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관사 the는 뒤의 단어가 꼭 모음으로 시작하지 않더라도, ‘THE / 바로 그 ..’ 강조의 의미로 ‘더’ 대신 ‘디’라고 강하고 길게 발음될 수 있다.

2.
우리말 조사 중에는 앞의 체언에 종성이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음운이 더 첨가되는 게 있다. '-(으)로' 내지 '-(이)면'처럼 말이다. 뭔가 언어 차원에서 '자음-모음, 자음-모음' 이렇게 이어지는 걸 더 자연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킹 제임스 성경 영어에도 이와 비슷한 유형으로 운율이나 음절수를 맞추기 위한 동일 단어 바리에이션이 있었다. do의 3인칭 단수 굴절은 doth(1음절)와 doeth(2음절)이 굳이 나뉘어 있었고, 의미가 거의 같지만 to(1음절)와 unto(2음절)이 나뉘어 있었다. 읽히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것을 그냥 취사선택하면 됐다.
문맹이 많고 종이와 필기구가 귀했던 시절에는 일상생활에서 암기· 암송의 비중이 훨씬 더 컸으며, 텍스트를 외우기 쉽게 배치하고 노래로 만드는 행위의 비중이 컸지 싶다.

3.
behind는 ‘비하인드’가 아닌 ‘바하인드’라고 발음되는 경우가 유난히 많은 것 같다.
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접한 곳은 라이온 킹에서 티몬과 품바의 대사 put your past behind you였는데.. 저기서만 저러는 게 아니더라. (☞ 보기 2분 30초 이후)

영어 단어는 강세가 없는 모음이 ㅓ와 ㅡ 비스무리한 어정쩡한 약한 소리 schwa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before 정도면 '비'가 '브'처럼 밍숭맹숭하게 발음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본인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behind의 경우는 schwa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아' 소리가 너무 분명하게 느껴지는데.. 이건 별개의 변종 발음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4.
wicked, rugged는 wick나 rug에다가 -ed 어미가 붙은 단어가 아니며, 어원상 -ed가 없는 단어들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렇기 때문에 ‘위크트, 러그드’가 아니라 i 소리가 분명히 첨가되어 ‘윅키드, 러기드’가 맞는 발음이다. 나 같으면 스펠링을 그냥 -ed가 아니라 -id로 정했을 것 같다.
한국어로 치면 ‘반짇고리’, ‘옜다’처럼 사잇소리가 아닌 단순 축약형이기 때문에 받침 스펠링이 ㅅ로 아닌 단어하고.. 상황은 다르지만 좀 비슷한 느낌이다.

5.
요즘 당장 네이버도 그렇고, 영한사전에서 i 발음을 작은 I (U+26A)로 표기해 놓은 게 있어서 이건 도대체 뭔가 궁금했다.. 저게 IPA 정의상 더 정확한 표기이구나. i가 옛날식 비표준 표기였다고 한다.

6.
노벨 화학상을 받은 유명한 핵 물리학자의 이름은 어니스트 '러더퍼드'(Rutherford)이다. 한글 표기로나 실제 발음으로나 문제가 없다.
그런데 과학 말고 신학에서 거론되는.. 17세기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목사의 이름은 새뮤얼 '루터포드'(Rutherford)라고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는 전자는 20여 년 전 학창 시절부터 들었지만 후자는 완전 처음이었다.

원어상의 발음이 다를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나 모르겠다. John Rutter도 '루터'인지 '러터'인지 잘 모르겠다.

7.
위와 비슷하게,

  • 만델브로트(수학) → 망델브로
  • 호이겐스(천문) → 하위헌스
  • 나트륨(화학) → 소듐
  • 엔젤 → 앙헬(베네수엘라 폭포 이름)
  • 터키(나라 이름) → 튀르키예!!!!

분야를 막론하고 각종 명칭을 현지 발음을 존중해서 표기하는 것으로 추세가 바뀌는 것 같다.
한 20세기 말 정도엔 독일식· 일본식 발음을 영어로 바꾸는 것 위주였는데 말이다. (왁찐· 비루스 → 백신· 바이러스, 밧데리 → 배터리, 반도 → 밴드..)

