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기능 -- 下

지난번 상편에서는 Windows에서 인쇄 기능을 코딩으로 구현하는 절차와 인쇄 관련 기본 개념과 동작들을 살펴보았다. 이번 하편에서는 상편에서 분량상 모두 다루지 못한 인쇄 관련 추가 정보들을 한데 늘어놓도록 하겠다.

1. 인쇄 관련 공용 대화상자들

우리가 Windows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공용 대화상자는 아마 파일 열기/저장 대화상자일 것이다. 이것 말고도 글꼴 선택 내지 색깔 선택 대화상자가 있으며, 인쇄 대화상자도 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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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를 지원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Ctrl+P를 눌러서 쉽게 보는 인쇄 대화상자라는 건 위와 같이 생겼다. 기본적으로 ‘일반’이라는 탭 하나밖에 없지만, 추후 확장과 사용자의 customize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프로퍼티 시트 형태를 하고 있다. 20년 전, Windows 2000 시절부터 저런 형태가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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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Windows 9x 내지 더 옛날 16비트 시절에는 인쇄 대화상자가 전통적으로 위와 같은 모양이었다. 외형상 가장 큰 차이는 프로퍼티 시트가 아닌 일반 대화상자 형태이고, 프린터 목록이 리스트 컨트롤이 아니라 콤보 상자라는 점이다. 지금도 좀 옛날 프로그램에서는 요런 모양의 대화상자를 여전히 볼 수 있다.

인쇄 대화상자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1) 인쇄를 내릴 프린터를 선택하고, (2) 각 프린터별로 용지의 종류와 방향, 여러 부 인쇄 방식 등을 지정하고, (3) 인쇄할 페이지 영역을 지정하고, (4) 최종적으로 인쇄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옛날에는 인쇄 대화상자를 약간 간소화시켜서 (2)만 지정할 수 있는 “프린터 설정” 대화상자라는 게 따로 있기도 했다. 아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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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 말고 아래아한글만 해도 먼 옛날 도스 시절에는 Alt+P는 인쇄 대화상자이지만 Ctrl+P는 프린터 설정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하지만 Windows 2000 스타일의 최신 인쇄 대화상자에서는 인쇄와 프린터 설정이 한데 통합되었다. 어떻게..?? 기존의 '프린터 설정'은 자신의 상위 호환인(superset) 인쇄 대화상자를 '적용'만 누른 뒤 '취소'로 닫는 것으로 퉁친 것이다. 이 때문에 인쇄 대화상자는 딱히 modeless가 아닌 modal 형태--자신이 떠 있는 동안 부모 윈도우로 포커스를 옮길 수 없음--임에도 불구하고 '적용' 버튼이 따로 있는 것이다.

MFC에서는 기본 구현돼 있는 인쇄 기능만 사용하는 경우, 오늘날의 2019 최신 버전까지도 의외로 옛날 스타일의 인쇄 대화상자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CPrintDialog는 PRINTDLG 구조체 기반이며, 최신 스타일 대화상자를 지원하려면 PRINTDLGEX 기반인 CPrintDialogEx를 사용해야 한다. 최신 스타일이 도입되면서 내부 동작이 많이 바뀌고 바이너리 호환성이 깨졌기 때문에 Ex 클래스는 오리지널 클래스의 파생형이 아니며, 서로 호환성이 없다.

MFC 없이 Windows API만 사용한다면 재래식 PRINTDLG 구조체만 사용하더라도 최신 스타일 대화상자가 나오게 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대화상자 템플릿을 customize하는 것 없이 기본 멤버만 사용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구형 구조체와 구형 API만 사용해서 나타난 최신 대화상자에는 ‘적용’ 버튼이 나오지 않는다. 구형 API에는 함수 리턴값 차원에서 그런 응답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쇄할 영역을 단순히 x~y쪽이 아니라 x1~y1, x2~y2 이런 식으로 여러 개 지정하는 것도 구형 API로는 불가능하다. 해당 구조체 멤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제약이 있다.

다음은 관련 여담이다.

(1) PrintDlg 내지 PrintDlgEx의 실행이 성공하면 프린터 DC뿐만 아니라 DEVMODE 내지 DEVNAMES 구조체 내용을 담고 있는 global 동적 메모리 핸들도 돌아온다. 현재 선택된 프린터에 대해서 지정한 용지 등의 설정들이 여기에 저장되기 때문에 응용 프로그램이 이 핸들을 잘 관리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음에 인쇄 기능을 호출할 때 요걸 넘겨줘야 기존 인쇄 설정이 보존된다.

(2) 인쇄 대화상자 말고 용지 설정 대화상자라는 것도 있지만 이건 잘 쓰이지 않는다. 용지 종류와 방향, 상하좌우 여백 정도는 공통이겠지만 그 뒤로 인쇄 내용을 배치하는 방식들은 응용 프로그램들마다 같은 구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당장 워드패드, 메모장, 그림판만 해도 용지 설정 대화상자의 모양은 전부 제각각이다.

