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노래 해설

1.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 온 겨레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 새 세상 밝혀 주는 해가 돋았네
한글은 우리의 자랑 문화의 터전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2.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 넉 자는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한글은 우리의 자랑 민주의 근본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3. 한 겨레 한 맘으로 한데 뭉치어 힘차게 일어나는 건설의 일꾼
바른 길 환한 길로 달려 나가자 / 희망이 앞에 있다 한글 나라에
한글은 우리 자랑 생활의 무기 /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이 노래는 제목이 그냥 <한글 노래>이다.
즉, 한글날과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한글 자체에 대한 찬가라는 점에서, 제헌절 노래나 삼일절 노래, 6· 25 노래 등과는 위상이 좀 다르다.

한글 노래는 언제 봐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참 감동적이다.
지난 2004년엔 본인, 가사를 손으로 필사한 적도 있다.

잘 알다시피, 이 노랫말을 지은 분은 외솔 최 현배 박사이다. 많고 많은 국어학자 중에 그분 정도로 한글을 진정 사랑한 분만이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수준의 역동적인 가사를 쓸 수 있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1절은 한글 창제의 감격을 묘사했다.
외솔의 동지이자 조선어 학회 사건 당시의 fellowprisoner (롬 16:7, 골 4:10, 몬 23)이었던 석인 정 태진 선생이 1949년 <한글날을 맞이하여>라고 발표한 논설을 보면 비슷한 표현을 볼 수 있다.

“과연 그 날이야말로 우리 배달민족이 길고 긴 어두움에서 새로운 빛을 보던 날이었고, 그 날이야말로 과연 우리 민족이 오래오래 죽음의 길을 걷던 발길을 돌려서 영원의 삶의 길로 나아오던 바로 그 날이었던 것입니다.”

영생의 길.. 가히 종교적인 수준의 찬사인걸? (단, 너무 기쁨에 겨웠는지, 글 중엔 한글과 우리말을 그렇게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은 표현도 좀 나오며, 6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기엔 다소 구태의연한 권면도 없지는 않음)
내 신앙관과 짬뽕을 하자면, 그야말로 성경에 나오는 의의 태양(말 4:2) 같은 심상이다.
주찬양 선교단 7집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의 2번 트랙 <빛>을 BGM으로 깔면 적절할 것 같다.

2절은 한글의 우수성이 묘사되어 있다.
외솔의 저서 <한글갈>에 있는 문장을 보면, 노래 가사는 저서의 요약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한글은 그 짜임이 가장 과학스럽고 그 자형이 정연하고 아름다우며, 그 글자 수가 약소하고도 그 소리가 풍부하며, 그 학습이 쉽고도 그 응용이 광대하여 글자로서의 모든 이상적인 조건을 거의 다 갖추었다 할 만하니, 이 글자를 지어낸 세종대왕 한 사람 당대의 밝은 슬기가 능히 천고만인의 슬기를 초월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글자를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하니 이는 고금이 다름없고 안팎이 한가지이다.”

한글을 ‘민주의 근본’이라고 칭한 것도 단어를 아무렇게나 선택한 게 아니다. 외솔의 평소 지론이 담겼다.
배우기 쉽고 편리한 글자로 문맹을 퇴치하고 국민들을 똑똑하게 만들어야만 민주주의도 실현된다는 그분의 철학은, 유고작인 <한글만 쓰기의 주장>을 읽어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3절로 가자.
전통적인 기독교 찬송가를 보면, 앞부분은 예수님이나 크리스천의 삶에 대해서 노래하다가도 마지막 절은 재림, 천국, 내세 같은 거시적인 주제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코레일의 사가 Oh Glory Korail도 보아라. 마지막 절은 한국 철도가 대륙을 넘어 세계로 뻗어간다고 스케일이 확 커지지 않던가. ㄲㄲㄲ

그런 맥락에서 한글 노래의 마지막 3절은, 한글을 통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김 동길 전 연세대 교수가 1980년대에 한글 문화권에 대해서 글을 썼듯이 말이다.

물론 21세기가 된 지금, 현실은 시궁창이다. 굉장히 시궁창이다.
외국어는 범람하고 국어 문법은 갈수록 잡-_-탕이 돼 간다.
그리고 미래가 안 보이는 경제 불황과 영적 배도와 타락, 그리고 막장으로 치닫는 사회 시스템 앞에서는... 한글이고 나발이고 답이 없다. -_-
나도 솔직히 육신적인 심정으로는 한글 문화권 나부랭이 따위를 바라느니(교리적으로 다분히 후천년주의적이기도 하다ㅋㅋㅋ), 차라리 하늘나라를 바라고 말겠다.

허나, 그래도 한국보다 더 못 사는 나라들로부터 이민자는 꾸준히 유입되고 있고,
생업을 위해서든 한류 열풍 때문이든, 오늘날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비록 진짜 메이저급 언어의 학습자에 비할 바는 못 되더라도 은근히 ‘많다’.
신토불이니,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다” 식의 구태의연한 드립을 동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 끼인 우리나라가 우리만의 개성을 내세워서 세계에 얼굴을 내밀려면 미우나 고우나 한글을 들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한글이 ‘생활의 무기’란다. 최 현배 박사는 공 병우 한글 세벌식 타자기의 가치를 알았고, 문자를 다루는 기술을 기계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던 사람이다. 그랬기 때문에 ‘무기’라는 단어를 썼다. 자, 이 정도로 풀이하니 한글 노래의 가사가 정말 외솔스럽다는 게 와 닿으시는지?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주 시경 선생은 그 옛날에 불모지이던 국어학의 기초를 닦고 한글 맞춤법의 근간을 마련해 놓았다.
최 현배 박사를 비롯한 조선어 학회의 학자들은 언어학의 결정체인 국어사전을 만들었다.
공 병우 박사는 기계와 사람의 편의성을 기가 막히게 조화시킨(=C언어스러운?ㅋㅋ) 전대미문의 한글 타자기를 발명했다.
그리고 아래아한글을 만들어 낸 프로그래머들은 음..;;
아놔 다들 너무 천재들이다..;;

그 다음으로 본인은 지금까지 해 놓은 일이 그 ‘한글탑’ 위에다가 벽돌 한 장 정도 올려놓은 수준은 되려나..? ㅋㅋ
(연세 대학교 캠퍼스 안엔 연세 한글탑이 있다.)

