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돈으로도 못 가요 + 울어도 못 하네

위 두 곡은 내 행위나 스펙, 재물 따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기초적인 복음을 전하는 찬양 내지 영적 노래이다.
작사· 작곡자는 서로 다르지만 가사 비슷하고 조와 박자가 비슷해서 한데 이어서 부르기 아주 좋다.

2.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 주님 품에 새 생활

영어로 life라는 건 생물학적인 생명도 되고, 그냥 인생· 생활· 삶이라는 뜻도 된다. 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찬송이 개인적으로는 위의 저 두 곡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과 "주님 품에 새 생활하네"(Ron Hamilton)이라고 생각한다.

구원받아서 새 생명을 얻었으면 새 생활을 해야 한다.. 굉장히 적절한 메시지인 것 같은데..
허나, 위의 두 곡은 3박자 계열이긴 하지만 각각 3/4와 6/8이라는 차이가 있고 음악적인 느낌과 구조는 많이 달라서 바로 연결하기에는 어색해 보인다. 가사는 정말 딱인데 일단 내가 생각하기에는 좀 아쉽다.

3. 삼위일체 메들리

찬송가 중에는 1,2,3 각 절이 성부 성자 성령을 언급하는 형태인 게 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가 대표적인 예이다. (예수님 찬양 받으소서, 위로의 성령님이시여) 마치 군가 '멸공의 횃불'이 각 절마다 육해공군을 언급하듯이 말이다.
이런 곡들만 모아서 메들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공교롭게도 이런 곡들은 박자도 3박자 계열(3/4)인 편이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상극인 곡을 아무렇게나 연결할 수는 없으니..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정 종원)"와 "아버지 큰 사랑 감사해요(Father, I thank you)"을 묶는 걸 생각해 봤다. 특히 선발곡은 솔로로 선창하고, 그 다음에 후발곡을 합창으로 부르는 식으로 한 절을 다 부르고, 2절과 3절을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 앞뒤에 적절한 도입· 결말부를 더 생각해 봐야 한다.

4. 기도 관련

기도와 관련해서 한데 이어 부르기 좋은 찬양 세트는 셋 정도 있다. 공교롭게도 각 세트들이 다들 국산곡과 외국곡으로 편성돼 있다.

(1) 주님의 시간에(in his time) +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선발곡은 다 주님 말씀하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조용하고 수동적인(?) 심상인 반면, 후속곡은 요일 5:14에 근거해서 주님 뜻대로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신다는 좀 능동적인(?) 심상이다.
같은 C장조이고 이어서 부르기 좋다.

(2)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 오늘 집을 나서기 전
첫 마디의 계이름 “미~미 파미레도”가 일치하고 박자도 아주 비슷하다.
선발곡에서 “아무 염려 하지 말라”산상설교 내용을 묵상한 뒤, 후속곡에서 “기도했나요 용서했나요”를 권면하는 구조가 된다.
물론 후속곡을 이어서 부르기 위해서는 선발곡에서 조가 올라가고 마무리를 짓는 클라이막스 부분은 건너뛰어야 한다.

(3) 마음이 어둡고 괴로울 때(김 문영 사/최 덕신 곡) +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못갖춘마디의 3/4박자 곡이고 우울할 때 부르기 좋은 비슷한 가사이다.
단, 선발곡은 이럴 때 나도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하고 싶다는 다짐이고, 후속곡은 너를 위해 중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일종의 위로이다. 굳이 따지자면 선발곡의 가사가 영적으로 수준이 더 높다.

5.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우선, 앞곡은 쌍팔년도를 풍미했던 찬양집 “찬미예수 시리즈”의 편저자가 지은 명곡이다. 가사가 내 진심을 담아 차마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심오하다.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그저 주는 사랑” 이거 부르다가.. 예배당 밖에서는

“서울 시내 아파트 값이 어떻고 삼성 전자 주식이 어떻고, 비트코인 뭐가 어떻고 금리가 어떻고..” 이러면 완전 현타가 작렬할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
요즘은 유혹과 박해라는 게 무식하게 빼앗고 죽이는 형태가 아니라, 너 혼자 뒤쳐지고 박탈감 느끼게 하는 식으로 임한다.

