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이날 특집

올해 5월은 참 공교롭게도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모두 주일과 겹쳤다. 어린이날은 대체 공휴일이라도 있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으니 "부처님, 실망이에요"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ㅡ,.ㅡ;;

그래서 본인은 지난 5월 5일엔 이에 맞춰서 회중 찬송곡을 골랐다.
가사에 "어린아이 같은/처럼" 비유가 들어있는 것, 명랑한 분위기에 화자의 관점이 동심인 것들을 주로 골랐다.

오전에는 "예수께로 가면"(If I come to Jesus), "주와 같이 길 가는 것"(2절 어린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이 우선 선택됐다.
그 밖에 "나 주의 믿음 갖고"도 평소라면 오후에나 불렀을 곡이지만 이번에는 오전에 선택했다.

오후에는 "어린아이처럼 오라 하시네"(다시 살리라)를 골랐으며,
회중 찬송보다는 특송용에 더 가깝다만 실험적으로 "나는 비록 미약하나"(I may not be all that you are)를 불러 봤다.

한국어 가사는 "주는 나의 목자이시니" 이러면서 굉장히 점잖게 번역됐지만, 원래의 영어 가사는 "내가 겉으로는 보잘것없어도 난 주님의 자녀이다. 날 놀리거나 무시하거나 뒷담화 하지 마셈~"(Don't tease me or mistreat me. Don't abuse me. You can even talk about me but I'm still His child)..
보기보다 굉장히 애같은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어린이 찬송 "나는 진군하는 보병이나 ... 나는 주님의 군병"와 비슷한 구성이긴 한데, 레알 어린이 찬송을 고르는 것과는 양상이 약간 다르다. 진짜 어린이용 동화냐 성인용 동화냐의 차이와 비슷하다.
성경에서 어린아이 심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한 건 복음서의 묘사가 아주 유명하고, (마 18:3-5 등)
부정적으로 말한 것은 사랑장이 잘 알려져 있다. (고전 13:11) 심지어 사탄의 인형 3 영화에서도 군사학교에 입학한 앤디한테 교장이 저 구절을 인용했을 정도이다.

그 밖에도..

  • 새해에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 석가탄신일과 겹쳤던 주일엔 "나는 인생의 산과 들 방황하며"
  • 야유회? 수련회?를 가서는 좀 더 자연을 묘사하고 있는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 교회 대청소를 앞두고는 가사에 "힘써 일하세"가 있는 열심과 헌신 카테고리의 곡
  • 간증 집회 전에는 "지금까지 지내 온 것", "날 구원하신 것 감사"..
  • 세월호 참사 때는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작사자도 가족을 선박 사고로 잃고서 이 가사를 지었음)
  • 현충일, 광복절, 6·25 같은 이벤트와 가까울 때는 "어느 민족 누구게나"

요런 매뉴얼이 구축되어 있다.
본인은 전문적인 연주자나 작곡자가 아니지만, 이미 있는 곡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골라 내는 것만으로도 맡은 직분에 대한 자긍심을 느낀다. 이런 고정된 이벤트 말고도 그 날 주보에 기재된 성경 암송 구절이나 읽어보세요 묵상 내용과 관계가 있는 곡을 발굴해 낸 적도 있었다.

2. 특송

교회 예배 때 온 회중이 즉석에서 제창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게 게임의 초당 수십 프레임 급 실시간 렌더링이라면,
한 곡을 집중적으로 연습해서 부르는 찬양대 '특송/합창'은 1프레임 당 긴 시간이 걸리는 영화 CG의 오프라인 렌더링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영역이 다르다.

특송을 부를 때는 회중 찬송 수준에서 실현되지 못하는 화음 성부, 돌림노래 같은 것을 모두 반영해서 더 공을 들여서 찬송을 부를 수 있다.
교회에 비치된 찬송가에는 없는 곡을 준비해서 부를 수도 있으며, 책에 있더라도 단선악보뿐이라면 중창/합창용 악보를 따로 구해서 부를 수도 있다.

즉, 특송은 '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음과 같이 특별한 실험을 시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특송곡은 다음 중 한 출처를 통해 결정된다.

  • 책에 없는 신곡 도입
  • 책에 있지만 불린 적 없는 신곡 개척
  • 책에 있는 친숙한 곡이지만 부르는 방식을 강화· 개량

전주· 간주까지 다 갖추고 있고 그냥 악보에 있는 대로만 부르면 되는 합창곡이 아니라 단순한 곡이라면 다음과 같은 강화· 개량을 한다.

  • 가사나 박자· 멜로디가 비슷한 관련곡들 메들리 편성
  • 간주 중에 가사와 관련된 성경 구절 낭송 삽입
  • 여건이 되면 피아노 외의 다른 보조 악기 동원 (플루트, 바이올린, 색소폰, 기타..)
  • 단선악보라면 악보를 읽어보고 자체적으로 화음 넣기

그리고 1년에 한 번 정도는 이런 것도 시도한다.

  • 전원 무악보 암송: 그 대신 이때는 다른 음악적인 난이도는 최대한 낮춘다.
  • 반주자도 같이: 반주자에게도 강단에 설 기회를 준다. 다른 임시 반주자를 섭외하거나 아예 무반주 아카펠라를 해서.

