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80년대 우리나라 역사

우리나라는 먼 옛날 박 정희 때는 한창 고속도로 건설하고 자동차 만들고 제철소 짓고 중화학 공업을 육성했다. 나라의 주 경제 구조가 농경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통째로 바뀌었다.
그 뒤 1980년대 전 두환 때는 최신 산업 트렌드가 정보 통신, 컴퓨터 쪽으로 바뀌었다. 삼성 전자에서 공돌이들을 갈아넣어서 처음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고, 8비트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80년대 말에는 벽돌만 한 크기의 엄청 비싼 휴대전화도 처음으로 만들었다.

저런 기업뿐만이 아니다.

  • 1980년대 중반에 ETRI에서는 전화기 전전자 교환기(TDX)를 100% 자체 개발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 그리고 KIST 시스템 공학 연구소에서는 올림픽 경기 정보 시스템(GIONS)를 100% 자체 개발해서 실전에서 단 한 건의 장애 없이 잘 운영해 냈다.

개인적으로 이 두 일화도 경부 고속도로나 현대 포니, 포항 제철 "우향우 정신" 같은 아이템과 대등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얘들은 한번에 완성품이 짠 튀어나온 게 아니라, 수 년 동안 점진적인 발전.. 즉 진화를 거쳤다.
TDX는 첫 실용 모델인 TDX-1이 나온 게 1984년이고 상용화는 1986년이다.
GIONS도 1983년의 인천 체전, 전국 체전, 1986년 아시안 게임을 거치면서 검증과 보완을 거친 끝에 1988년의 올림픽 때 끝을 본 것이었다.

국내 체육대회는 시스템이 실패해도 세계적으로 망신 당할 일은 없기 때문에 위험 부담만 덜할 뿐이지... 자잘하게 관리해 줘야 하는 요소들, 경기 종목 수, 시스템의 복잡성은 올림픽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베타테스트 명목으로 적합한 아이템이었다. 단지, 이런 것들을 비현실적으로 짧은 시한 동안 다 발로 뛰며 조사하고 코딩 구현을 해야 했던 연구원과 협력업체 직원들이 공밀레로 갈려 들어갔다.;;

물론 둘 다 40여 년 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 철 지난 완전 구닥다리 레거시 기술일 뿐이다.
경부 고속도로의 옥천 당재 터널이 그 당시에는 부족한 자본과 기술, 열악한 여건에서 그렇게도 고생하면서 처절하게 만들어졌지만, 30여 년 뒤에는 도로가 통째로 다른 고가로 이설되고 그 길과 터널이 쓰이지 않게 된 것처럼 말이다.

휴대전화가 어떻고 LTE/5G 기술이 어떻고 하는 와중에 겨우 유선 전화기의 회선 연결을 자동화해 주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하지만 쌍팔년도 이전 옛날에는 전화기 하나조차도 기계값과 회선값이 너무 비싸서 집집마다 집집마다 장만하기 곤란한 첨단 문명의 이기였다.

시외 전화를 거는 것만으로도 지금으로 치면 무슨 국제 전화를 거는 것처럼 보통일이 아니었다. 통화료가 폭증하기 시작했으며, 지역번호 체계도 완전 꼬여서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전자식 교환기가 도입되기 전에 백색 전화 청색 전화는 뭐, 나도 겪어 본 적 없는 옛날 일이고..

전전자 교환기가 저렇게 개발된 덕분에 1980년대 이후부터 유선 전화 인프라가 우리가 아는 그 체계로 정착될 수 있었다. 1천만 회선 돌파니 2천만 회선 돌파가 손쉽게 가능해졌다.
이거도 주어진 예산과 기한 안에 국산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우향우 해서 바다에 뛰어내려 다같이 자폭하겠..."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인사상의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팀원들 모가지를 걸고서 예산 따내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_-;;

그리고 GIONS도 말이다. 지금 관점에서야 뭐 흔하디흔한 SI 구축일 뿐이니 스펙대로 DB 설계하고 서버 돌리고 웹사이트 만들면 끝일 것이다. 기술이 필요한 부분도 스프링이니 아파치, 톰캣 등.. 오픈소스 라이브러리나 프레임워크를 끌어다 쓰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 때가 1980년대였다는 거다. IBM 메인프레임에다가 코볼 언어로 코딩을 하던 시절이고, 이공계 출신 중에도 컴퓨터라는 물건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이던 때였다. 컴퓨터 관련 기술은 하드웨어건 소프트웨어건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폐쇄적이었고 비싸고 구하기 어려웠었다.

