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사무엘상 17장에는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 배틀이 기록되어 있다.

골리앗은 성경에서 챔피언이라고 기록돼 있다는 것,
하지만 성경은 골리앗에 대해서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으면서 대부분 ‘그 블레셋(필리스틴) 사람’이라고만 지칭한다는 것,
다윗은 초탄 원샷만으로 골리앗을 무조건 바로 제압하지 못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텐데 그래도 조약돌을 5개나 챙겨 갔다는 것 등..
여러 이슈들을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이미 다뤘었다.

그런데 같은 본문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이번에는 군사 디테일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온다. 본인이 근래에 밀리터리나 전쟁사 쪽으로 관심을 많이 보여서 그리 된 것 같다.
이 글에서는 그쪽으로 떠오른 의식의 흐름을 논하도록 하겠다. 군사 이야기, 성경 번역 이슈 등..

1. 저격

한반도로 치면 아직 고조선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옛날이니까 저렇게 참 낭만적으로 싸우는 게 가능했다. 오늘날의 전장에서 골리앗이 매일 성큼성큼 나와서 “니놈들도 장수 한 명을 대표로 보내서 나랑 1:1 PvP 뜨자 으하하하하하!!!” 도발하고 있었다면?
저 멀리서 특전사 저격수가 숨어서 저격소총으로 골리앗의 마빡에다 바람구멍을 뚫었을 것이다. 무거운 갑옷 입고 있으면 뭐하나. 골리앗은 아마 남북전쟁 존 세지윅 장군과 비슷한 방식으로 전사했을 것이다.

옛날이니까 일당백이 가능했고 1:1 PvP만으로 전투의 승패를 결정해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저 때는 아예 왕이 군대 총대장의 역할까지 겸하면서 전쟁터에 직접 나가서 싸우곤 했다.
(요즘 용어로 치면 사울은 군령권 담당이고 아브넬은 군정권 담당인 건지?)

2. 참호 trench

성경을 보니 이스라엘군 진영, 정확히는 사울 왕이 있는 곳이 trench라고 묘사돼 있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삼상 17:20) 정확히는 킹 제임스만 그렇다.
그래서 킹을 번역한 성경들에서는 ‘참호’라는 단어를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이 이 구절을 보면 1차 세계대전의 서부 전선 참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엥? 기관총 따위 없고 현대전 같은 엄폐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에 이 사람들이 땅 파서 참호/진지/벙커 같은 걸 만들었나?

나중에 엘리야가 제단 주변에 도랑 파서 물 흐를 길을 만들었다고 할 때도 trench가 쓰였다(왕상 18:32). 그러니 trench는 명백하게 주변보다 낮은 지형을 말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눅 19:43을 보면 비킹들은 공성전을 치르기 위해 바리케이트 치거나 토성 쌓거나 투석 병기를 설치하는 걸 묘사하는데, 킹은 여기서도 주변 땅을 파는 전술이 묘사된다. 신기하지 않은가? (참고로 로마 제국이 맛사다 요새를 함락시킨 방식은 잘 알다시피 지하가 아니라 토성 + 투석기 같은 지상 공략이었음)

심지어 구약에서 킹과 비킹이 차이가 나는 대표적인 구절인 창 49:6도 킹은 “벽을 파내려갔다”이고 비킹은 “소의 힘줄을 끊었다”이다. 이 정도면 킹은 뭔가 땅 판다는 표현을 작정하고 더 선호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 마치 다른 구절에서는 ‘기뻐하다’를 더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분의 뜻대로 vs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나야 히브리어 헬라어를 논할 짬은 안 되니, 그냥 이 상황만 설명해 보자면 말이다.
사울 왕이 있는 곳이 지리적으로 낮아서가 아니라 영적 상태/수준이 왕창 낮아서 단순히 진지 진영이나 텐트 대신, 참호라는 단어를 쓴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여기서 낮다는 건 무슨 겸손한 낮은 마음 같은 긍정적인 뉘앙스가 전혀 아니고 부정적인 뜻이다.
일례로, 아까 삼상 17을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그야말로 나라를 구한 순간에도.. 사울은 자기를 음악 치료까지 해 줬던 다윗이 누군지 전혀 못 알아보는 중증 안면 인식 장애를 앓고 있지 않던가?

나중에 삼상 26:7에서 사울은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수색 작전을 펼치던 중에도 참호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고 묘사된다.
이때 사울은 적과 싸우는 것도 아니었는데.. 간단히 천막 치고 쉬었겠지, 설마 정식으로 진지 구축하고 참호를 파지는 않았을 것이다. 쉽게 말해 국군이 탈영병을 잡는 데 무슨 무장공비 소탕 작전 같은 전술을 펼치겠느냐 말이다. 뭐, 정말 흉포한 무장 탈영병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성경에서 “이집트로 내려가다”라는 표현이 쓰였듯이, 또 요나가 배의 밑바닥으로 내려가 잠을 퍼질러 잔 게 단순히 요나의 물리적인 위치만 내려가는 게 아니었듯이..
성경은 동일한 심상으로 사울이 머무른 곳을 참호라고 표현한 게 아니었나 싶다! 지리적인 저지대가 아닌 다른 저지대라는 것이다.

3. 목을 베어 죽인다 vs 죽이고 목을 벤다

아이고 참호 얘기가 왕창 길어졌는데..
골리앗은 다윗에게서 미간에 조약돌을 맞고는 그때 그저 기절이 아니라 완전히 절명한 것이 틀림없다.

급소를 잘 맞히면 일반인도 무릿매로 돌 던져서 사람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그러니 그것 자체는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불신자라도 선뜻 인정한다.
허나, 총알 탄두도 아니고 그 큰 돌을 사람 면상에 완전히 박아 버릴 수는 없다(삼상 17:49).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초자연적인 현상인 것 같다.

50절을 보면 “죽였는데 다윗에게는 칼은 없었다”라고 돼 있고, 그 다음 51절은 다윗이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이다. 즉,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벤 건 그냥 확인사살용이다. 수급을 얻기 위한 시체 훼손이나 다름없다.

이걸 보니 행 5:30이 떠오르더라. 보통은 “나무에 매달아 죽인”이라고 돼 있는데.. 영어로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죽이고(죽여서) 나무에 매단 slew and hanged”이다.
시간상으로는 예수님은 당연히 십자가에 매달렸다가 나중에 죽으셨으니, 일각에서는 저건 킹의 오역이라고까지 주장하는데..

그런 식이면 예수님은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고 절명하신 거지, 애초에 인간의 완력으로 살해 자체를 당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간에게 돌에 맞거나 칼에 찔리거나 목을 뎅겅 하는 식으로 처형 당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인간들이 예수님을 안 죽인 것도 아니다.

“바라바를 살려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이렇게 요구를 한 것 자체가 slew의 범주에 든다고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우리 인간들 언어에는 애초에 “문 닫고 나가!!”라는 모순? 유도리까지 존재하지 않느냐 말이다. ㅋㅋ

4. shield와 target

영어 성경에는 방패를 뜻하는 단어로 shield와 target 두 종류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등장하는 믿음의 방패는 shield (엡 6:16)인 걸 보니, 둘 중에 더 일반적인 단어는 역시 shield인 것 같다.

사무엘상 17장으로 돌아가서 골리앗의 무장을 보면, 주 방어구인 커다란 방패는 shield라고 돼 있다. 이건 워낙 크고 무거워서 부사수가 따로 들고 다녔을 정도였다(삼상 17:7).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골리앗은 상체에 보조 방어구 명목으로 target이라는 작은 방패도 차고 있었다(삼상 17:6).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윗과 골리앗은 성경에서 너무 유명한 소재이니 관련 삽화가 넘쳐난다. 하지만 저 두 종류의 방패까지 그대로 묘사한 그림은 매우 드물다.
target은 말 그대로 dart 과녁판 같은 느낌이 들고 왠지 동그랗게 생겼을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의외로 역본들 간에 번역이 일치하지 않는다.
(1) 킹 제임스만이 삼상 17:6이 target 방패, 보조 방어구였다고 말하고 비킹들은 이 구절이 그냥 javelin.. 던지는 작은 투창이라고 표현한다.

즉, 비킹은 이걸 보조 방어구가 아니라 보조 무기라고 본 것이다. 손에 들고서 찌르는 용도로 쓰는 큰 창은 spear이고, 요런 투창은 또 따로 있었던 듯하다.
다만, 5절과 6절은 모두 투구와 갑옷, 금속 각반(정강이가리개)과 함께 계속 방어구를 소개하고 있다. 그러니 어깨에도 공격 무기보다는 킹처럼 방패 같은 방어구 얘기가 나오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2) 다음으로.. 킹의 번역에 따르면 이 구절에서는 shield가 큰 방패이고 target은 더 작은 방패이다.
그러나 왕상 10:16-17에서 솔로몬 왕이 만든 방패 얘기가 나올 때는 관계가 정반대이다. target이 큰 방패이고, 다음 shield가 작은 방패이다. 같은 킹에서도 의외로 이런 용례 차이가 존재한다.

5. 무용담

끝으로.. 다윗과 골리앗은 원수지간이지만 다윗과 요나단은 그 정반대이다. 요나단의 우정은 너무너무 훈훈하고 아름답고 눈물이 핑 돌 것 같다.

요나단도 나름 신라의 관창 같은 면모가 있었으며, 심지어 그러고도 살아서 돌아왔다. 요나단은 다윗보다 연장자인 데다 심지어 왕자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시절에 다윗에게 아마 이런 식으로 말을 했지 싶다.

“이야~ 나도 정말 다혈질이어서 바로 얼마 전에도 객기 부린 적 있어. 우리 아버지의 명령 없이 혼자 무단으로 내 부사수만 데리고 블레셋 진지로 그냥 쳐들어갔지. 그래서 블레셋(필리스틴) 놈들 20명 정도 목을 따고 돌아왔거든? (삼상 14)

그랬는데도 저 괴물 골리앗은 도저히 상대할 엄두가 안 나던데.. 너는 어떻게 그놈 앞에서도 무섭지가 않았니? 그 순간에도 오로지 하나님만 생각한 거야?
다윗, 넌 나보다도 더 또라이 같고 진정한 GOAT다. 내가 리스펙한다!! 나한텐 다나까 안 써도 되니 앞으로 편하게 말 놓아라~! 너랑 나 사이엔 뭐 금수저 흙수저니 출신 계층은 일절 따지기 없기야? 알았지?”

애비인 사울 왕은 권력에 집착하면서 다윗을 시샘하고 갈수록 흑화해 갔다. 그러나 그의 아들 요나단은 자기 대신 차기 왕위를 빼앗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다윗을 정말로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 같은 우정으로 챙겨 줬다.

Posted by 사무엘

2026/05/05 08:35 2026/05/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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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또 오랫동안 새 글을 못 올리다가 이제야 한참 전부터 써 왔던 글을 하나 마무리 지었다. ㄲㄲㄲㄲㄲㄲ

미국은 넓은 땅과 자원에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생산력을 갖추고 세계에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초강대국이다.
단순히 땅 넓고 자원 많고 인구만 많은 게 아니다. 3억이 넘는 인구가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이 집 있고 차 있고 총까지 있고 기본적인 구매력이 갖춰진 중산층이다.

나라가 꽉 막힌 사회주의 공산당 독재 체제가 아니며,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이념에 충실하다. 심지어 그걸 세계에 퍼뜨리면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미국이 해 온 짓이 다 선하고 옳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것만으로도 매우 대단하고 부러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미국은 넘사벽 급의 군사 강국임이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자국 영토엔 전방이라는 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군은 자기 나라가 아니라 미국과 이념을 공유하는 동맹국들을 지키는 데 투입되며 거기가 전방으로 취급받는다. 누구를 넘어서는 게 목표가 아니고 그냥 현상유지가 목표이다.

미군이 거위걸음 연습해서 대규모 열병식을 한다거나, 굳이 에이브럼스 전차나 F-22 전투기 잔뜩 끌고와서 군사 퍼레이드 하는 일 따위는 없다.
그건 서울대나 육사가 무슨 졸업생 취업률 운운하면서 학교 홍보하거나 광고를 뿌리는 일이 절대 없는 것과 완전히 같은 맥락이다. 쟤들은 가끔씩 독립전쟁 하던 시절 옛날 코스프레 정도나 할 뿐이다.

뭐, 미국의 니미츠 급 항공모함을 1개월인지 n개월인지 운용하는 데 드는 유지비는..
그 니미츠 항공모함의 함재기 패거리로부터 공격 당한 나라가 입는 피해 비용과 비슷할 거라는 말이 있다. 둘 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액수일 텐데.. ㄲㄲㄲㄲ
딴 나라들은 저런 항모가 있어도 도저히 유지를 못 하겠지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저 천조국만은 그걸 감당할 수 있다.

이런 미국의 20세기 시대상은 이랬던 것 같다. 이때 나라의 모습이 정말 순식간에 바뀐 것 같다.

