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모음 A와 O

라틴 알파벳에서 A와 O는 통상적으로 ㅏ, ㅗ 음가에 대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독일도 그렇고, 또 영어의 종주국인 영국도 그런 편이다.
하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실질적인 최대강국인 미국에서는 이들 발음이 변해 버려서 비영어권 국가에서 외래어의 표기에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

걔네들은 ㅏ, ㅗ이던 것이 ㅐ, ㅏ로 변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U도 ㅜ냐 ㅓ냐 갖고 굉장히 오락가락하네.. 모음삼각도로 표현하자면, 다들 시계 방향으로 살짝 회전해 버린 것 같다. 안 변한 건 I(ㅣ)와 E(ㅔ)뿐이다.

그래서 톰이냐 탐이냐.. 도트냐 닷이냐도 헷갈리고, 할로윈이냐 핼러윈이냐도 헷갈린다. shop도 쇼핑, 워크샵/워크숍, 포토샵 등이 매우 혼란스럽다.
일본에서는 단모음 A는 일편단심으로 ㅏ로만 적고 있다. 그래서 패밀리는 그냥 파미리이고, 애니메이션도 아니메이다. 그러니 쟤들은 ㅏ와 ㅐ가 구분이 잘 안되겠지만 우리말에서는 A와 E, 즉 ㅐ와 ㅔ가 구분이 안 돼서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스타일로 음차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시기가 굉장히 일러서 그런지 영국· 독일의 보수적인 스타일을 여전히 고수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패드'(pad)는 일본어로 '아이팟또 アイパット'인데.. '아이팟'(pod)은 '아이포또 アイポ-ト'라고 한다.
A와 O의 발음 괴리의 직격타를 제대로 맞았다. ㄲㄲㄲㄲ

영어의 이런 발음 변화는 영어 자신의 관점에서도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니다. 스펠링과 발음이 심하게 따로 노는 언어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 빼면 영어 정도면 다른 언어들에 비해 문법이 단순하고 배우기 쉬운 축에 드는 것 같다.
영어 정도의 과거형 불규칙이나 복수형 불규칙 난이도가.. 설마 한국어의 미친 높임법과 호칭, 용언 불규칙 활용 난이도에 비하겠는가? =_= 라틴어나 러시아어, 독일어의 미친 굴절에 비할 수준이겠는가?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한때는 ㅏ와 ㅓ가 다른 것만큼이나 ㅐ와 ㅔ가 달랐던 적이 있긴 한 것 같은데 말이다.. 근데 어쩌다 '내'와 '네' 1인칭과 2인칭 대명사가 구분되지 않는 난장판이 돼 버렸을까?
이건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니 '네'가 현실에서는 '너'나 '니'로 불안하게 자꾸 바뀌는 것이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학습자의 입장에서도 아주 보기 좋지 않다.
아울러, '날다'의 활용형이 '나는'이 돼 버려서 I am과 겹치는 것도 영 보기 좋지 않다. '날으는'을 무작정 비표준으로 치부하고 금지하기가 곤란한 노릇이다.

2. 한자어처럼 생긴 외래어

바지 선(barge), 바자 회(bazaar), 마지노 선(프랑스의 지명 Maginot), 지로 용지(giro), 모기지 론(mortgage loan), 비박(Biwak)...;;

이런 것들은 한자어가 전혀 아니다. 특히 모기지 론은 '론'조차도 論이 절대 아니고 loan일 뿐이다. 마지노 선이 마지+노선(路線)이 아니듯이 말이다.
'비박'의 경우는 무려 독일어 일반명사이고, 사실은 우리말로도 '비바크'라고 표기해야 맞다. 숙박 泊하고는 전혀 관계 없다.

이래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표기를 더 꼼꼼하게 하려 애썼던 것 같다. 국한문 혼용은 말할 것도 없고, 인명 지명 같은 고유명사나 심지어 외래어는 폰트(서체)를 달리해서 표기해 놨다.
한글에다가 한자의 획 모양을 접목해서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순명조'라는 서체 말이다. 이게 옛날 동화책이나 교과서에서는 외래어를 표기하는 서체였다.

난 한자 혼용까지는 너무 오바이다만, 그 대신 개인적으로는 성 이름을 띄어 쓰는 것, 그리고 외래어 고유명사 뒤에 붙는 명사는 띄어 쓰는 것에 지지 소신이다. 이것까지 안 하면 구분이 너무 안 되는 것 같다.
태산, 백두산, 일본어, 평화선
에베레스트 산, 나일 강, 후지 산, 산스크리트 어, 마지노 선

3. 표기 수단

일본어는 변별 가능한 음운이 부족해서 그런지, 장단(긴/짧은)이라도 한국어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구분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 대놓고 길쭉한 가로줄이 장음 부호로 쓰인다. 같은 소리라도 이게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서양의 알파벳 기반 정서법에서는 짤막한 가로줄(하이픈)이 (1) 정도가 좀 약한 띄어쓰기, (2) 긴 단어를 앞뒤 줄에 걸쳐서 열거하는 용도로 쓰이니 이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서양 정서법에서는 일본어의 장음 부호 같은 긴 가로줄은.. 음운 계층에서의 장음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치면 ‘줄표’.. 문장 단위에서 뜸을 들이는 걸 나타낸다. 음운 계층에서의 장음은 그냥 글자를 aa ee ei 늘어놓는 식으로 해결하니 말이다.

문자에 대해 더 생각해 보자면.. 라틴 알파벳은 대소문자 구분이 있어서 문자 용도에서 수직적인 상하 계층을 만든다. 고유명사나 이니셜을 대문자로 쓴다.
일본어는 히라가나-가타카나 구분이 있어서 수평적인 역할 구분을 형성한다. 잘 알다시피 외래어나 의성어가 가타카나로 표기된다. 알파벳으로 치면 이탤릭에 얼추 대응할 듯?

한글은 글자 차원에서는 초중종성을 모아서 스스로 굉장히 잘 완성된 형태를 형성한다. 한국어 역시 일본어보다는 음운이 풍부하고 또 복잡한 훈독이 없으니, 자국 모아쓰기 표음문자만 닥치고 늘어놓는 ‘전용’을 하는 방향으로 정서법이 깔끔하게 정착했다.

그게 대체로 좋긴 하지만, 그래도 장단을 표기에 너무 반영을 안 하다 보니 길고 짧음의 구분이 한국어에서 통째로 소멸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런데 한글은 그 상태로 완성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_- 추가적인 계층을 만들 여지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이상 글자의 형태를 구분하는 건 폰트의 영역으로 가야 할 듯..

필요한 경우, (1) 장음/단음이나 (2) 사이소리 정도는 기호 차원에서 표현할 방법이 꼭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건 음운 차원이고..
더 욕심을 내자면 평소에는 붙이지만 필요에 따라 체언-조사 내지 용언-어미를 구분하는 마크, 이 명칭이 외래어나 고유명사임을 나타내는 마크, 이 어절이 체언인지 용언인지를 나타내는 마크 같은 것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가운뎃점은 일본에서 유래된 건지 모르겠다만.. 콤마보다 더 크거나(세미콜론) 작은(가운뎃점) 보조 구분자도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4. 나머지

(1) 영어권에서는 글자를 읽을 때 같은 글자가 연속해서 나올 때 double/triple로 더 즐겨 대체하는 성향이 있다.
C++ C double plus / 007 double O seven / www triple W
우리말 "씨뿔뿔, 공공칠, 더블류더블류더블류"와 비교해 보자. =_=;;

(2) 베트남 - 비엣남, 베토벤 - 베트호픈, 맥아더 - 매카서..
뭔가 대놓고 독일식 같지는 않은데 실제 발음과 미묘하게 동떨어진 외래어 표기가 좀 있는 것 같다.
한국어와 영어의 음절 구분 방식이 다른 것도 있고, 옛날에는 실제 발음보다는 스펠링 형태를 더 고려해서 한글 표기를 정했던 것도 있다.
하지만 이미 굳어지고 정착해 버린 건 어쩔 수 없다 치는데.. 하루아침에 터키 대신 튀르키예는 너무 뜬금없고 좀 문화 충격까지 느껴졌다. =_=;; 스페인 - 에스파냐도 아니고 이건 뭐..

(3) 메시지 - 마사지 - 소시지~~ 음운 형태가 비슷한 단어들이다.
'메세지'라고 쓰고 싶다면 소시지도 소세지가 돼야 맞으며, '맛사지'라고 쓰고 싶으면 메시지도 멧시지가 돼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서로 표기 방식을 보완하면 된다.
디저트 - 데저트(사막)-_-도 영어 스펠링과 발음이 헷갈리기 좋은 듯.. 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3/10/12 19:46 2023/10/1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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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단어들의 형태와 의미

1. 단어 의미의 차이

(1) '오타쿠'라고 그 이름도 유명한 일본어가 국내로 유입돼 들어왔는데.. 이게 표현과 의미가 분화됐다.
앞부분을 떼어낸 오덕은 말 그대로 일본 애니, 미소녀, 모에 하앍하앍, 피규어.. 이런 특정 분야와 관련된 원래 뜻이고,
뒷부분을 떼어낸 덕후는 매니아, 전문가, 기크, 너드..라는 뜻인 것 같다. 역덕 밀덕 철덕에서는 접사로도 쓰인다.

(2) 나룻배는 뭐고 거룻배는 뭐지..??
수하물 수화물도 그렇고. 마치 성경 용어 환난과 환란만큼이나 별 차이 없이 섞여 쓰이는 단어 같다.

(3) 외도: 한국어에서는 ‘배우자의 외도’라고 보통 불륜, 간통, 음행 쪽만 가리킨다. 그러나 일본어에서는 그냥 일반적인 부도덕 죄악 악행을 모두 가리킨다. 휴먼버그 대학교 고문 소믈리에의 대사를 통해서 알게 됐다. -_-
외모: 한국어에서는 일단은 성형수술과 관계 있을 정도인 겉모습에만 국한되어 쓰이는 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고”(person)는 가오뿐만 아니라 능력, 피지컬처럼 사람의 전반적인 스펙을 모두 일컫는 의미이다.
外자가 들어가는 흥미로운 단어 쌍이다.

(4) 저것 말고도 '비겁', '묵살' 같은 한자어도 한국어와 일본어가 뉘앙스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게 잘 알려져 있다.
우리말로는 둘 다 아주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인 반면.. 일본어로는 전쟁에서 적을 기막히게 속이고 낚고 농락해서 싸그리 몰살시켜도 비겁(!!)하다고 그런다. 긍정적인 뉘앙스가 담긴 교활이나 악랄, 영악이라는 의미도 좀 포함한다는 뜻이다. 선전포고 없이 진짜 치졸 비열하게 진주만을 공격한 거 말고, 저런 것까지 말이다.
그리고 묵살은.. 한국어에 의미하는 ‘무시’의 강화 버전뿐만 아니라 신중한 보류..까지 의미한다. 과연 사무라이뿐만 아니라 에둘러 말하기의 달인인 일본 문화답다. 허나, 쟤들은 포츠담 선언까지 묵살한다고 모호하게 답변했다가 결국은 핵을 쳐맞았다. -_-

(5)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직렬화란.. 어떤 오브젝트의 내부 상태를 스트림 형태의 비휘발성 메모리에다가 쭉 덤프해서 나중에 다시 원래대로 읽어들이고 복원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말한다. 배열, 리스트가 아니라 트리 구조 같은 비선형 컨테이너는 직렬화를 위해서 코딩 기법이 좀 필요하다.
그런데 병렬화는? 같은 목적을 위해 수행되는 많은 작업들을 CPU 코어 여러 개에다 분산시키고 동시에 수행하도록 해서 전체 소요 시간을 줄이고 성능을 끌어올리는 걸 말한다. 그러니 직렬화-병렬화는 분야가 서로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6) 우리말 내지 이쪽 문화권에서는 돼지가 무척 공격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했는가 보다. 그래서 ‘저돌적’이라는 단어가 있으며, 여기서 ‘저’는 돼지 猪이다. 심지어 '저돌희용'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멧돼지 희'라니.. 참 희한한 한자인데.. 울나라 상용 한자가 아닌 듣보잡 글자이다.
그런데 영어권에서는 숫양이 사납고 성깔 더럽다고 생각했는지, ram에 저돌적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다, ‘공성 망치로 공격하다, 배끼리 서로 들이받다’ 같은 옛날 전쟁 전술과 관련된 살벌한 뜻이 들어있다.
옛날 영화 벤허에서도 갤리선에서 최고속을 가리키는 용어가 3등 battle speed, 2등 attack speed를 넘어 ramming speed였다..;;

(7) 영어에는 prosecute(기소)와 persecute(박해)가 형태가 비슷해서 이를 이용한 언어드립이 있는 걸 개인적으로 어디선가 봤었다. 악질 검사한테 박해 받는다..;; 뭔가 심상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translation(번역)과 treason(반역)도 비슷한 관계이다. 이건 굉장히 공교롭게도 영어와 한국어 모두 형태가 비슷한 단어쌍이다~!