그런 여건 하에서 저런 대규모 SI를 국내 기술로 해내서 국제 대회 기록을 성공적으로 집계하고 보도 자료를 내보내서 첨단 IT 올림픽을 선보인 것이니.. 정말 칭송받아야 마땅한 일인 것이다.

2.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

우리나라는 휴대전화라는 게 전국민에게 저렴하게 보급된 건 거의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인터넷 전용선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기지국이 전국에 쫙 깔린 덕분이다. 그러고 나서 아이폰을 필두로 해서 스마트폰이란 게 대중화된 건 그로부터 10년쯤 뒤인 2000년대 후반부터이다.

그 전에도 벽돌만 한 크기의 휴대전화라는 게 없지는 않았다. 특히 자동차에 카폰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얘는 원리가 무전기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어서 회선 수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기기 가격과 개통 비용이 살인적으로 비쌌다.
주파수 공용(TRS) 기술이 도입되면서 그나마 회선 문제는 좀 해결된 듯하지만,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카폰은 부자만을 위한 엄청난 사치품인 건 변함없었다. 하긴, 1990년대 초엔 우등 고속버스의 앞자리에 이동식 공중전화도 있었으니 이 또한 정말 최고급 서비스였다.

이때 모토롤라가 무전기 내지 자동차용 카폰 제조사로 유명했다. 노키아 내지 블랙베리는 휴대전화보다는 더 나중의 피처폰/초창기 스마트폰을 만들었던 회사였고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으로 평정된 스마트폰 시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많이 몰락했다. 코닥 사가 디지털 카메라를 먼저 개발까지 해 놓고는 21세기 들어서 몰락하고, LG 전자가 피처폰만 공략하다가 삼성과는 완전 정반대 처지로 전락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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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1983년, 모토롤라에서 내놓은 거의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휴대전화인 '다이나텍'이다.
40년 전에는 이것만으로도 정말 세계 최첨단.. 돈 많고 어디서나 바쁘게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 정부 요원 대기업 중역들이나 쓰는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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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건 쿵 퓨리에서 히틀러가 빼앗았던 물건이기도 했다. ㅋㅋㅋㅋㅋㅋ 전화기에다가 총질을 하자 전화를 받고 있던 사람이 사살 당하는 그 장면.. =_=;;;

3. 지상파? 공중파?

케이블/인터넷으로만 볼 수 있는 방송 말고, 평범한 전파 수신만으로 쉽게 청취· 시청 가능한 KBS, MBC 같은 방송을 흔히 '지상파'라고도 부르는데.. 반대로 '공중파'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어떻게 서로 정반대 용어를 한 개념에다 사용할 수 있을까??

찾아보니 '지상파'가 맞다고 한다. 하긴, 나도 '지상'이 있는데 저 '공중'은 설마 空中(in the air)일 리는 없고 公衆(public)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sky wave를 가리키는 空中파도 있긴 하지만 그건 별개 분야의 기술 용어이다. KBS MBC 따위를 가리킬 때는 지상파 방송국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 워딩이다.

종이 신문이 엄청 많이 몰락한 것처럼 통상적인 지상파 방송도 많이 몰락하고 사람들의 눈에서 차지하는 파이의 크기가 작아졌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게 많이 잡아먹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상파 방송이 완전히 망해 없어지거나 권위가 무너진 것은 아닐 것이다. 유튜브/아프리카 개인 방송 나부랭이가 아니라 KBS/MBC/SBS 텔레비전에 어떤 형태로든 출연하는 건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4. 회선 vs 패킷

데이터 통신에서 아주 기초 원론적인 방법론 구분으로는 “회선(circuit) 교환 방식”과 “패킷(packet) 교환 방식”이란 게 있다.
둘의 차이를 통신이 아닌 교통에다가 얼추 비유하면 이렇다.

회선은 에스컬레이터, 스키장의 곤돌라, 샌프란시스코 케이블카처럼.. 중앙 기계실에서 거대한 와이어를 당겨 주고, 승객이나 객차는 그 와이어에 올라타서 이동하는 방식이다. 객차에는 딱히 동력이 없다.
패킷은 그렇지 않고 사람들 태운 자그마한 자동차들이 각자 목적지까지 스스로 굴러가는 방식과 같다.

