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下

첫째, 하나님은 죄 자체에 대해서는 절대 자비심이 없다. 지옥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국민 정서가 좀 이상하고 사법 체계도 그런 관행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나쁜짓을 저질러도 가해자 역시 죽었다거나, 술 취해서 실수한 것이라거나, 우울증 때문이라거나,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면 굉장히 동정· 미화와 정상 참작을 잘 한다. 싸움을 중재하는데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며 시빗거리가 정당한 것인지를 보는 게 아니라 누구 처지가 더 딱한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누가 더 많이 얻어맞고 다쳤는지를 더 감안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그냥 눈에 보이는 결과로, 객관적인 증거 확보가 용이한 쪽으로만. -_-)

하나님은 이런 사고방식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지옥엔 히틀러, 유 영철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너무 착해서 구원도 못 받은 사람도 많고, 비참하게 살다 불쌍하게 죽은 사람도 엄청 많이 가 있다! 이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죄는 철저히 미워하고 회개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로 인해 민망해하고 가슴 아파하고 죄의 결과를 수습하고 그 대가를 기꺼이 치러야 한다. 죄를 무슨 치유 받아야 할 질병인 것처럼 여기고 동정하는 것, 죄 지어서 당연하게 받은 벌을 무슨 의인이 받는 시련과 영적 전쟁처럼 미화하는 것, 그 사람도 잘못된 사회 시스템의 피해자일 뿐이라고 감싸는 것...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복음에 대해 아주 잘못된 인식을 심어 놓는다. 이런 사고방식을 종교의 탈을 쓰고 부추기는 위선자들에게 절대 속지 말아야 한다. 용공 사상만 불온 사상이 아니다.

둘째, 하나님은 진심어린 회개에는 무한 관대하다.

제아무리 인간의 죄가 무겁고 심각하다 한들 하나님의 사고방식에는 명예 살인이란 건 없다. 자해나 자결로 명예를 회복하는 행위를 결코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것이 일본과 서양 문화권 사이에 죽음에 대한 인식을 서로 극과 극으로 갈라 놓기도 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 때문에 진짜로 죽어야 할 때에도 동물을 대신 죽게 하셨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다! 하나님의 보혈이 대가로 치러졌는데 그 무슨 죄인들 회개하면 사해지지 않겠으며, 과거에 어떤 나쁜짓을 한 사람이라도 자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겠는가? 죄에 대한 찔림부터 있은 후에 그 상처를 아물게 해 줄 복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법칙이다. 예수님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성도를 결코 거절하지 않으신다. "넌 그리스도인이 될 자격도 없다. 너처럼 우리 교회를 배반하고 내 명예에 먹칠을 한 녀석은, 부끄러운 줄 알면 나가서 곱게 할복해라" 그러시지 않는다!

셋째, 박해 상황만 아니라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간과의 관계와 대체로 모순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양심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양심도 믿음도 필요하지 않은 '시스템'이라는 것을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발달시키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엔 별 관심이 없다. 크리스천은 불신자가 언뜻 보기에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을 믿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 말도 안 되고 보편적인 이성과 양심에 위배되는 사항을 믿는 게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의 모습은 불신자에게 어떤 형태로 비쳐져야겠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는 보이는 사람에게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는 게 당연하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그래서 성경엔 굳이 야고보서 말씀을 차치하고라도 요 13:35, 요일 4:11-12 같은 준엄한 구절이 있다.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기 전에 사람하고부터 먼저 화해하라고 말한다(마 5:23). 하나님 따로 사람 따로가 절대 아니다. 대인 관계와 대신(對神) 관계는 별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는 하나님께 고백하더라도, 죄의 결과로 인해 야기된 잘못과 허물은 사람 간에 서로 고백하라고 성경이 명령한 것이다. (약 5:16)

- 하나님께 자백(소스 코드 차원에서): 돈을 사랑했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사람으로부터의 칭찬을 구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을 어겼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죄는 결국, 선하신 분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고 그분 말씀을 믿지 않은 잘못된 마음 상태에서 비롯됐다 등등..

- 사람에게 자백(실행 결과 차원에서): 오늘도 내 성질대로 욱하고 말았는데 이건 내 잘못이다. 미안하다, 내가 좀더 당신 입장에서 생각을 못 했다, 이 사고는 내가 잘못된 지시를 내려서 일어난 것이다, 내가 뭘 제대로 안 해서 그렇다, 내가 몰래 슬쩍 했다 등등...

