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상

1990년대 말까지 국산 승용차 중에서 가장 비싼 고급차의 대명사는 논쟁의 여지 없이 그랜저였다.
다시 말하지만, 벤츠니 마이바흐니 롤스로이스니 하는 외제차는 논외로 하고, 국산차 중에서 말이다. ㄲㄲㄲㄲㄲㄲ
특히 쌍팔년도 시절에 카폰이 장착된 그랜저는 정말 최고급 금수저의 상징이었다.

오죽했으면 현대에서 한때 CF를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친구가 물었습니다. 나는 그랜저로 답했습니다.” 이딴 식으로 만들었을 정도였다.
옛날에 극악무도한 범죄 단체였던 지존파에서는 그랜저 몰고 다니는 놈들을 콕 찝어서 죽이려 했을 정도였다.

30여 년 전 어린 시절에 친구 부모님을 통해 그랜저를 얻어 탈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분명히 승차감의 차이를 느꼈다. 엑셀로 시속 60 정도를 밟을 때의 소음과 진동이랑, 그랜저로 시속 100 이상을 밟을 때의 소음 진동이 비슷하게 느껴졌다고. ㄲㄲㄲㄲㄲㄲ

그랜저 말고 기함급 최고급 승용차를 표방하는 차량이 없는 게 아니었다. 대우 로얄/임페리얼/브로엄이라든가 쌍용 오피러스 등.. 그러나 그것들은 그랜저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심지어 같은 제조사에서 다이너스티나 아슬란 같은 차를 만든 것조차도 그랜저를 대체하지 못했다.
오늘날은 일부러 에쿠스니 제네시스니 하는 상위 브랜드를 새로 만들어서 그랜저의 격을 상대적으로 낮췄을 뿐이다.

그랜저는 30년 전 1990년대나 2020년대 지금이나 평범한 사양 기준으로 차값이 꾸준히 3~4천만 원이라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그랜저는 세월이 흐르면서 더 대중화되고, 최고급 차량에서 그냥 적당히 고급스러운 차량 정도로 급이 낮아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이야 내가 모는 국산 양산차가 30년 전 각그랜저 최고급 모델보다 엔진 출력과 연비가 더 뛰어나며, 편의 장비 안전 장치가 더 잘 갖춰져 있다.
차 안에 전화기와 내비는 그 시절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첨단 기술이었거늘.. 그게 지금 이 정도로 개나 소나 흔하게 보급됐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을 30년 전에 누렸던 사람은 훨씬 소수였을 것이다.

2. 개발 배경

어지간한 차덕들은 다 아시겠지만, 각그랜저는 현대차와 일본 미쓰비시가 공동 개발해서 1986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맛깔나는 신형 고급 국산차를 개발해서 공식 의전 차량으로 선보일 필요가 있었다. 현대차는 포드 그라나다의 후속 모델을 개발해야 하고, 미쓰비시에서는 데보네어라는 자기 차량을 이제 좀 업데이트? 페이스리프트할 때가 된 상태였다. 그래서 서로 이해관계가 맞았다.

일본의 데보네어 1세대는 1964년에 선보이고 나서는 무려 20년이 넘게 외형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고급차이긴 하지만 구닥다리 디자인이 너무 오래 유지됐기 때문에 그야말로 자동차계의 고인물 썩은물 살아 있는 화석 소리를 들을 지경이었다.
글쎄, 1964년이면 데보네어 원조 1세대는 자기네 도쿄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건 아닌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그랜저와 데보네어 모두 올림픽 입김이 개입한 건데 말이다.

아무튼, 이를 계기로 새로 공동 개발된 동일한 차량이 한국에서는 그랜저, 일본에서는 데보네어 2세대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 일본은 철도 차량인 신칸센도 1964년에 도쿄 올림픽에 맞춰 개통했다. 그런데 신칸센도 첫 도입 차량인 0계가 무려 20년 가까이 똑같이 생산됐고, 후대 차량인 100계는 1985년에야 등장했다.
  • 일본에서는 택시도 ‘도요타 크라운 컴포트’라는 낡은 모델이 1995년부터 무려 2018년까지 똑같이 생산됐었다. 뭔가 이 분야의 기록을 작정하고 노리기라도 하는 것 같다. ㅠㅠㅠ
  • 일본 말고 우리나라 얘기를 하자면, 그 당시 서울 올림픽을 위해서 그랜저뿐만 아니라 서울 지하철 3호선과 4호선, 한강 종합 개발과 올림픽 대로를 건설했다. 그리고 신칸센 같은 신문물까지는 못 만들어도 철도에다 7000호대 신형(!) 봉고 기관차와 유선형 새마을호 신형 객차를 도입했었다.

3. 기술 디테일

(1) 각그랜저는 그 특유의 각진 외형이 정말 고급스러운 느낌을 줬다. 처음 등장했던 쌍팔년도 당시엔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 각그랜저는 누가 디자인한 걸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것도 쥬지아로의 작품이라고 한다. 흐음~ 포니, 엑셀, 쏘나타 2세대, 각그랜저까지 다 동일 인물이구나.
각그랜저는 크라이슬러 뉴요커 같은 1980년대 초의 '미국 고급차'의 디자인 스타일을 참고한 형태였다.