(8) AV..
AV 단자라고 하면 오디오/비디오라는 뜻이다.
AV 1611이라고 하면 공인된 번역본이라는 뜻이다.
일본 AV라고 하면... 19금이라는 뜻이 된다. 의미와 용도가 완전히 제각각이다.. ㅋㅋㅋㅋㅋ

2. 욕처럼 들리는 단어

(1) 시발: 시발 자동차, 구로 역 시발..;;; 전설적인 예시이다.
채널A 카톡쇼에 출연했던 어떤 자동차 업계 원로의 회고에 따르면.. "시발 시발 우리의 시발~~~" 이러는 라디오 광고 CM쏭까지 있었다고 그런다.
그리고 필리핀에는 시발롬 Sibalom 이라는 지역이 있다.. ㅠㅠㅠㅠㅠㅠ.

(2) 옛날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은 본명이라고 해야 하나 휘호가 迪宮였는데.. 발음이 '미치노미야'였다. 영어로도 Prince Michinomiya Hirohito 라고 썼다.
일제 식민지 조선인들한테 "미친놈이야"라고 당연히 놀림감 0순위였으며, 일본도 이 사실을 광속으로 인지하고 단속을 벌였다.

(3) rape: 어떻게 노란 유채 식물이 이런 끔찍한 범죄와 동음이의어인지 궁금하다. 그래서 영어로는 원래 명칭대로 안 부르고 카놀라 Canola라고 부른다.
하긴 유채는 순우리말 명칭도 굉장히 뜬금없다. '평지'라고 하네...;;;

(4) retard: 학창 시절에 접했을 음악 나타냄말에도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가 있고, 또.. 항덕이라면 비행기 조종에서도 어떤 기종은 착륙 착지 때 GPWS에서 retard, retard~~ 라고 안내를 해 준다. '엔진 출력 낮춰, 속도 줄여~!' 이런 뜻..
근데 현실에서는 retard는 음악이나 비행기 출력이 아니라 지능 발달이 더딘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백치 아다다'에서 백치처럼 말이다.
비행기가 성공적으로 착륙하면 이탈리아 같은 일부 문화권에서는 승객들이 환호하고 박수도 치는데.. 정작 조종실 계기판에서는 병~~신 병~~신(약오르지ㄲㄲ) 이런 어감의 놀림(??)이 흘러나온다는 게 웃기게 느껴질 수 있다.

3. 언어유희

  • 헌신만 하다가 헌신짝 취급 당한다.
  • 다짐을 너무 많이 하면 다 짐이 된다
  • 교사 지침서 때문에 교사가 지침..
  • 지적이지만 지적질 하지는 않는 사람이 좋다~~ ㄲㄲㄲㄲㄲㄲ

그리고 파이널 Pinal air park(애리조나), 페인 Paine field(워싱턴 시애틀).. 둘 다 항공과 관련된 유서깊은 시설이 있는 지명이다.
전자는 노후 비행기 보관소이다. 그래서 최후 final과 비슷한가..?? -_-;; 그리고 후자는 위치에서 짐작이 가듯, 보잉 사 에버렛 공장에서 생산되고 출고된 비행기들이 첫 출발하는 곳이다. 비행기의 출산의 고통을 의도해서 pain 드립을 쳤는지 모를 일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23/10/10 08:35 2023/10/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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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관사 the는 뒤의 단어가 꼭 모음으로 시작하지 않더라도, ‘THE / 바로 그 ..’ 강조의 의미로 ‘더’ 대신 ‘디’라고 강하고 길게 발음될 수 있다.

2.
우리말 조사 중에는 앞의 체언에 종성이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음운이 더 첨가되는 게 있다. '-(으)로' 내지 '-(이)면'처럼 말이다. 뭔가 언어 차원에서 '자음-모음, 자음-모음' 이렇게 이어지는 걸 더 자연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킹 제임스 성경 영어에도 이와 비슷한 유형으로 운율이나 음절수를 맞추기 위한 동일 단어 바리에이션이 있었다. do의 3인칭 단수 굴절은 doth(1음절)와 doeth(2음절)이 굳이 나뉘어 있었고, 의미가 거의 같지만 to(1음절)와 unto(2음절)이 나뉘어 있었다. 읽히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것을 그냥 취사선택하면 됐다.
문맹이 많고 종이와 필기구가 귀했던 시절에는 일상생활에서 암기· 암송의 비중이 훨씬 더 컸으며, 텍스트를 외우기 쉽게 배치하고 노래로 만드는 행위의 비중이 컸지 싶다.

3.
behind는 ‘비하인드’가 아닌 ‘바하인드’라고 발음되는 경우가 유난히 많은 것 같다.
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접한 곳은 라이온 킹에서 티몬과 품바의 대사 put your past behind you였는데.. 저기서만 저러는 게 아니더라. (☞ 보기 2분 30초 이후)

영어 단어는 강세가 없는 모음이 ㅓ와 ㅡ 비스무리한 어정쩡한 약한 소리 schwa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before 정도면 '비'가 '브'처럼 밍숭맹숭하게 발음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본인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behind의 경우는 schwa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아' 소리가 너무 분명하게 느껴지는데.. 이건 별개의 변종 발음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4.
wicked, rugged는 wick나 rug에다가 -ed 어미가 붙은 단어가 아니며, 어원상 -ed가 없는 단어들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렇기 때문에 ‘위크트, 러그드’가 아니라 i 소리가 분명히 첨가되어 ‘윅키드, 러기드’가 맞는 발음이다. 나 같으면 스펠링을 그냥 -ed가 아니라 -id로 정했을 것 같다.
한국어로 치면 ‘반짇고리’, ‘옜다’처럼 사잇소리가 아닌 단순 축약형이기 때문에 받침 스펠링이 ㅅ로 아닌 단어하고.. 상황은 다르지만 좀 비슷한 느낌이다.

5.
요즘 당장 네이버도 그렇고, 영한사전에서 i 발음을 작은 I (U+26A)로 표기해 놓은 게 있어서 이건 도대체 뭔가 궁금했다.. 저게 IPA 정의상 더 정확한 표기이구나. i가 옛날식 비표준 표기였다고 한다.

6.
노벨 화학상을 받은 유명한 핵 물리학자의 이름은 어니스트 '러더퍼드'(Rutherford)이다. 한글 표기로나 실제 발음으로나 문제가 없다.
그런데 과학 말고 신학에서 거론되는.. 17세기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목사의 이름은 새뮤얼 '루터포드'(Rutherford)라고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는 전자는 20여 년 전 학창 시절부터 들었지만 후자는 완전 처음이었다.

원어상의 발음이 다를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나 모르겠다. John Rutter도 '루터'인지 '러터'인지 잘 모르겠다.

7.
위와 비슷하게,

  • 만델브로트(수학) → 망델브로
  • 호이겐스(천문) → 하위헌스
  • 나트륨(화학) → 소듐
  • 엔젤 → 앙헬(베네수엘라 폭포 이름)
  • 터키(나라 이름) → 튀르키예!!!!

분야를 막론하고 각종 명칭을 현지 발음을 존중해서 표기하는 것으로 추세가 바뀌는 것 같다.
한 20세기 말 정도엔 독일식· 일본식 발음을 영어로 바꾸는 것 위주였는데 말이다. (왁찐· 비루스 → 백신· 바이러스, 밧데리 → 배터리, 반도 → 밴드..)

8.
영어에서 음절말에서 L+자음은 한국어의 음운 구조와는 상극이어서 발음이나 표기가 굉장히 난감한 음운 조합이다.
world 내지 film의 발음을 생각해 보자. 이런 건 영국식과 미국식의 차이가 어떤지 궁금하다.

9.
온도를 나타내는 섭씨 화씨는 동양에서 외국 인명 Celsius, Fahrenheit를 음차한 표기인 반면,
Confucius, Mencius는 반대로 서양에서 중국 인명인 공자· 맹자를 음차한 표기이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게다가 인명이랍시고 동양에서는 Mr. 씨를 붙여 줬고, 서양에서는 무슨 로마 제국 인물처럼 '-우스' 접미사를 붙여 줬다. ㄲㄲㄲㄲ

10.
알파벳 X는 거시기, 삐리리~ 말고도..

  • 대문자 단독으로는 글자 그대로 eks라고 읽는다. X-ray X-file, XP 미지수일 때는 소문자 단독도 있다.
  • 종성에서 ks라고 발음되며 이게 가장 보편적이다. box, taxi, fax, tax 등.
    초성에서는 그냥 z로 발음되는 편이다. 이런 발음을 의도한 고유명사도 많다. xylophone, Xaero, xenon, Xerox
  • 단, 아시아권 언어의 로마자 표기에서는 s나 sh로 발음되기도 한다. xi-, xu- 이렇게 시작하는 편.
  • cross, Christ라고 읽기도 한다. X-mas, Jesus is X, No X-ing 하긴, X의 획이 서로 교차하는 형태이고, 그게 45도 기울인 십자가를 연상시키기도 해서 이런 독음도 생긴 것이다. 수학에서 ×는 cross product라고 불린다.
  • 로마 숫자를 의미할 때는 'ten'으로 발음된다. Mac OS X
  • 그리스 문자를 표방할 때는 그냥 k라고 발음되기도 한다. LaTeX (뭐, 우리식 발음이라고 이것도 '라텍쓰'를 꿋꿋이 고집하는 분도 있다. 하긴, 옛날에 단재 신 채호 선생도 워낙 민족주의 의식이 강해서 세수할 때 허리를 안 숙이고, 이웃 네이버를 네이그후보어라고 발음하곤 했다.;; )

Y가 반자음도 되고 장모음, 단모음이 다 되는 것 이상으로 X는 발음이 굉장히 유동적인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여러 언어들에서 x의 발음은 제각각으로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다.