그리고 이 곡은 “예수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로 끝나니,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와 가사 내용과 분위기, 박자가 아주 비슷하다. 같이 이어서 부르면 잘 어울리겠다.

6.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작사· 작곡자가 서로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조(Ab)에 같은 박자(3/4), 동일한 길이의 못갖춘마디이다.
앞곡은 미래의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고 사모한다는 내용이고 후속곡은 그보다 좀 더 현실적으로 지금 내 앞길을 인도해 달라는 간구이다.

서로 연계하기 굉장히 좋은 조합인 것 같다. 앞곡을 부르다가 간주 없이 곧장 뒷곡으로 넘어간 뒤, 다시 간주 후에 앞곡으로 돌아와서 끌내는 형태도 괜찮을 것 같다.

7. 내가 하늘에 들어가 (I saw Jesus in you / When I enter heaven's glory)

Ron Hamilton이 작사· 작곡한 이 찬양은.. 자기가 나중에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을 때 다른 구원받은 지체들을 만나서는 “아.. 당신이 살아 생전에 예수님의 모습을 잘 보여줘서 그게 저한테도 선한 영향을 끼쳤어요” 이렇게 회고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굉장히 고차원적인 가사의 노래이다.
게다가 저건 1절 내용이고, 2절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한테서 그런 칭찬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사람과 예수님이 후렴에서 동일하게 I saw Jesus in you라고 말한다는 게 핵심이다.

일반 기성 교회보다는 침례교 계열에서 더 유명하지 싶다. 이 곡을 모르시는 분은 유튜브에서 먼저 들어 보시라. (☞ 링크)
(화면에서 볼 수 있듯, 이 아저씨는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어쨌든 애꾸이다. 이 특성을 이용해서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일부러 해적 코스프레도 종종 하는 것임..)

얘는 뭐.. 다른 곡을 짜깁기 하거나 메들리를 만들 필요가 없다. 가사에 화자가 딱 정확하게 나, 다른 사람, 예수님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메들리나 합창이 아니라 그냥 뮤지컬을 만들면 된다. 유튜브를 뒤져 봐도 이 곡을 이런 형태로 부른 영상은 딱히 없는 것 같다. ㅡ,.ㅡ;;

아 참.. 이거 가사가 자신이 하늘나라에 들어간 뒤의 시점을 다루고 있으니.. 프리퀄 격으로!!
하늘나라를 간절히 사모하는 내용이면서 박자나 멜로디가 이 곡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 적절한 찬송을 미리 부르면 효과가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천국, 소망'카테고리의 찬송가들은 내 인생이 끝난 관점 버전이랑 이 세상 전체가 끝난 관점 버전을 구분해야 된다고 생각해 왔다. 이 곡은 명백하게 인생 종말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2/12/23 19:35 2022/12/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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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교회와 작은 교회

1. 작은 교회: 회중 찬송

본인은 하루는 창립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서울 교외의 자그마한 교회에 초대받아 가서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여기는 인원이 30~40명 될까말까한 정도였는데.. 우와~ 본인이 2000년대부터 거쳤던 교회들 중에서 인원수 대비 찬송 부르는 소리가 제일 크고 우렁찼었다.
그러니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여긴 너무 작아서 성가대가 따로 있지도 않은 곳인데..!!

분위기가 좋으니 나는 오랫동안 봉인됐던 옛날 버릇이 저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1절만 익숙한 멜로디 파트로 부른 뒤, 2절부터 n절까지는 테너 파트로 선로를 갈아타서 화음을 넣었다. 멜로디는 남들이 충분히 크게 잘 부르고 있으니까..
즉석 화음을 도대체 얼마 만에 넣어 보는지? ^^

이전에 다녔던 교회에서는 내가 직접 강단에 서서 찬양 인도를 했다. 내 마음대로 화음을 넣을 수 없고 언제나 주선율 파트만 불러야 했다.
그 반면, 대형 교회는.. 찬송가 책 따위 없고 가사만 대형 스크린에다 띄워 준다. 게다가 찬양팀의 악기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니, 개인의 화음 따위는 반대편 극단의 이유로 인해 아오안이고 묻혀 버린다.