(2) 각그랜저는 맨 처음에 2000cc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후기형이라고 불리는 2400cc가 나오고, 1989년 말에 대망의 V6 3000cc형이 추가되는 것으로 업데이트(..)를 마쳤다. 즉, 요즘 차들의 버전 관리 관행과는 다르게, 페이스리프트에다가 엔진 덩치의 확장을 같이 진행한 것이다.
2.4부터는 뒤쪽 외형이 바뀌었다. 그리고 2.0과 2.4, 3.0 모두 앞쪽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양이 다 다르다. 3.0은 타이어 휠 모양도 달라졌다. 자세한 건 아래의 사진들을 참고하시길..

(3) 물론 6기통 모델은 1989년 초에 대우 임페리얼이 국산 승용차 중 최초로 6기통 3000cc를 개척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내놓은 것이었다.
임페리얼은 후륜구동에다 직렬 6기통이었던 반면, 그랜저는 전륜구동에 V형 6기통이었다. 그래서 같은 실린더, 같은 배기량이어도 차가 굴러가는 특성이 차이가 좀 있었다. 참고로 현대차는 과거에 포드 그라나다를 면허 생산하면서 겨우 2000cc 배기량 엔진에다가도 V6 엔진을 얹었던 경험이 있긴 했다.

(4)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1986년에 그랜저 2000cc 초기형이 첫 출시됐을 때는 명색이 최고급 기함급 차량이라면서 자동 변속기 모델이 없었다~!
그 대신 그때 그랜저가 최신 기술이랍시고 자랑했던 것은 무려 5단 수동 변속기였다. 이전 차량들은 겨우 4단 수동이었기 때문에.. 자동 변속기 모델은 나중에 도입됐다.
그리고 그랜저는 속도계 바늘이 나름 180이 아니라 200km/h까지 그려져 있었다. 1990년대가 아니라 1986년에 말이다.

(5) 그랜저 V6와 임페리얼은 6기통 3000cc 배기량뿐만 아니라 ABS가 장착된 국산차의 원조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ABS가 경차에도 의무적으로 무조건 장착되는 안전장치가 됐다는 걸 생각하면.. 이것도 참 격세지감이다.
그 뒤 최초로 에어백이 장착된 차량은 1992년에 출시된 뉴 그랜저이다. 그것도 지금으로서는 구형 기술인 SRS 방식이다. (화약으로 펑 터뜨리는..)

4. 여담

(1) 여러 옛날 자료들을 볼 때, 그랜저는 2000cc 초기형이 첫 출시됐을 때는 흑백 같은 무채색이 아니라 특유의 이 누런 색으로 먼저 만들어졌던 것 같다. 요게 개인적으로 애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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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2.4 후기형은 라디에이터 그릴이 세로가 아닌 가로로 바뀌었고, 뒤쪽 브레이크등의 배치도 더 대중적인 그 모양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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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최고급 3.0 모델은 라디에이터 그릴은 가로+세로 복합이고, 타이어 휠 모양도 바뀌었다. 이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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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처음에 그랜저는 그야말로 VIP 의전 급의 고급차를 의도하고 만들어졌다. 그러니 택시 같은 싸구려(?) 영업용 모델은 절대 만들지 않았다.
택시로 쓰이는 차들은 최대한 저렴하게 도입하느라 내부 옵션들은 몽땅 깡통 수준으로 생략하고 타이어 휠조차 저렴한 동글동글 철제를 쓰는 편인 걸 생각해 보자. 더구나 그 시절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택시는 거의 다 포니 일색이고 가끔 스텔라 정도나 눈에 띄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지금처럼 고급차 위주의 모범 택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이야 그랜저 택시는 흔하지는 않아도 당연히 굴러다닌다.

(3) 한국과 일본에서 그랜저 - 데보네어 2세대가 나란히 출시됐고, 훗날 뉴 그랜저 - 데보네어 3세대가 나란히 출시됐다. 그러나 거의 같은 차가 한국에서는 대박을 친 반면, 일본에서는 쪽박을 쳤다. 이 구도는 훗날 에쿠스 초기형 - 프라우디아까지 이어지면서 현대와 미쓰비시는 처지가 역전됐다.
에쿠스 초기형은 현대차에서 내놓은 마지막 '전륜구동' 기함급 승용차이기도 했다. 마치 포니가 처음이자 마지막 '후륜구동' 소형 승용차였던 것처럼 말이다.

(4) 에쿠스의 경우, 3800cc 모델이나 5000cc 최고급 모델이나 외형상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엠블럼만 주작해서 더 큰 차라고 구라를 칠 수가 있었다. 차를 제로백 테스트를 시키거나 시속 150~200km으로 밟기라도 해서 차가 힘들어하는 정도를 비교하지 않으면 배기량 차이를 알 길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 반면.. 각그랜저는 이런 외형 차이가 여럿 있기 때문에 엠블럼만 갖고 배기량 주작질을 할 수 없었다.

(5) 각그랜저가 출시됐던 당시에 현대차에서 내세웠던 광고카피는 "고급 승용차의 최고봉"이었다.
최고봉...;; 그 뒤 이 단어는 개인적으로 신앙 서적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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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찬송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의 2절 가사에 보통명사로서 grandeur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when I look down from lofty mountain grandeur
기독교계에서 부르는 수천~수만 편에 달하는 찬송가들 중에서 '그랜저'가 나오는 유일한 곡이 아닐까 싶다!! 정말 웅장한 자연 풍경, 장관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19 08:35 2024/06/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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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금까지 블로그에다 자동차에 대해 올린 글들의 성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현기차에 호의적이며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와 동향 자체를 현기차 중심으로 보는 편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액센트-아반떼-쏘나타-그랜저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승용차 계보 말고, i30이니 i40이니 심지어 벨로스터니 하는 승용차는 길거리에서 별로 보지도 못했고 개인적인 관심 역시 없다시피했다.