(3) 운영체제에 설치된 글꼴들을 조회하는 것처럼, 현재 설치돼 있는 프린터들을 조회하는 API도 있다. 인쇄 대화상자를 꺼내지 않고 내 대화상자의 한구석에다가 프린터 목록 같은 걸 마련하고 싶다면 이런 API를 쓰면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용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4) “인쇄 중” 대화상자라든가 “인쇄 미리보기(화면 인쇄)” 같은 건 공용 대화상자 버전이 존재하지 않으며, MFC의 경우 자체 구현돼 있다. 오늘날은 인쇄 진행 상황 같은 건 위대하고 전능하신 task dialog로 너무나 깔끔하게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쇄 미리보기는 여느 대화상자와 달리 꽤 큰 공간이 필요한 관계로, 전통적인 modal 대화상자보다는 프로그램 주 화면에다가 곧장 미리보기를 표시하는 식으로 디자인이 바뀌는 추세이다. 요즘 MS Office 프로그램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2. 플로터

먼 옛날 한 1980~90년대쯤에 컴퓨터 개론 교양 서적에서는 컴퓨터의 출력 장치로 모니터, 프린터와 더불어 플로터라는 물건도 소개되어 있었다. 플로터는 로봇 팔 같은 게 달려서 종이에다가 도면을 말 그대로 '그려 주는' 장치이다.
덕분에 얘는 직선이나 곡선 하나는 무한한 해상도로 원본 그대로 정확하게 그릴 수 있다. 잉크를 적절히 배합해서 컬러 표현도 가능하다.

하지만 장점은 그걸로 끝.. 인쇄 속도가 도트 프린터 이상으로 끔찍하게 느리며(비록 도트 프린터처럼 시끄럽지는 않지만), 속이 채워진 도형이나 비트맵 같은 그림을 표현할 수 없다.
실제로 플로터를 가리키는 DC에다가 GetDeviceCaps(hDC, RASTERCAPS)를 호출해 보면 RC_BITBLT가 가능하지 않다는 응답이 올 것이다. 비트맵 전송을 할 수 없고 천상 원과 직선과 곡선 그리기나 하라는 소리이다.

일반 가정집이나 사무실에서 A4 용지에다가 인쇄하는 거라면 그냥 닥치고 일반 프린터만 쓰면 된다. 하지만 플로터는 프린터가 범접할 수 없는 A1 같은 엄청나게 큰 종이에다가 도면을 그릴 수 있으며, 펜 대신 커터 같은 걸 꽂아서 선 궤적대로(가령 글자의 윤곽선) 종이를 오려낸다거나 하는 용도로도 활용 가능하다는 것에 존재 의의가 있다. 즉, 산업용으로 마르지 않는 수요가 있다.

하긴, Windows에도 트루타입도 비트맵도 아니고 Modern, Roman, Script처럼 내부가 채워지지 않은 선으로만 구성된 '벡터 폰트'가 있었다. 실용적인 쓸모가 전혀에 가깝게 없는 완전 잉여인지라, 요즘 어지간한 프로그램의 글꼴 목록에서는 조회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게 바로 플로터용 글꼴이다. 물론 프린터에서도 쓸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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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도스용 터보 C의 BGI에도 비트맵 말고 벡터 글꼴 컬렉션이 있었다. 큰 크기에서는 내부가 채워지지 않고 선만 그어졌으며.. 힌팅이 없어서 작은 크기에서는 영 보기 좋지 않았으니 반쪽짜리인 건 동일했다. 비트맵 같은 계단 현상만 없을 뿐 다른 방면으로 단점투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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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CV 같은 그래픽 라이브러리도 전문적인 폰트 엔진 없이 자체적으로 영문· 숫자를 뿌리는 기능은 제공되는 글꼴이 딱 저런 퀄리티이다.

3. 프린터 드라이버의 가상화

컴퓨터라는 기계는 개나 소나 다 “물리적으로는 없지만 그래도 일단 있다고 치자”라고 넘기는 가상화가 통용되는 동네이다. 메모리는 진작부터 가상화하고 지내고 컴퓨터 자체도 가상 머신, 그리고 iso 같은 광학 디스크는 뭐.. 이제 운영체제(드라이브 마운트)와 압축 유틸조차(생성) 정식으로 지원하는 세상이 됐다.