8.
영어에서 음절말에서 L+자음은 한국어의 음운 구조와는 상극이어서 발음이나 표기가 굉장히 난감한 음운 조합이다.
world 내지 film의 발음을 생각해 보자. 이런 건 영국식과 미국식의 차이가 어떤지 궁금하다.

9.
온도를 나타내는 섭씨 화씨는 동양에서 외국 인명 Celsius, Fahrenheit를 음차한 표기인 반면,
Confucius, Mencius는 반대로 서양에서 중국 인명인 공자· 맹자를 음차한 표기이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게다가 인명이랍시고 동양에서는 Mr. 씨를 붙여 줬고, 서양에서는 무슨 로마 제국 인물처럼 '-우스' 접미사를 붙여 줬다. ㄲㄲㄲㄲ

10.
알파벳 X는 거시기, 삐리리~ 말고도..

  • 대문자 단독으로는 글자 그대로 eks라고 읽는다. X-ray X-file, XP 미지수일 때는 소문자 단독도 있다.
  • 종성에서 ks라고 발음되며 이게 가장 보편적이다. box, taxi, fax, tax 등.
    초성에서는 그냥 z로 발음되는 편이다. 이런 발음을 의도한 고유명사도 많다. xylophone, Xaero, xenon, Xerox
  • 단, 아시아권 언어의 로마자 표기에서는 s나 sh로 발음되기도 한다. xi-, xu- 이렇게 시작하는 편.
  • cross, Christ라고 읽기도 한다. X-mas, Jesus is X, No X-ing 하긴, X의 획이 서로 교차하는 형태이고, 그게 45도 기울인 십자가를 연상시키기도 해서 이런 독음도 생긴 것이다. 수학에서 ×는 cross product라고 불린다.
  • 로마 숫자를 의미할 때는 'ten'으로 발음된다. Mac OS X
  • 그리스 문자를 표방할 때는 그냥 k라고 발음되기도 한다. LaTeX (뭐, 우리식 발음이라고 이것도 '라텍쓰'를 꿋꿋이 고집하는 분도 있다. 하긴, 옛날에 단재 신 채호 선생도 워낙 민족주의 의식이 강해서 세수할 때 허리를 안 숙이고, 이웃 네이버를 네이그후보어라고 발음하곤 했다.;; )

Y가 반자음도 되고 장모음, 단모음이 다 되는 것 이상으로 X는 발음이 굉장히 유동적인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여러 언어들에서 x의 발음은 제각각으로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다.

지금 도스/윈도 명령 프롬프트에 있는 xcopy라는 외부 명령에서도 x는 cross를 의미한다. 아마 서브디렉터리들을 드라이브간(between, inter-, cross-)에 그대로 통째로 복사하는 기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 아니었나 싶다. 기존 내부 명령인 copy에는 없던 기능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혀는 좀 대충 굴리더라도 억양과 강세가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언어이다.
can이랑 can't만 해도, T소리의 유무가 전혀 아니라 오로지 길이와 억양으로 구분하는 물건임이 주지의 사실이다.
영어 인스트럭션을 느린 가상머신 소프트웨어 에뮬레이션이 아니라 하드웨어 차원에서 네이티브로 돌리는 바이오닉 CPU의 소유자들이 부럽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04 19:35 2023/02/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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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멸 위기? 제주어

한 1990년대, 한국어에 대해서 우랄 알타이 어족 기원설이 유효했고 학교에서도 가르쳐지던 시절엔..
"바른말 고운말을 씁시다, 한글을 사랑합시다, 한자어와 외래어보다는 가능한 한 순우리말을 살려 씁시다, 특히 일본식 한자어를 순화합시다" 같은 계몽 운동이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마추어뿐만 아니라 국어학 교수 타이틀까지 거머쥔 전문가도 있었다.
심지어 이때는 "미래(21~22세기)엔 세계 언어들의 90% 이상이 사멸할 것이다. 지금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한국어도 외국어에게 잠식 당해 사멸할지 모른다"라고.. 거의

  •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북괴가 다시 남침해서 적화통일 될지 모른다,
  • 일본에게 나라를 다시 빼앗길지 모른다
  • 지금 이 상태로 문화건 농산물이건 영화건 공산품이건 시장을 확 개방했다간 다 빼앗기고 내수 시장은 망할 것이다
  • 한국은 UN이 지정한 물 부족 국가이다. (...!!)