우리나라의 승용차 정서랄까 문화는 "(1) 국토와 경제력에 비해 너무 큰 차를 밝힌다, (2) 세계 평균 이상으로 너무 무채색+세단만 일률적으로 선호한다" 정도로 요약되는 듯하다.
(1)에다가 배기량 비례 자동차세 문제도 얽히다 보니, 이 반도에서는 제조사들이 이미 1990년대부터 차체만 큼직하고 엔진은 그에 어울리지 앉는 너무 작은 걸 얹어야 했다(배기량 후려치기).
(2)는... 한국에서 유독 흰 달걀이 전멸해 버린 것과도 비슷한 맥락의 관행 같다. 아무튼..

현대차에서는 지난 2007년에 맨 먼저 i30부터 내놓았다. 한국이 아닌 유럽 시장을 겨냥한 아반떼 급의 준중형 해치백 승용차로, 앞좌석과 뒷좌석 문이 있고 그 다음에 트렁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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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2011년에 좀 더 큰 쏘나타 체급의 '왜건형' 승용차인 i40가 나왔다. i30보다 뒷좌석 뒤의 공간이 좀 더 길다. 체격과 외형이 SUV와 비슷하지만, 승용차이기 때문에 SUV보다 차체가 낮으며 바퀴 크기도 더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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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벨로스터도 나왔다. 얘는 소-준중형 사이인 '쿠페형' 승용차로, 뒷좌석 쪽엔 문이 없다. i30, i40보다 더 아담하게 생겼지만 그렇다고 너무 동글동글 귀여운 경차를 표방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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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요즘 모델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벨로스터는 뒷좌석 쪽엔 오른쪽(진행 방향 기준) 조수석 방면만 문이 두 짝인 비대칭 도어라고 한다. 기아 레이가 뒷좌석 왼쪽은 일반 도어이고 오른쪽은 미닫이인 비대칭형인데.. 이와 비슷한 사례라 하겠다.

이 세 차들은 해치백· 왜건· 쿠페로 체급과 외형이 대동소이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트렁크가 돌출돼 있지 않고 뒷유리에 와이퍼가 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얘들은 유럽이 아닌 국내에서는 정서상 생소한 외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차에서는 얘들을 국내에서 팔기 위해 역사상 유례가 없던 파격· 개성· 감성 마케팅을 시작했다. 2, 30대 젊은 계층을 집중 공략했다.

이때 마케팅을 도대체 누가 담당하고 승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현대차 역사상 약을 최고로 거하게 빤 CF가 만들어지고 송출되었다. 국적도, 출처도 일체 노출하지 않은 PYL 브랜드 말이다. 지금 제네시스처럼 PYL이 브랜드인 셈이다.

저게 자동차 CF였다니..
내가 알기로 현대에서는 자기 차가 포르셰를 추월한다던가(엘란트라, 티뷰론)..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람보르기니로 대답했습니다. ㄲㄲㄲㄲ)" 같은 캐 오글거리는 CF를 잘 만드는데.. 저건 1993~4년경에 데미소다 CF를 봤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자우림 김 윤아의 생글생글 발랄 돋는 노랫소리가 워낙 강렬하니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놈의 유니크..;; 영화 테이큰 대사를 들어 보자.

This is a business. This is a very UNIQUE business with very UNIQUE clientele. (패트리스 상클레어. 동영상 링크에서는 46~50초 지점)


인신매매업이 아주 독특 특이한 업종이랜다. =_=;;
하긴 이건 성경에도 미래에 흥왕할 산업이라고 언급돼 있긴 하지. (계 18:13 끝부분)
자기도 자녀가 셋이나 있으면서 남의 딸을 매정하게 팔아넘기는 걸 보면 "그런즉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줄 줄 알거든"(눅 11:13)도 떠오른다. 뭐 그건 그렇고..

패트리스 상클레어의 발음을 들어 보면 알겠지만 '유니크'는 원래 2음절에 강세가 있다.
그런데 저 PYL CF에서는 리듬을 맞추기 위해 "유~ 유니크~!" 라고 노래 아주 대놓고 1음절에다 강세가 들어간다. 그것도 참 특이하게 들렸다.

우리는 그냥 어색한 '유니크' 정도로 알아듣는 반면, 영어 토박이들은 강세 위치 때문에 이걸 영락없이 내시(eunuch)처럼 알아듣는가 보다. 정확히는 이건 '유니크'가 아니라 '유너크'에 더 가깝지만.
여담이지만 더 옛날, 월트 디즈니 알라딘에서는 쟈파가 princess를 2음절에다 강세를 준 게 복선 클리셰처럼 나온 적이 있다. 저건 원래 1음절 강세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현대차에서는 지난 2012~13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상당히 기발한 CF를 만들어서 뿌렸으며, 홍대 클럽에서 유명 가수와 연예인들을 초청해서 PYL 콘서트를 열고 젊은 감성 마케팅을 벌였었다. 20~25년쯤 전의 X세대 마케팅 이런 거랑 비슷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i30, i40, 벨로스타의 판매는 영 시원찮았으며, 투자한 마케팅 비용을 회수하지 못했다.
디자인이 특이한 것에 비해 가격이나 성능 메리트가 별로 없었으며, 그리고 이 마케팅이 제일 근본적으로 헛다리를 짚은 요인으로는..
그 젊음 젊음 하는 애들은 경제 여건상 애초에 차를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상대적 빈곤감이네 뭐네 하면서.. "열악한 곳에 취업하느니 아예 취업을 안 하고 말겠다" 심보로 청년들의 사회 진출은 갈수록 늦어지고, 결혼도 출산도 안 하는 지경인데..
차 자체야 지방에서 이동을 위해 꼭 필요한데 지갑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다면, 싸구려 중고차를 지르면 된다. 하지만 20대들은 차값은 둘째치고 보험료 때문에라도 차를 못 굴린다. 이런 연령대는 운전 경력과 실력은 부족한 주제에 철딱서니 없이 사고를 잘 내는 블랙리스트 고객으로 팍 찍혀 있어서 보험료가 굉장히(몇 배로) 비싸기 때문이다.