지금 도스/윈도 명령 프롬프트에 있는 xcopy라는 외부 명령에서도 x는 cross를 의미한다. 아마 서브디렉터리들을 드라이브간(between, inter-, cross-)에 그대로 통째로 복사하는 기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 아니었나 싶다. 기존 내부 명령인 copy에는 없던 기능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혀는 좀 대충 굴리더라도 억양과 강세가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언어이다.
can이랑 can't만 해도, T소리의 유무가 전혀 아니라 오로지 길이와 억양으로 구분하는 물건임이 주지의 사실이다.
영어 인스트럭션을 느린 가상머신 소프트웨어 에뮬레이션이 아니라 하드웨어 차원에서 네이티브로 돌리는 바이오닉 CPU의 소유자들이 부럽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04 19:35 2023/02/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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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몸 풀기 개드립

  • 헬쓰카레  health care
  • 순대 / 아이스크림(sundae)
  • danger / 단거
  • Giftgas 선물까스

2. please, give

영어에는 한국어 같은 문법 차원에서의 높임법이 없는 대신..
please가 한국어의 부사 '좀' 내지 보조사 '-요' 역할을 하면서 부드러운 부탁· 간청의 뉘앙스를 전달한다.
저 동네에서는 과장 좀 보태면,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도 please를 붙이느냐 빼먹느냐에 따라 서비스의 수준이 달라질 정도라고 한다. 그 정도면 돈 안 드는 팁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please와 관련된 불멸의 영화 명대사는 터미네이터 2 초반부의 You forgot to say 'please'..;; 일 것이다.
어느 건장한 근육질 청년(T-800 ㄲㄲㄲ)이 알몸 차림으로 빠에서 어느 오토바이 폭주족 양아치한테 다짜고짜 "당신 옷이랑 신발이랑 오토바이 내놔" 이러니 양아치가 어이가 없어서 빵터지면서.. "근데 말이 좀 짧네?"와 함께 담배빵을 놓는 장면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약간 점잖게 의역하면 "줘" / " '주세요'가 아니고?" 인데,
더 많이 거칠게 의역하면 "내놔" / "근데 말이 짧다? / 좀 싸가지가 없네" 정도로 하면 될 것 같다.

이러니 한국어는 너무 복잡 미묘해서 외국인이 어설픈 기계번역 돌리는 정도로는 한국인 행세하는 게 어림도 없고 불가능하다.
같은 튜링 테스트라도 영어가 아닌 한국어라면 난이도가 넘사벽으로 급상승할 듯..
모 페친님의 말마따나 구글 할아버지 AI래도 아직 한참 더 걸리지 싶다. -_-;;

저 터미네이터 대사와 대구를 이루는 대사로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건.. 역시 비슷한 시기(1991년 ????)에 개봉한 미녀와 야수에서 벨이 아버지의 안부를 걱정하는 대사이다.
"이 거울은 당신이 보고 싶은 걸 무엇이든 바로 보여줄 거예요." (영어 대사는 기억 안 나고 검색하기 귀찮으니 패스~)
I'd like to see my father, please. ("우리 아버지를 좀 보여 주세요~ / 보고 싶어요.")
이때는 벨이.. 정중하게, 다소곳하게, 공손하게 댄디하게.. 말 끝에다 please를 붙여서 부탁을 한다. =_=;;;

다만, 영어 성경(KJV)에서는 please라는 단어가 이런 뜻으로는 전~~혀 쓰이지 않았고 오로지 '목적어 누구누구를 기쁘게 하다'라는 뜻의 타동사로만 쓰였다. 반의어 displease, 수동태 pleased 같은 파생이 있을 뿐.
부탁하는 뜻의 추임새 please는 오히려 I pray thee (바라건대/부디) 로만 쓰였다.

한국어는 '주다' give에 대해서도.. 특별히 '나한테 주다'를 나타내는 불완전동사 '달다' '다오, -도'가 있고,
그리고 특별히 강제로 빼앗는 문맥에서는 '내놔'라고 표현하는 편이다.
난 똑같은 정보를 전달한다 해도 한국어 문장을 생성하고 알아듣고 행간 파악하는 게 영어보다 인간 두뇌의 계산량과 CPU 소모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Give me the(ze) phone. 전화기 내놔~ (쿵 퓨리에서 히틀러 대사 중..).

3. great

영단어 great는 물리적인 크기가 거대한 것뿐만 아니라 ‘짱~ 좋다, 멋지다~ 훌륭하다, 위대하다’처럼.. 크기가 큼으로써 수반되는 여러 긍정적인 심상, 아니 더 나아가 인품이 존경스러운 것까지 다 포함하는 단어이다.
가령, 조선 세종이나 고구려 광개토왕을 그냥 왕이 아니라 ‘대왕’이라고 부르고 영어로도 the Great이라고 추존해 주는 건 그 사람이 덩치가 컸기 때문이 아니다.

성경의 왕하 4:8에 나오는 수넴 여인은 다름아닌 great woman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이건 무슨 뜻일까? 집이 부자? 신분이 귀족? 성품이 대인배 혜자? 아니면 진짜 피지컬이 여자답지 않은 거구? 이거 의미가 약간 중의적이어서 성경 역본마다 워딩이 달라지는 편이다.

이렇게 물리량이 가치 판단으로 이어지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옛날옛적에는 무게의 단위가 화폐의 단위로 곧장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파운드, 탤런트 따위.
그리고 크기, 무게 다음으로 온도 버전은 cool이 있다. 이것도 감탄사로도 쓰일 정도로 정말 좋은 뜻이다.

4. present

명사 present는 현재라는 뜻도 있고 선물이라는 뜻도 있는 동음이의어이다.
그래서 "과거는 이미 history이고 미래는 mystery일 뿐이다(운율..!). 하지만 지금 현재는 우리에게 주어진 gift이기 때문에 present라고 불린다" 라고.. 굉장히 재치 있는 격언이 만들어져서 쿵푸 팬더 만화영화에서 인용되기도 했다.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이다" 처럼 말이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서는 상우가 선물 투자를 잘못해서 쫄딱 망했다고 나오는데 이 선물은 경제· 금융 용어이다. 기훈은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얘 여친이라도 생겼나? 무슨 비싼 선물을 사 줬길래 저 지경이 됐나??" 이런 식으로 오해하는데..
정작 이 선물(先物)은 영어로 futures이다. 그래서 이 대사가 영어로 번역될 때는 미래 인생이 저당 잡혔냐는 쪽으로 오해하는 걸로 의역됐다.
한국어와 영어의 동음이의어 덕분에 선물이 현재와 미래를 왔다갔다 하는 게 흥미롭다.

5. 큰 바위 얼굴

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 ‘큰’은 원어가 겨우 big이나 large 따위가 아니라 great일 거라고 합리적인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물리적으로 거대한 것과 사람 인품이 대인배로 성숙한 것을 절묘하게 조화시켰으니까..!! 실제로 그렇더라.
단, 바위는 의외로 rock이나 그에 준하는 단어가 아니라 그냥 stone이더라. 큰 철판 얼굴이나 큰 포커페이스가 아니라 큰 바위 얼굴인 것이 인상적이다.

좀 뜬금없는 얘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본문 중에 정력-_-이라는 단어가 있어서 중학교 시절부터 저 소설을 꽤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정력이 넘쳐흐르고…”

영어 원문을 보니 스태미나 같은 단어 따윈 없다. 그냥 full of energy를 피 천득 선생이 저렇게 번역한 것이더라. 피와 천둥의 군인이 원기왕성하고 성경의 신 34:7 “늙어서도 타고난 힘이 줄지 아니하였더라 nor his natural force abated”이랬다는 것을 저 어휘로 표현했을 뿐이다.
단지, 후대에 와서야 정력이 거의 성력에 가까운 뜻으로 와전되고 있고 말이다.

외래어에서는 사람들이 ㅈ으로 대표되는 구개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알고리듬(-thm)을 알고리즘으로, 베이식(basic)을 자꾸 베이직으로.. 트리 대신 츄리..;;
이게 한국인만 그러는 게 아니어서 일본어는 더 심하고.. 쿵 퓨리에서는 히틀러가 the(더)를 ‘저/자’로.. 발음한다. 그럼 정력은 성력의 구개음화 버전으로 봐야 할지 이런 엉뚱한 생각도 든다. ㅡ,.ㅡ;;

6. energy

아 그리고.. 수 년 전엔 유튜버 ‘올리버쌤’이 궁예의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씬을 영작 더빙한 적이 있었는데..
“저 자의 머릿속에는 마구니가 가득하다”를 that man is full of NEGATIVE energy라고 번역했었다. -_-
그냥 에너지가 충만한 것과, 부정적인 에너지가 충만한 것의 차이가 저렇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되겠다. ㄲㄲㄲㄲ.

7.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가리키는 용어

다음 물건들은 20세기 초에 발명되고 용어가 정립됐는데.. 의미가 확장된 과정이 굉장히 뜬금없어서 유의어인지 동음이의어인지 논하기가 난감할 정도인 것 같다.

  • 탱크: 원래 물탱크 같은 저장고라는 뜻이다가 전차라는 의미까지 추가됐다. 단순 장갑차가 아니라 '무장'이 추가된 장갑차..
  • 타이어: "땅바닥을 하염없이 굴러다니면 쟤도 피곤하겠다"..;; 라는 어린아이의 발상을 거쳐서 고무 테가 둘러진 바퀴라는 뜻이 추가됐다. "귀가 불 붙으면?" 만큼이나 뜬금없다.ㅠㅠㅠㅠ
  • 배터리: 전기 셀이 군대 제식 하듯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모양에서 유래되었다. =_= 그래서 이 단어는 전지라는 뜻뿐만 아니라 포병 부대, 더 나아가 폭행, 구타라는 법적 의미까지 갖게 됐다. 쉽게 말해 빠따 bat와 battery는 어원상 서로 관련이 있다!

8. 비속어

(1) scram
"(썩) 꺼져~!!!"라는 뜻이다. 영화 정무문에서 이 소룡이 "난 니들하고는 싸우고 싶지 않으니 너흰 어서 비켜 / 짜졋 / 꺼졋!!" 이렇게 소리를 지를 때 영어 자막이 저렇게 나갔다.

(2) screwed
스크루라는 물건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생각해 보자. 우리말에도 "인생 꼬였다, 군생활 꼬였다" 같은 말이 있는데 이와 딱 정확히 대응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달고나 게임 편을 보면, 주인공 성 기훈이 우산 모양을 고르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 복잡한 윤곽대로 달고나를 뜯어내야 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자 "X됐다!!"라고 개그대사를 날리는데, 그게 영어 자막으로는 I'm screwed 라고 나갔다. =_=;;

영어 쪼랩의 입장에서는 F-word 위주로만(~ off, ~ up -_-;;) 표현이 떠오를 것 같다만.. 이 상황에서 의외로 scr-로 시작하는 대체제가 존재한다.

(3) bastard
점잖게 사생아· 서자라는 뜻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말 구어의 '짜식, 새X'에 거의 정확하게 대응하는 비속어의 뜻도 있다고 한다. 하긴, 둘 다 원래 뜻에 무슨 자식, 후세라는 뜻이 있기도 하다. ㄲㄲㄲㄲ

(4) bullshit
문자적인 뜻은 소똥인데.. 우리말로 치면 '개뿔 쥐뿔' 같은 뉘앙스가 담겨 있다.. '헛소리, 허튼소리'.. 더 나아가 '개소리'라는 뜻이며, 'X랄', '염병하네~' 같은 감탄사의 용도로 쓰인다. 개소리를 들어서 어이없음을 표현하는 감탄사 말이다.

B로 시작하는 위의 두 단어는 영화 킬 빌에서 제일 먼저 봤다.
그렇잖아도 킬 빌이 '빌'에 '베아트릭스 키도' 이러면서 B를 갖고 어쩌구 하는 것 같던데 말이다.

그 밖에 crap도 bullshit과 비슷한 뜻이 있는 것 같고..
asshole은 "쟤 완전 밥맛이다, 재수없다" 같은 용도로 정말 많이 쓰이는 뒷담화 용어이다..
scumbag은 그냥 새끼가 아니라 '*** 새끼' 정도로 사람을 모독하는 욕설이다. 얘는 풀 메탈 자켓 영화를 통해 알게 됐다. -_-;;

Posted by 사무엘

2023/01/06 08:36 2023/01/0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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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생어와 합성어

파생어와 합성어: 단독으로 쓰이지는 않는 접사(접두/접미)가 붙어서 새로 만들어진 단어는 파생어라고 하고, 단독으로 쓰일 수 있는 독립된 단어가 결합해서 새로운 단어가 되면 합성어라고 한다.