전자는 처음 구축하는 인프라 비용이 많이 들고, 후자는 구현하고 운영하는 기술적인 난이도가 더 높다.
그러나 결국 후자가 더 장거리 대량 수송에 더 적합하고, 트래픽이 가변적일 때에도 더 유동적으로 대처 가능하다.

전자 정보 통신 쪽 배경이 없는 일반인이라도 두 방식의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있는 분야는 바로 과금 체계이다.
25년쯤 전 옛날에 모뎀으로 PC 통신 내지 인터넷에 접속할 때, 그리고 전화를 걸어서 각종 부가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모든 요금이 시간 단위로 매겨졌다. 파일 다운로드를 하건, 가만히 놀고만 있건 무조건 분당 몇백 원꼴.. 이건 회선 방식이요,

지금 4G 데이터로 무선 인터넷을 이용하는 요금은 모두 데이터 용량 단위로 부과된다. 몇 기가바이트당 얼마.. 요건 패킷 방식이기 때문에 그렇다.

옛날에 모뎀으로 인터넷에 연결하던 시절엔 그럼 자기 컴퓨터는 IP 주소를 받는 게 있는지? 전화선으로 패킷 기반 네트워크를 구현하기 위해서 중간 계층에서 무슨 일이 이뤄지는지..?? 갑자기 문득 궁금해진다. 인제 와서는 별로 알 필요도 없는 구닥다리 기술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5. 와이파이와 https

버스나 지하철, 공원에서 공공 와이파이에 접속하고 나면, 보통은 맨 처음에 와이파이 제공자에서 만들어 놓은 시작 페이지만 뜬다. 여기서 로그인을 하든지 ‘와이파이 사용’ 같은 걸 클릭해서 최소한의 인증을 거쳐야만(광고 시청..)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인증을 통과하기 전에는 다른 웹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다. 아마 DNS 계층 차원에서 요청이 몽땅 씹히고, 시작 페이지로만 강제 포워딩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http 말고 암호화가 돼 있는 https 방식 사이트는 이런 식으로 강제 포워딩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증을 통과하기 전에도 https 사이트들은 들어갈 수 있는데..
요즘은 https가 아닌 사이트를 찾기가 더 어렵다. 그러니 저런 단순한 강제 포워딩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https에서는 강제 포워딩을 구현하는 게 기술적으로 어렵거나 불가능한 건지..??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은 공공 와이파이도 접속한 뒤에 잡다한 인증 없이 바로 인터넷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자주 겪지는 않았지만 오로지 https 사이트만 되고, http는 아예 금지하고 막아 버린 경우도 있었다.
와이파이 쪽도 연결 방식과 각종 보안 기술이 많이 바뀌어 온 것 같다. 그런데 와이파이 AP 자체에도 암호가 걸린 보안 접속이 있고, 와이파이 첫 화면에도 보안 연결 기능이 있는데 이런 건 https와는 별개인 타 계층에서의 보안인 건지? 잘 모르겠다.

코넷(kornet)이 모뎀으로 인터넷 연결하던 시절의 사업자/상표 명칭이었다면, 네스팟(nespot)은 와이파이라는 게 처음으로 보급되던 시절의 명칭인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2/11/15 08:36 2022/11/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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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 서울 지방 검찰청 검사인데, 니 통장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정황이 포착됐으니 혐의를 피하려면 어쩌구저쩌구..

이건 단순 스팸 전화를 넘어서 보이스피싱 범죄일 텐데..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런 전화를 직접 받아서 상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없기를 앙망한다. =_=
말만 들어 보면 그래도 대놓고 남의 계좌로 송금하는 건 아니고, 자기 계좌 개설해서 그리로 돈을 옮겨 놓기만 하는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사기를 쳐서 궁극적으로 남의 돈을 뺏는지 원리를 잘 모르겠다. 궁금하긴 하지만 꼭 알고 싶지는 않음. ㄲㄲㄲ

2. 허 경영 전화

난 지금까지 서너 번 정도 받았다. 주말에도 오더라.. 그래도 받는 사람이 짜증 내는 줄은 아는지, 선은 안 넘기고 딱 15초만 얘기하고 알아서 끊더군.
또한, 날 찍어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투표만 독려하는 내용이다. 그러니 선거법 위반도 아니고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근데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병원 응급실에도 이런 전화가 가서 민폐 끼치고 욕 먹는 건 실드 칠 길이 없다.

