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삼이라는 시인이 1971년에 발표했다는 <민간인>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본인은 먼 옛날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아주 어렴풋이 이런 시를 접했던 기억이 있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시의 제목부터가 군인이 아닌 사람이라는 뜻에서 '민간인'이라고 지었던 것 같은데..
얘는 읽어 보면 정말 섬뜩하고 비극적인 내용임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헤밍웨이가 즉석에서 지었다는 6단어짜리 비극 소설이 곧바로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다.;;; 분위기가 완전 비슷하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아기용 중고 신발 판매. 사용된 적 없음)


원래의 시에서 언급하는 시기인 1947년 봄은 아직 남한 단독 총선거를 하기 전이고, 북한이 자체적인 애국가와 인공기를 제정하기도 전인 완전 초창기였다. 하지만 남북 분단은 갈수록 굳어지고 남북 왕래가 어려워지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황해도 해주는 서쪽이 아니라 남쪽이 바다로 뻥 뚫려 있었다. 그러니 배 타고 전방의 바다를 향해 조금만 나아가면 38선 이남으로 갈 수 있었다.

빨갱이 치하에서 살 수는 없겠다 싶어서 이 지역 주민들 약간명이 모여서 탈북을 시도했다. 감시를 피해 보트 타고 해상으로 몰래 야반도주 중이었는데..
갑자기 아기 울음 소리 때문에 자기들의 존재가 노출되고 들킬 위험에 처했다. 그러자 아기의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아기를 바다에 던져 버리게 됐다.

이게 바로 시가 묘사하는 상황이다. 시인은 어쩌다 보니 그 쪽배에 동승해서 이 사건이 벌어지는 걸 목격했던 모양이다.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이건 1947년 이후로 1970년대가 될 때까지 20년이 넘게 잊혀지지 않는 엄청난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인간이 너무 굶주려서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자기가 죽을 지경이 되면... 인륜이고 천륜이고 인간성이고 다 없어져서 거의 동물로 퇴화해 버린다. 그래서 자기 친자식이라도 잡아먹거나 노예로 팔아 버릴 수 있다. 이런 건 비교적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런데 목숨 걸고 어디를 탈출해서 몰래 피난 가고 도망치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아기 울음 소리를 억제하지 못해서 걔를 불가피하게 버리게 되는 비극은.. ㅠㅠㅠㅠ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저렇게 도망치다가 들키게 생긴 상황에서는 부모가 자기 한 몸만 희생함으로써 어차피 자녀라도 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게다가 어영부영 하다가는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남까지 다 죽이게 되니까.. 도저히 답이 없다.

게다가 이런 사례가 역사적으로 드문 것도 아니다.
위의 '민간인' 스토리의 해상이 아닌 육로 버전도 존재한다고 한다. 38선을 넘어서 일가족이 야밤에 월남을 시도했는데, 공산군 초소 부근에서 아기가 우는 바람에 엄마는 얘 입을 강제로 틀어막았다. 허나, 위기를 모면하고 확인해 보니 아기는 그 사이에 질식사한 상태였다고..

1907년 평양 대각성--은사주의 논란은 일단 논외로..-- 당시엔 길 선주 장로부터 시작해서 자기 죄를 자백하는 회개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는데.. 그때에도 한 여인이 10여 년 전, 청일 전쟁으로 인한 피난 중에 자신의 아이를 죽게 했다며 참회했다고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아기가 너무 우는 바람에 근처의 나무에다 걔를 부딪쳐서 죽게 했다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고 독소 전쟁 당시의 온갖 끔찍 잔혹한 회고가 가득한 회고록이 있다. 여기서도 어느 애엄마가 적군에게 들킬 위험에 처하자 결국 울음 소리를 없애기 위해 자기 아기를 우물에 던졌다는 얘기가 나온댄다. 우물 속에서 울음 소리가 완전히 멎어 버리자 주변 사람들은 죄책감과 절망, 멘붕에 빠져서 침묵하고 만다.

성경에도 대환란 중의 피난 상황에서 "임산부와 산모에게 화 있으리로다" (마 23:19)가 괜히 기록된 게 아니었겠다 싶다.
아 하긴,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부모가 생후 겨우 3개월이던 모세를 더는 몰래 키우지 못하고 버리기로 결심한 주 이유도 울음 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출 2:2-3). 그래도 그 울음 덕분에 이집트 사람의 동정심을 사서 살아남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울러, 울음 소리 때문에 아기를 죽인 것보다는 덜 비극적인지 모르겠지만 6 25 사변 초기에 이런 믿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고 한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멀쩡한 남자들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곧바로 모병관 일행에게 붙들려서 군대로 납치에 가깝게 끌려가는 지경이었는데.. 어떤 4살배기 딸의 아버지는 징집을 피하려고 잘 짱박혀 숨어 있었다.

그런데 징집관이 그 아이에게 먹을것도 주면서 꼬드겨서 “네 아버지 혹시 어디 계신지 아니?” 이렇게 물었는데 애가 순진하게 아버지가 숨은 곳을 발설해 버렸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징집되어 끌려갔고, 전장에서 전사했다. 그 아이는 아버지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됐는지를 그로부터 수십 년 뒤에야 알게 됐다고 한다.

옛날에 어디에서 들은 얘기인데 지금은 출처를 검색해도 잘 안 나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한테 죄를 물을 수 없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장병을 징집하는 업무를 수행했던 모병관을 비난할 수도 없다.
이런 것도 전쟁이 야기한 너무 슬픈 비극이다. 오로지 자기 권력욕을 위해 동족상잔을 추진한 이북 수뇌부들이 개XX일 뿐일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11/18 08:35 2022/11/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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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련 여러 이야기들

1. 천조국 군대의 기상

미군은 무슨 중국이나 북괴처럼 대규모 거위걸음 열병식이나 매스게임, 특수부대 차력쇼를 벌이면서 자국의 군사력을 과시하지 않는다. 독립기념일이나 대통령 취임식 때 옛날 군대 코스프레 퍼레이드 정도나 하지..
이건 서울대나 육사가 "취업률 xx%" 이러면서 학교 홍보하고 지하철역 안에다가 광고를 붙이지는 않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이치이다.

지금이야 중공과 러시아가 많이 성장해서 미국 패권을 위협 중이긴 하다. 그러나 미국은 단순 국력 물량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과 자유 민주주의 인권 이념을 바탕으로 세계를 석권하고 세계 질서를 확립한 나라이다. 저 사회주의 독재 국가--겉으로 법은 자유 민주주의 표방이지만, 여전히 옛날물이 많이 묻어 있는 경우도 포함--들이 미국의 이런 진정한 저력을 흉내 내지는 못할 것이다.

2. 한국과 일본과 미국의 과거

1980년대: 우리나라로서는 5공 시절이요, 일본은 쇼와 말기요,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었다. 이때는 세계적으로 경제가 안정되고 오일 쇼크도 끝나고, 엄청난 호황기였다고 회자된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 정보화 시대, 과학 기술에 대한 장밋빛 희망, 우주나 사이보그를 소재로 한 온갖 기발한 SF물들.. 우리나라의 경우 마이카 시대, 일본은 특유의 버블 경제.. 이런 걸 생각해 보자~!

1960년대: 한국은 이때 ‘경부’라는 간선 고속도로 하나를 겨우 간신히 만들었다.
일본은 이때 시속 200km짜리 고속철도 신칸센을 세계 최초로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미국은 거의 같은 시기에 로켓을 쏴서 인간을 달로 보냈다.;;

(1940년대: 바로 다음에 올라올 글에서 이 시대를 좀 다룰 것이다. ㄲㄲㄲㄲ)

그런데 더 옛날,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전간기이던 1920년대도 이와 비슷하게 세계적으로 좋은 추억이 남겨진 시기였다.
우선 한반도는 3· 1 운동 이후에 문화 통치가 시작됐다. 이때는 그 전의 무단 통치나 그 이후의 민족 말살 통치에 비해서는 훨씬 더 살 만했던 때였다. 항일 독립 운동만 아니면 여러 다양한 사회 활동이 허용되고 온갖 신문물도 들어왔다.

본거지인 일본도 정치판의 분위기가 아직 군국주의로 폭주하기 전이었고 그나마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분위기가 살아 있었다.
하물며 천조국은..?? 라디오 방송과 할리우드 영화, 뉴욕에 초고층 마천루, 포드 T 자동차 마이카.. 전부 얼추 이 시기에 등장했다. 또 국제 연맹도 세계 곳곳에서 마이너한 국가들의 분쟁은 잘 중재하면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좋은 시절은 대공황과 함께 완전히 끝났으며, 이를 계기로 1930년대부터는 세계는 다시 분위기가 슬슬 험악해진다. 국제 연맹은 2차 세계 대전이 터지는 걸 막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확하게 이 험난한 기간 동안 통치했었다.

3.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징집 관련 일화

미국 남북전쟁은 밀덕의 관점에서 보면 최초로 철도를 통한 보급, 후장식 총기와 저격수, 초보적인 단계의 기관총과 철갑선, 잠수함이 등장한 첨단 과학 기술 전쟁이었다. (풍경 사진과 종군기자는 남북전쟁보다 미묘하게 전인 유럽의 크림 전쟁 때 최초로 등장했고..)

일개 내전 주제에 탱크와 비행기만 없는 1차 세계 대전 급으로 시대를 앞섰던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그런데.. 이 남북전쟁은 징집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지는 게 좀 있다. 둘 다 남군과 북군 중 어느 진영의 이야기인지는 확실치 않은데, 어차피 그게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1) 전사
나라가 전시 상황이 되니 모병이 아닌 징병제가 시행됐다. 그런데 이때 부유층들은 300달러라는 돈을 내고 다른 사람을 대신 입대시키는 것으로 징병 의무를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는 대리 입대자도 어차피 징집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럼 어찌 되는 거지? 아무튼..