  • 1800년대 중후반: "금 캐러 가세" 이러던 서부 개척, 총잡이 카우보이 보안관, 황야의 무법자, dead or alive 딱지가 붙은 현상수배범 포스터, 남북전쟁!!
  • 1900년대: 록펠러, 카네기 등.. 나라가 미칠 듯이 발전하고 현대화되고 부강해지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폐단과 산업화의 부작용도.. 강도귀족 도금시대
  • 1920년대: 금주법, godfathers 시카고 마피아, 중산층들은 이미 다 차 끌고 다니고 라디오도 갖고 있음, 뉴욕엔 이미 초고층 빌딩이 있고 교통체증도 있었음
  • 1940년대: 대공황에다 전쟁까지..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Remember Pearl Harbor. 세계에서 유일하게 군 장병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배급했음
  • 1960년대: 월남전, 히피, 비틀즈 뭐 이러던 시대. 겁나게 크고 각진 캐딜락 엘도라도 같은 자동차. 중산층급 자가용이 자연흡기로 8기통 6000cc급..
  • 1980년대: 전자음향, 마이클 잭슨, 카세트 테이프와 VHS 비디오, 컬러 텔레비전

병맛 영화 쿵 퓨리(2015), Grand theft auto Vice city 게임(2002)도 다 배경이 1980년대 마이애미 해변도시이다. 저게 1980년대 미국 리즈 시절의 상징인 듯..
당대에 Windows 1.0 광고에서도 스티브 발머가 오바 연기를 하면서 Lotus 1-2-3와 Miami vice를 언급하던데.. 후자는 게임인지 영상물인지 무슨 매체를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편,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육해공 군종별로 미국의 인상적이었던 군인은 개인적으로 다음 인물이 떠오른다.
세계 어느 나라 군대가 안 그렇겠냐마는.. 미국도 군 수뇌부가 정말 겁나게 호전적이었다.

1. 육군: 조지 패튼 (최종 계급: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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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은 진짜 더럽고 지랄맞지만 그래도 어쨌든 아군을 전투에서 이기게는 만드는 지휘관..;;;이었다.
군인, 특히 고위 장성 중엔 군인으로서 유능할 뿐만 아니라 물욕과 권력욕이 있어서 자기 PR과 인맥 관리, 기름칠, 언플, 정치질에도 능숙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맥아더처럼 말이다.

그러나 패튼은 그런 건 나몰라라 out of 안중이고, 오로지 적진으로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 적군을 죽이는 일밖에 모르는 다혈질 싸움닭이었다.
이 사람의 대표적인 어록은 다음과 같다.

- 나는 전쟁이 너무 좋아 죽겠다~ 하루라도 전투가 없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겠다 (..)

- (전투를 앞두고 부하들에게 훈시) 나는 신이 우리의 적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기도한다. 난 자비를 베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뜨악..)
"빈 라덴을 용서하는 건 신이 하실 일이지만, 빈 라덴과 신의 만남을 주선하는 건 우리의 임무이다" 뭐 그런 얘기 같다. ㄲㄲㄲㄲㄲㄲ

- (역시 훈시) 제군들은 전쟁터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치지 마라! 적들이 우리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치게 만들어라! ㄷㄷㄷㄷㄷ

- (훈시) 제군들은 먼 훗날 손주새끼를 무릎에 앉혀 놓고 무용담을 당당히 늘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할애비는 2차 대전 때 후방에서 편하게 뒹굴뒹굴 꿀이나 쳐 빤 게 아니란다
최전방에서 조지 패튼이라는 이 천하의 빌어먹을 X새X와 함께 전방에서 용감하게 진군했지!!" 라고 말이다~~!!!!!!

정말 기백 넘치지 않는가? ㅎㄷㄷㄷㄷ
이 아저씨는 정말 뼛속까지 군인이었다. 용맹하게 싸우는 군인정신을 뼛속까지 숭상하던 아저씨였다.
그래서 무려 쓰리스타 포스타를 자랑하는 넘사벽 신분으로도 야전병원에 몸소 위문도 갔다. 부상병들을 일일이 위문하고 진심으로 격려하는 본을 보이기도 했으나..

반대로 외형상 피 튀기는 부상이 별로 심해 보이지 않던 PTSD(정신병) 환자나 참호족 환자를 의지박약 꾀병으로 오인하고는 싸대기와 함께 "이런 겁쟁이 새끼를 봤나~ 나가 뒤져! / 이 나일롱놈을 당장 영창에 집어넣고 군법재판에 넘겨!"...
이런 막말 말실수 사고를 몇 번 쳐서 커리어에 오점을 찍기도 했다.;;;

패튼은 서부 전선에서 육군을 지휘하면서 나치 독일과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해병대나 일본이나 태평양 전쟁 쪽과는 접점이 없다.

2. 해군: 윌리엄 홀시 (최종 계급: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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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는 "앞으로 태평양 전쟁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 계획이십니까?"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 왜놈들을 그저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일 겁니다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
  • 좋은 쪽발이는 죽은 지 6개월 지난 쪽발이뿐이다!
  • 앞으로 일본어는 지옥에서나 쓰이는 언어가 될 것이다~!

라는 정말 주옥같은=_=;; 명언을 남겼던 해군 제독이다. 이 사람은 아이스크림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미군은 2차 대전 중에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장병들에게 투게더 같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펑펑 배급해 주던 군대였다.
하루는 병사들이 휴식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줄을 길게 늘어섰는데, 소위 중위.. 초짜 장교들이 계급으로 갑질하면서 앞으로 새치기를 시전했다.

그런데 저 뒤에서 누군가가 그 새치기 장교들에게 니들도 뒤로 와서 줄 안 서냐고 쌍욕을 퍼부으면서 고함을 쳤다.
알고 보니 그렇게 뒤에서 줄을 서 있던 사람이 바로.. 저 윌리엄 홀시.. 무려 포스타 장군이었다고 한다.

저 사람은 적에게는 무시무시하게 막말을 퍼부어도 자기 부하들은 아끼고 챙기고 장병들 복지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던 대단한 사람이었다.

3. 공군: 커티스 르메이 (최종 계급: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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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미군 육군 항공대에서 공군이라는 조직을 창설한 주역이다.
그는 비행기를 이용한 공습.. 다른 말로는 폭격에 재미를 붙여 버렸다. 그래서 그냥 말 끝마다 "저것들 다 폭격해서 석기시대로 만들어뿐다" (Bomb them back to the Stone Age)
석기시대 드립이 이 사람의 밈이 됐다.

일본은 원자폭탄을 맞기 직전이던 1945년 초에 도쿄를 포함해 주요 대도시이 모두 미군으로부터 불바다 폭격을 당했었다. 그 공습을 다 이 사람이 계획하고 주도했다.
단, 폭격 정확도를 위해 폭격기들을 위험할 정도로 너무 저공으로 비행시켰다. 그래서 아군이 일본 측의 대공화기에 맞을 뻔하고 죽다 살아나오는 고비를 여럿 겪었다.

그래서 하루는 부하 조종사들이 뭐 이런 걸 작전이라고 짰냐며 항의하러 그를 찾아왔다. 그러나 이 아저씨는..
"으하하하~ 오늘 공습 덕분에 이 적은 폭탄만으로 쪽발이들 나라의 수도가 다 박살나고 쪽발이가 10만 명이나 죽었다구.
오늘 작전은 대성공이다! 제군들도 같이 승리의 축배를 들자구!" 이러면서 항의는 그냥 씹어 버렸다.
사실, 이 아저씨도 "적진에서 폭격은 이렇게 하는 거야!" 그러면서 그 위험한 작전에 솔선수범하며 나서기도 했었다.

몇몇 부하가 "민간인 사는 곳에다가 이렇게 폭탄 떨궈도 될까요..?"라고 좀 망설였다. 그러나 이 사람 왈,
"요즘 전쟁에 무고한 민간인 같은 건 없다, 알겠나? 우리를 죽이는 왜놈들 폭격기가 다 이집 저집 돌면서 나사 조립하고 철판 용접해서 만들어지거든. 그냥 다 밀어버리면 됨."
이렇게 우려를 일축했다. 이게 그냥 합리화가 아니라 일본의 상황 기준으로는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가내수공업)

즉, 이 사람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전쟁은 민간인 피해나 오폭을 최소화하면서 전투를 소심하게 조심스럽게 안전하게 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짧고 굵게 화력을 미친 듯이 쏟아부어서 전쟁 자체를 빨랑 최대한 빨리 끝내 버리는 게 궁극적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 여담

(1) 미국은 현재까지 포스타 대장보다도 높은 오성장군, 원수가 총 9명 배출되었다. 맥아더가 가장 유명할 것이고, 위에서 거론된 사람 중에는 해군의 윌리엄 홀시가 여기까지 진급했다.
물론 1950년대 이후에는 지구상에 세계 대전 급의 전쟁이 없는 관계로, 미군에서 이런 계급을 현역에게 부여하지는 않고 있다.

(2) 심지어 더 옛날엔 원수보다도 더 높은 '대원수, 육성장군'도 있었다. 이건 미국-스페인 전쟁(조지 듀이)이라든가 1차 대전(존 퍼싱) 시절의 영웅에게 부여된 게 마지막이다.
뭐, 건국 200주년 기념으로 국부인 조지 워싱턴에게도 대원수 계급이 '추서'되기는 했지만 이건 평범한 군대 진급은 아닐 것이다.

(3) 미국에서 징병제는 월남전 때 마지막으로 부활했다가 1973년을 끝으로 폐지되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징병제로 전환할 수 있게 지금도 군 복무 가능자를 조사하고 리스트를 관리하고 있다고는 한다.
마치 서울 지하철 9호선이나 공항철도가 언제든지 독자적인 추가 운임을 징수할 수 있게 형식적으로나마 고유한 환승 게이트를 관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그런 게 없더라도)

(4) 미국은 냉전 이전, 1945년에 핵 실험을 해 본 유일한 나라이다.
그 뒤 냉전 기간 내내 핵 실험을 하다가 1992년을 끝으로 더 하지 않고 있다.
글쎄, 트럼프 아재가 30여 년 만에 그걸 다시 하라고 요 근래에 지시를 했다는데 실제로 수행됐는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5/11/19 08:35 2025/11/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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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국의 "까라면 까"

1. 까라면 까

20세기 중반에 미국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공밀레 "까라면 까"는 이 둘이지 싶다. -_-;;

(1) "흠~~~ 엔진이랑(정확히는 보일러) 엘리베이터가 큰 이상 없다니 그럼 됐다. 이 정도 대미지는 사흘이면 충분하다. 요크타운을 이 기한 안에 수리를 마치도록. 우린 지금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체스터 니미츠 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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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시절, 배수량이 2만 톤을 넘는 큰 항모가 갑판에 이전 전투(산호해 해전) 폭탄을 맞고 다 부서져서 함재기를 적재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전문가들이 보니 이건 제대로 수리하는 데 3개월은 잡아야 할 큰 대미지였는데.. 우리의 제독님이 3주도 아니고 3일로 기간을 일방적으로 후려쳤다.

군에서는 화들짝 놀라서 SCV들을 싹싹 긁어모아서 밤새도록 갈아넣고 특근을 시켰다. 무려 1400명에 달하는 정비공들이 달라붙어서 사흘 만에 간신히 외형을 복원하고, 함재기 적재와 항해가 가능한 상태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걸로 모든 수리가 제대로 끝난 건 물론 아니었다.;;; 그러니 요크타운이 일본놈들과 싸우러 출항할 때, 공구를 바리바리 싣고 수리공들을 같이 태우고 갔다. 항해하면서도 계속 내부를 땜질하고 수리해야 했다.

이 조치 덕분에 나중에 일본군도 놀랐다. "어, 코쟁이들한테 항모가 하나 더 있었나? 요크타운은 우리가 분명 박살을 냈는데..???"
이 요크타운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큰 공을 세운 뒤, 이번엔 완전히 격침되어 침몰하는 걸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훗날 우리나라 손 원일 제독은 미국을 상대로 군함을 사 올 때 미친 협상력으로 가격을 말도 안 되게 후려쳤었는데... 니미츠는 이렇게 전시에 군함의 수리 일정을 후려쳤다는 차이가 있다.

(2) "우리는 이 1960년대가 가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고 말 것입니다. 그게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케네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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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이렇게 선언을 덜컥 해 버리니 그 당시 NASA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모든 게 소련에게 뒤쳐져 있었고 아무 기술이고 노하우가 없었는데.. 도대체 어쩌라고?