3. 여론 조사, 설문 전화

어지간히 한가하면 응해 주고 싶지만, 평일 일과 시간에 그런 한가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딴 일에 전화기 붙들고 몇 분씩 시간 뺏겨 줄 사람이 세상이 얼마나 있을까..?? 은퇴해서 시간 많은 노인이나 애 다 키운 주부가 아닌 이상 말이다.

4. 은행 영업 전화

유효기간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신용카드를 딴 걸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전화. 무슨 금융 상품 가입 권유하는 전화.
제일 최근에는 웬 치과 보험 가입 권유도 하더이다. 하긴, 무슨 마케팅 정보 이용에 동의를 했기 때문에 이런 전화가 오는 거다.;; 귀찮..
은행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돌아가면서 이런 것도 하고 영업 실적 쌓아야 하는 건가?

5. 보험료 돌려준다

요 근래에 등장한 새로운 소재의 듣보잡 전화다.
"여기는 보험감독원(???!!)인데, 니가 가입돼 있는 보험들을 조사해서 보험료를 필요 이상으로 잘못 낸 걸 무료로 찾아서 돌려드리겠다. 건강보험료를 환급해 주겠다..;;" 이런 식인데..
돈 돌려주는 척하다가 결국은 다른 돈 드는 거 가입 권유와 영업질이 나오게 돼 있다. 엮여서 좋을 것 없다.

6. 님하가 모 통신사 우수고객으로 선정돼서 보답으로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무료로 교환해 주겠..

내 경험상, 이거야말로 지난 10여 년 동안 뒈지지도 않고 유구한 역사, 압도적인 빈도와 다양한 번호를 자랑하며 지속되어 온 스팸 전화의 끝판왕이다. 02, 031, 032, 070, 심지어 054, 06x 등... 이런 전화질을 하는 애들은 도대체 어느 조직에 소속됐고 정체가 도대체 뭘까..?

이건 합법적인 텔레마케팅이며, 검사 사칭이나 다단계 피라미드 급의 해로운 놈들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 진짜로 공짜가 있을 리가 있나.. 결국은 폰 값은 다달이 할부로 다 갚게 돼 있다. 매장 가서 사은품 받으면서 사는 것에 비해 실제로 저렴한 건 절대로 없다. 진짜로 폰을 바꿀 일이 생겼더라도 쟤네들 말에 끌려가서 좋을 건 없다고 한다.

이거 말고 또 있을까?
1만이 불법인 막장 범죄이고 나머지 2~6은 일단은 합법이다.
그리고 2와 3은 그냥 녹음된 음성의 자동 발신인 반면, 나머지는 사람의 직접 통화라는 차이가 있다.
아, 이것도 바리에이션이 있어서 6 스마트폰 교환 권유의 경우 처음엔 녹음된 멘트로 시작해서 "상담원 연결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 주세용" 이러는 게 옛날에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다 처음부터 직접 통화인 편이다. ㄲㄲㄲ