재료공학에다가도 비슷한 원리를 적용하면.. 구리+주석(청동)처럼 대등한 금속끼리의 합금은 합성어 같고, 철+탄소(강철)처럼 비금속과의 합금은 파생어 같은 느낌이 든다.
하긴, 의류에 봉제선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기계류에는 금속 가공을 어찌 했느냐에 따라 리벳 이음매나 나사 자국 같은 게 있겠다.

2. ㅐ와 ㅔ 구분

  • 헤치다 해치다: 뭐 이 정도면 쓰임이 서로 많이 다른 단어이기 때문에 크게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암살범이 군중을 헤치고 들어가서 타겟을 흉기로 해치는 데 성공했다.
  • 메다 매다: 짊어지는 게 '메다'이고, 묶는 건 '매다'이다. '메다'가 원래는 '막히다'라는 뜻인데.. 목을 매다는 게 목의 숨구멍을 메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좀 헷갈리기 쉽다.
  • 헤어지다 해어지다: 그래서 찬송가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이것도 많이들 틀린다. 책이 오래되어 낡고 해졌다는 뜻이기 때문에 '해어졌으나'라고 써야 한다.
  • 결제 결재: 상관으로부터 확인 받는 건 '재'이고, 돈을 지불하는 건 '제'이다. ㄲㄲ
  • 베다 배다: '베개' 스펠링은 은근히 틀리기 쉽다. 자르는 것 말고 머리를 괴는 것도 '베다'라고 한다.;;

3. 거북과 달팽이

옛날에 피자를 좋아하고 멸치를 싫어하는 '닌자 거북이'라는 만화 캐릭터가 있었고, Come on, 비행기 같은 히트곡을 불렀던 '거북이'라는 댄스 그룹도 있었다.
하지만 등껍질이 달린 파충류 이름은 원래 '-이'를 뺀 '거북'만으로 충분하다. '거북이'는 '거북'이라는 동물 종보다는 특정 거북 개체에 더 가까운 느낌이 든다.

그 반면, 달팽이는 '-이'도 명백하게 단어의 일부이다. '달팽'은 틀린 말이라는 점에서 '거북'하고는 상황이 다르다. 등에 집 같은 걸 지고 다닌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뭐..;; 달팽이는 곤충이 아닌 다른 그 무언가인 듯하다.
거북은 고래와 마찬가지로 폐호흡을 하지만 물 속에서 수 시간 단위로 숨을 참을 수 있다고 한다.;; 어차피 호흡은 공기 중에서만 가능하다면 얘들은 민물에 있으나 바닷물에 있으나 성분 차이는 별로 개의치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렇듯, 한국어에는 영어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이런 아리까리한 형태소가 좀 있다. '돌이', '순이' 같은 이름도 '-이'는 이름에 정식으로 포함된 건지 아닌지가 헷갈리지 않는가?
호격조사인 '-아', '-야'도 영어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이걸로도 모자라서 격식 문어체에서는 '-여'도 쓰인다! (하늘이여 땅이여, 신이시여~)

다음으로.. '-이' 말고 '-님'도 말이다.
예수님은 원래 이름이 '예수'이고 '님'은 그냥 존칭 접사이다. 그런데 이게 또 '용묵 님, 영수 님' 같은 일상적인 의존명사 '님'하고도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띄어쓰기 여부가 달라진다. '김 씨'(김씨 성을 가진 어떤 사람)와 '김씨'(말 그대로 특정 성씨)의 차이처럼 말이다.
'예수님'의 '님'은 '누님, 형님' 할 때의 '님'과 같은 부류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스님, 손님 할 때의 '님'은 접사보다도 단어에 더 굳게 융합된 단어 그 자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대상을 높여 주기 싫다고 해서 '님'을 떼어낼 수 없다. 떼어 버리면 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야 말할 것도 없고, '스'는 '승'(僧)이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정말 단독 자립 능력이 없으니 말이다. '손'도 '길손' 이런 데서나 마이너하게 쓰이지 현대에서는 자립 능력 상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어는 영어보다 문법 계층이랄까 체계가 더 복잡하며, 원활한 처리를 위해서 더 많은 두뇌 능력을 요구하는 것 같다.

4. 영어의 다의어, 한국어의 동음이의어

영어는 동물 이름에서 시작했다가 비슷하게 생긴 무생물 도구로 의미가 '확장'된 경우가 좀 있다.

  • kite: 솔개 / 연
  • crane: 학· 두루미 / 기중기
  • mouse: 생쥐 / 컴퓨터 입력장치

그 반면, 한국어는 무생물을 생물에다가 저렇게 빙의시키는 것에는 인색한 편이고.. 그 대신 동물과 생판 무관한 '동음이의어'가 좀 있다. 그것도 다들 징그러운 것들로..;

  • 사마귀: 피부병
  • 바퀴: wheel(육상 교통수단), round/revolution(도는 단위 의존명사)
  • : 근육 경련
  • : 치아/이빨...;;

참고로.. 컴퓨터 마우스의 복수형도 생쥐와 동일하게 mice로 할 것인가 그냥 mouses로 할 것인가 하는 건.. 영미권에서도 논란거리라고 한다. 책에서는 그냥 mouse devices라고 풀어서 쓴 경우도 있음.

5. 한자어

소설 소포: '소'가 小이지만, '작다'라는 뜻이 그다지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 단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의어인 대설(문학 작품??), 대포(물류??) 같은 말은 없다. 반대로 무기로서 대포도 반의어가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구제 구축: '구'가 驅(몰아낼 구)일 때의 뜻과(해충 구제, 해군 구축함), 그렇지 않을 때의 뜻이 굉장히 차이가 난다는 공통점이 있다(빈민 구제, 진지 구축).

건조: 선박은 물에서 꺼내서 말릴 필요가 없는 물건이니, 동음이의어와 헷갈릴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ㄲㄲㄲ

주문: 한국어에서는 "음식 주문하시겠습니까?" / "주문을 외워라"가.. 한자는 다르지만 일단 한글 표기가 동일하다. 거기에다 판결문에서도 "주문: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도 있다.
한자는 각각 注文(order), 呪文(spell, magic word)으로 다르고 판결문의 주문은 主文으로 사실상 본론, 요지, 본문에 가까운 뜻이다. 그런데 세 동음이의어가 다.. 뭔가 말하는 사람의 요청대로 뭔가가 이뤄지게 한다는 정말 미묘한 공통분모가 있어서 동질감이 느껴진다!.

6. 희떱다

북괴는 예나 지금이나 대외적으로 입이 거칠고 막돼먹은 걸로 악명 높다. 모 미국 대통령에게는 동물원 원숭이라고 부르고, 우리나라 전· 현직 대통령한테는 늙다리 생쥐새끼, 삶은 소대가리 등 온갖 비속어를 퍼부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저런 것들은 다~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게 아니다. 내부에서 선전 문구를 담당하는 먹물 문돌이들이 아주 심사숙고해서 말을 만들며, 그게 당의 심의를 통과했기 때문에 매스컴을 타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명밝근혜 시절도 아니고 굉장한 친종북 성향의 정권인데도 북괴는 남한을 더 길들여서 영원한 바보 멍청이 호구로 만들려는가 보다. "우리가 무슨 거지 동냥하는 것도 아니고.. 니들의 대북 지원 따위 필요 없다" 이러면서 남북 교류를 끊고 작년엔 남북 공동 연락 사무소를 폭파하기까지 했다.

뭐 이 글에서 북한이나 정치 얘기를 더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다만..
걔네들은 2016년에 인천 상륙 작전 영화가 개봉했을 때를 포함해, 그 뒤에도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마다 줄곧 '희떱다, 희떠운'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해 온 게 인상적이다.

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채 만식의 우화 소설 "왕치와 소새와 개미와" 중의 "희떱고 비위가 좋았다" 말고는 도통 쓰거나 들을 일이 없는 단어였는데 말이다.
저건 주변에 민폐 다 끼치면서 안면만 철판이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치가 좋다는 뜻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접했던 소설 중에서 더위를 제일 많이 탔던 캐릭터도 저 왕치였던 것 같다.
잉어한테 잡아먹힌 걸 동료들이 구해 줬더니만 기껏 한다는 말이 "아이고 덥다 더워라~! 내가 이놈의 잉어 잡느라 얼마나 진땀 빼고 있었는데 마침 잘 나타나 줬네? 자 이제 맛있게 드셔~!" 이러니.. ㅋㅋㅋㅋㅋ 오늘날까지 통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상찌질 정신승리 허세를 잘 묘사한 명작 우화가 아닐 수 없다.

중1 때는 소나기, 왕치와 소새와 개미와, 그리고 희곡 원술랑이 기억에 남아 있다. 문학이 아닌 어학 쪽으로는 자음동화· 구개음화 같은 각종 음운 변화를 이때 배웠다.
중2 때는 노 명완의 SQ3R 독서법과 용언의 불규칙 활용을 배웠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는 중학교 때 배운 것 같긴 한데 정확하게 몇 학년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라떼는 말이야, 중등에 영어· 수학· 과학 같은 교과서는 지학사, 금성 등 싸제 교과서들로 5종이니 8종이니 하며 파편화가 됐지만, 국어· 국사· 윤리는 나름 민족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과목이어서 그런지 문교부니 교육부니, 한국 교육 개발원이니 하면서 국정으로 여전히 단일화 상태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교과서들도 다 시장 경제의 영역으로 넘어갔나 보다.

7. 나머지

부엉이 올빼미 / 늑대 이리: 서로 미묘하게 비슷한 동물인 것 같은데 구체적인 차이는 잘 모르겠다.

바늘과 handle: 우리말에서는 자동차 핸들이 조향 운전대이지만, 영어에서 자동차 handle은 그냥 문 손잡이를 가리킨다. 운전대는 본토에서 steering wheel이라고 한다는 건 이제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날로그 시계에서 시분초를 가리키는 작대기를 우리말로는 시침· 분침 또는 바늘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그걸 handle이라고 한다. 그리고 저울의 눈금을 가리키는 바늘은 pointer라고 한다. 어떤 경우든 needle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lifeboat: 인명을 구하기 위해 운용되는 구조선이라는 뜻도 있고, 대형 선박이 자체적으로 내장하고 있는 비상 탈출용 구명정이라는 뜻도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또한 해적의 침입에 대비해서 비상 탈출은 하지만 배를 버리지는 않고 안에서 짱박히는 '패닉 룸'이라는 것도 있다.

Pilate: 고유명사로는 성경에 나오는 로마 총독의 이름 빌라도.. 예수님을 대면했던 그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 단어의 영어 발음은 조종사 파일럿(pilot)과 동일하다..;;
그리고 뒤에 s만 붙여서 독일식으로 읽으면 얘는 운동 이름인 '필라테스'가 된다. 매우 흥미로운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전갈 사자 사신: 통신· 연락과 관계가 있는 보통명사이면서 한편으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존재와 미묘하게 동음이의어인 한자어이다.
표창도.. 상 받는 줄 알았다가 칼빵 맞을 수 있겠다.;;

내가 영어 성경에서 본 단어들 중에 한국어와 형태가 가장 비슷한 단어는 abba(말 그대로 아빠), dung(똥..)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1/03 08:35 2022/01/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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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관찰

1. lose와 miss

의미와 심상이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가령, 목적어가 the chance라면.. 기회를 잃건 놓치건 그 말이 그 말인 것처럼 들린다. 버스나 열차를 놓쳐서 탑승하지 못했다고 말할 때도 두 동사를 모두 쓸 수 있다.

