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80년대 우리나라 역사

우리나라는 먼 옛날 박 정희 때는 한창 고속도로 건설하고 자동차 만들고 제철소 짓고 중화학 공업을 육성했다. 나라의 주 경제 구조가 농경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통째로 바뀌었다.
그 뒤 1980년대 전 두환 때는 최신 산업 트렌드가 정보 통신, 컴퓨터 쪽으로 바뀌었다. 삼성 전자에서 공돌이들을 갈아넣어서 처음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고, 8비트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80년대 말에는 벽돌만 한 크기의 엄청 비싼 휴대전화도 처음으로 만들었다.

저런 기업뿐만이 아니다.

  • 1980년대 중반에 ETRI에서는 전화기 전전자 교환기(TDX)를 100% 자체 개발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 그리고 KIST 시스템 공학 연구소에서는 올림픽 경기 정보 시스템(GIONS)를 100% 자체 개발해서 실전에서 단 한 건의 장애 없이 잘 운영해 냈다.

개인적으로 이 두 일화도 경부 고속도로나 현대 포니, 포항 제철 "우향우 정신" 같은 아이템과 대등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얘들은 한번에 완성품이 짠 튀어나온 게 아니라, 수 년 동안 점진적인 발전.. 즉 진화를 거쳤다.
TDX는 첫 실용 모델인 TDX-1이 나온 게 1984년이고 상용화는 1986년이다.
GIONS도 1983년의 인천 체전, 전국 체전, 1986년 아시안 게임을 거치면서 검증과 보완을 거친 끝에 1988년의 올림픽 때 끝을 본 것이었다.

국내 체육대회는 시스템이 실패해도 세계적으로 망신 당할 일은 없기 때문에 위험 부담만 덜할 뿐이지... 자잘하게 관리해 줘야 하는 요소들, 경기 종목 수, 시스템의 복잡성은 올림픽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베타테스트 명목으로 적합한 아이템이었다. 단지, 이런 것들을 비현실적으로 짧은 시한 동안 다 발로 뛰며 조사하고 코딩 구현을 해야 했던 연구원과 협력업체 직원들이 공밀레로 갈려 들어갔다.;;

물론 둘 다 40여 년 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 철 지난 완전 구닥다리 레거시 기술일 뿐이다.
경부 고속도로의 옥천 당재 터널이 그 당시에는 부족한 자본과 기술, 열악한 여건에서 그렇게도 고생하면서 처절하게 만들어졌지만, 30여 년 뒤에는 도로가 통째로 다른 고가로 이설되고 그 길과 터널이 쓰이지 않게 된 것처럼 말이다.

휴대전화가 어떻고 LTE/5G 기술이 어떻고 하는 와중에 겨우 유선 전화기의 회선 연결을 자동화해 주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하지만 쌍팔년도 이전 옛날에는 전화기 하나조차도 기계값과 회선값이 너무 비싸서 집집마다 집집마다 장만하기 곤란한 첨단 문명의 이기였다.

시외 전화를 거는 것만으로도 지금으로 치면 무슨 국제 전화를 거는 것처럼 보통일이 아니었다. 통화료가 폭증하기 시작했으며, 지역번호 체계도 완전 꼬여서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전자식 교환기가 도입되기 전에 백색 전화 청색 전화는 뭐, 나도 겪어 본 적 없는 옛날 일이고..

전전자 교환기가 저렇게 개발된 덕분에 1980년대 이후부터 유선 전화 인프라가 우리가 아는 그 체계로 정착될 수 있었다. 1천만 회선 돌파니 2천만 회선 돌파가 손쉽게 가능해졌다.
이거도 주어진 예산과 기한 안에 국산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우향우 해서 바다에 뛰어내려 다같이 자폭하겠..."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인사상의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팀원들 모가지를 걸고서 예산 따내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_-;;

그리고 GIONS도 말이다. 지금 관점에서야 뭐 흔하디흔한 SI 구축일 뿐이니 스펙대로 DB 설계하고 서버 돌리고 웹사이트 만들면 끝일 것이다. 기술이 필요한 부분도 스프링이니 아파치, 톰캣 등.. 오픈소스 라이브러리나 프레임워크를 끌어다 쓰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 때가 1980년대였다는 거다. IBM 메인프레임에다가 코볼 언어로 코딩을 하던 시절이고, 이공계 출신 중에도 컴퓨터라는 물건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이던 때였다. 컴퓨터 관련 기술은 하드웨어건 소프트웨어건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폐쇄적이었고 비싸고 구하기 어려웠었다.

그런 여건 하에서 저런 대규모 SI를 국내 기술로 해내서 국제 대회 기록을 성공적으로 집계하고 보도 자료를 내보내서 첨단 IT 올림픽을 선보인 것이니.. 정말 칭송받아야 마땅한 일인 것이다.

2.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

우리나라는 휴대전화라는 게 전국민에게 저렴하게 보급된 건 거의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인터넷 전용선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기지국이 전국에 쫙 깔린 덕분이다. 그러고 나서 아이폰을 필두로 해서 스마트폰이란 게 대중화된 건 그로부터 10년쯤 뒤인 2000년대 후반부터이다.

그 전에도 벽돌만 한 크기의 휴대전화라는 게 없지는 않았다. 특히 자동차에 카폰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얘는 원리가 무전기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어서 회선 수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기기 가격과 개통 비용이 살인적으로 비쌌다.
주파수 공용(TRS) 기술이 도입되면서 그나마 회선 문제는 좀 해결된 듯하지만,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카폰은 부자만을 위한 엄청난 사치품인 건 변함없었다. 하긴, 1990년대 초엔 우등 고속버스의 앞자리에 이동식 공중전화도 있었으니 이 또한 정말 최고급 서비스였다.

이때 모토롤라가 무전기 내지 자동차용 카폰 제조사로 유명했다. 노키아 내지 블랙베리는 휴대전화보다는 더 나중의 피처폰/초창기 스마트폰을 만들었던 회사였고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으로 평정된 스마트폰 시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많이 몰락했다. 코닥 사가 디지털 카메라를 먼저 개발까지 해 놓고는 21세기 들어서 몰락하고, LG 전자가 피처폰만 공략하다가 삼성과는 완전 정반대 처지로 전락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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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1983년, 모토롤라에서 내놓은 거의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휴대전화인 '다이나텍'이다.
40년 전에는 이것만으로도 정말 세계 최첨단.. 돈 많고 어디서나 바쁘게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 정부 요원 대기업 중역들이나 쓰는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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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건 쿵 퓨리에서 히틀러가 빼앗았던 물건이기도 했다. ㅋㅋㅋㅋㅋㅋ 전화기에다가 총질을 하자 전화를 받고 있던 사람이 사살 당하는 그 장면.. =_=;;;

3. 지상파? 공중파?

케이블/인터넷으로만 볼 수 있는 방송 말고, 평범한 전파 수신만으로 쉽게 청취· 시청 가능한 KBS, MBC 같은 방송을 흔히 '지상파'라고도 부르는데.. 반대로 '공중파'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어떻게 서로 정반대 용어를 한 개념에다 사용할 수 있을까??

찾아보니 '지상파'가 맞다고 한다. 하긴, 나도 '지상'이 있는데 저 '공중'은 설마 空中(in the air)일 리는 없고 公衆(public)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sky wave를 가리키는 空中파도 있긴 하지만 그건 별개 분야의 기술 용어이다. KBS MBC 따위를 가리킬 때는 지상파 방송국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 워딩이다.

종이 신문이 엄청 많이 몰락한 것처럼 통상적인 지상파 방송도 많이 몰락하고 사람들의 눈에서 차지하는 파이의 크기가 작아졌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게 많이 잡아먹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상파 방송이 완전히 망해 없어지거나 권위가 무너진 것은 아닐 것이다. 유튜브/아프리카 개인 방송 나부랭이가 아니라 KBS/MBC/SBS 텔레비전에 어떤 형태로든 출연하는 건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4. 회선 vs 패킷

데이터 통신에서 아주 기초 원론적인 방법론 구분으로는 “회선(circuit) 교환 방식”과 “패킷(packet) 교환 방식”이란 게 있다.
둘의 차이를 통신이 아닌 교통에다가 얼추 비유하면 이렇다.

회선은 에스컬레이터, 스키장의 곤돌라, 샌프란시스코 케이블카처럼.. 중앙 기계실에서 거대한 와이어를 당겨 주고, 승객이나 객차는 그 와이어에 올라타서 이동하는 방식이다. 객차에는 딱히 동력이 없다.
패킷은 그렇지 않고 사람들 태운 자그마한 자동차들이 각자 목적지까지 스스로 굴러가는 방식과 같다.

전자는 처음 구축하는 인프라 비용이 많이 들고, 후자는 구현하고 운영하는 기술적인 난이도가 더 높다.
그러나 결국 후자가 더 장거리 대량 수송에 더 적합하고, 트래픽이 가변적일 때에도 더 유동적으로 대처 가능하다.