내가 화음을 넣자 뒷자리의 어떤 자매님도 테너 파트를 부르기 시작해서 저절로 2성부가 형성됐다.
이런 분위기가 참 정겹고 좋았다. 여기 목사님도 아주 흡족한 표정이셨다.
심지어 내가 강단에서 직접 찬양 인도를 했던 이전 교회도 내 경험상 이 정도로 훈훈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회중 찬송이 일상적으로 박력이 있는 곳이야말로 작지만 강하고 본질에 충실한 교회이지 싶다. 제식 군기가 확 잡혀 있는 사기 충만한 군대와 같은 느낌이랄까..

요즘은 옛날 같은 무지막지한 거리 두기나 백신 패스 따위가 없어지고 실내 마스크 외에는 일상에 아무런 제약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교회는 한번 무너졌던 주일학교와 성가대 인프라가 다시 회복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2. 큰 교회: 찬양

물론, 대형 교회는 교회 음악/찬양 인프라가 아무래도 작은 교회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 목사 1명이 아는 찬양의 범위와, 전문 음악 사역자가 아는 찬양의 범위가 어찌 쨉이 되겠는가..;;
청년부 예배 때는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생소한 신세대 곡들을 불러 댄다. 요즘은 CCM이라는 바닥을 누가 주도하고 있고 누가 신곡을 만들고 번역하는지..?? 본인은 HTML 지식과 CCM 배경 지식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서 멈춰 있어서 그게 궁금하다. -_-;;

대형 교회는 예배를 연령대별로 다양한 시간대에 나눠서 시행하는 게 가능하다. =_=;; 이게 바람직한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오전 9~11시 사이엔 여기도 의외로 클래식한 찬송가와 1980~90년대 비교적 오래된 CCM을 부르는 편이더라.

한번은 여친 교회의 오전 예배에서 최 덕신의 "세상의 유혹 시험이 내게 몰려 올 때에.."(주를 찬양)와 "마음이 어둡고 괴로울 때"(기도)가 흘러나와서 굉장히 반가웠었다. 이런 곡을 내가 공예배 때 소리 내어 부른 건 아마 평생 처음이거나 최소한 21세기 이래로는 처음이지 싶다.

본인은 이걸 중3이나 고1 사이에 다녔던 교회의 중고등부 선생님에게서 맨 처음으로 소개받았고, 그 뒤에 최 덕신/주찬양 음반을 통해서 음원도 접했다. 그야말로 마르고 닳도록 들었기 때문에 머릿속에 반주와 전체 가사가 자동 완성된다.
다행히 교회에서도 3절에서 조가 올라가는 것까지 음반과 똑같이 부르더라. 나도 신바람 나서 힘차게 같이 불렀다.

다만, 일반 기성교회에서는 반대로 내가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즐겨 부르는 곡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가령, 론 해밀턴 아저씨 곡들 대부분이라든가(“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 Rejoice in the Lord” 정도만이 고작?)
Wonderful grace of Jesus(놀라운 주의 은혜)라든가 And can it be that I should gain 같은 곡은 모르는 건지..? 이런 건 침례교에서만 알려져 있는 건가 싶다.

그리고 회중 찬양 대신 성가대만 지나치게 현란 화려하고, 심지어 불신자 음악인을 섭외해서 성가대를 운영하는 건 아무래도 본질을 벗어난 처사이고 잘못된 것 같다. 예배가 겉만 번드르한 공연, 쇼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3. 큰 교회: 주차 요원