그런데 lose는 ‘잃다/잃어버리다’를 넘어 승부에서 패배한다는 뜻을 포함한다. 즉, win의 반의어뻘 되는데..
miss는 뭔가를 향해 쐈지만 과녁을 빗맞히는 것, 빗나가는 것, 실수한다는 뜻 쪽으로 간다. lose하고는 다르다.

이렇게 의미가 분화된 두 단어는 나중에는 좀 생뚱맞은 뜻까지 갖게 된다. 먼저 miss는.. '뭔가가 없어서/뭔가를 할 수 없어서 유감이다, 서운하게 생각한다, 그리워한다'라고.. 원래 뜻으로 인해 유래된 감정까지 나타낸다. I missed you so much.. 이건 의미가 분화된 과정은 이해가 되지만 심상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뒤바뀐 게 이례적인 것 같다.

한편, lose는.. 도망을 잘 쳐서 자기를 쫓아오는 적을 멀리 따돌리고 떨쳐냈다는 뜻으로 쓸 수 있다. “Did we lose them?" 이건 우리말로 직역하기가 좀 그렇지만, "이제 저놈들 완전히 따돌렸지? / 우릴 안 쫓아오지?" 정도의 뜻이다. 그 특성상 영화 같은 데서 종종 쓰인다. lose가 일반적으로 손실, 패배 같은 굉장히 애석하고(sorry) 부정적인 뜻임을 감안하면 꽤 의외이지 않는가?

적을 싸워서 제압했다면 beat them일 것이다. win은 목적어 없이 단독으로 '이기다', 아니면 상(prize)을 타거나 경기(contest)에서 우승했다는 뜻으로는 쓰지만 경쟁자나 적을 목적어로 받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말과 차이가 있다.
lose 역시 단독 아니면 경기나 싸움이 목적어였다면 '지다'인데, 적을 목적어로 받으면 저렇게 따돌렸다는 뜻이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 되겠다.

2. 조동사

영어의 조동사들은 중학교 수준에서 배우고 넘어가는 기본 단어이다. 한국어에는 문법 형태만 따지자면 보조 용언이란 게 조동사와 비슷하지만, 영어 조동사의 의미를 딱 한 단어로 대체하는 물건은 없다. '-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 -해도 된다' 등등 덕지덕지 풀어서 써야 하다 보니, 이럴 때는 영어가 꽤 간편하고 부러워 보인다.

하지만 영어 역시 동일 단어가 뜻이 굉장히 다양하고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요" 같은 지저분한 구석이 있어서 형태가 완벽하지만은 않다. 내가 영어 모국어 화자였더라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일단, may와 must를 생각해 보자. 얘들은 추측이라는 의미와 권한/의무라는 의미에 형태적인 구분이 없다.

  • MAY: 해도 좋다(허락) / 그럴 수도 있다(확률, 추측) + (문어체로 도치되어) .. 이렇게 하기를 (축복, 기원)
  • MUST: 반드시 해야 한다(강요) / 반드시 이럴 것이다(확률, 추측)

must의 경우, have to라는 대체제가 있다. 얘는 강요라는 뜻만 담당한다.
그리고 부정문은 must not과 do not have to가 모두 가능한데, 전자는 전체 부정(반드시 하지 말아야 한다)이고 후자는 부분 부정(꼭 할 필요는 없다)으로 의미가 나뉜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must는 다른 조동사들과 달리 과거형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고..

다음으로 can과 will을 생각해 보자.

  • CAN: 할 수 있다(가능. be able to)
  • WILL: 할 것이다(미래. be going to, be about to)

여기까지만 보면 별로 어려울 게 없어 보이는데.. 이것들이 과거형으로 바뀌고 의문문에 쓰이면 뉘앙스가 미묘하게 차이 나는 청유/부탁이 될 수 있다.
한국어는 보조 용언 '주다' 내지 '달다'(불완전)가 있어서 자기를 위한 부탁의 뜻을 꽤 분명하게 표시할 수 있는데, 영어에는 저런 조동사, 그리고 부사/감탄사 please가 붙어서 부탁의 뜻이 가미되는 셈이다.

조동사들 중에 제일 제멋대로 독고다이로 노는 놈은 단연 shall일 것이다.
요놈의 제일 기본적인 용도는 will보다 더 고전 문어적인 느낌으로 미래의 일, 다짐, 예언, 지침을 표현하는 것이다.

“Thou shalt not kill”은 “너는 살인하지 않을 것이다”가 아니고, 그렇다고 대놓고 명령조의 “살인하지 말라”도 아니며, “살인하지 말지니라” 정도가 적당한 번역일 것 같다. 영어 성경에 나오는 shall은 will과 비슷해 보이지만 한편으로 must의 자리도 넘보니 will 그 이상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의문문에서는 거의 관례적으로 we에만 붙어서 “우리 ~할까?”라는 용도로 쓰이고, 대답은 let's ~로 끝난다.
그리고 과거형은 거의 must와 비슷한 강한 확신이나 명령이 되는데, have 완료형과 즐겨 붙어서 “~했어야만 했다” 이런 꼴로도 잘 쓰인다. 묽은 황산이 진한 황산으로 바뀌면 성질 자체가 좀 달라지듯이 shall은 이런 식으로 굉장히 므흣한 면모가 있다.

그나저나 let us go (우릴 가게 해 줘)와 let's go (우리 가자)가 차이가 나는 건 우리말로 치면 '도트, 네트'와 '닷, 넷'이 차이가 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3. 운율

성경에서 마 7:13은 그 유명한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그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거기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이다. 영어로는 우아하게 도치법이 적용되어 "... wide is the gate, and broad is the way, that leadeth to destruction ..."인데..

난 이 문장을 읽으면서 뭔가 옛날에 유선 전화 송수화기를 들고 너무 오랫동안 지체할 때(대략 20~30초 이상..?) 흘러나오는 오류 메시지와 운율 면에서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dialing is too late, please call again. ...???... 다시 걸어 주십시오." 이거 말이다. 요즘도 유선 전화기에서는 들을 수 있으려나?

요즘은 개인적으로 유선 전화 자체를 접할 일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컴퓨터에서 광학 디스크 드라이브만큼이나 보기가 매우 어려워져 있다.
그나저나 wide is the gate랑 dialing is too late를 생각해 보시길.. 좀 비슷한 운율이 느껴지지 않는가..? 영어에 rhyme이란 개념이 괜히 존재한 게 아닌 것 같다.

전화를 끊고 다시 걸라는 에러 메시지는 영어 문장 세 개, 그리고 우리말 문장 하나로 구성돼 있었다. 마지막 영어 문장은 1990년대의 내 영어 청취 실력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어서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만.. 이런 건 딱히 구글 검색으로도 나오지 않더라.

4. wake와 wait, a-변종

영어의 wake와 wait는 서로 발음이 비슷하면서 매우 간단하고 기본적인 동사 단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글쎄.. wake는 대부분 wake up이라는 명령 형태로만 쓰는 것 같다.
wait는 "기다리고 있을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정도의 자동사가 기본이고.. 누구를 기다린다고 할 때는 반드시 wait for의 형태가 된다.

그런데 이 두 단어는 모두 앞에 a가 붙은 awake, await라는 변종이 존재한다.
await는 그냥 wait가 아니라 귀한 손님, 혹은 게임에서 최종 보스 같은 거물이 "너를 맞이할 것이다" / "귀하신 분이 납신다" 이런 뉘앙스가 들어간다. 게다가 완전한 타동사이기 때문에 for 없이 목적어가 바로 붙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녀와 야수 만화영화에서 tale as old as time을 앞두고 나온 대사 "Your lady awaits", 그리고 게임 퀘이크에서의 메시지 "Shub-Niggurath awaits you"가 기억에 남아 있다.

다음으로 wake는.. awake뿐만 아니라 waken도 있다. 그리고 awake와 waken은 모두 동작이 아닌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도 된다. 그러고 보니 live(동사/형용사)와 alive(형용사)하고도 비슷한 관계인 것 같네..

어떤 동사는 한국어로 치면 '주다'와 '달다(다오)'처럼.. 주체나 객체가 특정 인칭(나 또는 타인)에 특화된 경우가 있다. wake의 변종들도 이런 경우인 게 아닐까?
여호와의 증인 간행물인 '깨어라'는 wake up이 아니라 awake라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7/10 08:36 2021/07/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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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어휘 관련 이야기들

1. 접두사

한국어에서 '반'이라는 접두사는 반대· anti라는 뜻이 있고(반작용, 반중력, 반물질, 반동..), half라 하더라도 반자동, 반원, 반계탕(...)처럼 뭔가 온전· 완전하지 않은 반쪽짜리라는 뜻을 지닌다.

하지만 '반영구'는 어떨까? 이건 의외로 100점의 반대편인 0점이나 절반인 50점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미래에 일어날 일을 단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고 무조건 100%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으니까 90, 99 내지 99.9%라는 뉘앙스를 담아서.. 저건 '거의 사실상 영구적인'이라는 뜻이다. "이 기계는 정비 없이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합니다"처럼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구, 영원'이라는 건 수학적으로 봤을 때 무한을 나타낸다. 그런데 무한대는 반으로 나눠 봤자 여전히 무한대일 테니, '반영구'도 뜻이 저렇게 될 수밖에 없겠다.
'반영구'와 비슷한 방식으로 개인적으로 의아함을 느꼈던 단어가 영어에도 있는데.. 바로 depress이다.
de-에는 잘 알다시피 반대 역행(decode), 제거(defrag, deice..), 감소(decrease) 등의 뜻이 있다.

그러니 depress가 의기소침, 우울, 불경기, 불황 등의 뜻이 담긴 동사인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것 자체에도 press와 별 차이 없는 "버튼, 페달 따위를 누르다"라는 중립· 물리적인 뜻도 있는 것은 의외인 것 같다. 마치 반영구와 영구가 뜻이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자동차 운전석에서 특정 페달을 밟는 동작도 depress로 표현 가능하다.

re-가 붙어서 원래 단어와 별 차이 없거나 강조 뉘앙스가 담긴 다른 뜻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예: avenge-revenge, award-reward, plenish-replenish)
de-도 비슷한 작용을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liberate - deliberate, light - delight도 둘이 서로 반의어 관계는 아니니 말이다.

2. 크다/작다, 많다/적다

'크다/작다'(대소)와 '많다/적다'(다소)는 직관적인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언어 차원에서 엄밀한 구분이 쉽지 않은 개념이다.

(1) 먼저, 이산적이고 양자화되어 수효를 셀 수 있는 디지털 개체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많다/적다 many/few’가 쓰인다. 사람이라든가 자동차 등.. 영어라면 이런 개체가 하나만 존재할 때는 부정관사 a가 붙을 수 있다.

(2) 이와 달리, 단일 개체에 대해서 시각적인 size를 논할 때는 ‘크다/작다’가 쓰인다. 영어로는 large/small, big/little 같은 단어 쌍이 있으며, 이 외에도 great, huge, tiny 같은 단어도 있어서 표현이 다양하다. 사람의 키, 건물의 높이에 대해서는 tall도 쓰인다.

(3) 각각의 개수를 셀 수 없는 아날로그스러운 물질.. 가령 액체 기체 같은 유체에 대해서는 수가 아니라 양(부피)이 많거나 적다고 말한다. 한국어로는 표현이 동일하지만 영어는 잘 알다시피 much/little을 사용한다.
이거 경계가 좀 모호한 편이다. 고체의 경우,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쌀알, 콩알은 1자리 단위의 개수를 세는 게 무의미하고 양만을 측정하긴 하지만 그래도 many가 쓰이는 듯하다. 모래알이나 흙 정도는 돼야 much가 된다.