그러니 프린터도 당연히 가상화의 대상이다. 당장 내 자리에 프린터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인쇄를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그냥 pdf나 xps 같은 파일로 인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격 프린터에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인쇄하는 것이다. 한때는 컴퓨터조차 한데 공유하는 자원이고 각 사용자는 단말기로 접속만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프린터 정도나 사무실 같은 데서 여러 컴퓨터들이 한데 공유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옛날에는 PC에 Windows 운영체제만 달랑 설치하고 나면 프린터가 잡힌 게 없었다. 프린터는 네트워크나 비디오/오디오 장치만치 필수는 아니니까..
기본 프린터가 없는 컴퓨터에서는 어지간한 프로그램에서 인쇄 미리보기 기능조차 동작하지 않았다. 프린터 공급 용지의 크기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Vista부터는 xps 문서 생성기라는 드라이버가 기본 연결되어 저런 광경을 볼 일은 없어졌다.

pdf/xps가 대중화되기 이전에도 "파일로 인쇄"라는 개념 자체는 마치 "램 드라이브"와 비슷한 위상으로 존재했으며, 지금도 인쇄 대화상자의 옵션으로 존재한다. 인쇄할 내용이 저장된 컴퓨터와 프린터가 연결된 컴퓨터가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파일로 인쇄하는 기능이 꼭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난번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이런 파일 인쇄 결과는 특정 프린터 기종에 종속적이기 때문에 범용성이 떨어진다. 본인도 저걸 활용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 대신 오늘날은 위지윅만 보장되고 물리적인 프린터의 구조와는 철저하게 독립적인 전자 문서 파일 포맷이 활발히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으로 은행 거래나 공문서 발급 같은 걸 받을 때 보안 ActiveX들을 잔뜩 설치해야 해서 원성이 자자하다. 그래서 이런 사이트 접속 전용으로 ActiveX 설치 총알받이 가상 머신을 만들려고 해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본머신(?)만 쓰라고 강요하면서 가상 머신에서는 설치되기를 거부하는 매우 악랄한 ActiveX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처럼.. 증명서 같은 것을 인쇄하는 전용 프로그램의 경우, 가상 프린터인 건 또 어떻게 감지하는지 pdf 같은 파일 생성은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상 CD를 감지하는 프로그램은 못 봤는데 프린터와 PC는 어째 감지하는지? 신기한 노릇이다. 하드카피 종이 인쇄는 뭐 변조 못 할 줄 아나..;; 어차피 원본대조필 워터마크가 필요한 건 똑같을 텐데.

한편, 가상 프린터 드라이버라는 게 파일 아니면 네트워크만 있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FinePrint라고 인쇄되는 데이터를 인위로 보정해서 1페이지에 여러 페이지 내용을 축소해서 인쇄한다거나, 잉크의 농도를 인위로 줄이는.. 뭐랄까 메타 프린터 드라이버 유틸이 있었다. 최종 목적지는 물리적인 프린터이지만 그 사이에 중재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축소 인쇄라든가 잉크 절약 모드는 프린터 드라이버 차원에서 기본 제공되는 옵션이 돼서 그런 메타 드라이버의 필요성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또한, 레이저 프린터는 기술 배경이 복사기와 비슷하다 보니, 같은 페이지를 여러 부 인쇄하는 것을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프린터에게 맡기는 게 매우 능률적이다.
양면 인쇄를 위해 페이지별 인쇄 순서를 교묘하게 바꾸는 것도 해당 워드 프로세서/전자출판 프로그램, 심지어 메타 드라이버가 담당할 법도 하지만.. 요즘은 프린터 드라이버 차원의 옵션으로 자체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파일로 인쇄할 때는 이런 것들은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4. 창 내용을 인쇄(?)하는 API

끝으로, 이것만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Windows에서 화면에 표시돼 보이는 각각의 창(윈도우!)들은 WM_PAINT라는 특수한 메시지가 왔을 때 invalid region과 BeginPaint - EndPaint 사이클에 맞춰 자기 내용을 그리는 일에 특화돼 있다. 이는 창 내용을 다시 그리라는 요청이 여러 번 반복해서 오더라도 그리는 건 한 번만 행해지고, 꼭 다시 그려야 하는 부분만 효율적으로 그리기 위한 조치이다.

그런데 가끔은 윈도우도 저런 사이클에 구애받지 않고, 특정 DC가 하나 주어졌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거기에다가 자기 모습 전체를 있는 그대로 싹 다시 그리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를 위해 운영체제는 WM_PRINT 및 WM_PRINTCLIENT라는 메시지를 정의하고 있다. 이건 어지간한 Windows 프로그래머라도 접하거나 구현해 본 적이 거의 없는  듣보잡일 것이다.

그런데 Windows XP에서는 저 메시지로도 모자라서 하는 일이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이는 PrintWindow라는 함수까지 추가됐다. 이건 뭐 WM_GETTEXT와 GetWindowText의 관계와 비슷한 것일까?
MSDN을 찾아보면..

  • The PrintWindow function copies a visual window into the specified device context (DC), typically a printer DC.
  • The WM_PRINT message is sent to a window to request that it draw itself in the specified device context, most commonly in a printer device context.

이라고 이런 물건들이 주로 인쇄용으로 쓰일 거라고 대놓고 문서화돼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창 스크린샷 한 장 달랑 프린트 할 일이 얼마나 될까? 실제로는 이것들 역시 화면 출력용으로 쓰인다.