이런 급의 괴담이 언어 분야에서도 나돌기도 했다.
지금은 교통· 통신의 발달과 함께 영어가 그야말로 넘사벽 급의 세계 공용어가 됐으며, 반대급부로 소수 민족 언어들이 야금야금 사멸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언어 순수주의에 입각한 계몽 운동에 대해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언어의 어휘와 문법 구조는 이미 사람의 생각과 정신 세계에 끼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 문법 차원에서 단· 복수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언어, 성별 구분이 있는 언어, 높임법이 존재하는 언어.. 이런 것 말이다.

그러니 말과 글과 얼이 하나라는 말까지 나왔으며, 멀쩡한 자국어 어휘가 외국어에게 잠식 당하는 게 마치 자국 정신 세계의 영토를 침략자에게 빼앗기는 것과 비슷한 급의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구나 20세기 초중반 우리나라의 너무 처절하고 비극적이었던 역사에 대한 트라우마가 이런 식으로 투영되어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100여 년 전처럼 식민지 제국주의 군국주의가 횡행하는 시기가 전혀 아니며, 더구나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안팎의 국력과 지위를 자랑하는 상위권 선진국이다.
극심한 저출산 때문에 미래가 걱정되긴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인구가 소수 민족 수준인 것도 아니며, 한류다 뭐다 하면서 오히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도 있다.

그러니 한국어는 듣보잡 소수 민족 언어와는 처지가 다르다. 예측 가능한 짧은 미래에 사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인 언어는 절대 아니다.
또한 고유어나 외래어, 언어 순수주의에 대해서는 본인은 공감하는 것도 있고, 별 영양가 없으니 그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긋는 사항도 있다.

사실, 멀쩡히 잘 쓰이던 고유어가 외래어에 먹힌다기보다는 애초에 고유어에 전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개념 내지 변별이 안 되는 개념 때문에 외래어가 쓰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예를 좀 들자면 로켓이나 제트 엔진 같은 건 도대체 무슨 수로 순화할 생각인가?

정말 순우리말을 살려 쓰고 싶으면 멀쩡히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컴퓨터, 인터넷 이런 말을 셈틀, 누리그물 따위로 바꾸는 것보다.. '장'이 너무 답답하고 변별력이 떨어져서 페이지/챕터라고 바뀌는 것부터 막는 게 '훨씬' 더 시급하다! 이건 뭔 한자 따위 동원한다고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너무 까다롭고 거추장스러운 호칭과 격식을 파괴하기 위해서 '너님', 심지어 극단적으로 '유님'(you)이라는 말이 생겨서 아무나 간편하게 가리키는 중립적인 2인칭 대명사로 통용된다면.. 그건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에 대해 누가 국어 파괴니 깐죽거리며 감 놔라 배 놔라 오지랖 부릴 수 없다.

글쎄, 그런 것 말고 붉은피톨· 말본 셈본· 넘보랏살 같은 순우리말 용어를 괜히 천하고 경박스럽다고 생각하고 한자어· 영어 용어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나조차 이미 의식 세계가 외국어 외세에 침략(?)을 당하고 세뇌 당하고 더럽혀진 결과인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침략을 당한 덕분에 초록(green)과 파랑(blue)을 언어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됐다면 그건 꼭 나쁜 침략만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_=;;;;

본인은 이 주제에 대해서 저런 것 말고도 오랜 지론과 할 말이 많이 있다. 하지만 시간과 지면의 부족으로 인해 이 자리에서 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그리고 이런 단어 수준이 아니라 언어 정체성 레벨에서 정말로 사멸을 걱정해야 하는 대상은 한국어 자체가 아니라 한국어의 방언 중 하나인 '제주어'인 것 같다.

