

대전에 있는 원자력 연구원이 핵물리학을 전반적으로 연구한다면, 저기는 원자력 발전에 더 특화돼 있다.
신고리 원전이 너무 거대해진 관계로, 앞으로 더 만들어지는 신고리 원자로 3호기부터는 '고리'가 아닌 '새울'이라는 새로운 원자력 본부의 명의로 관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 가동 원자로인 고리 1호기는 잘 알다시피 설계 수명을 넘겨서 가동을 중단했으며,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해체될 예정이다. 뭔가 몇십 년을 뛰었던 전동차나 여객기가 퇴역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화력 발전에는 이런 거창한 프로세스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용광로만 해도 한번 쇳물이 흐르기 시작했으면 그야말로 무조건 365일 가동해야 한다던데(쇳물이 중간에 굳어 버리면 용광로 전체가 망가지고 못 쓰게 됨)... 원자로는 더 위험하고 까다로운 물건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2. 월성(1983)

고리 다음으로 5공 시절에 가동을 시작한 제2의 원자력 발전소는 '월성'이다. 물론 얘도 건설은 이전 정권 때부터 몇 년째 하다가 저때에야 결실을 거뒀다.
있는 곳은 고리보다 더 북쪽으로.. 경주의 남동쪽 끝의 나아리와 봉길리 사이이다. 지명을 딴 해수욕장도 있으며, 우리나라 역사상 보기 드문 해중왕릉인 신라 문무대왕릉도 여기 근처에 있다.

발전소의 이름이 월성인 이유는 여기의 옛 지명이 월성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신라의 도읍에 속하는 좁디좁은 시내만이 경주시이고, 나머지 외곽의 넓은 시골 마을들은 다 경주군(1995 이전)이었다. 그게 더 옛날에는 이름도 경주군이 아니라 월성군(1989 이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경주/월성'은..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행정구역 영역이 바뀐 '김포/서울'과는 관계가 좀 다르다. 김포 공항조차도 굳이 이름을 바꾸지 않고 있는데(뭐 국제적인 인지도와 관성 문제 때문이지만), 원전의 이름을 뭔 남사스럽게 최신 지명에 맞춰 업데이트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도 경주는 시내와 바다 근처는 거리가 상당히 멀고 산으로 가로막혀 있기도 한지라, 생활권이 서로 굉장히 다르다. 경주도 포항처럼 바다와 접하고 있고 해수욕장과 항구도 있는 시라고 하면 누가 선뜻 실감하겠는가? 행정구역이 다르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그것만치 월성 원자력 발전소도 서류상의 행정구역으로만 경주 소재일 뿐,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경주 생활권에 있는 건 아니다.

여기도 2010년대에 와서 신형 원자로를 추가로 만들었으며, 1983년부터 가동했던 원조 1호기는 이미 퇴역했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라고 다 같은 발전소는 아닌지라, 월성의 원자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가압중수로 방식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가압경수로) 잘은 모르겠지만, 얘는 핵무기 개발과 연계하기 더 쉬운 구조여서 국제적으로 더 민감하다고 그런다. 우주 탐사 로켓이 장거리 미사일로 형태가 고스란히 바뀔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3. 영광-한빛(1986)

얘는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들 중 이례적으로, 유일하게 서해안에 있는 물건이다.
황해라고도 불리는 서해는 물이 얕고 탁해서 해수욕장으로서의 입지가 동해 및 남해보다 못하다. 그런데 그 단점은 다량의 냉각수를 필요로 하는 원전의 입지 조건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전남 영광군의 북부에는 바닷가가 내륙의 산으로 가로막히기도 하고 서해안의 지리· 지형적인 단점이 그나마 적게 작용하는 곳도 있는가 보다. 그래서 거기에 원전이 하나 더 지어졌다.
영광은 광주와 가까우며, 이 발전소가 있는 곳은 위도가 부산 고리와 비슷하다. 얘 혼자 다른 원전들과 달리 낙동강 오리알처럼 따로 떨어져 있다.