전자 정보 통신 쪽 배경이 없는 일반인이라도 두 방식의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있는 분야는 바로 과금 체계이다.
25년쯤 전 옛날에 모뎀으로 PC 통신 내지 인터넷에 접속할 때, 그리고 전화를 걸어서 각종 부가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모든 요금이 시간 단위로 매겨졌다. 파일 다운로드를 하건, 가만히 놀고만 있건 무조건 분당 몇백 원꼴.. 이건 회선 방식이요,

지금 4G 데이터로 무선 인터넷을 이용하는 요금은 모두 데이터 용량 단위로 부과된다. 몇 기가바이트당 얼마.. 요건 패킷 방식이기 때문에 그렇다.

옛날에 모뎀으로 인터넷에 연결하던 시절엔 그럼 자기 컴퓨터는 IP 주소를 받는 게 있는지? 전화선으로 패킷 기반 네트워크를 구현하기 위해서 중간 계층에서 무슨 일이 이뤄지는지..?? 갑자기 문득 궁금해진다. 인제 와서는 별로 알 필요도 없는 구닥다리 기술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5. 와이파이와 https

버스나 지하철, 공원에서 공공 와이파이에 접속하고 나면, 보통은 맨 처음에 와이파이 제공자에서 만들어 놓은 시작 페이지만 뜬다. 여기서 로그인을 하든지 ‘와이파이 사용’ 같은 걸 클릭해서 최소한의 인증을 거쳐야만(광고 시청..)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인증을 통과하기 전에는 다른 웹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다. 아마 DNS 계층 차원에서 요청이 몽땅 씹히고, 시작 페이지로만 강제 포워딩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http 말고 암호화가 돼 있는 https 방식 사이트는 이런 식으로 강제 포워딩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증을 통과하기 전에도 https 사이트들은 들어갈 수 있는데..
요즘은 https가 아닌 사이트를 찾기가 더 어렵다. 그러니 저런 단순한 강제 포워딩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https에서는 강제 포워딩을 구현하는 게 기술적으로 어렵거나 불가능한 건지..??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은 공공 와이파이도 접속한 뒤에 잡다한 인증 없이 바로 인터넷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자주 겪지는 않았지만 오로지 https 사이트만 되고, http는 아예 금지하고 막아 버린 경우도 있었다.
와이파이 쪽도 연결 방식과 각종 보안 기술이 많이 바뀌어 온 것 같다. 그런데 와이파이 AP 자체에도 암호가 걸린 보안 접속이 있고, 와이파이 첫 화면에도 보안 연결 기능이 있는데 이런 건 https와는 별개인 타 계층에서의 보안인 건지? 잘 모르겠다.

코넷(kornet)이 모뎀으로 인터넷 연결하던 시절의 사업자/상표 명칭이었다면, 네스팟(nespot)은 와이파이라는 게 처음으로 보급되던 시절의 명칭인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2/11/15 08:36 2022/11/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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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어지간한 인터넷 웹사이트들은 폭이 참 꾀죄죄하고 입구나 메뉴가 플래시로 만들어졌으며, "IE 6 브라우저와 1024*768 해상도에서 가장 잘 표시됩니다" 이런 거 적는 게 유행이었다. 커뮤니티 게시판은 제로보드 4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리적인 프레임 구분이 있는 웹사이트도 있었다. "이 페이지를 보려면 프레임을 지원하는 브라우저가 필요합니다" 에러 문구도 있고 말이다.

지금 저런 사이트를 보면 유지 보수되고 있지 않은 옛날 구닥다리 골동품 냄새가 풀풀 느껴질 것이다. 게시판은 온통 스팸 광고글로 넘쳐나고 있지 않은지가 걱정될 지경이고 말이다.

요즘 스타일의 웹사이트라면 큰 폭에 유연히 대처할 뿐만 아니라 플래시 없이 JavaScript만으로 모든 인터랙티브한 UI를 구현해야 한다. 특히 화면이 아래로 스크롤 됐을 때 메뉴 같은 게 쏙 줄어들어서 화면 한구석으로 밀려나는 거라든가.. 목록의 끝을 열람했을 때 다음 목록이 뒤에 실시간으로 추가되는 기능 같은 게 요즘 유행인 것 같다. css만 바꿔서 모바일 최적화 페이지도 제공하고 말이다.

사실, 본인조차도 HTML 지식은 거의 2000년대 초반 이래로 정지-_-해 있어서 최신 스타일의 홈페이지를 만드는 법을 잘 모른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지금이 웹 기술들의 파편화가 훨씬 줄어들고 웹 개발자들이 일하기 편리해지긴 했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이다만 싸이월드의 사이트 개편도 그런 변화를 따라가기 위한 명분과 당위성이 충분한 개편이었다. 구형 싸이월드는 시대에 너무 뒤쳐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편을 매끄럽게 제대로 못 하고 개악에 가까운 수준으로 해 버리는 바람에 사용자들이 대거 이탈하고 망하게 됐다.

웹사이트의 현대화를 나타내는 지표는 단순히 저렇게 외형적인 것에만 있는 게 아니다.
웹 문서들의 인코딩은 국제 표준으로 등극한 UTF-8로 통일하도록 하고, 서버의 각종 URL에도 오로지 영문· 숫자만 쓰거나 아니면 최소한 UTF-8방식으로 인식하게 설정해야 한다.
1990년대 말에 한글로 된 파일을 첨부한 것이 인식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IE에서 "URL을 언제나 UTF-8 방식으로 보냄" 옵션을 끄는 게 팁으로 통용되었던 건.. 마치 Windows Vista에서 UAC 옵션을 끄는 팁만큼이나 뭔가 미개한 관행이었다.

그리고 요즘 무시할 수 없는 대세가 바로.. HTTPS이다. 이건 웹사이트계의 디지털 서명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용자가 서버로 뭔가를 입력하고 보내는 게 전혀 없이 오로지 일방적으로 조회하고 표시하는 기능밖에 없는 사이트라면 모를까, 로그인을 하고 최소한의 interaction이 있는 사이트라면 내가 이 사이트를 믿고 내 개인 정보를 제공해 줘도 되겠는지에 대한 보증이 필요하다.

요즘 최신 브라우저들은 HTTPS가 아닌 구닥다리 HTTP를 쓰면서 폼 입력 기능이 있는 웹사이트에 대해, 갈수록 더 적극적으로 "이 사이트는 위험함, 정보 전송을 권장하지 않음"이라고 경고하는 추세이다.
그러니 사이트 운영자들은 깔끔한 UX를 방문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HTTPS를 도입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암호 해독 때문에 서버의 트래픽과 오버헤드가 더 증가하는 것도 감수해야 하고.. 귀찮다.

내 홈페이지는 언제쯤 HTTPS를 도입하게 될지 모르겠다. 웹사이트가 아니라 당장 날개셋 한글 입력기 바이너리조차도 디지털 서명을 안(못) 하고 배째라 쌩으로 배포하고 있거늘..;;

이렇듯, Windows 기준으로 응용 프로그램의 현대화 지표가 유니코드 API, 고해상도 DPI 지원, 공용 컨트롤 6 매니페스트 같은 거라면, 웹사이트의 현대화 지표는 UTF-8, 無플래시, 최신 HTML/CSS 요소, 모바일 페이지, HTTPS 같은 것들이라 하겠다.

그나저나, HTML5 웹표준의 지원 수준 척도로 여겨지고 있는 ACID3 테스트 말이다.
마소에서 만든 IE11과 Edge도 ACID3을 100점 만점으로 통과하고 있고 Google 크롬 역시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 버전은 97점에서 멈추고 있다. 내 자리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또 뭐가 바뀌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크롬은 과거에는 APNG(png 기반 애니메이션)를 웹 비표준이라는 이유로 지원하지 않다가 요즘은 지원하기 시작했다.
크롬도 나온 지 벌써 10년이나 됐다(since 2008). 정말 엄청난 속도로 버전업을 하고 있고 지금도 프로그램 내부가 쉴 새 없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서 옛날처럼 마소와 오픈소스 진영이 브라우저 전쟁을 하는 게 아니며, Visual Studio로 어설픈 Windows Phone 앱 대신 무려 안드로이드 앱을 만드는 지경이 됐다. 옛날에다 비유하자면 컴퓨터 세계에서 미국· 소련간의 냉전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삼성 갤럭시와 애플 아이폰도 갈수록 서로 비슷해져 가고 있다. (배터리 일체형은 삼성이 따라하고, 큼직한 화면은 애플이 따라하는 식)

IT 업계가 전반적으로 분리와 파편화가 아니라 통합과 상생이 대세인 듯하다.
마소의 경우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같은 초창기 원로들이 경영진에서 물러나고 사티아 나델라가 집권한 뒤부터 경영 방침과 회사 분위기가 굉장히 크게 바뀐 게 느껴진다. 제아무리 천하의 마소라 해도 영원무궁토록 Windows와 Office만 갖고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언제까지나 오픈소스 진영과 척지고 살 수는 없으며 인제 와서 Windows Phone이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을 이긴다는 건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뭐, 경쟁자들을 적대시하여 어떻게든 독과점으로 말려 죽이려 했던 옛날 마소 경영자들의 전략도 그 시절에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긴 했을지 모른다. 천하의 삼성 전자도 과거에는 일본의 아류 짝퉁이나 만드는 영세 전자 기기 제조사였던 적이 있으며, 마소도 처음에는 그냥 공룡 하드웨어 제조사에다가 소프트웨어를 납품해서 먹고 사는 을의 처지로 시작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여유로운 잣대로 옛날을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15 08:32 2018/10/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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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무식이 자랑이랄 수는 없겠지만,
본인은 전산학 내지 컴퓨터공학의 여러 분야들 중에서 문외한에 가깝게 제일 모르는 분야는 통신, 네트워크, 웹, 보안 쪽이다.
왜 제일 모르느냐 하면, 저건 컴퓨터 한 대만으로 독학이 가능하지 않고, 뭔가 '감'을 터득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걸 잘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일례로 완전 최저수준 소켓 API와, 고수준 HTTP API 사이의 중간 과정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 후자도 분명 전자를 이용해서 구현됐을 텐데, 내부 구현이 어찌 돼 있는지 난 아는 게 없다.
그리고 네트워크 트래픽이 컴퓨터의 I/O 병목엔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 패킷이 어떻게 해서 한 운영체제 내부의 특정 응용 프로그램으로 잘 전달이 되는지, DDoS 공격이 서버 컴퓨터에 어떤 물리적인 영향을 끼쳐서 서버를 뻗게 할 수 있는지, (아님 단순히 프로세스/스레드의 무한 스폰으로 인해 소프트웨어적인 자원 고갈만으로 뻗는 건가?)