A라는 어떤 사람이 B라는 다른 사람을 대리 입대시켰는데, 그렇게 참전한 B는 전장에서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A에게 징집 영장이 또 날아왔다는 것..
이때 그는 "나는 B라는 사람의 명의로 이미 전사하고 죽은 목숨이다. 이거 뭐 한군두도 아니고, 나는 또 징집되거나 또 국방세 내고 대리인을 내세워야 할 국방의 의무가 없다"라고 항변했다. 이 논리가 인정되어 그는 두 번 다시 징집되지 않았으며, 그게 판례로 정착했다고 한다.

이건 무슨 일사부재리의 원칙처럼 들리는데..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 대신 죽으신 것, '대속'이라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기독교 쪽에서 복음 전할 때 종종 인용되는 예화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다만, 출처가 불분명하고 그렇게 막 도덕적으로 본이 될 만한 일화까지는 아닌 것이 아쉽다. 부자들은 돈으로 군대를 다 빠진다고 그 당시에도 원성이 자자했었기 때문이다. 전사자를 예우하는 연금도 당연히 A의 유족이 아니라 B의 유족에게 지급돼야 할 것이다.

(2) 포로
옛날에는 전쟁도 현재보다 명분과 체통과 원칙을 따지면서 훨씬 더 신사적이고 고지식하게(?) 하는 면모가 있었다.
미국 남군과 북군이야 비록 지금은 총 들고 싸우지만 상대방이 같은 나라 같은 언어 같은 기독교 문화권인 사람이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화해해야 할 이웃이었다.

그래서 적군을 포로로 잡았는데 당장 포로를 번거롭게 관리할 여건이 안 되면..
포로를 죽이는 게 아니라 그냥 무장만 해제하고는 풀어 주는 경우가 있었다. 단, 이런 각서를 쓰고 동의를 받게 하고 말이다.

"우리가 사정이 여의찮아서 너를 석방해 주지만 너는 여전히 법적으로 우리 측의 포로이다. 그러니 훗날 포로 교환이 이뤄질 때까지 너는 군사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장교가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이런 절차를 거쳐서 풀려났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전선으로 곧장 복귀하고 전투를 지휘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는 그 각서를 제시하면서 자기는 정식으로 포로 교환을 하기 전엔 군복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군에서는 그 정황을 인정하고 그를 진짜로 내버려 뒀다고 한다.

이거 뭐, 감독 없이 시험을 쳐도 아무도 컨닝을 안 하고, 땅에다 금만 그어 놓고는 감옥이라고 해도 죄수가 거기 얌전히 앉아 있을 것 같은 샤방샤방 분위기이다.
저 때는 적이라도 약속을 지키기는 한다는 신뢰가 있으니 이런 '서류 상으로만 포로'가 가능했음이 틀림없다.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였던 전쟁은 아무래도 80년 남짓 뒤의 태평양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일본이고 미국이고 모두 상대방을 인간이 아니라 악마 괴물로 취급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다 악이 받친 나머지, 한쪽에서는 적군 포로를 말 그대로 잡아먹었으며(식인).. 다른쪽에서는 적군 시체에서 두개골을 뽑아서 아이템으로 갖고 다니는 Savage 실사판 '인외마경'이 벌어졌던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20 19:34 2022/05/2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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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대 세계 대전 비교

  • 1차 대전: 기관총, 참호전
  • 전간기~2차 대전: 항공모함, 무전기와 레이더, 뇌격기, 급강하 폭격
  • 2차 대전 말기에 개발된 것: 제트기, 로켓, 핵무기

육군에서 백병전이란 게 거의 사라지고 제식이나 총검술 따위는 그냥 보여주기 레거시가 되었듯.. 공중에서도 전투기끼리 도그파이트를 벌이며 처절한 기총사격 따위 하는 건 진작에 없어졌다. 육해공 모두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서 날아온 미사일 맞고 그대로 끝난다.

  • 1차 대전: 영국에서 포탄이 불량인 게 많아서 애먹었다. 유대인 과학자가 포탄의 대량 생산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서 승전에 큰 공을 세웠다.
  • 2차 대전: 미국에서 어뢰가 불량인 게 많아서 애먹었다. 영국과 미국 모두 적국의 암호를 해독해 내서 승기를 잡았다.

  • 1차 대전 때는 일본이 연합국 승전국의 말석에 있었지만 그 뒤로 추축국 전범국으로 흑화했다.
  • 2차 대전 때는 중국이 연합국 승전국의 말석에 있었지만 요즘 하는 짓을 보면 다음에는 세계를 대적하는 악역으로 흑화할 것만 같다. 잠깐 일제의 피해자였다고 실드만 치기에는 갈수록 선을 넘고 있다.

  • 1차 대전 이후에 국제연맹이 창립됐지만 제 구실을 못 하고 2차 대전을 막지 못했다. 이때는 민족자결주의가 제정되었다.
  • 2차 대전 이후에 연맹을 대체하는 국제연합, UN이 창립됐고 무려 세계 인권 선언이 제정되었다. 허나 미래엔 과연 얘도 무용지물이 돼서 국제연맹과 같은 길을 가게 될까?

2. 무기들의 변화· 발전 양상

탱크, 대포, 전함은 크기가 2차 대전 때까지 덩치가 왕창 커졌다가 그 뒤로는 다시 좀 작아졌다. 핵무기와 미사일의 개발, 그리고 항공기의 발달 덕분에 저런 형태의 무기가 기동성까지 희생할 정도로 지나치게 거대할 필요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은 2차 대전 시절에 세계에서 제일 큰 탱크와 제일 큰 대포까지는 만들었다. 실험적으로나마 아음속 순항 미사일(V1), 초음속 로켓 기반 미사일(V2), 포신 150m짜리 장거리 대포(V3)..;; 이거 뭐 어떻게든 탄환을 멀리 쏘는 방법은 온몸으로 공돌이들을 갈아넣으면서 연구했었다.;;

하지만 항공모함을 만들거나 초대형 전함을 만들지는 않았다. 알고 보니 1차 대전 때 지면서 해군이 몽땅 봉인 당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만들었던 것도 다 빼앗겼고.. 그래서 바다에서는 비대칭 전력인 잠수함에 목숨 걸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세계에서 제일 큰 전함을 만든 곳은 섬나라 일본이었다. 특히 야마토 전함은.. 뭔가 전함계의 임페리얼(자동차) 같다. 제대로 운용할 능력이 없으면서 무리해서 너무 큰 물건을 만들었다가 죽도 밥도 못 쑤게 돼 버렸다.

처음엔.. 이런 하찮은 싸움에 내보내기에는 가오가 안 서고 전력을 아껴야 한다는 명목으로 봉인..
그런데 나중에는 이렇게라도 장렬히 산화하지 않으면 가오가 안 서는 신세가 됐으니.. 계륵 그 자체이다.

전투기, 잠수함, 항공모함은 저런 클래식한(?) 무기와는 반대로 천조국에서 현재 만들어진 물건이 세계 대전 때의 물건보다 더 크다.
특히 잠수함은 원자력의 혜택을 제대로 입었다. 동력원이 원자력으로 바뀌고 핵 미사일까지 발사 가능해지면서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무기가 돼 버렸다.

슬금슬금 몰래 잠입해서 배를 상대로 어뢰나 쏘고 튀던 옛날만 생각했다간 큰코다친다.
잠항 능력도 겨우 테란 고스트나 레이스에 가깝다가 이제는 플토 다크템이나 옵저버와 비슷해진 것이다.

그리고 탱크, 대포, 군용기들은 원래 보병을 화력 지원하라고 만들어졌지만, 결국은 유유상종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탱크는 탱크로 잡고, 포는 포 쏴서 잡고, 군용기 역시 전투기로 잡는 게 제일 낫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격수조차도 같은 저격수로 저격해서 잡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니 쟤들도 자기 코가 석 자가 되고, 원래 도입 목적이던 아군 보병 지원이라는 비중이 작아지게 된다.;;

3. 탱크

앞에서 다뤘던 무기 얘기의 연장선인데..
6 25 사변 당시엔 소련제 땅끄 242대(T-34)가 남한 땅을 짓밟았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수많은 러시아 땅끄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재블린 미사일을 맞고 훅 가면서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거대한 전함이 자그마한 어뢰나 항공모함 급강하폭격기의 밥이 된 것처럼, 탱크도 이제 예전 같은 만능 무기라는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 같다.

미사일 한 방 가격이 1억대라지만, 그걸로 50억~80억씩 하는 탱크를 박살내기 때문에 이거 굉장히 수지맞는 장사이다. 스커지로 사이언스 베슬 잡는 교환비를 아득히 능가한다.
예전에 팔레스타인 하마스인가 걔들이 쏘는 로켓의 단가는 n이지만, 그걸 요격하는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의 단가는 10n인지 100n인지.. 그러던 게 떠오른다.

4. 과거의 전범국, 오늘날의 전범국

20세기 초에 독일은 정말 눈부신 과학기술 강국이었다. 수학· 과학뿐만 아니라 신학, 철학, 법학, 예술 쪽도 세계를 이끌었다. 그리고 일본이야.. 서양 문물을 잘 받아들이면서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력 주도 근대화에 성공해서 열강의 일원으로 등극했다.

이 정도 나라라면 국뽕에 빠져도 이상할 게 없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쟤들은 너무 자만하는 바람에 20세기에 세계를 상대로 사고를 거하게 치다가 자멸했다.
특히 소련 말이다. 독일은 독소 전쟁에서 소련과 대판 싸우다가 패배했고, 일본은 패망하기 직전에 소련으로부터도 선전포고를 받으면서 완벽하게 확인사살 당했다.