본인은 타지 사람으로서 '영광'이라 하면 정말.. (1) 영광 굴비랑, (2) 옛날에 야망이 너무 충만했던 그 조직폭력배 집단, 그리고 (3) 원자력 발전소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자신이 원자력 발전소와 엮이는 것이 싫었는지.. 2013년부로 발전소의 이름을 '한빛'으로 바꿔 버렸다. 지명과 무관한 원전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됐다. 하지만 '광/빛'을 생각하면 개연성이 전혀 없는 명칭은 아니어 보인다.

4. 울진-한울(1988)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원전 군집 중에서는 제일 나중에 생겼으며, 위도가 제일 높은 북쪽에 있기도 하다. 강원도에 근접한 경북 동북부 끝.. 말만 들어도 전라남도 섬 만만찮은 오지 같지 않은가?
여기는 직원들로서는 기피 1순위인 근무지이다. 오죽했으면 "울진에서 10년간 근무"를 조건으로 거는 특채도 있다고 들었다. 무슨 사관 생도의 군 의무 복무도 아니고 말이다.

여기도 영광과 같은 시기(2013)에 '한울'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울진은 이 발전소 덕분에 오지치고는 세수입 많고 재정이 넉넉하고 학교나 공공기관들의 시설이 좋다고 들었는데 왜 굳이 발전소 이름에서 자기 지명을 빼려 하는지 모르겠다.

이상이다.

이런 식이면 강원도에도 원전이 있을 법한데 그렇지 않다. 지형적인 입지는 나쁘지 않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북괴와 가까워져서 안보 측면에서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동쪽으로 갈수록 고위도 영토를 많이 수복했기 때문에 강원도 남부의 삼척 정도에는 장기적으로 원전의 건설이 계획돼 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강원도가 아니라 울진보다 남쪽의 오지인 영덕에 새 원전이 이미 건설 중이긴 하다. 동해도 서해도 아닌 남해안 쪽은 만들 만한 곳이 없나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이 승만 할배 때부터 원자력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비록 할배는 문과 출신이고 군 경력도 없는 사람이지만,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던 일본을 닥버 시키고 우리나라를 해방시켜 준 무서운 폭탄이 원자력 기반이라는 것에 큰 감명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6·25 전쟁 이후, 1956년에 미국과 원자력 협정을 맺고 서울대와 한양대 등의 공대에 원자력 공학과를 신설했으며, 58년에는 원자력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렇게 차근차근 씨를 뿌린 것이 결실을 맺은 덕분에 20여 년 뒤에 한반도엔 원자력 발전소가 돌아가게 됐다. 원자력 발전소가 없이 화력만으로는 지금 같은 전철, 서버, 에어컨, 휴대폰 충전 같은 폭발적인 전기 소모 수요를 지금 같은 생산 원가로 결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은 이런 이유로 인해 예나 지금이나 원자력 발전의 적극 찬성론자이며, 되도 않은 탈원전 구도가 어떻고 하는 소리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당장 현실에서 이것만 한 대안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가 났을 때의 여파가 너무 크고 평소에도 방사성 폐기물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등 문제는 있지만.. 그것까지 일일이 다 따지려면 자동차나 비행기도 무서워서 타지 말아야 할 것이고, 그냥 현대 문명의 이기를 다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어디 한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에서 냉장고· 에어컨조차 없이 잘만 살아 봤으면 싶다.

원자력을 없애고 그 대신 더 더티한(미세먼지!!) 화력을 늘리는 것은 바보 병신짓이 따로 없고, 또 이 좁은 땅에서 무슨 태양광? 풍력? 이건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
환경 운동한다는 놈들이 정말 환경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99%가 그냥 진영 논리 정치꾼일 뿐이라는 것은 이미 다 밝혀진 사실이다. 이런 인간들이 원자력 발전을 꼭 '핵 발전'이라고 부르면서 원전을 반대하는 것에 본인은 더욱 공감해 줄 수 없다.

또한, 핵무기 개발을 그렇게도 오랫동안 열심히 해 온 북괴가 정작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아무도 못 들어 봤을 것이다.
쟤들도 60년대부터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원자력 연구를 하긴 했다. 다만, 그 유명한 '영변 원자력 연구소'는 바닷가가 아닌 평안북도 소재이고, 그 자체는 원자력 발전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남한의 원자력 연구원과 비슷한 시설이다. 함경북도에 있는 핵실험장 역시 원자력 발전과는 아무 관계 없는 시설이다.