청년부 특송 지휘를 몇 년 해 보니 운영 원칙이랄까 매뉴얼이 얼추 이렇게 정리된다.
난 교회 찬양대라고 해서 틀이 박힌 듯이 몽환적인 반주에다 변성기 안 지난 미소년들이 하얀 까운 걸치고 노래 부르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냥 평범한 방법론으로 어떤 찬송가 곡의 가사와 멜로디를 최대한 뽕을 뽑는 특송을 편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한편으로, 듣는 성도들에게는 관련 성경 말씀과 교리를 기억에 각인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훌륭한 특송이라고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처럼 노래를 지어서 교리를 가르치는 건 아주 좋은 방법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02 08:32 2019/06/0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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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년 4월: 찬송가+CCM 메들리
https://www.youtube.com/watch?v=mvGJ4kNv99M

본인은 다니는 교회에서 수 년 동안 국내외의 여러 찬양곡들을 개척하고 메들리를 짜기도 했지만, 이때 했던 특송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본인에게 인상깊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 특별하게 확 꽂히는 곡이나 컨셉, 단서가 없이 완전 백지 자유 주제 상태였다. 덕분에 찬송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잡듯이 뒤지면서 선곡과 편성에만 2시간 가까이 걸렸다.
  • 같은 E장조 4/4박자짜리 세 곡이 최종적으로 뽑혔는데.. 전부 그 당시엔 내가 모르던 신곡이었다. 가사와 악보를 머릿속으로만 읽고 연결해 보면서 "음 이 순서대로 부르면 좋겠다"라고 계획을 수립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맑고 밝은 날 It’s a happy day
어린이 찬송 같기도 한 짤막하고 명랑 발랄한 곡을 도입부에 넣었다.

(2) 변찮는 주님의 귀한 약속 Sweet are the promises, kind is the word
박자가 흥겨운 곡 다음으로 본론은 화음이 아름다운 19세기 클래식 찬송가로 넣었다. (나머지 앞뒤 곡은 20세기 CCM임)
후렴의 "주님 가신 곳에~ 나도 따르겠네" 부분.. 난 이런 스타일의 합창에서 느껴지는 harmony를 짱 아주 좋아한다. 물론 교회 친구들이 잘 불러 줬다. 반주자도 마찬가지~!!

참고로 이 찬송은 <예수 나를 오라 하네>와 후렴 가사가 서로 아주 비슷하다. 똑같이 ‘나는 주님을 따르리’이다.

Where he leads I’ll follow, follow all the way (우리가 부른 곡)
Where he leads me I’ll follow, I’ll go with him all the way (예수 나를 오라 하네)


(3)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I love You, Lord; and I lift my voice
그 다음으로 워십송 스타일의 조용하고 우아한 곡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여기도 화음을 넣으면 더 멋있어졌겠지만 그러지는 않고 그 대신 조를 올려서 반복했다. 이렇게 해서 그럴싸한 메들리가 완성됐다.

2. 2017년 5월: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 찬송 메들리
https://www.youtube.com/watch?v=FtS15e9fsaI

(1)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원제는 <사랑의 송가>라고 하는데, Tina Benitez라고 인터넷에서 정체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여자 이름의 작곡자)
(2)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정 두영 1939-2005 작곡.)

둘은 고린도전서 13장 일명 사랑장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곡이며 꽤 유명하다. 두 곡은 제각기 가사에 포함시킨 구절도 있고 생략한 구절도 있다.
그리고 작곡자가 서로 완전히 다르나, 둘 다 3/4박자 D장조이며 박자와 분위기가 서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이 점을 착안하여 본인은 이 두 곡을 잘 취합하면 고린도전서 13장 전체를 꽤 그럴싸하게 음악으로 '스토리텔링'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건 답이 너무 뻔히 나와 있기 때문에.. 교회 음악 한다는 전세계의 날고 기는 다른 음악 전공자들도 분명히 이렇게 생각을 했으리라 여겨진다.)

먼저 사랑의 송가 1절로 시작한다. 1절 가사는 성경 본문에서 1~3절을 커버한다. 아무리 거창하고 대단한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사랑의 송가의 후렴인 "하나님 말씀 전한다 해도 그 무슨 소용이 있나,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는 이때 딱 한 번만 부르고 더 부르지 않는다.

그 뒤, 본론에 속하는 사랑의 속성에 대한 설명은 정 두영 곡이 더 자세히 잘 해 놨으니 그 곡으로 넘어간다.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까지 부른다. 성경 본문에서는 8절까지 나간다.

다음으로 성경 본문에는 "현재의 불완전과 미래의 완전"에 대해서 비유 설명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노래에서는 둘 다 빠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 간주를 하면서 간단히 9~10절을 나레이션 낭독을 했다. 곡이 바뀔 때 4마디 정도 짤막한 간주가 있는데, 간주 선율은 곡의 앞뒤 분위기를 생각해서 내가 대충 작곡해 넣었다.

간주가 끝난 뒤에는 사랑의 송가로 돌아가서 3절 앞부분을 부른다. 이게 12절에 해당하니까.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나 ... 우리도 주를 알리"
이거 부르고 나서는 아까 중단했던 정 두영 곡의 클라이막스로 '간주 없이' 자연스럽게 곧장 넘어가서 곡 전체를 마무리 짓는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 북괴와 관련된 진실, 대북관과 관련된 진실· 진리를 전할 때는 내 경험상 사랑이 담기기가 정말 불가능에 가깝게 무지무지무지무지 힘들긴 하다-_-;;. 다만,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랑 인간이 흔히 생각하는 사랑은 일치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무작정 젠틀하고 공손하고 댄디하고 부드럽고 유하기만 한 게 사랑은 아니다.