HTTP 프로토콜에서 파일 업로드는 어떤 절차를 거쳐서 되는지, 방화벽이라는 게 정확히 뭘 하는 물건인지,
왜 구닥다리 윈도 2000/XP sp0을 띄운 채로 랜선을 꽂으면 뭐가 뚫려서 어떻게 되는지..
요즘은 네트워크 패킷은 하부 계층에서 압축이나 암호화를 좀 하는 게 있는지 등등..

이런 것들은 난 하나도 모..른..다. 저런 거 하나도 몰라도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개발하는 덴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컴퓨터 명령어 체계나 운영체제/소프트웨어 자체의 내부 구조나 보안에 대해 전혀 모르느냐 하면 그것도 물론 아니니.. 지식의 분포가 좀 불균형하다면 불균형한 셈이다.

본인은 초딩 중고학년 때 개인용 PC, 중학교 때 모뎀과 PC 통신, 고등학교 때 인터넷과 이메일, 그리고 대학교 때 무선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순으로 문명의 이기들을 접했다. 랜 선이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경한 게 고등학교 때부터인데, 그 기간 동안 언젠가 집도 인터넷 접속 방식이 전화 모뎀에서 전용선으로 바뀌었다. 그때가 한창 전국적으로 인터넷 전용선이 깔리던 시절이었으니까.

지금까지 통신 기술은 정말 눈부신 속도로 발전했다.
신문· 방송에서 기자의 이메일을 공개하는 게 대세가 된 게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엔 '블로그'라는 단어가 도전 골든벨의 마지막 문제의 답이었다는 게 믿어지시는가? (그것도 학생이 못 맞혔고 그 당시엔 내게도 생소했다)

옛날에는 인터넷 연결을 위해서도 PC 통신을 할 때처럼 먼저 전화를 걸어야 했다. 사용 시간 카운터가 올라가는 자그마한 인터넷 연결 창이 뜬 동안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었다.
또한, 모뎀과 마우스를 동시에 사용하려면 두 물건을 서로 COM 포트가 충돌하지 않게 배치를 해야 했다.
Windows 3.x에서는 운영체제 차원의 네트워크 지원이 전무하기 때문에 트럼펫 Winsock인지 뭔지 하는 걸 먼저 설치해야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됐다.
지금은 뭔가 그렇게 상태를 확인하면서 인터넷을 해야 하는 상황은 스마트폰 태더링으로 무선 인터넷을 쓸 때 정도이고 이것도 제약, 압박감, 부담 같은 건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아졌다.
메인보드가 어떻게 공간 워프를 했는지, 요즘은 유선 랜과 무선 랜도 전부 내장되어 나온다. 따로 뭘 장착조차 할 필요 없이 바로 접속만 하면 된다.

오늘날 인터넷이라고 불리는 그 통신망은 OSI 레이어 계층 중 제3계층(네트워크 계층)을 차지하는 IP라는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동작한다. IPv4, IPv6 같은 주소 체계도 이 계층에서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터넷 통신은 이 체계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의 제4계층(전송 계층)에는 인터넷 프로토콜을 따르는 네트워크 패킷을 보내는 방식의 차이를 규정하는 프로토콜이 있는데, 크게 TCP와 UDP가 있다.
TCP는 보낸 패킷이 반드시 순서대로 도착한다는 것은 보장되지만, 보냈던 단위랄까 형태가 그대로 도착하지는 않는다.
aaa, bb, ccccc, ddd, e 이렇게 패킷을 보냈으면 받는 쪽은 aa, ab, bccc, cc, dd, d, e 뭐 이렇게 받을 수도 있고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조립은 받는 쪽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

UDP는 TCP와는 달리 보낸 패킷이 원래의 형태 그대로 간다는 보장은 되지만.. 일부 패킷이 전송 과정에서 누락될 수가 있다.
즉, 위의 경우 ddd가 누락돼서 aaa, bb, ccccc, e 이렇게 갈지도 모르지만.. 일단 간 놈은 원래 형태 그대로 간다. 패킷의 누락 여부 판단을 받는 쪽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
그래서 TCP는 일종의 스트림 지향적이며, UDP는 개개의 패킷이 모 아니면 도 형태로 가는 메시지 지향적이다.

형태도 보존되고 누락 현상도 없는 만능 프로토콜이 없는 이유야 뭐, 세상에 값도 싸고 성능도 좋은 물건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게 필요하면 UDP 같은 걸 기반으로 패킷 누락을 감지하고 재전송을 요청하는 로직을 응용 프로그램이 별도로 구현해 줘야 한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기관총 난사 내지 캐릭터 이동 같은 것만 UDP이고 나머지는 다 TCP”라는 말 한 마디로 요약된다.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반응성이 중요하고 적당히 좀 씹혀도 상관 없는 것만 UDP이고.. 나머지 크리티컬한 것들은 다 TCP를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의 상당수, 대략 70% 가까이는 그래도 UDP 방식이라고 한다.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는 대용량 오디오/비디오 데이터도 자명한 이유로 인해 UDP 방식으로 전송된다.
이런 차이를 보면, TCP와 UDP의 관계는 사실상 무손실 압축과 손실 압축의 관계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TCP의 경우 응용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래의 프로토콜 차원에서 패킷의 누락을 감지하여 누락이 있는 경우 재전송 요청을 한다.
그런데 모바일처럼 네트워크 환경이 원래 워낙 열악해서 패킷 손실이 굉장히 자주 발생하는 곳에서는
TCP 방식에서는 끝도 없이 재전송 요청을 하고 받은 데이터에 결함이 없는지 체크와 빠꾸만 반복하느라 응용 프로그램이 그 동안 멍하니 있어야만 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
즉, TCP가 구조적으로 오버헤드가 더 크니, 네트워크가 열악한 곳에서는 그런 동작을 감안해야 한다.

게임에서 그래픽 엔진, 물리 엔진, 동영상/캡처 엔진도 아니고 네트웍 엔진 미들웨어로 먹고 사는 분이 국내에 일단 한 분 계신다. 넷텐션의 대표이사인 배 현직 씨. 이 업계에서는 이미 유명인사이다.

난 네트워크 쪽 프로그래밍을 해 본 건 먼~ 옛날에 소켓 API 대충 뚝딱해서 오목을 만들고..
DirectPlay를 써서 스크래블 정도 보드 게임에다가 네트웍 플레이를 넣어 본 게 전부이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저수준에서 패킷 암호화, 각종 오류 처리 그런 건 모른다. DPlay는 나름 하드웨어 독립을 추구한 통신 API이긴 한데, 요즘은 모뎀이고 시리얼 케이블 그딴 건 다 없어졌으니 그런 추상화 계층이 필요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도태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제1계층(물리 계층)은 거의 획일화가 돼 버린 것 같다.

※ 여담. IPX는 어디로 갔는가?

스타크래프트에서 배틀넷 말고 그냥 LAN으로 친구들끼리 팀플을 할 때, 옛날에는 배틀넷 다음으로 위에서 둘째인 IPX를 으레 고르곤 했다. 그러나 어느 패치 때부터인가 맨 아래에 UDP가 추가되었으며 그걸 고르는 걸로 구조가 바뀌었다. IPX는 동작하지 않기 시작했다. 어찌 된 일일까?

IPX라는 프로토콜은 똑같이 이더넷 랜선으로 통신을 하지만, 오늘날의 인터넷과는 다른 방식으로 통신을 한다. 즉, IP와 대등한 제3계층에서 방식이 다른 프로토콜인 것이다. IPX는 옛날에 네트워크 솔루션으로 유명했던 노벨 사에서 개발했고 실제로 매우 널리 쓰이기도 했지만 오늘날은 IP에 밀려서 사라졌다.