가령, alt+tab을 눌렀을 때 나타나는 각 프로그램 창들의 썸네일 말이다. 물론 Vista 이후부터는 DWM이 창들 화면을 하드웨어빨로 몽땅 저장하는 세상이 되긴 했지만, 그런 것 없이 invalid region과 무관하게 자기 모습 캡처 화면을 떠야 할 때는 저런 함수/메시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메뉴나 콤보 상자 목록이 스르륵 미끄러지며 표시되는 것 말이다. 이런 걸 구현하기 위해서도 WM_PAINT와 별개 계통인 그리기 전담 메시지가 쓰인다.
스르륵 미끄러지는 걸 구현한답시고 매 프레임마다 WM_PAINT가 날아온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WM_PRINTCLIENT를 날려서 전체 리스트 모양을 메모리 DC에다가 한번 그려 놓은 뒤, 그걸로 애니메이션은 운영체제가 알아서 구현해 준다.

이런 걸 생각하면 창 핸들과 DC 하나 던져주고 print를 요청하는 메시지와 함수가 왜 필요하고 어떨 때 쓰이는지 약간 수긍이 갈 것이다. 하지만 그게 왜 하필 print라는 단어가 붙었으며 함수 버전과 메시지 버전이 모두 필요한지는 나로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0/10/26 08:37 2020/10/2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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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 기능 -- 上

1. 모니터와 프린터의 차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프린터 인쇄 기능을 구현할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넓게는 pdf를 생성하는 것까지 포함하더라도 말이다. 인쇄 기능이 존재하는 프로그램이라면 게임은 절대 아닐 것이고 아무래도 골수 업무 분야일 것이다.

뭐, Windows API의 경우, GDI API에서 사용되는 DC라는 게 처음부터 극도의 장치 독립과 추상화를 추구하면서 매우 범용적으로 설계되었다. 얼마나 추상적인가 하면, 아직 VGA도 없던 1980년대의 Windows 1.0부터 얘네들의 그래픽 API에는 색깔을 팔레트 인덱스 기반으로 선택하는 게 아예 없었으며 언제나 RGB 기반이었다.
그러니 글자와 그림을 찍는 기본적인 동작은 화면에다 그릴 때나 종이에다 그릴 때나 거의 같은 코드로 구현할 수 있다.

물론 두 장치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물건이다 보니, 코드가 100%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프린터는..

  • 3D 가속 렌더링이라든가 동영상 따위와는 전혀 접점이 없다.
  • 출력 속도가 화면보다 훨씬 더 느리다.
  • 색깔은 뭐.. 흑백 프린터도 여전히 현역인 것을 감안해야 한다.
  • 출력이 한없이 연속적인 게 아니며, 페이지의 구분이 존재한다.
  • 프린터가 꺼졌거나 아예 연결되지 않은 것, 용지가 없는 것, 종이가 걸린 것 등으로 인한 실패 확률이 높다.
  • 다만, 해상도는 프린터가 모니터를 아득히 초월할 정도로 높다. 오늘날 HDPI 화면의 해상도가 이제 30~40여 년 전 도트 프린터의 해상도(180dpi)를 따라잡은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화면용 3D/애니메이션 위주의 그래픽 API가 DirectX 기반으로 눈부시게 바뀐 동안, 프린터 쪽은 GDI+ 정도 말고는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바뀐 게 없다. 글쎄, 인쇄 대화상자의 디자인이 살짝 바뀌었으며 Windows Vista/7 즈음에는 xps라고 pdf 같은 위지윅 전자 문서 생성 API도 추가되긴 했지만, 이게 통상적인 인쇄 절차를 대체할 만한 물건은 아닌 것 같다.

2. Windows에서 통상적인 인쇄 절차

정말 핵심 중의 핵심 기본은 다음과 같다.

  • 화면에다가 그릴 때는 GetDC, BeginPaint 따위로 DC를 얻었다. 하지만 인쇄용 DC를 얻을 때는 PrintDlg 함수의 실행 결과로 얻어진 DC를 쓰는 편이다. CreateDC 직통으로 DC를 생성하는 건, 특정 프린터만을 저격하는 아주 특수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상황이 아닌 한 거의 없다.
  • 인쇄를 시작할 때는 저 DC에 대해서 특별히 StartDoc이라는 함수를 호출한다. 이렇게 프린터 DC에서만 사용 가능한 전용 함수들이 몇몇 좀 있다.
  • 그리고 매 페이지에다 인쇄할 때마다 시작과 끝을 StartPage와 EndPage로 해 준다. 인쇄하고자 하는 페이지 수만치 for문을 돌리면 된다. 그 동안 프린터 DC를 상대로 각종 GDI 함수를 호출해서 글자와 그림을 찍도록 한다.
  • 인쇄를 마치려면 EndDoc을 호출하고, 중간에 인쇄가 취소됐다면 AbortDoc을 호출한다. 이거 무슨 저그 스커지가 적기와 자폭하느냐, 아니면 피가 닳아서 죽느냐의 차이와 비슷하다.;;
  • 다 사용한 DC는 ReleaseDC가 아니라 DeleteDC로 해제한다. 화면 DC 말고 메모리 DC와 프린터 DC는 저 함수로 해제해야 한다.