명확하지 않은가? 그 후 회개의 열매는 당연히 행동으로 나타난다. 마음을 완전 정반대로 돌이키고, 과거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수습하는 것이다. 성령님이 임재하고 죄에 대해 극도로 민감해진 사람이라면, 저렇게 안 하는 게 비정상이다.

남이 받아들이든 말든 내가 사과해야 하는 일이면 사과하고, 처벌을 감수하고, 필요하다면 물질적인 배상도 하고... 영적인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불신자들이 “그럼 평생 나쁜 짓 해 놓고서 주둥이로 예수 믿고 회개만 달랑 하면 천당 가냐?” 뭐 이런 식의 비아냥거림이 나올 일이 없게 하나님은 다 배려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불신자에게라도 그런 식의 실족거리를 만들지는 않는다.

죄를 마음껏 지을 수 있던 상황에서는 온갖 나쁜 짓 다 하다가, 죄가 탄로나고 경찰에 검거된 뒤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입 싹 씻듯이, 잘못을 일단 인정하는 게 전략상으로 더 나으니까 '죄송~' 이러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회개가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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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것 말이다. ㄲㄲㄲㄲㄲㄲㄲ 개그 만화 일화 3기 4화 요가 교실 편 -_-;; 비둘기의 포즈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또한, 몇 년 전엔 우리나라에서 어느 사형수가 그저 죄책감과 불안에 사로잡혀서 안절부절 못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마치 가룟 유다의 도피성 자살을 연상케 하는 이런 행위도 회개가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며, 동정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냥 속 시원하게 사형 집행 해 주는 게 당사자와 국가와 국민 모두를 위해서 훨씬 나을 텐데!

본인은 보지는 않았지만, 수 년 전에 개봉한 영화 <밀양>에도 복음을 왜곡하는 여러 스토리 중, 이런 장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저 놈(자기 자식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 안 했는데 어떻게 신이 먼저 용서를 할 수 있어?” 정말 가슴아프기 그지없는 장면이다. 이 글의 서론에서 언급한 저 두 사람은 “피해자 여러분께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가 있길 원합니다” 같은 말이 입에 발린 위선으로 비치지 않도록, 더는 실족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어느 사역자보다도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자기를 희생하여 회개의 열매를 보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성경에는 이 주제와 관련하여 구원과는 완전 별개로, '사망에 이르는 죄'라는 개념이 있음을 첨언하고 글을 맺겠다. (요일 5:16-17) 이 사망이란 하나님께서 도저히 회개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성도를 극단적으로 데려가시는 경우라든가 사회의 형벌을 의미할 수 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연쇄 살인 흉악범이 회개하여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그는 구원 받은 사형수이다.
기독교 만화 전도지를 보면, 안티들이 그렇게도 조롱하듯이 흉악범이 감옥에서 예수 믿어서 사형 당한 뒤 천당 가고, 그 반면 자기 의에 가득차서 예수님을 거부한 형사 내지 교도관은 죽어서 지옥 가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심지어 더 극단적으로 가자면, 그 흉악범에게 살해 당한 피해자는 지옥 가고 가해자는 예수 믿어서 구원 받는 것마저도 가능하다. 교리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단 하나 최후의 보루. 성경은 사형수에게도 인격이 있네 같은 인권 드립-_-이나 치면서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사형 제도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구원받아서 천당 가더라도, 사형은 당하고서 그 뒤에 간다. 이것이 기독교 교리의 논리 체계이다. 지금도 사형 반대 외치면서 피해자 유족들의 가슴에 두 번 못을 박는 위선적인 종교인들 역시,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다시 공부하면서 자기의 오류에 대해 깊이 회개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CASE STUDY:

1980년엔 5공 시절을 떠들썩하게 한 이 윤상 군 유괴 살해 사건이 있었다.
원조 교제로 여고생을 임신시키기도 하고 도박빚에 시달리기도 하던 어느 불량한 체육 교사가,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던 제자인 이 군을 납치하여 인질극을 벌이려 했는데, 가혹한 환경에서 감금당해 있던 이 군이 그만 질식사하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이 군이 수 개월째 행방불명이고 수사가 벌어지던 동안엔 전통이 이 군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부모를 위로하고, “유괴범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살려 주면 당신도 살고(정상 참작-_-), 아이를 죽이면 당신도 죽는다”고 이례적으로 전두환스럽게 강경한 대국민 담화를 손수 발표할 정도였다.