3. 2017년 12월: 성탄 찬송 메들리
https://www.youtube.com/watch?v=pbSMPEOlZHs

우리 교회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성육신과 탄생만 믿지, 12월 25일 성탄'절'을 믿지는 않는다.
그래서 교회 안에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것을 꾸미지 않으며, 사용하는 찬송가에도 '탄생' 카테고리의 곡은 기성 교회 찬송가들보다 매우 적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조차도 별 영양가나 교리 메시지가 없고 모호하다는 이유로 제외시켰을 정도이다.

그래도 나름 2017년은 청년부 특송을 하는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이기도 하니, 조심해서 탄생 관련 곡을 골라서 불렀다.
성경적인 내용이 전혀 없는 캐롤이야 당연히 제끼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joy to the world), God rest ye merry gentlemen(이건 한국어 가사가 기억 안 나네.. 기성 교회 찬송가에 있는데..), "그 맑고 환한 밤중에" 등 여러 곡들을 고려했는데, 최종적으로 뽑힌 건

(1) "천사들의 노래가"(Hark! the herald angels sing), 그 다음
(2) "참 반가운 성도여"(O come, all ye faithful)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가사에서 '베들레헴', '아기 예수' 이런 단어가 나오는 부분은 다 뺐다. 날짜와 장소는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의 탄생 사건과 "그분께 영광과 경배"에만 집중할 수 있게 가사를 편성했다.
'동정녀'도 '처녀'로 수정했다. 동정녀는 마리아가 평생 결혼 안 하고 살았다는 오해를 야기하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곡이 바뀌는 간주 중에는 눅 2:10, 14절 암송을 하는데, 중간에는 2:11-12 대신에 사 9:6을 집어넣었다. 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스러운 묘사 대신 "놀라우신 이, 강하신 하나님, 평화의 통치자"라는 더 뽀대 나는 타이틀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타이틀이 나올 때쯤에 간주 멜로디도 제일 역동적이고 세게 이어지도록 음표에다 악센트를 넣었다.

4. 2018년 2월: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https://www.youtube.com/watch?v=-low5ichQVc

이때는 청년부 특송 역사상 최초로.. 빈손 무악보를 시도했다.

무악보이니 선곡 원칙이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길고 화려한 신곡이라든가 복잡한 메들리 같은 건 싹 잊어버리고, 그 대신 우리에게 친숙한 곡, 멜로디에 반복 많고 가사도 외우기 쉬운 곡.. 그러면서도 달달 외울 가치가 있을 정도로 가사가 아름답고 영양가도 충분하고, 심지어 박해나 순교를 앞두고도 떠오를 만한..! 그런 검증된 명곡을 찾게 됐다.

성경에서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채찍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찬송을 크게 불렀다고 나온다. 발에 차꼬가 채였고, 전깃불도 없던 시절에 한밤중이었는데.. 여러 정황상 이들이 우리 찬송가 책 펴서 "100장 뭐뭐뭐 부릅시다" 이랬을 가능성은 없다. 당연히 외우고 있던 찬송을 불렀지.

그래서 단순히 구원, 찬양 이런 쪽보다는 신뢰, 인도, 동행, 사랑... 이런 카테고리를 눈여겨보게 되었고..
두세 곡이 경합을 벌인 끝에 최종적으로는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이 뽑혔다. 안 그래도 이 찬양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공감대가 금세 형성됐다. 여러 가지로 따져 봤을 때 암송용으로 정말 최적의 찬송가임이 틀림없었다.

가사를 외우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2절 부르다가 3절 가사가 튀어나오는 식으로 꼬이지 않고 자신 있게 순서를 유지하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게다가 주선율 말고 화음 파트 멜로디를 외우는 것도 꽤 어려웠다. 그래서 나만 혼자 테너를 부르고 다른 분들은 다 멜로디로 갔다.

가사 암송을 위해서 다른 음악적인 기교들을 극도로 최소화하게 됐지만.. 이것만 있으면 단조로우니 간주 중에 성경 구절 암송을 넣었다.
이 찬송의 가사는 예수님에 대해서 "골짜기(산 밑)의 백합"(아 2:1)과 "빛나는 새벽별"(계 22:16)이라는 칭호를 인용했다. 아 2:1만 인용했으면 "샤론의 장미"가 뒤따르고 계 22:16만 인용하면 "다윗의 뿌리"가 나왔을 텐데 두 구절을 부분적으로 인용했다.
그래서 간주 중엔 그 해당 구절 둘을 완전히 읽을까 생각했으나.. 아가서 5장으로 계획을 바꿨다.

후렴 끝부분의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가 영어 가사로는 "he is the fairest of ten thousand to my soul"이어서 아 5:10에서 모티브를 뒀기 때문이다(1만 명 중에서도 최고). 우리말로는 음절수를 맞출 수가 없어서 그냥 '짱'이라는 뜻으로 의역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 구절로는 "그분은 모든 것이 사랑스럽도다"라고 고백하는 16절을 골랐다.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특송 중에 다른 책도 아니고 아가서를 인용하여 암송하는 기회가 이렇게 찾아왔다.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암송 첫 주자로는 목소리가 예쁜 자매님을 지정했다.