이런 계층을 상대로 너무 이색적인 컨셉의 차를 팔려다 보니 잘 안 팔려서 결국 현대차는 큰 손해를 보게 됐고, PYL 브랜드는 몇 년 못 가 조용히 폐기됐다.
i30, i40, 벨로스터라는 차 자체는 지금도 나오고 있지만 그냥 근근이 먹고 사는 지경이다.

글쎄, 과거에 비슷하게 파격 젊음 감성 스포티를 표방했던 스쿠프는 그래도 세단 파생형 쿠페이고 스포츠카를 표방해서 그런지 PYL 꼴은 안 났던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스쿠프는 그 기술과 엔진 성능으로는 껍데기만 스포츠이지, 진짜 스포츠카를 자처하기에는 택도 없긴 했다. 그리고 기아 엘란은 나름 외제차를 기반으로 진짜 스포츠카를 표방이긴 했다만 고객을 너무 잘못 설정하고 값을 너무 비싸게 부르는 바람에 망했었다.

차는 집 다음으로 비싼 물건이며 주 고객이 최하 40대 이상으로 올라가니, 우리나라 정서상으로는 너무 튀는 모험은 여전히 위험해 보인다. 보수적인 아재 취향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2012~13년을 풍미했던 PYL 얘기가 좀 길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으로 현대는 그런 아재 취향의 준대형 고급차 체급에서도 큰 삽질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아슬란이다(2014-17) =_=;;

제네시스가 명목상 현대가 아닌 자체 브랜드의 차종으로 이동하고 에쿠스도 저기로 흡수됨으로써 현대 엠블럼을 걸고 나오는 승용차 중에서 제일 고급은 그랜저가 이어받았다. 그런데 그랜저는 30여 년의 세월 동안 굉장히 흔해졌으며 예전 같은 고급스러운 느낌도 덜해졌다. 이에, 현대에서는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의 틈새 차급을 겨냥하여 전륜구동 형태로 그랜저보다 더 큰 차를 그것도 내수 전용으로만 내놓았지만...

역시나 가성비 시원찮고, "이거 살 돈이면 더 보태서 제네시스나 다른 외제차를 사고 말지"가 되면서 이 차는 시원하게 망했다. 이름이 터키어로 사자라는 뜻이라는데, '어슬렁'이라는 적절한 멸칭으로 까였다. 그리고 지금은 마지막 재고가 아주 저렴하게 떨이 처분된 뒤 단종됐다. 차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국내 고객들의 정서와 수요에 잘 안 맞아서 "다른 대안이 넘쳐나는 와중에 굳이 그 돈 주고 살 정도까지는 아닌 차" 신세가 되어 망한 것이다.

그렇잖아도 이미 2016년에 이들을 싸잡아서 "현대차, 아슬란-PYL 어쩌나"라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으니, 역시 이번에도 내가 뒷북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이제 승용차에서 틈새 차급을 공략한 게 초대박을 치는 건 준중형 엘란트라/아반떼 이후로 더는 없는 것 같다.
아반떼는 작년 가을(2018. 9.)에 무슨 일본 차와 비슷하게 생긴 삼각형 헤드라이트 모양으로 페이스리프트가 됐는데.. 이게 호불호가 갈리는 중이다.

에쿠스는 잘 알다시피 지난 2015년 말을 끝으로 단종되었고 EQ900이라는 제네시스 차급으로 흡수됐다.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잡지가 휴간된 때와 비슷한 시기여서 본인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02 08:31 2019/03/0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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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자동차

현대 자동차는 뭐 내수용와 수출용 제품 차별 폭리, 부품 불량(에어백 미전개나 급발진?) 같은 일부 불미스러운 일로 인한 비판을 받을지언정 그래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재벌 자동차 회사이며, 나라에 막대한 부를, 개인에게는 꿈의 직장을 제공하고 있는 대단한 기업이다.

대졸 신입사원으로만 들어가도 연봉이 이미 삼성 전자를 능가하는 까마득한 액수인 건 잘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고졸 생산직으로 취업해도 효자에 그 지역 일등 신랑감 소리를 들을 정도이다. 낮은 직급도 워낙 복리후생이 좋으니 연줄과 빽 없이는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하더라.
삼성은 무노조라지만 현대는 그렇지도 않아서 파업이 종종 발생하며, 오히려 귀족 노조의 추태가 협력업체들의 열악한 복리후생과 비교되어 비판받을 정도이다.