범인은 결국 잡혔고, 전통은 약속을 지켰다. 살해범인 주 영형이 수차례 항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982년에 사형이 확정되었으며 1983년, 서울 구치소에서 교수형을 당함으로써 세상을 떠났다.
제아무리 29만원, 빛나리, 전통이라 해도, 저 순간만큼은 정말 사회 정의를 실현해 냈다. 멋있다. -_-;;;

돈 때문에 제자를 유괴· 살해한 천하의 개쌍놈인 주 영형도 옥중에서 기독교에 귀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이 군과 그의 유족에게 사죄하는 말을 남겼으며, 나름 두 눈과 콩팥을 기증하고 죽었다. 오늘날도 사회 구조가 최소한 이런 결말이라도 만들 수 있는 형태라면 유가족들에게 그나마 덜 억울할 텐데!

Posted by 사무엘

2011/10/31 08:41 2011/10/3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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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上

우리나라에는, 전국민이 알 정도로 시끄러운 사고를 쳐서 20세기에 교도소에 갔다가, 출소 후 기독교에 귀의하여 21세기의 여생을 이 분야의 사역에 바치겠다고 공언한 사람이 최소한 둘 있다. 이들의 발언은 매스컴에도 보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 하면......;;
하나는 삼풍 백화점 사장이던 이 한상 씨이다(회장이던 이 준 씨의 아들). 몽골 선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잘 알다시피 고문 기술자라는 말을 만들어 내며 한때 악명을 떨쳤던 이 근안 씨이다. 요 몇 년 전에 아예 목사 안수를 받았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야말로 저주의 이름으로 전락한 삼풍 백화점!
당시 경영진은 돈에 눈이 먼 나머지, 전세계의 건축 전문가들을 경악케 한 전대미문의 비리와 편법을 동원하여 백화점 건물을 혹사시켰다. 그러다 결국 1995년 6월, 거대한 백화점 한 동을 지진이나 외부 폭격도 없이 제 발로 와르르 무너뜨리는 초대형 병크를 터뜨렸다. 4층 기준으로 설계된 건물을 5층으로 무단 증축하고, 미관을 위해 기둥 수를 줄이고 있던 기둥도 굵기를 줄이고, 윗층에는 무거운 온돌을 얹고, 옥상에는 규정 하중의 몇 배나 더 무거운 에어컨까지 얹고... 전문가들은 그 상태로 건물이 어떻게 6년씩이나 버텼는지를 더 신기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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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죄질이 더욱 나쁜 이유는, 건물이 붕괴할 걸 알고도 자기네만 쏙 피하고 영업은 계속 강행시켰다는 점 때문이다. 귀중품을 지하로 옮기고 고위 임원들은 미리 대피하고서 말이다. 이건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때 패닉 상태에 빠져서 자기 혼자 마스터 키를 빼들고 전동차를 탈출해서 달아나 버린 기관사와는 차원이 다른 악행이다.

이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던 1천 명이 넘는 종업원과 쇼핑객은 건물과 함께 그대로 폭삭..
성수대교가 무너진 지 불과 8개월 남짓 만에,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평시에 최다 사상자를 낸 최악의 참사를 일으키고 국제 망신까지 초래했다.

한편, 이 근안의 과거 행적도 충격과 공포이다. 심문 전에 기선 제압용으로 한주먹으로 사과를 으스러뜨리는 퍼포먼스부터 시작해 물 고문, 전기 고문, 통닭 고문, 잠 안 재우기 등등.. 말이야 쉽지 당해 보면 정말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 그는 말했다. “내가 손대기만 하면 누구라도 불게 돼 있어.”

고문 출장까지 갔던 그가 돌연히 목회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흉악범이 회개하여 목사가 된 것과는 다른 차원이며, 왕년에 크리스천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회심한 것과도 성격이 다르다.

고문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반인권적이고 사악한 행위이다. 성경의 그 엄한 구약 율법조차 사형은 백 번 인정할지언정, 고문은 절대 없다.
다만, 이 근안을 까는 글은 인터넷에 이미 널리고 널렸으니 본인은 for the sake of completeness 차원에서, 일부러 좀 다른 관점에서 논리를 잠시 펴도록 하겠다. 오죽했으면 인류 역사에 고문이란 게 존재했을지도 잠시 생각해 보자.