아 참.. 똑같이 DC를 사용하더라도 화면에다 그릴 때와 프린터에다 그릴 때의 매우 큰 차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좌표계이다.
화면에는 그냥 픽셀 단위를 가리키는 MM_TEXT가 간단하고 직관적이니 널리 쓰이지만 프린터에는 그런 게 없다. 프린터의 해상도와 무관한 밀리미터, 인치, 포인트 등의 실제 길이 단위 기반의 좌표계를 지정해 줘야 한다(SetMapMode 함수).

그리고 MM_TEXT를 제외한 나머지 추상 단위계들은 수학 좌표계처럼 y축의 값이 증가하는 방향이 위로 올라가는 방향이다. 이건 동일 코드로 화면 출력과 프린터 출력을 모두 구현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주범이다. BMP 이미지가 화면 기준으로 파일이 상하가 뒤집힌 구조인 이유도 이런 좌표계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쇄 미리보기를 구현한다거나 더 나아가 편집 화면 차원에서 프린터 결과와 화면 결과가 동일한 위지윅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어차피 화면에서도 저런 범용적인 좌표계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3. 용지 정보 얻기 (크기와 방향)

그러고 보니 응용 프로그램이 인쇄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 그 전에 인쇄 분량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쇄되는 종이의 크기를 알아야 한다. 이 정보는 인쇄를 하는 당사자인 프린터 드라이버가 갖고 있으며, 응용 프로그램은 운영체제 API인 GetDeviceCaps(hPrinterDC, HORZSIZE 또는 VERTSIZE)를 호출해서 얻을 수 있다.
이 함수의 리턴값은 언제나 밀리미터 단위이다. 그러므로 mm 계열이 아닌 좌표계를 사용하고 있다면 적절히 변환해서 글자를 찍으면 된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인쇄 용지의 크기라는 것은 프로그램이 인쇄를 위해 프린터 DC를 생성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MS Word나 아래아한글처럼 위지윅을 지원하는 워드 프로세서 부류의 프로그램은 자체적으로 가상의 용지를 설정하고 동작한다.
문서에 설정되어 있던 용지와 실제 인쇄 용지가 크기나 종횡비 같은 게 일치하지 않는다면.. 인쇄할 때 배율 같은 걸 적절히 보정해 줘야 가장자리 내용이 짤리지 않는다. 그건 해당 프로그램이 담당해야 하는 영역이다.

한편, 용지의 크기뿐만 아니라 인쇄 방향--세로 portrait 또는 가로 landscape--도 응용 프로그램의 페이지 옵션과 프린터 내부의 옵션이 서로 따로 노는 형태이다. 그럴 만도 한 게.. 기능이 매우 빈약한 메모장으로 인쇄를 하건, 아래아한글로 인쇄를 하건, 가로· 세로 인쇄는 응용 프로그램과 무관하게 언제나 가능한 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쇄 대화상자에서 각 설치된 프린터별 설정 대화상자를 또 연 뒤, 용지의 방향을 바꿔 줄 수 있다.
인쇄 방향이 프린터 차원에서 landscape(가로)로 설정되었다면 GetDeviceCaps(hPrinterDC, HORZSIZE)의 값이 VERTSIZE의 값보다 더 커진다.

그리고 PrintDlg 함수는 프린터 DC를 생성하면서 PRINTDLG 구조체에다가 DC뿐만 아니라 DEVMODE라는 구조체 내용을 담고 있는 메모리 핸들도 따로 되돌려 주는데, 여기에서 dmOrientation이라는 멤버를 참조하면 용지의 방향을 알 수 있다. (DMORIENT_PORTRAIT 또는 DMORIENT_LANDSCAPE)

물론, 프린터의 용지 방향이 세로이더라도 내 프로그램에서의 용지 방향 설정이 가로로 돼 있으면 이를 감지하여 내가 직접 그림을 90도로 눕히고 돌려서 그리면 된다. 그러면 어차피 가로 방향 인쇄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수고는 워드 프로세서 급에서나 할 일이다. 일반적인 프로그램이라면 그냥 프린터 설정만 따라서 내용을 출력하면 된다.

이렇듯 가로 세로 방향 전환이라는 건 전통적으로 프린터에만 존재하는 개념으로 여겨졌으나, 요즘은 디스플레이 장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스마트폰은 말할 것도 없고(방향 전환), 모니터도 방향을 전환하는 피벗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가로로 납작한 모드는 영화를 볼 때 유용할 것이며, 세로로 길쭉한 모드는 문서 편집 내지 코딩을 할 때 유용할 것이다.

4. 인쇄 전담 계층의 분리

요즘 프린터는 한 줄씩 데이터를 받는 족족 타자기처럼 출력물을 토해내는 게 아니라 복사기처럼 최소한 페이지 단위로 동작한다. 운영체제의 인쇄 관리자는 응용 프로그램이 StartDoc ~ EndDoc 사이에서 GDI 함수로 명령을 내린 것들을 마치 메타파일 생성하듯이 모았다가 프린터 드라이버로 보낸다. 그럼 프린터 드라이버는 그걸 프린터가 해석할 수 있는 인쇄 동작으로 바꿔서 기계에다 전송한다.