근데 천조국의 돈지랄과 미친 공밀레가 기적을 만들어 냈다.
1968년 말의 아폴로 8호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실험들을 여러 단계 한꺼번에 밀어붙여서 사람이 기어이 달을 한 바퀴 돌고 무사히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뭐 하나 삐끗 잘못했으면 사람이 지구로 못 돌아오고 우주에서 죽어 버릴 수도 있었는데.;;

그러다가 10호는 달에 내려가는 시늉만 잠깐 하다가 돌아왔다. 이때 승무원이 자기는 달에 뼈를 묻고 말겠다고 객기 일탈을 부렸으면.. 큰일날 수도 있었다. =_=;; 아직 지구로 귀환하는 시스템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거쳐서 1969년 7월, 아폴로 11호는 1960년대가 가기 전에 정말 가까스로 인간을 달에 무사히 착륙시키고 지구로 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젊은 대통령 케네디.
자기가 직접 글을 썼는지, 아니면 참모진이 대필해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역설의 진리로 독자들을 불끈 울컥 하도록 글을 잘 쓴 것 같다. 저 연설도 그렇고, "나라로부터 무엇을 받을지 생각하기 전에 자기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지부터 생각해 주십시오" 라는 취임사부터 그랬으니 말이다. =_=;;

2. 우리나라의 사례

(1) 우리나라에서 6 25가 터져서 한국 은행이 삽시간에 북괴한테 넘어가 버렸다. 이 때문에 울나라는 돈을 황급히 다시 만들어서 찍고 뿌려야 했는데.. 그걸 맥아더에게 부탁했고 맥아더는 "일본을 상대로 까라면 까"를 시전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위급한 상황이었고 패전국 일본은 이 기회에 무조건 미국한테 잘 보여야 했으니... 조폐국(?? 그 당시 대장성) 인쇄부 근로자들을 무기한 야근 철야 명령과 함께 갈아넣었다. 나중엔 GHQ 병사들이 총 들고 인쇄 공장을 찾아와서 직원들을 호위 겸 감시· 재촉했대나..
새 돈 도안 마스터판은 단 이틀 만에 완성됐으며, 돈 한 트럭 분량을 열흘 만에 찍어서 비행기로 실어 날랐댄다. 이거 통상적으로 최대 6개월 가까이 걸릴 일이었다고 한다. =_=;;

(2) 미국이 인간을 달에 보내려고 용 쓰던 동안 우리나라는 경부 고속도로 닦겠다고 인력과 물자를 갈아넣으며 용쓰고 있었다. 당재 터널 하나 못 뚫어서 사람 10여 명이 죽고 난리였었다. =_=;;;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는다.
인부들이 며칠 씻거나 옷을 못 갈아입으면서 일했고, 도로 포장을 하던 롤러 운전사는 작업하다가 시간이 없어서 용변을 그냥 자리에서 지릴 정도였다. =_=;.

3. 태평양 전쟁 시절의 미국 대통령

사실, 태평양 전쟁 시절엔 니미츠 제독 이전에 미국 대통령부터가 노발대발해서 내리갈굼을 제일 먼저 시전했었다.
영화 진주만에서 나오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대사. "Do not tell me it cannot be done"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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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 나도 이렇게 벌떡 일어섰는데 당신들 내 앞에서 안 된다는 소리는 일체 말고 까라면 까시오.
우리 조국의 아들들이 불의의 기습을 당해서 차디찬 바다 속에 수장됐는데 뭐? 폭격기 항속거리가 부족하다고? 무리하다간 항공모함마저 털릴 위험이 있다고?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왜놈들한테 무조건 당장 보복하도록 하시오! =_=;;"

천조국은 이때부터 한 근성 했던 것 같다.
쟤들은 일본에게 천 배 만 배 보복한답시고 처음부터 일본을 통째로 지도에서 지워 버린다거나, 일본 민간인까지 몽땅 잔인하게 학살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쟤들도 우리처럼 똑같이 기습 당하고 허를 찔리고 뒤통수 얻어맞게 해야 된다고.. 여기에 목숨을 걸었다. 단순히 평범하게 전투에서 힘으로 밀어서 패배시키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그래서 항공모함에서 자그마한 함재기(프로펠러가 중앙에)가 아니라.. 육중한 육군 폭격기를 발진시킨(프로펠러가 양 날개에) 둘리틀 특공대가 조직되었다. 병맛스러운 일본 카미카제 특공대보다야 비교할 수 없이 멋있지 않은가?

4. 통계와 숫자

영화 미드웨이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 레이튼: 일본군의 현재 동태는 이러한데, 첩보에 따르면 아마 요 때쯤에 요기 일대에서 요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어쩌구저쩌구 브리핑)
- 니미츠: 그래서 결론이 뭐지? 그 추측만으로는 범위가 너무 넓고 막연한데? 어렵겠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라. 그래야 작전을 짤 수 있겠다.
- 레이튼: (하... 나더러 어쩌라고~ 자포자기하듯) 일본군은 오는 6월 4일 현지 시각 아침 7시 정각에 북서쪽 325도 방향으로부터 러쉬를 와서 미드웨이로부터 175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관측될 예정입니다.
- 니미츠: 좋아~ 난 내 부하의 말을 믿는다. 참모진은 저 정보를 바탕으로 곧바로 작전을 짜도록 해라.

(나중에 실전 당일에)

- 아무개: 적 항공모함이 미드웨이 북서쪽 320도 방향, 180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관측됐습니다~!
- 니미츠: (시계를 보더니) 오~ 레이튼. 오차가 딱 5분, 5마일, 5도밖에 나지 않았군?
- 레이튼: 충성! 다음번엔 더 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무 상황에서나 저렇게 레이튼 소령 같은 뽀록을 만들 수야 없겠지만.. =_=;;윗사람, 경영을 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거, 숫자, 통계, 데이터를 좋아한다. 저게 뭔가 군대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일 잘하는 요령이고, 취업이나 이직을 준비할 때 좋은 인상을 주는 이력서를 작성하는 요령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또 하게 된 계기는 그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이었다. (미드웨이는 거의 2019년 말 개봉이었고 저거는 2020년 초였.. 시기가 아주 비슷하다)

  • 미쿡이 지난 반세기 이래 제일 낮은 실업률.
  • 700만 개의 일자리 창출, 지난 3년 동안 경제활동인구 350만 명 증가. 공장이 12000개 증설.
  • 어디 여성 취업률 72%..;;
  • 주식 시장 70% 성장, 국부 창줄 12조 달러.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우리민족끼리 평화, 착한 경제, 사람이 먼저 소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따박따박 무언가가 얼마만큼 생기고 경제가 살아난 걸 입증해 보이는 게.. 일단 말만 들어도 시원시원하다.

물론 숫자와 통계에도 속임수와 말장난과 조작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저것만 너무 집착하면 또 전시행정 같은 다른 부작용 폐단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숫자와 통계는 두리뭉실하지 않고 일단 객관적이다. 하다못해 그걸 까고 반박하는 거라도 정확하게 공략해서 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고, 최소한의 전문성과 책임감이 담겨 있다는 인상을 준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숫자를 이용할 뿐이다"란 말도 있잖느냐 말이다. (by 마크 트웨인 ㄲㄲㄲ)

우리나라도 근로자건 정치인이건 저런 사고방식을 지향하고 우대했으면 좋겠다.
자매품으로 '협상 잘하는 요령'은.. 영화 패트리어트에 나와 있다고 여겨진다. 민병대 대장인 마틴이 적진에 홀로 찾아가서 구라까지 쳐서 포로들을 무사히 데리고 온 거 말이다.

5. 미국의 인내심의 한계

미국은 복수귀로 돌변하여 일본을 차근차근 쳐발랐다.
그런데 전쟁이 너무 길어지고, 일본은 제 살 깎아먹으면서도 도무지 항복을 안 하면서 악으로 깡으로 미국에 출혈을 강요했다. 이오지마 전투의 트라우마까지 추가되니 미국도 점점 지치고 악이 받쳤다.

병사들은 일본군 skull trophy를 챙기는 지경이 됐고, 수뇌부들은 핵폭탄 등 온갖 극단적인 방법까지 고려하게 됐다.
핵 투하는 정말 인내심이 한계 중의 한계에 도달한 뒤에야 내린 극약 처방이었다. 미국은 그걸로도 모자라서 "쪽발이들은 이래도 항복을 안 할 것이다", "소련이라도 끌어들여서 힘을 합쳐 일본을 조져야 된다" 이런 비관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랬는데 리 승만 할배는 미국에게 그러지 말라고.. "니 혼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일본은 항복할 거다. 소련을 끌어들이지 마라. 전후에 한반도엔 미국만이 단독 진출해야 한다." 이렇게 독려했었다. 그게 해방 후 우리나라의 미래를 내다봤던 선견지명이었는데..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그 뒤 우리나라는 식민지 트라우마 때문에 신탁통치조차도 반대하고 남북분단을 선택했으며.. 그게 이제 반영구적으로 굳어져 버렸다.

Posted by 사무엘

2024/04/28 08:35 2024/04/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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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1. 기원전 500년대 부근

유대인 바빌론 포로기 때 갑자기 불교와 유교가 생겼고, 중국 대륙에서는 제자백가 어쩌구 하면서 사상계가 리즈 시절을 찍었다.
이건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트렌드였으며,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지구 연대기에서 다뤄지는 선캄브리아 시대랑, 우리나라 고조선 시대가 뭔가 좀 비슷하게 느껴진다. ㅋㅋㅋ

2. 고대의 여성 군주

어째 서기 600년대에..

  • 당나라 측천무후(690-705).. 물론 황제로 정식 등극하기 전, 황태후 시절에도 사실상 여왕 포스였음
  • 신라 선덕여왕(632-647), 진덕여왕(647-654)
  • 일본 천황 스이코, 고교쿠(642-645), 사이메이(655-661), 지토(690-697)

한중일 모두 군주 내지 통치자에 여풍이 강하게 불었던 것 같다!!! 신기하지 않냐? 더구나 한중일 중에서 일본의 여성 천황이 최초이고 원조였다고 한다. 일본은 에도 시대에 예외적으로 잠깐 배출된 예외 2명을 말고는, 여성 천황이 600~700년대에 집중적으로 배출됐었다!
우리나라는 전 역사를 통틀어 여왕은 신라 시대에 3명만 나왔고, 800년대 말의 진성여왕이 마지막이다.

측천무후는 자기 아들도 죽였고, 남편의 첩인가 다른 여자도 정치적 라이벌이라고 사지를 짤라서 항아리.. 아, 그냥 항아리도 아니지. 술독에다 담아서 죽였었다.;;; 라이벌들한테는 악마 그 자체였지만 백성들 통치는 그리 나쁘지 않게 했댄다.
그리고는 죽을 때 다 돼서는 인생무상을 느꼈는지 자기를 황제라고 부르지 말고 황태후라고만 부르고, 묘비에 글 남기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특이한 여자다.;;

여왕이라 하니 성경에서 솔로몬을 알현했다는 스바의 여왕이 생각난다. 마치 제사장 멜기세덱만큼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인물인 것 같은데.. 이게 웬걸, 예수님이 저 사람을 실존 인물로 언급하면서 "심판의 날 때 스바의 여왕이 너희를 책망할 것이다"라고 인증을 하셨다. 이는 그녀가 가공의 허구 인물이 절대 아님을 시사한다.

3. 전간기와 2차 세계대전

1933년부터 1945년은 일제의 폭주 흑화와 중일 전쟁,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집권기, 나치 독일의 집권기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참 암울하던 시기였네.. 일본에 2· 26 쿠데타가 있었다면 독일에는 수정의 밤, 장검의 밤 같은 사건이 있었다.
미국은 경제 대공황을 뉴딜 같은 자체적인 공공 근로 일자리 창출을 통해서 그럭저럭 건전하게 극복했다. 그러나 추축국 전범국들은 이 시국을 남의 나라 침략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 그러면서 세계를 지옥의 불구덩이 나락으로 빠뜨렸다.

그 뒤 2차 세계 대전은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는 걸로 시작됐다.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얽히고 소련이 얽히고 일본과 미국 태평양 전선까지 얽히면서 캐 난장판이 돼 버린 거다. 폭탄만 유폭하는 게 아니라 전쟁 양상 자체도 확전으로 치닫기 쉽다.

이런 전훈 때문에 훗날 우리나라 6· 25 때도 트루먼 대통령은 너무 호전적인 장성들을 찍어누르면서 전쟁이 세계 대전급으로 번지는 걸 막으려 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도 세계 각국이 확전 우려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일본 항복이 1945년 9월 2일이었으니.. 2차 세계 대전은 진짜 딱 6년 걸렸다. 8월 15일 이후에도 일부 전선에서는 짜끄레기 전투가 있었는데, 이때 전사한 군인은 정~~~말 운 없고 안타까운 사람이긴 하다. >_<
단, 2차 대전의 실질적인 시작에 대해서는 태평양 전쟁과 독소 전쟁까지 시작된 1941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더 이전 1937년 중일 전쟁까지 포함시키는 견해도 있다.

4. 전쟁의 종결과 지도자의 사망

  • 임진왜란의 말기엔 침략자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
  • 2차 세계 대전의 말기엔 연합국 지도자인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죽었다.
  • 6· 25 전쟁의 말기엔 침략 전쟁을 승인하고 지원해 준 쏘련 스탈린이 죽었다.