이 두 나라는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가 졌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 학살 포로 학살 같은 흉악 전쟁 범죄도 워낙 크게 저질렀기 때문에 전범국이라는 낙인이 제대로 새겨지게 됐다.
얘들은 그 댓가로 나라가 송두리째 멸망하는 것만 면할 뿐, 주요 산업· 군사 시설들이 몽땅 거세되면서 전쟁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짜끄레기 농업· 경공업 국가로 전락할 뻔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되지 않았다.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소련이 냉전으로 인해 미국의 적성국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소련에게 박살났던 두 전범국들은 소련을 견제하는 반공의 방패막이 명목으로 결국은 다시 지원받고 재건되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이웃 한국의 6 25 사변 때 서플라이 디포 역할을 하면서 완전히 기사회생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냉전도 끝나나 싶었는데.. 2022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가 또 세계의 적으로 등극했다.

덕분에 과거에 소련에게 패했던 전범국들이 또 살 판 났다. 독일은 지난 70여 년에 달하던 봉인을 풀고 재무장을 하는 중이다. 일본은 이럴 때 국제 사회에게 잘 보이고 점수 따서 꿈에도 그리던 UN 상임이사국 지위를 얻으려 노력 중이다. 국제 관계에서 영원한 친구는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걸 느낀다.

5. 전쟁/전투 관련 명언들

  • 빈 라덴을 용서하는 건 신이 할 일이다. 그러나 빈 라덴과 신의 만남을 주선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다. -- 2010년경 미국 해병대 표어
  • 제군들은 조국을 위해 죽지 마라. 적군이 우리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어라. -- 조지 패튼 장군
  •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 태평양 전쟁 당시 윌리엄 홀시 제독
  • 북한/베트남/쿠바를 폭격해서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 -- 커티스 르 메이 장군
  • 적의 뇌를 먹어 삼켜라. 그렇게 힘의 근원을 취하라. -- 메이어 다간 (전 이스라엘 모사드 국장)
  • 나는 만년 전사다. 여러분도 전사가 되어라. -- 남 재준 (전 국정원장)
  • 이제 우리는 3천 년 역사 동안 한 번도 지지 않은 동맹을 얻었다(히틀러). / 그럼 이제 한 번은 질 때가 됐군.. ㅋㅋㅋ -- 2차 세계 대전 때.. 처칠
  • 네놈들 앞으로 하늘이 새까맣게 가려질 정도로 수많은 화살들이 날아올 것이다. / 그럼 우리는 그늘 아래에서 시원하게 싸우겠구만. ㅋㅋㅋ -- 영화 300

Posted by 사무엘

2022/03/24 08:35 2022/03/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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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뢰와 올무

전쟁터에서 적군을 총포를 쏘거나 수류탄을 터뜨려서 죽일 수 있지만, 지뢰나 부비트랩 같은 걸로 더 교묘하게 죽일 수도 있다.
동물을 사냥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포수가 총을 쏴서 잡을 수 있지만, 지뢰의 사냥 버전격인 덫이나 올무, 함정도 있다.

지뢰의 경우, 비록 현실이 시궁창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다같이 사용을 금지하려는 협약이 맺어지고 있다.
옛날에 전쟁도 낭만주의에 입각해서 하던 시절엔 잠수함이나 저격수조차 신사답지 못하고 치사하고 비열하다는-_- 볼멘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니다. 무장한 적군을 낚고 유인하고 속여서 죽이는 것이야 잔인하다느니 비인도적이라느니 따질 필요가 없다.

단지, 지뢰는 한번 설치하고 나면 설치한 쪽에서도 제대로 파악과 통제가 안 되고 훗날 적군뿐만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까지 아무나 잡을 수 있는 게 문제이다. 그래서 금지할 뿐이다. 독가스를 금지하는 것과 좀 비슷한 이유랄까..??
아무나 밟았을 때 무작정 터지는 지뢰 말고, 아군이 보고 직접 격발시켜야 터지는 크레모아 같은 지뢰 바리에이션은 저런 규제 대상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동물 사냥 쪽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유해조수라 하더라도 총 쏴서 바로 숨통을 끊든가, 포획틀을 설치해서 가두는 식으로 잡아야 한다. 올무로 발목만 묶어 놓고 죽을 때까지 고통스럽게 방치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이거 무슨 발목 지뢰도 아니고..

이건 동물 사냥용 올무가 사람도 해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동물의 입장에서 비인도적이고 잔인하기 때문에 금지이다. 지뢰가 금지인 이유하고는 관점이 살짝 다르다.
게다가 동물을 목을 조르거나 흉기로 때려서 잔인하게 죽이는 것, 같은 종의 동물이 보는 데서 죽이는 것도 법을 FM대로 적용하자면 다 동물학대죄이다. 현실에서 법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단, 쥐덫은 당연히 예외이다. 쟤들은 해를 끼치는 게 워낙 많은 데다, 애초에 산을 초월하여 실내까지 대놓고 침입한다. 그러니 이건 야생동물 사냥이라기보다는 해충 구제에 가까우며, 거의 파리 모기 바퀴벌레 잡듯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게 된다.
그리고 민통선 이북에서는 애초에 엽총을 반입해서 유해조수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올무를 설치하는 게 부득이하게 허용된다고 한다.

그러니 민통선 이북과 DMZ 안은 워낙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사냥용 올무가 허용일 뿐만 아니라 지뢰도 절대로 없어질 수가 없는 위험한 동네인 셈이다. 사람과 동물에게 모두 말이다. 비무장.. 총을 사용할 수 없게 해 놓으니 다른 꼼수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동물과 사람, 그리고 동물 중에서도 일반적인 놈과 해로운 놈을 바라보는 법의 관점이 이렇게 차이가 있다.

2. 산탄총과 엽총

우리나라는 총검 같은 흉기에 대한 규제가 세계 평균 이상으로 까다롭고 심한 편이다. (이것 말고 또 규제가 심한 분야로 보이는 건 이륜차의 고속도로/자동차 전용 도로 주행 금지..)
좁아 터진 동네에서 국력과 공권력이 약하고 과학 수사 기술이 부족하고 사회는 혼란스러우니, 그냥 명분과 이유를 불문하고 폭력 자체를 일체 못 쓰게 찍어 누르는 쪽으로 법과 행정 체계가 짜인 것 같다. 그게 사회를 제일 저렴하고 쉽게 통제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런 오랜 관행이 도가 지나쳐서 정당방위를 너무 인정하지 않는 게 비판받고 있다. 괴한이 자기를 칼로 찔러 죽이려 해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결국 돌로 쳐서 사망· 중상을 야기하고 간신히 빠져나오면 과잉방어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맨손 격투만으로 칼을 빼앗아서 멀리 던져 버리기만 해야 정당방위라니.. 이건 말인지 방귀인지 무슨 참신한 개드립인가?
"차가 갑자기 급발진 폭주하면 냉정하게 브레이크 밟고 기어 N으로 바꾸고,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옆의 담장을 긁거나 앞차를 박아서라도 세웠어야지? 왜 요리조리 피하면서 차가 계속 속도가 붙게 놔 두다가 더 큰 사고를 냈냐? 그러니 너는 유죄" 이것보다 더한 어거지가 아닐 수 없다.

부당하게 먼저 선빵 날리고 피해를 끼친 놈이 큰 벌을 받는 게 아니라, 그냥 결과적으로 상대방을 더 많이 때린 놈이 더 큰 벌을 받는 것은 지나친 행정 편의주의이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블랙박스가 없던 시절에 "바퀴가 굴러가는(= 운동 에너지가 존재하는) 차들끼리는 무슨 대놓고 중앙선 침범하고 배째라 한 게 아닌 한 100:0은 없다. 똥이라도 더러우니까 피했어야지 그러지 못했으니 너도 과실 쪼금~~" 이러던 미개한 관행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뭐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는 총칼을 소지하려면 각 물건별로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았더라도 그걸 길거리에서 공공연하게 드러내 보이며 다닐 수 없다. 특히 열병기인 총은 내돈내산인 물건마저도 평소에 경찰서에 영치해 놓아야 하며, 수렵 기간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불출해서 사용할 수 있다.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생각 같아서는 나라에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모든 날붙이의 소지를 금지해 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란 당연히 절대 불가능하다. 일본도(刀) 진검이나 군용 대검이야 명백한 규제 대상인 반면, 문구류인 커터나 부엌 식칼은.. 몽땅 없앴다간 아예 일상생활을 진행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해친 범죄자가 흉기를 미리 치밀하게 준비해서 챙겨 갔느냐, 아니면 범행 현장에서 눈에 띄는 것을 우연히 집어서 사용했느냐 하는 건 죄질을 측정하고 형량을 산정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는 부엌칼이나 과도를 평소에 눈에 잘 띄지 않고 찾기 어려운 곳에 두는 게 좋다.

칼 다음으로 총도 마찬가지다. 군경이 아닌 민간용으로 규제가 그나마 가장 느슨한 총은 사냥용 산탄총이나 공기총 수준이다.
강선이 새겨진 군용 소총은 사정거리가 길고 위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안 되고, 권총은 작아서 불순한 목적으로 몰래 숨기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안 된다. 이런 건 제아무리 민간 총기에 관대한 미국 같은 나라라고 해도 절대로 호락호락 허가해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이 무진장 넓은 나라에서 집을 도적이나 야생 맹수로부터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무장은 있어야 한다. 산탄총은 그 특성상, 정확하게 조준하지 않아도 얼추 잘 맞는 대신에 유효 사정거리가 수십 m급으로 짧다. 그리고 위력에 비해 몸체가 아주 큼직하기 때문에 몰래 숨기고 다닐 수도 없다. 군용 사격도, 스포츠 사격도 아닌 저런 특성을 갖춘 총이 수렵 내지 민간 무장 용도로 허용되는 것이다.

