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튜브 링크는 1942년 6월 13일, 리 승만 할배가 워싱턴 D.C.에서 Voice of America 단파 라디오를 통해 고국으로 내보냈던 7분 남짓한 길이의 항일 독립 투쟁 격려 선전 방송이다.
나는 지금 지극히 기쁜 소식을 전하노니, 누구든지 귀가 있는 자는 듣고 주변 동포에게도 이 소식을 일일이 전해 주시오~ 일제의 학정에 신음 중인 우리 동포에게 자유의 소식을 전하시오. 철창 감옥에 갇히고 형틀에 묶여서 죽어가는 우리 동포에게 생명의 소식을 전하시오…” (약간 요약하고 각색)
내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송이 있다는 건.. 지난 2007년 말에 출간된, “일본 그 가면의 실체”(청미디어) 책에 별첨돼 있던 음원 CD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저 방송이 나갔던 때는 할배가 Japan Inside Out 책을 저술해서 출판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리고 1942년 6월이라는 날짜를 보면 알 수 있듯, 저 때는 이제 막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겨우 승기를 잡았던 시점이었다. 아직 카이로고 포츠담이고 그런 선언이 나오기도 1년 이상 전이었다.
하지만 할배는 배짱 장사를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일본의 미국 침략을 반 년 이상 일찍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패망도 남들보다 훨씬 더 일찍 예상하고 확신했던 것이다.
왜적들은 지금은 의기양양해 있지만 이내 혹독한 불벼락으로 응징당하고 패망의 길로 갈 것입니다. 일황 히로히토는 필히 파멸당할 것이니, 이는 세상이 다 아는 이치입니다.”
“우리 독립군이 중국 및 영국 미국과 더불어 연합군의 일원으로 당당히 왜적을 타파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요? 이 순신의 후예로서 우리 군인의 의기와 용맹이 세계에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 독립의 서광이 비치나니 일심 합력으로 왜적을 파하고 우리 자유를 우리 손으로 회복합시다. 분투하라! 싸워라! 우리가 피를 흘려야 자손 만대의 자유 기초를 회복할 것이다. 싸워라! 나의 사랑하는 2300만 동포여!”
아~~ 전시에 선전 선동은 이런 식으로 피끓는 말투로 하는 게 정석이구나 싶다. 전쟁에서 사기라는 게 기여하는 바가 정말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을 저 따위로 했으니.. 할배가 나중에 미국을 상대로도 광복군 규모를 말도 안 되게 부풀리고 개 뻥카를 쳤겠구나 싶다. 이제 이해가 된다.
1940년대 정도면 일제의 악랄 집요한 탄압 때문에 국내에서의 항일 독립 운동은 사실상 씨가 마른 상태였다. 본인이 전에도 얘기했지만..
“일제가 망할 일은 없을 것이고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건 영원히 물 건너갔구나, 이대로 세대가 교체되면 한국인의 정체성은 진짜 씨가 마르겠구나. 물론 최후의 발악을 하는 소수의 불령선인 민족주의자가 있긴 하겠지만, 말 그대로 최후의 발악일 뿐 대세를 뒤바꾸지는 못하겠구나.. 지금까지 30년을 애썼지만 아무 소득이 없는 걸 보면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이미 이런 생각이 퍼져 있었다.
항일 독립 운동은 무의미하고, 이제는 2등 신민 조선인의 권익 향상, 차별 철폐, 일본 내에서의 참정권 쟁취 운동이나 해야겠다는 게 그 당시 국제 정세를 알지 못하는 민족주의 지식인 상류층의 주된 생각이었다.
이런 와중에 단파에 실려 태평양 너머로 울려 퍼진 리 승만 할배의 독려 메시지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엥, 이건 뭐지..?? 울나라 임시정부인지 뭔지는 중국에 있는 걸로 들었는데 본부가 언제 미국으로 이사 갔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할배의 선전 방송은 일제의 입장에서는 어지간한 불순불온 삐라를 훨씬 능가하는 최악의 불온 유언비어였다. 그들은 자국민이건 조선인이건, 전쟁 중에 외국 단파 라디오의 청취를 엄금했다. 요즘으로 치면 서버가 외국에 있는 불법 도박이나 마약을 단속하듯이 단속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 당시 조선인 중에서 엄청난 고가였던 단파 라디오에 접근 가능해서 외국 소식을 직접 접할 수 있었던 사람은 방송국 기술자와 언론인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은 혼자만 이 소식을 들은 게 아니라, 목숨 걸고 방송 내용을 주변에 퍼뜨리다가 결국 1942년 하반기부터 줄줄이 걸렸다. 수십~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코렁탕을 먹고 투옥됐다. 이것은 '단파 방송 밀청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다.