Windows 95때까지만 해도 네트워크 구성요소들을 설치하고 나면 기본으로 깔리는 것은 IPX였다. TCP/IP 지원 기능은 운영체제 CD를 넣어서 별도로 설치해야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날 당연시되고 있는 이 컴퓨터의 IP 주소를 설정하는 기능이 Windows 95에는 기본으로 없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네트워크 기능이 설치된 컴에서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다음 1990년대 중후반, Windows 98부터는 인터넷의 중요성이 워낙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으니 TCP/IP 지원도 같이 포함되었다.
여담이지만 Windows에서는 등록정보/속성을 나타내는 단축키가 R인 편인데, 95에서는 유독 저 대화상자에서만 R은 삭제이고, 등록정보는 P였다. 무척 불편했는데 이 역시 98부터는 다같이 R로 개선됐다.

하긴, 본인도 옛날부터.. Windows가 근거리 네트워크 차원에서 제공하는 컴퓨터 간의 폴더 공유 기능과, 웹브라우저로 띄우는 인터넷은 기술적으로 무슨 관계인가 궁금하긴 했다.
인터넷 열풍 앞에서 IPX는 점점 잉여로 전락했으며, Vista부터는 드디어 IPX 지원이 hlp 도움말만큼이나 짤렸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도 근거리 팀플에 인터넷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UDP 지원이 추가된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2/05 08:37 2015/02/0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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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챠 이야기

요 근래부터 이 블로그에도 국내외 광고 스팸 댓글이 급증하고 있어서 대책이 좀 필요한 것 같다.
옛날에는 외국 발 스팸 트랙백이 아주 가끔 걸리는 듯했는데 요즘은 트랙백은 없고 그냥 닥치고 쓰레기 댓글뿐이다.
일단 영어만 들어있는 텍스트는 무조건 차단하고, 요주의 키워드와 IP는 블랙리스트로 등록해 추가로 차단하고 있는데도 가끔은 그런 필터를 통과한 놈들이 게시되곤 한다. 그런 건 내가 보이는 족족 수동으로 제거하는 중이다.

옛날에 제로보드 시절엔 비로그인 사용자가 댓글/답변을 올릴 때 캡챠를 입력하게 하는 플러그인 내지 소스 추가 패키지가 있어서 본인 역시 제로보드 게시판을 운영할 땐 그걸 유용하게 썼었다. PHP 코드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리눅스용 실행 파일이 서버에서 실행되어 캡챠 이미지(PNG)를 실시간으로 생성해 냈다.
TextCube용으로도 그런 플러그인이 없을 리는 없겠지. 조만간 도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캡챠란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사용자가 서버로 보내는 게시물 내지 회원가입 신청이 봇/매크로/오토 같은 컴퓨터가 생성한 게 아니라 진짜 사람이 하는 게 맞음을 입증하기 위해, 사람만이 판독할 수 있게 비비 꼬아 놓은 랜덤하고 이상한 글자· 그림이 의미하는 값을 입력받는 인증 장치를 말한다.
gotcha!와 비슷한 어감 때문에 좀 얍삽하다는 심상이 느껴지는데, CAPTCHA는 나름 영단어 이니셜이다.

기계가 인식할 수 없는 이미지를 기계가 생성해 낼 수 있을까?
패턴인식 기술의 발달로 인해 어지간히 허술한 캡챠를 기계가 인식하여 뚫는 기술도 발달하고, 그에 맞서.. 진짜 사람조차 인식 못 할 정도로 난해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기계만 엿먹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어려운 캡챠를 생성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만만찮은 수준이다.

(첨언하자면, 오늘날은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도로 찾아서 복구하는 기술이 매우 경이로운 수준이다.
물리적으로 어지간히 손상을 준 하드디스크로부터도 최대한 데이터를 복구해 낸다거나, 심각하게 BLUR된 이미지로부터도 놀라울 수준으로 원래 이미지를 복원한다거나. 캡챠를 뚫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듯하다.)

도스 시절에 '맥스'라는 유사 채팅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는 분 계시는지?
얼굴이 안 보이는 공간에서 어떤 사람이 상대방과 채팅을 했는데, 대화 상대가 패턴이 뻔한 '봇'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 맞는지를 같은 사람이 분간할 수 없었다면 그 대화를 생성한 AI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간주된다.
그런데 캡챠는 역으로 컴퓨터가 이 입력이 진짜 사람이 맞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므로, 일종의 '역방향 튜링 테스트'에 가까운 셈이다.

스팸 게시물을 막기 위해 도박, 성 등 여러 불건전한 분야의 금지어들을 지정해 놓은 게시판이 많다.
그런데 게시물에 금지어가 우연히 포함되었다고 해서 아무 설명도 없이 없이 글의 등록을 거부하면..
진짜 사람이 그런 거부를 당했을 때 그 사람을 굉장히 화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반대로 'xxx는 금지어입니다'라고 매번 친절하게 알려 주면.. 스패머들은 그 피드백 결과를 바탕으로 금지어만 교묘하게 피해가는 스팸 게시물을 만들어 뿌리게 된다. 이 역시 딜레마다.

따라서 둘을 절충하는 방법으로는...
일단은 캡챠 같은 거 없이 깔끔하게 글을 접수한 뒤,
본문이 금지어가 포함돼 있거나 특정 패턴을 만족하여 광고글로 의심되면... 그때는 금지어 같은 광고글 의심 판정 근거를 노출하는 대신, 가만히 캡챠만 좀 입력해 보라고 friendly하게 추가 요청을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싶다. 한 마디로 말해 선패턴 후캡챠 전략인 것이다.

그게 익명 사용자에게 당장 깔끔한 첫인상을 주며,
사용자가 댓글을 올리지 않고 그냥 글을 읽기만 하는데도 복잡한 이미지 프로세싱이 필요한 캡챠를 매번 생성하는 것보다 서버 부담도 줄이는 일거양득 방법일 것이다.

특정 패턴이란 굳이 단어가 아니어도 되고 NLP 기술이 아니어도 된다. 지나치게 URL 링크가 많은 글, 특수문자가 한글과 너무 지저분하게 뒤죽박죽 섞여 있는 글만 찾아도 된다. 이 정도만 돼도 스패머가 제아무리 금지어 필터를 피하려고 잔머리를 굴린들 광고글 따위는 모조리 걸러낼 수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이런 광고 댓글 스패머는 국제 민폐요 인터넷 트래픽을 좀먹는 공해덩어리 떨거지들이다.
하지만 겨우 얘네들 때문에 게시판을 회원만 글을 올릴 수 있게 바꾼다거나, 심지어 누가 올려 놓은 글은 관리자가 일일이 사전 검열(?)한 뒤에야 공개 게시한다거나 하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불태우는 수준의 극단적인 짓일 것이다. 아무쪼록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허물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하는 기술의 발달이 절실하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겠지만, 캡챠로부터 유래된 재미있는 발상이 있다.
포털 사이트 같은 델 가입할 때, OCR 프로그램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어떤 책 스캔 이미지 조각에 든 문자열을 캡챠하고 같이 입력하게 한다. 그래서 캡챠를 맞게 입력한 여러 사람들이 동일한 이미지 조각에 대해 일치하는 문자열을 입력했다면, 그 이미지에 담긴 텍스트는 그게 맞다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캡챠 타이핑과 동시에 real-world 캡챠도 같이 타이핑하여 전세계 네티즌들이 힘을 합쳐 문헌의 전산화(?)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다. 일명 '리캡챠 프로젝트'라고 한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세계 유수의 사이트들이 리캡챠 엔진을 활용 중이라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4/08/16 08:22 2014/08/1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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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성능이 향상되고 그에 맞춰 인터넷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예전에는 로컬 환경이 아니면 불가능하던 일이 웹에서 곧장 가능해져 왔다. 웹에서 바로 사용하더라도 ActiveX를 깔아야 해서 플랫폼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았고 어차피 로컬에서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던 기능도, 이제는 그조차도 필요 없어진 것이다.

본인은 웹 프로그래밍은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오늘날 존재하는 기술 계층을 다음과 같이 크게 세 등급으로 나눈다.

Level 3: 웹 표준만으로 다 커버되는 기능을 일컫는다. 기기와 CPU를 불문하고 표준을 준수하는 모든 웹브라우저에서 쓸 수 있는 기능이므로 가장 보편적이고 깨끗하다. 비록, Level 1,2만치 빠른 성능이나 세세한 컴퓨터 조작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구조적인 한계는 있으나 그 한계는 놀라운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위지윅 웹 에디터조차 이 계층으로 내려왔으니까.

Level 2: 플래시 정도의 별도 컴포넌트는 써야 하는 기능이다. 플래시는 워낙 너무 유명해서 사실상 표준으로 정형화해 있긴 하다만, 이 계층의 미들웨어도 일종의 노다지 시장인지라, 잘 알다시피 마이크로소프트의 Silverlight가 팽팽히 맞서는 중이다. 동영상은 flv 덕분에 현재 Level 2가 대세로 정착하였으나, HTML5의 등장 덕분에 Level 3로 내려가는 게 점쳐지고 있다. 그래도 옛날에는 동영상조차도 Level 1이었다.
리눅스나 아이폰에서는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플래시가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 등, 몇몇 잡음과 애로사항이 존재하기도 한다.