이렇게 크고 위력이 약한 총 말고, 위력이 강한 총은 군대의 전유물이다. 반대로 작은 권총은 경찰의 전유물인 게 흥미롭지 않은가? 평소에 국민에게 불필요한 위압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과거 일제 시대엔 국가에서 이런 배려는커녕 오히려 위압감을 더 주기 위해서.. 헌병과 순사가 총은 물론이고 길다란 일본도를 치렁치렁 차고 다녔다는 걸 생각해 보자. 심지어 학교 선생까지도 그러고 다녔으니 말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산탄총의 길다란 총열을 일부 잘라내서(!!) 권총처럼 크기를 줄인 sawed-off shotgun이라는 물건도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심지어 뒤의 개머리판도 좀 깎아내서 길이를 더 후려치는데.. 그러고 보니 이런 산탄총은 군용 소총과 달리, 총신이 목재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니 톱질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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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총기의 정확도를 희생한 대신 은닉 휴대성을 얻은 불법 개조이다. 신고와 허가 없이 임의로 샷건을 길이를 줄여서 사용하는 것은 의외의 중범죄로, 걸리면 벌금· 징역 급의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범죄 조직에서 이런 짓을 많이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Doom 2 게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스타 무기인 슈퍼 샷건부터가 설정상 이런 sawed-off 샷건이다.;;

우리나라는 총기 규제는 왕창 엄격한 반면, 상시 징병제라는 병역 의무 때문에 성인 남성 대부분이 총을 다뤄 본 경험 자체는 있는 아이러니한 나라이다. 사격장에서 평범한 한국 남자들이 총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보고 일본이나 미국 사람들이 놀랄 정도라고..

민주화 이전, 군사 독재 하에 반쯤 병영국가이던 시절에 나라에서 가르친 그 군대 노하우가 어디로 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난 1992년 미국 LA 폭동(일명 4· 29) 때, 일부 한인들은 신속하게 진지를 구축하고 자경단을 꾸려서 흑형들을 쫓아냈다. 실제로 무장하기도 했지만 장난감 기관총이나 탄피 비스무리한 걸 갖다놓으면서 외형상의 화력을 부풀리고 뻥카도 쳤다고 한다. 이건 기지를 발휘한 아주 적절한 대응이었다.

하물며 더 옛날인 1980년 광주 사태도, 시민들이 무장하고 탱크 몰고 다닌 것 자체는 꼭 북괴 공작원이니 북한군 개입이니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같은 맥락에서 수긍이 갈 것이다. 본인은 예전에 예전에 한번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옛날에 북괴나 일제는 우두머리를 우상화하고 떠받들기 위해서, 혹은 주변 나라를 침략해서 식민지를 확장하기 위해서 군국주의 짓거리를 했다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거 없었다. 그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박멸하기 위해서, 바로 이웃 북괴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서..
지극히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목표 하나만을 위해서 온 나라가 그렇게 병영처럼 돌아가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픈 일이지만, 그때는 나라가 가난하고 힘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3/10 08:35 2022/03/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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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세계는 러샤-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매스컴을 통해 접하게 됐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저렇게 무식하게 쳐들어갈 줄은 몰랐다. 쌍팔년도나 1990년대도 아닌 2020년대에 유럽에서 전쟁이라니?
쪼~기 꾸진 동네의 정치 불안정한 듣보잡 신생독립국끼리 툭탁툭탁 싸우는 것도 아니고, 엄연한 강대국이 다른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를 침략하다니?

올해는 러샤가 연초부터 세계를 상대로 큰 사고를 연달아 치면서 체면을 구겼다.
쟤들은 약물 도핑 징계 때문에 동계 올림픽에서도 나라 이름을 걸고 출전을 못 한 상태였다. (그냥 위원회 내지 스포츠 협회 명의로만) 그랬는데 그 상태로 또 도핑 적발..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망신 개쪽 아니냐..?? 명색이 왕년에 미국과도 항공우주 분야 맞장을 떴던 초강대국이 이 2010년대 이후까지도 국가 차원에서 약쟁이나 양성하고 말이다.;;
덕분에 그 미성년자 아이가 떳떳하지 못한 피겨 공연을 했을 때는 중계진들조차 할 말을 잃고 침묵으로 대응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저 나라는 명분 없는 침략 전쟁 때문에 나라와 대통령 개인이 몽땅 모든 분야에서 세계 왕따가 됐다.
빙상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경기들에 대해서도 국제 대회 참가가 아예 완전히 금지됐다.
저 나라 대통령에게 수여됐던 체육 분야 명예학위나 명예단증은 취소· 철회됐다.

예전에 혼자 갑질을 일삼으면서 영화 만들겠다고 교만과 망상에 빠져 난리를 치다가 몰락한 국내의 모 전직 코미디언 아저씨가 떠오른다. 그 사람은 업종이 그쪽이었으니 그나마 사업 실패하고 돈만 날리는 걸로 끝났지만, 러샤의 저 아저씨는 정치· 외교 분야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이상, 과연 곱게 퇴임하고 편하게 죽을 수 있겠는지가 우려된다.

나도 아무리 생각해도 저 아저씨가 왜 저러나, 늙어서 노망 들어서 저런 똥고집을 부리는가 싶을 정도다. 세계를 자국민들 통제하듯이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한 건지..??
요즘 UN이 아무리 무능한 허수아비라고 해도, 이 정도로 선 넘는 무식한 만행까지 그냥 용납하지는 않는다는 걸 입증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듯하다.

세계가 하나로 뭉쳐 특정 악에 맞섰던 게 10여 년 전의 소말리아 해적, 7~8년 전의 ISIL(이슬람 국가/다에시)의 사례가 있었다. 2차 대전 이래로 세계 강대국들의 군대를 제일 많이 밀집시킨 악역들인데, 지금은 쟤들은 그럭저럭 다 토벌된 듯하다. 하지만 이젠 저런 조무래기가 아니라, 2차 대전 승전국이었고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멀쩡한 강대국이 다음 악역으로 등극했다.

침략을 당한 우크라이나는 70여 년 전의 우리나라처럼 세계로부터 지지와 도움과 원조를 집중적으로 받으며 아직까지는 적의 공격을 근근이 막고 있다.
하지만 러샤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고, 민간인 거주 지역에다가도 미사일을 날리면서 더 악랄해지기 시작했다. 자기네 동맹국을 통해 병력을 더 동원하고 장기전 섬멸전을 꾸미는 것 같으니, 아직은 완전히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는 러샤와 우크의 관계가 중공하고 대만의 관계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중공이나 러샤나 다 강대국이고,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그닥 발달해 있지 않은 나라이다. 특히 중공은 시차까지 전지역을 무식하게 단일하게 밀어붙일 정도로 one China를 고집하고, 대만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걸.. 중공이 폭주하면 저런 식으로 대만과 전쟁 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 같다.

한편 북괴는..?? 쟤들도 폭주하다 뻘짓으로 장렬하게 자폭해서 한반도가 멸공 통일이 좀 됐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만.. 그래도 그건 현실성이 높지 않다. 북괴는 아무리 깽판을 쳐도 자기 무덤을 팔 정도로 폭주하지는 않으며, 정말 최소한의 누울 자리는 살펴보고 다리를 뻗는 놈들이다. 자기가 중공· 러시아 같은 국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미국한테 개겨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안다.;;

2. 1930년대 우크라이나 대기근

세상엔 위안부 소녀상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소녀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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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게 지구 어딘가에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주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위치가 지금 전쟁 벌어져 있는 저 동네라는 것은 아주 최근에야 깨닫고 현타를 체험했다.;;
우크라이나 대기근인데 내가 다른 아르메니안, 아일랜드 학살인지 기근인지랑 지금까지 헷갈렸던 듯하다.

원래 우크라이나는 전 지구를 통틀어서 손꼽히는 비옥한 곡창지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소련 공산 정권이 들어선 뒤, 1932~33년엔 극악의 기근을 겪으면서 300만 이상~1천 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장애인이 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희생자 수는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대등한 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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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는 사하라 사막에서도 모래 부족/품귀를 야기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더니,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창세기 파라오의 꿈에 나오는 야윈 암소 7마리처럼 말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인재인 건 기정사실이고, 단순히 "강철의 대원쑤가 고의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학살한 거다 / 고의 학살까지는 아니고 그냥 실책이다" 정도의 관점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해서 과거에 이런 아픈 역사가 있었던 동네이다. 아, 대기근 얘기는 아니지만 체르노빌 원전도 우크라이나 영토에 있었다.;;;

3.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난했던 인간말종들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시국에 내가 어지간해서는 국내 정치 얘기를 자제하고 싶다. 허나 이건 너무 빡쳐서 도저히 까고 씹지 않을 수 없다.
개전 초기이던 2월 25일 부근엔 침략자 러시아가 아니라 피해자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탓하면서 폄하한 미친놈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이딴 소리를 지껄였다가는 완전히 매장 당하는 게 확실시되니 말을 더 못 꺼내겠지만, 저 내뱉었던 발언에 대해서도 쟤들이 제대로 사과나 철회를 했다는 얘기를 난 못 들었다. 그저 오해라는 변명만 늘어놓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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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퀴들이 감히 얻다대고 '자극' 드립이냐? 아가리를 확 찢어 버릴라..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면 저 색히들 반응이 어땠을까..?? 저것들 중에 20여 년 전, 부시 시절에 이라크 후세인을 비판했던 놈은 한 놈도 없었을 것이다. 쟤들이야말로 미국을 '자극'하고 어그로 끌었다가 박살나지 않았는가?