자동차 정비소로 시작해서 오늘날의 현대 자동차의 기반을 일군 일등공신은 잘 알다시피 왕회장이다(1915-2001).
오늘날 뱃대지가 불러서 추태를 보이고 있는 건 별개로 욕 먹을 사항이겠지만, 현대차가 옛날엔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악전고투한 끝에 '안 되면 되게 하라' 식으로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살펴보는 건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현대 자동차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던 순간에 외국 기업으로부터 회유를 두 번 받은 적이 있었다.
먼저 고유모델 승용차인 포니를 개발하고 제3세계 위주로 수출까지 한 지 얼마 안 되었던 1977년 5월의 일이다. 주한 미국 대사(그 당시, 리처드 스나이더)가 왕회장을 조선호텔 스위트룸으로 정중히 초청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님 이제 와서 밑바닥에서 자동차 자체개발 해 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지 경제성 면에서 승산 있겠습니까? 님이 지금이라도 (1) 고유모델의 개발을 포기한다면(포니 2 같은 거 만들 생각 하지 말고) 저희 나라에서 현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우리 차 원하는 대로 커스텀 조립 생산할 수 있게 도와 드리죠."

그러나 왕회장은 당장 안정되고 편안한 조립 생산 셔틀 제의를 거부하고 고난의 길을 자처했다. (출처: 정 주영 일화집 "이봐, 해봤어?", 프리이코노미북스)
포니는 이탈리아 사람이 디자인하고 일본에서 개발한 엔진과 파워트레인을 얹은 물건이지만, 어쨌든 한국 땅에서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던 승용차를 밑바닥부터 최초로 창조해 낸 사례였다. 코티나나 그라나다처럼 미국차 로컬라이즈 + 면허 조립 생산이 아니라 말이다. 나라에서 요구한 비율만큼 부품 국산화도 달성한 건 덤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 뒤, 현대차는 알파 엔진이라는 승용차용 엔진을 맨땅에서부터 자체 개발 시작했다. 그 당시 현대로부터 막대한 로얄티를 받으면서 기술 지원을 찔끔 해 주던 일본 미쓰비시는 택도 없는 무모한 시도라고 현대를 마음껏 비웃었다.
그러나 용인 마북리 연구소를 쉬엄쉬엄 방문했던 구보 회장은 개발 중이던 엔진에 고슴도치 가시처럼 꽂혀 있던 240여 개에 달하는 온도계를 보고는 느긋하던 태도가 싹 바뀌었다. "현대차에 독종이 한 명 들어와 있구나(이 현순 박사). 이 자식 안 되겠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그래서 1989년, 1990년 몇 차례 한국으로 날아와 왕회장에게 (2) 엔진의 독자 개발을 포기하라고.. 만들어 봤자 또 최신 기술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개발비 회수도 못 할 거라고 집요하게 로비와 회유를 거듭했다. "개발팀 해체하면 우리가 지금 받는 로얄티를 절반으로 깎아 드리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당시 로얄티 무지막지하게 비쌌었다. 차 한 대 팔면 매출의 거의 4~50%가 로얄티로 날아갈 정도였다.

이거 무슨 북괴에다 핵 개발 포기를 종용하는 것도 아니고..
이때에도 왕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을 했다. 쟤들이 저렇게 큰 당근을 제시하며 회유할 정도인 걸 보니 반대로 엔진 독자 개발은 반드시 꼭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처: "내 안에 잠든 엔진을 깨워라", 김영사)

이 (1)과 (2)의 결정 덕분에 현대차는 포드 수입 자동차를 겨우 조립 생산만 하던 처지를 벗어나 고유모델을 만들어 냈으며,
2밸브 카뷰레터 엔진이나 겨우 조립하다가 자체기술 터보 엔진까지 만들게 됐다.
자체 개발 엔진은 안 그래도 그 당시에 제일 과감한 실험적인 모델이던 스쿠프에 맨 처음으로 탑재됐으며, 1500cc 3밸브 SOHC 터보 엔진이 장착된 스쿠프 터보는 국산 승용차 최초로 최대 시속 200을 돌파하고 제로백 10초 이내도 달성했다.

이걸로도 모자라 현대와 미쓰비시 사이의 기술 주종 관계는 몇 년 못 가 반대로 역전되어 버렸다. 그리고 현대는 스쿠프 - 티뷰론 - 투스카니에 이어 지금은 제로백이 5~6초대인 제네시스 쿠페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 시절에 왕회장 같은 경영자와 이 박사 같은 엔지니어가 같이 있던 것은 국가적인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정도 행적은 있어야 '반일, 극일, 일자리 창출' 같은 걸 논할 자격이 갖춰지지 않나 싶다.

2. 삼성 전자

지금까지 현대차 위주로 얘기를 했는데, 삼성 전자도 그 시절에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도박· 모험을 했다. 백색가전이나 근근이 수입 부품 조립으로 만들다가 1983년 2월에 반도체를 맨땅에서 만들겠다고 경영진이 전격 선언하고 공장을 짓고 개발에 들어간 것이다. 오일 쇼크에, 선진국들의 장벽 등 1980년대의 여러 정황을 보아하니, 반도체 자체 개발이 아니면 기업과 나라를 먹여 살릴 길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1983년 가을에 64K디램의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연구원들은 그야말로 월화수목금금금 갈려 들어갔다고 한다. 외국으로 연수 가서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우고 오려다가 거기 직원들한테 저지 당하고 문전박대 당한 건 우주 발사체나 고속철 개발 같은 다른 분야와 다를 바 없었다. 하다못해 팀원이 "저 다음주에 결혼합니다. 휴가 좀.." 이러자 팀장이 "야 임마 왜 하필 이런 바쁜 때에 결혼을 쳐 해!" 이렇게 버럭 했을 정도였댄다. 그 당시 팀장이 훗날 신화 창조의 비밀 비스무리한 TV 프로에 출연해서 지금 생각하면 그 부하 직원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회고한 걸 본인은 유튜브 동영상으로 봤다..;;