뻔히 드러나 있는 혐의를 일단 부인부터 하고, 아무 죄책감도 없이 거짓말로 태연하게 잡아떼기만 하던--그래 봤자, 밑져야 본전이므로-- 인면수심 흉악범 김 길태를 보고 열불이 안 났을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고문이란 저런 신발샛길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는 게 본인의 육신적인 심정이었다. -_-;;

그리고 2006년 이래로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은 전북 대학교 이 윤희 씨 실종 사건을 기억하는가? 딸을 잃은 아버지는, 강력한 용의자이자--그러나 무능한 수사로 말미암아 증거 확보와 유죄 입증엔 실패-- 딸의 스토커이던 뻔뻔한 남학생으로 하여금 읽으라고 쓴 공개 성명서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이 사건을 맡은 수사관이라면 누구라도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 정도 사건은, 30년 전만 해도 물고문에 고춧가루 한방이면 일도 아니었을 거라고 말이다. 네놈 선배들이 피땀 흘려 이뤄낸 민주화의 열매를 네놈 같은 녀석이 악용하는 게 통탄스럽다.” (☞ 원문이 있는 곳 클릭)

요즘 같은 첨단 과학 수사 기법과 심리 프로파일링 같은 기술도 없던 시절에 흉악 범죄에 맞서서 치안은 유지해야겠고,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정말 누가 누군지 모르는 간첩 불순분자도 우글거리던 시절,
비열하고 부작용의 우려도 만만찮으나 저비용으로 성과를 제일 간단하게 내는 방법을 현실적으로 외면할 수 있었겠냐 말이다.

고문을 옹호나 정당화할 의도는 절대 없으므로 오해 없기 바란다.
단지 전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그의 과거 행적이 그저 아무 이유 없이 하늘에서 그저 뚝 떨어진 건 아니라는 걸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더 잃을 게 없으니 배째라 하는 악질을 다스리는 제일 쉬운 방법은, 그 녀석들에게도 “더 잃을 게 있다는 걸” 일깨우고 공포에 빠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를 다스리기 위해 인간이 이열치열로 만들어 낸 차선책 중 하나가 고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에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두 사람은 동일하게 징역 7년이라는 죄값을 치렀다. 가정 전체가 풍비박산 났고 가족들까지 밖에 얼굴을 들고 다니질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한상의 집안은 피해자 배상금 명목으로 전재산을 압류 당했으며, 이 근안의 자녀 중엔 아버지가 누군지 밝혀지자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두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몽골로 떠난 후 언론으로부터 수 년째 별다른 소식 없이 잠적해 있는 이 한상과는 달리, 이 근안은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 응하면서 국내에서 활동 중인 것 같다. 그런데 발언의 수위가 다소 우려스럽다.

그래, 만에 하나 그는 왕년에 정말로 국가 명령에만 충성한 사람일 수 있으며, 고문도 상부 기관의 명령 내지 묵인하에 실적 쌓으려고,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수행한 것일 수도 있다. 무고한 사람 잡은 것보다는 그래도 진짜 흉악범이나 간첩을 잡은 공이 더 클 수도 있다. 나라가 망하기라도 한 것도 아닌데, 당대 상황을 감안하지도 않고 어제의 충신이 무작정 오늘의 역적으로 뒤죽박죽 평가 잣대가 바뀌는 언론 플레이도 본인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말은 목사 타이틀을 갓 얻은 그의 지금 처지에서 할 말이 아니다. 그런 변명은 그가 회개의 열매부터 충분히 보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이 근안 목사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주변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옹호하는 발언을 자발적으로 한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직도 그로 인해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린 사람, 파탄 난 가정이 즐비한 현 시국에서 그의 자기방어 변명성 발언은 더욱 많은 사람을 실족시키고 복음을 비방할 빌미만을 불신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선과 악, 죄와 벌, 회개 같은 것은 민감한 주제이다. 성경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며 오늘날 사람들이 반드시 정확하게 갖추고 있어야 하는 개념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라든가 복음에 대해 요즘 나돌고 있는 무수한 오해들도 불식시킬 수 있으며, 불신자에게 복음을 정확하게 전한다든가 교회 내부에서 죄로 인해 간증을 잃은 사람을 다루는 과정도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저 두 사람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저런 개념을 재정립을 한 번쯤 할 필요를 느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기독교는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종교 중 하나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굳이 종교라고 풀이하자면, 인간의 모든 문제의 원인을 죄 때문이라고 규정하며, 그 죄를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좀더 구체적으로는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해결하고 내세의 구원까지 얻으라고 가르치는 종교이다.

그 교리는 인간의 머리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자연인들 보기에는 완전 황당무계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그거야말로 인간의 지혜와 시스템을 초월하는 기독교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 교리로 인해 복음이 초기에 비방 받고 조롱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귀결이다. 성경은 그것 자체만으로 두려워하거나 쫄 필요는 절대 없다고 거듭해서 강조한다. 하나님이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주신 간증도 무수히 많으며, 그 어리석음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게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원칙은 변함이 없다. (下에서 계속)

Posted by 사무엘

2011/10/29 08:40 2011/10/2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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