주중에 우리 청년부 내부에서는.. '친히'는 보통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한테 쓰는 말이 아니냐, "예수님이 친히 인간을 찾아오신" 거지 인간이 감히 '친히' 주님을 뵐 수 있느냐~ 높임법이 어긋난 게 아니냐는 진지한 이의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국립국어원 말뭉치 용례까지 뒤져 본 뒤에야 꼭 높은 사람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고 '친하게, 몸소, 손수, 직접'이라는 뜻으로 쓰기에 무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런 안목과 의견도 각 개인이 가사를 글자 단위로 일일이 다 외우고 곱씹으니까 생길 수 있었을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빈손으로 강단에 서다 보니.. 사람들이 손을 어떤 자세로 하고 있을지, 시선을 어디에 둘지 꽤 어색해했다. 악보를 꽉 파지(!)한 채 얼굴을 악보 속에 파묻을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악보가 없이 열린 모습이 다시 봐도 너무 좋다. 곡의 난이도를 낮추더라도 진작에 이런 시도를 해 봤어야 했다.

한 주 동안 좋은 찬송의 가사를 암기해서 한 치의 실수 없이 불러 준 친구들, 그리고 코드(화음) 취향이 나랑 꼭 맞게 반주를 너무 잘 해 준 반주자 덕분에 이런 특송이 불러질 수 있었다.

5. 2018년 6월: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새로 추가)
https://www.youtube.com/watch?v=mW86lxk5yBg

4개월 전에는 악보를 없애는 실험을 해 봤고.. (암송) 이번에는 반주를 없애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
다른 장르도 아니고 교회 음악인데 아카펠라를 한 번쯤은 도전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출처는 옹기장이 아카펠라 찬송가인데..
곡들이 화음뿐만 아니라 박자도 기교가 너무 많이 들어가게 바뀌어서 어려운 건 둘째치고라도 오전 예배 특송에 적합하지 않았다.

저 곡은 그나마 굉장히 점잖고 얌전한 가운데 적당히 분위기가 미려하고, 2절에 무려 팅팅팅도 들어있고.. 아카펠라 입문용으로 아주 적합했다.
"점8분 + 32분음표 둘"을 몽땅 "8분 + 16분음표 둘"로 바꾸는 정도의 중성화를 치렀는데..
이 정도로 난이도를 낮추고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렵다는 게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난 음악에서 박자보다 화음을 더 좋아한다. 단선율이 흑백 영상이라면 합창은 R, G, B축이 합성된 컬러 영상 정도의 공감각적 심상이 느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8/04/22 08:38 2018/04/2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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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디가 홀수 개만 있는 3박자 계열 곡

대표적인 예가 무엇이냐 하면 <예수 따라가며>(Trust and obey)에서 "..." 부분,
그리고 <구주를 생각만 해도>(Jesus, the very thought of thee)에서 "..." 부분,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에서 "..." 부분이다. 생각보다 예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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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적절한 용어를 몰라서 묶음 단위를 편의상 그냥 '단'이라고만 부르겠다.
대부분의 찬송가들은 못갖춘마디를 감안하더라도 한 절이 보통 기승전결 4개의 단으로 구성되고 각 단은 4개의 마디로 이뤄져서 총 16마디로 돼 있다.

그러나 위의 곡들은 무슨 이유인지 둘째 단은 마디가 4개가 아니라 3개만 있다.
그래서 마지막 마디를 한 마디만 부르고 곧장 다음 단으로 넘어가는 게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하고 어색하다. 반주자도, 찬양 인도자도, 회중들도 여기서는 좀 멈칫 한다. 마디를 하나 더 추가하고 싶어진다.
실제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경우, 21세기 새찬송가에서는 마디를 하나 더 추가해 버리기도 했다. 찬송가 편찬자들이 보기에도 홀수 마디는 너무 어색했는가 보다. 아래 두 악보를 대조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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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곡의 작곡자는 무엇을 의도하고 둘째 단에는 마디를 홀수 개만 넣었는지 모르겠다.
이건 6박자 계열도 아니고(6/4 또는 6/8) 엄연히 3박자인데 굳이 마디 수를 반드시 짝수 개로 맞춰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반론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홀수 마디는 영 아닌 것 같다.

2. 못갖춘마디의 박자 구획

<날 위하여 십자가의>(How can I keep from singing)는 보다시피 '어찌 찬양 안 할까'라고 번역된 맨 마지막 단 가사가 원제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찬송가들이 고유 제목 대신, 닥치고 가사 첫 줄을 곧 곡을 식별하는 제목으로 취급하는 게 관행이 돼 있다. 어차피 대부분의 찬송가들이 외국곡 번역이다 보니 원제목이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나, 국내 창작곡에 대해서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당신을 향한 노래>를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으로 바꿔서 적는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뭐, 제목은 그렇고.. 내가 이 곡에 굉장히 불만인 것은, 박자가 굉장히 이상해지는 형태로 못갖춘마디의 구분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찬송가 책들을 보면 얘는 다음 그림에서 A 형태로 기보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실제로 부르면서 강약약 박자를 느끼는 건 B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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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이 곡은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 자매 한 자리에>의 전반부 3/2박자 부분하고 리듬과 박자가 완전히 동일하다는 뜻이다. 못갖춘마디를 저렇게 적어야 할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는다.
억지로 끼워 맞춰 보면 악보대로 박자를 맞추는 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으며, 한국어 번역 기준으로 기능어가 아닌 내용어에 강박이 더 걸리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멜로디의 흐름은 그 박자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애국가의 앞부분처럼 박자가 어색하고 연상거부가 심하다.