우크가 한국과는 아무 상관 없는 지구 반대편 나라랜다.
그럼 이라크나 아프간이야말로 우크보다는 훨씬 더 우리나라랑 관계 없는 나라 아니냐..??
그때는 니들 미국 비난 왜 했어? 우리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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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이 북한을 자꾸 자극했으니 6 25 남침을 당한 거고, 조선이 일제를 자극했으니 식민지로 먹혀도 싼 거겠지.
나영이는 조 두순을 자극했기 때문에 성폭행 당해도 싼 거고.
현직 우크 대통령이 이전까지 얼마나 무능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내 관심사도 아니다만.. 그래도 설마 거의 이 완용 급의 평화주의자 종전주의자 종북 공산주의자인 이 후조선 대통령보다는 더 제정신인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제아무리 러시아가 깡패라 해도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뜬금없이 침략을 한 건 아닐 테니, 나도 변명이라도 제대로 들어 보고 싶어서 검색을 해 봤다. 이런 시각의 국내 기사도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우크도 국제법을 어기고 러시아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국의 친러 성향 사람들을 오랫동안 탄압하긴 했는가 보다. 좀 회의적 시니컬하게 보자면 마냥 우크라이나 대통령만이 일방적인 애국자 절대선이지는 않을 수 있으며, 겉만 번지르한 언플만 너무 늘어놓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약~간은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의 저런 무자비한 침략 전쟁이 정당화 가능한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저 이상한 사람들은 러시아의 입장을 제3자 입장에서 대변해서 옹호하기라도 한 것도 아니다. 젤렌스키의 잘잘못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냥 친중종북의 연장선으로서 친러 발언을 늘어놨을 뿐.. -_-

미국 대비 판단 일관성이 없는 게 본인이 열받는 제1의 이유이고, 그 다음 제2로.. 심지어 리 승만 할배 대통령에다 빗대면서 수도를 버리고 튀네 마네 하는 것도 본인을 심히 빡돌게 한다.

일단 남한 서울은 우크의 키이우보다 훨~~씬 더 적국 내지 국경과 가까이 있다. 그 상황에서 대통령이 피난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 망명이 아닌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된다.;;
또한, 할배도 대비를 안 하긴 뭘 안 했냐 이 등신아..;;
이 시국이면 북괴가 가까운 시일 내에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대비해야 된다고 미국한테 진작부터 마르고 닳도록 경고하고 지원 요청을 했는데도 전쟁광의 헛소리 망상으로 치부되고 묵살당한 거구만..

그때는 미국도.. 지금 해군 기지나 싸드 반대하는 멍청이들하고 같지는 않아도 약간 비슷하게 안일하게 생각했었던 것이다. 2차 대전 이후로 세계적으로는 "이렇게 세계가 초토화됐는데 설마 근미래에 또 전쟁?"이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열악한 여건에서 긴장 대치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는 바람에 더는 못 버텨서 하필 장병들 모처럼 휴가 좀 잔뜩 보내 줬을 때 허를 제대로 찔린 거구만? (이발, 목욕, 농사 모내기..)

다리 끊고 도망갔다는 헛소리는 더 반박하면 입만 아프니 언급을 생략한다.
천안함 생존자들 보고 패잔병 드립 치는 놈, 부시 그렇게도 욕하다가 푸틴 앞에서 절대침묵인 놈..
아~ 정말 난 인간 취급을 하고 싶지 않다. 꼭 유 영철만 싸이코패스인 게 아니다.
종북좌빨에다가 친중, 더 나아가 친러는 역시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닌다는 걸 알 수 있다.

난 앞뒤 문맥 짜르고 특정 표현만 갖고 침소봉대 왜곡 선동질 하는 걸 기본적으로 혐오하는 사람이다.
허나, 이 우크라이나 망언은 그저 일회적인 막말 독설 말실수가 아니다. 찢점명이라는 사람의 평소의 사상, 가치관, 인생관이 투영돼 나왔을 뿐이다.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예전의 가천대 망언하고 본질적으로 통하는 게 느껴진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랑 아무 상관없는 나라'..
이건 "아.. 어쩌다 보니 이름도 모르는 지잡 대학원을 야간으로 다니면서 그냥 학위 땄다 / 가천대 석사학위 따위 없어도 되니, 여의찮다면 학위 걍 반납하겠습니당. 취소하든 말든 니 마음대로 하셔요~"에서 거의 같은 심보에서 비롯됐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게 공인, 정치인이라는 색히가 할 말인가..??
저넘은 돈 권력 영향력 없는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서는.. 그저 자기가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이용 가치가 0으로)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고 저버리고 배신하고 잊어버리고 찢어 버릴 놈이다.

그러고 나서는 반발이 이니까 수습하는 꼬라지 보소.
전형적인 말 뒤집기, 거짓말 정신승리 합리화, 말단 꼬리만 잘라서 심하면 자살시키기.
그나마 인간이 시늉으로라도 제일 착해져야만 하는 후보일 때도 저런 인간말종 본성을 못 숨겨서 난리인데.. 대통령이 된다?
이런 색히가 러시아 같은 정도의 나라에서 권력을 쥐게 되면 지금 푸틴처럼 하게 된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권력 쥐면..?? 저런 나라 꼬봉 정도로..

제발 검찰 공화국이나 됐으면 좋겠다. 하이고 경쟁자에 대한 최악의 멸칭이 겨우 검찰 공화국이니? 저쪽은 뭐.. 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3/07 08:35 2022/03/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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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은 미국-일본이건(태평양 전선), 영국/소련-독일이건(서부 전선) 각색해서 영화 만들 것들이 차고 넘치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 두 영화를 주목하며 독자 여러분께도 추천하고자 한다.

(1) 핵소 고지 Hacksaw Ridge (멜 깁슨 감독, 2016) -- 데스몬드 도스(1919-2006)의 일대기
(2) 언브로큰 Unbroken (안젤리나 졸리 감독, 2014) -- 루이스 잠페리니(1917-2014)의 일대기


보다시피 이 두 실존 인물은 거의 동갑내기였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적병이나 적함· 적기를 공격해서 무력화시키는 통상적 무공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초인적인 행적을 남기고 영웅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영화도 나름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그리고 유명한 배우 출신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 나름 기독교 색채를 집어넣었다는 것, 평이 꽤 좋다는 것이 일치한다.

1.
핵소 고지는.. 주인공이 제칠일안식교 신자였다. 무정부 반전 평화주의자는 아니어서 진주만의 복수를 하고 싶고 군 복무는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집총은 거부하는 좀 이상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항명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됐지만.. 여차여차 해서 의무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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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45년, 오키나와 상륙 전투에서 총 대신 구급상자를 들고 위험한 적진을 종횡무진하면서, 수십여 명의 부상병들을 혼자 구출해 냈다. 그들은 구출되지 못했으면 다들 그대로 죽거나 적의 포로가 됐을 것이다.
의무병은 전장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라 119 구급대원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보직인지는 2002년 제2 연평해전 때 박 동혁 병장이 다쳤던 걸 생각해 보시라.

이 공로 덕분에 그는 순식간에 영웅이 됐다. 동료와 상관들이 다 너를 얕잡아 봐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죄를 했다. 나중에는.. 레알인지 각색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네 소대는 왜 아직 진격하지 않는 거냐? / 아, 도스 이병의 기도가 아직 안 끝났지 말입니다." 이렇게 신앙까지 당당히 인정받는 지경이 됐다.
이 영화에서는 일본군 측 인물이 뭔가 말을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더라.

2.
다음으로 언브로큰은.. 주인공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던 육상 선수 출신이었다. (흠 육상 선수라니 뭔가 에릭 리들 같은 느낌이..)
그는 그 다음 1940년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하려 했지만 이제는 올림픽 경기 대신 전쟁터에 나가게 됐다. 게다가 올림픽 개최 예정국이 아예 적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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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폭격기 승무원으로 복무했는데.. 하루는 격추를 당한 것도 아니고 정비 불량으로 인해 기체가 태평양 망망대해에 추락했다. 구명보트에서 무려 7주를 근성으로 버티다가 구조됐지만, 운 나쁘게도 아군이 아니라 일본군에게 구조되어서 포로로 전락했다.

그는 일본 해군 수용소에서 2년 넘게 고생했다. 일본한테도 얼굴이 알려진 유명한 운동 선수여서 더 고생했다. 특히 수용소의 간수 일본군이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아주 가혹하게 대했다.

하이라이트 장면은.. 주인공이 혹독한 노동에 기진맥진했던 상태에서 무거운 통나무를 들고 땡볕에 서 있는 가혹행위까지 감당해 낸 것이다. (통나무를 떨어뜨리면 총살이라고 위협..) 주인공은 그 상태로 무려 40분 가까이 초인적인 힘으로 버티면서 간수를 노려보며 압도해 버렸다. 주 기철 목사 전기 영화라면.. 솟은 못 위를 맨발로 걸은 일화가 이 장면에 대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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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쟁이 끝난 덕분에 주인공은 해방되고 무사히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해서 심신의 장애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적국인 일본을 용서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일본에서 나가노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1998년엔 노구를 이끌고 일본을 방문도 했었다. 그러나 예전에 그를 학대했던 간수 등 일본군 출신 인물들은 짱박혀 숨어서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천조국은 "미드웨이" 같은 전투 분야에서도 짱이고, 저런 휴먼 드라마 분야에서도 그냥 짱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2/02/03 19:33 2022/02/0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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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나치 경례 거부

  • "주변에서 모두가 '예, 예' 할 때 혼자만 양심껏 소신껏 '아니요'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
  •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사관 생도 신조 중)

이런 것의 예시로 요런 짤방이 종종 인용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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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군중들이 오른팔을 뻗치면서 '하일 히틀러'를 외치고 있을 때 혼자 생까고 가만히 있었던 이 사람은 정체가 무엇일까?
그는 아우구스트 란트메서(1910-1944)라는 독일인이며, 사진은 의외로 전시가 아니고 히틀러의 집권 초기이던 1936년, 나치 독일의 모 군함의 진수식 때 촬영된 거라고 한다.