그것 말고 삼성 전자의 반도체 개발과 관련된 다른 에피소드는 잘 모르겠다.
메모리 반도체보다 가치가 더 높은 비메모리 반도체까지 잡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 당시로서는 메모리 하나 잡은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고 감지덕지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이야 삼성은 전자 기기, 현대는 자동차 이렇게 업종이 다르니 서로 맞닥뜨리거나 대립할 일이 없다고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금 하이닉스 반도체의 전신이 현대 전자였으며, 현대 전자에서도 전화기, 컴퓨터 같은 걸 만들었다.
이 건희 회장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현대는 우리 삼성이 다루는 업종의 제품을 다 만들 수 있는데 우리는 왜 현대처럼 자동차를 못 만들지?" 이렇게 위기 의식을 가졌다. 그래서 기어이 1990년대 중반에 자동차 회사를 세웠지만 잘 알다시피 별 재미를 못 봤다.

우리나라에서 2, 30년 전과는 달리 "과소비를 추방합시다, 국산품을 이용합시다" 이런 가난한 구호가 쏙 들어간 이유가 뭘까?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커피나 석유 같은 원자재를 그냥 물 쓰듯이 펑펑 쓰고, 각종 외제품 외제차, 외국산 영화를 마음껏 보는데도 나라가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일차적으로는 세계 각국이 자본주의 경제 논리 실용주의에 입각해서 시장을 적극 개방했기 때문이지만, 그 다음으로는 우리 쪽에서도 그렇게 수입을 마구 해도 될 정도로 국내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상품들을 잔뜩 수출해서 외화 벌고 세금도 많이 내 주기 때문이다. 기업을 욕하기에 앞서 반기업 정서는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 오던 부의 상향평준화까지 저해하며, 부자가 망할 정도이면 서민들은 완전 거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3. 안랩

지난 19대 대선 때 출마했던 대선 후보들의 프로필을 보면, 신고한 재산 액수가 혼자서 타 후보들의 평균 액수보다 0이 두 개쯤 더 붙은 독보적인 사람이 있었다. 의사, 프로그래머, 기업가, 교수를 거쳐서 대통령 자리까지 넘보게 된 그 사람 말이다.

남들은 사짜 직업을 하나만 얻고도 그걸로 평생 안주하고 떵떵거리며 사는데, 그걸로 모자라서 1980년대 말에 이미.. 자료도 구하기 어렵던 시절에 어셈블리어를 공부해서 컴퓨터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그걸로 모자라서 기업까지 차렸으니, 능력과 정신이 모두 존경스러운 인물인 건 사실이다. 빌 게이츠도 평범하게 공부만 해도 변호사나 교수 정도는 그냥 됐을 지능의 소유자인데, 굳이 불안정하고 위험한 창업을 감행해서 세상을 바꿔 놓고 변호사· 교수보다 훨씬 더 부자가 되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 사람도 나름 왕 회장의 일화 같은 일화가 전해지는 게 있다. 1997년, 미국 유학 중에 맥아피 사로부터 자기 기업 인수 제의를 받았지만 애국심 애사심(!!) 차원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이건 그 당시 TV 인생 다큐에서 각색되어 방영되었고, 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다고 한다.

비록 저게 완전히 황당무계한 주작은 아니었겠지만 액수가 정말 그 정도로 엄청났었나, 그리고 개인 능력에 대해서, 또 부인까지 동반된 교수 채용 등 일부 절차나 특혜가 과장이나 거품이 있지는 않았나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게 조금은 있다. 마치 신뢰도가 백범일지의 치하포 사건(고증 오류 + 국모 원수 갚는 것과는 별 상관 없는 단순 일본 민간인 살해)과 비슷하게 보이는 것 말이다.

V3은 국산 소프트웨어로서 1990년대에 수많은 컴퓨터들을 도스용 악성 코드로부터 구한 고마운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그게 현대차만치 세계적으로 많이 수출되어서 쓰여서 외화를 막 벌어 왔고, 미국의 안티바이러스 솔루션을 진지하게 위협할 정도로 그만치 뛰어난 세계구급 제품이었는지도 좀 의문이다.
(물론, 밖에서 막 적극적으로 벌어 오지는 못해도 안에서 외화 유출을 막는 데는 충분히 기여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아래아한글 때문에 MS 워드가 가격을 왕창 낮추고 저자세로 마케팅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효과도 무시 못 함.)

뭐 기록에 좀 과장· 오류가 있더라도 김 구 역시 큰 그림을 봤을 때 애국자인 건 변함없고 안 철수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우리는 10여 년 전에 황 우석 사태도 겪었고 맹목적인 애국심 마케팅의 폐해와 황당무계한 주작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러니 어떤 인물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좀 더 비판적인 안목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다.