저 짓을 하고 있으니 북한은 평양 말고는 밤에 불빛 하나 안 비치는 암흑천지이고 주민들은 도탄에 빠져 있다. 어디 누가 누구 탓을 하나 모르겠다(미국 탓? 경제 제재? 트럼프가 한반도에 긴장과 전쟁 조장?? -_-;; X랄..).
그러면서 그 부족한 전기는 김씨 일가 우상화 시설에다 최우선으로 공급하고, 대외적으로 전기가 부족하다며 남한 삥이나 뜯는 것이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북괴의 추악한 민낯이다. 이래도 도대체 언제까지 민족뽕 평화뽕 통일뽕이라는 저주받을 마약에 취해 있을 텐가?

참고로 국내의 경우, 개인이 '원자력 안전 위원회'의 허가와 승인 없이 싸제 원자로를 구축하고 방사성 원소를 건드리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도대체 그런 짓을 누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mad scientist 성향이 있어서 위험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금지다.
저건 개인이 싸제 총기나 폭발물을 만든다거나 무단으로 북한과 내통을 시도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위험한 짓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은 이런 짓을 다 관련법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1/22 08:34 2019/01/22 08:34
,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578

Trackback URL : http://moogi.new21.org/tc/trackback/1578

Comments List

  1. 사포 2019/01/22 10:43 # M/D Reply Permalink

    100배 공감합니다. 당장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 보면 원전 구축하는게 세계적인 흐름인데 거기서 선두급 기술을 가지고 있던 나라가 탈원전 운운한다? 미친놈이죠.
    때문에 우리나라 원전 관련 업계 자체가 일이 안들어와서(들어왔었는데 백지화되거나) 망하기 직전이에요..

    1. 사무엘 2019/01/22 14:14 # M/D Permalink

      그것도 석유 한 방울 안 나고 석탄조차도 난방용 무연탄밖에 안 나고, 친환경 대체 에너지 밀 만치 땅 넓고 환경 좋지도 않은 나라에서.. 뭘 믿고 저렇게 깝치는지 모르겠습니다. ㅡ,.ㅡ;;
      그래서 수십 년 동안 없는 살림에 정말 직싸게 고생해서 원자력 인력과 인프라를 닦아 놓은 것을 하루아침에 말아먹고.. 통탄할 노릇입니다.

Leave a comment

전기 저장 매체들

우리가 맨날 주머니에 넣고 들고 다니고 들여다보는 자그마한 스마트폰은 예전의 다른 휴대용 전자 기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첨단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집약된 결과물이다.
예나 지금이나 빛의 속도가 달라진 게 없고 전자기파의 특성이 달라진 건 없고,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중에서 파는 랜 케이블의 재질이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어째 인터넷 속도는 캐사기급으로 빨라졌는지? 더구나 유선이 아닌 무선까지도 말이다.

마치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만큼이나 난 직관적으로 저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HD 동영상 보기 vs 30년쯤 전 모뎀 PC 통신으로 사진 한 장 다운로드 시켜 놓고 머리 감기/담배 피우고 오기...;;
이건 진짜 1950년대 전쟁 폐허 vs 1980년대 올림픽 개최만큼이나 너무 파격적인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스마트폰은 불과 2, 3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초고성능 컴퓨터이다. 기존의 PC와는 발전 배경과 주 용도가 다르다 보니 구조적으로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는데.. 매우 중요한 차이는 네트워크 연결에 대한 관점이 아닌가 싶다.
PC는 원래 오프라인 상태로 쓰다가 인터넷 연결은 덤으로 추가로 가능한 구도인 반면, 스마트폰은 애초부터 기지국과의 연결을 전제로 깔고 운용된다. 그리고 PC와 달리 스마트폰은 365일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

그래서 현재 시각을 표시하는 기능만 해도 PC는 배터리 기반의 자체 시계가 있으며, 요즘 운영체제들이 주기적으로 시각 동기화 정도나 해 준다. 그 반면, 스마트폰은 기지국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현재 시각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 연결을 위해서 데스크톱 PC는 대개 유선 이더넷만 지원하고, 노트북 PC는 유선과 무선 와이파이를 모두 지원한다. 그 반면 스마트폰은 무선만 지원하고, 노트북 같은 다른 기기가 자신을 통해서 무선 인터넷 연결을 또 할 수 있게 태더링 기능까지 제공한다. 재미있는 차이점이다.