5. 20세기 후반에 한중일의 정치 행태

  •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1987년까지 25년이 넘게 군사 정권을 경험했다.
  • 대만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38년 동안 계엄 상태였다.
  • 일본은 1955년부터 1993년까지 자민당이 38년 동안 독주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1955년은 원조 쌍팔년도(단기 4288)라고 불리면서 뭔가 의미가 부여되어 있으니 흥미롭다.

※ 우리나라 -- 20세기

6. 20년 텀

20세기에 기가 막히게 정확하게 적중한 “20년 텀 예상/예언”이 둘 정도 있다.

(1) 먼저, “이 베르사유 조약은 영원한 평화는 개뿔이고 기껏해야 20년 정도의 시간밖에 못 벌어 줄 것이다” (by 페르디낭 포슈)
양 세계 대전 사이의 전간기는 정말로 2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1918~1938) 저 사람은 예언이 성취되는 걸 못 보고 1929년에 죽었다.

(2) 그리고 우리나라의 원자력 개발이다.
'워커 리 시슬러'(1897-1994) 박사는 1956년, 한국을 찾아와서 할배에게 "우라늄 1g이 석탄 3톤을 태운 것과 맞먹는 열량을 낼 수 있다. 이 자원 없는 나라에서 에너지 걱정 없이 사는 길은 원자력 육성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인재를 육성하면 된다. 지금 시작하면 한 20년 뒤에는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예측했는데... 그 말이 진짜 씨가 되었다.

이 말을 들은 리 승만 할배는 서울대와 인하대에 원자력공학과를 신설하고, 없는 나라 살림으로도 국비 유학생을 보내서 원자력 전문가를 양성했다.
1959년 7월 14일에는 지금의 서울 과학기술대, 그 당시엔 행정구역상 경기도 양주이고 서울대 공대가 있던 자리에 한국식 원자로의 건설을 시작했다.
(거의 두 주 뒤인 7월 27일엔 인천-안산 앞바다에서 3단 로켓 발사 시험까지 한 건 덤.. 1959년 7월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에서 기념비적인 시기였다)

이런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거의 20년 뒤인 1978년에 부산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건설에 거의 6년이 걸렸으니 박통의 제8대 유신 임기 내내 건설된 거다.
경부 고속도로나 포철과 달리, 원자력 발전은 전임 대통령의 인재 육성 없이는 이뤄질 수 없었다. 아무튼 이것도 전간기만큼이나 기막힌 20년이었다는 거다.

7. 1982년의 반일 트렌드

이때 일본에서 고등학교의 역사 교과서에서 동아시아 근현대사 설명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형태로 잔뜩 변개를 했는가 보다. 침략을 진출이라고 바꾸고 자기들이 한국과 중국을 근대화시켰다고 쓰기라도 했는지?
아무튼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난리가 났고, 오죽했으면 다음과 같은 일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벌어졌다~!

  • 독립기념관 건립 시작
  • 조선어 학회 사건의 당사자였던 박 영희 여사가 커밍아웃하여 일본를 공개 규탄
  • 독도는 우리땅 노래 발표

물론, 82년에는 반일이었고, 이듬해 83년에는 아웅 산 테러와 007 피격 사건 때문에 반공으로 트렌드가 금세 바뀌었다. -_-;;

8. 1994~1996년 사이에

  • 1995년 1월부로 방위병 제도가 폐지되고, 대한뉴스가 없어졌다.
  • 그리고 이때부터 지금 당연시되고 있는 쓰레기 종량제가 시행되어서 유료 쓰레기 봉투라는 게 보편화됐다.
  •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직할시가 광역시로 바뀌었고.. 서울에 광진구, 금천구, 강북구가 신설되었다.
  • 1996년부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었고..
  • 우리나라는 WTO(세계 무역 기구, 1995)와 OECD(1996)에 가입했다.

9. 1999~2000년 세기말에 잠깐 불었던 이집트 트렌드

  • 만화영화 이집트의 왕자
  • 게임 툼 레이더 4
  • 영화 미이라 시리즈
  • 이 정현 3집 '너'

이건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지만.. 신기하지 않은가? 옛날 추억 돋는다. ^^

※ 우리나라 -- 21세기

10. 2002년의 IT 업계

2002년은 월드컵과 제2 연평해전뿐만 아니라, 국내 컴퓨터 업계에서 이런 흑역사가 만들어졌다.

  • 이스트소프트에서 alz 포맷 도입 (정확히는 01년 말)
  • '다음'에서 온라인 우표(4월) 도입. 엄청난 반발과 부작용 끝에 3년쯤 뒤에 폐지
  • 프리챌 유료화 선언(11월).

하지만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프리챌은 유료화를 잘못 밀어붙였다가 완전히 망했다.
한때 우리나라 압축 유틸을 선점했던 이스트소프트의 알집은 주도권을 반디소프트 반디집에게 완전히 빼앗겼다.
슬그머니 유료화해 놓고는 기업· 관공서를 상대로 불법복제 고소질=_=, 거기에다 알집과 알FTP는 한때 사용자의 데이터를 날려먹는 치명적인 안정성 버그까지 있어서 컴터 매니아들로부터 호감을 완전히 잃었다. 뭐, 이것도 다 10수 년 전 과거의 일이지만 말이다.
이스트는 이제 알툴즈 브랜드를 버리고, 온라인 게임이나 AI로 먹고 살려고 노력 중이다.

다음도 온라인 우표 때문 '만'은 아니지만 검색, 카페, 블로그까지 차례차례 경쟁사 네이버에게 점유율을 빼앗기고 현재는 2류 포털 정도의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그 반면, 네이버는 저 2002년 10월경에 지식인이라는 걸 최초로 도입하면서 도약· 약진을 시작했다. 자연어 검색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은 저 서비스가 벌써 20+n주년이라는 게 믿어지는가?

저건 서포카 출신의 컴공 병특 엔지니어들을 갈아넣으면서 개발한 거라고 전해진다. 그 전엔 자연어 검색은 엠파스가 강자였었는데.. ㅎㅎ
다만, 네이버도 세계구 급의 영원한 강자는 절대 아닌지라, 구글과의 검색 결과 격차는 이미 너무 벌어진 듯하다. ㅠㅠㅠㅠ "아래아한글 vs 마소 워드"이던 게 지금은 "네이버 vs 구글"처럼 돼 간다.

11. 나머지 2000년대 국내 전반

2003년은 국내 과학기술인의 부고 소식이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카이스트 풍동 실험실 폭발 사고, 그리고 그 해 말, 남극에서 전 재규 대원의 조난과 순직.

2005년에는 박 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이념 논쟁이 갑자기 좀 불거졌다.
민문연에서 펴낸 "만화 박 정희", 시스템클럽 지 만원· 진 중권 토론,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2002~05년은 뭔가 우리나라 영화의 중흥기였던 것 같다. 본인의 대학 시절과도 일치하는데, "태극기 휘날리며", "지구를 지켜라"(!!!!), "살인의 추억" 등, 명작 영화가 유난히 많았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영화 중흥기는 1966년 부근과 저 2004년 부근이다.

2004~08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는 주40시간 근무, 일명 주5일제가 시행되고 정착했다. 그 전 44시간 시절에는 격주로 일토· 놀토 이러는 과도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대학 졸업 후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시기와 딱 일치한다.

2007년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개정됐다. 악명 높던(?)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이 '그냥 충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5000원부터 시작해 신권 지폐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2009~2010년 무렵엔 우리나라의 보행자 통행 방향이 우측통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자전거의 핸들 브레이크도 오른손이 앞바퀴, 왼손이 뒷바퀴에 대응하다가 이때부터 반대로.. 오른손이 뒷바퀴로 바뀌었다.

2010~2011년엔 국군 전투복이 지금 형태로 싹 바뀌었다.
그리고 2010대 동안은 IE6 퇴출, 주민등록번호 수집 폐지, 플래시 퇴출, 도로명 주소 시행, 대체공휴일 도입 같은 일이 있었다. 2020년대에 와서는 IE 자체가 퇴출됐고 말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23/12/25 08:35 2023/12/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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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승리와 패배의 조건

전쟁에서 졌다는 게 꼭.. 적국이 우리 영토에 쳐들어와서 관광 플레이를 시전하는 바람에 우리나라가 2차 세계 대전 때의 독일이나 일본처럼 "무조건 항복.. 우리가 졌스므니다~" 이러면서 싹싹 비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쟁에서 승패가 결정됐다고 해서 패전국이 반드시 체제가 싹 바뀌고 영토나 배상금을 왕창 뜯기지는 않는다.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승리가 있고, 져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패배가 아닌 패배가 있다.

제일 좁게 기계적으로는.. 공격자든 방어자든 전술적인 목표를 달성하면 승리이고, 그렇지 못하면 패배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어자가 공격자보다 이기기가 훨씬 더 쉽다. 방어자는 존버해서 현상 유지만 해도 승리이기 때문이다.

6 25는 휴전이 아니라 이 상태로 전쟁이 끝나 버린 거라고 본다면, 한낱 무승부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이긴 전쟁이다. 물론 단독이 아니라, UN군과 함께 싸워서 이긴 것이고..
임진왜란도 당연히 방어에 성공한 조선의 승리(조선/명 연합군)이다. 단지, 조선도 피해가 너무 막심했기 때문에 이건 전리품 잔치를 벌이는 그런 승리가 아니었을 뿐이다.

러일 전쟁은.. 일본이 설마 그 대국 러시아를 완전히 굴복시킨 건 전혀 아니었다. 자기도 전쟁 때문에 재정이 파탄 나기 직전이었는데 전쟁 배상금 따위도 전혀 요구하지 못하는 '상처뿐인 영광'을 얻었을 뿐이었다. 허나,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사할린 지역을 빼앗는 '전술적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명백한 일본의 승리로 평가되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은 거의 미국의 대리전처럼 여겨지긴 한다만, 남베트남이 지고 베트콩이 이긴 전쟁이다. 허나, 그렇다고 미국이 화력의 열세 때문에 전투에서 병력을 다 잃고 패배해서, 무슨 베트콩한테 백기 들고 투항하고 항복 문서에 싸인하는 식으로 패배한 건 전혀 아니다. 여러 이유 때문에 전투를 계속할 명분을 잃어서 그냥 싹 철수만 했을 뿐이다.

이런 걸 보면.. 전투에서의 승패가 전쟁에서의 승패와 꼭 일치하지도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중일 전쟁만 해도 중국이 전투에서는 일본한테 수없이 졌지만, 결국 전쟁은 이겨서 전승국 대접을 받았다. 영토와 인구빨이 있어서 계속 후퇴할 공간이 많고 일시적인 전투 패배를 수습할 만한 충분한 맷집이 있는 나라가 이런 상황에서 더 유리한 것 같다.

전쟁에서의 승패뿐만 아니라 '전멸'의 의미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통용되는 의미(마지막 한 사람까지 몽땅..)와 실제 군사적으로 통용되는 의미가 다르다. 현실에서는 병력을 훨씬 덜 잃어도 정상적인 부대와 전투력 유지가 더 안 되면 전멸로 판정하며, 철수하거나 추가 지원을 받는다.

전투의 목표도 적군을 꼭 죽이고 몽땅 다 파괴하고 부수는 게 아니다. 그저 적군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고 제압 내지 무력화시키는 것이 목표이다. 죽이는 건 그렇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다.
전시의 군대는 정말 냉혹한 결과 실적 지상주의로 돌아간다. 평소에 아군을 왕창 악랄하게 지지고 볶고 갈구더라도, 어쨌든 전투에서는 이기게 하는 지휘관이 당연히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방망이 깎던 노인 타입이 군대에서는 대접받는다.

2. 전범

한편으로 '전범'이란 '전쟁 범죄' 또는 '전쟁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준말이다.

(1) 수뇌부의 입장에서는 명분 없는 불법 침략 전쟁을 일으키면 그 자체가 전범이 된다. 고위 정치인 내지 별 달린 장군 정도만이 이 유형의 전범이 될 수 있다.
단, 현실에서는 그렇게 전쟁을 벌이고도 "졌을 때만" 전범으로 몰려 처벌받는다. 쿠데타만 해도 성공하면 혁명이니 구국영웅이니 하면서 추앙받지만, 실패하면 주동자가 영락없이 역적 정치범 내란수괴로 몰리지 않던가? 전쟁도 이와 비슷하다.

물론, 여기서 진다는 건 더 수지맞지 않아서 점령지를 슬쩍 철수하는 정도가 아니라, 반격을 당해서 자기 나라가 다 망하게 생겨서 싹싹 비는 정도로 지는 것을 말한다.