Level 1: 여전히 어떤 형태로든 운영체제 내지 특정 컴퓨터 아키텍처에 종속적인 네이티브 코드의 도움을 브라우저 외부로부터 받아야 하는 기능이다. 시스템 훅킹을 써야 하는 키보드 해킹 방지 툴이라든가, 레지스트리를 검사하는 프로그램 업데이트 관리자 등. 사용자의 컴퓨터가 이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는 사양인지 체크하는 기능을 웹으로 구현하려고 해도 ActiveX가 필요할 것이다. 이 레벨의 입지는 앞으로 줄어들 것이고 그래야만 정상이지만, 그러나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웹 환경의 발전 덕분에, 단순 정보 열람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이 로컬에서 제일 먼저 퇴출되었고 웹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다 탈바꿈했다. 대표적인 예가 사전. 오늘날은 아래아한글 번들의 한컴사전만이 로컬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난 지금도 아주 잘 쓰고 있는데. -_-) 이거 전신이 과거 도스용 아래아한글의 덧실행 프로그램이었으니, 참 격세지감이다.
아울러 HTML5로는, 이젠 어지간한 프레젠테이션도 심지어 플래시조차 동원하지 않고 Level 3 계층만으로 다 가능하다고 하더라.

인터넷 지도는 그런 식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분야가 아닌가 싶다.
본인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아래아한글 97 CD에 번들로 내장되어 있던 MFC 기반 허접 지도 프로그램을 구경하였으며, 2001년경엔 ActiveX 기반의 한미르 지도를 인터넷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그리고 2003년 말에 콩나물을 처음으로 접했다(현재는 다음 지도에 합병).

그랬는데 인터넷 지도 기술이 이 정도로 기가 막히게 발달하게 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콩나물도 처음에는 ActiveX가 필요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건 없어졌고..

이제는 단순 지도 그림 열람은 플래시조차 없어도 되는 L3이 되었다. 지도도 모자라서 전국의 항공 사진까지 제공된다. 다음 지도는 한술 더 떠서 로드뷰라는 엽기적인 기능까지 제공하는데, 그런 기능은 한 등급 올라가서 플래시를 사용하는 L2 계층에서 구현되어 있다.
(참고로 옛날에 철도청 홈페이지에는 새마을부터 통일호까지 열차 내부를 딱 그런 시점으로 열람하는 기능을 제공했는데, 그건 아마 자바 애플릿 아니면 ActiveX 기반 구현이었다.)

한편, 구글 지도는 역시 미국에서 만든 서비스답게 도로의 이름이 우선적으로 잘 나와 있는 게 무척 인상적이다.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국내 지도는 도로 이름보다는 교차로의 이름의 기재에 더 충실한데, 이는 서로 vertex냐 edge냐 하는 차이 같다.

구글 지도가 제공하는 진짜 안드로메다급의 충격적인 기능은 잘 알다시피 Google Earth 되시겠다. 물론, 처음부터 구글이 만든 건 아니고 다른 회사 제품을 인수한 것이긴 하다만, 사람이 거주하는 세계 거의 전역의 위성 사진을 진짜 지구본 뱅그르르 돌리는 느낌으로 열람할 수 있다. 가히 신의 눈 수준. 말세에 인간이 정말 이런 기술까지 경험하는 게 경악스럽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지만, 구글 지도의 위성 사진은 국내 지도가 보안상 표기하지 않고 있는 청와대, 군용 시설, 발전소 등도 남김없이 까발린다. 산으로 뒤덮여 있는 녹사평 역 주변을 구글 지도로 들여다보다가 까무러칠 뻔 했다. (담장 너머로 펼쳐진 미군 부대는 완전 소도시 수준이었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플래시 버전의 Google Earth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구글 지도에서 이 earth 기능을 웹에서 정식으로 사용하려면 별도의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즉, L1 등급. 그 정도로 복잡하고 방대한 기능은 아직 L3이나 L2만으로는 감당이 안 될 법도 하다.

인터넷 지도를 보니까 기술의 발전이 놀라운 한편으로 웹 프로그래밍의 기술 등급이 떠올라서 글을 끄적여 봤다.
로드뷰까지 등장한 마당에 전국 철길에 대한 레일로드뷰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보지만, 철도는 보안 시설이다 보니 안 될 거야 아마.. 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1/09/07 19:17 2011/09/07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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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C++ IDE (정확히는 비주얼 스튜디오)에는 간단하게나마 위지윅 HTML 에디터가 내장되어 있다. 다만, 입력하는 내용에 따라 프로그램이 생성해 주는 HTML 코드가 굉장히 지저분한 편이어서(여백, 정렬 상태 등~) 본인은 이를 즐겨 사용하지는 않는다.

물론, 언어별로 IDE가 따로 놀던 비주얼 C++ 6의 IDE에는 HTML 편집기가 없었으며, 웹 편집은 비주얼 InterDev라는 프로그램이 따로 담당하고 있었다. 그 대신 비주얼 C++ 6은 OLE 기술을 이용하여 심지어 MS 오피스 문서를 자기 IDE 내부에다 가져와서 편집하는 기능이 있었다! 물론 MS 오피스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에 한해서.

File-New 대화상자를 보면 맨 오른쪽 탭에 MS 오피스(워드, 엑셀 등) 문서를 만드는 항목이 있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을 것이고, 그 기능을 이용하거나 그렇게 OLE 친화적인 업무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비주얼 스튜디오에서도 이후 닷넷부터는 그런 잉여 기능이 제외됐다. 내 기억이 맞다면 딱 하나, MS 오피스에 이어 아래아한글 2002가 그렇게 문서를 만드는 기능을 지원했다.

비주얼 스튜디오 닷넷은 잘 알다시피 모든 언어들의 IDE가 Microsoft Development Environment라는 이름으로 한데 통합했으며, 그래서 한 프로그램으로 소스 코드, 텍스트, 웹 문서 등을 모두 한데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비주얼 스튜디오가 제공하는 웹 에디터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그냥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제공하는 에디팅 엔진을 그대로 차용했다.

본인은 비주얼 스튜디오가 제공하는 웹 에디터는 ‘진하게’를 왜 b가 아닌 strong 태그로 표현하고, ‘이탤릭’을 왜 I가 아닌 em으로 표현하는지 의아해했다. 200x년대에 사용하던 나모 웹에디터와 FrontPage는 b, I를 썼기 때문이다. 기능이 동일하면 더 짧은 표현이 좋기 때문에.. ㄲㄲ

물론 그 이유는 웹 표준의 개정 때문이다. HTML은 워드 프로세서 문서처럼 글자 비주얼이 아니라 문서의 논리적인 구조와 의미를 표현하는 용도로 유지하기 위해서 물리적인 비주얼을 표현하는 방식을 CSS 위주로 바꾼 것이다.

글씨체를 바꿨을 때 태그가 생성되는 방식은, 놀랍게도 비주얼 스튜디오의 버전마다 서로 다 다르다.
2003까지는 그냥 대놓고 <font face="무슨체"> 였다.
2005는 <span style="font-family:무슨체">가 되었다.
2008은? 아예 head 태그 내부에 그 서체를 지정하는 새로운 스타일이 등록되고 <span class="style1">이 생성된다.

똑같은 운영체제와 똑같은 IE 버전 하에서도 서로 다르게 동작하는 걸 보니, 이건 전적으로 비주얼 스튜디오의 버전별 차이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분석을 하고 말려고 했는데...
비주얼 스튜디오 2008은 웹 에디터가 뭔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2003과 2005가 단순히 IE 기반인 것에 비해,
2008은 위지윅 에디터(소스 편집이 아닌 디자인 모드)의 윈도우의 클래스 이름이 FrontPageEditorDocumentView. 다시 말해 MS 오피스 2003 이후로 개발이 중단된 FrontPage의 에디팅 엔진을 얹었다는 뜻 되겠다! ㄷㄷㄷ;;;

덕분에, 2008 이전의 비주얼 스튜디오(VS) 내장 웹 에디터는 디자인 모드 아니면 소스 편집 모드 이렇게 두 가지 모드만 제공하였으나, 2008은 FrontPage처럼 한 화면에서 디자인과 소스를 한꺼번에 보고 편집하는 분할 모드도 같이 지원한다. 그리고 FrontPage처럼 태그 단위로 텍스트를 한꺼번에 선택하고 속성을 지정하는 정교한 편집 기능도 지원한다. 단순한 IE 기반 엔진만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기능임.

그런데 그런 것만 바뀐 게 아니라, VS 2008의 웹 에디터는 진하게/이탤릭 태그도 과거의 FrontPage처럼 b, i로 되돌아갔다. 이런?
VS 2010은 어떤지 모르겠다. 듣기로는 소스 코드 에디터도 완전히 새로 다시 짰다고 하니 또 바뀐 게 있겠지.

그래서 지금부터는 FrontPage 얘기를 좀 하겠다.
FrontPage는 여타 회사에서 개발되던 웹 에디터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하여 90년대 후반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그래서 초창기 버전에는 윈도우의 클래스 이름이라든가 생성된 HTML 코드의 generator 메타태그에 원래 회사의 이름 이니셜 같은 걸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HTML 태그는 아무나 만지는 물건이 아니다 보니 웹 에디터 역시 워드, 엑셀 같은 전국민 필수품은 아니며, 아웃룩처럼 업무용 필수품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게 액세스라든가 비주얼 스튜디오 급의 전문 개발자 영역도 아니다 보니, 이런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위상은 무척 어중간했다.