저렇게 우리나라 애국가 스타일로 박자가 아주 이상한 예가 하나 더 떠오른다. 바로 <예수가 거느리시니>(He leadeth me; O blessed thought)의 후렴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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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약박이고 '날 항상 돌'이 '강 약 중강 약'이 들어가야 하지만, 실제 멜로디는 홀수 박자가 아니라 짝수 박자가 음높이가 높고 영락없이 강박이다. 그래서 쓰기는 A처럼 써졌지만 부르기는 B처럼 불러지며, 이 때문에 뒷부분에 박자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게 된다. 교회 다니는 분이라면 정말 그런지 한번 직접 불러 보시라.

찬송가도 가끔은 이렇게 비판적인 안목으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굳이 찬송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외국곡의 가사를 번역할 때는 가능한 한 내용어는 강박에, 기능어는 약박에 배치해서 부르기 자연스럽고 쉽게 했으면 좋겠다.

* 잡설

1.
악보에서 스타카토 같은 꾸밈음 기호는 C/C++로 치면 매크로와 같은 구석이 있다고 본인은 옛날에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음악 시간에 '적기' / '내기'라고 기보법을 배우는 건 영락없이
#define STACCATO(pitch, interval)  play(pitch, interval/2); pause(interval/2) 이런 꼴이니까 말이다.
그럼 페르마타(늘임표)는 C/C++로 치면 register나 inline와 비슷해 보인다. 늘이는 것이 권장 사항이지만 그래도 연주자의 재량껏 무시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2.
군대에서 유격 훈련을 정신없이 받다 보면 <어머니의 마음>을 부르다가 후렴은 <스승의 은혜>로 넘어가기 쉽다고 한다. 둘은 동일한 3/4박자에 조와 분위기도 비슷한 편이다.
그런 것처럼 찬송가에도 분위기가 비슷하고 메들리로 엮기 좋은 pair가 몇 쌍 있다.

  • 내 죄 사함 받고서 →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구원 + 성령 동행. 둘 다 경쾌하고 명랑하다.
  •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위로와 평안, 간구 쪽으로 좋은 조합이다.
  •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성경 카테고리. 내가 교회 청년부 찬양 때 실제로 메들리를 시도하기도 했다. 작사· 작곡자가 동일하고 굉장히 좋은 조합임. (단, 전자곡은 극초반만 빼면 나머지 가사는 성경이라기보다는 구원 카테고리에 더 가까운 내용이다.)
  • 내 주의 보혈은 → 이 세상 험하고: 서로 다른 작곡자의 곡이지만 리듬과 멜로디가 아주 비슷하며, 구원에서 신뢰와 확신 카테고리로 주제가 잘 넘어간다.

3.
끝으로, 이건 멜로디가 아닌 가사 얘기이며, 번역도 아니라 영어 원가사 얘기이다.
찬송가 가사 중에는 영어로는 "예수님은 내 꺼"라는 표현이 있다. 그것도 옛날 클래식 찬송가에 말이다.

  • My Jesus, I love Thee, I know Thou art mine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 Blessed assurance, Jesus is mine!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높임법이 존재하고 소유에 대한 개념이 보수적인 한국 및 한국어 문화로는 직역하기가 영 곤란한 대목이다. 사실, 성경적인 용례를 봐도 A is mine은 하나님이 "모든 혼은 내 것이다"(겔 18:4), "금과 은도 내 것이다"(학 2:8), "보복은 내 것이다"(롬 12:19), "첫 열매는 모두 내 것이다"(출 13:2)처럼 '갑'의 소유를 명시하는 게 전부이지.. 을이 갑을 보고 내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권에서 찬송가 가사를 Jesus is mine이라고 가끔 쓴 것은 다른 서정적인 의미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my Lord, my God, my savior, 심지어 my love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본인으로 하여금 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긴, 아 6:3가 있으니(나는 내 애인 것이고, 내 애인도 내 것이다) 이런 용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5/11/25 08:36 2015/11/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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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청년부 찬양

본인이 다니는 진리 침례 교회에서는 오전 예배 때 평소엔 중· 장년층 위주로 구성된 찬양대가 설교 직전에 특별 찬양을 한다. 그러나 매월 넷째 주에는 청년부가 특별 찬양을 한다.

수 년 동안 청년부는 중· 장년부 찬양대 중 하나를 지휘하는 음대 유학파 출신의 전문가 자매님에게서 지휘를 덤으로 받았다. 그러던 것이 약 2~3년쯤 전부터 선곡을 청년부에서 독자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지금으로부터 1년쯤 전부터는 완전히 독립(?)을 했다. 외부 인사의 개입 없이 청년부 지체들의 재량만으로 완전히 독자적으로 선곡과 연습, 지휘까지 해서 매달 강단에 서게 되었다. 원래 계시던 지휘자분의 일신상의 이유가 있었고, 또 청년 중에도 작곡까지 할 줄 아는 걸출한 다른 음악 전문가가 등장한 덕분이었다.