저런 게 있다는 것,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해서 아래아가 쓰인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제대로 구사하는 걸 들어 보니 이 정도로 이질감이 큰 방언인지는 몰랐다. 차이가 더 벌어졌으면 북경어 vs 광동어 정도로 벌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푸른거탑 제주어 버전;)

천상천하 유아독존 고립어인 줄로만 알았던 한국어에도 이 정도로 편차가 큰 지역 바리에이션이 있었다니~! 이건 고대/중세 국어의 모습은 어땠을지에 대한 통찰도 제공할 수 있겠다.

예전에(2000년대쯤..) 제주어를 제대로 채록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에서 아래아를 입력할 수 있는 한글 입력기가 있어야 한다고 '김 익두'라는 분이 인터넷 상으로 활동을 많이 하셨다. 본인에게도 문의를 하신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분이 지금은 뭘 하고 계시나 모르겠다.

2. 질적 저하? 사이소리

영어에 2음절 이상의 단어마다 악센트라는 게 있다면, 한국어에는 사이소리라는 아주 아주 기괴한 초분절요소가 존재한다.
이건 높임법만큼이나 한국어의 맞춤법과 발음법, 학습 난이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주범이다. 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 성과는 성꽈이고 결과는 왜 결과인지..?
  • 물고기는 물꼬기인데 불고기는 왜 불고기인지?
  • 비빔밥은 비빔빱인데 볶음밥은 왜 그대로 보끔밥인지?

이건 아주 작은 예일 뿐이다. 정말 도무지 원칙이 없고 답이 없다.
더 골때리는 예를 들자면.. 0, 1, 부터 9(영, 일, ..., 구)까지의 숫자 뒤에 '단, 단계, 반, 점' 같은 단위 접사를 붙여 보자. 6이야 받침이 ㄱ이니까 언제나 된소리화가 발생하겠지만 나머지 숫자들은 도대체 언제 사이소리가 들어갈까?

내 언어 직관에 따르면 ㄹ 받침인 1, 7, 8은 언제나 '딴계, 쩜'으로 바뀐다. 하지만 교실을 나타내는 '반'은 사이소리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러니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학습자가 뒷목 잡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사이소리 정도는 꼬박꼬박 정확하게 넣지 않아도 의사소통에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원어민 화자가 듣기에는 충분히 어색함과 이질감과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렇게 사이소리가 불필요하게(?) 들어가서 된소리가 발생하고 어감이 강해지는 걸 아주 부정적으로 보고 경계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국어 교육 제대로 다시 시켜야 된다는 의견이 이미 1970년대에부터 신문에 실리곤 했다. 관심 있으신 분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된소리'라고 쳐서 검색 한번 해 보시라~~

라떼는 말이야 ‘간단하게’도 그냥 평범하게 ‘간단하게’라고 부드럽게 발음했는데 사람들이 어느 샌가 ‘간딴하게’라고 무슨 북괴가 ‘원수’를 ‘원쑤’라고 발음하는 걸 닮아 가고 있다고.. 이런 걸 방치하면 사람들 정서가 망가지고 심성이 병들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질 수 있다는 식이다.
저게 도대체 뭔 소리인가 싶지만, 저 때는 선풍기 괴담이나 일제 쇠말뚝 괴담 따위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저질 불량 만화 화형식도 하던 시절이었다.;;; 언어에 대해서도 이 정도의 순수주의로 접근하는 분위기가 주류이긴 했을 것 같다.