(4) 그리고 애초에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사랑, 근성, 노력 같은 건 당연히 셀 수 없는 개념들이다. 영어로는 응당 much/little이 쓰이지만.. 우리말은 둘의 구분이 막 엄격하지 않고 ‘많은 사랑, 큰 사랑’ 다 집어넣어도 말이 되는 것 같다. 하긴, 영어로도 great와 much를 생각해 보면 ‘크다’와 ‘많다’가 모두 가능한 듯하다.

(5) 끝으로, 많고 적음을 나타낼 때 숫자가 쓰이기는 하지만, 숫자의값 자체는 크거나 작다고 수식한다. 이것을 영어로는 great/little이라고 하며, 비교급은 greater/less이다. 이건 시각적인 크기를 나타내는 (2)와 표현은 비슷해도 관점은 약간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수와 양의 구분이 분명치 않고 메롱인 상황에서는 ‘적다/작다’도 덩달아 헷갈리게 된다.
영어의 little은 가산명사와 불가산명사에 대해서 뜻이 너무 다양하게 함축적으로 많이 들어있는 것 같다. 심지어 little과 少에는 ‘어리다’라는 뜻도 들어있다.

3. 동물 명칭

한국어에는 가축 급의 친숙한 동물 몇 종에 대해서..
말-망아지, 소-송아지, 개-강아지 이렇게 짤막한 총칭에다가 접사 '-아지'가 붙어서 그 품종의 어린 새끼를 가리키는 패턴이 존재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런데 옛날에 원래는 '돼지'도 저런 관계였다고 한다. 돼지를 가리키는 총칭은 '돝'...;;; 이었고, 새끼돼지를 '도야지'라고 불렀는데.. '돝'이라고만 해서는 변별이 잘 안 됐나 보다. 나중엔 '도야지'가 돼지의 총칭이 되고 음운이 축약되어 오늘날의 '돼지'로 정착했다. 오늘날은 '도야지'는 돼지의 방언 내지 귀여운 별칭 정도로나 여겨지고 있다.

사실, '돝'은 너무 짧아서 돛도 아니고 dot도 아닌 것이 좀 난감하긴 해 보인다. 먼 옛날의 한국어에는 지금보다 모음 양 옆(음절초나 음절말)에 여러 미세한 자음들이 붙는 게 더 자연스러웠는가 보다.
'돝' 말고도 저렇게 짤막한 단어가 현대에는 더 길어지고 늘어난 게 내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여럿 더 있다. 참고로 나무 열매 '도토리'도 '돝'에서 유래되었으며, 다람쥐뿐만 아니라 돼지 역시 도토리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아울러,

  • '돝'에서 음운이 더 탈락해서.. 윷놀이에서 말을 한 칸만 움직이는 명칭인 '도'도 돼지의 흔적이다.
  • '-아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접사가 영어에는 '-ling'(저글링;;)이나 '-ette'(디스켓) 정도 있는데, 이들도 막 활발하게 생산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 영어는 소와 돼지에 대해서 해당 동물의 '고기'를 가리키는 단어가 별도로 존재한다. pork, beef... 그리고 몇몇 고양잇과 동물의 새끼를 총칭하는 cub라는 단어가 있는데, 한국어는 딱히 그에 대응하는 개념이 없다.
  • 닭의 새끼인 '병아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됐는지 '닭'하고는 관계가 전혀 억고, '-아지'하고도 완전히 같지는 않은 게 인상적이다.

4. 천둥, 번개, 벼락

천둥, 번개, 벼락은 동일한 기상 현상에서 유래된 단어이며 모두 ‘-(내리)치다’가 붙을 수 있는 대상이다. 별 구분 없이 섞여 쓰이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묘사하는 관점이 원래 서로 제각기 다르다. 마치 열차, 기차, 전철, 철도 등의 뒤죽박죽 단어처럼 말이다.

  • 천둥: 쿠구궁~~ 콰르릉 같은 엄청나게 크고 우렁찬 소리를 가리킨다(청각). ‘天動’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원래 순우리말은 ‘우레’이다. 우뢰가 아님. 아마 한자 뢰(雷)의 영향으로 말이 바뀌는 것이지 싶다. 영어로는 thunder이다.
  • 번개: 구름과 구름, 또는 구름과 대지 사이에 전기 방전이 일어나서 번쩍이는 그 직선 모양의 불꽃을 가리킨다(시각). 번갯불, 번개 모양 아이콘/아이템 등의 형태로 쓰이며, 비유적으로는 몹시 빠르고 날쌘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영어로는 lightning이다.
  • 벼락: 번개와 비슷하지만.. 특별히 번개가 떨어져서 지면에 닿는 현상을 가리킨다(낙뢰?). 그러니 천둥 번개가 비교적 중립적인 심상인 반면, 얘는 “벼락 맞아 뒈지라”,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인적· 물적 피해를 동반하는 부정적인 심상이 강하다. 청천벽력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되었다(벽력). 영어로는 thunderbolt에 가깝다.

현실에서는 광속과 음속의 차이로 인해 번개 비주얼과 천둥 소리가 동시에 발생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같은 현상에서 유래되었지만 언어 차원에서 둘을 더욱 분리해서 별개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다만, 번개와 벼락의 구분은 한국어에 좀 독특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5. 접사 '호'

한국어는 선박을 여성형 대명사로 가리키며 모에화(...)하지는 않지만, 선박의 이름 뒤에 꼭 '-호'라는 접사를 붙이는 관행이 있다.

-호 (號) [접미사] 배· 비행기· 기차 따위의 이름에 붙여 쓰는 말. (표준 국어 대사전)


이건 받침 있는 사람 이름 뒤에 붙는 잉여 접사 '-이'(복순이, 갑돌이)하고도 물론 같지는 않지만 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순서를 나타내는 1호, 2호(의존명사) 내지 창간호 따위의 '호'와는 성격이 명백히 다름을 유의하시라.

옛날에는 사람이 타는 교통수단이란 게 매우 희귀하고 수가 적고 신기한 물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개체가 이름이 붙고 고유명사화· 인격화되곤 했다.
과거의 우리나라 열차 이름 해방자호, 융희호 따위는 해당 열차 등급이 아니라 특정 차량의 명칭에서 유래됐다.
심지어 1950년대에는 여객기에도 각각의 기체에다 만송호, 창량호, 우남호 같은 이름이 붙었을 정도였다. (꼴랑 세 기..)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작명 방식에도 한자어가 아닌 영어물이 들면서 이런 '-호' 관행은 쓰이지 않게 됐다. KTX호, ITX-청춘호 이러지는 않으니 말이다.
오로지 선박만이 각각의 선체에다가 이름을 붙이는 관행과 함께 '-호'가 여전히 현역인 것 같다. 심지어 거기는 외래어 명칭 뒤에도 '-호'가 잘만 붙는다.

스포츠 신문에서는 운동 선수들이 감독과 함께 한 배를 탔다는 걸 비유하고 싶어서인지 '히딩크호, 허정무호 순조롭게 출항' 이런 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로호'는.. 열차도, 선박도 아니고 우주 로켓임에도 불구하고 어째 '-호'가 자연스럽게 붙었다. 이 21세기에도 '-호' 네이밍이 완전히 죽지는 않은 듯하다.

다만, 이런 저런 정황을 감안하다 하더라도 옛날에 태풍 이름에도 '-호'가 붙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하다. 대표적으로 1959년의 그 악명 높았던 태풍 '사라호' 말이다. 태풍은 그냥 자연 현상일 뿐, 인간이 개발한 교통수단이나 발명품이 전혀 아닌데..?
그때는 태풍더러 좀 순해지고 피해를 덜 끼치라고 국제적으로 여성 이름이 붙던 시절이었다(1979년까지).. 이 '사라'는 실제 여성 인물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뜻에서 '-호'가 추가된 걸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5/27 08:34 2021/05/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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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시발이었을까

이 블로그에서 몇 번 다룬 적도 있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자국 생산 자동차 '시발'을 생각해 보자.
아무리 좋은 뜻을 담았다고 해도 그렇지, 자동차 이름을 왜 비속어가 연상되는 '시발'이라고 지었을까 지금 우리로서는 궁금증이 들 것이다. 마치 극악의 저출산 때문에 고민인 지금의 관점으로는 과거에 정반대로 "아들 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 구호가 나오던 배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과도 비슷하다.

저 시절을 직접 겪은 옛날 분의 증언에 따르면.. 시발 자동차가 다니던 195, 60년대에도 한국어에 C-bal이라는 욕설 자체는 멀쩡히 존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의 언어 습관은 여러 정황상 말소리보다 한자 뜻을 훨씬 더 중요하게 따졌던 것 같다. 始發이라는.. 요즘으로 치면 '오리진, 제네시스'나 마찬가지인 좋은 뜻만 가졌으면 됐지, 굳이 "C-bal이 연상되는데?"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마치 성에 대한 금기만큼이나 금기시됐던 것 같다. 천한 욕설은 공식적으로는 한국어에 존재하는 걸로 간주되지도 않는 어휘였다.

물론 공개 석상 말고 사석에서는 그런 고매하신 선비질 따위 없었다. 그러니 비단 시발 자동차 말고도, 한자로 뜻은 괜찮지만 소리가 이상해서 어린 시절에 흑역사급 별명을 달고 다녔던 사람이 많았다. 인명 외의 분야를 봐도 야동 초등학교도 있었고, 죽음(대나무 그늘) 마을도 있었다.

야동 초등학교의 경우, 인터넷으로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개명을 해 버린....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고(단, 시골에 학생 수가 너무 적어져서 폐교 위기라고 함)... 후자의 경우 본인이 아주 어리던 시절에 TV를 통해서 봤는데, 노인들이 시골길에서 차에 치여 세상 하직하는 일이 잦아지자 불길하다면서 뒤늦게 개명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야동 초등학교야.. 학교 이름을 짓던 시절에는 야동이라는 것 자체가 지금처럼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C-bal과는 상황이 좀 다르긴 하다.. ^^)

생각을 해 보라. '죽음'(竹陰)은 멀쩡하게 지명으로 썼으면서, 순우리말과 아무 관계 없는 한자 (중국어)와 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다른 멀쩡한 숫자 4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기피했던 것이 한국의 언어 문화였다.
개인적으로 이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말과 소리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문자이지, 말이 문자에 끌려가서 꼭 뭘 봐야만 뜻이 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이 아니다.

한글로만 쓰니까 뜻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네 하는 면모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자면 말이 그 따위로 돼 버린 게 문제가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서유럽· 미국 같은 나라는 표음문자 알파벳만 갖고도 넘사벽 급의 학문이고 사상이고 철학이고 과학 기술을 이룩했지 않은가?

본인 역시 그런 맥락에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한글 전용 지지 소신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옥편 뒤지면서 듣보잡 벽자를 찾아내서 이 소리는 이런 뜻이라고 갖다붙이는 짓 대신, 온통 영어 외래어를 갖다붙이는 게 유행이 돼 있다. 어느 게 절대적으로 더 바람직한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자가 차라리 전자보다는 더 나은 것 같다. 듣는 것만으로 뜻이 변별은 되니까 말이다..