사람에 따라서는 다짜고짜 대출 권유하는 전화, 심지어 물 좋은 장소라면서 오피스텔 투자 권유하는 전화까지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스팸 전화인지 그냥 잘못 걸린 전화인지 분간이 어려울 것 같다.
요즘은 유튜브나 각종 시사 다큐, 뉴스에서 PD 내지 기자가 "이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 봤습니다. / '도를 아십니까'에 실제로 따라 가 봤습니다" 별별 잉여스러운 것들을 실험하고, 심지어 전화 발신자를 엿먹이거나 역관광· 농락한 결과가 올라오곤 한다. 광고 전화에 대해서도 그런 예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스팸 메일을 눈에 잘 안 띄는 것 같다. 메일 서비스 차원에서 스팸 메일을 자동으로 거르는 기술이 머신러닝 기반으로 굉장히 발전했으며, 또 광고주들도 법 무서운 줄은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요즘 세상에 아직도 스팸 메일 보내는 놈들은 야동· 도박 사이트 같은 암흑 세계 종사자밖에 없지 싶다. 그 반면, 스팸 전화는 장르가 그 정도로 음란하거나 퇴폐적이지 않고, 다른 쪽으로 세분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09 08:35 2022/02/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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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라는 게 2010년대부터야 (1) 표면 대부분이 그냥 터치식 액정 화면인 스마트폰이 주류가 됐다. 그보다 약간 전 2000년대 과도기에는 피처폰이 있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작은 전화기인 (2) 폴더식 휴대전화도 있었다. (뭐, 특수한 소비자 계층을 위해 폴더형 스마트폰도 있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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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는 본체는 건물의 전화선에 연결돼 있고, 송수화기가 거기로부터 반경 몇십 m 정도까지는 떨어져 있어도 되는 (3) 무선 전화기가 많이 쓰였다. 무선 이전에는 당연히 유선이었고. 대략 1990년대의 얘기다.
전화기 송수화기와 본체를 연결하는 선은 여느 케이블과 달리, 유난히 굵고 꼬불꼬불한 형태였던 것 같다. 여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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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의 숫자 버튼들은 눌렀을 때 들리는 삑삑 신호음의 음높이가 각 숫자마다 모두 달랐다. 절대음감 황금귀는 그 음만 듣고도 무슨 숫자가 눌렸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반면 디지털 도어락은 저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될 테니, 모든 버튼의 음높이가 당연히 동일하게 맞춰져 있다.

뭐, 그 시절에도 진정한 의미의 무선 전화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카폰 같은 건 고가의 사치품으로 쓰였다. 우등 고속버스 안에는 1993년부터 무려 이동식 공중 전화기가 비치되기도 했다. 이용/통화료는 도입 당시에 40초당 100원이었다는데, 길거리의 공종 전화보다는 분명 더 비쌌을 것이다.

더 옛날, 한 1980년대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제 (4) 전화기의 숫자 버튼은 다이얼로 바뀐다. 다이얼은 한번 돌렸다가 되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버튼만치 번호를 빠르게 입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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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엄청 어린 시절에 다이얼 전화기를 써 본 기억이 있다. 요런 고전 전화기는 전화가 왔을 때 금속판이 부딪치면서 그 특유의 따르르릉~ 소리가 났다. 하긴, 옛날에는 초인종만 해도 요즘 같은 전자음 일색이 아니라 진짜 금속판이 부딪치는 청명한 딩동 소리가 났었는데.. (말 그대로 종)

이것보다 더 옛날 전화기는 거의 1960년대와 그 이전의 골동품이다. 여기부터는 본인이 실물을 직접 구경하거나 사용해 본 적이 없다. (5) 전화기가 새까만 상자 모양인데, 어딜 봐도 숫자를 입력하는 부분이 안 보인다. 그 대신 옆구리에 옛날 자동차의 수동식 윈도우처럼 뭔가 돌리는 손잡이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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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려 발전기와 연결된 손잡이라고 한다. 이걸 뱅글뱅글 돌리면 약한 전류가 생겨서 전화국으로 신호가 가고, 교환원과 연결되는가 보다. 그래서 송수화기를 들고 교환원에게 전화번호를 "구두로 전달"하면, 교환원이 그 전화번호로 연결을 해서 발신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준다고 한다. 그렇게 통화가 성사되고, 전화비는 물론 발신자에게 청구되는 식...??? >_<

전화번호 숫자를 사람에게 불러 줘야 했다니 그 불편함과 번거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다.
하긴, 다이얼식 전화기가 도입된 뒤에도 시외 장거리 통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교환원을 불러야 했다. 이렇게 말이다. (1968년도 대한뉴스 제 665호)
국내에서 지역 번호가 도입되고 이 절차까지 전국적으로 완전히 자동화가 된 건 1987년경의 일이라고 한다.
전화 교환원 내지 교환수는 타자수, 안내양만큼이나 20세기 중반 옛날에나 있었던 여성 위주의 직업이었다. 그러다 20세기 후반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또한, 이 시점에서 전화기의 전원 공급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휴대전화야 당연히 배터리가 있어야 하고 주기적으로 충전을 해야겠지만, 유선 전화는 사정이 좀 달라서 전화선이 통신 겸 전원 공급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의 유선 전화기는 전통적으로 타 전자 기기와 같은 100/220볼트 전원 플러그를 갖추고 있지 않았으며, 딱히 전원 on/off 버튼 같은 것도 없다. 그리고 건물이 정전됐을 때에도 전화는 여전히 사용 가능하다. 신기하지 않은가?