다이어그램을 그리는 프로그램으로 윈도우 3.x 시절부터 명성을 떨쳤는데 나중에 역시 MS에게 인수된 비지오(Visio)와 비슷한 위상 같다. FrontPage는 MS 오피스 제품군의 정식 멤버는 아니었지만 어째 오피스 XP 및 2003과는 동일한 타이밍에 버전업을 거쳤다.

FrontPage는 XP와 2003의 동작 방식이 서로 굉장히 달랐다. XP는 모든 html 코드를 자기 컨벤션대로(줄당 문자 수, 들여쓰기 등) 무조건 깔끔하게 정리하는 기능이 있었고, 심지어 html 코드 최적화 기능까지 있었다. 이게 잘 동작할 때는 무척 유용하지만,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태그를 제멋대로 고쳐 버리기까지 해서 믿음직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03에 와서는 정책이 정반대로 바뀌어서, 이미 만들어진 코드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수정된 부분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변경만 가하는 방식이 되었다. 이것도 좋긴 하지만, 수정을 거듭하다 보면 앞서 말했듯이 코드가 무척 지저분해져서 싫다. 그리고 <li>, <ol>처럼 목록을 표현하는 태그에서 여닫기 처리를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이 발전하면서 기존 디지털 카메라들은 아예 DSLR 같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경쟁 구도가 바뀌었듯, 오늘날은 블로그가 발달하고 웹에서 바로 위지윅 html 에디터 내장 게시판을 쓰는 시대가 됐다. 로컬 환경에서 html 에디터를 쓸 일이 무척 줄었다.

그래서 FrontPage는 2003 버전을 끝으로, 더 전문적인 웹 디자인 솔루션인 MS Expression Studio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개발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FrontPage의 엔진이 비주얼 스튜디오의 2008에 전해져 오는 모양이다. ㅋㅋ

본인은 FrontPage를 내 홈페이지 편집과 프로그램 도움말 제작용으로 지금까지도 애용 중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Expression Studio를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나저나 요즘 드림위버는 살아 있나?

Summary:
1. 위지윅 웹 에디터로 각종 아기자기한 클립아트를 넣으면서 자기 홈페이지를 만들던 시절이 그립다. ㅋㅋ
2. 여러분은 html 편집을 무엇으로 하십니까?

Posted by 사무엘

2011/04/22 18:46 2011/04/2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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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교체 & 전화번호 변경 외

지난 9월 13일, 본인은 손전화를 교체함과 동시에 전화번호도 드디어 010 기반으로 바꿨다.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인터넷, 카메라 등 될 건 다 되는 햅틱 급의 터치폰이 본인의 제 4대 손전화로 취임했다. (참고로 노트북도 현 기종이 제 4대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2001년 초에 처음으로 개인용 휴대전화를 접한 이래로, 지금까지 폰을 총 세 번 바꿨다는 뜻이다.

본인은 전화번호는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내고 아는 사이인 사람에게만 공개하지, 홈페이지 같은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알리지 않음을 밝힌다. 불특정 다수에게는 메일 주소만 공개하며, 이 블로그에서도 전화번호 자체는 공개하지 않고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사실만 알리는 것이다. 혹시 본인의 지인이면서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문자 연락을 받지 못한 분이 있다면 본인에게 알려 주기 바란다.

1990년대에는 PC의 발전 속도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XT/286급 컴퓨터가 무려 윈도우 98/2000을 돌리는 성능으로 발전하면서 20세기가 끝났다. 우유, 라면 값이나 버스 요금, 공중전화 요금 따위는 20년 전에 비해 지금이 3배 이상 올랐고 심지어 자동차 가격도 인플레의 영향을 받았지만, 컴퓨터의 가격만은 보편적인 생필품 물가를 역행해도 한참 역행해 왔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2000년대에는 전화기가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다. 전국민이 손전화를 소지하면서 삐삐는 마치 인터넷 앞에서 PC 통신이 도태하듯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공중전화도 마치 우체통만큼이나 아주 없앨 수는 없지만,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가 됐다. 자동차용 고급 액세서리이던 카폰도 닥버하게 됐다.

단색 액정 화면은 컬러로 바뀌고 단색 멜로디는 애드립 멜로디를 거쳐 자연적인 사운드로 바뀌었다. 전화기에 웬 카메라 기능이 추가되고 영상 통화가 가능해지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졌다. 비트맵 글꼴도 윤곽선 글꼴로 바뀌었다. 나중에는 아예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설치할 수 있는 스마트폰까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존재하던 각종 개인용 정보 열람/처리 기기의 기능을 흡수하게 되었다.
(관련 글: http://moogi.new21.org/tc/208 )

본인은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의 싸움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좀 더 지켜본 뒤에 다음 전화기는 스마트폰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_-;;

초대 손전화 시절에 본인의 번호는 017이었다. 그러던 것이 대학 시절에 제 2대 손전화를 도입하면서 번호를 016 기반으로 바꿨고, 이 번호를 2003년부터 2010년까지 거의 7년 반 동안 사용했다. 그러니 본인이 애착이 갈 만도 하지 않은지? 2대와 3대 전화기는 한글 입력이 모두 나랏글 방식이었기 때문에 본인은 7년이 넘게 사용한 나랏글 방식에 아주 능숙하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본인은 전임인 3대 전화기(LG 싸이언)를 거의 집착에 가까운 수준으로 오래 썼다. 2004년 말부터 지금까지 거의 5년 9개월을 사용했다. 2년을 채 못 쓰고 분실한 2대 전화기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왜냐하면 본인은 손전화로는 오로지 통화와 문자밖에 안 쓰고 부가적으로 알람이나 주소록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능이 복잡한 전화기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정보 처리 기능은 늘 들고 다니는 노트북을 이용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이 구닥다리 전화기는, 자동차로 치면 마치 아직까지 포니나 스텔라 같은 차를 몰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쟤 전산학 전공한 친구 맞어?” 경악이 나오기에 충분할 정도. 요즘 IT계에서는 안드로이드나 아이폰 개발자가 없어서 일손이 부족해 난리라는데, 본인은 그런 것과는 전혀에 가깝게 관계가 없는 삶을 살아 왔다.

그러다가 결국은 전화기를 바꾸게 됐다. 그건 전적으로 전임 전화기가 낡고 고장이 나서 전화기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못 하고, 수리를 받아도 별 진전이 없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자연사인 셈이며, 정말로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바꾼 것이었다. ^^;;

언제부턴가 갑자기 전화 연결이 잘 안 되고, 통화 중에 전화가 끊어지고, 문자도 받는 건 잘 되는데 보내는 게 되지 않았다. 툭하면 ‘통화권 이탈’ 에러가 났다. 나 혼자 불편한 건 상관이 없는데, 이 때문에 본인에게 연락을 하는 다른 사람이 불편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단호하게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10년 가깝게 폴더를 펼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가 버튼 누르기, 화면 길게 누르기(터치폰을 activate하는 방식) 동작을 하는 것이라든가..
예전 폰으로는 꽤 금방 꺼냈던 기능을 지금 폰으로는 몇 차례 터치를 더 해야 되는 것에 대해서 좀더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마치 도스용 아래아한글의 달인이던 사람이 윈도우용 아래아한글이나 MS 워드의 각종 마우스 동작에 적응하는 과정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문자 메시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본문부터 먼저 입력하고 나서 수신자 번호를 입력받는 것이 심리적으로 무척 안정감을 줘서 좋다. (예전 폰은 수신자 번호 다음에 본문 순서여서 불편했음)

드디어 개인용 기계에서 천지인 입력 방식을 쓰게 됐는데... 모음을 분해하는 과정이 좀 복잡한 것, 그리고 음절 모호성 때문에 자음 연속 입력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게 무척 불편하긴 하다.
하지만 나랏글도 일부 자음은 가획이 만만찮게 복잡하고, 그런 게 천지인에서는 반대로 편하게 되는 것도 있으니 일장일단이 있는 듯하다. 게다가 나랏글은 * #까지 12키를 모두 사용하지만, 천지인은 10개만으로 문자를 입력하고 * #키는 문장 부호 입력용으로 쓴다는 특징도 있다.

전화기를 개통해서 나오니까 꼭 자가용을 한 대 뽑아서 몰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교통 수단 대신 통신 수단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다음은 관련 잡설들이다.

1. 본인 전화기의 컬러링이나 벨소리는 Looking for You, Oh Glory Korail 같은 걸로 했으면 좋겠다. ㅋㅋㅋ

2. 본인은 무선 인터넷이란 걸 접한 게 2003년에 학교 안에서였다. 그러던 게 불과 몇 년 사이에 무선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보급되고 대중화했으며, 성능마저도 과거의 어지간한 유선 인터넷 회선의 속도를 따라잡았다. 손전화와 무선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대학 캠퍼스 생활은 과연 어땠을까 상상이 안 된다.