(2) 다음으로, 전투를 실제로 수행하는 실무자의 입장에서 전범이 되는 방법은 전쟁 명분과는 전혀 무관하다.
무장한 적군이야 전장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떤 방식으로 낚고 속이고 죽이든, 윤리 논란 따위 당연히 만무하다. 단지, 그 적군이 다치거나 포로가 됐거나 아예 항복을 해서 전투력을 상실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인도주의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하지 않고 이런 적군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것, 포로를 반인륜적으로 학대하는 것,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고의로 약탈· 학살하는 것은 제네바 협약 위반이며 전쟁 범죄로 간주된다.
정상적인 군대라면 이런 건 자국 군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적발하고 처벌해서 근절해야 한다. 그러면 그건 국제적인 전쟁 범죄 문제로 불거지지 않고, 해당 범죄자만의 예외적인 일탈로 간주되고 넘어간다.

사실, 군인들도 감정이 있으니 방금 전까지 전우들을 죽인 이놈들한테 당장 보복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현실적으로 다 컨트롤 하기 어려운 면모도 있다. 그러나 지휘관인 장교 차원에서 이런 짓을 조직적으로 묵인하거나 조장한 게 밝혀지면 영락없이 전범으로 몰리게 된다.
이건 승전/패전과는 전혀 무관하게 공평하게 처리해야 하는 사항이지만, 이 역시 현실적으로는 패전국에 대해서만 더 집요하게 거론되고 터는 편이다.

그런데 1번 같은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불의한 나라라면 그 과정에서 휘하의 지휘관들이 어차피 2번과 같은 범죄도 매우 높은 확률로 저지르며, 윗대가리들이 이를 막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1번에 해당하는 전범은 대부분의 경우 어차피 2번에 대한 책임까지 지워지면서 더욱 지탄받게 된다.

3. 포로

(1)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군인이 나라 지키려고 전투 과정에서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 무장한 적군을 죽이는 것은 자국 법으로나 국제법으로나 성경적으로나 죄가 전혀 아니다. 군인은 적국에 포로로 잡혀 간다 해도 "너 왜 우리 병사 죽였어?" 이런 추궁을 받을 일은... 없다. 그건 적군도 똑같이 하고 있는 짓이니까.

글쎄, 혼자 너무 심하게 악랄한 명성을 떨쳤던 유명 저격수나 삼손 같은 인간흉기, 초특급 에이스 파일럿이 포로로 잡혔다면 곁의 병사들에게서 개인적으로 감정적인 해코지를 당할 수 있지만.. 그것도 명목상으로는 불법이다.
그 대신 군인은 자기가 적군에게 죽는 것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다. 이런 특성이 있으니 군인은 전시에 민간인과 다른 취급을 받는 거다. 자기 목숨은 자기의 전투 능력으로 알아서 챙겨야 하며, 자기가 전사하게 되면 자국으로부터 호국영령으로 어지간한 의인 의사자를 아득히 능가하는 예우를 받는다.

군인이 교전 중에 전사하는 건 민간 생명 보험으로도 보장이 안 된다. 천재지변이나 사변처럼 영역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서킷에서 카레이싱 때 발생한 사고가 통상적인 자동차-운전자 보험으로 보상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쉽게 말해, 배에 돈 내고 탄 승객이랑 거기서 근무하는 선원이 조난 사고 때 역할과 취급이 서로 같을 리가 없다.

(2) 군인이, 특히 지휘관이 자기 할 바를 다하지 않고 제멋대로 전투를 거부· 포기하고 적에게 투항한다면? 군수물자를 스스로 없애 버리거나 아예 적에게 건네준다면..? 그건 사형으로도 모자랄 중죄 대역 반역이다. 그 어떤 민주 인권 국가라도 이런 극단적인 죄는 사형으로 다스린다. 옛날처럼 사지를 찢지는 않는 게 감지덕지일 것이다.

하지만 보급도 지원도 없고 정말 개죽음이 뻔한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항복· 후퇴하거나 포로로 잡힌 건 당연히 면책이며 그래야만 한다. 단순히 인권· 도의적인 차원이 아니다. 그렇게 해 줘야 패잔병들로부터 전투 경험과 노하우가 전수될 수 있고, 그들이 자포자기해서 아예 완전히 탈영해 버리는 걸 막을 수 있다. 전투에는 졌지만,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히지 않고 도망쳐서 살아서 돌아오는 것도 어지간한 운과 실력이 따라 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데서까지 무조건 항복이나 후퇴를 금지하고 닥치고 정신력 근성 깡 드립에 영예롭게 죽으라고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는 건 지휘관의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이게 사랑의 체벌과 아동학대, 안락사 살인과 연명 치료 중단처럼 종이 한 장 차이로 판정이 참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3) '포로'를 영어로는 prisoner of war이라고 한다. 포로는 비록 정치· 군사적인 이유로 인해 자유를 박탈 당한 prisoner이지만, 군인의 직무 특수성으로 인해 여느 범죄자와는 성격이 다른 사람이다.
이와 비슷하게, 신념을 갖고 법과 공권력에 저항하다가 수감된 일명 '양심수'를 영어로 prisoner of conscience라고 한다. 이런 사람도 여느 범죄자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우리나라의 교정 시설에서는 평범한 사기· 상해· 절도 등의 대다수 잡범은 하양, 캐 흉악범 사고뭉치 요주의 인물은 노랑, 약쟁이는 파랑, 사형수는 빨강.. 이렇게 죄수복 명찰의 배경색을 달리하여 죄수들을 분류한다.
그런 것처럼 양심수라든가, 아무런 고의 없이 전적으로 과실로 금고형 정도 받은 죄수는 초록으로 분류해도 될 법해 보이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어서 초록색은 안 쓰는가 보다.

예수쟁이라면 prisoner of war, prisoner of conscience의 연장선상에서 성경에 나오는 prisoner of Jesus Christ (엡 3:1, 몬)와 prisoner of the Lord (엡 4:1)를 상기하면서 바울의 저 당시 심정을 생각해 보자. 전쟁이나 다른 신념 때문이 아니라 '그분'으로 인해 박해받고 수감당했다는 뜻이다. '양심수'와 같은 방식으로 조어한다면 '예수囚' 정도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3/12/22 08:36 2023/12/2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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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드웨이 다음으로 "남자들의 야마토"(2005) 영화를 보니 뭔가 참 짠하다.
야마토 급 전함은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군이 운용했던 초대형 군함으로, 항공모함이 아니라 함포만 쏘는 전함 중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배였다. 거의 타이타닉의 군함 버전과 비슷하달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3년 전, 미드웨이 시절엔 일본군도 항공모함들을 운용하면서 비행기 날리고 미군을 굉장히 악랄하게 괴롭혔었다. 그러나 미드웨이, 과달카날, 레이테 만 등의 전투에서 연달아 패하면서 그들은 그 병력을 다 날려먹었다.

1945년 4월, 야마토는 아군을 지원하러 오키나와로 가던 중, 아군 비행기 한 대 없이 기관총과 함포나 찍찍 갈기면서 100여 기나 되는 미군 날파리 비행기들을 힘겹게 상대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다가 어뢰와 폭탄을 잔뜩 맞고 장렬하게 박살나 버림으로써 인류의 전쟁사 전체를 통틀어 불멸의 안습한 이름을 남겼다.

미드웨이 시절에는 미국 어뢰가 불발 불량이 많았었던 반면.. 야마토 때는 그렇지 않고 펑펑 잘도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어떤 문제가 있으면 바로 시정하고 수학· 과학을 동원해서 시스템을 개선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저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은 물자 생산량이 늘고 공장 근로자와 병력의 숙련도가 올라갔다. 그 반면, 일본은 국가 인프라가 망가지고 사람과 물건의 질이 떨어지고, 전쟁을 더 지속할 수 없는 막장 상황으로 치달았다.

2.
사실, 야마토의 마지막 임무는 애초에 아무 승산 없고 꿈도 희망도 없는 개죽음 임무였다.
하지만 천황 폐하께서 "그럼 이제 군함은 더 없는 건가?"라고 물으시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는 개뿔, 야마토도 남김없이 옥쇄시켜야 해군 수뇌부들의 가오가 선다. 그래서 "오키나와에 가서 뼈를 묻으라" 명목으로 출격한 것이었다.

미군의 정찰기와 잠수함들은 야마토가 움직이는 걸 곧장 다 파악해 버렸다. 야마토 운전실에서조차 "이제 뭐 경로를 훼이크 칠 필요도 없겠군. 오키나와로 직선 거리로 가도록 한다. 변침 실시~" (정찰기한테 발포한 뒤) 이렇게 대응했다.

그 뒤 전투 과정에서 기적 같은 건 없었다. 야마토는 목적지에는 당연히 못 가고 격침됐다.
야마토에서 3천여 명(전체 승조원의 90% 이상), 호위하던 아군 구축함과 경순양함의 승조원까지 포함해서 4200명에 달하는 자국 군인들이 전사했다.
그 동안 야마토가 총포 쏴서 필사적으로 떨군 미군 비행기는 딱 13대요, 미군의 전사· 실종도 딱 13명이었대나 어쨌대나.. 우금치 전투를 조선 동학뿐만 아니라 일본 해군도 치른 거나 마찬가지였다.

3.
이 야마토는 타이타닉보다 더 큰 덩치에(약간만 더 큼) 당시 일본 국가 예산의 무려 2%를 소모해서 만든 미친 물건이었다.
(참고로 1960년대에 미국이 인간을 어떻게든 쏘비에트보다 먼저 달에 보내려고 NASA에다가 매년 꼬라박았던 돈지랄이 자기네 정부 예산의 1~3% 그랬었음)

야마토는 자국의 최고 과학 기술에, 돈지랄에, 자존심이 몽땅 동원된 최고의 기함이었다. 일반 촌뜨기들이 보기엔 가히 SF 급의 기계가 아니었을지? 승조원은 무려 3천 명을 넘었으며, 때문에 이 승조원들에 대한 복리후생도 단연 최고였다.
1940년대엔 자국 국민들이 배급이 부족해서 쪼들리고, 동남아로 간 육군 땅개들이 쫄쫄 굶으면서 개고생 하고 괴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야마토에서는 그 와중에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쌀밥에 고기 통조림과 과일이 배급됐다.

얘는 배 크기에 걸맞게 함포도 거대했다. 1.5톤짜리 포탄을 쏜 주포의 사정거리가 무려 40km에 달했다. 포의 구경이랑 장갑의 두께가 다 비슷하게 400mm대였다는 게 흥미롭다. 참고로 나치 독일의 구스타프 열차포는 구경이 800mm..;; 비슷하게 정신나간 괴물이었다.

허나, 야마토는 배를 너무 크게 만든 게 계륵이 돼 버렸다.;; 한창 싸워야 할 때는 전투력 보존 차원에서 야마토 호텔짓을 너무 오래 하다가.. 나중에 지원 유닛을 다 잃은 뒤에야 너무 늦게 투입되었다.
그리고 승조원들 복지는 최고였지만, 급탄이나 조준 등 전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설비는 미국 군함 대비 많이 낙후하고 기술이 딸렸던 듯하다.

야마토는 건조되던 당시부터 전함으로 만들지 항공모함으로 만들지가 해군 수뇌부의 고민거리였다고 한다. 이때도 실용적인 이유보다는 높으신 분들의 간지 체면 명분이 개입해서 전함이 선택됐던 듯하다. 그 시절에 전함이냐 항모냐 하는 고민은 IT 업계에서 웹이냐 모바일이냐, 무슨 플랫폼이 뜨냐 하는 고민의 20세기 초중반 군대 버전이었지 싶다.

4.
타이타닉 호가 동형함/자매함으로 브리타닉과 올림픽이 있었듯, 야마토도 1호인 야마토 이후로 '시나노'와 '무사시'라는 이름의 자매함이 있었다.

나중에 건조된 '무사시'는 1944년 가을의 레이테 만 해전에서 직싸게 얻어터지고 원조 '야마토'보다 먼저 격침 당해 없어졌다. 그래도 이 배는 물이 새면서 곱게(?) 침몰했으며, 승무원들도 전투 후에 모두 갑판 위에 모인 채로 곱게(?) 퇴함하고 구조될 수 있었다. 비록 전투 중에는 주변이 생지옥이었더라도 말이다.

그 반면, 야마토는 끝까지 남겨져 있다가 더 외롭고 더 처참하게 부서졌다. 침수 때문에 곱게 침몰한 게 아니라 배가 옆으로 완전히 자빠졌으며, 이때의 충격 때문인지 탄약고까지 유폭해 버렸다.
그야말로 천지가 다 울리는 굉음과 불기둥이 발생하면서 야마토는 무슨 타이타닉처럼 둘로 쪼개져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상당수의 승조원들은 자기 위치에서 퇴함 명령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채 몰살 당했다. 오죽했으면 그 대폭발 후폭풍에 휘말려서 삐끗거리고 추락한 미군 함재기도 있었을 정도이니.. 마지막 순간까지 적과 동귀어진을 하긴 했다. -_-;;

참고로, 야마토 급 전함 중에서 딱 하나 '시나노'는 전함으로 만들던 중에 유일하게 항공모함으로 설계가 변경되었다. 하지만 1944년 11월, 취역한 지 겨우 9일 뒤에 구레 기지로 이동하던 중에 미군 잠수함 겨우 한 척으로부터 어뢰 4발을 맞고 격침당해 버렸다. 수많은 함재기들로부터 다구리 당한 것도 아닌데, 제대로 비행기 하나 못 띄워 보고 생을 마감했다.