구체적인 사연은 검색해 보면 다 나오니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지 않겠다.
핵심은 이 사람은 유대인 여자와 결혼해서 딸까지 생겼는데 하필 거의 같은 타이밍 때 나치가 집권하면서 유대인에게 축객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는 저 군함을 제조한 조선소의 직원이었다. 그러니 진수식 행사엔 사실상 강제 동원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치 당에도 가입하긴 했지만, 유대인이니 정치니 이념 그딴 건 별 관심 없고 그냥 취업 때문에 가입한 것에 가까웠다.

그랬는데 나치 당에서 유대인들을 못 살게 굴기 시작했으며, 자기에게도 멀쩡한 아내를 버리라고 이혼을 종용한 것이다. 그러니 당이 좋게 보일 리가 없고 경례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이 사람은 단순히 사랑하는 자기 아내를 버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훗날 등장한 백장미단 조피 숄 같은 급으로 전시에 거창한 신념이나 소신을 갖고 나치 경례를 거부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저런 포즈로 대외 공개용 사진이 찍혀 버리자 나치 당에는 저 괘씸한 놈이 누군지 곧장 추적을 시작했고, 당사자 역시 신변의 위협을 진지하게 느끼게 됐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스웨덴으로 도피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발각됐다. 인종오염법으로 기소되어서 수용소 행..;;

아내는 전쟁 중에 여러 수용소에 끌려 다니다가 1942년쯤에 결국 살해당했다(아마 가스실에서). 저 사람은 살아서 풀려나긴 했지만 이미 비국민 불령선인으로 낙인 찍혀 있었다. 어느 죄수 부대에 징집되었다가 1944년쯤에 전쟁터에서 실종 내지 전사로 최후를 맞이했다.
그래도 어린 딸 둘은 고아원 내지 친인척 집을 거치면서 다행히 살아남아서 자기 부모의 사연을 후세에 전해 줄 수 있었다. 저 사진도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1991년에 딸에 의해 공개된 거라고 한다.

2. 미국의 태평양 전쟁 참전 거부 (입법)

미국은 1941년 말에 일본으로부터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 공습을 당한 것으로 인해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래서 새끼 빼앗긴 암곰을 능가하는 복수귀로 각성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엄청난 빡침이 담긴 대국민 담화인지 연설을 한 뒤, 의회로부터 대일 선전포고와 참전 승인을 받았는데.. 상원에서는 전쟁 개시 관련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그러나 하원에서는 388:1로 반대가 딱 하나 있었다.

전미가 왜놈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눈이 시뻘개졌던 험악한 시국에서 홀로 반대표를 던진 용자는 바로.. 미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자 여호와의 증인 급의 반전주의 소신이던 '지넷 랭킨(1880-1973)'이라는 사람이었다.
이 아줌마는 1차 대전부터 시작해서 2차 대전, 6 25 사변, 월남전까지 일체의 전쟁에 대해 자국이 참전하는 것을 일관되게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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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위기에서 이런 아웃사이더가 당장 테러· 협박을 당하지 않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미국이 다양성이 존중받으며 사회적으로 얼마나 성숙한 나라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일제나 나치 독일에서 누군가가 저런 반전 운동을 공개적으로 했다간 그 사람은 어찌 됐겠는가? (군중 속에서 팔 뻗어서 같이 경례 안 한 것만으로도 아까처럼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뒤끝이 뒤따랐거늘..)

하지만 천조국이라도 선 넘을 정도로 이상한 소신을 포용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 아줌마는 이를 계기로 소속됐던 공화당에서 퇴출되고, 정치판에서의 커리어가 통째로 끝장 났다고 한다.
결국 2차 대전 이후의 반전 운동은 정치인이 아니라 사회 운동가로서 개인 단위로 진행됐다. 분야는 다르지만 개고기 반대하면서 이상한 똥고집 부리던 프랑스의 그 아줌마 생각이 문득 난다.;;

3. 곁가지: 미군의 일본군 시체 훼손

이건 참 경이롭고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사진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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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1944년 5월, 미국의 어떤 아가씨가 남자친구로부터 웬 해골바가지를 선물로 받고는.. 잘 받았다며 감사 답장을 보내는 모습이 보도된 것이다.
남친은 해군에 입대해서 태평양 전쟁터에서 한창 고생 중이었는데.. 전사한 어느 적군 병사의 유해에서 두개골을 추출해서 여친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다.
전시이니 저 여친도 군수공장에서 근무 중이었으며.. 저 때 나이는 겨우 20살이었다.

그 당시에 일본에 대한 미국의 증오심은 일선의 병사들이 일본군 시체에서 해골바가지를 뜯어내서 장신구로 쓰고 연인에게 선물로 보낼 정도로 극심했다.
최악의 증오스러운 적을 상대로 싸우는 데다, 억만 리 떨어진 망망대해의 섬에 상륙해서 밀림 속에서 전투를 벌이던 태평양 전쟁터는 환경도 최악의 생지옥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본놈들도 상대방에 대해 "저놈들은 귀축영미, 항복했다간 무조건 죽음" 이딴 소리에 골수까지 세뇌된 괴물들이었다. (얼마나 세뇌됐으면, 훗날 전쟁이 끝났으니 귀환하라는 말조차도 안 믿고 섬에 틀어박혀서 거지꼴로 몇 년을 버틴 사람들조차 있었을 정도..)
같은 백인 코쟁이에 기독교 배경이 있고, 말과 문화가 일말의 통하는 구석이라도 있는 서부 전선의 나치 독일 같은 부류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 전쟁터에서는 최악의 조건이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그야말로 인외마경이 펼쳐졌다. 그 살벌함은 포카혼타스 Savages를 아득히 능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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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해 보시라. 천조국 군인들이 차라리 평시에 군기가 빠져서 민간인을 상대로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있지만..
전시에 적군의 시체를 훼손해서 저렇게 갖고 놀고 그게 저 정도로 대대적으로 매스컴까지 탔던 건 남북 전쟁, 미영 전쟁, 1차 대전, 월남전, 이라크전 등등등을 통틀어서 저 태평양 전쟁이 전무후무할 것이다. 물론 군 수뇌부에서 이런 짓을 금지하고 단속하긴 했지만, 악이 받칠 대로 받친 군인 개개인의 감정을 다 통제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천하의 미군이니까 이 정도로 정신줄을 놓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해골바가지만 득템해서 장식품으로 써먹는 정도의 짓밖에 안 한 것이다.
일본군은 뭐.. 연합군 포로들을 훨씬 더 잔혹하게 고문하고 학대해서 다 죽이고, 100인 참수 경쟁을 벌이고,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대놓고 식인까지 했다.

이런 악랄한 경험으로 인해, 미국은 쟤들은 안 되겠다고 원자 폭탄까지 터뜨릴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훗날 전범 재판에서도 일제 전범들을 반드시 사형에 처하고, 총살도 아닌 그냥 교수형을 집행할 것을 건의하게 됐다. 교수형은 군인으로서의 예우를 박탈한다는 걸 뜻한다.
반대로 나치 독일 전범에 대해서는 독소 전쟁의 트라우마가 있는 소련이 더 강하게 교수형 사형 집행을 요구했다.

4. 일본 전범의 사형 거부 (사법)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패배와 무조건 항복으로 끝난 뒤엔, 다들 잘 알다시피 일본의 군인 지휘관과 정치인 중에 전쟁 범죄자를 가려내어 단죄하는 재판이(극동 국제 군사 재판) 열렸다. 침략 전쟁을 벌이고, 전투 중에 적군을 죽이는 게 아니라 민간인이나 포로를 고문하고 학살한 짓거리들 말이다.

그런데 이때 재판을 진행했던 연합국--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소련-- 판사들 중에 '라다비노드 팔'이라는 인도인은 유일하게 아싸 행세를 했다.
다른 판사들은 전범들을 처형하는 것에 다 동의했고 총살이냐 교수대냐를 갖고 논쟁하는 정도였던 반면, 저 인도인 판사는 혼자 강경하게 처형을 반대하면서 노골적으로 일본을 실드 쳤다.

그는 단순히 인본주의 박애주의자로서 사형 제도를 반대한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민족 감정상으로 엄청난 친일 성향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에다가 법을 뒤늦게 끼워 맞춰서 적용하는 건 부당하다, 왜 일본에 대해서만 일관성 없이 가혹한 잣대를 적용하느냐, 연합국은 가혹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줄 아느냐, 너는 왜 그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인제 와서 일본 탓을 하느냐" 등..
법리까지 거의 무시하면서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일본을 적극 옹호했다.

그러니 일본에서는 저 사람이.. 우리 한국으로 치면 후세 다쓰지--조선의 독립을 지지했던 일본 변호사--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극진한 예우와 존경의 대상이 됐다.;;; 야스쿠니 신사에 추모비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진작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이 자국 인도를 식민지로 부려먹은 영국과 맞서 싸웠기 때문에 저 사람도 '적의 적은 친구' 논리로 일본을 옹호했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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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인도는 나치 독일이나 히틀러에 대한 국민 정서도 오늘날까지 굉장히 우호적이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애 이름까지 ‘아돌프 히틀러’라고 지어서 Adolf Lu Hitler Marak라는 이름의 1958년생 정치인도 있을 정도이다~!
하긴 인도인들은 영국인으로부터 탄압을 받았지 나치 독일에 의해 수용소 가스실로 끌려갔던 적은 없으니까.. 일면 수긍이 간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01 08:35 2021/11/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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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6호선 역촌 역의 4번 출구로 나가면 ‘은평 평화 공원’이라는 자그마한 공원이 있다. 지하철역 출구에 곧바로 자그마한 도시공원이 꾸며져 있는 건 대전 서대전네거리역과 비슷한 느낌이다.
저기는 2010년부터 공원으로 개장했고 그 전엔 그냥 평범한 건물 부지였던 것 같다만.. 은평구에서 무슨 생각으로 공원을 만들었나 모르겠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아무튼, 은평 평화 공원의 한쪽 구석에는 윌리엄 해밀턴 쇼(1922-1950).. 라는 6 25 참전용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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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단한 집안에 너무 존경스럽고 대단한 분이었다.
일단 부모가 한국에 온 감리교 선교사였고, 저 사람을 평양에서 낳았다.
그는 한국에서 자라서 대학교까지 들어갔는데 2차 세계대전 땐 해군 장교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그 뒤에 한국에서 또 6· 25 사변이 터지자 대학원 박사 학업까지 미루면서 해병대 장교로 참전했다.