독립을 앞두고 이미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를 했다. 피아노와 플룻에 능숙하고 영어권 교회에서 사용하는 old-style 찬송가를 많이 아는 자매가 있어서 새로운 곡을 가사를 같이 번역해서 불러 보기도 했다. 한편, 작곡가인 그 형제는 우리 교회의 표어인 고후 13:8, 그리고 KJV 성경 공부 모토인 딤후 2:15 구절에다가 곡을 붙여 부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래서 완전히 독립을 한 뒤부터는 본인과 그 작곡가 형제가 격월 교대로 친구들을 모아 놓고 선곡· 지휘를 하게 되었다. 그 형제도 매달 꼬박꼬박 청년부 찬양을 책임지는 건 부담스러워했고 격월 정도 간격이면 괜찮겠다고 동의를 했다. 사실, 청년부에서 피아노를 잘 치고 음악 쪽으로 재능이 있는 친구들은 중· 장년부 찬양 연습을 할 때 반주자로 동원되기도 하고 주일학교 어린이 찬양을 지휘하기도 한다. 즉, 청년부 자체의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위 아래 연령의 다른 부서로 지원 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직분에 대한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본인은 음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기악과 성악 어느 것도 전문적으로 깊게 배운 경험이 없다. 피아노는 다른 프로페셔널한 반주자들이 모두 부재 상태일 때 최하 우선순위로나 가끔 투입되는 "예비/스페어" 반주자 수준밖에 안 된다. 노래도 오로지 악보에 있는 대로 기계적으로 크고 정확하게 부를 줄만 알지 다른 기교나 감정 이입 테크닉, 성대 관리 같은 건 모른다. (그런데 내 경험상, 회중 찬양 인도는 그 정도만 돼도 할 만하긴 했다.. 지구력만 뛰어나면 되지 너무 잘 부를 필요는 없으니까. ㅎㅎ)

지난 1년 동안 본인 차례 때 우리 청년부가 부른 찬양은 다음과 같다.

1. 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라

2014년 8월, 자체적으로 찬양을 준비한 첫 시간이었다. 이 때는 딴생각 할 것 없이 그냥 주찬양 6집에 있는 송 명희 작사· 최 덕신 작곡 CCM을 4성부 원곡 악보로 구해서 하나도 안 바꾸고 그대로 불렀다. 가사가 좋고(사랑과 고백 카테고리) 곡이 그리 어렵지 않고, 길이도 2분 50초 남짓으로 짧아서 모든 면에서 적절했다. 간주 중에는 악보에 있는 대로 플룻 연주를 넣었다. 첫 시도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2. CCM 메들리 (나의 사랑 나의 생명 + 우리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 보라 그 날이)

짤막한 노래들을 여럿 묶어서 멀티테마 메들리를 시도했다. 앞으로 또 다른 창의적인 메들리를 편성해서 부를 일이 있으면 좋겠다.
<나의 사랑 나의 생명>은 위에 여자 파트와 밑에 남자 파트가 돌림노래 하듯이 달라지는 노래이고, 이런 스타일의 곡이 <보라 그 날이>라고 하나 더 있음을 주목했다. 전자는 사랑과 고백이고 후자는 재림 내용이니, 중간에는 경쾌하고 뭔가 청년스러운 젊음과 열정, 헌신이 담긴 가사의 곡을 넣었다. 1곡과 2곡 사이에는 전주가 있지만, 2곡과 3곡은 전주 없이 곧바로 이어지게 했다. 그리고 각 곡의 권장 템포까지 미리 정해서 반주자에게 알려 줬다.

3. 주 임재 안에 늘 살아갈 동안 (Lord Jesus, I long in thy presence to live)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선곡했다. 첫째, 멜로디가 Away in a manger(그 어린 주 예수)라고 성탄 찬송곡과 동일하기 때문에 12월 말이던 당시 분위기와 "기분상" 잘 어울린다.
둘째, 곡과는 달리 가사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주님의 임재를 회고하고 앞으로도 보호를 간구하는 내용으로, 이 역시 연말에 부르기에 적절하다.

성탄 찬송 Away in a manger는 같은 가사에 비슷한 분위기의 곡이 두 개가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 역시 곡의 시작, 중간, 끝에 두 곡을 적절히 섞어서 변화를 넣었으며, 중간에 조가 반음 올라가는 것도 악보를 일일이 따로 만들어서 시도해 봤다. 이렇게 비슷한 스타일로 편곡을 한 외국의 다른 성탄 찬양 음반에서 컨셉을 착안했다.

4. 말씀 찬송 메들리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 주 말씀 동산 안에는)

우리 교회가 특별히 킹 제임스 성경을 쓰는 교회이다 보니 특별히 이 분야를 공략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과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은 작사· 작곡자가 동일하고 조와 박자도 비슷하니 당연히 한데 엮었다. 다만, 전자는 1절 앞부분만 말씀과 비슷하고 나머지는 그냥 구원 카테고리에 가까운 가사이므로 전자를 앞에 넣고 후자가 뒤를 잇게 했다.

그 다음으로 무엇으로 뒤를 이을까 고민하다가, 침례교 찬송가를 참고해서 <주 말씀 동산 안에는>이라는 신곡을 넣었다.
중간 간주로 <신구약 성경 목록가>를 넣은 뒤 다음으로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를 부르는 것도 생각했으나, 여건상 실행되지 않았다.