각 분야의 전문직들을 깊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다 경험해 봤고, 돈은 이제 평생 써도 다 못 쓸 정도로 벌었고 자식도 하나밖에 없으니.. 이제 안 철수 같은 사람이 다음으로 노릴 만한 건 정말 권력밖에 없긴 했겠다.
과거에 현대 왕회장 역시 1992년도 대선에 출마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바다 건너 트럼프도 그냥 편안한 노후만 보내면 됐을 것을, 자기 사택보다도 더 누추한 장소일 백악관에 그것도 그 나이에 괜히 들어간 게 아닐 것이다. 사실, 경제인 기업가가 돈만 댓다리 많고 권력이 없으면 솔직히 정치 자금 삥이나 뜯기는 셔틀로 전락하기도 쉬울 테니.. (정경유착을 욕만 할 처지가 아님)

대선 후보로서 안 철수는 이념은 대놓고 불순하지는 않은 듯했지만 정치라는 게 본인 당사자의 역량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현 대통령 당선자와 안 씨의 이념 차이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차이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뭐 19대 대선은 이미 지난 일이 됐다만, 저분 설마 다음에 또 출마하려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17 08:34 2017/08/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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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동차 쏘나타

‘쏘나타’(Sonata)는 음악 용어인 동시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 현역으로 살아 있는 국산 승용차 브랜드이기도 하다. 주행을 마치 음악 연주처럼 조화롭고 우아하게 예술의 경지로 소화해 낸다는 뜻을 담은 작명이리라. 제작사는 현대 자동차이다.

외래어 표기법 FM대로는 ‘소나타’라고 적어야 맞으나, 잘 알다시피 ‘소나 타(고 다녀라)-_-’라는, 자동차에게는 심히 굴욕적일 수 있는 개드립을 의식해서인지 공식 한글 표기를 ‘쏘나타’라고 바꿨다.
아니, 실제로 옛날엔 경쟁사인 대우의 김 우중 회장이 그런 언어유희로 쏘나타를 디스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 뒤, 대우의 경쟁 차종인 로얄 살롱/프린스 시리즈는 깨끗이 사라진 반면, 쏘나타는 건재하다.

승용차는 뒷부분에 차명 엠블렘이 관례적으로 부착되어 있는데, “쏘나타의 엠블렘에서 첫 글자 S를 떼서 갖고 있으면 서울대에 붙는다”라는 웃기지도 않은 도시전설이 나돌았나 보다. 그래서 특히 학교에서 교사가 세워 놓은 차의 엠블렘이 졸지에 ‘쏘나타’에서 ‘오나타’(ONATA)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때문에 21세기에 출시된 후속 모델은 한 글자만 떼어 갈 수 없게 엠블렘이 일체형으로 바뀌었다는 후문이 나돈다.

본인이 이걸 보고 떠오른 건, 이 상 시인의 ‘오감도’이다. 쏘나타에서 글자 하나를 떼어내서 오나타가 되었는데, 이처럼 오감도는 잘 알다시피 건축 용어인 ‘조감도’(鳥瞰圖)의 한자에서 한 획을 떼어내서 오감도(烏瞰圖)로 바꾼 것이다. (잘 알다시피 작가는 문과 출신도 아니고 건축 공학 전공의 공돌이로, 시에다가 ‘가역반응’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글자를 변개하여 뭔가 2% 빠진 듯한 cripple을 만듦으로써, 장조에서 단조로, 완전 연소에서 불완전 연소로 바뀌는 것 같은 그리 불안하고 각박하고 즐겁지 못한 분위기를 연출한 셈이다.

얘기가 옆길로 좀 많이 빗나갔으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쏘나타는 잘 알다시피 현대 자동차가 개발하여 판매하는 중형 세단 승용차이다. 기아 자동차의 K5, 그리고 르노삼성의 SM5가 동급 차량으로 쏘나타하고 경쟁하는 구도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쏘나타가 오히려 같은 회사에서 만든 아반떼와 그랜저 사이의 콩라인으로 전락한 면모도 있다. 안 그래도 기름값도 비싼데 아반떼 같은 더 작은 차를 장만하거나, 아니면 돈 약간만 더 보태서 더 크고 간지 나는 그랜저를 사고 말지, 쏘나타는 이도 저도 아닌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트렌드인 양극화의 손길이 자동차에까지 뻗친 것 같다.

최초의 쏘나타는 그랜저보다 1년 남짓 앞선 1985년에 출시되었다. 이때는 외형이 스텔라하고 별로 다를 게 없었다. MS 개발툴로 치면, 비주얼 C++ 1.0이지만 여전히 전신인 MS C/C++ 7.0스럽던 시절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쏘나타다운 고유 모델이 처음으로 나온 건 1988년. 바로 이것이다. 본인은 아직도 쏘나타 하면 이 모양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엑셀보다 더 크고, 특히 바퀴의 휠 모양이 저렇게 생긴 게 쏘나타의 고유 외형이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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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91년 초에 외형이 더 매끄러워진 뉴 쏘나타가 나오고 1993년에 쏘나타 2(II)가 나왔는데, ‘뉴’와 2는 외형이 서로 비슷한 편이었다. 그리고 1995년에는 쏘나타 3이 나왔다. 3은 뒷부분의 붉은 램프의 디자인이 기존 쏘나타들에 비해 좀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1998년에 나온 EF 쏘나타는 램프 모양을 포함해 외형이 예전 모델보다도 더욱 알록달록 동글동글해졌다. 은근히 그랜저 같은 고급스러운 맛까지 느껴졌다. 이런 디자인은 2001년에 나온 뉴 EF 쏘나타도 물려받았는데, 헤드라이트에 원이 두 개인 듯한 파임이 들어가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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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나온 NF 쏘나타는 예전 모델들에 비해서는 다시 각진 느낌으로 돌아간 듯하다. 사실은 너무 오랫동안 우려먹은 쏘나타라는 브랜드도 다른 걸로 대체할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쏘나타로 회귀한 거라고 한다.

