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교숙 (1924-): 우리나라의 상징 BGM들

이런 엄청난 분이 계신다는 것을 최근에야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요즘 인터넷은 정말 대단하긴 하다. 지금 존재하는 모든 유· 무형의 사물들에 대해 그 창조주(?)와 기원과 내력에 대해 알 수 있다.
에디슨 같은 질문덕후가 21세기를 살았으면 무슨 짓을 하며 살다가 뭐가 됐을지 궁금해진다.

아무튼, 저분은 우리나라 국민의례 BGM을 있게 한 분이다. 해군 군악대장 출신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경례 BGM을 작곡했으며 “빰빠라 빰빠라 밤~”으로 시작하는 그 장성 경례곡도 작곡했다. 그게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 2007년에 국기에 대한 맹세 본문이 약간 수정된 바 있지만 BGM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고칠 필요가 없으니까.

확인은 못 해 봤지만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BGM도 정황상 저분 작품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이 묵념은 국민의례를 완전 진지하게 full scale로 할 때만 실시하기 때문에 BGM 역시 자주 들을 수 있지는 않다. 우리나라 근현대 수난기의 양대 비극이 각각 일제 강점기와 북괴(특히 6· 25)이니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은 각각 전자와 후자를 대표하는 셈이다.

아무튼. 저분이 아직 살아 계신다면 90이 넘은 고령인데, 최근 근황은 잘 모르겠다. 다만, 먼 옛날에 저분에게서 직접 음악을 배운 적이 있는 분의 회고록이 전해진다.

곁다리: 짤막한 멜로디

2~3분 이상 길이에 기승전결(?) 형식을 갖춘 노래나 악곡이 아니라 ‘딩동댕!’ 같은 짤막한 멜로디 말이다. “만나면 좋은 친구” 방송국 시그널송이나 초인종 벨소리.
글에다 비유하면 산문이나 운문도 아니고 짤막한 포스터 표어와 비슷한 위상일 것이다. 그림에다 비유하면 커다란 그림이 아니라 16*16, 32*32 크기의 아이콘 정도.

이렇게 극도로 제한된 시공간에다가 최대한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곡을 쓰는 건 보통일이 아닐 것 같다.
장성 경례곡을 좀 만들어 달라/보라는 의뢰를 받았거나 학교 수업 과제를 받았다면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는가? 길어야 30초 남짓한 시간 동안 무슨 심상을 표현하도록 콩나물을 오선지에다 그려 넣을까?

더 나아가 초인종 BGM은 어쩌다가 하필 “엘리제를 위하여”로 온통 물갈이가 됐을까? 그 곡이 초인종 BGM으로서 도대체 무엇이 좋아서? 장성 경례곡을 듣다 보니 이런 의문도 강하게 든다.

단, 저것들 말고 군대 기상 나팔 BGM은 딱히 작곡자가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외국 군대에서도 오래 전부터 나돌던 멜로디가 적당히 변형되었다.

2. 김 희조 (1920-2001): 국민체조

이분은 육군 군악대장 출신이다. MBC 기자 출신인 여자분과는 당연히 동명이인.
지금은 학교에서 자취를 감췄다지만 "국민체조" BGM과 “잘 살아 보세”가 바로 이분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자매품인 “국군 도수체조” BGM도 같은 출처이지 싶다.

본인은 먼 옛날에 잉여짓 차원에서 국민체조 BGM의 주선율을 오선지에 받아써 본 적이 있다. 진작부터 머릿속 장기 기억에 영구보존된 곡이니 검색해서 다시 안 들어도 얼마든지 채보 가능하다.
기본에 충실한 박자이면서도 최소한의 기교는 다 동원된 것 같았다. 음표는 2분에서 16분음표까지 다 나오고 점 4, 8분음표도 쓰인다. 임시 조표도 나오고 당김음(등배 운동), 스타카토(당연히 뜀뛰기에서), 셋잇단음표(전주에서)도 한 번씩 나온다.

템포 변화가 잦은 편이다. 가령, 전주에서는 ♩=108가량이지만, 체조가 시작되고부터는 ♩=88 정도로 느려진다. 뜀뛰기에서는 ♩=112~120 정도로 평소보다 25% 이상 템포가 빨라지다가, 마지막 숨쉬기에서는 ♩=60~70대까지 떨어진다.
모든 체조를 한 번씩만 했을 때(뜀뛰기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팔다리 운동으로 진입) 전주에서부터 숨쉬기 끝까지 음악의 러닝 타임은 우연의 일치인지 딱 2분 30초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것도 다 계산해서 작곡한 건지? 처음으로 한번 되돌아가서 풀 세트로 하면 4분 50초 정도 걸린다.