5. CCM 메들리 (자기를 위하여 +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복음서에 기록돼 있는 예수님 말씀, 특별히 역설의 진리를 담고 있는 말씀이 컨셉이었다. 찬양이라기보다는 영적 노래에 가깝고 찬송가가 아닌 CCM 스타일.
그래서 이번 메들리에 동원된 두 곡은 음악 구조가 아니라 가사의 유사성 때문에 선택됐다. 또한, 전반부는 "자기를 위해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요런 진지한 내용으로 시작해서 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왕국을 먼저 구하라"뿐만 아니라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는 균형을 추구하기도 했다.

1곡은 주찬양 6집 앨범의 곡이다. 다음 2곡은 Karen Lafferty의 유명한 돌림노래이니 우리 역시 돌림노래 형태로 명랑하게 잘 불렀다. 단, 킹 제임스 성경에 따르면 마 6:33을 인용한 부분에서 he를 God로 바꿔 줘야 하는데 한국어로는 음절수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6. 그 참혹한 십자가에

죄사함, 보혈, 십자가가 나오는 아주 베이직하고 클래식한 구원 찬송. 멜로디는 A A B A B A 패턴으로 정~말 단순하기 그지없고 쉽다. 그러나 가사는 그 이상으로 굉장한 고퀄이고 정확한 교리가 담겨 있고 애절하고 감동적이다.

가사를 살펴보면 누가복음을 인용하여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가 2절에서 나오고, 보통 찬송가 책들은 요일 1:7을 참고 구절로 써 놓곤 했다. 그러나 나는 요 9:35-38의 맹인 이야기를 이 찬송과 특별히 연결하고 싶었다. 후렴에 "나 믿노라"가 나오니까. 그래서 간주 중에 이 구절을 형제 두 명이서 교독시켰다. "그가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그분께 경배하니라."

아울러, 곡의 시작 부분('그 참혹한 십자가에')이 <찬양하라 내 영혼아>에서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부분과 멜로디· 박자가 비슷하기 때문에 본곡을 시작하기 전에 <찬양하라 내 영혼아>를 끼워 넣을까 생각도 했다.

7. 왕이 오신다

가장 최근에 불렀던 곡으로, 이번에는 재림· 소망 카테고리를 다뤘다.
이건 국내의 킹 제임스 독립 침례교회 진영에 있는 임 동선 목사님이 작사· 작곡한 창작곡이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씩씩한 분위기의 곡에 세 절의 가사가 지상· 공중 재림을 차례로 다루고, 다음 결론으로 세상의 끝이 오기 전까지 혼을 구원하는 일에 애쓰라는 권면으로 끝나서 좋았다. 가사가 다루는 타이밍이 뒤로 갈수록 미래에서 현재로 가까워지는 셈이다. 아울러, 후렴 가사가 계 22:20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라는 약속으로 끝나는 것은 덤.

휴가를 떠나고 없는 인원이 많아서 참여자가 평소보다 적고 연습 시간도 부족했던지라 딱히 기교나 변화를 많이 넣지는 못했지만, 녹화된 걸 들어 보니 발성과 화음이 잘 배분되었고 들을 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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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또는 다다음 달에는 어떤 곡을 부르게 될지는 현재로서는 나도 전혀 모른다. 리서치를 해 봐야 안다.
스타일은 클래식 찬송가, 국내외 CCM, 테마별 메들리 등이고,
소재는 찬양, 예수님, 구원, 십자가, 위로와 평안, 재림과 소망 등~~ 최대한 다양한 곡을 골고루 선곡하고 있다.
메들리도 가사를 중심으로 엮을 수 있고 곡의 스타일을 중심으로 엮을 수 있다.

내가 저런 곡들을 멋들어지게 손수 연주하거나 심지어 작곡을 하지는 못한다. 작곡? 정확하게는.. 하라면 한다. 단지 아무 감흥이 없이 박자와 화음만 맞는 멜로디 나열만 생성될 뿐 가성비가 전혀 수지맞지 않으니 안 하는 것이지. =_=;;

그러나 지난 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회중 찬송 선곡과 인도를 하느라 찬송가 책 전체를 이 잡듯이 뒤지고 연구하다 보니.. 많은 기존 찬양곡들이 연관 검색이 되는 게 좋다. 성경을 성경으로 이것저것 대조하는 것만큼이나 찬양곡들도 이것저것 대조하고 분류하고 종합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게다가 우리 교회에서 쓰는 찬송가 책엔 내가 아는 곡뿐만이 아니라 아직 미개척 상태인 곡들도 차고 넘친다. 현재로서는 가까운 미래에 선곡 아이디어가 고갈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정확하게 언제 구원받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모태신앙이다. 하지만 지난 수 년 동안 내 마음에 맞는 애창곡은 수 년째 구원 카테고리에서 배출되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 중엔 위로와 평안, 신뢰와 확신 카테고리를 가장 좋아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난 내 개인 취향과는 별개로, 공예배 때 다같이 부를 찬양곡은 앞서 얘기했듯이 최대한 골고루 균형 있게 선곡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그 작곡가 형제는 자기 차례일 때는 역시나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또 다른 스타일로 선곡을 하곤 했다. 그러니 음악의 세계는 참으로 심오하고 무궁무진함을 느꼈다. 자유도가 너무 높아서 컴퓨터가 사람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 게임인 바둑처럼.

