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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13 독일의 V1, V2 로켓 by 사무엘

독일의 V1, V2 로켓

V1, V2..;;
안 철수가 지금으로부터 30년 가까이 전에 만들었던 안티바이러스 유틸 V3의 전신(백신 1, 백신 2)의 명칭이었고,
비행기 파일럿에게는 이륙 결심 속도, 이륙 안전 속도라고 더 익숙한 용어일 것이다.

그런데 이건 나치 독일이 2차 세계 대전 말, 패색이 짙어져 갈 때 영국을 한방 먹이기 위해 거의 발악을 하며 개발했던.. 초창기 순항/탄도 미사일의 상품명(?) 코드명이기도 했다. 거기서 V는 승리가 아니라 보복 무기(Vergeltungswaffe)라는 뜻의 단어의 이니셜이다.;;

V1은 구조적으로 볼 때 날개 달린 비행기이고 무인 비행 폭탄이었다. 길고 복잡한 전용 발사대에서 양력을 이용해서 이륙하는 방식으로 발사됐다. 비행 속도는 600~700km 정도밖에 안 됐기 때문에 당시의 유인 전투기로 접근해서 날개를 툭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떨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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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V2는 날개 없이 추력만으로 수직 발사되고, 마하 5에 달하는 속도로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는 로켓이었다. 얘는 당시 연합군의 기술로도 요격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날아오면 그냥 맞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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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1과 V2 모두 1944년부터 45년 초까지 몇천 발씩 발사됐다. 하지만 그 당시 기술로는 비행체를 목표물을 향해 정밀 정확하게 무인 조종하고 유도하는 기술이 심하게 메롱이었기 때문에 적에게(=연합군) 유의미한 타격은 별로 못 줬다고 여겨진다.

오죽했으면 그때는 정말 위험천만한 급강하 폭격기까지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귀한 조종사를 써서 적함을 향해 그렇게까지 무모하고 위험한 기동을 해야만 폭탄을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유인 초음속기 같은 게 없고 전투기조차 프로펠러 왕복 엔진이던 시절에, V1은 나름 초보적인 수준의 제트 엔진(펄스 제트)을 내장하고 있었다. 쌔애액~ 피융 하고 날아갔지, 붕붕붕 털털거리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나치 독일은 패망했지만, V1/V2의 연구 개발을 담당했던 폰 브라운은 미국으로 스카웃 돼 갔다. V2의 구조는 훗날 인류를 달로 보낸 새턴 V 로켓에까지 계승됐다. (이때 V는 그냥 5의 로마 숫자 표기.. 맥OS X처럼.)

전후인 1946년 10월 24일, 브라운 박사 연구팀은 미국에서 V2 로켓을 다시 생산 후, 폭탄이 아니라 카메라를 장착해서 쏴 올렸다.
로켓은 성층권과 중간권을 벗어난 열권이며, 여객기 순항 고도의 10배에 달하는 105km 부근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이 로켓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에서 지구의 둥근 윤곽을 찍은 흑백 사진을 남겨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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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이야 연료가 고갈된 뒤엔 다시 땅으로 자유 낙하했기 때문에 기체고 카메라고 뭐고 다 박살 났다. 허나, 철제 케이스에 담긴 필름은 다행히 손상 없이 무사히 지상에서 회수되어서 현상됐다. 그 덕분에 사진이 찍힌 게 전해질 수 있었다~! 한 장만 찍은 것도 당연히 아니고, 수 초 간격으로 수십, 수백 장을 찍었다.

이렇게 부분적인 모습 말고, 동그란 지구 전체가 한 화면에 담긴 최초의 사진은.. 지구의 대기권뿐만 아니라 중력까지 벗어난 먼 우주로 나간 뒤에야 찍을 수 있었다. 1968년 12월 말, 아폴로 8호에서 찍은 게 최초이다.
이렇듯, 우주 발사체와 군사 무기 미사일은 정말 발효와 부패의 차이만큼이나 본질이 완전히 동일하고 종이 끗발 하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치 독일은 2차 대전 당시에 미사일 비스무리한 거 만들었지, 잠수함 만들었지, 야전용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탱크도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열차포도 만들었다.
독일의 과학 기술은 정말 대단하다. 단지, 그게 미국 같은 풍부한 자원과 체계적인 품질 관리 및 제품 양산 시스템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그 동안 일제는 해전용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을 만들었다(야마토). 일제는 독일 같은 미사일까지는 미처 못 만들고, 소박하게 폭탄 풍선을 띄워서 미국 서부의 상공까지 날려 보내고 터뜨리려 한 적은 있다.;;;

여담: 머피의 법칙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필 내가 관람을 하는 경기는 꼭 지더라, 세차를 하고 나면 반드시 비가 오더라"처럼.. 세상 만사가 꼭 재수없는(?) 쪽으로만 골라서 일어난다는 징크스를 표현한 경험 법칙이 있다.
그런데 자기 이름을 따서 이 법칙을 최초로 제안한 미국의 에드워드 머피(1918-1990)라는 사람은 심리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니었다. 군 소속의 항공우주 공학자였다~!

그는 1949년, 비행기가 왕복 엔진에서 제트 엔진으로 넘어가던 그 시절에 최첨단 기술의 산물이던 초음속기를 연구 개발하는 팀에 소속돼 있었다. 레일 위에서 로켓 엔진이 달린 수레 열차를 굴리면서 인체가 강한 중력가속도를 얼마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측정했는데, 결과값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원인을 조사해 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별 통제 없이 넘겼던 조건들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수준으로 몽땅 다 엉망진창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머피의 법칙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방심하면 일이 꼬이고 사고가 반드시 난다" 6-sigma라든가 하인리히 1:29:300 법칙처럼 공동 작업을 하는 현장에서 품질 내지 산업 안전 쪽으로 적용 가능한 건전한(?) 법칙이다.
그저 자조적인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더라 /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같은 염세 허무주의 메시지를 의도한 게 아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머피 아재는 자기 법칙이 자기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의미로 주변에서 너무 오남용되는 걸 보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본인은 DJ DOC 노래를 통해서 저런 법칙이란 게 있다는 걸 처음으로 접했다.;; 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0/10/13 08:35 2020/10/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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