21세기 최신 과학 기술의 산물인 스마트폰을 가능하게 한 근간 기술을 몇 가지 추려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디스플레이: 옛날엔 PC의 모니터는 크고 무거운 CRT(브라운관) 방식이 대세였다. 그리고 반대로 액정이라 하면 지금 같은 천연색 화면이 아니라, 그 시절 전자 계산기처럼 녹두색 배경에다 기껏 7-segment 숫자 내지 도트가 다 보이는 저해상도 비트맵 글꼴 정도나 찍는 허접한 단색 화면이 전부였다.

(2) 플래시 메모리: 하드디스크는 기계적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많으며 진동과 충격에 취약하다. 즉, 근본적으로 모바일에 친화적인 물건이 아니다.
뭐, 그 대신 스마트폰의 메모리가 PC의 하드디스크와 비슷한 가격으로 수백 GB~테라바이트까지 가지는 못한다. 컴퓨터에서 과연 주 기억장치와 보조 기억장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날이 올까?

(3) 저전력 저발열 CPU: 난 저 정도로 고성능 CPU가 달린 스마트폰이 어떻게 냉각 팬이 없고 웽 소리를 전혀 안 내며 동작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물론, 오로지 메모리 용량 최적화이지 전력 소모 최적화와는 거리가 먼 구닥다리 x86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그런 스마트폰용 CPU를 만들 수는 없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대체로 하드웨어 차원에서의 멀티미디어 처리 지원이 PC만치 범용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 동영상이나 여유롭게 재생하지는 못한다.

(4) 그리고 2차 전지: 스마트폰은 냉장고처럼 24시간 켜져 있는 물건이다. 그런데 그걸 옛날 휴대용 전자 기기들처럼 1.5V짜리 건전지를 주기적으로 갈아 끼우면서 사용해야 한다면 정말 끔찍할 것이다. 게다가 그 물건들은 지금 건전지의 용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같은 것도 나오지 않고, 그냥 예고 없이 픽 꺼져 버리고 안 켜지곤 했다.

철도에서는 전기 기관차가 디젤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괴력을 자랑하면서 수십 량의 화차를 견인하는 차력쑈를 펼치고 있다. 1만 마력이 넘는 힘으로 시속 300으로 달리는 KTX도 전기로 달린다.
하지만 이건 레일을 따라 전차선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지, 배터리만으로 도로의 대형 버스나 트레일러의 동력원이 전기 모터로 대체되는 건 요원한 일이다.

배터리는 콘센트를 꽂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인류가 사용하는 기계 중에 인력과 기름을 쓰지 않는 나머지 모든 것들의 동력을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공기 중의 산소를 조달할 수 없는 곳에서 동작하는 기계는, 연료에 산화제가 같이 동봉된 로켓을 사용할 게 아니라면 전기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월면차라든가 심해 잠수함 말이다. 산소는 물론이고 태양 자체로부터 한없이 멀어지는 외행성 탐사선은 아예 원자력 전지를 사용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배터리는 크게 세 계열로 나뉜다.

(1) 납+황산
그 특성상 자동차(+잠수함) 같은 거대한 동력 기계에서 쓰이지, 최소한 사람이 일상적으로 갖고 다니는 전자기기에서는 볼 일이 없는 물건이다.
용량 대비 재료값이 저렴하지만, 무겁고 자연 방전 잘 되고 충전 속도가 더디며, 일정 수준 이상 방전되면 완전히 망가져서 못 쓰게 된다. (전압이 약해지는 것을 통해 방전을 간접적으로 유추함)
황산 용액은 인체에 위험하지만 그래도 고열로 인한 폭발 위험 같은 건 없다. 자동차가 안 그래도 교통사고와 화재의 위험에 노출된 물건인 걸 감안하면 이건 자동차 배터리로서 큰 장점이다.