옛날에 전파 통신 기술이 미약하던 시절에는 전파 거리가 적당히 길고 지구 전리층에 반사되고 산란성 투과성도 적당하고.. 취급하는 기술 난이도도 아예 초단파 FM 방식보다는 낮던 ‘단파’ 라디오가 장거리 통신용으로 즐겨 쓰였다. 음질이야 메롱이기 때문에 천상 음성용이지, 음악은 안 된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모스 부호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에 비해 지금 인터넷 기반 스트리밍은 대륙 간 전송은 거의 다 해저 케이블이 담당하고, 지역 내에서 무선 전송용으로는 곳곳에 기지국을 도배해 줘야 하는 극초단파가 쓰인다. 이런 기술의 변화도 참 격세지감이다.
* 여담: 반일 감정
요즘 본인은 채널 A도 아니고 채널 W라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의 문화랄까 분위기가 지난 쌍팔년도 이후로 참 많이도 달라졌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해 왔다.
위성 방송 같은 걸로 외국 방송을 쌩으로 그대로 보는 것도 아니고.. 나름 정식으로 수입돼서 우리말 자막까지 붙은 일본 드라마와 다큐를 그대로 보다니..
거기에다 일본어 학습(한국인 화자 입장에서)이라든가 일본 연예인 얘기도 나온다.
노인과 바다처럼 망망대해로 나가서 낚싯대로 '마구로' 잡는 어부가 울나라로 치면 무슨 인간극장 다큐의 소재이다.
아무리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이라지만 저게 제도적으로 가능한가 궁금했다. 검색을 해 보니 채널 W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일본 방송 컨텐츠의 직수입 방영이 허가된 케이블 방송이라고 한다.
일제 시대의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했던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우리나라는 SKY 명문대에 일어일문학과가 없다. 아.. 내가 알기로, 그나마 셋 중 한국대에만 1980년대가 돼서야 일어일문 비스무리한 학과가 유일하게 추가됐다.
최근에 만들어진 '항거' 영화에서야 형무소장이나 간수, 헌병뿐만 아니라 조선인 죄수인 유 관순 본인까지도 현장에서는 현실 고증을 반영해서 일본어를 쓰는 걸로 나온다. 그러나 옛날 1950, 70년대에 만들어진 국내의 유 관순 영화들은 반대로 재판정에서 일본인 판사와 검사까지도 편하게 한국어를 쓴다.
그 시절에 일본어를 구사하는 배우를 구하지 못해서일 리는 절대 만무하고, 당연히 그냥 "왜색을 제거하기 위해서" 언어 고증을 무시한 것이었다.
찬송가조차 일본인이 작사한 건 슬쩍 '작사자 미상'으로 처리하고 넘기기도 했었다.
가라데?? 당연히 태권도라고 바뀌어서 소개됐다.
국어에 별 희한한 단어까지 다 일본식 한자어라고 추방해야 된다느니 마느니 그랬다.
역사, 지리, 언어 등 온갖 분야에서 "원래 잘 될 수 있었는데 일본놈들의 로비와 방해 때문에 못 된 거다" 식의 피해망상이..
적당하거나 그나마 동정하거나 이해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 병적으로 치달으려 했다.
그리고 피해의식에 비례해서 일본한테 너무 쫄아 있기도 했다.
나 학생 시절에 정신력 강조하는 선생들의 훈화 말씀만 듣고 있다 보면.. 이렇게 군기가 개 빠져 갖고는 얼마 못 가 우리나라가 쫄딱 망해서 다시 일제 식민지가 될 것만 같았다. -_- 일제 식민지가 아니면 다시 북괴가 남침해서 적화통일 되거나.. =_=
과장 좀 보태면 쓰레기 하나 없는 일본 길거리가 우리집 안방보다 더 깨끗할 것 같았다.