즉, 응용 프로그램의 입장에서는 인쇄할 데이터를 운영체제의 인쇄 관리자에다가 다 보내 놓기만 하면 명목상 인쇄를 다 마친 것이다. 그 뒤에 실제로 인쇄가 제대로 됐는지, 도중에 종이 부족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를 프린터와 통신하며 챙기는 건 인쇄 관리자의 영역이다.
이 인쇄 관리자를 '프린터 스풀러'라고 부르는 편인데, SPOOL은 다른 단어들의 이니셜이다.

문서를 실제로 인쇄하는 것보다야 같은 소프트웨어인 스풀러에게 인쇄 데이터를 파일 형태로 생성하고 전달하는 게 훨씬 더 빨리 되며, 중간에 실패할 일도 거의 없다. 그러니 스풀러가 별도로 분리되어 있으면, 응용 프로그램의 입장에서는 인쇄를 굉장히 빨리 끝마치고 사용자가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신속하게 복귀할 수 있다.

그 반면, 도스 시절에는 지금처럼 운영체제 차원에서 인쇄 관리자가 제공되는 게 없었다. 그래서 도스용 아래아한글 같은 프로그램은 스풀러 기능을 내부에서 직접 구현해야 했다.
그리고 스풀 옵션을 사용하지 않거나, MB급 단위인 스풀 데이터를 저장할 디스크 공간이 부족하거나, 아예 스풀 기능이 없던 아래아한글 1.x 시절에는...
수십 페이지의 인쇄 명령을 내려놓았다면 다 끝날 때까지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스풀러가 아니라 그 느린 프린터로 데이터를 전부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삽질이다.

도스 시절에는 PC 통신 프로그램은 전화를 걸거나 업로드/다운로드를 하는 중에 멀티태스킹을 하는 게 핵심 기술이었다. 그것처럼 워드 프로세서는 인쇄 중의 멀티태스킹이 핵심 기술이었던 셈이다.
1994년에 출시되었던 도스용 아래아한글 2.5는 프린터에다가 인쇄 데이터를 전송하는 방식을 개선해서 인쇄 속도를 크게 향상시켰다고 광고했었는데.. 그 기술 디테일이 무엇이었는지는 개인적으로 지금도 알 길이 없다.

프린터 스풀링용 데이터는 파일의 형태로 인쇄를 한 것이니 '인쇄의 가상화'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특정 프린터 하드웨어에 지극히 종속적인 형태일 것이므로 pdf나 xps 같은 장치 독립까지 만족하는 전자문서라고 볼 수는 없다.

글쎄, 도스 말고 Windows에서도 3.x + 옛날의 굉장한 구식 도트 프린터의 경우(KS 24핀 180dpi 이러던..-_-), 응용 프로그램에서 인쇄 명령을 내리면 요즘처럼 인쇄 관리자와 해당 프린터 드라이버의 자체 UI가 뜨는 게 아니라 직통으로 바로 인쇄가 시작되기도 했던 것 같다. 거의 30년 가까이 전의 추억이다.

5. 인쇄를 중간에 취소하기

제아무리 인쇄 과정이 가상화돼서 프린터가 아니라 인쇄 관리자에게만 인쇄 데이터를 넘겨주면 된다 하더라도.. 수십· 수백 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인쇄하는 건 1초 안으로 호락호락 금방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
더구나 속도와 별개로 사용자가 인쇄 작업을 중간에 취소할 수 있게도 해 줘야 한다. 현재 페이지만 인쇄하려 했는데 실수로 100페이지짜리 인쇄를 몽땅 시켜 버리는 건 흔히 저지르는 실수이다.

그렇다면 요즘이야 해결책이 아주 간단하다. "전체 x쪽 중 현재 y쪽 인쇄 중"이라는 진행률 게이지와 "취소" 버튼이 달린 대화상자를 modal로 표시한 뒤, 인쇄는 스레드로 진행하면 된다. 인쇄 스레드는 매 페이지의 인쇄가 끝났을 때마다 main UI로부터 취소 버튼의 클릭 여부를 검사하고, 만약 그게 눌렸다면 AbortDoc을 호출해서 인쇄를 취소하고 곧장 빠져나오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멀티스레드라는 게 존재하지 않던 옛날 16비트 골동품 시절이다. 이때는 실시간 인쇄 상황 표시와 취소 처리를 어떻게 했을까?
그때는 main 스레드가 근성의 idle time processing만으로 UI와 인쇄를 같이 병행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도와주는 취지의 API가 제공되었다. 그 정체는 SetAbortProc라는 함수이다.

인쇄를 시작하기 전에 프린터 DC에 대해 abort 콜백 함수를 지정해 주면.. 나중에 그 DC를 대상으로 각종 그리기· 조작 명령이 수행된 뒤에 운영체제가 그 콜백을 매번 호출해 준다. 마치 잠수하다가 수시로 수면 위로 잠깐씩 나와서 숨을 쉬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 콜백 함수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였다. (1) 큐에 쌓여 있는 메시지를 처리해서 프로그램의 GUI를 돌아가게 하기, 그리고 (2) 혹시 사용자가 인쇄 취소 명령을 내렸는지 검사해서 그 여부를 리턴값으로 되돌리기.