(2) 니켈-카드뮴
일명 메모리 효과로 인해, 지금까지도 '완충 완방'이라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편견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주범이다.
한때 노트북 등 여러 전자기기에서 쓰였지만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카드뮴보다 재료 단가가 비싸지만 용량과 수명 등에서 더 유리하고 메모리 효과 단점도 없는 니켈-수소로 대체되었다.

(3) 리튬 이온
일단 소형 전자기기 정도 규모에서는 이만 한 가성비가 없는 만능 소재이다. 에너지 밀도가 아주 높고 메모리 효과 없고, 그러면서 아주 가벼우니 좋다. 하지만 수명이 짧은 편이며, 폭발 위험과 재료 고갈로 인한 조달 문제가 남아 있다.

모든 배터리들은 기온이 매우 낮은 곳에서는 제대로 동작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참 안타깝지만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다. 충전과 방전을 수백· 수천 회 반복하며 쓰다 보면 최대 충전 가능 용량이 조금씩 감소한다. 그래서 휴대전화나 노트북 PC의 배터리는 몇 년 주기로 교환해 줘야 된다. 화학 반응이 완전히 가역이 아니기라도 한가 보다.

옛날에는 총에 탄창을 교체하듯이 스마트폰의 뒷구멍(?)을 열어서 배터리를 통째로 교체하는 게 가능했는데, 요즘은 주 배터리는 탈착이 가능하지 않은 형태가 됐다. 그 대신 외장형 보조 배터리를 케이블을 통해 연결해야 한다. 이런 관행의 원조는 애플 진영의 아이폰이다. 쟤들은 컴퓨터고 뭐고 온통 일체형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 왔기 때문이다. 모니터고 본체고 배터리고 몽땅 분리 불가능한 일체형..

이런 2차 전지, 일명 배터리들은 재충전 가능한 화학 전지를 말한다. 배터리와 비슷하면서 다른 물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축전기(일명 콘덴서)
얘는 화학 반응 없이 찰나의 전기 에너지 자체를 찔끔 저장하고 있다가, 고전압의 전하 형태로 순식간에 찌릿 방출하는 물건이다. 극초소용량에 초고속 충전· 방전되는 배터리와 비슷하다. 그러니 전력을 축적하는 용도보다는 다른 전자 기기 내부의 부품으로 쓰이곤 한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프로토스의 실드 배터리는.. 실드를 전기 에너지처럼 취급해서 마치 축전기처럼 보충하는 형태에서 모티브를 딴 듯하다.

(2) 건전지
2차 전지(배터리)의 반의어로서 충전 불가능한 1회용 1차 전지를 가리킬 때 '건전지'라는 용어가 쓰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단어 자체는 '습전지'의 반의어이기 때문에 충전 가능 여부가 함축되어 있지는 않다. 둘 다 똑같이 화학 전지인데, 자동차 배터리처럼 황산 용액이 출렁거리는 게 아니라 전해액을 종이 같은 데에 흡수시켜서 곧장 줄줄 흐르지 않게 했다는 뜻일 뿐이다.

망간-아연 전지가 대표적인 건전지요 1차 전지이긴 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2차 전지 중에도 건전지 형태인 물건이 있다.
시계 같은 데에 들어가는 일명 '단추형 소형 건전지'라는 것도 있는데 얘들은 대체로 재충전 가능하지 않은 1차 전지이다. 옛날에는 수은 건전지가 많이 쓰였지만 요즘은 수은이 몸에 안 좋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인해 온도계로도, 건전지로도 모두 퇴출된 지 오래다. 유연휘발유, 프레온 가스, 석면처럼 말이다.

건전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난 개인적으로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서 써야 하는 무선 마우스는 너무 불편하다. 왜 저런 걸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평소에 충전 가능하게 마우스 거치함이라도 만들어 놓든가 하지..

(3) 연료 전지
얘는 연료를 사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내긴 하는데, 연료를 태워서 운동 에너지로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화학 전지처럼 연료(?)의 화학적인 전위차를 이용해 축적돼 있던 전기를 뱉어 내는 것도 아니니 그 특성을 말하기가 좀 뭣하다.
현재로서는 산소와 수소를 이용해서 전기 분해의 정반대 메커니즘으로 물과 전기를 만들어 내는 게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한다.