물론 유선 전화도 전화선 케이블을 뽑아 버리면 먹통이 되겠지만, 그래도 "수신자의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 이런 말은 유선 전화보다는 무선 휴대전화로 오면서 훨씬 더 자주 듣게 된 에러 메시지이다.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유선 전화에서는 가입된 모든 전화들이 교환국에서 쏴 주는 동일한 전원을 송· 수신용으로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공동 전지식'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하는 게 사실 속 시원하고 편하다.

그런데 전화라는 게 처음 등장했던 시절에는 이런 인프라가 없었다. 그렇다고 전화기가 외부 전원을 따로 끌어다 쓰지도 않았기 때문에 전화를 걸려면 사람이 손으로 소형 발전기를 돌리는 막장짓을 해야 했다. 옛날에 자동차에 스타터 모터가 없던 시절엔 밖에 노출된 엔진 플라이휠을 사람이 직접 힘들게 돌려서 시동을 걸었던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 시절에 옛날, 특히 군용 전화기는 전기 고문 도구(!)로 즐겨 쓰이기도 했다. 전화선을 통신용으로 안 쓰고 사람 몸에다 꽂은 뒤, 전화기 손잡이를 열나게 돌려 주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교환국에서 전기를 쏴 주니 전화기에서 전류를 직접 생산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역으로 일반 전원 플러그 대신에 전화선으로부터 전기를 빼돌려 쓰려는 수작이 적발되는 경우가 있다고 그런다.

이건 벼룩의 간을 빼 먹는 짓이다. 전화기가 동작하는 데에나 적합한 최소한의 전압(20~40V 남짓)과 전력으로 누군가가 비정상적인 exploit을 시도하면 그쪽으로 과부하가 걸린다. 마치 송유관에서 비정상적으로 유압이 감소하는 지점을 중앙 통제실에서 감지해서 기름 유출과 절취를 적발하듯, 전화선 전류의 오용도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이다.

참고로, 1980년대 초반까지는 전화선 플러그 자체가 100V 플러그와 동일한 모양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전화기를 진짜 100V 전원 플러그에다 꽂으면 기기가 과전압 때문에 타 버렸다.
그러다가 전화 플러그는 220V 같은 둥근 쇠막대를 가로 세로 두 줄 총 네 개씩 꽂는 형태로 바뀌었다.

전화기의 전원 얘기가 꽤 길어졌다.
아무튼, 저것보다 더 옛날 구식 전화기를 찾자면 거의 1940년대 일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분명 가정용 전화기임에도 (6) 지금의 공중전화처럼 거대하고 표면이 목재(...)이며, 송수화기가 분리되어 있는 그 물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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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사극에서 주재소에서 일본 헌병이 양손으로 송화기를 입에, 수화기를 귀에다 댄 뒤, "무시무시~?" 이러는 장면이 떠오를 것만 같다.
옛날에는 이런 원시적인 전화기조차도 일반 서민이 장만할 만한 물건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텔레비전만 해도 1950년대 말~1960년에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옛날 KBS의 전신 방송사에서 방송을 최초로 시작했을 때는..
주 겨우 4회에 저녁 6시 반부터 9시까지 꼴랑, 겨우 2시간 반씩만 방송을 했다. 그래 봤자 인서울 말고는 전파가 가지도 않았고, 서울 안에서도 TV 수상기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 부유층밖에 없었다. 그 시절에 따로 뉴스 영화라는 게 괜히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자막 같은 보조 영상 처리는 카메라 바로 앞에다가 스케치북을 비추기도 하는 등 정~말 미흡하고 허접하기 그지없었으며, 물자가 부족하니 대부분 생방송이고 녹화분 백업 같은 것도 없다시피했다. 오늘날 TV의 영향력과 대조해 보자면 그 시작은 심히 미약하기 그지없었는데.. 그것처럼 전화기 역시 아주 귀하고 한편으로 다루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자, 우리는 지금까지 스마트폰에서 버튼/다이얼 유선 전화기, 수동 발전기가 달린 전화기까지 시간 여행을 해 보았다. 전화기의 모양이 워낙 드라마틱하게 변화했기 때문에 요즘 10대 어린애들은 ☎ <- 이게 어째서 왜 전화기인지도 이해하지 못할 지경이 돼 있다. 마치 저장 아이콘이 왜 디스켓 모양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는 '전화기'보다 더 거시적인 전화 시설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다.