얼마나 돈 많이 쓰고 고생해서 그 큰 배를 만들었을 텐데, 최후가 다들 이랬다. 그나마 '무사시'가 제일 평범한 최후인 것 같고 '시나노'는 너무 황당하고 허무하다. 제일 마지막에 제일 처절하게 죽은 '야마토'가 제일 주목받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어 보인다.
(여담이지만, 타이타닉과 야마토는 해저 탐사를 통해 잔해가 발견된 시기도 1985년 7~9월대로 비슷하다. ㄲㄲㄲㄲㄲㄲ)

5.
이런 사연이 있으니, 일본에서는 영원한 자기들 국뽕인 러일 전쟁 쓰시마 해전 영화뿐만 아니라 반대로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해전 영화도 만들었구나 싶다. 그것도 2005년, 종전 60주년 기념 명목으로 말이다. 오늘날은 그런 큰 전함을 만들 일 자체가 없어졌으니 더욱 추억 돋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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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현 구레 시에 있는 해사 역사 과학관에는 야마토 전함의 1/10 크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야마토~! 왕년에 자기들이 만들었던 왕창 큰 전함을 잊을 수가 없다.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만도 하다.
그래서 쟤들은 창작물에 은하철도 999만 있는 게 아니라 우주전함 야마토도 있다. 전쟁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정서적으로 도저히 상상이 안 될 것이다.

쉽게 말해 일본인에게 야마토는 한국인에게 거북선과도 같은 존재이다. ㅡ,.ㅡ;;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도 "우주전함 야마토"를 따라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1979)이라는 애니를 만들다는 걸 생각해 보자. 서로 자기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군함인 것이다.;;

또한, 일본 해군은 육군과 달리, 조선인 강제 징용이라든가 현지 민간인 학살 같은 전쟁 범죄와 접점이 (거의) 없다. 바다에서 미군 함재기들을 상대한 일본 해군 수병 중에 조선인이 있었다거나 한 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울나라의 손 원일이니 심지어 신 성모니.. 하는 사람들도 다 그냥 상선사관 출신이지, 일본 해군 출신.. 이딴 커리어 전혀 없다. 아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야마토를 그리워하는 것 자체를 뭐 군국주의 전쟁 범죄 미화 급으로 불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 봤자, 나라 등골을 짜내서 만든 배가 저렇게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사라졌구만.. 그거 만들고 운영할 돈으로 차라리 다른 경제 발전이나 도로· 철도 건설, 자국민들 복지를 하는 게 결과적으로 더 나았을 것이다.. -_-;;;
쓸데없이 남의 나라 침략하고, 그걸 저지하는 강대국들한테 개기느라 더 손해 보고 쪽박 찼다.

영화는 나름 고증 훌륭하고 그 시절 재현을 객관적으로 잘한 것 같다. 심지어 정신주입봉으로 후임들 줘 패는 씬도 들어가 있다. 적인 미군 쪽은 그저 비행기로 야마토를 때리기만 할 뿐, 딱히 사람 출연이나 대사가 없는 것 같다.

※ 관련 무기 발전사 여담

(1) 해군
전근대 시절엔 해군· 수군이라는 건 아주 위험한 보직으로 여겨지고 엄청난 기피 대상이었다. 군인과 뱃사람의 믹스인데 일이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땅도 아니고 바다에서 죽어서 가라앉으면 시체도 못 찾는다. 그러니 험악하고 질 낮은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해군만 그 정도로 독보적으로 열악한 건 아니다. 열악하고 시체 못 찾는다는 독보적인 특징은 일반 배가 아니라 잠수함 정도로 넘어간 듯하다.
어느 나라건 해군은 육군과 다른 흰색 아니면 남색(네이비색)의 뽀대 나는 전투복을 입고, 문화와 관습이 뭔가 다른 게 있다. 일단 육지 야전에 맞춰진 위장을 전혀 할 필요 없으니, 전투복 색깔이 완전히 다르긴 하겠다. ㄲㄲㄲㄲ

단, 요즘은 해군이 배 타고 있는 중에는 저녁에 쉴 때도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는 점이 육· 공군 대비 큰 단점이 돼서 병 복무를 기피할 지경이 됐다고 한다. 우와 이건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 했네..;;

(2) 거함거포주의
야마토 전함은 '거함거포주의'에 종지부를 찍은 예시라고 역덕 밀덕들한테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까지는 해전이란 게 배끼리 총포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러일 전쟁이나 1차 대전). 그러니 배를 크게 만들어서 멀리 항해하고, 포도 강하고 사정거리 길게 하는 게 장땡이었다.

그러나 포를 아득히 능가하는 병기인 비행기와 미사일이 발명되면서 배는 민간 상선과 군함을 불문하고 예전보다 작아지게 됐다. 타이타닉 같은 대형 장거리 여객선이 없어졌고, 군사에서도 대형 전함이 퇴출된 것이다. 이건 마치 PC통신이 인터넷에 밀려 없어진 것만큼이나, 재래식 갑옷이 총 앞에서 퇴출된 것만큼이나, 재래식 공성전이 퇴출된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배가 비행기를 직접 품든지. 떠 다니는 공항인 항공모함만이 왕창 거대하다. 그리고 얘는 잠수함이나 상륙함처럼 군 전용이다.
일본은 항공모함이고 레이더고간에.. 처음엔 자기들이 먼저 도입해 놓고는 그걸 제대로 끝까지 활용을 못 했다.

(3) 공작함
옛날 2차 세계 대전 시절에는 공작함이라는 게 있어서 전투 중 손상을 입은 군함을 현지에서 즉석 수리를 했다. 의무병의 선박 버전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일본이 태평양 전쟁 당시에 딱 한 대 운용했던 아카시 공작함은 배에다가 간이 제철소 조선소를 얹은 수준이었다. 얘는 멀리 나가 있던 자기네 군함들을 현지에서 수리함으로써 전투력 유지에 큰 도움을 줬다.

그러나 오늘날은 미사일 한 방 제대로 맞기만 하면 그대로 수리 불가 격침이다. 그렇잖아도 배가 예전처럼 크지도 않으니..
이 때문에 공작함이라는 것도 유행이 지나고 퇴출됐다. 기존 군수지원함에다가 아주 경미한 파손이나 수선하고 부품을 교체하는 정도이지, 제철소 조선소 마이너 버전 급의 전용 공작함을 운용하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전근대 시절엔 무기가 화력이 약했기 때문에 바다에서도 사람끼리만 총질 칼질이지, 배는 그냥 나포했었는데 말이다. 참 격세지감이다. 배에 불이 나면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까지도 나서서 불 끄는 걸 거들었다. 나포해야 할 적선이 통째로 사라지면 자기들도 손해니까..

아까 얘기했던 저 아카시 공작함은 미군의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제거 대상이었다. 1944년 3월에 진작에 격침 당했으며, 얘가 없어진 뒤부터 일본 해군의 전투력은 실제로 유의미하게 하락했다.

(4) 항공모함
핵무기와 미사일, 제트기가 2차 세계 대전 말미에 첫 등장했다면, 항공모함이라는 건 1차 대전 말미에 첫 등장해서 전간기 때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복엽기가 배 위에서 뜨고 내리는 광경이 극히 드물게나마 있긴 했다는 뜻이다.
그때는 이 분야가 최초로 개척되고 있었으니 반은 전함 포탑이고 반은 활주로인 '항공전함'이라는 것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할이 어중간한 짬뽕이니 그런 건 폐기되고 역할이 세분화 전문화됐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잠수함에다가 항공모함의 기능을 얹을 생각을 했었다. 허나, 인류의 과학 기술로는 그런 건 영 무리.. 이제 잠수함은 비행기가 아니라 미사일이나 쏘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 작은 드론, 무인기 정도 날리는 항공모함은 잠수함 버전이 있을 수도 있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3/10/25 08:35 2023/10/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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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먼 옛날.. 특히 성경 시대

(1) 처음엔 병거라는 게 운용되다가 나중에 군인이 직접 말에 타는 걸로 바뀌었다.
모세 일행을 추격하러 나섰던 이집트 군대, 엘리야의 승천 장면.. 그러다가 요한계시록의 말 탄 자들
안장과 등자가 발명되고 말이 품종 개량되어 덩치와 체력이 커진 덕분이다.

(2) 옛날의 공성전의 후신이 오늘날로 치면 참호전 정도 되겠다.

(3) 그러고 보니 성경에는 수많은 전투 장면이 나오지만, 딱히 해전이 기록돼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요나서와 사도행전이 바다 냄새 풍기는 스토리가 많기는 하지만.. 그건 그냥 평범한 항해와 난파 얘기이니까..

1. 육군, 총기

(1) 주 무장이 냉병기에서 화약 총포로 바뀌면서, 군인과 무인은 영역이 달라지고 차이가 더욱 커졌다. 무인과 가깝고 개인의 피지컬이 크게 부각되는 병과는 특수부대나 저격수, 공작원 같은 쪽으로 세분화되고, 장교보다는 부사관의 성격이 강해졌다. 큼직한 방패나 금속 갑옷이 없어지고, 방어구는 방탄모나 방탄조끼 정도만 남았다.

(2) 1700년대까지만 해도 군인들이 빨강 파랑 등 화려한 군복을 입고 직접 전장에서 싸웠지만(나폴레옹, 미국 독립전쟁 등).. 지금은 그렇지 않고 그냥 활동하기 편하고 위장 잘 되는 칙칙한 색상으로 전투복이 싹 바뀌었다. 이젠 계급장이 눈에 너무 잘 띄는 것조차도 실전에서는 위험한 지경이니까.. 무연화약이 발명되고 개인 각개전투가 가능해진 덕분이다.
화려한 군복은 사관생도 예복으로나 남아 있다. 제식이나 총검술 같은 그냥 옛날 군대 legacy이다.

(3) 총이 발명되기는 했지만,
옛날에는 화약 가격이 그렇게도 비싸서 천하의 영국군 레드코트조차도 실탄 쏘는 훈련을 평소에 좀체 못 할 정도였다고 한다.
훗날 1차 세계 대전 때는 유대인 과학자 ‘하임 바이츠만’이.. 화약 만들 때 필요한 아세톤을 쉽고 저렴하게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해서 나라를 구하고 영국의 승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4) 공용화기인 기관총 말고, 개인화기가 방아쇠를 누르고만 있으면 두두두두 갈겨지는 ‘자동’ 모드까지 지원하기 시작한 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총은 전문적인 기관총이 아니기 때문에 방열 능력에 한계가 있는지라, 정말 1시간 동안 계속 갈기고 있을 수는 없다.

19세기 사람들은 기관총만 갖고도 너무 놀라서 이제 사람들이 무기의 위력이 너무 무서워서 전쟁을 선뜻 못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실제로는 기관총만으로는 충분치 않았고, 나중에 핵무기까지 발명된 뒤에야 진짜 현타가 찾아오게 됐다.

권총은 작아서 불순한 용도로 은닉하기 쉽기 때문에, 군용 소총은 사정거리 길고 위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규제가 심하다. 민간인이 수렵이나 호신 용도로 그나마 가장 쉽게 구경하고 보유할 수 있는 총은 위의 두 속성과는 거리가 먼 산탄총이다.
권총은 경찰에게 적합하다. 군대에서는 빈약한 보조 무장에 지나지 않지만, 경찰에게는 그게 삼단봉이나 테이저 건 다음으로 최후에 등장하는 최강의 무력이다.

2. 해군

(1) 목재 범선 시절에는 배수량 겨우 몇백 톤짜리 작은 배에 수십 명의 선원이 타고 대양을 건너고 이걸로 심지어 전투도 벌였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 시절 화력으로는 배를 통째로 다 파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적선에다 다리 놓고 쳐들어가서 배에서 백병전 벌여서 승무원들만 제압하고, 배는 노획하거나 심지어 빼앗겼던 배를 도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공성전이나 시가전이 건축물 대신 배에서 벌어지는 거나 마찬가지.. 요즘 같으면 적군이 아니라 그냥 테러리스트나 해적과 싸우는 것하고 비슷한 양상이다. -_- 배를 통째로 격침시켜서는 안 되고 인질도 보호해야 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하긴, 옛날에는 해군과 해적의 구분도 지금만치 분명하지 않았고, 국가 공인 해적인 사략선 같은 조직도 있었다.