2. and는 접속부사인가

그럼 다음으로 잠시 한국어와 영어를 좀 비교해 보겠다.
한국어에는 체언을 잇는 '과/와' 접속조사, 용언(=구, 절 모두)을 잇는 '며/고' 연결어미, 그리고 문장을 잇는 접속부사(그리고)가 전부 따로 논다. 그러나 영어는 전부 간단하게 접속사 and 하나로 끝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and는 접속부사로 취급되지 않았는가 보다. but, then, however, moreover, meanwhile 등은 명백히 영어의 접속부사이지만 and는 X and Y로만 쓰는 것을 정석으로 쳤던 듯하다. 프로그래밍 언어로 치면 말 그대로 이항 연산자. ㄲㄲㄲ and는 or과 같은 급이지, but과 호응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먼 옛날에 MS Word의 스펠링+문법 검사기도 문장을 And로 시작하면 틀렸다고 지적하던 게 내 10대 시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대신 "콤마+소문자 and"로 문장을 길게 이어야 했다. 왜 반드시 저래야만 하는지를 본인은 그 당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성경만 해도 And로 시작하는 문장이 부지기수이고, 특히 옛날 고전 텍스트인 KJV는 훨씬 더 많이 쓰였다. And 금기가 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글쎄, 이런 게 아닐까? 원래 '보다'는 조사이기 때문에 "A보다 B가 더 낫다" 형태로만 쓰는 게 맞는데.. 요즘은 그게 부사처럼 쓰여서 건방지게 앞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옛날에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하던 분들이 저건 잘못됐다고 번역투와 더불어서 왕창 지적했었다.
나도 굳이 '더'가 멀쩡히 있는데 '보다'를 일부러 바꿔서 쓸 필요는 느끼지 않기 때문에 자제하고 지낸다.
대문자 And가 한국어로 치면 저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이 문득 든다.

한편, 뉴스 앵커 멘트에서 종종 쓰이듯이 "김 씨는 그러나 사실을 부인했습니다"처럼 접속부사가 문장 맨 앞이 아니라 주어와 도치(?)되는 것도 문법에 어긋난다고 얘기가 많다.
나 역시 어감상 어색해서 개인적으로는 저렇게 안 쓴다. 하지만 저걸 비문으로까지 간주하는 건.. 좀 문법 나치스러운 발상 같다. 영어로도 Mr Kim, however, denied the fact 처럼 콤마와 함께 접속부사를 중간에 잘만 집어넣는걸...

3. 동작상(動作相)

언어에는 제각기 동작상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있어서 한국어로는 ‘죽었다’ 하나뿐이지만 영어로는 you died와 you are dead가 더 세분화돼 있다. (그리고 보통 전자보다는 후자로 번역되는 일이 더 많음)

‘죽다/죽었다’뿐만 아니라 한국어의 용언 중에는 ‘맞다’처럼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굉장히 헷갈리고 동사 과거 시제가 사실상 현재 시제의 형용사처럼 돼 버린 물건이 좀 있다.
‘미치다’, ‘틀리다’도 생각해 보자. You are crazy/wrong이 “너 미쳤다/틀렸다”이지 않은가? “미친다/틀린다”는 동작상이 꼬여서 용례가 겉돌고 있으며, 그 와중에 ‘틀리다’는 ‘다르다’의 영역을 야금야금 침범하는 중이다. 총체적인 무질서인 것 같다.

여담이지만 영어 have는 동명사 내지 현재진행형인 having이 존재한다. 하지만 단순히 ‘가지다, 소유하다, 내게 있다’라는 1차 의미일 때는 현재진행형 시제를 사용할 수 없다는 독특한 규칙을 초등학교 영어 수준에서 배우게 된다. have가 현재진행형인 것은 좋은 시간을 보낸다거나 경험하는 등, 2차 파생 의미일 때에만 가능하다.

이런 것도 동작상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용례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원래 원칙은 저렇지만 관계대명사 앞에서는 "~를 가진"이라는 뜻으로도 is having에서 is가 생략된 꼴이 잘만 쓰인다.;;;.

4.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난해함

  • -ㄹ수록: 의존명사 '수'(할 수 있다)를 떠올려서 그런지 '그럴 수록'처럼 띄어 쓰는 경우가 주변에서 많이 보인다. '-수록'은 뭐 다른 형태로 활용되는 게 전무하며 그 자체로 연결어미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붙이는 게 맞다. '그럴수록'
  • -ㄹ지: 역시 어미인데.. 문제는 얘는 좀 명사화 접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할지 말지가 문제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역시 '지'를 의존명사처럼 인지하고 띄어 쓰려는 경향이 있다. 진짜 의존명사인 '줄'도 같이 떠올리는 것 같다. (너 그럴 줄은 몰랐다)
  • -ㄹ까 봐: 얘는 '할까 보다'라고 분할이 가능하기 때문에 '봐' 앞을 띄운다. "네가 사고라도 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도 다른 띄어쓰기에 비해서는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한 띄어쓰기에 가깝다.
  • - 왜냐하면: 단독으로 부사이다. '왜냐 하면'이라고 띄울 필요가 없다.
  • - 못하다: "저는 그 일을 못 합니다" / "그렇게 되지는 못합니다"
    '못'은 부사이고 '못하다'는 동사, 형용사, 보조용언이 다 되는 정신나간(?) 단어이다.

영어 정서법에 비해 우리말의 한글 맞춤법이 더럽게 복잡하고 띄어쓰기가 어려운 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현실이다. 왜 그럴까? 이를 원론적으로 따져보면 이렇다.

일단 (1-1) 한국어가 언어 구조적으로 어미 접사가 어간 뒤에 덕지덕지 복잡하게 붙는 걸 좋아하는 교착어이고 애매한 품사통용어가 많기 때문이다.
이 한 글자짜리 형태소를 접사나 어근이라고 보면 붙이고, 고유한 부사나 명사라고 보면 띄운다. 그런데 그 기준과 경계가 엿장수 마음대로가 되기 십상이다..;;.

가령, 본인은 내 개인 블로그 한정으로 성과 이름도 띄어 쓰고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띄어쓰기를 더 하면 더 하지 결코 덜 하지는 않지만.. '전세계'에서 '전'과 '세계'를 띄어야 하는 건 개인적으로 좀 납득이 안 된다. 全 정도면 그냥 접두사로 보거나, 쟤만이라도 거의 한 단어로 굳은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1-2) 게다가 띄어쓰기 말고 사이시옷도 말이다. 왜 '물고기'는 '꼬기'이고 '불고기'는 '고기'인가,
'볶음밥'은 '밥'이고 '비빔밥'은 '빱'인가,
그럼 '김밥'은 밥인가 빱인가 이런 거는.. 정말 랜덤이고 개연성이 없다. 규칙을 찾을 수 없다. 한국어가 원래 그런 언어다.

그리고 (2-1) 문자 차원에서는 역설적으로 모아쓰기 때문이다.
글자가 단독으로도 적당히 음절 경계 변별이 뛰어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띄어쓰기를 안 해도 알아보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띄어쓰기를 전혀 안 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한 단어로 붙여 쓰는 예외를 정하는 게 난감하고 띄어쓰기 규칙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2-2) 사이시옷은 말부터가 제멋대로인데 그건 음절 단위로 딱딱 떨어지지 않는 초분별 요소에 속하며 한글이라는 체계 하에서 표현하기가 몹시 난감하다. 사이시옷 규정이 캐 더럽고 구린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한자어의 경우 "숫자 횟수 곳간" 등의 몇 개만 예외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그냥 표기하지 않기로 정해 버렸다.

알파벳 같은 풀어쓰기형 문자를 썼으면 띄어쓰기는 약간이나마 더 쉬워졌을 수 있다. 체언과 조사도 띄우고 좀 헷갈린다 싶은 건 몽땅 띄우고, 좀 아쉬운 건 하이픈으로 연결하고.. 사이시옷이나 축약은 ' 점 하나 찍어서 해결해 버리면 된다.

다시 말해 모아쓴 한글의 덩어리 단위가 '초분절적 변별요소'까지 포함한 한국어의 형태소· 음운 단위보다 크기 때문에 이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글의 큰 장점인 동시에 그로 인해 얻는 부작용인 셈인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여담이지만, 영어권에서는 심지어 숫자와 단위 사이도 꼬박꼬박 띄운다. 100MB, 50kg라고 안 하고, 우리로서는 어색하게 느껴지겠지만 100 MB, 50 kg라고 쓴다는 것이다.
숫자와 알파벳 이렇게 문자의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에 붙여도 전혀 모호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는 단어와 띄어쓰기에 대한 인식이 서양 언어 문화권과 동양의 그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08 08:35 2020/12/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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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에 대한 생각

한국어에는 '단 하나뿐인 / 유일한'이라는 말이 있고, 영어에도 only one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수학이나 논리학 같은 데서는 one과 only를 더 엄밀하게 구분해서 표현해야 할 때도 있다. 둘은 서로 독립된 별개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는 표현도 only one이 아니라 one and only가 된다. one은 이때 명사/대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임을 주의할 것.

only라는 속성을 지닌 유니크한 개체라고 해서 반드시 단수 형태여야 할 필요가 없다. 복수이고 집단이지만 우주를 통틀어 그 물건이 이것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상황도 생기는 법이다.
이럴 때 영어는 the only 복수형 명사가 자연스럽게 붙는다. 그러나 only의 한국어 번역인 '유일한'에는 일(一)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버려서 그냥 only가 아니라 one and only라는 의미가 추가된다. 그래서 의미의 범위가 더 좁아진다.

이건 마치 "one of the ...-est(최상급) 복수형 명사"가 의미상 잘못됐다는 관점과도 비슷해 보인다. "1등이라면 하나뿐이지 웬 '가장 뛰어난 물건들 중 하나'.. 이딴 식이냐"라는 식으로 트집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좁게는 공동 1위도 있을 수 있고, 그리고 저런 표현은 단순히 가상의 등급 하에서 최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이 아니라 그냥 수능 1등급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하물며 only는 이것 말고 다른 건 없다는 뜻이므로 등수도 아니고.. 얼마든지 복수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유이한 존재, 유삼한 예외, 이렇게 얼치기로 말을 만들 수는 없으니, '유일'은 글자 단위로 쪼개서 생각하지 말고 one을 배제한 only라는 의미만 생각해서 통용해야 할 것 같다.

'이름'이 full name과 first name이라는 중의성을 지니듯, '유일'은 only와 one and only의 뜻을 모두 지닌다는 것이다. 얼치기 같지만 이런 식의 다의 중의성은 영단어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man (남자 vs 사람)이나 day (낮 vs 날)처럼 말이다.
한국어에서 one and only를 꼭 강조하려면 앞에 '단일'을 추가해서 '단일 유일'이라고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

성경에서 요 3:16 '독생자'가 영어로 어떻게 표현돼 있는지 생각해 보자. 하나이면서 또 다른 아들이 없음을 나타내야 하니 only begotten Son 내지 one and only Son이다.
일반적으로는 only son이라고만 해도 외아들이라는 뜻이 통하지만, one and only는 그걸 더 강조해 준다. begotten은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났다는 의미를 강조한다는 차이가 있다.
(영어는 씨를 준 아버지의 관점에서 누구를 낳은 건 beget이라고 표현하며, 씨를 받아서 아이를 실제로 출산한 어머니의 관점에서 낳은 것은 bare이라고 표현한다는 점 역시 생각할 사항..)

only와 관련하여 one 다음으로 살펴볼 단어는 if이다.
if A then B는 "A이면 B이다"라고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도 매우 즐겨 등장하는 문장 구조이다. only if는 "A여야만, A일 때만" 정도와 대응한다.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수학의 집합과 명제 시간에 다들 배우게 된다.

  • A^2=1 if A=1 (A=1이라면 A^2의 값이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무조건 1임. 하지만 A^2를 만족시키는 값 자체는 1 말고도 더 있음. 충분조건)
  • A=1 only if A^2=1 (A^2=1이라고 해서 100% 반드시 A=1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A^2의 값이 1이 아니라면 A가 1일 가능성은 전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조건)

그러므로.. 둘은 관점이 서로 다르다.

  • A=1은 A^2=1이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A^2=1에 대한 정밀도가 100%이다.
  • A^2=1은 A=1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A=1에 대한 재현율이 100%이다.