1899년 9월에 한반도 땅에 최초의 철도 경인선이 개통한 것보다 몇 년 전.. 1895년 9월에 한성-제물포(= 서울-인천)간에 모스 부호 전신이 개통했으며 1896년에 음성 통화가 되는 자석식 전화기가 왕궁 위주로 설치됐다고 한다.
그 뒤 한성-제물포 사이의 시외 음성 통화가 가능해진 것은 1902년이다. 그래 봤자 전화 가입자는 극소수 부유층뿐이었다.

김 구가 소싯적에 일본인 상인을 죽이고(일명 치하포 사건) 감옥에 갇혔을 때, 고종 황제가 갓 개통됐던 전화로 긴급 명령을 내려 사형 집행을 중단시켰네 뭐네 하는 기록이 백범일지에 적혀 있다. 하지만 아직 1900년도 되기 전이던 그때는 고증상 시외 전화 같은 게 없었다는 반론이 있으며, 한편으로는 고종이 전화 통화가 아니라 전보로 명령을 내린 것이라는 재반론도 있다.

우리나라의 전화의 개통과 관련하여 이런 유명한 논란거리도 있다는 게 흥미롭다. 백범일지 기록이 미주알고주알 세부적인 디테일까지 다 정확하지는 않으며, 최악의 경우 주작이 들어갔을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전화기는 자동차보다야 저렴한 물건이겠지만 이게 집집마다 빠짐없이 보급된 건 생각보다 최근의 일이다. 최소한 박통을 지나서 1980년대 전대갈 시절은 돼서야 마이카 시대와 비슷한 타이밍에 보급됐다.
자동차 등록 대수 1천만 대 돌파가 1997년의 일이고 2천만 대 돌파는 지난 2014년경인데, 전화 1천만 회선 돌파는 1987년 9월경에 이뤄졌다. 2천만 회선 돌파는 더 이른 1993년 11월이다. 1가구 1 전화를 넘어 2전화까지 달성된 셈이다.

그러니 옛날에는 전화번호부 책 한 권으로 시· 도의 전화 가입자 전체 명단을 쭉~ 나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리스트가 너무 방대하고 별 효용이 없으며,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명단을 만들지 않는다.
또한, 2천만을 찍고 나서 2010년대 이후로는 무슨 4천, 5천만 회선을 돌파했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인구가 그만치 무한한 게 아니니 2900만 회선 정도에서 정점을 찍은 뒤 3천만은 돌파하지 못하고 이제는 감소 추세라고 한다.

전화번호라는 게 기본적으로 4자리 숫자이고 그 앞에 일명 '국번'이라고 불리는 전화 교환국의 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부르는 포맷도 이것 영향을 받아서 단순히 'xx 다시(dash) yyyy'가 아니라, 'xx국에 yyyy' 이런 식이었다.
지금이야 국번이라 불리는 앞쪽 번호가 기본이 3자리이고 대부분 4자리까지 차지하여 번호의 자릿수와 대등하다. 하지만 옛날에 전화 회선수가 적던 시절엔 국번이 정말 씨크하게 한 자리밖에 없던 시절도 있었다.

자동차의 번호도 기본이 4자리 숫자리고 앞 번호가 지금은 2자리인데 이제 번호가 부족해서 3자리로 확장하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 옛날에는 자동차의 앞번호도 한 자리였던 것이 지금의 전화번호와 사정이 비슷해 보인다.

유독 전땅크 시절에 국내에 전화가 폭발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던 것은 1985년, 우리나라에서 대용량 전화 전전자(全電子) 교환기를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무선 휴대전화까지 보급된 지금의 입장에서야 구닥다리가 됐지만 그 시절엔 국번 내지 지역번호만 보고는 전국에서 폭주하는 그 어떤 전화 트래픽에도 자동으로 대처하여 회선 교환을 자동으로 해 주는 최첨단 장비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1982년부터 ETRI에서 연구진들이 "이 정도 시간과 자금을 투입하고도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각서까지 쓰고 굉장한 모험을 감내하며 개발한 것이었다. 승용차 포니, 경부 고속도로, 한국형 고속철, 포항 제철 등에 필적하는 중요 과업이었다. 거의 이런 근성으로 연구진들을 갈아넣은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

  • 1950년대 월드컵 한일전에 처음 출전할 때: 왜놈들한테 졌다가는 대한 해협을 헤엄 쳐서 귀국하겠습니다.
  • 포항 제철 처음 만들 때: 이건 우리 선조들의 피눈물이 담긴 일제 피해 배상금을 밑천으로 만드는 거다. 실패라도 한다면 우리 다같이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뛰어내려서 죽자.
  • 전화 교환기: 지금 얘기하는 대로..