3. 본인은 01x 번호에다가 3G 전화 서비스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아직까지 기계 대체나 번호 변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있는 2G 전화만으로 만족하고 잘만 쓰려는 사람들이다. 단지, 개인의 선택권인 번호나 제멋대로 바꾸지 말고 이미 있는 서비스나 잘 제공해 줬으면 좋겠다.
사실상 4천만 명이 넘는 전국민이 손전화에 가입해 있는데 010 번호+겨우 8자리는 공간이 많이 모자라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4. 오늘날 지메일은 구글이 2006년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로, 웹메일 서비스의 지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메일에 익숙한 사람은 다른 포털 사이트 메일은 너무 불편해서 못 쓴다는데, 본인은 10년도 더 전에 가입한 드림위즈 메일 계정을 아직까지 사용 중이다.
뭐, 본인도 지메일 계정이 없는 건 물론 아니다. 그 당시에 지메일은 초대장을 퍼뜨리는 방식으로 자기네 서비스를 홍보하고 사용자를 끌어모았던 걸로 기억한다. 한 사람당 기가바이트 급의 계정 용량을 준다고 했고 지금은 그 용량이 더욱 커져 있기도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22 09:09 2010/09/2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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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격세지감

1.
1996년이던 걸로 기억한다. 본인이 중학생이던 시절, 경기 과학 고등학교가 TV 방송으로 소개되는 걸 봤다.
'경곽'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학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교한 과학고이기도 하다. (서울 과학고가 최초가 아니다)
그런데 그 당시 학교의 자랑이랍시고 흘러나온 멘트 중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 학교는 인터넷 전용 회선이 갖춰져 있고 전교생이 인터넷 다룰 줄 안다" 였다. ㅜ.ㅜ "전교생이 이메일 계정 갖고 있다"란 말도 했던가?

1993-4년이 CD롬, 사운드 카드를 위시한 멀티미디어 시대였다면, 1996-7년이 이제 막 윈도우 95가 보급되면서 인터넷, 멀티넷 이러면서 제대로 떠들던 시절이었다. ^^;;
요즘은 "전교생에게 노트북 지급하고, 학교 전구역에서 무선 인터넷 된다" 정도는 돼야 자랑거리가 될 것이고, 그게 그렇게 큰 자랑거리도 못 될 것이다.

하긴, 본인도 전화(모뎀)가 아닌 전용선 인터넷 자체를 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접했으며 이메일 계정이란 걸 처음 만든 것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중학교 때 PC 통신, 고등학교 때 인터넷, 대학교 때 휴대전화 순으로 문명의 이기를 접해 왔다. 정보 사냥(검색) 대회라는 게 사라진 게 언제쯤이더라? ^^

2.
2002-3년 사이인 걸로 기억한다. 그 무렵에 TV 도전 골든벨 프로를 봤는데, 맨 마지막 50번 문제가 무슨 IT 용어를 묻는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여학생은 그 문제를 못 맞혔다.
그런데 그 문제의 답은 바로...

'블로그' 였다. ㅜ.ㅜ
그때까지 블로그라는 단어는 본인조차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용어였다. 지금은 블로그도 모자라서 트위터 같은 마이크로블로그까지 등장해 있는데도 말이다. ^^
저 때는 근성 충만한 IT계 초 얼리 어답터, 파워 유저들이나 블로그를 했지, 나머지 대다수는 나모 웹에디터 HTML 글자판때기 코딩으로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아니면 싸이 내지 아이러브스쿨, 다모임 같은 것밖에 안 하던 시절이었다. 아울러, 소리바다가 아직 있던 시절.

그러다가 그 비슷한 시기에 네이버에서 지식(인) 검색이라는 걸 만들어서 대박을 냈고, 한국의 인터넷 문화를 뒤집어엎었다. 엠파스에서 자연어 처리 / 질문 문장 검색 비슷한 서비스를 하긴 했는데 그걸 네이버가 더욱 발전시킨 걸로 알고 있다. 야후, 알타비스타, 심마니 같은 초창기 검색 엔진들을 다 골로 보냈다.
나중에는 카페, 블로그 서비스까지 만들면서 네이버는 다음 같은 종합 포탈 사이트로 거듭난다. 맞춤형 홈페이지(myhome) 서비스는 꽤 오래 전에 중단했다.

2002-3년이면 아직 구글도 국내에서 파워 유저가 아닌 계층에서는 완전 듣보잡이던 시절이었다. 외국 사이트는 잘 찾았지만, 내 이름을 한글로 쳐 보면, 온갖 인명들을 검색에 걸리라고 일부러 수집해 놓은 쓰레기 성인 사이트들만 잔뜩 뜨던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

Posted by 사무엘

2010/07/31 16:20 2010/07/3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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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E-only 사이트들

세상엔 아직도 크롬/파폭 같은 비 IE 브라우저에서는 웹사이트 레이아웃이 깨진다거나, 특히 플래시 메뉴 같은 걸 클릭해도 반응이 없는 안습한 웹사이트가 적지 않다.
사실은 플래시가 아닌 메뉴 중에도 비 IE에서는 동작하지 않는 게 있다.
이런 건 주로 무슨 표준을 안 지키고 뭘 잘못 만들어서 그런 건지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하다.
ActiveX 같은 걸 쓴 것도 아니고 순전히 자바스크립트 같은 다른 계층의 문제일 것이다. 네이티브 코드를 실행 안 하면 절대 안 되는 상황도 아니며, 코드를 약간만 수정해 주면 의외로 금방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 보이는데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2. 이런 메뉴 디자인은 최악

그리고 이건 브라우저 호환성 문제는 아니고 웹 디자인과 관련된 다른 얘기.
마우스로 어떤 메뉴를 가리키고 있으면 하부 메뉴가 아래에 뜨고, 그 하부 메뉴를 클릭했을 때 다른 웹페이지가 뜨는 구조인 플래시 메뉴를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그런데, 하부 메뉴가 세로가 아니라 주 메뉴와 같은 형태인 가로로 길쭉하게 나타나는 사이트가 많다. 가령,

[ 회사소개 ] | 제품소개 | 커뮤니티 | 사이트맵
회사는  / CEO 소개 / CI 소개 / 조직 구성 / 찾아오시는 길

같은 식.
그런데 굉장히 불편할 때가 언제냐 하면,
마우스 포인터가 { 회사는 ... 찾아오시는 길 } 이라는 하부 메뉴 영역의 위나 아래로 조금만 벗어나도 그 하부 메뉴가 싹 사라져 버릴 때 말이다. -_-++++++;;;

자, [회사소개]를 가리켰다가 저 끝의 [찾아오시는 길]을 선택하는 게 아주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세로로 길쭉해서 하부 메뉴가 가로와 세로로 모두 충분히 공간이 있다면 모를까 저건 좀...;;;
[조직 구성]까지 갔다가 실수로 마우스 포인터를 아래로 옮기면 하부 메뉴가 사라져 버리고, 그럼 다시 [회사소개]를 가리키러 마우스 포인터를 옮기는 삽질을 해야 한다.
그런 메뉴는 좀 하루빨리 시정됐으면 좋겠다.

3. ActiveX

인터넷 세계에서 평생까임권을 획득한 존재이다. 물론 ActiveX의 존재라든가 취지 자체가 악의 축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좀 억울한 면, 오해가 있는 면도 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터넷 상으로 동영상 하나 보려고 해도, 아니면 게시판용 위지윅 HTML 에디터를 좀 붙이려고 해도 온갖 듣보잡 ActiveX 없이는 안 됐었다.
동영상이야 플래시가 2005년쯤부터 완전히 접수해서 여타 플레이어들을 발라 버린 덕분에 게임이 끝났다. 사실은 플래시 자체도 ActiveX이지만 이 녀석은 쓰임이 워낙 범용적이고 전세계 PC에 널리 퍼진지라 예외로 인정되는 인터넷 필수 구성 요소가 되었을 뿐이다.

그 반면 HTML 에디터는 무척 놀랍다. 블로그의 등장과 이것 때문에 평범한 양민이 HTML 코딩으로 홈페이지 만들 일이 완전히 없어졌으며, 덕분에 로컬 환경에서 네이티브로 동작하는 웹에디터는 떡실신하고 만 것이다. 간단한 HTML 위지윅 에디터는 심지어 비주얼 스튜디오 같은 개발툴조차 내장하고 있다. 그러니 기존 웹에디터는 아예 웹사이트 관리자 아니면 HTML 기반 도움말 저작도구로 더 전문적으로 변모하지 않으면 안 되게 구도가 바뀌었다.
요즘은 게시판 하나 만들려고 해도 HTML 에디터는 필수이다. 그런 점에서 그냥 plain text 입력 폼만 덩그러니 뜨는 제로보드 4는 엄청 캐안습 구닥다리이다.

웹에서 돌아가는 위지윅 HTML 에디터가 정착해 가던 과도기에는 이랬다. 그나마 조금 배려를 했다는 사이트는 IE에서는 full feature 위지윅 에디터가 뜨고, 여타 브라우저에서는 그냥 plain text만 입력할 수 있는 에디터가 떴었다. 본인의 주 메일 계정인 드림위즈의 이메일 작성 UI가 한 2, 3년 전까진 딱 그랬었다. plain text only -> IE만 위지윅 에디터 -> 다 위지윅 에디터의 식으로 발전하여 요즘은 어디서나 위지윅 에디터 제공.