2007년는 마이너 업그레이드 버전인 쏘나타 트랜스폼이 나왔다. NF와 생김새가 거의 같지만 앞의 헤드라이트의 크기가 더 커지고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습도 살짝 달라졌다. 아래 그림에서 오른쪽이 NF 오리지널, 왼쪽이 트랜스폼이다. 구분할 수 있으시겠는가? 전동차로 치면 1차 도입분과 2차 도입분 사이에 생긴 미묘한 차이 같은 맥락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오늘날 쏘나타의 최신 모델은 잘 알다시피 2009년에 출시된 YF이다. 쿠페 스타일의 날렵한 외형은 역대 쏘나타들 중 가장 과감하고 참신한 디자인이 아닌가 싶으며,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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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반떼 MD(2010년형)와 그랜저 HG(5세대 2011년형)하고 좀 닮은 건 사실이다. 다들 비슷한 컨셉으로 디자인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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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의 역사를 통해 현대 자동차의 엔진 기술의 발달사도 엿볼 수 있다. 격투기의 체급이 체중에 따라 나뉘듯 자동차의 체급은 배기량으로 얼추 분류가 가능한데, 중형차에 속하는 2000cc만 예로 들자면 스텔라의 후속 모델이던 1985년형 쏘나타가 엔진 최대 출력이 110마력이었다.

그러던 것이 SOHC 대신 DOHC 엔진이 장착되면서 뉴 쏘나타에서는 동일 배기량으로 137마력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 후 쏘나타 2(146마력)를 거쳐 쏘나타 트랜스폼에서 150마력대에 도달하고, 신형 YF 쏘나타의 2000cc 기본 모델은 이미 165마력을 찍었다. 그러면서도 연비는 오히려 미미하게 더 좋아졌다.

하긴, 옛날에 1세대 그랜저가 3000cc 최고급 모델의 최대 출력이 161마력이었으니 기술이 발달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건 SOHC 방식만으로 낸 출력이었다. SOHC와 DOHC의 차이는 컴퓨터로 치면 싱글과 듀얼 코어의 차이요, 생물로 치면 심방/심실의 수의 차이로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원래 YF 쏘나타는 예전 모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급형 2400cc 모델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얼마 못 가 명이 끊겼다. 위로는 그랜저 2400cc (쏘나타에게는 높은 사양이지만 그랜저에게는 낮은 사양)와 경쟁하는 구도가 되면서 완전히 밀렸고, 아래로는 너무나 성능이 좋은 2000cc 기반 쎄타 II GDI 터보 엔진이 개발되면서 2400cc 모델의 존재의 의미를 지워 버렸기 때문이다.

YF 쏘나타 2.4는 난 지금까지 딱~ 한 번 봤다. 2400cc 모델은 그랜저처럼 뒷부분의 배기구 머플러가 좌우에 쌍으로 두 개 달려 있다.

2011년에는 YF 쏘나타의 하이브리드 모델이 출시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앞의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양이 더 단순하게 바뀌었다. 하이브리드인 덕분에 공인 연비가 21km라고 하는데, 옛날에 그 작고 열악한 티코의 최저 사양 연비가 24.1km(자동도 아니고 수동)였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경제성이 아닐 수 없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전기로 달릴 때면 너무 조용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이 자동차 소리를 못 들어서 위험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에, 일부러 자동차 주행 소음을 만들어 주는 장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디젤 전기 기관차처럼 내연 기관과 전동기가 모두 달려 있다 보니, 더 무겁고 엔진 부품이 더 복잡하고 유지 보수 비용도 더 드는 건 감안해야 할 점이다.

쏘나타, 앞으로 몇 년 뒤엔 또 어떤 모델로 변모할지 궁금해진다.
난 어렸을 때 뒷좌석의 중앙에 팔걸이를 내릴 수 있는 차를 보고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쏘나타에는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다.
고급 승용차와 관련된 잡설을 몇 개 추가하며 글을 맺는다.

1. 한때 그랜저는 한국 최고의 고급차의 대명사로 통용되었다. 그 각그랜저의 위엄은 정말! 허나 지금은 그냥 준대형차 수준으로 옛날에 비해서는 굉장히 보급형 세속(?) 모델로 격이 낮아졌으며, 이젠 그랜저 택시까지 있을 정도이다. 이건 마치 새마을호의 위상의 변화를 보는 것 같다. 서울-대전-대구-부산만 찍던 도도한 열차가 지금은 흠.. 그래도 둘 다 현실적인 격은 좀 낮아졌을지언정 그 상징적인 의미는 변함없다.

2. 그랜저보다 더 고급인 레알 대형 차량으로 현대 자동차가 만들고 있는 차는 잘 알다시피 제네시스와 에쿠스이다. 둘은 외부에 현대 자동차 엠블렘조차도 있지 않아서 언뜻 보기에 외제차 같은 인상을 준다. 연비가 10km도 안 되는 3000~5000cc급 대형차들은 그야말로 기름 먹는 하마이며, 진짜 재벌이나 사장님들이나 타고 장군· 장관들 관용차로나 쓰일 법하다. 5명밖에 못 타는 승용차 주제에 최대 출력은 45인승 버스의 그것을 능가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2/03/13 08:20 2012/03/1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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