1950년 9월 22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서울 수복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분은 녹번동.. 바로 이 일대에서 전투를 수행하다가 적으로부터 저격을 당해 전사했다고 한다. 김 재현 기관사(1923 ~ 1950. 7. 20. 대전)와 비슷한 연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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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그리고 저 사람(아들)까지 모두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혀 있다. 호머 헐버트처럼 말이다.

“내 친구 나라 한국이 위기에 처했는데 같이 도와주지 않고 나중에 전쟁이 끝났을 때 슬그머니 선교사로 들어가는 것은 제 양심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성경도 ‘사람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요 15:13)? 공부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같이 적힌 약력과 소개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런 사람이 소개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은평 평화 공원은 찾아가 볼 가치가 충분하다. 우연인지 뭣 때문인지, 은평은 이름을 구성하는 한자부터가 grace & peace 굉장히 성경적인 심상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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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은 천수를 누렸으면 하버드에서 한국학 전문 연구자의 커리어를 쌓았을 것이고, 아마 그 당시 하버드에서 한국학을 개척하고 있었던 서 두수 교수(서 남표 카이스트 전 총장의 부친!) 같은 분과도 인연이 분명 생겼지 싶다. 이를 생각하면 더욱 아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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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 완용..????)

위의 저 말은 두고두고 기억되고 영원히 감사와 존경과 칭송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적이 핵이나 미사일 얘기를 할수록 우리는 더욱 강하게 평화를 외쳐야 한다.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평화를 외치는 사람만이 더 정의롭고 정당할 수 있다”


잠깐 욕 좀 퍼부어야겠으니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이런 하드코어 빨갱이 씨발새끼의 저주받을 암 유발 망언은 두고두고 박제되어서 영원무궁토록 규탄과 개쌍욕을 쳐먹었으면 좋겠다. 저런 새끼는 애국시민과 자유를 되찾은 동족 북한 주민들의 분노의 돌탕질에 맞아 대가리가 깨져 뒈지기를 개인적으로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만약 이 땅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해서 저런 놈이 천수를 누리고 편하게 죽고 무덤까지 만들어진다면.. 묘비에다가는 저 말이라도 꼭 새겨 넣어 줬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말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빨갱이가 아닌 다른 사유로는 결코 욕설을 노출하지 않는다. 뭐 독도는 일본땅? 저런 진짜 개씹창 망언부터 참교육 시켜 주고 난 다음에 대응해도 전혀 문제될 것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14 08:35 2020/12/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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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V1, V2 로켓

V1, V2..;;
안 철수가 지금으로부터 30년 가까이 전에 만들었던 안티바이러스 유틸 V3의 전신(백신 1, 백신 2)의 명칭이었고,
비행기 파일럿에게는 이륙 결심 속도, 이륙 안전 속도라고 더 익숙한 용어일 것이다.

그런데 이건 나치 독일이 2차 세계 대전 말, 패색이 짙어져 갈 때 영국을 한방 먹이기 위해 거의 발악을 하며 개발했던.. 초창기 순항/탄도 미사일의 상품명(?) 코드명이기도 했다. 거기서 V는 승리가 아니라 보복 무기(Vergeltungswaffe)라는 뜻의 단어의 이니셜이다.;;

V1은 구조적으로 볼 때 날개 달린 비행기이고 무인 비행 폭탄이었다. 길고 복잡한 전용 발사대에서 양력을 이용해서 이륙하는 방식으로 발사됐다. 비행 속도는 600~700km 정도밖에 안 됐기 때문에 당시의 유인 전투기로 접근해서 날개를 툭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떨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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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V2는 날개 없이 추력만으로 수직 발사되고, 마하 5에 달하는 속도로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는 로켓이었다. 얘는 당시 연합군의 기술로도 요격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날아오면 그냥 맞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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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1과 V2 모두 1944년부터 45년 초까지 몇천 발씩 발사됐다. 하지만 그 당시 기술로는 비행체를 목표물을 향해 정밀 정확하게 무인 조종하고 유도하는 기술이 심하게 메롱이었기 때문에 적에게(=연합군) 유의미한 타격은 별로 못 줬다고 여겨진다.

오죽했으면 그때는 정말 위험천만한 급강하 폭격기까지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귀한 조종사를 써서 적함을 향해 그렇게까지 무모하고 위험한 기동을 해야만 폭탄을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유인 초음속기 같은 게 없고 전투기조차 프로펠러 왕복 엔진이던 시절에, V1은 나름 초보적인 수준의 제트 엔진(펄스 제트)을 내장하고 있었다. 쌔애액~ 피융 하고 날아갔지, 붕붕붕 털털거리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나치 독일은 패망했지만, V1/V2의 연구 개발을 담당했던 폰 브라운은 미국으로 스카웃 돼 갔다. V2의 구조는 훗날 인류를 달로 보낸 새턴 V 로켓에까지 계승됐다. (이때 V는 그냥 5의 로마 숫자 표기.. 맥OS X처럼.)

전후인 1946년 10월 24일, 브라운 박사 연구팀은 미국에서 V2 로켓을 다시 생산 후, 폭탄이 아니라 카메라를 장착해서 쏴 올렸다.
로켓은 성층권과 중간권을 벗어난 열권이며, 여객기 순항 고도의 10배에 달하는 105km 부근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이 로켓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에서 지구의 둥근 윤곽을 찍은 흑백 사진을 남겨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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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이야 연료가 고갈된 뒤엔 다시 땅으로 자유 낙하했기 때문에 기체고 카메라고 뭐고 다 박살 났다. 허나, 철제 케이스에 담긴 필름은 다행히 손상 없이 무사히 지상에서 회수되어서 현상됐다. 그 덕분에 사진이 찍힌 게 전해질 수 있었다~! 한 장만 찍은 것도 당연히 아니고, 수 초 간격으로 수십, 수백 장을 찍었다.

이렇게 부분적인 모습 말고, 동그란 지구 전체가 한 화면에 담긴 최초의 사진은.. 지구의 대기권뿐만 아니라 중력까지 벗어난 먼 우주로 나간 뒤에야 찍을 수 있었다. 1968년 12월 말, 아폴로 8호에서 찍은 게 최초이다.
이렇듯, 우주 발사체와 군사 무기 미사일은 정말 발효와 부패의 차이만큼이나 본질이 완전히 동일하고 종이 끗발 하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치 독일은 2차 대전 당시에 미사일 비스무리한 거 만들었지, 잠수함 만들었지, 야전용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탱크도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열차포도 만들었다.
독일의 과학 기술은 정말 대단하다. 단지, 그게 미국 같은 풍부한 자원과 체계적인 품질 관리 및 제품 양산 시스템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그 동안 일제는 해전용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을 만들었다(야마토). 일제는 독일 같은 미사일까지는 미처 못 만들고, 소박하게 폭탄 풍선을 띄워서 미국 서부의 상공까지 날려 보내고 터뜨리려 한 적은 있다.;;;

그때 일본이 대형 전함과 항공모함, 함재기를 만든 것은 임팩트가 굉장히 크지만, 잠수함을 만들고 이걸로 미국 군함을 격침시키기도 했다는 것은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진다. 같은 시기에 잠수함은 아무래도 일본이 아니라 독일의 유보트가 본좌였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담: 머피의 법칙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필 내가 관람을 하는 경기는 꼭 지더라, 세차를 하고 나면 반드시 비가 오더라"처럼.. 세상 만사가 꼭 재수없는(?) 쪽으로만 골라서 일어난다는 징크스를 표현한 경험 법칙이 있다.
그런데 자기 이름을 따서 이 법칙을 최초로 제안한 미국의 에드워드 머피(1918-1990)라는 사람은 심리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니었다. 군 소속의 항공우주 공학자였다~!

그는 1949년, 비행기가 왕복 엔진에서 제트 엔진으로 넘어가던 그 시절에 최첨단 기술의 산물이던 초음속기를 연구 개발하는 팀에 소속돼 있었다. 레일 위에서 로켓 엔진이 달린 수레 열차를 굴리면서 인체가 강한 중력가속도를 얼마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측정했는데, 결과값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원인을 조사해 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별 통제 없이 넘겼던 조건들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수준으로 몽땅 다 엉망진창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머피의 법칙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방심하면 일이 꼬이고 사고가 반드시 난다" 6-sigma라든가 하인리히 1:29:300 법칙처럼 공동 작업을 하는 현장에서 품질 내지 산업 안전 쪽으로 적용 가능한 건전한(?) 법칙이다.
그저 자조적인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더라 /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같은 염세 허무주의 메시지를 의도한 게 아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머피 아재는 자기 법칙이 자기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의미로 주변에서 너무 오남용되는 걸 보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본인은 DJ DOC 노래를 통해서 저런 법칙이란 게 있다는 걸 처음으로 접했다.;; 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0/10/13 08:35 2020/10/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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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항공모함

군대라는 게 작전 방식의 특수성과 차이로 인해 육해공 3군으로 나뉘곤 한다. 하지만 타 영역을 살짝 걸치는 병과도 조금씩 존재한다.
가령, 해병대는 육군과 해군의 조합처럼 보인다. 법적으로는 해군에 소속돼 있고 병도 지원자만 받지만.. 병의 의무 복무 기간은 육군과 동일하다. (우리나라 기준)
그리고 육군에서도 헬기 정도는 육군 항공대 명목으로 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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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처럼 항공모함은 바다 위의 공군 기지이니 해군과 공군의 조합 같다. 항공모함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2~30년대 전간기 때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존재 가능성과 필요성이 논의되었으며.. 덕분에 2차 대전의 태평양 전쟁에서 제대로 활약하게 되었다.