(2) 옛날 범선 시절엔 대포들이 배 옆구리에 일렬로 쭈욱 늘어서 있었으며, 그 구조상 위로 발포는 불가능했다.
이런 배를 전열함이라고 불렀는데, 배의 재질이 철로 바뀌고 동력원이 돛 대신 엔진으로 바뀌면서 현대적인 의미의 전함이 등장했다. 20세기가 돼서야 함포가 밖으로 돌출돼 나오고 구경이 더 커지고, 나름 고각으로 대공 발포도 가능해졌다.

(3)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해전에서는 포의 사정거리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바다야말로 아무 지형 장애물이 없으니, 우리는 안 맞고 적은 맞을 수 있는 사정거리에서 포 쏴서 맞히면 장땡이었기 때문이다. 포의 사정거리를 올리려면 배가 커져야 했다.
물론, 적선이 아예 보이지도 않고 지구의 둥근 곡률을 실감할 정도로 수십~수백 km 이상 아득히 먼 곳에서 쏘는 수준은 아니었다.

(4) 러일 전쟁 시절엔 전투기 폭격기라는 게 사실상 없다 보니, 러시아 발트 함대가 인도양 건너 무려 7개월을 항해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왔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삽질인 것 같은데..??
러일 전쟁은 육군의 203 고지전과 해군의 쓰시마 해전이 같이 존재하는 것도 그렇고.. 양상이 굉장히 특이했다. 40여 년 뒤에 소련군이 일본 관동군을 박살내는 방식은 그때와는 또 완전히 달라졌다.

오늘날은 핵무기가 너무 위력이 강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더는 이걸 갖고 경쟁을 하지 말자고 나라들이 조약을 맺게 난리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너도 나도 대형 전함을 개발하는 게 요즘으로 치면 핵 개발을 하는 것과 비슷한 군사 위협이었다. 그래서 강대국들은 우리 다같이 일정 배수량을 넘게 전함을 만들지는 말자는 조약을 서로 체결할 정도였다. 참 격세지감이다.

(5) 그러나 요즘 군함은 2차 대전 시절의 전함보다 오히려 다시 작아졌다. 엄청나게 거대한 배는 항공모함뿐이다. 그건 배가 직접 싸우는 게 아니라 함재기가 싸우는 거고..
항공모함을 표방하는 프로토스 캐리어와, 태평양 전쟁 시절 대형 전함을 표방하는 테란 배틀크루저의 관계가 더 잘 와 닿을 것이다. 후자는 심지어 포 이름조차도 ‘야마토’이다!!!
대형 전함은 대형 대륙 횡단 여객선과 동급으로 유행이 끝나서 퇴역했다. 하지만 해병대의 입장에서는 재래식 전함이 있어서 나쁠 게 없다. 상륙 작전 때 뒤에서 사정거리 수십 km에 달하는 함포를 펑펑 쏘면서 아군을 지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엄호 사격이 아닌 엄호 포격..!!

여담이지만, 군함뿐만 아니라 도로도 비슷하게 스케일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은 대도시라도 시내 도로를 예전처럼 너무 큰 10차로, 12차로 급으로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량 통행을 억제하고 보행자와 대중교통을 우대하는 쪽으로 도시를 설계한다.
시내 도로는 뭔가 전함 같고, 보행자가 아예 없는 자동차 전용 도로나 고속도로는 항공모함에 대응하는 것 같다. 차라리 후자는 전자보다 더 커질 여지가 있다.

(7) 그나저나 잠수함은.. 여느 수상함과는 성격이 좀 다르고, 육군 저격수 같은 특수 병과의 해군 버전 같은 느낌이 든다. 저격수의 바다 버전이랄까? 하긴, 저격수는 전투복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길리슈트를 입고 잠복한다.;;

3. 공군

(1) 2차 대전까지만 해도 전투기가 고작 왕복엔진 프로펠러기였다는 것, 원자폭탄을 미사일로 날린 게 아니라 유인 폭격기가 직접 투하했다는 것..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제트 엔진이라는 게 아직 제대로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태평양 한복판에서 항공모함 함재기끼리 싸운 전투만 해도 가히 그 시절로서는 SF급의 첨단 전투였겠지만,
적선 근처까지 직접 저공 비행해서 폭탄이나 어뢰를 떨궜던 급강하폭격기와 뇌격기는.. 뭔가 심하게 위험하고 삽질스러워 보인다. 저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
이것도 다 미사일이란 게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로켓 엔진은 제트 엔진의 파생형이다.

(3) 적성국가에서 누가 적기나 적선을 몰고 귀순해 와서 그걸 갖다바치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보상이 주어지며 그 사람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런 캐이득 귀순을 적극 유도하고 장려하기 위해서이다.
그나마 배는 느리고 승무원이 많기라도 하기 때문에 돌발행동이 극히 어려운 반면, 전투기 같은 건 한두 명밖에 안 타는데 기동성은 넘사벽이다. 그러니 조종사가 나쁜 마음 품으면 그 비싼 국가 자산을 갖고 돌발행동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세계 각국에서는 수송기도 아니고 전투기 조종 정도면 간부인 건 너무 당연한 일이고, 부사관도 아니라 장교에게 맡긴다. 수백 kill을 자랑하는 인간흉기 최정예 저격수나 특전사 대원은 부사관이지만, 전투기 조종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허나, 구 일본군은 이런 어마어마한 전투기를 운용한 군인의 계급이 꼴랑 ‘병’이었던 유일한 군대이지 싶다. 다시 말하지만 전투기를 정비하는 군인이 아니라, 조종하고 그걸로 목표물을 공격하던 군인 말이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다.

(4) 해병대가 육군과 해군 사이에서 좀 짬뽕 같다면(병의 복무 기간은 육군과 동일하지만, 그래도 간부는 장교는 육사가 아닌 해사 출신).. 항공모함 함재기는 공군과 해군 사이에서 좀 짬뽕 같다. ㄲㄲㄲ
육군과 해군이 운용하던 항공대가 독립해 나가서 공군이 됐는데.. 미국은 아직 상징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이제 공군에서 우주군이라는 걸 따로 독립시키려는가 보다.

4. 여담: 총알과 포탄과 미사일

오늘날 바다에서 군함들이 서로 보이는 곳에서 총포를 주고받는 건.. 그냥 옛날 백병전이나 전열보병과 다름없는 짓으로 취급된다.
아니면 저건 우리나라 제2 연평해전 때 그랬던 것처럼.. 확전을 억제하려고 우리 쪽에서 비정상적으로 불리하게 봐 주고 먼저 얻어터져 줬을 때에나 벌어지는 일이다.

그것처럼 전투기에서 기총사격..?? 이건 뭐 육군으로 치면 대검이나 권총 딱총 정도의 초라한 무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런 무장도 가끔은 필요할 때가 있고, 또 미사일 만능주의만 외치기에는 미사일은 너무 비싼 무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총포 같은 재래식 무장이 육해공을 막론하고 완전히 퇴출된 건 아니다.

  • 한번 동력을 얻어서 날아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엔진이 달려서 추진을 하면 그건 로켓이나 어뢰 같은 물건이 된다.
  • 날아가서 박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폭발해서 파편도 날리면 그건 단순 총알 탄환을 넘어서 수류탄이나 포탄, 폭탄이 된다.
  • 거기에다가 그냥 날아가는 게 아니라 목표물을 향해서 방향 전환까지 하면 그건 유도탄이나 미사일이라고 불린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20 08:36 2023/07/2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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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

1400년대 초 프랑스의 전설적인 성녀 영웅이라고 일컬어지는 '잔 다르크' 말이다.
비록 불순한 의도로 띄워지고 치켜세워진 사례가 적지 않아서 지금이야 좀 식상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음이 사실이다.
위인전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화하기에도 너무 좋은 소재이니 지금까지 한두 개 만들어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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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에 대해서는 진짜 딱 이 두 장면만이 너무 강렬하다. 허나 이것 말고도 말이다.

자기 이름 정도밖에 못 쓰는 문맹이었음에도 탁월한 전략으로 남자 병사들로 구성된 군대를 잘 이끌었고, 성직자 신학자들 수십 명을 상대로 신학 논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되나..?? 무슨 나폴레옹과 루터를 합쳐 놓은 사람도 아니고. ㄷㄷ
게다가 진짜 무슨 신통력을 발휘해서 얼굴 본 적 없는 진짜 국왕이 변장하고 숨은 걸 알아챈 걸까?
잔 다르크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 사건 등이 유사 사례로 떠오른다.

1. 1760년대, 제보당의 괴수

시기는 좀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프랑스 출신-_-인 거,
각각 믿어지지 않는 전설적인 행적을 남긴 사람과 동물인 거,
사진 없고, 직접 보고 그린 그림 초상화(잔) 내지 박제(괴수)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는 거.. 신비주의와 관련해서는 꽤 비슷하다. 프랑스가 참 신비로운 동네인 것 같다. '미녀와 야수' 설화가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_-;;

그러나 이런 사람, 이런 괴수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그 옛날부터 너무나 분명하게 기록이 남아 있다. 심지어 이웃 외국이나 적국에서 남긴 기록과도 진술이 일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존재 자체는 절대로 주작이 아닌 팩트이다.

2. 성경의 다윗

잔 다르크에 대해서 "아부지 뭐 하시노?"에 대한 답이 딱 정확하게 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촌뜨기 양치기의 딸이었다는 말이 있고 실제로 "양치기 소녀 잔 다르크"를 묘사한 옛날 그림도 몇 점 있다. (갑옷 입고 백마 탄 여기사뿐만 아니라 -_-;;)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깡촌에서 양 치다가 10대의 나이로 소명을 받아서 나라를 구한 거.. 나중에 자기 군주한테 밉보인 거는 다윗의 어린 시절과 비슷하다. -_-;;; 샤를 7세가 사울 같은 왕이었나?
물론 잔 다르크는 돌팔매질보다는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전투를 이끌었다. 그리고 훗날 왕이 되지는 못하고 일찍 죽었다. =_=;;

3. 우리나라 유 관순

처형 vs 옥사 차이는 있지만 나이 20도 못 돼서 아주 비슷한 나이에 죽은 거, 애국심 투철하고 종교적으로도 독실한 소녀였다는 게 비슷하다. 실제로 잔 다르크의 생년 몰년에다가 490을 더하면 유 관순의 생년 몰년과 거의 일치한다. 얼추 500년 텀..
유 관순이 살았던 때가 잔 다르크 위인전이 이제 막 한반도에 번역되고 소개되던 시기였다. 유 관순은 잔 다르크의 생애에 굉장히 영향을 받았고 자기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어린 나이에 결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포루투갈 파티마 성모 발현 사건

10대 소녀가 시골 깡촌에서 갑자기 무아지경을 경험하면서 누구누구 뭐시기로부터 신의 계시를 받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게 비슷하다.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중세는 그렇다 치지만, 파티마 저 사건은 그래도 무려 1917년에 있었던 일이다.

저 때 예언이 세 가지가 계시되었다고 한다. 그 중 둘은 곧 공개됐는데, 마지막 예언은 당시 교황 성하께서 표정이 급변하면서 공개 불가 봉인 처리해 버렸다.
이 때문에 이게 온갖 세기말 음모론 떡밥으로 쓰였었다. 심지어 예언 내용을 공개하라고 떼 쓰는 테러 범죄도 저질러질 정도였다.

지난 2000년에 내용이 공개되긴 했지만 정말 막연하고 밍밍하고 별 의미 없는 메시지일 뿐이었다. 이게 어딜 봐서 그 시절에 무려 교황이 멘붕을 일으키면서 공개 불가 처리한 예언이란 건지?
일부 호사가들은 "이건 진짜 마지막 예언이 아니다~ 어딜 속여?"라고 반발했다. 이에 교황청에서는 이게 진짜 맞다고 공식 성명을 내며 반박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

덧..

(1) 잔 다르크에 대한 재판 심문 기록을 읽어보니 뭔가 챗GPT가 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챗GPT로 신학 논쟁이 가능하게 학습을 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ㄲㄲㄲㄲ

(2) 노아의 아내의 이름이 '잔/요안나'라는 개드립이 있다. arc가 ark(방주)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상 캐스터 중엔 '오 요안나'가 있군.
잔 다르크라는 이름은 원래 '아르크 출신의 잔'이라는 뜻이다. 무슨 아르크 자체가 성인 게 아니다. '나사렛 예수', '막달라 마리아'와 비슷한 용례이며, 영화 테이큰에서 Marko from Tropoja도 비슷한 맥락이다.