바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방송 같은 데서 반드시 강조하는 게 뭐냐 하면 ‘효과’, ‘김밥’도 절대로 ‘효꽈’, ‘김빱’이라고 둘째 음절을 경음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단어들은 표준 국어 대사전에 발음이 경음화하지 않는 게 맞다고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방송 기자라는 사람들이 그 업계 입사를 위해서 KBS 한국어 시험 같은 건 머리 싸매고 준비했을 테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건 굉장히 어색하고 비현실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들린다. 본인은 억지스러운 경음화 금지에 반대 소신이다.
‘짜장면’을 자장가 발음하듯이 억지로 자장면~~ 이러고, 영어에서 speak를 ‘스삐이크’ 대신 ‘스피이크’ 이러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마치 다르다/틀리다처럼 뭔가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구분 원칙이 존재해서 그걸 근거로 이때는 경음화하지 말라고 한다면 따르겠는데..
앞서 얘기했듯이 한국어의 사이소리라는 건 그 어떤 날고 기는 국어학자도 규칙으로 예측과 통제를 해내지 못한 난감한 물건이다. 수학에다 비유하면 거의 '소수(솟수??)의 생성 규칙'만큼이나 말이다!!

어차피 아무렇게나 임의로 정하기 나름이고 익숙해지기 나름일 뿐인 사항이라면 그건 그냥 시장에게 맡기고 자유방임을 허용해야 한다.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언어 갑질 꼰대질에 난 공감할 수 없다.
심지어 반대 사례도 있다. 나는 ‘교통 체증’도 글자 그대로 ‘체증’이라고 오랫동안 발음해 왔지, 표준 발음이 반대로 ‘체쯩’인 것은 최근에야 알게 됐다. 병을 나타내는 ‘증’과 증명서를 나타내는 ‘증’에서 둘 중 하나는 경음화가 발생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영수증? 영수쯩?)

사이소리가 참 더럽고 구리게 형성되어 있긴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몽땅 다 ‘원쑤’ 같은 부정적이고 잘못된 현상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이소리는 형태소 경계(파생어 접사와 어근!!)를 구분하고, 한자 동음이의어를 구분하고, 보통명사와 일반명사를 구분하려는 사람들의 매우 복잡미묘한 심리가 반영되어 들어간다.

한자어에서 사이소리를 최대한 표기하지 않는 쪽으로 찍어누르면서 맞춤법을 정했지만, ‘초점’(focus)의 발음은 지구가 멸망하는 일이 있어도 ‘초쩜’이지 ‘초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소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수점이랑 적은 수는 일말의 유사점이라도 있지만 prime number는 정말 아무 관계 없는 의미인데 표기를 저 따위로 해 놓으면.. 정말 답이 없다. 한자 아니면 영단어로 가야지..

이렇게 애초에 사이소리라는 게 한국어에서 없어질 수 없는 요소일진대, ‘효과’를 결과가 아닌 성과처럼 보고 ‘꽈’라고 주류 발음이 바뀌는 것은 그냥 취향의 변화일 뿐이다.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미래에는 하나님의 발음조차도 '하난님'으로 바뀔 수 있다. 사이소리라는 게 꼭 된소리화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rule 기반으로 기술할 수 없는 사이소리야말로 다량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연구할 필요가 생각한다.

성우 겸 배우 이 종구 씨는(1950년생) “오글거리게 효과효과 그러지 말고 평소대로 소신껏 효꽈라고 발음합시다”라고 이미 옛날부터 글 쓰고 홍보를 많이 해 온 걸로 유명하다. 이분 역시 우리말의 올바른 표현과 표준 발음 쪽으로 관심 많고 소신을 갖추신 분이다.

그런데 ‘간단하다’는 ‘간’과 ‘단’을 쪼개서 생각할 여지가 없고, 비슷한 형태의 다른 단어들을 생각해 봐도 정말로 굳이 ‘간딴’이라고 발음할 필요가 없어 보이긴 한다. 그런데 왜 어쩌다가 경음화된 발음이 주류가 돼 버렸나 모르겠다. 옛날에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는데 진짜로 일제 말기와 6 25를 겪으면서 사람들 심성이 피폐해져서 ‘간딴’으로 바뀐 걸까..??? 이건 정말 의문이라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05/06 08:34 2021/05/0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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