이를 위해서 콜백 함수에는 무려 message loop이 들어가 있어야 했다. 단, 종료 조건을 통상적인 GetMessage로 하지 말고 PeekMessage(... PM_REMOVE)로 지정해야 한다. 전자는 처리해야 할 메시지가 없으면 메시지가 또 생길 때까지 내부적으로 대기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콜백은 메시지 처리만 하고 나서 실행을 종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SetAbortProc을 호출 하기 전에 "인쇄 중..." 대화상자를 표시해 놔야 한다. 이 대화상자는 백그라운드 인쇄 기능과 연계해서 돌아가야 하는 관계로, 응용 프로그램의 자체 message loop을 타는 modeless 형태로 표시돼야 한다. DialogBox 말고 CreateWindow를 쓰라는 뜻이다.
그래도 이 대화상자의 용도는 명백하게 modal이니, 이게 표시된 동안은 parent 프레임 윈도우로 포커스가 옮겨질 수 없게 EnableWindow(hParent, FALSE) 처리도 사용자가 수동으로 해야 한다.

SetAbortProc 같은 메커니즘이 없었다면 인쇄 도중 UI 표시와 취소를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가 수동으로 인쇄 루틴의 내부에다 PeekMessage 체크를 집어넣어야 했을 테니 인쇄용 코드와 인쇄 미리보기용 코드조차 동일하게 관리하기가 어렵고 프로그램이 많이 지저분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abort 콜백 함수를 구현하는 건 과거의 클립보드 chain 관리만큼이나 여전히 몹시 삽질스럽고 번거로운 구석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MFC 라이브러리가 자체 구현한 "인쇄 중" 대화상자)

옛날 프로그램으로 인쇄를 해 보면.. 잠깐 표시되는 '인쇄 중' 대화상자는 왠지 추레해 보이고 (1) 그 흔한 진행률 게이지 하나 없고, (2) 다른 대화상자들과 달리 중앙 정렬돼서 표시되지 않고(좌측 상단에 치우쳐서) [X] 버튼도 없으며, (3) 반응성이 안 좋아서 종종 응답이 멎기도 하던 이유들이 모두 설명된다.
(1)은 16비트 시절엔 진행률 게이지 공용 컨트롤이 없었기 때문이요, (2)는 modal이 아닌 modeless로 처리됐기 때문, (3)이야 뭐.. idle time processing으로 돌아가니 반응성이 좋지 않은 것이다.

이런 지저분함은 앞서 언급했듯이 멀티스레드가 등장한 뒤에야 과거 유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에 나왔던 Windows 프로그래밍 책들은 여전히 옛날 전통적인 방식으로 SetAbortProc 기반의 인쇄 절차를 소개하고 있으며, 16비트 시절부터 유구한 전통과 짬을 자랑하는 MFC도 그 구조를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SetAbortProc가 함수 주소만 받고 함수에다 넘겨줄 데이터를 받지 않는 것도.. 데이터쯤은 그냥 전역변수로 넘겨주던 1980년대 C스러운 사고방식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MS Word의 경우, 신기하게도 스풀러에게 인쇄 데이터를 넘겨주는 작업조차도 철저하게 백그라운드로 수행된다. 즉, "인쇄 중" 대화상자 자체가 표시되지 않으며, "몇 페이지 인쇄 중"이라는 말은 아래의 상태 표시줄에 표시된다. 그 와중에도 문서 편집과 수정이 가능하고 프로그램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10/23 08:35 2020/10/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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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hood

예나 지금이나 생긴 것, 하는 일은 비슷한데 내부 메카니즘은 상당히 달라진 물건은 어떤 게 있을까?

※ 헬리콥터

회전익 항공기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로터의 영향을 받아 동체까지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된다. 그래서 이 현상을 상쇄하기 위해서 탠덤 형 헬리콥터는 동체가 길쭉하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시계/반시계) 도는 동일 크기의 로터가 앞뒤로 달려 있다. 철도 차량으로 치면 전후동력형 동차와 비슷한 형태. 그리고 동축 반전 로터형은 그 로터를 위아래 높이만 다르게 하여 동일 위치에 포개 놓았다. 양방향으로 도는 로터 두 개를 모두 배치함으로써 동체의 회전을 방지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동축 반전 로터는 만들기가 더 어렵고 고속 주행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헬리콥터는 꼬리날개(테일 로터)를 수직 방향으로 따로 다는 방식을 쓰고 있다. 뭐, 테일 로터 방식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어서 동체를 뜨게 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잉여 로터에다가 엔진의 출력이 쓸데없이 낭비된다는 점, 그리고 테일 로터는 사람이 끼여서 죽거나 다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점이 지적되곤 한다만...
어쨌든 요지는, 옛날에는 꼬리날개의 기능을 다른 형태로 구현한 헬리콥터도 있었다는 것이다.