(3) 지금은 노스트라다무스니, 파티마니, 에드가 케이시니.. 수많은 세기말 예언들이 다 빗나가고 무려 2023년에 도달해 있다. 저런 자극적인 계시보다는 요한계시록 같은 진짜 검증된 예언 계시에만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다들 아직 전혀 이뤄지지 않은 예언이어서 지금 당장 와닿지 않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국제 정세에 어설프게 끼워맞출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03 08:35 2023/07/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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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종삼이라는 시인이 1971년에 발표했다는 <민간인>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본인은 먼 옛날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아주 어렴풋이 이런 시를 접했던 기억이 있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시의 제목부터가 군인이 아닌 사람이라는 뜻에서 '민간인'이라고 지었던 것 같은데..
얘는 읽어 보면 정말 섬뜩하고 비극적인 내용임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헤밍웨이가 즉석에서 지었다는 6단어짜리 비극 소설이 곧바로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다.;;; 분위기가 완전 비슷하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아기용 중고 신발 판매. 사용된 적 없음)


원래의 시에서 언급하는 시기인 1947년 봄은 아직 남한 단독 총선거를 하기 전이고, 북한이 자체적인 애국가와 인공기를 제정하기도 전인 완전 초창기였다. 하지만 남북 분단은 갈수록 굳어지고 남북 왕래가 어려워지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황해도 해주는 서쪽이 아니라 남쪽이 바다로 뻥 뚫려 있었다. 그러니 배 타고 전방의 바다를 향해 조금만 나아가면 38선 이남으로 갈 수 있었다.

빨갱이 치하에서 살 수는 없겠다 싶어서 이 지역 주민들 약간명이 모여서 탈북을 시도했다. 감시를 피해 보트 타고 해상으로 몰래 야반도주 중이었는데..
갑자기 아기 울음 소리 때문에 자기들의 존재가 노출되고 들킬 위험에 처했다. 그러자 아기의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아기를 바다에 던져 버리게 됐다.

이게 바로 시가 묘사하는 상황이다. 시인은 어쩌다 보니 그 쪽배에 동승해서 이 사건이 벌어지는 걸 목격했던 모양이다.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이건 1947년 이후로 1970년대가 될 때까지 20년이 넘게 잊혀지지 않는 엄청난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인간이 너무 굶주려서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자기가 죽을 지경이 되면... 인륜이고 천륜이고 인간성이고 다 없어져서 거의 동물로 퇴화해 버린다. 그래서 자기 친자식이라도 잡아먹거나 노예로 팔아 버릴 수 있다. 이런 건 비교적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런데 목숨 걸고 어디를 탈출해서 몰래 피난 가고 도망치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아기 울음 소리를 억제하지 못해서 걔를 불가피하게 버리게 되는 비극은.. ㅠㅠㅠㅠ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저렇게 도망치다가 들키게 생긴 상황에서는 부모가 자기 한 몸만 희생함으로써 어차피 자녀라도 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게다가 어영부영 하다가는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남까지 다 죽이게 되니까.. 도저히 답이 없다.

게다가 이런 사례가 역사적으로 드문 것도 아니다.
위의 '민간인' 스토리의 해상이 아닌 육로 버전도 존재한다고 한다. 38선을 넘어서 일가족이 야밤에 월남을 시도했는데, 공산군 초소 부근에서 아기가 우는 바람에 엄마는 얘 입을 강제로 틀어막았다. 허나, 위기를 모면하고 확인해 보니 아기는 그 사이에 질식사한 상태였다고..

1907년 평양 대각성--은사주의 논란은 일단 논외로..-- 당시엔 길 선주 장로부터 시작해서 자기 죄를 자백하는 회개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는데.. 그때에도 한 여인이 10여 년 전, 청일 전쟁으로 인한 피난 중에 자신의 아이를 죽게 했다며 참회했다고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아기가 너무 우는 바람에 근처의 나무에다 걔를 부딪쳐서 죽게 했다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고 독소 전쟁 당시의 온갖 끔찍 잔혹한 회고가 가득한 회고록이 있다. 여기서도 어느 애엄마가 적군에게 들킬 위험에 처하자 결국 울음 소리를 없애기 위해 자기 아기를 우물에 던졌다는 얘기가 나온댄다. 우물 속에서 울음 소리가 완전히 멎어 버리자 주변 사람들은 죄책감과 절망, 멘붕에 빠져서 침묵하고 만다.

성경에도 대환란 중의 피난 상황에서 "임산부와 산모에게 화 있으리로다" (마 23:19)가 괜히 기록된 게 아니었겠다 싶다.
아 하긴,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부모가 생후 겨우 3개월이던 모세를 더는 몰래 키우지 못하고 버리기로 결심한 주 이유도 울음 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출 2:2-3). 그래도 그 울음 덕분에 이집트 사람의 동정심을 사서 살아남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울러, 울음 소리 때문에 아기를 죽인 것보다는 덜 비극적인지 모르겠지만 6 25 사변 초기에 이런 믿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고 한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멀쩡한 남자들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곧바로 모병관 일행에게 붙들려서 군대로 납치에 가깝게 끌려가는 지경이었는데.. 어떤 4살배기 딸의 아버지는 징집을 피하려고 잘 짱박혀 숨어 있었다.

그런데 징집관이 그 아이에게 먹을것도 주면서 꼬드겨서 “네 아버지 혹시 어디 계신지 아니?” 이렇게 물었는데 애가 순진하게 아버지가 숨은 곳을 발설해 버렸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징집되어 끌려갔고, 전장에서 전사했다. 그 아이는 아버지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됐는지를 그로부터 수십 년 뒤에야 알게 됐다고 한다.

옛날에 어디에서 들은 얘기인데 지금은 출처를 검색해도 잘 안 나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한테 죄를 물을 수 없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장병을 징집하는 업무를 수행했던 모병관을 비난할 수도 없다.
이런 것도 전쟁이 야기한 너무 슬픈 비극이다. 오로지 자기 권력욕을 위해 동족상잔을 추진한 이북 수뇌부들이 개XX일 뿐일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11/18 08:35 2022/11/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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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련 여러 이야기들

1. 천조국 군대의 기상

미군은 무슨 중국이나 북괴처럼 대규모 거위걸음 열병식이나 매스게임, 특수부대 차력쇼를 벌이면서 자국의 군사력을 과시하지 않는다. 독립기념일이나 대통령 취임식 때 옛날 군대 코스프레 퍼레이드 정도나 하지..
이건 서울대나 육사가 "취업률 xx%" 이러면서 학교 홍보하고 지하철역 안에다가 광고를 붙이지는 않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이치이다.

지금이야 중공과 러시아가 많이 성장해서 미국 패권을 위협 중이긴 하다. 그러나 미국은 단순 국력 물량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과 자유 민주주의 인권 이념을 바탕으로 세계를 석권하고 세계 질서를 확립한 나라이다. 저 사회주의 독재 국가--겉으로 법은 자유 민주주의 표방이지만, 여전히 옛날물이 많이 묻어 있는 경우도 포함--들이 미국의 이런 진정한 저력을 흉내 내지는 못할 것이다.

2. 한국과 일본과 미국의 과거

1980년대: 우리나라로서는 5공 시절이요, 일본은 쇼와 말기요,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었다. 이때는 세계적으로 경제가 안정되고 오일 쇼크도 끝나고, 엄청난 호황기였다고 회자된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 정보화 시대, 과학 기술에 대한 장밋빛 희망, 우주나 사이보그를 소재로 한 온갖 기발한 SF물들.. 우리나라의 경우 마이카 시대, 일본은 특유의 버블 경제.. 이런 걸 생각해 보자~!

1960년대: 한국은 이때 ‘경부’라는 간선 고속도로 하나를 겨우 간신히 만들었다.
일본은 이때 시속 200km짜리 고속철도 신칸센을 세계 최초로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미국은 거의 같은 시기에 로켓을 쏴서 인간을 달로 보냈다.;;

(1940년대: 바로 다음에 올라올 글에서 이 시대를 좀 다룰 것이다. ㄲㄲㄲㄲ)

그런데 더 옛날,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전간기이던 1920년대도 이와 비슷하게 세계적으로 좋은 추억이 남겨진 시기였다.
우선 한반도는 3· 1 운동 이후에 문화 통치가 시작됐다. 이때는 그 전의 무단 통치나 그 이후의 민족 말살 통치에 비해서는 훨씬 더 살 만했던 때였다. 항일 독립 운동만 아니면 여러 다양한 사회 활동이 허용되고 온갖 신문물도 들어왔다.

본거지인 일본도 정치판의 분위기가 아직 군국주의로 폭주하기 전이었고 그나마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분위기가 살아 있었다.
하물며 천조국은..?? 라디오 방송과 할리우드 영화, 뉴욕에 초고층 마천루, 포드 T 자동차 마이카.. 전부 얼추 이 시기에 등장했다. 또 국제 연맹도 세계 곳곳에서 마이너한 국가들의 분쟁은 잘 중재하면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좋은 시절은 대공황과 함께 완전히 끝났으며, 이를 계기로 1930년대부터는 세계는 다시 분위기가 슬슬 험악해진다. 국제 연맹은 2차 세계 대전이 터지는 걸 막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확하게 이 험난한 기간 동안 통치했었다.

3.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징집 관련 일화

미국 남북전쟁은 밀덕의 관점에서 보면 최초로 철도를 통한 보급, 후장식 총기와 저격수, 초보적인 단계의 기관총과 철갑선, 잠수함이 등장한 첨단 과학 기술 전쟁이었다. (풍경 사진과 종군기자는 남북전쟁보다 미묘하게 전인 유럽의 크림 전쟁 때 최초로 등장했고..)

일개 내전 주제에 탱크와 비행기만 없는 1차 세계 대전 급으로 시대를 앞섰던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그런데.. 이 남북전쟁은 징집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지는 게 좀 있다. 둘 다 남군과 북군 중 어느 진영의 이야기인지는 확실치 않은데, 어차피 그게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1) 전사
나라가 전시 상황이 되니 모병이 아닌 징병제가 시행됐다. 그런데 이때 부유층들은 300달러라는 돈을 내고 다른 사람을 대신 입대시키는 것으로 징병 의무를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는 대리 입대자도 어차피 징집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럼 어찌 되는 거지? 아무튼..

A라는 어떤 사람이 B라는 다른 사람을 대리 입대시켰는데, 그렇게 참전한 B는 전장에서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A에게 징집 영장이 또 날아왔다는 것..
이때 그는 "나는 B라는 사람의 명의로 이미 전사하고 죽은 목숨이다. 이거 뭐 한군두도 아니고, 나는 또 징집되거나 또 국방세 내고 대리인을 내세워야 할 국방의 의무가 없다"라고 항변했다. 이 논리가 인정되어 그는 두 번 다시 징집되지 않았으며, 그게 판례로 정착했다고 한다.

이건 무슨 일사부재리의 원칙처럼 들리는데..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 대신 죽으신 것, '대속'이라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기독교 쪽에서 복음 전할 때 종종 인용되는 예화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다만, 출처가 불분명하고 그렇게 막 도덕적으로 본이 될 만한 일화까지는 아닌 것이 아쉽다. 부자들은 돈으로 군대를 다 빠진다고 그 당시에도 원성이 자자했었기 때문이다. 전사자를 예우하는 연금도 당연히 A의 유족이 아니라 B의 유족에게 지급돼야 할 것이다.

(2) 포로
옛날에는 전쟁도 현재보다 명분과 체통과 원칙을 따지면서 훨씬 더 신사적이고 고지식하게(?) 하는 면모가 있었다.
미국 남군과 북군이야 비록 지금은 총 들고 싸우지만 상대방이 같은 나라 같은 언어 같은 기독교 문화권인 사람이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화해해야 할 이웃이었다.

그래서 적군을 포로로 잡았는데 당장 포로를 번거롭게 관리할 여건이 안 되면..
포로를 죽이는 게 아니라 그냥 무장만 해제하고는 풀어 주는 경우가 있었다. 단, 이런 각서를 쓰고 동의를 받게 하고 말이다.

"우리가 사정이 여의찮아서 너를 석방해 주지만 너는 여전히 법적으로 우리 측의 포로이다. 그러니 훗날 포로 교환이 이뤄질 때까지 너는 군사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장교가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이런 절차를 거쳐서 풀려났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전선으로 곧장 복귀하고 전투를 지휘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는 그 각서를 제시하면서 자기는 정식으로 포로 교환을 하기 전엔 군복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군에서는 그 정황을 인정하고 그를 진짜로 내버려 뒀다고 한다.

이거 뭐, 감독 없이 시험을 쳐도 아무도 컨닝을 안 하고, 땅에다 금만 그어 놓고는 감옥이라고 해도 죄수가 거기 얌전히 앉아 있을 것 같은 샤방샤방 분위기이다.
저 때는 적이라도 약속을 지키기는 한다는 신뢰가 있으니 이런 '서류 상으로만 포로'가 가능했음이 틀림없다.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였던 전쟁은 아무래도 80년 남짓 뒤의 태평양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일본이고 미국이고 모두 상대방을 인간이 아니라 악마 괴물로 취급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다 악이 받친 나머지, 한쪽에서는 적군 포로를 말 그대로 잡아먹었으며(식인).. 다른쪽에서는 적군 시체에서 두개골을 뽑아서 아이템으로 갖고 다니는 Savage 실사판 '인외마경'이 벌어졌던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20 19:34 2022/05/2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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