일본인은 진흙처럼 잘 뭉치고, 조선인은 엽전까지는 아니어도 모래알처럼 제 팔 흔들면서 안 뭉치다가 각개격파 당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이러니 1990년대 말까지 "일본은 없다", "일본은 있다" 같은 선정적인 책이 많이 팔리고 베스트셀러에 올랐었다.
그러던 게 세월이 많이 흐르기도 하고, 울나라도 일본의 경제와 과학기술을 많이 따라잡고, 다이쥬 대통령 때부터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됐고 월드컵은 어쩌다 보니 한일 공동 개최로 치렀고..
또 요즘은 일본보다도 중공이 훨씬 더 많이 깽판 치고 망언 어그로를 끌고 있기도 하니 원색적인 반일감정이 상대적으로 누그러졌다.
뭐, 아직도 반일 정신병자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과거사 정도면 "일본이 이만치 유감이니 사과니 보상이니 했으면 많이 한 거다, 더 논하지 않고 퉁치기로 해 놓고 약속을 안 지키는 게 더 문제"라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요즘은 많이 눈에 띈다.
아직까지 일본이랑 대놓고 갈등하는 티라도 나는 아이템은 독도 하나만 남은 것 같다.
허나, 역대 울나라 대통령 중에 리 승만 할배만치 편집증적으로, 거의 트라우마 급으로 일본 싫어하고 반일 반일거린 지도자는 없었다. 북괴와 전쟁을 치르던 중에도 “어디 우리 집안 싸움에 개입하기만 해 봐라, 우린 왜놈부터 죽여 버린 다음에 괴뢰군을 쏘겠다” 이랬었다.
세상에 저런 방송을 했던 당사자가 대통령이 됐는데 반일을 안 하고 배기겠는가? 이건 당연한 귀결이니 우리가 이해해야 된다.
한편으로, 오죽했으면 이런 반일 대통령 밑에서조차 노 덕술이니 김 창룡 같은 간부가 있어야 했겠는지도.. 자세한 맥락을 살펴보고 이해해야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모든 나라들과 교류하며 가능한 한 화평하게 지내야 한다. 그러나 일본하고는 독특한 과거사 때문에 우리만의 고유한 외교 정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 할배가 양자 이 인수에게 남긴 유언 중 일부
이건 성경으로 치면 마치 예수님이 구원을 위해 유대인에게만은 행 2:38 같은 회개의 침례를 추가로 요구하고, 베드로에게는 뭔가 특별한 회개· 회복 절차를 요구하신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했고, 또 베드로야.. 이와 관련해서 인생 최악의 사고를 한번 쳤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래를 지키고 울창한 산림 환경을 지켜 준 것은 고래기름의 대체제와 화석연료 원자력을 개발해 준 과학자 기술자 공학자라고 믿는다. 알량한 환경팔이 파이터들이 기여한 건 거의 없다고 본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만들고 반일 항일 극일을 제일 잘 실현해 준 것은 횬다이 쌤숭 같은 기업이라고 믿는다. 국부를 창출하고 실력으로 일본을 이긴 주역들이 아닌가? 어설픈 반일정신병자들이 기여한 건 거의 없다.
아무쪼록,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대놓고 로비 한다거나, 일본 기업에다가 횬다이 쌤숭 기업의 기술 기밀을 팔아넘기는 간첩이 없는 한... 지금 우리나라는 친일파가 문제인 나라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일본이 아니라 중공이나 북괴에다가 팔아넘기겠지!!)
과학기술과 팩트와 개방을 통해 양 나라가 과거의 앙금을 극복하고 털어냈으면 좋겠다. 침략한 쪽이든 침략당한 쪽이든 죄악이나 병크를 반복하지 말고 서로 손잡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 옛 중앙청 건물은 그 위치에 있지만 않았어도 개인적으로 더 강하게 존치를 주장했겠지만.. 광화문과 경복궁과 청와대를 다 틀어막는 건 좀 아니어서 철거 쪽 입장도 이해를 한다. 할배 대통령도 당연히 그 건물을 없애고 싶어했었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