말 그대로 연료의 형태이므로 차에 기름 넣듯이 매우 빠르게 충전을 할 수 있고 자연 방전 걱정이 없다는 점, 시끄러운 엔진 가동 없이 전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화학 전지 기반의 기존 배터리가 넘볼 수 없는 장점이 있지만 얘 역시 수소의 보관, 백금 촉매의 가격 등 여러 문제 때문에 압도적인 대안 역할은 아직까지 못 하고 있다.
더티한 탄소가 달라붙은 통상적인 탄화수소 계열이 아니라 수소 자체를 곧장 반응시킬 수만 있다면 참 깨끗한 무공해 에너지원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어려운 일이다.

국내에서 현대 자동차가 수소 연료 전지 차량의 연구 개발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휘발유 엔진은 배기가스의 정화, 즉 후처리를 위해서 백금 촉매 변환 장치를 사용하는데, 수소 엔진은 산· 수소의 반응이라는 본업의 촉진을 위해서 백금 촉매를 사용하니 촉매의 비중이 더 클 것이다.

참고로 수소로 달리는 자동차는 수소 연료 전지 기반뿐만 아니라, 수소 자체를 연소시키는 내연기관 기반도 별개로 있다. 개념적으로 서로 다른 물건이다. 비록 반응의 부산물로 둘 다 물이 나오는 건 동일하지만 말이다. 수소는 로켓 엔진에도 이미 사용되고 있는데 그게 연료 전지 기반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연료를 태워서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도 다 같은 게 아니다. 교통수단들이나 다른 소형· 이동식 발전기들은 말 그대로 내연기관이 장착되어서 엔진의 회전력으로 발전기를 곧장 돌리지만, 거대한 화력 발전소에는 외연기관인 보일러와 증기 터빈이 있다. 화력 발전소는 석유보다도 석탄을 더 많이 활용하니 말이다.
과거의 증기 기관차는 석탄과 물을 주기적으로 보충해야 했던 반면, 화력 발전소에서는 한번 터빈을 통과했던 수증기를 수집· 냉각 후에 계속 재활용한다고 한다.

(4) 원자력 전지
원자력 발전소는 열의 근원이 석탄· 석유가 아니라 방사성 원소의 붕괴 에너지라는 차이가 있을 뿐,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은 화력 발전과 동일하다. 그에 반해 원자력 전지는 열전 효과(Seebeck effect)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한다.

이렇게 자료를 모아 보니, 통상적인 화학 전지나 교류 발전기, 심지어 광전지 말고도 전기를 비축하거나 생산하는 방식은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원자력 발전은 다 20세기 초· 중반에 발견되고 규명된 '핵 분열' 원리를 이용하며, 그것도 그 에너지 자체를 곧장 전기로 바꾸는 게 아니라 열로 물 끓여서 터빈을 돌리는 용도로 간접적으로만 사용한다.

핵 분열을 넘어 태양 같은 항성들의 동력원이기도 한 '핵 융합'을 인간이 직접 제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더 안전하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mc^2의 형태 그대로 뽕을 뽑을 수 있게 된다. 핵 융합의 원료 자체는 그야말로 주변에 무한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 중수소는 바닷물..) 사실, 원자 폭탄과 수소 폭탄이 구조적인 차이도 핵 분열과 핵 융합이다.

하지만 핵 융합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엄청난 고온 고압 환경이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이건 뭐 초전도 상태를 만들기 위한 극저온과 반대편 극단의 영역이 아닌가 생각된다.
핵 융합, 무선 송전, 직류 고압 송전... 가능하다면 요 세 개가 아마 2020년대 인류의 생활을 바꿔 놓을 과학 기술 떡밥으로 남을 듯하다. 과거의 괴수 전기 공학자 테슬라는 무선 송전을 어느 정도 실현도 했던 것 같지만, 직류 고압 송전은 자기 관심 분야가 아니었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17 08:35 2018/09/17 08:35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533

Trackback URL : http://moogi.new21.org/tc/trackback/1533

Leave a comment

블로그 이미지

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19/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1158309
Today:
245
Yesterday:
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