음악이 인간의 심리와 정서에 많은 영향을 주는 물건이다. 찬양을 꼭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하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주로 쓰이는 매체가 음악인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좋은 음악, 영양가 있는 노래만 듣거나 부르고 지내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본인은 이것을 이용해 감히 하나님을 찬양할 특권을 받고 그럴 자유가 있는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분야는 몰라도 찬양 내지 영적 노래는 그야말로 내 음악 감각과 재능, 성량을 총동원해서 최고의 예우를 해서 부른다. 식사 전에 감사 기도를 하는 것만큼이나 이런 찬양도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가사 내용을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삶의 간증을 통해 이런 가사를 직접 쓰고 멜로디를 무에서 창조해 낸 사람도 있다. 그런데 하물며 줘도 못 먹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아무쪼록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찬양, 건전한 영적 노래들이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많이 만들어지고 불리고 노하우가 전수되었으면 좋겠다. 저 북쪽 동네에 있는 지하 교회 성도들은 마음 놓고 찬송 한 곡 좀 불러 보는 게 소원이라고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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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5/11/08 08:33 2015/11/0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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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ful Grace of Jesus에 이어 본인이 최근에 팍 꽂혔던 명찬양이 있어 내 블로그에다가도 소개를 좀 하겠다.
참고로 CCM이 전혀 아니다. 가사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300년 전에 찰스 웨슬리가 썼고, 곡은 거의 200년 전에 토머스 캠벨이 만든 완전 고전이다.
유튜브 링크: And Can It Be That I Should Gain

클래식답게 리듬도 아주 규칙적이고 쉬운 찬송가 스타일인데 딱히 국내에 많이 소개된 것 같지 않다.
멜로디가 Wonderful Grace of Jesus만치 그저 화사 발랄한 느낌은 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려하고 웅장하고 감동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사가 정말 고퀄 일품이다. 너무 '찐하다'. 직접 보시라.

1.
And can it be that I should gain
An int’rest in the Savior’s blood?
Died He for me, who caused His pain?
For me, who Him to death pursued?
Amazing love! how can it be
That Thou, my God, shouldst die for me?

2.
’Tis mystery all! The Immortal dies!
Who can explore His strange design?
In vain the firstborn seraph tries
To sound the depths of love Divine!
’Tis mercy all! let earth adore,
Let angel minds inquire no more.

3.
He left His Father’s throne above,
So free, so infinite His grace;
Emptied Himself of all but love,
And bled for Adam’s helpless race:
’Tis mercy all, immense and free;
For, O my God, it found out me.

4.
Long my imprisoned spirit lay
Fast bound in sin and nature’s night;
Thine eye diffused a quickening ray,
I woke, the dungeon flamed with light;
My chains fell off, my heart was free,
I rose, went forth, and followed Thee.

5.
No condemnation now I dread;
Jesus, and all in Him, is mine!
Alive in Him, my living Head,
And clothed in righteousness Divine,
Bold I approach the eternal throne,
And claim the crown, through Christ my own.

후렴
Amazing love! how can it be
That Thou, my God, shouldst die for me?

어찌하여 나 같은 자가 감히 내 구주의 보혈의 수혜 대상이 될 수 있었는가!
나는 민폐만 끼쳤는데 그분은 나를 위해 죽어 주셨다.
죽으실 수 없는 분이 죽다니, 세상에 이런 신비· 미스터리가 따로 없다.
그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섭리를 누가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천사들도 하나님의 지혜의 깊이를 측량하려 했지만 다 실패로 끝났다.
후렴: 놀랍기 그지없는 사랑이로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실 수 있는가?

대충 이런 내용.
영어에서 it is는 흔히 it's로 줄여 쓰는데, 시나 만화 대사 같은 데서는 이따금씩 2음절이 아닌 1음절의 모음을 생략하여 'tis라고 줄이기도 한다. 우리말로 비유하자면 '오타쿠'를 오덕이라고 줄이느냐 덕후라고 줄이느냐의 차이와 같다.

감상평을 잠시 얘기하자면, 1절 처음에는 I should gain이라고 했다가 후렴에서는 thou, my God, shouldst라고 should가 굴절되는 차이가 발생한다. 가사가 맨 처음부터 And로 시작하는 것도 특이점.

4절은 죄에서의 자유를 묘사하면서 My chains fell off가 나오는데, 이것은 감옥에 갇혔던 베드로의 사슬이 풀리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행 12:7). 그리고 2절의 sound는 '소리'나 '건전한'이라는 뜻이 아니라 '깊이를 측량하다'라는 뜻으로, 성경에서 사도행전에서만 쓰인 용법이다(행 27:28). 따라서 이 찬양의 가사는 전반적으로 사도행전스러운 느낌을 준다.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가사가 무려 5절까지 있는 관계로 긴 편이다. 악보에 따라서는 천사가 어떻고 스랍이 어떻고 하는 너무 형이상학적인 2절을 주로 생략하고, 때로는 5절까지 생략하기도 한다. ㅎㅎ

우리 교회에서 지난 8월에 청년부 찬양으로 이 곡을 선정해서 불렀다. 가사는 물론 원판보다 깊이가 훨~씬 덜한 한국어 번역으로..
심지어는 나조차도 한 주간은 Looking for You마저도 제치고 이것만 들을 정도였다.
이런 찬양을 놔 두고 철도 음악을 들을 수는 없어서였다.

작사자와 작곡자는 이걸 한번 부르면서 테스트하고 나서는 “오~ 주여, 우리가 정녕 이런 찬양을 만들었단 말입니까? ㅠㅠㅠㅠ” 하면서 얼싸안고 꺼이꺼이 했을 법도 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3/10/11 08:26 2013/10/1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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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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