자기 땅과 건물이 있는 큰 교회는 필연적으로 방문하는 성도들의 주차 문제를 자체적으로 신경 쓰게 된다.
그런데.. 교회 입구에서 주차 안내 및 차량 통제 봉사를 하는 분은 정말 엄청난 인내와 섬김과 헌신을 실천하는 것 같다. 이건 예배당 청소와 대등한 레벨이지 싶다.
혼자 교회에 남들보다 훨씬 일찍 와서 밖에서 재미없고 골치아픈 궂은일을 해야 하고 예배 시간도 앞부분을 일부 깨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거 무슨 백화점이나 마트 주차장에서 최저 시급 받으면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회를 섬긴 것을 주님께서 기억해서 남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보상해 주신다~~ 라는 관념이 없이는 이런 일을 오래 지속적으로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는 여친이 다니는 모 대형 교회의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중이었는데.. 주차 안내 요원이 각 차들을 “여기서 방향 바꿔서 후진으로 들어오셔서 저 XXXX 차 앞에 세워 주세요” 이런 식으로 일일이 통제하고 있었다.
본인은 후딱 차를 돌려서 그 말대로 잽싸게 주차를 한 뒤, 안내 요원에게도 수고 많고 고맙다고 축복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안내 요원은 뜻밖에도 내게도 운전 잘한다고.. 말귀를 바로 알아듣고 그 공간에서 바로 차를 쏙 신속하게 잘 집어넣어 주시니, 통제하기 편해서 좋았다고 칭찬을 했다. ㅠㅠㅠ
여성 운전자는 그렇게 말하면 제대로 못 알아듣고, 좁은 공간에서 여러 차들이 엉켜서 애먹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이다. 아~ 이런 것도 주차 안내 요원의 고충이겠구나 싶었다.

주차 요원 말고도, 큰 교회는 예배 마치고 나서 사람들이 예배당을 빠져나갈 때, 장로급 어르신들이 출입문이나 계단 한켠에 미리 줄지어 서서 사람들에게 매번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게 있다. 이것도 깨알같은 수고가 필요한 섬김일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16 08:35 2022/09/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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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찬송 몇 곡

Wonderful Grace of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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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선율이 아름다운 찬양도 있구나!’ 생각이 곧장 들어서 자료를 검색해 봤다.
작사· 작곡자는 Haldor Lillenas. 사실 그는 20세기 초의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평생 수천 편의 찬송시를 지은 굉장히 유명한 분이며, 저 Wonderful Grace of Jesus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한다. 그럼 그렇지..;; 왜 우리나라의 통일 찬송가에 수록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저 곡이 발표된 때는 1918년. 유럽에서는 독가스와 탱크가 첫 등장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 가고, 우리나라는 일제의 무단 통치 하에서 신음하던 시절이었다.

이 곡을 모르는 분이라면 한번 들어 보기 바란다. 후렴을 돌림노래 비슷하게 편성한 것도 그렇고, 너무 우아하고 멋있지 않나..?
증오심으로 가득한 “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 짤과는 정반대로, 구원받아서 진심으로 기쁘다는 감격이 느껴진다.
곡 전체를 통틀어 당김음 하나 없는데도 전혀 단조롭지 않다.

Sing On, Ye Joyful Pilgr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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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ful Grace of Jesus에 필적하는 미려한 선율을 자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참 즐거운 노래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것도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불멸의 명작이지 않던가.

한국어 가사도 아름답지만, 영어 원문 가사는 크리스천이 이 세상에서 떠돌되 방랑자가 아닌 순례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심상이 더욱 잘 드러나 있다.
그 곡의 작사자는 Carrie M. Wilson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이는 필명일 뿐, 그 이름도 유명한 Fanny J. Crosby 여사의 작품이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Meekness and Maje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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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소개한 세 곡보다는 훨씬 더 나중에 발표되었고 어찌 보면 CCM에 가깝다.
영국의 그 유명한 Graham Kendrick의 곡으로, 저분 하면 <비추소서>(Shine, Jesus, shine), <God Is Good>, <Heaven Is In My Heart> 등이 바로 떠오를 것이다.
좀 더 매니악한 분이라면, 주찬양 선교단 8집 <Hosanna! 이 땅을 고치소서>의 타이틀곡의 뒷부분에 이어지는 <Lord Have Mercy On Us>가 저분의 곡이라는 것도 아실 테고.

허나, 본인은 Meekness and Majesty을 그분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일품으로 친다.
예수님을 너무 사실적이고도 서정적으로 잘 묘사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rhyme을 봐라. -ty, -ce, -le 등을 포함해서 단어 선택을 정말 절묘하게 했다.
화음도 특히 후렴 부분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느낌을 잘 살리려면 꽤 어려운 chord를 넣어서 연주해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23 19:21 2011/10/2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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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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