항공모함은 그 특성상 덩치가 정말 거대하며, 건조 비용이 억소리 나게 비싸고 운영하는 비용도 나라 등골 브레이커 수준이다. 하지만 이게 있으면 망망대해에서 전투기를 출격시켜서 억만 리 타지에서 깜짝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잠수함이 몰래 쏘는 어뢰하고는 다른 차원으로 전투력의 레벨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옛날에 타이타닉 여객선은 내부에 별 시설이 다 있는 그냥 작은 도시, 작은 사회나 마찬가지였는데.. 오늘날은 대형 항공모함이 그러하다. 천조국의 기상이 깃든 니미츠 급을 예로 들면, 수천 명이 먼 바다에 나가서 오랫동안 근무하는 곳이니 안에 수영장도 있고 극장도 있고.. 내부에 별도의 번지수 주소가 있고 우편번호가 할당돼 있다. 항공모함 안에서 길을 잃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에서 잘 짱박혀서 탈영하는 것조차도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작은 도시 안에 작은 원자력 발전소도 없으란 법이 없으니.. 이런 거대한 항공모함은 무식한 디젤 엔진 대신 원자력으로 움직인다.
다만, 항공모함은 배로서는 그렇게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지상 공항에 비할 바는 못 되니.. 활주로의 길이가 부족하고 환경이 열악한 관계로 아무 군용기나 다 띄우지는 못한다. 그 항공모함의 규격에 맞게 제작된 함재기만이 이· 착함 가능하다. 이함할 때는 양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되라고 모선도 전속력으로 같이 전진해 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재기가 항공모함의 활주로를 벗어나서 뜨는 걸 보면, 잠시 배 밑으로 추락하는 듯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다시 붕~ 뜨는 게 다반사이고.. 아예 못 뜨고 바다에 떨어지는 사고도 종종 난다. 배의 앞부분의 수면에 추락한 함재기는 같이 전진하던 모선과 부딪혀서 으스러진다.

함재기가 임무를 마치고 착함하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이다. 아니, 착함이 더 어렵다.
한 직후에도 활주로를 오버런해서 도로 바다로 빠지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배와 함재기가 힘을 합쳐서 필사적으로 감속을 해야 한다. 이 정도면 공군과는 약간 다른 방식의 노하우가 필요해 보인다.

글쎄, 소말리아 해적이나 알 카에다, ISIL 같은 조무래기(?)들을 토벌하는 데 딱히 항공모함이 투입된 것 같지는 않은데 앞으로 태평양 전쟁 시즌 2 같은 사건이 벌어질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그 옛날의 2차 대전 중에도 선진국들의 군 수뇌부와 군수업체에서는 선박이 아니라 잠수함이나 타 수송기를 기반으로 하는 항공모함(?)까지 구상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건 너무 무리수이니 실현되지는 않았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잠수함에서 그냥 미사일만 쏘면 되지 굳이 인터셉터를 날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동차 캐리어도 아니고 비행기 캐리어는.. 아직은 스타크래프트 캐리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프로토스는 우주 항공모함을 굴리고, 테란은 우주 전함을 굴린다니.. 흥미롭다.

6. 아이스크림

천조국은 무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저 멀리 태평양 전장에 가 있는 병사들한테까지 아이스크림을 보급으로 챙겨 줄 수 있던 유일한 나라였다. 아이스크림 제조 공장선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병사들의 사기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줬으며, 다른 유럽군에서도 이걸 부러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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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와 전함을 팍팍 찍어내고 원자폭탄 만들어 내고 적군의 암호를 몽땅 해독했다는 얘기뿐만 아니라 저런 소소한 병사 복지마저도.. 정~~말 대단하고 경악스럽지다. 천조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몇십 년 더 앞서 갔다.

7. 인종 차별

1941년 말의 진주만 공습 때 '도리스 밀러'(1919-1943)라는 한 흑인 병사는.. 기습을 당해 죽거나 다친 사수들을 대신하여 즉석에서 전함에 비치된 대공용 중기관총을 조종하며 용감하게 응사했다. 심지어 일본 적기를 격추시키기까지 했다.

이게 대단한 이유는.. 저 사람은 취사병이었고, 지금까지 총 쏘는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는데도 저 정도의 무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2001) 영화에도 이 장면이 괜히 들어간 게 아니다.
마치 <15소년 표류기> 소설에서 흑인 견습 선원인 모코가 요리사 일을 하고 있다가 끝부분에서 침입자 악당을 대포 한 방에 때려잡는 장면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병사들에게 아이스크림까지 나눠 주던 천하의 천조국도 1940년대에는 아직 인종 차별이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하게 존재했다. 군대에서 흑인과 백인은 훈련을 따로 받았으며, 흑인 병사는 감히 전함의 기관총 사수 같은 보직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랬는데 도리스 밀러와 같은 사례가 생기면서 그런 유리천장은 차츰 없어지게 됐다. 그는 명예 훈장까지는 아니지만 해군 십자장을 받았고.. 올해 초엔 미국에서 새로 취역한 핵 항공모함에 이름도 붙었다.

6· 25 사변을 거친 뒤 베트남전 타이밍이 되자, 미군에서는 흑인이 백인 신병을 가르치는 훈련소 교관도 맡으며(검프! 입대한 동기가 무엇인가!! 네놈 IQ는 160은 되는가 보다!).. 풀 메탈 자켓에서는 교관이 대놓고 "나는 검둥이건 유대인이건 집시건 아무 차별 안 한다. 여기서는 네놈들은 다 똑같이 쓸모없기 때문이지!"라고 능력 위주의 평등을 표방한다. 그 정도로 분위기와 방침이 바뀌었다.

1970년대 말에 중국에서는 마오 쩌둥이 '흑묘백묘' 운운하면서 "고양이는 색깔 불문하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논리를 펴는 지경이 되었다. 이건 공산주의건 자본주의건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체제를 가리지 않겠다는 실용주의를 표방한 말이었다.
미국은 체제는 이미 건전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고, 인종에 대해서 '흑묘백묘'가 아니라 아예 '흑인백인 인종무관' 실용주의가 나중에 등장하게 된 듯하다. "흰둥이건 검둥이건 적군만 잘 잡으면 된다"라고..

8. 대테러부대

경찰과 군대에는 정규전(경찰은 일반적인 시위 진압이나 범죄자 검거. 군인은 일반적인 야전 전투)을 수행하는 대다수의 일반적인 경력· 병력이 있는 한편으로, 뭔가 마이너하고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서도 있다.
가령, 일반 경찰이 담당하기에는 어려운 규모의 무장 테러리스트를 잡는 부대 말이다. 이런 애들을 잡기 위해서 무슨 탱크나 대포나 전투기를 동원할 필요는 없음이 명확하다.

이럴 때는 이런 임무를 위해 시꺼먼 복장을 하고 별도의 훈련을 받은 경찰 내지 군대 소속의 대테러부대가 투입된다. 이런 부대는 정체성이 경찰과 군대 어느 것에 딱 정확하게 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아예 대놓고 특전사나 UDT 같은 급도 아니기 때문이다. 경찰특공대, 미국 SWAT.. 그런 쪽이다. (뭐, 그렇다고 군 특전사에서도 대테러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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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테러부대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생각만치 오래되지 않았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독일(서독) 정부가 괜히 허둥대고 삽질한 게 아니었으며, 인질들이 전원 죽는 비극이 괜히 벌어진 게 아니었다. 법적 문제 때문에 정규군을 함부로 투입할 수 없었으며, 반대로 독일 경찰은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 매뉴얼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북괴의 연이은 테러에 이골이 나 있던 한국 같은 나라나 극도의 통제된 분위기 하에서 치안이 덤으로 갖춰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경찰 소속의 대테러부대는 무력만 강화한 '경찰'이기 때문에 자국민을 최대한 보호해야 하고, 악당들도 사살보다는 생포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작전 지역이 국내가 아니거나 악당이 수가 많고 화력이 강하거나.. 아예 자국민이 아니다거나 하면 이들을 상대하는 공권력도 경찰이 아닌 군대 소속으로 바뀌게 된다.

참고로 지난 2009년 용산 철거 현장 참사 때 시위 진압을 위해 투입됐다가 순직한 사람들은 경찰특공대 소속이었다. 시위대가 무슨 전문적인 무장 테러리스트는 아니고, 그렇다고 통상적인 시위 현장 같은 전투경찰을 투입하기에는 장소가 위험하니 경찰특공대가 적절한 대응이었지만.. 그래도 안타깝게도 화재로 인한 희생자가 발생했다.

9. 토크멘터리 전쟁사

개인적으로 유튜브에서 연재되었던 토크멘터리 전쟁사 시리즈를 재미있게 봐 왔다.
국방부에서 유치한 애국심(?) 고취용으로 오글거리는 어용 관제 군대 홍보물만 만들 줄 알았더니 의외로 이런 재미있고 유익하고 수준 높고 건전한 교양 프로도 만들어 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종영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배후 음모 없이 정말로 단순한 소재 고갈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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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친중종북 좌익 빨갱이 정권의 마음에 안 드는 너무 건전한 애국 메시지 때문에 짤린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6/17 08:35 2020/06/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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