참고로, 국민체조의 BGM 말고 체조 동작 자체를 고안하고 구령을 녹음한 사람은 당연히 음악인이 아닌 체육인이다. 전 경희대 교수인 유 근림 씨로 알려져 있다.

3. MBC 창작 동요제

이제 분위기를 바꿔서 오랜만에 동요 얘기를 좀 꺼내 보겠다.
<새싹들이다>. 1983년 제1회 MBC 창작 동요제 대상 수상작인 것, 작사 작곡자가 '좌'씨인 건 알고 있었는데, 제주도민의 작품인 건 처음 알았다. 전문적인 음악가가 아니라 현직 교사의 작품이다.
저 애도 참 목소리 예쁘고 노래 잘 부른다. 1972년생 정도일 텐데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저거랑 제일 비슷한 풍의 다른 곡은 <어린이 노래>(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 같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거보다 더 나중에 작곡된 <새싹들이다>가 더 훨씬 더 밝고 명랑한 분위기이다.
미디, 신시사이저, 컴퓨터 반주 같은 일체의 디지털스러운 흔적 없이, 완전 클래식으로 오케스트라 꾸며서 반주하는 것도 지금 보니 굉~장히 인상적이다. 영상에다 비유하면 CG 없는 아날로그 특수효과만으로 구성됐다는 뜻이다.

이거 다음 1984년도 대상 수상작인 <노을>은... 나 초딩 시절, 컴퓨터 학원에서 GWBASIC 배우던 시절에 들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매주 금요일은 학원에서 다른 수업이 없고 그냥 원장님이 만든 음악 재생 프로그램을 있는 그대로 쳐서 실행되는 거 검사만 받고 나면 오락(게임)을 할 수 있었다.
그때 입력해서 들었던 곡 두 개가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게 하나는 MBC 드라마 <질투> 오프닝이랑, 알고 보니 노을이었다.
다시 말해 난 저 두 곡은 텔레비전에서 처음 들은 게 아니라 PLAY문 코드를 통해서 PC 스피커로 난생 처음으로 들었다.

MBC 창작 동요제는 의외로 오래, 2010년 20몇 회차까지 계속되긴 했다. 그러나 얘는 그 성격상 순수성이 오래 유지되기가 도저히 어려웠다.
21세기부터는 출품되는 곡이 점점 더 동요답지 않게 기교가 심해지고 가요풍으로 바뀌고, 출연하는 애들의 의상만 쓸데없이 고퀄로 올라가고, 후원 협찬 줄어드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폐지됐다. 어찌 보면 미스코리아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위상이 추락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7/10/01 08:32 2017/10/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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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국가(national anthem)들

한 나라의 상징으로는 깃발(국기), 꽃(국화) 등과 더불어 노래(국가)가 있다.
난 우리나라의 여러 상징들이 전반적으로 개성 있고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고유 문자인 한글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소나무, 태권도, 무궁화 다 좋다. 국기인 태극기도 적당한 상징성과 복잡도로 잘 만들었다.

다만, 그런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좋아하는 상징은 국가인 애국가이다. 다소 밋밋한 가사, 그리고 시작 부분의 너무 어색한 박자 때문이다(갖춘마디에다가 못갖춘마디 스타일의 박자를 얹음). 뭐, 덜 좋아한다는 거지, 아주 싫다는 뜻은 아니지만.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2.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난 개인적으로 1절과 4절은 모두 외우고 있고, 2절과 3절은 첫 단의 가사만 기억하고 있었다. 군대 훈련소에 있던 동안은 각 절을 매일 돌아가면서라도 훈련병들에게 애국가 가사를 4절까지 다 외우게 했던 것 같다.

그럼, 대한민국 말고 다른 나라들의 국가는 어떨까?
내가 멜로디를 완전히 알고 있는 외국 국가로는 미국, 중국, 영국, 독일, 그리고 북한이 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영국과 독일의 국가 멜로디는 이미 자동으로 숙지하고 계실 것이다. 찬송가에 동일 멜로디의 찬양이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피난처 있으니>와 <시온 성과 같은 교회>.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혹은 작별의 노래) 멜로디에다가 애국가 가사를 끼워서 부른 적이 있었다.