어쨌든, 이게 개발이 성공하고 1986년에 상용화된 뒤에야 수동 교환원이라는 직업이 완전히 확인사살 퇴출되었으며, 전국 통합 지역번호라는 게 도입되어 장거리 시외 전화도 돈만 더 들 뿐 편리하게 걸 수 있게 되었다. 총기가 격발· 급탄 절차가 완전히 자동화되어서 원시적인 화승총이던 것이 기관총으로 변모한 것과도 같다.

전자식 교환기가 개발되기 전에는 장거리 전화를 거는 게 불편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늘어나는 전화 가입 수요 자체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무슨 최신형 아이폰을 구입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전화 개통 예약 대기가 몇 달~1년치까지 밀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회선을 하나 추가할 때마다 전화 시설 측면에서 늘어나는 부담이 만만찮았던 것 같다.

그러니 이미 전화 회선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위화감이 커졌으며, 196, 70년대에는 전화 회선을 무슨 명절 귀향 열차 암표처럼 타인에게 편법으로 양도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전기통신법이 개정되어 전화 회선의 타인 양도가 뒤늦게 금지되긴 했지만, 새로 개설되는 회선에만 이 제약이 적용됐기 때문에 일명 백색 전화(양도 가능. 1970년 8월 이전 가입의 기존 전화) 청색 전화(양도 불가..) 촌극이 벌어졌을 정도였다. 당연히 전자의 가격은 폭등했다.

전화 자동화 사업 완료를 기념하는 1987년자 홍보 영상은 다음과 같다. (대한뉴스 제 1651호)
이것 역시 한번 만들고 끝이 아니라 처리 가능 용량을 더 증가한 업그레이드 시스템을 계속해서 개발하여 추후의 회선 증가에도 대처해 왔다.

ETRI에서는 무려 1982년에 국내 최초로 인터넷 연결도 해냈고(전 길남 박사 연구팀),
1988년엔 삼성 전자에서 국내 최초로 벽돌만 한 휴대전화를 만들어 내고.. 그게 나름 국내에서 세계 최첨단을 달린다는 전자 통신 연구진들이 그 시절에 하던 일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는 지역번호가 도 단위로 통합되어 더 단순해졌으며, 자동차 번호판은 영업용 말고 자가용 한정으로 지역 표기가 없어졌다.
이런 인프라를 바탕으로 기존 유선 전화와 무선 휴대 전화의 통합은 어떻게 이뤄졌으며, 발신자 표시 같은 기능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도 개인적인 의문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도로나 철도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항로, 그리고 광케이블(땅 속+바닷속) 내지 송유관의 배치는 어찌 되고 관리가 어찌 되고 있는지 같은 것도 궁금해진다. 전화와 통신 기술의 발달도 자동차 같은 교통 분야의 기술 발달과 연계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끝으로 하나 더.. 전화기는 지금까지 주로 다뤘던 개인용만 있는 게 아니라 회사 같은 데서 쓰는.. "내선 연결" 인터폰 기능이 있는 약간 특수한 물건도 있다.
스마트폰 모양도 아니고 여전히 구닥다리 유선 버튼식이지만, 대표 전화번호 하에서 각 자리별로 전화를 세부적으로 걸 수 있으며, 남에게 내 전화를 전달하거나 남에게 온 전화를 자기가 대신 받을 수도 있다. 회사에 취직하면 처음에 이런 전화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실, 별표*와 우물정# 버튼도 원래 이런 특수한 용도를 위해 만들어져 있다.

텔레비전도 전파를 받는 게 아니라 그냥 고정된 위치만 보여주는 CCTV라는 게 있고, 인터넷 세계에도 사내 전용망인 인트라넷이 있다. 그런 것처럼 전화에도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좀 local한 용도가 있는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26 08:36 2018/09/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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