요즘은 저렇게 동영상에, 위지윅 에디터에, 어지간한 암호화까지 웹 표준이 커버하는 분야가 크게 늘어난 덕분에 웹 상으로 굳이 네이티브 코드를 소환할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터넷 상으로 내 컴퓨터 시스템 정보를 표시해 준다거나, 진짜로 키보드 드라이버 차원의 보안을 구현한다거나, 설치되어 있는 소프트웨어 정보를 레지스트리 정보를 통해 파악한다거나.. 그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2000년에 처음 개발된 <날개셋> 한글 입력기 1.x는 무려 ActiveX로 만들어졌었다! -_-;;;
아직 정식 인스톨러 패키지도 없던 시절에 도스창에서 regsvr32 해 주고 <날개셋> 편집기를 구동해서 세벌식 모아치기를 쓰던 시절을 기억하거나 겪어 본 분이 독자 중에 얼마나 있을까? ㅋㅋㅋㅋ
그때 본인은 <날개셋> 자체 에디트 컨트롤을 ActiveX로 만들면 비주얼 베이직이나 심지어 웹브라우저에서도 그대로 연동 가능하다고 해서 그냥 시범삼아 그 테크닉을 써 본 것이다. 그때는 아직 인터넷 상으로 ActiveX 컨트롤 자체를 보기 힘들었고 그게 지금처럼 악의 축으로 문제되기도 전이었다. 오픈웹 운동 나부랭이 따위도 없었다. 그랬는데... 세월 참 많이도 흘렀다.
그러다 2.0부터는 그냥 일반 윈도우 컨트롤로 바뀜.

4. 운영체제 재설치

본인은 가상 머신이 아닌 실제로 사용하는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제를 마지막으로 재설치한 건... 무려 2007년 초쯤이다. 3년이 넘게 윈도우 설치 화면을 볼 일이 없이 지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본인 노트북은 꽤 오래 전부터 CD롬 드라이브가 고장났으나, 이것도 쓸 일이 없으니 고칠 일도 없었다. 요즘 컴퓨터는 아예 USB 메모리로도 부팅 가능하다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팅이 가능하려면 파일 시스템 차원에서 프로그램 파일이 아주 특수하게 기록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윈도우를 재설치하던 3년 반 전에는 XP를 쓰고 있었는데, 그때는 운영체제가 확실하게 맛이 가 있었다. 딱히 악성 코드나 바이러스에 걸린 것도 아니었는데 언제부턴가 제어판의 일부 구성 요소가 제대로 안 나오고, 뭔가 전반적인 성능이 떨어진 느낌이 들고.. 내가 아무리 컴퓨터 유지 보수를 귀찮아하는 게으른 타입이라 해도 이건 인간적으로 OS를 정말 재설치해야 한다는 신호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그래서 하드를 포맷해 버렸다.

하지만 점점 운영체제의 자가 관리 능력이 향상되면서 하드를 포맷하고 운영체제를 재설치해야 할 일은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비스타를 3년이 넘게 써 보지는 못했으나, 굉장히 안정적이라는 건 느낀다.
다만, 각종 업데이트와 패치를 설치하면서 디스크 용량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윈도우를 새로 설치하면 그때까지 누적되어 있던 온갖 업데이트, 서비스 팩들도 다 원점으로 돌아가니 안습이다. 업데이트 내역만 쉽게 export/import하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27 08:37 2010/07/2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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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5월 말, 석가탄신일 연휴 때 고향에 가서 부모님께서 쓰시는 컴퓨터를 여러 군데 손 봤다. XP 정도나 돌릴 수 있는 구형 컴퓨터이다. 내가 없는 사이에 컴퓨터 A/S를 받아서 하드를 포맷하고 운영체제를 새로 설치했다고 하던데, 파일 시스템이 웬 생뚱맞게 FAT32로 되어 있어서 당장 NTFS로 바꿨다.

그리고 드디어 IE7을 설치했다. 부모님의 반응은 “서울 컴퓨터와 같은 인터페이스이구나”였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XP가 없고 비스타만 있기 때문이다. 탭을 지원하고 메뉴가 기본적으로 숨어 있는 IE7의 외형과, 그렇지 않은 IE6의 외형은 부모님이 보시기에도 차이가 명백했던 것이다.

때가 2010년인데 IE8이 아닌 IE7을 선택한 이유는 짐작하다시피 병맛 같은 국내 사이트 때문이다. 교사가 쓰는 컴퓨터에다 NEIS가 안 돌아가는 브라우저를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본인 역시 IE8을 비스타 64비트에서 한번 설치해 봤다가 국민 은행 뱅킹이 에러 메시지도 없이 그냥 전혀 동작하지 않는 걸 보고, 혼비백산하여 곧바로 IE7로 복귀해야만 했다. 본인의 개인 노트북에만 IE8을 설치해 쓰는 중이다.

IE8이 IE7보다 그렇게도 가벼워지고 성능이 향상되고 ACID 지수도 올라갔다고 하는데 본인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탭의 윗부분 색깔이 colorful해졌다는 차이밖에 안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본인은 얼리 어답터 기질은 다 죽어서 업데이트 같은 걸 귀찮아하는 타입. O<-<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지금까지 서울 각지에서 이용해 본 PC방들은 어쩜 이리도 한결같이 IE6을 쓰고 있으니 과연 충격과 공포이다. 각종 통계에 잡히는 IE6 사용자들의 상당수가 PC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윈도우 XP sp3이면 어차피 IE8까지 돈도 안 들이고 업그레이드 가능한데 왜 이런 투자에 인색한 걸까?

여기서 IE의 역사를 좀 살펴보자. 1은 가히 듣보잡이고, 2는 윈도우 95 번들로 제공된 최초의, 그러나 정말 빈약한 버전이었다.
3은 드디어 넷스케이프 3과 맞장뜨기 시작한 버전인데, 넷스케이프의 플러그 인에 대응하여 ActiveX를 최초로 내장했다. IE3은 MS가 개발한 프로그램 중 전무후무하게 toolbar에 텍스처가 존재했으며, 마우스가 가리키고 있는 버튼에만 윤곽이 나타나는 소위 flat 스타일 toolbar를 최초로 도입한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나름 산뜻한 외형을 지향했다는 뜻.

오늘날의 IE의 근간이 잡힌 건 4부터이다. HTML 도움말, 액티브 데스크톱 같은 갖가지 기술이 이때 첫 도입됐다. 5에서는 complex script, global IME 등 다국어 처리 능력이 크게 강화된 걸로 기억하며, 무려 윈도우 3.x를 지원한 마지막 버전이다. 그 이후의 버전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하겠다.

윈도우 XP와 같은 시기에 출시된 IE6이 수 년간 엄청 장수하고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MS에서는 이제 IE 팀을 해체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하는데 흠좀무. 그러던 차에 2004년 가을을 생생히 기억한다. 모질라 재단에서 파이어폭스라는 획기적인 브라우저를 내놓으면서 현재까지 IE의 독점 구도를 크게 무마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은 잘 알다시피 구글 크롬까지 빠른 속도를 강점으로 승부 중이다.

2.
오늘날처럼 블로그나 트위터 같은 게 생기기 전, 너도 나도 나모 웹에디터 같은 프로그램으로 아기자기한 홈페이지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딱 그런 옛날 스타일 홈페이지를 보면 감회가 새롭다. 애니메이션 gif,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플래시, 그리고 테크노트나 제로보드 기반 게시판들. 본인이 학창 시절 때 몇몇 선생님들이 만든 홈페이지가 아직도 그런 스타일이다. 옛날 생각이 난다.

본인이 인터넷이란 걸 처음 접한 게 1997년 말이다. 내가 저장해 놓은 적이 없는 새로운 글과 그림이 화면으로 쏟아져 나오는 게 이리도 신기할 수 없었다. 그때 조선일보던가 MBC던가.. 국내 언론사들은 웬 VivoActive player라는 듣보잡 ActiveX로 동영상도 보여주곤 했다. 물론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열악한 화질이었지만 말이다. 그때는 RealAudio/Video도 있었으나, 컴퓨터와 네트워크 속도의 향상 덕분에 이내 mp3 등에 캐발리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넷스케이프도 IE에 완전히 발린다.

3.
맥 OS에는 애플에서 자체 개발한 사파리라는 브라우저가 기본 내장되어 있다. 비록 사파리는 크로스 플랫폼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윈도우에서는 별 재미를 못 보고 있는 모양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그렇게 윈도우, 맥, 리눅스를 다 날아다니는 프로그램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저나 맥 OS 클래식은 9까지만 해도 메모리 보호와 선점형 멀티태스킹조차 지원되지 않았다니 대체 뭐야... 90년대 말까지 쓰이던 운영체제가 기술적으로는 그 허접한 윈도우 3.1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말인지? CPU가 16비트였는지 32비트였는지? PC 쪽과는 역사가 너무 다르니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어렸을 때부터 본인에게 매킨토시에 대한 이미지는, 전자 출판과 복잡한 그래픽 작업처럼 PC하고는 가히 넘사벽인 최고급, 최고가 컴퓨터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맥 OS X에는 그림판뻘 되는 간단한 그래픽 편집기를 내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도 깜짝 놀랐다. 워드패드와 메모장 둘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내는 TextEdit는 있지만 그림판에 대응하는 프로그램은 없다니... =_=

Posted by 사무엘

2010/06/18 08:55 2010/06/1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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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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