중국의 국가는 영락없는 행진곡 군가 스타일이어서 호전적이고 씩씩한 느낌이다.
중국 국가는 '칠라이'(일어나라), '치안찐'(전진)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들린다. "앞으로 용진 또 용진" 이러는 우리나라 <육군가>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가사의 주제는 "자, 노예로 살기 원치 않는 인민들이여, 함께 일어나 적들을 무찌르고 새 세상을 건설하자. 빠샤!" 정도?

노래를 부를 때는 성조를 전혀 표현할 수가 없어진다. 그럼 중국어를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생기지는 않나 모르겠는데, 하지만 의외로 문맥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식별이 된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사실 한국어도 완전 말도 안 되는 모호성이 적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소년/소녀, 그년/그녀, 내/네 등).

미국의 국가는 가사가 전투 장면을 묘사하고 있지만 멜로디는 군가풍이 아니며 오히려 3박자 계통이다. 그리고 가사 중에 국기인 성조기에 대한 묘사가 있는 게 특징이다. "그 치열한 전장에서도 우리의 성조기는 당당히 펄럭이고 있었노라."
가사 끝부분에 나오는 "자유의 땅, 용사의 고향"이라는 표현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짐작케 한다.

독일의 국가는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위버 알레스 위버 알레스 인 데르 벨트"(우리 독일이 세계 킹왕짱)라고 시작하는 첫부분이 인상적이다. 가사의 나머지 부분도 전투적인 요소는 별로 없이 그냥 자기 나라 찬가이다.

영국의 국가 <God Save the Queen>은 군주인 (여)왕에 대한 축복송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찬송가뿐만 아니라 Noteworthy Composer 악보 프로그램에도 예제 데이터로 곡이 통째로 실려 있다.

다음으로, 북한의 국가는 제목이 남한과 동일한 <애국가>이다. 김씨 부자에 대한 우상화가 지금처럼 극심해지기 전에 미리 만들어져서 그런지 노래 자체는 의외로 전투적이거나 위수김동을 전파하는 내용이 없다. 그냥 평범한 조국 찬가 스타일이고, 어찌 보면 남한의 애국가보다 퀄리티가 더 좋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북한 내부에서 주요 행사 때는 애국가보다 별도의 장군님 찬가를 더 즐겨 부른다고 하니 '역시나'이다. 북한 애국가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 있으니 더는 하지 않겠다.

이스라엘의 국가는 역시 이스라엘 아니랄까봐, 국가가 웬 단조라는 것 정도만 기억한다. (찬송가 중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요풍의 단조)

끝으로, 일본의 국가는 <기미가요>인데.. 지극히 일본스럽다. 일본 사람이 자기 내면을 잘 표현하지 않고 말을 모호하게 하는 걸 즐기고, 헌법조차 덴노의 정체성에 대해서 아주 모호한 문장으로 시작하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임의 대(代)는 1000대까지.. 8000대째에 작은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너무나 짧고 의미도 밍숭생숭하기 그지없는 가사이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국가라나? 멜로디의 음계 또한 전통적인 서양 음악 스타일을 떠올렸다가는 놀라게 된다.

모든 일본인들이 이런 기미가요를 국가로서 좋아하는 것 역시 아니라고 한다. 똑같은 군주 찬가여도 대놓고 신을 거론하며 마음껏 복을 비는 영국 국가하고는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
가사 내용에 대해 또 딴지를 걸자면, 돌멩이는 무슨 눈덩이나 흙덩이도 아닌데, 긴 세월이 흐르면 커지기보다는 닳고 쪼개지지 않나 싶기도 하다.

기미가요는 가사 자체는 너무 추상적이다 보니 별로 문제될 게 없으나, 역시 일제 군국주의와 함께 강제로 보급되고 퍼진 이력이 있다 보니, 한국처럼 일제의 피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에서는 좋은 평판을 못 받고 있는 노래이다.

다른 나라들은 그렇다 치고 한중일 CJK만 살펴보더라도, 국가가 삼국이 서로 극과 극으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세계의 국가들을 군가/전투형, 군주 찬가형, 국가 찬가형 등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3/09/23 08:25 2013/09/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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