9월 18일 철도의 날과 10월 9일 한글날은 딱 3주 간격이며, 둘은 같은 요일이다.
고로 올해는 철도의 날과 한글날이 모두 일요일이다.
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본인, 무릎을 쳤다.
철도와 성경이 만나듯, 철도와 한글 쪽도 이렇게 만날 필요가 있다. ㅋㅋㅋㅋ

예전의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김 진우 교수님은 이번 학기에 연세대 국문과 학부에서 <언어학의 이해>를 강의하고 계시는데, 한글날 근처의 주엔 이례적으로 여타 단원을 건너뛰고 ‘문자의 발달사’ 단원을 강의하신다. 당연히 한글을 기리기 위해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09 08:33 2011/10/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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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제임스 맥콜리 James D. McCawley (1938~1999)
는 시카고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였다.
흔히 언어학자 하면 노암 촘스키가 본좌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맥콜리는 그 촘스키의 제자이며 스승 만만찮은 덕후 천재 언어학자였다. 박사 학위를 주고받은 촘스키와 맥콜리의 나이 차는 겨우 10살에 불과했다.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학창 시절에 여러 학년을 월반한 끝에 만 16세의 나이로 시카고 대학에 진학했다. 아는 분도 있겠지만 시카고 대학은 과거에 석유왕 록펠러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자선 사업 차원에서 설립한 학교로, 미국에서 인문· 사회 계열이 강세인 상당한 명문 사학이다.
맥콜리는 어릴 적부터 수학, 논리학, 언어학 이런 쪽으로 완전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으며, 덕분에 나중에 대학원은 촘스키가 있는 MIT로 가게 된다.

그 후 그는 1964년, 겨우 20대 중반의 나이로 모교인 시카고 대학의 언어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생성 문법(generative grammar)의 확립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이 천재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은 게 있었으니 바로 한글이었다. 한글이 얼마나 대단한지가 그 좋은 머리로 바로 실감이 갔던 모양이다.

대충 영어를 해석하자면, “한글은 킹왕짱이고 세계의 문자들 중에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정교한 음소문자가 1440년대에 발명됐다는 건 정말 놀라운 언어학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정도.

그래서 그는 한글 덕후가 됐다.
동영상에서 1분 10초 이후부터가 유명한 대사이다. “전세계 언어학계는 이 한글의 창제일을 마땅히 경축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매해 10월 9일엔 내 강의를 쉬고 동료 교수와 학생들을 우리집에 초청하여 한글날 잔치를 벌여 왔다.” (정작 한글을 쓰는 나라에서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 버렸는데 말이다! ㄲㄲㄲㄲ)

참고로 저 인터뷰는 1995~1996년에 행해졌다. 그러니 저분의 한글날 잔치도 대략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얘기.
지난 1996년, 국어 정보학회에서는 한일 은행(지금 우리 은행의 전신)의 후원으로 한글 반포 550주년을 기념하여(since 1446) <세계로 한글로>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한글 관련 논술 공모를 했다. 인터뷰 동영상은 거기에 나오는 영상의 일부이다.

그 당시 국어 정보학회 회장이던 한양대 국문과 서 정수 교수가 직접 미국까지 날아가서 맥콜리 교수와 저렇게 인터뷰를 했다. 서 교수님 모습은 저기 화면에도 잠깐 나온다. 지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맥콜리 교수 관련 한글날 루머(?)는 루머가 아니라 사실이며, 그 정확한 출처가 바로 저 영상물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아, 그리고 본인은 그 당시 저 한글 논술에서 중등부 격려상을 받았다. 그때 이미 세벌식이 어떻고 조합형이 어떻고 하는 허접 논설문을 썼던 것이다... ㅋㅋㅋ 지금 본인은 그 당시 저 다큐멘터리의 연출 감독을 맡은 분하고도 잘 아는 사이이다.

맥콜리 교수와 덩달아 나오는 대표적인 한글 예찬론자 외국 석학으로 영국의 제프리 샘슨 교수가 있다. 한글이 ‘자질문자’라고 칭송한 바 있다.

맥콜리 교수는 그 후 1999년 4월, 환갑을 갓 넘긴 나이에 돌연사로 생을 마감했다. 스승인 촘스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울러 서 정수 교수도 이미 2007년에 고인이 되었다. 그런데 국문학과 교수이고 한양대 인문대 학장을 역임한 이분도 실은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이라는 충공깽 이력이 있으신 분이다. 그 후 대학원을 연세대 국문과로 가셨으니 어? 지금 본인의 진로와 비슷하나?? ㄲㄲ

한글이 지금과 같은 형태 그대로 무슨 IPA를 대체할 만한 음성 부호라거나, 로마자를 대체 가능한 만능 도깨비 방망이 문자라는 말은 아니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이네 하는 식의 부정확하고 안일하고 막연한 찬사도 피해야 한다.
한글이 무슨 쇼비니즘의 표상이 돼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한글은 객관적으로 얼마나 대단하고 고마운 문자인지 모른다. 우리는 한글에 대해 자부심을 품을 권리가 있으며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것도 머리가 어지간히 좋지 않아서는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을 못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09 09:03 2010/09/0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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