※ 마우스

구슬을 굴리던 방식에서 광학 레이저로 위치를 탐지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사실은, 볼마우스가 바닥 매체에 관계없이 동작 가능하고 가끔은 사람이 일부러 트랙볼처럼 아래의 볼을 직접 굴려서 포인터를 움직일 수도 있어서 심리적으로는 무척 편하다. 그러나 볼에 먼지와 이물질이 껴서 주기적으로 청소가 필요하다는 건 답이 없는 문제이다. 청소를 안 해 주면 동작이 금세 뻑뻑해지고, 포인터가 잘 안 움직이고...;; 불편하다. 청소 때문에 볼은 필연적으로 분리가 무척 용이한 구조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공공 PC에서 마우스의 볼은 자주 분실되기도 했다.

오늘날, 아래에 볼이 달려 있지 않은 요즘 마우스를 보면 본인은 옛날 생각이 난다. 초창기의 광마우스는 반드시 바닥에다 마우스 패드를 깔고 써야 했고 가끔 마우스 포인터가 오작동으로 움직이는 등 단점도 있었으나, 요즘은 많이 개선되었다.

※ 아날로그 시계

생긴 건 1부터 12까지 일정 간격으로 새겨진 원판에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이 놓인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옛날의 시계는 태엽과 톱니바퀴로 돌아가는 구조이던 것이 오늘날의 시계는 반도체를 이용한 전자식 쿼츠 시계로 다 바뀌었다. 예전에 글로 쓴 적이 있듯이, 둘은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쿼츠 시계는 단순히 전기 에너지로 기계식 시계를 돌리는 시계가 아니다.

※ 모니터

21세기엔 컴퓨터 모니터든 텔레비전이든, 크고 아름답고 둥글기까지 하던 브라운관이 디스플레이 장비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 그 타이밍이 플로피 디스크나 카세트 테이프의 퇴출과도 시기적으로 비슷한 것 같다.
컴퓨터의 두뇌인 집적 회로가 더욱 작고 정밀해진 것만큼이나 디스플레이 장비의 소형화도 스마트폰 같은 작은 컴퓨터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고작 단색, 혹은 청색이 표현 안 되던 저해상도 화면도 이젠 안녕이다.

액정 모니터는 전기 적게 먹고 전자파 안 나오고, 작고 가볍다. 물론, 단점도 없지는 않아서 특히 초창기엔 비슷한 크기와 성능의 브라운관 모니터보다 상당히 비싸고, refresh rate 및 최대 해상도가 떨어지고 색감이 좀 시원찮으며, 설계 해상도 외의 해상도에서는 픽셀이 번지고 불량 화소 같은 문제가 있었다만.. 오늘날은 역시 상당수 개선되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옛날 브라운관 모니터는 다양한 해상도에서도 픽셀이 번지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모니터를 처음 켰을 때는 무슨 형광등처럼 화면이 표시되는 데 딜레이가 길며 그것도 서서히 fade in이 됐었다. 이런 장면 역시 액정 화면에서는 볼 일이 없어져 있다.

※ 철도 차량

잘 알다시피, 옛날의 그 크고 아름답던 증기 기관차가 디젤로 바뀌고, 나중에는 최종 완전체인 전기 동력차로 바뀌었다.
그리고 똑같이 전동차도 처음에는 원시적인 저항· 쵸퍼 제어이던 것이 오늘날은 만렙인 VVVF 기반 제어로 바뀌었다.
심지어 VVVF 내부에서도 서열이 있어서, 처음에 GTO 소자이던 것이 더 조용하고 효율 좋은 IGBT 소자 기반으로 바뀌었다.
전기 철도는 힘 좋고(탁월한 가감속력) 조용하고 공해 물질이 배출되지 않으며 동력비 조절이 유연하다는 압도적인 장점으로 인해 철도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특히 전기 없이는 고속철이나 지하철이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 프린터

한 20년 전의 컴퓨터 입문 서적을 보면 프린터의 메카니즘으로는 도트, 열전사, 잉크젯, 레이저 4종류가 있다. 그 중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건 역시 잉크젯과 레이저. 그렇게도 비싸던 레이저 프린터가 이렇게까지 싸져서 가정용으로 보급된 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잉크젯은 프린터 값이 잉크 카트리지 값보다 더 싼 기형적인 물건이 됐고..

마치 오늘날 286, 386 급-_- CPU는 키오스크나 우주선-_-, 임베디드용으로나 제한적으로 쓰이듯, 도트와 열전사는 영수증이나 각종 토큰 같은 걸 찍는 용도로 물러났다. 그나마 도트는 진짜 완전히 사라진 듯하고, 요즘 기계는 영수증도 열전사 방식으로, 언뜻 보기에 레이저 프린터가 돌아가는 것처럼 조용히 쓰윽~ 인쇄하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1/08/11 08:28 2011/08/1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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