이런 식의 포함 관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계약서 같은 법적 문서엔 including but not limited to (A를 하나 제시하지만 A만 맞다는 건 아니며, 다른 가능성도 있음) 라는 조건 문구가 즐겨 등장하는 것이다.
"A^2=1을 만족시키는 수를 하나 찾아 준다고 했지, 이것밖에 없다고 말했거나 전부 찾아 준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나는 거짓말 안 했어요" 이런 식의 면피를 위해서이다.

if와 only if를 합쳐서 if and only if (iff)가 돼야만 두 명제가 완전히 필요충분 동치가 된다.

  • 정사각행렬 A는 판별식 값이 0이 아니다. if and only if Ax = O을 만족하는 열벡터 x가 trivial solution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iff는 우리말로는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이고 -이어야만 / -이고야만" 본격적으로 우리말로 학문을 하려면 뭐 이런 식으로 짤막하게 말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이상이다.
어떤 사물이나 조건이 있는데 그게 여러 개체들 중의 한 인스턴스(!!)일 뿐인지, 아니면 이것밖에 없는 유일한 개체인지를 따지는 것은 언어의 저변 사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 0이냐 1이냐, 아니면 다수이냐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에는 정관사와 부정관사가 있고 단수와 복수도 깐깐하게 따진다. 한국어는 그런 관념은 딱히 없지만 '-가', '-는', '-만', '-도' 같은 조사들이 세밀하게 발달해 있으며, 생물이냐 무생물이냐 여부를 영어보다 더 따지는 편이다.

한국어는 용언과 부사가 발달해서 no(없음)라든가 more(더 이어지는, 더 있는) 같은 개념이 관형어로 딱히 존재하지 않는 반면, '없다', '모르다' 같은 건 의외로 한 단어로 깔끔하게 존재한다.

only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할 것들이 있다는 게 이 글의 요지이다. '유일' 말고는 의존명사 겸 조사인 '뿐', 부사 '오직', 그리고 관형사 '단' 따위로 나뉘어 번역되는데.. '단'은 사실상 숫자 앞에서만 붙기 때문에 제약이 큰 편이다(단 두 개..). "단, 조건이 있다" 같은 접속사하고 헷갈리지 말 것.

Posted by 사무엘

2020/11/12 08:35 2020/11/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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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오묘한 면모

1. 청자를 배제한 1인칭 또는 2인칭

언어 의사소통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보니, 인칭대명사도 나와 너, 1인칭과 2인칭은 좀 특별하게 취급된다. I나 You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은 제3자, 말 그대로 3인칭이 되며, 영어에서는 3인칭 단수에 대해 현재 시제 동사는 뒤에 -s가 붙기도 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1인칭이나 2인칭이지만, "청자를 배제"하는 효과를 내는 대명사 내지 동사 굴절(활용??)이 존재하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이런 건 아무래도 주어 생략 눈치 100단과 높임법이 존재하는 한국어가 영어보다 더 발달해 있다.

대표적인 예는 '우리'와 '저희'이다. 1인칭은 복수형이 되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까지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저희'는 '우리'와 달리 (1) 화자를 청자보다 낮출 뿐만 아니라 (2) 화자가 속한 집단과 청자는 서로 관계가 없는 별개라고 선을 긋는다.

이런 구분이 영어 we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언어학자에 따라서는 이건 가히 제4인칭이라고 보기도 한다. "저희나라는 틀린 말이니 우리나라라고 써야 한다??" 같은 성토가 존재할 수 있는 언어 자체가 한국어 말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2인칭의 경우 화자에게는 you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친근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그 you가 청자를 의미하지는 않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한국어는 '당신'이 웃어른에 대한 사실상 3인칭 높임말인데..
이게 2인칭일 때는 그다지 높이는 의도가 없고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는 게 참 웃기는 짬뽕 같다.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처럼.. 같은 단어가 2인칭과 3인칭을 오락가락 하는 건 한편으로 독일어의 Sie와 sie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CCM 가사에서 "당신은 평강의 왕"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에서 '당신'이 가리키는 대상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결국 통사가 아닌 화용 계층으로 가야만 분별할 수 있다.
뭐, 영어는 인칭 호칭이 한국어보다 훨씬 더 간결하니 하나님까지 you라고 서슴없이 가리키는 언어이다. 그나마 문자로 표기할 때는 첫 글자를 대문자로 써 주는 게 고작이다.

그리고 끝으로.. 한국어는 어휘 차원에서 청자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닌 '혼잣말'이 구분되는 굉장히 독특한 언어라고 한다. "그게 뭐였더라?"와 "그게 뭐였냐/뭐였니?"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둘 다 똑같이 의문문이고 굳이 따지면 전자도 문맥에 따라서는 남에게 답을 듣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골똘이 생각하면서 청자를 응시하지 않고 혼잣말로 중얼거릴 때 후자처럼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어에는 이런 세밀한 문법적 기능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어떤 언어로든지 청자를 배제하는 1/2인칭, 높임법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단· 복수만 구분하는 간편한 대명사가 존재한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고 좋을 것 같다. 우리말 성경이 하나님이나 윗사람을 가리키는 2인칭 대명사를 '너, 그대'라고 번역하지를 못해서 몽땅 '주, 왕' 등으로 3인칭화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지며 의미 왜곡까지 발생할 여지가 있는데.. 참 난감한 문제이다.

2. 용언들

한국어에서 활용되거나 접사가 붙는 양상이 좀 이상하게 꼬이고 있는 대표적인 용언을 몇 가지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뭐, 수 년 전에 이미 언급한 적이 있는 식상한 아이템도 포함해서 말이다.

(1) 바라다
개인적으로 ‘바랐는데’까지는 원리원칙대로 쓰지만, '바라요', '바람'(명사화된 형태)는 도저히 입에 익지 않아서 불가피하게 ‘바램’과 '바래요'가 튀어나온다. wind 바람과 구분하려는 심리도 있고, 또 ‘자라다, 발하다’ 같은 유사 형태의 다른 용언들은 그런 파생 명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교도 된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바라다’는 “-(시)기 바랍니다”라는 형태로.. 평서문(통사)을 가장한 사실상의 정중한 명령문(화용)으로 쓰이고 있다. “-(시)면 고맙겠습니다/감사하겠습니다”는 명령에서 한 단계 내려가서 화용론상의 청유, 부탁에 가깝고 말이다.

(2) 날다
‘나는’이라고만 쓰면 체언+조사 형태와 구분이 안 되니 틀린 줄 알면서도 자꾸 ‘날으는’이라는 대체제가 쓰인다. 아니면 ‘하늘 나는’ 내지 ‘비행하는’이라고 말을 바꿔서 혼동을 줄여야 한다. UFO를 ‘미확인 비행 물체’라는 한자어 말고 순우리말로 도대체 어떻게 깔끔하게 설명할 것인가?

(3) 맞다
동사와 형용사의 경계가 완전히 난장판이다. 원래는 동사이지만 ‘알맞다, 걸맞다’ 같은 비슷한 형용사들이 용법에 영향을 주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반의어인 ‘틀리다’는 잘 알다시피 현재 과거 시제 경계가 완전 난장판이다. 이게 ‘다르다/틀리다’ 구분까지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4) 우습다
‘웃다’의 사동형 동사인 ‘웃기다’가 ‘우습다’라는 기존 형용사의 의미와 용법을 대체해 온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원래 있던 ‘우습다’가 더 격식 있는 점잖은 말투로 여겨지지만 그런 인식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이건 옳다/그리다의 가치 판단이 필요한 현상일까? 내 역량으로는 정확하게 분석을 못 하겠다.

(5) 좋다/좋아하다, 싫다/싫어하다
good와 like의 관계, 그리고 "난 네가 좋다/싫다" 같은 말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지를 생각해 보면 뭔가 묘한 느낌이 든다.
한국어는 영어와 달리 "덥다/춥다"(사람이 느끼는 결과)와 "뜨겁다/차갑다"(사람에게 느낌을 주는 공기, 물이나 다른 물체가.. 혹은 사람의 마음이)의 구분이 존재하는 언어이다. 저기서 "좋다/싫다"는 마치 "덥다/춥다"처럼 사람이 느끼는 결과 관점을 나타내는 형용사일 것이다.

(6) 모르다
내가 아는 언어들 중에 do not know가 타동사 한 단어로 딱 떨어지게 존재하는 언어는 모국어인 한국어 말고는 없다. 신기한 노릇이다.

3. 기억에 남는 단어들

  • 시력교정술인 '라식과 라섹', 폭염 속에서 발생하기 쉬운 '일사병과 열사병'. 요런 건 뭔가 비슷하면서 내부 디테일은 다른 용어쌍인 것 같다.
  • 충전은 일차적으로는 전기를 보충하는 것이지만 뭔가 리소스를 채운다는 뜻에서 교통카드 액수 보충, 휴식과 회복 같은 뜻으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물론 한자가 다른 充塡도 있다.
  • 포장도.. wrap과 pave는 서로 완전히 다른 뜻이긴 하지만, 도로를 포장하는 것도 노반을 싸매고 꾸민다는(?) 뜻과 그리 심하게 이질적이지 않은 것 같다. 앞의 '충전'의 의미 확장과 비슷하게 말이다.
  • 大/小가 쓰였지만 크다/작다의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이 좀 있다. 대학(고등교육) 대포(무기), 소설(문학..) 소포(우편물)

4.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종족별 나레이션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 2020년은 옛날에 PC 통신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소설 “환상의 테란”에서 상상하고 묘사하던 미래 배경이기도 하다.

스타는 처음 나왔을 때는 한국어 UI가 없었고 심지어 인게임 채팅창에서 한글 입력조차 되지 않았었다. Localization에 관한 한 불모지였다. 그러다가 스타 2라든가 리마스터 에디션이 나오면서 완벽하게 한국어로 번역되고 더빙까지 됐다. 컴퓨터 하드웨어 성능이 더 향상되었으며, 또 잘 알다시피 한국에서 스타가 넘사벽 급의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스타가 로컬라이즈가 된 언어는 오히려 일본어였는데 그건 싹 묻혀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3종족의 아나운서 나레이션을 모두 다른 문체로 번역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자막은 합쇼체로 통일하더라도 음성 나레이션은 다르게 말이다. 몽땅 다 똑같이 합쇼체로 해 놓으면 너무 길기도 하고 종족별 개성이 살아나지 못한다.

  • 프로토스는 누가 봐도 점잖고 근엄한 분위기이니 디씨 같은 “핵 공격이 감지되었소. 파일런이 더 필요하오.”가 돼야 할 것이다.
  • 테란은 여성 부관이 사령관에게 보고하는 형태이니, 유구한 군대 말투 다나까를 반영하여 지금처럼 “핵 공격이 감지됐습니다. 서플라이가 더 필요합니다.”로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부관이 기계인간 사이보그인 걸 감안하여 무전 주고받듯이 뚝뚝 끊어서 “핵 공격 감지됨. 보급고 추가 요망”처럼 할 수도 있다.
  • 저그는 뭔가 공동체 같은 느낌이 드니 구어체 반말까지 생각할 수 있다. “핵 공격이 감지됐다! 오버로드를 더 뽑아야 돼.”

영어 원문은 주어가 다르다. 똑같이 미네랄이 부족해도 플토는 You’ve not enough minerals이지만 저그는 We require more minerals이지 않던가? 영어에 you와 we의 차이가 있다면 한국어는 합쇼체와 해라체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합당하다.

스타크 세계관이 한국에서 주도적으로 창작됐고 스타라는 게임이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면 세 종족의 특성과 개성에 맞게 나레이션의 형태도 저렇게 달라졌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어에 기왕 복잡한 조사(체언)와 어미(용언)들이 존재한다면, 그것들을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 최대한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특히 번역을 할 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01 08:35 2020/08/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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